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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과 천연계: 건강의 원천(예화와 풍부한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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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춘호 작성일11-03-15 15:41 조회4,955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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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과 천연계: 건강의 원천
3월 19일 안식일 일몰: 오후 6시 42분

도입)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됐다. 이 원자폭탄으로 부상을 입고 수용소에 옮겨진 중환자들은 출혈과 고열로 목이 말라 “물! 물!”하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아기가 나온다”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평상시라면 조산원의 도움을 받고 낳을 수 있지만 그 곳은 피폭환자들의 수용소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둘 다 죽게 되었다. 이 때 한 구석에서 “나는 조산원이다. 그 산모 곁으로 나를 옮겨 주십시오”라고 호소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 몸으로 어떻게 합니까?” “아닙니다. 나는 조산원입니다. 제발 옮겨 주세요”라고 애원함으로 다른 환자들이 그를 산모에게 데려가서 순산을 시켰다. “으앙!”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남자아이다”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그 조산원은 원기가 떨어져 그만 목을 수그린 채 죽었다. 산모도 그 뒤를 따라 숨을 거두었다. 하지만 아기는 아무 탈 없이 잘 자랐다. 그 어린애는 지금 그리스도인이 되어 일본교회의 한 복지시설에서 봉사하고 있으면서 이렇게 간증하였다. “나는 양친의 얼굴을 본 일도 없고 이름도 모르지만 내가 지금 여기 있다는 사실은 이전에 나의 양친이 살아 계셨다는 증거입니다. 그와 같이 나는 하나님의 얼굴을 본 일이 없지만 질서정연하고 일사불란한 대 우주를 볼 때 그것을 지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만물 속에 보인다”(롬1:19) 하였고,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않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롬1:20)고 하였다.

기억절 :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시 19:1~2).

결론 우리의 첫 번째 집이었던 천연계를 통해 하나님은 건강한 양식, 평화로운 환경, 천연 치료제, 그리고 그분과 교제하며 예배할 수 있는 이상적인 공간을 제공하십니다.

일요일 3월 13일
완전한 환경

도입) 창조 박물관
영화 ‘조스’와 ‘킹콩’의 제작진이 최근 미국 켄터키 주에 2700만달러를 들여 창조박물관을 설립했다고 한다. 현대 과학기술을 총동원한 이 박물관은 특수효과 장치를 갖춘 극장, 흔들리는 의자, 움직이는 영상 등을 통해 노아의 홍수 때의 지진을 실감나게 하도록 지어졌다. 영화 ‘조스’와 ‘킹콩’을 제작한 사람들이 만들었기 때문에 더욱 기대가 된다. 그러나 일부 과학자들과 언론인들은 걱정이 많다. 창조론이 너무 실감나기 때문에 어린 학생들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창조론을 분명한 사실로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 가인과 아벨, 노아의 홍수, 바벨탑 이야기는 모두 역사적 사실이다. 예수님이 믿었던 것을 믿으면 틀림이 없다. 피해는 결코 없다. 우리 인간들만 언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언어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조금만 주의해서 들어보면 그들이 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하신 일들을 선포한다는 뜻이다.(롬 2:20) 또한 하나님은 우리가 더욱 깊이 당신을 만날 수 있도록 말씀을 주셨다. 그것은 이 세상 자연을 통하여 당신을 드러내신 것보다 너무나도 구체적이고 분명한 것이었는데, 그 말씀 속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성경 속에 깊이 들어가는 사람들은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분명하게 만나고 듣게 되기 때문이다. 시인 역시 그것을 너무나도 분명히 알았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시19:7-8) 그래서 시인은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어떤 것보다, 심지어 황금보다 귀중한 것이라고 고백한 것이다.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시19:10)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창 2: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창 2:8).

부가적용)
“천연계는 하나님의 의사이다” (7증언, 76) “깨끗한 공기, 햇빛, 절제, 휴식, 운동, 적당한 식사, 물의 사용,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 이것들은 참된 치료제이다.” (치료, 127) “천연계와 성경은 둘 다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생명과 지혜와 기쁨의 근원이시다. 천연계의 기이하고 미묘한 것들을 보라. 그리고 그것들이 인류 뿐 아니라 모든 생물의 필요와 행복에 얼마나 적합한가를 생각하여 보라. 땅을 기뻐하게 하고 신선하게 하는 햇빛과 비, 산과 바다와 들, 이 모든 것은 조물주의 사랑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정로의 계단 9)

• 영감의 교훈 •
▶ 자연의 메시지
“천연계는 그들의 교과서였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실존은 입증되었고, 그분의 특성들은 그들을 두르고 있는 천연계의 사물에 나타났다.
그들의 눈이 머무는 모든 것은 그들에게 말해 주었다. 하나님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었다”(교회증언 8권, 255).

