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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과 어리석은 자가 믿음의 대장부로: 사도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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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폴쵸 작성일08-08-15 14:50 조회4,7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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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과 어리석은 자가 믿음의 대장부로: 사도 베드로
8월 23일 안식일 (일몰: 오후 7시 14분)

도입)
하나님께서는 약점이 많고 덤벙대고 성미가 급한 사람도 쓰신다. ‘말라츠’라는 심리학자는, 95%의 사람들이 어떤 약점 때문에, 열등감에 빠져 있다고 한다. 그러나 성공한 사람들은 약점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약점을 극복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배우지 못한 약점을 가진 링컨과, 소아마비의 약점을 가졌던 루즈벨트는,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고 대통령이 되었다. 가난의 약점을 가졌던 록펠러는, 세계 최대의 부자가 되었다. 귀머거리의 약점을 가졌던 베토벤은 최대의 악성이 되었다. 헬렌 켈러는 3중고의 약점을 극복하고, 장애우에게 큰 힘과 용기를 주었으며, 그들을 위해 사회사업을 했다. 수학을 못한다고 시험에 낙방하지 않는다. 다른 과목을 잘 하면 된다. 마라톤의 황제 아베베는, 세계최고기록으로 올림픽마라톤 2연패한 최초의 선수로 “맨발의 황제”란 별명이 붙어 있다. 그러나 그는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되었다. 이제는 다 끝장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베베는 마라톤 대신 양궁으로, 지금의 장애인 올림픽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땄다. 약점이 없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약점이 아니라,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다. 성경은 약점을 극복하고, 승리자가 되도록 만들어 주는 책이다. 하나님은 약한 자에게 관심을 가지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약한 자를 들어서 사용하신다. 강한 자는 교만하기 쉽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이 강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을 약하게 만들어,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신다. 베드로는 실수투성이요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뭔가를 가진 자도, 약하게 만들어서 사용하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연약함이 무슨 장애와 문제가 되겠는가? 있는 그 자리에서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는 그 자리에서 죽도록 충성한다면, 더 크게 쓰임 받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약해도 쓰임 받을 수 있다. 모든 능력의 원천은 하나님께 있다. 무한대에 만을 더하나, 억을 더하나, 다 똑같이 무한대다. 무한대의 힘을 가지신 하나님께, 나의 능력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무한대의 능력을 지니신 하나님을 내가 의지하느냐, 의지하지 않느냐에 달려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우리의 약함이 오히려 강함이 된다.

기억절: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요 6:68).

연구범위: 행 2:14-40, 3:1-26, 5:1-11, 베드로전서, 베드로후서.

중심 사상: 사도 베드로는 초기교회의 가장 강력한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다. 열정은 가졌으나 신뢰할 수 없었던 한 제자를 예수께서는 변화시키셔서 복음을 전하는 강력한 지도자로 세우셨다.

안식일 오후

충동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던 베드로는 그의 성격 때문에 웃지 못할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그는 비록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나 끊임없이 실수를 반복하는 그런 제자였다.

베드로의 이야기는 그리스도인 생애에 있어서 감정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가령 숲 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우리의 감각에만 의존하면 점점 더 멀리 헤매게 될 수도 있다. 우리는 보고 듣고 냄새를 맡을 수 있지만 여전히 길을 찾지 못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본능 이외에 뭔가가 더 필요한데, 그것은 바로 나침반과 지도이다.

이것은 영적인 생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느끼는 것이 진리에 대한 최종적 시금석이 되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 외부에 있는 뭔가를 더 필요로 한다. 우리에게는 영적인 나침반과 지도가 필요하다. 감정이 그리스도인 생애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니다. 만일 우리가 적절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 감정은 우리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 베드로는 감정에 치우쳐 종종 어려움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께 자신을 전적으로 굴복하였을 때, 그의 감각과 열정은 주님의 사업을 위한 강력한 도구가 되었다.

일요일(8월 17일)
어부였던 베드로(마 4:18-20)

도입)
예수님이 어부인 베드로를 변화시키며 제자의 반열에 세워 놓으신 것을 보면 너무나도 위대하시며 대단하시다. 베드로에게 민첩하게 다가가셔서 그와 하나가되어 주신 후에 그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동시에 그가 따라오도록 이끄시며 제자의 반열에 세우신 것을 발견한다. 예수님은 제자 베드로를 가르치시며, 그의 앞을 내다보시며 이끌어 가셨다. 너무나도 초라하게 깨어지며 아픔을 겪고 일어서는 인간의 모습. 염치를 불구하고, 생활하는 베드로. 아픔과 고통을 겪게 하신 이 모든 것도 하나님의 계획 속에 포함되어 있다. 참된 순종이란 우리가 기꺼이 하기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죽어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감수하는 것이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기도로 받드신 순종은 십자가를 가능케 했다. 기도는 모든 것을 가능케 한다. 베드로가 깨어지기 쉬웠던 믿음은 그의 맹세와 다짐이었다. 그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순교할 것같이 맹세하였다. 그러나 그의 배후에 움직이는 영들을 다루지는 못했으며(어두움의 주관자 마귀) 그의 실패는 다짐은 했지만, 행동이 없는 빈 깡통같이 소리 나는 신앙에 불과했다. 그의 기도의 실패가 설교의 실패로 이어진 것은 기도에 승리한 예수님과 비교하면 알 수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의도를 알았지만, 베드로는 성령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도를 몰랐으며 실패의 결과를 걸었다. 예수님도 육신을 입어 연약하였으나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 때문에 이기셨다. 베드로의 신앙은 대기만성 형에 속한다. 감정에서 굳건한 믿음과 의젓한 모습으로 우월감에서 성숙한 믿음과 완전한 모습으로 베드로는 주님과 발맞춰 가는 것보다 한 템포 빠르거나 한 템포가 느린 것을 본다. 말씀을 깨달아 실천해도 인격이 부족하여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았던 것 같다. 베드로에게서 무지하여 실천도 인격도 없이 얻지도 잃지도 못한 신앙의 연약함을 발견하면서 새롭게 도전하는 계기가 된다.

베드로는 갈릴리 북동쪽 연안에 위치한 벳새다라는 어촌 출신이다. ‘물고기 잡는 집’이라는 뜻을 지닌 벳새다에서 예수께서는 후에 많은 이적을 행하기도 하셨다. 벳새다는 1987년 고고학자들에 의해 정확한 위치가 밝혀지기까지 거의 2천년 동안 역사 속에 묻혀있었다.

베드로는 분명히 결혼한 사람이지만(마 8:14), 그의 아내나 자녀들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예수께서 베드로를 제자로 부르셨을 때, 그는 아내와 함께 장모를 모시고 가버나움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1.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어떻게 반응했습니까?(마 4:18-20). 베드로와 안드레가 “그물을 버려두”었다(20절)는 사실에는 어떤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까?

답:

베드로의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스쳐갔는지 우리는 추측할 뿐이다. 하지만 예수님에 관한 어떤 강한 매력이 베드로로 하여금 자신의 가족과 생업을 버려두고 이 떠돌이 선생을 따르도록 이끌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여기서 우리 모두는 한 가지 교훈을 배워야 하는데, 우리도 이와 같이 준비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참조 눅 14:26-27).

1. 베드로는 비천한 노동자 계층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배경은 달랐습니다(행 22:3, 롬 11:1, 빌 3:5). 이러한 차이점을 통해 우리는 어떤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답:

베드로와 바울은 비록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었으나, 예수께서는 이들 각자를 부르셔서 전적인 헌신을 바칠 것을 요구하셨다. 상류 계급이든 노동자 계급이든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교훈: 어부였던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가족과 생업을 버려두고 그분을 따랐다.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되려면 이와 같은 전적인 헌신이 필요하다.

부가적용)
"나를 따라 오너라"란 예수님의 단 한마디 명령에 생업에 열심히 종사하던 네 제자는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마 4:20절)하며 즉시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다. 참으로 손쉬운 결단의 모습이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 제자가 된다는 것은 철저한 자기 부정, 자기 포기가 없이는 안 된다(눅 9:23). 그것은 예수님이 주님의 제자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못 박으신 사항이다. 생각해 보라. 경주자가 등에 짐을 잔뜩 지고서 달릴 수 있겠는가? 바울은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고 했다(빌3:7,8). 베드로도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뒤좇았다고 했다(마 19:27). 한 부자 청년은 소유가 너무 많아 예수님을 뒤쫓지 못하고 근심하여 돌아섰다고 했다(마 19:21,22). 확실히 부자는 신앙 생활하기 어렵다. 예수님은 기도로 버려진 땅 갈릴리에서 가난한 제자를 부르심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셨다. 이것은 복음의 시작, 복음의 본질, 복음의 관심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기도로 준비되지 않은 것은 복음 안에서 무엇이든 거부된다. 죄인, 가난한 자는 복음 안에서 관심과 사랑이 집중된다. 그들이 대상이고 그들이 주체가 된다. 그들을 가르치고 고치고 그들에게 선포되는 것(23-25절)이 바로 복음인 것이다.