월요일 3월 14일 죄와 천연계

도입)
미국의 니킬슨 선장이 히로인이란 배를 타고 바바도스 동쪽을 항해하고 있을 때였다. 그가 죠지라는 선원에게 전도하자 죠지는 하나님은 없다고 하며, 도무지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금 후 그가 물통을 바다에 던져 물을 퍼올리려고 하는데 워낙 물살이 세 그만 바다에 빠지고 말았다. 그때 그는 '사람 살려!'라고 외쳐댔으나 이미 배는 반마일 이상이나 떨어져 있었다. 결국 극적으로 구조된 그에게 선장이 '자네를 버리고 배가 가는 줄 알았겠군'라고 말하자 그는 '예, 정말 그런 줄 알고 절망했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때 자네는 어떻게 했나?' '하나님을 불렀지요' '아니 자넨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서?' '네, 그것은 편안히 탁상 공론할 때의 경우구요, 죽었다 싶을 땐 문제가 다르지요'. 대부분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자신이 아직은 위급하지 않을 때이다

자연이 아무리 경이롭고 아름답다 하더라도 이제 그것은 양날의 칼과 같다. 자연 속에서 이제는 기근과 지진, 전염병과 각종 질병이 일어나고 있다. 잘못되어도 뭔가 크게 잘못되고 있다.

교훈: 죄는 땅과 인간의 삶과 동물들에게까지 심각한 변화를 일으켰으나, 하나님은 천연계의 상당 부분을 원래대로 보존하셨다.

부가적용)
성경은 아담의 죄로 인하여 땅도 저주를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창3:17)  그리고 거민(居民)이 죄가 많으면 그 백성과 나라와 함께 그 땅도 자연도 폐허가 된 역사적 기록을 담고 있다. 창세기는 아담이 범죄함으로 인하여 땅도 함께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며, 인간은 얼굴에 땀(수고의 뜻)을 흘려야 땅의 채소(곡식 또는 소산물)를 먹을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창3:17-19) 로마서는 모든 피조물이 인간의 죄로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고통하며), 하나님의 자녀들의 나타남과 그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기를 고대한다고 하였다.(롬8:19-22) 사람들의 죄악이 관영하여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와 스보임과 아드마를 멸망시키실 때 하늘에서 유황과 불을 비같이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은 다 엎어 멸하셨다.(창19:24-25)  이 때 이 땅들은 당시 온 땅이 유황이 되며 소금이 되며 또 불에 타서 심지도 못하며 결실함도 없으며 거기 아무 풀도 나지 아니하였다.(신29:23).  그리고 일부 지대는 해발 -400m심층으로 함몰되어 오늘의 사해(死海)가 되었다 한다.


화요일 3월 15일
천연계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

도입)
이집트에서 어느 날 나폴레옹이 밤하늘의 별들을 가리키면서 "다른 이유 없이 저 별 빛만 보아도 하나님이 계심을 확신한다"고 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는 적어도 십만 개의 별로 구성된 은하계의 일부이다. 그리고 은하계의 수가 백만이 넘는다는 사실도 발견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의 간단한 계산에 의해서 망원경으로 볼 수 없는 별이 얼마나 많은지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뉴욕 하이덴 천문대의 한 천문학자는 말하기를 "무신론자인 천문학자를 만나본 적이 없었고 우주의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연구했기 때문에 위대한 설계자이신 하나님을 믿을 수밖에 없다" 고 했다.

“여호와께서 그의 권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의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고 그의 명철로 하늘을 펴셨으며 그가 목소리를 내신즉 하늘에 많은 물이 생기나니 그는 땅끝에서 구름이 오르게 하시며 비를 위하여 번개 치게 하시며 그 곳간에서 바람을 내시거늘”(렘 10:12~13).

교훈: 간혹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는 하나, 천연계는 하나님의 두 번째 책으로서 그분의 사랑과 위로를 우리에게 증거해 준다.