월요일(8월 18일)
베드로의 어리석음

도입)
베드로는 한마디로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며 어리석은 자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물위로 걸어오시자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마14:28)라고 담대하게 요청한다. 그래서 바다 위를 걷게 되지만, 사나운 폭풍우를 바라보며, 겁에 질려 물에 빠진다. 이때 베드로는 예수님께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얼마나 웃기는 장면인가? 어부는 수영이 기본이다. 그러니까 헤엄쳐 나오면 되는데, 살려 달라 소리치고 있으니, 그는 덤벙댈 뿐,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시자, 제자들은 “침례요한, 엘리야,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하였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그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마16:16)이라며, 정답을 말했다. 예수님은 크게 감동하셔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7-18)고 칭찬하시고 축복해 주셨다. 예수님은 감동하시어 자신은 십자가에서 죽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21). 그랬더니 이번에 베드로는 “절대로 그러시면 안 됩니다”하며, 극구 막아섰다. 이에 다시 실망하신 예수님께서는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23)고 말씀하셨다. 바로 같은 장소에서, 곧바로 일어났다. 이렇게 금방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가, 실망을 주었다 하는 덤벙대는 인생이고 어리석은 베드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실 때, 다른 제자들은 조금 민망해도 가만히 있는데, 베드로는 주님께서 자신의 발을 씻기도록 하지 않겠다며, 예수님을 말렸다. 그때 예수님께서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요13:)고 하시자, 이번에는 당황스럽게 목욕까지 시켜달라고 했다.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그렇지 않겠나이다”(요13:29).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요13:31)라고 호언장담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잡히셨을 때,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고 부인하고, 맹세하고, 저주까지 하였다. 그리고 닭이 울자, 회개하며 울었다. 또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제자들의 자는 모습을 보시고,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26:40-41) 하셨다. 세 번 동일한 말씀으로 하신 후, 이제는 자고 쉬라고 하였다. 그런데 자지 않고, 예수님을 잡으러 온 자의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떨어뜨렸다. 깨어 있으라 하면 자고, 자라고 하면 깼다. 이렇게 걷잡을 수 없는 사람이, 바로 베드로다. 신약에서, 가장 공감이 가는 인물이 베드로다. 단순, 무식, 다혈질 그 자체의 인물이다. 이렇게 문제투성이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고 난 다음 크게 변했다. 주님께서는 투박한 베드로를 잘 다듬어, 반석으로 쓰셨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다듬어 지도록 기도하자. 우리도 하나님께 붙들리면 베드로처럼 크게 쓰임을 받을 수 있다. 변화되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다른 제자들처럼, 베드로도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배우는 특권을 가졌다.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 기나긴 여행을 했고, 그분과 함께 먹었으며, 그분과 함께 일하였다. 그는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었고, 그분께서 사람들과 함께 일하시는 모습을 지켜보았으며, 병든 자들을 고치시는 것을 보았다. 베드로는 변화산의 특별한 사건을 목격하였고, 예수께서 모세와 엘리야와 더불어 이야기하시는 것을 주목하였다. 그는 예수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키시는 것을 보았다. 그는 예수께서 붙잡히실 때에 그분과 함께 있었고, 무덤에서 일어나신 후에도 그분을 만나 뵈었다.

베드로는 또한 많은 유용한 배움의 기회를 가졌었다. 그는 종종 생애의 변화를 가져오는 실물 교훈의 중심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하였다. 이 모든 교훈들은 베드로로 하여금 초기 교회의 위대한 선교사 중 하나가 되도록 준비시켜 주었다.

1.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 하는 동안에도 많은 실수를 범했습니다. 다음 성경절들에서 그의 실수에 관한 기사를 읽으십시오. 베드로는 어떤 실수들을 저질렀으며, 그러한 실수들로부터 어떤 교훈을 배워야만 했습니까?

마 14:22-32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마 26:36-46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막 14:29-31, 66-72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요 18:10-11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베드로는 너무나도 대담하고 참을성이 없었으며, 성급하게 행동하거나 싸우기를 좋아했다. 그는 중요한 순간에 잠을 자는가 하면, 겸손하고 온유하며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서는 안 될 좋지 못한 특성들을 다 가진 듯이 보였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러한 모든 성향들을 극복하고 초기교회의 핵심적인 지도자 중 한 사람이 되었으며, 예수님을 위해 일하는 능력 있는 전도자와 선교사가 되었다. 그의 생애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복종한 사람의 삶이 어떻게 변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강력하고 생생한 증거가 되었다.

교훈: 베드로는 성급하게 나서기를 좋아하는 신중하지 못한 성격의 소유자였으나 자신을 예수님께 의지했을 때 그분께서는 그를 변화시키시고 초기교회 지도자로 세우셨다.


부가적용)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시 던 예수님의 수제자였다. 천국열쇠를 주셨으며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그가 피를 주고 사셨던 교회와 양떼를 맡기셨다. 베드로는 초대교회 최고의 지도자였다. 그러나 성경을 읽어보면 그 어떤 사람보다도 베드로의 실수와 약점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성경에는 가롯 유다의 잘못 말고는 다른 제자들의 실수를 기록한 것이 없다. 그런데 베드로의 약점, 부끄러움과 약점을 다 기록하고 있다. 예를 들면 물위를 걷다가 물에 빠진 것, 예수님에게 사탄아 물러가라고 심하게 꾸중 받은 일,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이야기 등은 베드로의 치명적인 실수이다. 초대교회가 베드로에 대해 숨길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베드로의 실수에 대해 낱낱이 기록했다. 베드로가 똑똑하고 잘난 사람이었다면 초대교회 역사는 베드로의 것이지 하나님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복음서의 기자는 베드로가 이런 약점이 있는 자이지만 하나님이 능력을 주셔서 초대교회의 지도자가 되었고 초대교회를 이끌어갈 수 있었던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는 잘나고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자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외면하신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신다. 나는 약점이 많은 사람이다. 나는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다. 나는 부끄러움이 있는 사람이다. 스스로의 결함과 약점을 인정하며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신다.

화요일(8월 19일)
예수님으로부터 배움(마 16:13-26)

도입)
인간의 만남 가운데서 가장 극적인 만남은 단연 하나님과의 만남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만남은 작게는 그 인간의 존재 전체를 변화시키는데서 시작해서 전 세계를 변화시키는 데까지 여파가 미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평범한 인간이지만 점차 자신의 장애와 한계를 극복하고 위대한 삶으로 나아간다. 예수님은 평범한 우리에게도 이런 만남을 준비하시고 우리를 초대하신다. 일개 어부에서 초대교회의 지도자로 성장하여 복을 위해 죽어 간 순교의 사도, 베드로, 그는 급한 성미와 자기 과신으로 말미암아 어처구니없는 실수도 범하고 주님의 방해자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결코 주를 버리지 않겠노라고 장담했으면서도 주님이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에 그분에게서 등을 돌려 버린 인물이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과 은혜로 그 나약함을 딛고 주님께 배우고 깨우침을 받아 반석 같은 제자의 삶을 살게 된다. 불완전한 모래 같은 불안한 베드로 그러나 그 불안한 베드로를 반석이라 부르신 주님 수없이 부딪기며 울며 웃으며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는 베드로, 결국에는 아름다운 주님의 친구로, 제자로, 그분의 대리자이며, 작은 예수로 십자가에 달린 베드로의 모습에서 열정과 실수투성이 제자라는 편견에 갇혀 있었던 베드로를 연구해 보면 우리의 믿음과 인생의 선배로서 베드로라는 믿음의 선배와 함께 우리의 믿음의 과정을 비교해 보면서 우리가 직면할 수 있는 모든 과정 과정에서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을 예수님께 새로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좋은 사례이다.

1. 마태복음 16:13-26을 읽으십시오. 베드로와 예수님 사이에 오고간 대화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베드로가 그렇게 대답한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떤 기본적인 교훈을 가르치고자 하셨습니까?