부가적용)
식물학, 동물학, 천문학, 그리고 화학을 연구한 사람이라면,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저마다 독특한 모양으로 설계되어 있음을 보고 깜짝 놀라게 된다. 특별히 생물계에 있는 무한한 다양성, 기가 막힌 아름다움, 완전한 질서와 능률, 그리고 완벽한 수학과 설계를 보면서 창조주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게 될 것이다. 생물 속에 새겨 놓으신 하나님의 설계도와 프로그램을 정직한 마음으로 보는 사람마다 진화론자들의 헛된 이론에서 빠져 나오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엉의 모든 씨 집마다 씨가 둘씩 들어 있도록 설계하셨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씨 집이 땅에 떨어지면 두 씨 중에서 한 씨만이 그 해에 싹이 나서 자라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다음 해에는 남아 있는 두번째 씨가 정상적으로 싹을 내고 자라기 시작한다. 첫 번째 씨가 어느 정도 자라다가 죽어버린다고 할지라도, 두 번째 씨가 그 다음 해에 자랄 것이기 때문에 우엉의 번식은 계속 이어질 수 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첫 번째 씨가 싹이 나서 자라기 시작하다가 금방 죽어버릴 경우에는, 두 번째 씨가 다음 해까지 기다리지 않고 바로 그 해부터 싹을 내고 자라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능이 어떻게 생성되었는가? 어떻게 이러한 프로그램이 우엉의 씨 안에 새겨지게 되었는가? 진화에 의해서? 진화론은 결코 이러한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이 이러한 설계와 프로그램을 작성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 영감의 교훈 •
▶ 천연계는 하나님을 계시함
“땅을 비추고 모든 천연계를 아름답게 하는 태양, 신비하고 장엄한 달빛, 하늘의 장관들, 밤하늘에 찬란히 빛나는 별들, 대지를 소생시키고 식물을 번성케 하는 소낙비, 여러 가지 땅속의 풍부한 보물들, 무성한 나무들, 관목과 수목들, 물결치는 곡식과 푸른 하늘, 초록빛의 땅, 밤낮의 변화, 계절의 바뀜, 이 모든 것은 인간에게 창조주의 사랑을 말해 주고있다”(청지기에게 보내는 권면, 17).

수요일 3월 16일
천연계속에서 하나님과 교제함

도입)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 살던 당시에 천연계는 모두 하나님의 지식과 신령한 교훈들로 충만해 있었다. 그들은 눈으로 보고 지혜를 얻었으며 하나님의 지으신 만물을 통하여 그분과 교제하게 되었다. 그러나 거룩한 부부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게 되자 그분의 얼굴에서 비쳐 나오던 광채가 천연계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오늘날 지구는 죄로 말미암아 손상되고 더러워졌다. 그러나 만물이 비록 퇴폐한 상태가 되기는 하였지만…천연계를 올바르게 이해하게 되면 그것들이 그들의 창조주에 대하여 말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실물교훈, 9, 10)." 죄가 들어오기 전에는 우리의 첫 조상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그들의 지각을 흐리게 하는 한 점의 구름도 없었다. 하나의 덮개로 아름다운 빛, 하나님의 빛이 그들을 두르고 있었다. 이 분명하고 완전한 빛이 그들이 접근하는 모든 것을 비추었다. 죄의 저주로 훼손당한 천연계는 창조주에 관하여 불완전 한 증거밖에는 할 수 없다. 오늘날 우리가 바라보는 천연계의 사물들은 에덴의 아름다움과 영광에 관하여 다만 희미한 개념만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그럴지라도 아름다운 것이 많이 남아 있다. 천연계는 능력이 무한하시고 자비와 긍휼과 사랑이 많으신 분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생명과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셨다는 사실을 증거 한다"(교회증언8권, 290, 291). 죄의 결과로 천연계를 덮고 있는 검은 천을 투시해 보는 눈은 없을지라도 사람들과 동물들의 고통을 경감시키고 회복시키기 위해 하나님은 천연계 속에서 끊임없이 일하고 계신다. 천연계는 하나님의 뜻대로 지도받는 그분의 종이다. 태양을 떠오르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시다. 그분께서는 하늘의 창을 열고 비를 내리신다. 그분께서는 풀이 산에서 자라게 하신다. 그분께서는"눈을 양털같이 내리시며 서리를 재같이 흩으시며 그가 목소리를 발하신즉 하늘에 많은 물이 생기나니""비를 위하여 번개하게 하시며 그 곳간에서 바람을 내"(시편 147장 16절; 예레미야 10장 13절) 주께서는 당신이 만드신 것을 끊임없이 유지하시고 그것들을 당신의 종으로 사용하고 계신다.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마 6:28).