답:

베드로는 예수님을 메시야 즉 그리스도로 선언했으나, 그는 그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이 가졌던 메시야에 관한 견해는 그 당시의 일반적인 이해를 반영해 준다. 그들은 메시야가 다윗의 혈통으로부터 와서 로마를 전복시키고 정의와 평화의 나라를 세울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무리에게, 하나님의 왕국은 영적인 왕국이요 세상 왕국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가르치셨다. 하나님의 왕국은 권력이나 검(劍)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용서와 의(義)로 세워질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그분의 사역의 중요한 단계에서 제자들에게 당신의 죽음에 관해 말씀하셨다. 그분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셔서 죽임을 당하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을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죽임을 당하러 가신다는 말씀에 크게 충격을 받았다. 그는 이 죽음이 구원의 계획에 있어 대단히 중요하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베드로의 견지에서는 이러한 개념을 수용할 여지가 없었다. 그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고향과 생업을 버렸었다. 그는 그분과 그분의 사역을 돕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주님의 죽음은 그가 마음속으로 꿈꾸어 오던 희망을 꺼버리는 듯이 보였다. 예수께서 지상 왕국을 세우시면 공의와 평화가 충만한 그 나라에서 자신이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고 베드로는 생각했었다. 이 놀라운 의와 회복의 대역사가 그 지도자의 죽음으로 끝나버릴 수 있단 말인가? 베드로는 예수께서 사흘 만에 부활하리라는 약속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교훈: 베드로는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배웠으나 그분의 왕국과 사역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갖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그럴 위험성이 있다.

부가적용)
20세기의 위대한 정치 사상가인 한나 아렌트는 제1,2차 세계 대전과 세계사적 사건을 겪으며 사회적 악과 폭력을 사상적으로 분석하고 통렬히 비판한 인물이다. 그는 1960년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고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아이히만은 히틀러 치하에서 자신에게 부여된 유다인 학살을 '가장 효과적이고 경제적인 방식으로' 수행했던 사람이다. 당시 법정에 선 아이히만한테서 사람들이 보려 했던 것은 야수와 같은 모습이었는데 그는 그저 평범한 가장이요, 자상한 남편이요, 충실한 직장인일 뿐이었다. 월급을 받고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오히려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충격적인 아이히만의 모습에 아렌트는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아이히만의 문제점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도무지 생각하지 않는 '무사유'의 사람이라고 아렌트는 지적한다. 그러면서 그는 무사유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 속에 깃들 수 있는 '평범한 악'이라고 말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똑같은 질문을 하신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슬펐다. 왜 예수님은 베드로를 그렇게 슬프게 했을까? 예수님이 당신을 향한 베드로의 사랑을 의심해서였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당신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다. 예전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막 8:30)라고 고백했지만 곧이어 예수님이 수난을 예고했을 때 그분을 꼭 붙들며 반박했기 때문에 사단이라고까지 비난받은 적이 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삶으로 구체화되지 못했던 경험이 있기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당신을 향한 사랑이 구체화되도록 세 번의 말미를 주신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삶 안에서 얼마나 그 사랑을 실천하고 있을까? 생각 없이 그저 습관적으로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무사유의 신앙, 무사유의 사랑은 우리의 삶에서 위선으로 나타날 수가 있다.

수요일(8월 20일)
사도행전의 베드로(행 2:14-40)

도입)
한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서 초라한 인생을 살다 갈 수도 있고, 평범한 삶을 살다 갈 수도 있다. 그런가하면 위대한 삶을 살다 갈 수도 있다. 흔히 사람들은 삶의 내용을 결정하는 요소를 출신성분이나 학력이나, 배경 등을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요소들은 어디까지나 이차적(二次的)인 내용들이다.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의 내면의 정신세계에서 이루어지는 본질이 문제이다. 출신성분이 미천하고 학력이 무학(無學)이고 사회적으로 자신의 입지(立地)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아무런 배경이 없이도 자신이 내면의 깨달음 속에서 스스로 위대한 삶을 살아가게 될 수가 있다. 우리는 그런 경우의 대표적인 경우를 베드로에게서 찾을 수 있다. 예수그리스도의 제자 중의 제자요 초대교회의 주춧돌과 같은 역할을 하였던 베드로는 출신성분도 학력도, 사회적 배경도 어느 하나도 갖추지 못하였던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위대해질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가르치심 속에서 그의 혼이 깨어난 후에 자기 자신을 위대한 삶에 헌신하였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그렇게 위대한 삶으로 변화될 수 있었던 이유는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복음서에는 베드로에 대한 이미지가 대체로 부정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베드로는 끊임없이 넘어지고 큰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복음서의 마지막 부분에는 이 허물 많은 제자의 미래에 관해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다.

1. 요한복음 21:14-19을 읽으십시오. 여기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어떤 말씀을 하셨습니까? 베드로의 과거 행적을 고려해 볼 때, 이 말씀은 왜 그처럼 놀라운 것입니까?

답:

“내 양을 먹이라?” 결국 베드로가 해야 할 일은 이것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번,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한 사람을 그분께서 어떻게 사용하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증언을 발견한다. 그렇게도 성미 급하던 베드로가 이제는 초기교회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

2. 다음 구절들을 읽어보십시오. 베드로는 어떤 역할과 사역을 수행하였습니까?

행 2:14-40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행 3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행 5:1-11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베드로에게 일어난 변화는 우리에게 놀라움을 안겨 준다. 우리는 여기서 분명히 한 가지 교훈을 배워야 한다. 베드로는 자기 자신을 전적으로 그리스도께 굴복시킴으로써 주님을 위한 능력 있는 증인이 되었다. 베드로는 많은 실수를 저질렀으며 많은 약점을 드러냈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여전히 그를 능력 있는 증인으로 사용하실 수 있으셨다.

교훈: 많은 약점을 가지고 있었고, 끊임없이 실수하고 넘어지던 베드로도 자신을 전적으로 주님께 바쳤을 때 초기교회의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부가적용)
베드로는 극에서 극을 달렸던 사람이었다. 예컨대 제자들 가운데서 베드로처럼 담대하고도 확실하게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사람이 없었다. 반면에 제자들 가운데서 베드로처럼 뻔뻔스럽게 예수님을 부인한 사람도 없었다. 그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면서 저주까지 했던 사람이었다. 또 제자들 가운데서 베드로만큼 예수님에게서 큰 칭찬을 받았던 사람도 없다. 예수님은 그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에게서 사단이라고 불리면서 가장 크게 책망을 받았던 제자도 바로 베드로였다.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보다도 더 많은 책망을 예수님에게서 받았다. 반면에 베드로는 제자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감히 예수님을 책망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마16: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諫)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여기에 사용된 “간하다”는 말의 원 뜻이 책망한다는 뜻이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것이라고 말씀하시니까,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하지도 말라고 예수님을 꾸짖었던 것이다. 이처럼 베드로는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반석처럼 듬직한 인물이 아니라,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를 불러서 열두 사도들 가운데서 으뜸으로 삼으셨다.

목요일(8월 21일)
편지서에 나타난 베드로의 모습
도입)

베드로는 다혈질의 사람이다. 다혈질의 사람은 준비성이 부족하고, 일을 대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벧전3:15을 보면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벧전3:15). 한 번도 준비한 적이 없던 베드로가, “항상 예비하라”고 했다. 그는 이제 대충 사는 인생이 아니라 예비하고 준비하는 인생으로 변하였다. 대책이 전혀 없는 사람이지만, 하나님께서 인생을 아름답게 바꿔주셨다. 우리 인생에는 약점이 있다. 약점 때문에 괴로워 말라. 약점 때문에, 축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낙담한 이 어부는 자신에게 어떤 일이 닥쳐올지 전혀 알지 못했으며, 주님의 교회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게 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가 사도행전에서 보듯이, 베드로는 예수님의 명령을 수행하였다. 그는 또한 두 개의 편지서를 쓴 기자(記者)가 되었다. 주님의 양을 먹이는 베드로의 사역은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뿐 아니라 교회 역사상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수행되었다. 어떤 면에서 우리가 베드로의 편지서들을 읽을 때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제자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의 일부분을 성취시키고 있는 것이다.

1. 베드로의 편지서 중에서 임의로 한 장을 택하여 읽어 보십시오.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 편지서를 쓰고 있는 베드로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베드로전서와 후서에 나타나 있는 새로운 베드로의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답:

이처럼 심오하고 웅변적인 글이 사복음서의 그 베드로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어쨌든 그는 과거에 생각보다 말이 먼저 튀어나오던 성급한 그 베드로임에 틀림없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이 되었던 것이다.