무신론자로 성장했던 한 젊은이가 있었다. 20대 초반의 그는 회심 직후 몇 달 동안을 농촌지역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는 종종 숲을 산책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 천연계로부터 세상을 만드신 주님의 품성을 본 것이다. 마치 태어나서 처음 눈을 뜨는 것과 같았다. 거듭남을 경험한 그가 주님을 진정으로 알 게 된 것은 바로 천연계와 가까이 지냈던 시기였다.
눅 5:16을 보면, 예수님은 “물러 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다. 엘렌 G. 화잇은 예수께서 자주 이렇게 하셨다고 말했다. 때로는 우리도 모든 일에서 떠나 천연계 속에서 오직 주님과 함께 지낼 필요가 있다. 천연계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움과 위로, 평화와 평온은 다른 것들이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의 마음과 정신에 이야기한다. 갑작스럽게 계시가 내리거나, 성경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대신 만물을 지으신 분의 사랑과 능력에 대하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깨달음을 얻는다. 천연계 속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은 우리의 육체와 영혼에 치유와 평화를 가져다준다.
“하나님의 훈련을 받고 있는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의 마음과 천연계와 하나님으로 더불어 교통할 조용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들에게는 세상과 세상의 풍습과 습관에 일치되지 않은 생애가 나타나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을 얻는 일에 있어서 개인적 경험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분께서 마음속에 말씀하시는 음성을 개인적으로 들어야 한다. 모든 다른 음성이 그치고 정적 속에서 그분 앞에 나갈 때, 조용한 심령은 하나님의 음성을 더욱 확실히 구별하게 된다”(치료봉사, 58).

교훈: 천연계 속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은 우리에게 참된 평화와 치유를 가져다준다.

부가적용)
오늘날 우리는 사도 바울의 이 의미심장한 말 "하나님의 영원하신 신성이 그가 창조하신 만물에 보여 알려졌나니"란 말을 통해서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가? 특히 오늘의 인간 중심의 기술문명과 그에 따른 자연의 정복과 개발행위로 인해서 하나님의 창조세계인 자연이 크게 병들어가고 또한 심한 오염과 파괴를 눈앞에 바라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성품/신성 곧 진선미의 자기표현의 창조세계, 이 하나밖에 없는 지구 곧 하나님이 지극한 사랑으로 바라보고 계신 이 자연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 즉 우리 주변의 자연 곧 풀과 나무와 새들과 바람과 공기와 햇빛과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음미하고 생각하는 태도가 전적으로 달라져야하지 않을까? 하나님은 왜 자기가 창조한 만물을 보고 심히 기뻐하셨을까?(창1:31) 바로 자기의 성품, 자기의 마음, 자기의 뜻이 너무도 잘(아름답게) 표현됐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도 하나님이 만물을 보고 기뻐하신 것 같이 그렇게 감동적인 마음으로 보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따라서 하나님의 신성의 표현인 이처럼 아름답고 더할 수 없이 신비스러운 자연 속에 살면서도 자연과 남남처럼 멀어지고 분리되어서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 외롭고 답답하고 허전(공허)한 날들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사도 바울의 이 말을 깊이 음미할 필요가 있다고 사료된다.


• 영감의 교훈 •
▶ 천연계 속에서 시간을 보내라
“갈릴리 바다 북쪽 끝, 벳세대 가까운 곳에 싱싱한 봄철의 신록으로 꾸며진 아름답고 조용한 장소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이 휴식하게 되었다. 그 장소를 향하여 그들은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갔다. 여기에서 그들은 혼잡한 군중들을 떠나서 휴식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 제자들은 바리새인들의 반박과 비난으로 방해를 받지 않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여기에서 그들은 주님과 교제함으로 짧은 기간의 친교를 나누고자 희망하였다.”(치료봉사, 56).

목요일 3월 17일
시편 104편

도입)
계몽주의가 무르익어 감에 따라 초월적 유신론에 대한 반향으로 이신론(Deism)이 등장하게 된다. 이신론은 신께서 우주를 창조하셨지만, 창조시에 완전한 자연 법칙들을 다 만들어서 세계가 자동적으로 굴러갈 수 있는 시스템으로 만들었다는 신관이다. 그러하기에 더 이상 기적이라는 도구를 통해 세상에 개입할 이유가 없게 된다. 현대에 와서 진화론과 창조론의 싸움이 진행될 때 Intelligent Design이라는 모토로 창조론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이신론과 비슷한 주장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 이신론은 계몽과학시대를 지나면서과학자들이 발견한 여러 과학 법칙들을 보면서 생겨난 신관이다. 범신론(Pantheism)은 우주 자체를 신으로써 생각한다. 모든 사물에 신이 내재해 있다는 이 신관은 신의 초월성을 거부한다. 이 신관은 동양적인 신 이해와 맥이 닿아있고, 스피노자라는 철학자가 이를 주장했다.