베드로전서 1:18-21과 2:2-4에 나오는 베드로의 말은 매우 강력하다. 이 구절에서 베드로는 우리로 하여금 구원 얻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예수님의 죽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베드로는 한 때 예수님께 결코 십자가를 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 베드로가 이제는 십자가를 구원 얻기 위한 길로서 설교하고 있다. 그는 우리의 대속주이신 예수께서 우리 죄를 받아들이신 곳으로 십자가를 소개한다. 베드로전서 2:18-23에 나오는 어법을 연구해 보라. 이 구절에서 베드로는 다른 편 뺨을 돌려대는 것과 같은, 무저항주의를 가르치고 있는데, 이는 사복음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베드로의 모습이다. 참으로 그 변화는 놀라웠다. 그것은 우리가 개인의 품성 계발의 어느 단계에 있든지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준다.

교훈: 사복음서에 나오는 베드로의 모습에 비하면, 베드로 서신에 나오는 그의 모습은 참으로 놀랍게 변화되어 있다. 그의 변화는 곧 우리의 희망이다.

부가적용)
베드로의 변화는 품성의 변화를 바라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훌륭한 예증이 된다. 우리도 주님 앞에 베드로처럼 벌거벗은 모습으로 나가야 한다. 그러면 회복될 수 있다. 약점이 많고, 부족함을 느낌은 우리에게 예수님이 필요함을 말해준다. 약점을 가지고 불쌍히 여겨 달라며 나아가야 한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높이 보신 점은, 바로 이 정직성이다. 베드로는 연약한 모습 그대로 나아가 주님 앞에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변덕쟁이입니다. 저는 의지가 약하고, 다듬어지지 않았다”며 주님께 솔직히 고백하며 나아갔다. 대개 사람들은, 자기 약점을 잘 보지 못한다. 그런데 베드로는 자신의 연약함을 잘 알았다. 그래서 그만큼 치유도 빨랐다. 간은 아파도, 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증상이 나타나면, 그때는 이미 늦은 때가 많다. 그렇기에 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는 병이 무섭다. 그러나 증상이 나타나면 쉽게 고칠 수 있다. 베드로는 자신의 약점을 보고, 주님 앞에 내려놓았다. 그래서 주님께서 베드로의 약점을, 하나씩 치유하고 다듬어 가셨다. 자신의 잘못을 드러내지 않았던 바리새인들을 예수님을 싫어하셨다. 속이 썩어 문드러졌는데도, 포장만 그럴싸하게 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은, 베드로처럼 정직한 모습,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오기를 원하신다. 주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지 않으시고, 죄인을 부르러 오셨기 때문이다. 자기 죄를 고백하고 나오면 주님께서 용서해 주시고, 아름답게 만들어 주신다.


금요일(8월 22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시대의 소망, 제40장 ‘호수의 밤’(377-382).
“제자가 된 초기에 베드로는 자기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바리새인들처럼 ‘다른 사람과 같지’ 않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리스도께서 잡히시던 저녁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막 14:27) 고 예고하셨을 때 베드로는 자신 있게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렇지 않겠나이다’(막 14:29)라고 말했다. 베드로는 자신의 위험을 알지 못했다. 자부심(自負心)이 그의 판단을 그르쳤다. 그는 자기 자신이 시험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불과 몇 시간 뒤 시험이 이르러 왔을 때 그는 저주와 맹세로써 그의 주님을 부인하였다.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서야 그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자신이 이제 막 저질러 놓은 일에 대하여 놀라움과 충격을 느끼면서 자기 선생님을 돌아보았다. 바로 그 순간에 그리스도께서도 그에 대한 동정과 사랑이 섞인 슬픈 눈빛으로 베드로를 바라보셨다. 베드로는 그분의 모습에서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밖으로 나가 심히 통곡하였다. 그를 그윽히 바라보시던 그리스도의 모습은 그의 마음에 통회를 가져왔다. 이러한 전환점에 이르러 베드로는 자기의 죄를 깊이 회개하였다. 그는 세리처럼 통회하고 회개하였고 세리처럼 긍휼히 여김을 받았다. 그를 바라보신 그리스도의 모습은 그에게 용서를 보증해 주었다”(실물교훈, 152-154).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믿음이 부족하여 물 속으로 가라앉던 베드로를 비난하기 쉽지만, 배에서 나와 물에 발을 디딜 용기를 가졌던 제자는 베드로밖에 없었습니다. 어떻게 우리도 그와 같은 용기를 가질 수 있을까요?

2.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요약: 베드로의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지극히 연약한 제자를 통해서도 일하실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열정과 선한 의도를 바르게 사용하도록 이끄시고, 그의 믿음을 강화하심으로 초기 그리스도교의 힘 있는 지도자가 되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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