“여호와의 영광이 영원히 계속할지며 여호와는 자신께서 행하시는 일들로 말미암아 즐거워 하시리로다”(시 104:31).

19세기 유행했던 이신론(deism)에 따르면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했지만 그것을 내버려 둔다. 신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세상에 개입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견해를 가르치지 않는다. 하나님은 세상을 태엽장치처럼 만들어 놓고 무슨 일이 생기든 말든 방치하는 분이 아니다.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은 지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에 복잡하게 개입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사에 직접 개입하시지 않는다면 어떻게 십자가가 있을 수 있겠는가?
시편 104편을 읽어 보면 하나님은 세상을 정교하게 창조하시며, 천연계의 모든 법칙을 수립하시고, 피조물들의 한계와 범위를 지정하여 주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시편의 기자는 여호와의 창조적 능력과 세상을 지탱하는 힘을 보며 기뻐한다.
시편 104편에서 소개하고 있는 하나님은 절대 이신론의 하나님일 수 없다. 그분은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이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의 능력 속에서 위로와 소망을 발견하였다. 둥지에 있는 새들과 먹이를 찾는 사자를 관찰하는 것이 그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았지만, 그는 자신에게 하나님의 선하심과 능력에 대하여 말해 주고, 소망을 주는 천연계의 이치를 발견하였다.
천연계는 몸과 정신과 영혼을 치유하는 능력의 원천이다. 맑은 공기와 햇빛, 물과 건강한 식생활은 우리의 몸과 정신에 기적적인 일들을 행한다. 천연 치료법은 여전히 건강과 치유를 위한 탁월한 방법이다.
의사들도 환자들에게 일과 스트레스로부터 떠나 천연계 속에서 쉼과 안식을 찾도록 권한다. 자연적인 환경이 정신과 육체에 얼마나 유익하지 보여 주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하나님도 아담과 하와를 도심이 아닌 동산에 두지 않았는가?

교훈: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한 뒤 내버려두는 신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 적극 개입하시고, 천연계를 통해 여전히 일하시는 분이다.

부가적용)
설계(design)는 설계자(designer)가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극도로 복잡한 질서의 설계는 전지하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미한다. 우리들이 개개인의 특성에 따라 각각 설계되었다는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의미한다. 단지 자연을 통하여 하나님의 존재를 아는 것이 가능할까? 성경의 대답은 '그렇다' 이다. '창세기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 찌니라.' (로마서 1:18~22) 단지 자연을 통하여 하나님의 존재를 아는 것이 가능할까요? 성경의 대답은 '그렇다' 이다. '창세기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 찌니라.' (로마서 1:18~22)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그대는 하나님께서 인간 세상에 개입하신다는 사실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영감의 교훈 •
▶ 하나님께서 천연계를 다스리심
“천연계는 그 활동 가운데서 당신의 뜻대로 만물을 움직이시는 지성적이고 활동적인 분의 임재와 작용을 증거한다. 땅이 해마다 풍성한 소출을 내고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것은 천연계에 본래부터 존재하는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다. 무한한 능력의 손이 이 지구를 인도하면서 깊이 역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 공전 궤도에서 지구를 유지하는 것은 순간순간 작용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증언보감 3권, 259).

금요일 3월 18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우리 첫 시조들의 집은 장차 온 땅을 채우게 될 그들의 자녀들의 집을 위한 하나의 모범이 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손수 아름답게 장식하신 그 집은 호화찬란한 궁전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저들의 교만심으로 장엄하고 값진 건물을 기뻐하며 저희 손으로 이룬 공사를 자랑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한 동산에 두셨다. 이것이 아담의 거할 집이었다. 푸른 하늘은 지붕이었고 아름다운 꽃들과 싱싱한 풀로 깔린 땅은 마루였고 아름다운 나무의 무성한 가지들은 차양이었다.
그 집의 벽들은 위대한 예술가이신 하나님의 작품인 가장 장엄한 장식들로 드리워졌었다. 거룩한 부부의 환경에는 모든 시대를 위한 교훈 즉 참된 행복은 교만과 사치와 방종에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을 통하여 그분과 교통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인위적인 것들에 주의를 덜 기울이고 더욱 많은 단순성을 계발한다면 저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일에 있어서 훨씬 더 가까이 이를 것이다”(부조와 선지자, 49~50).
“부드러운 성품은 물론 생명의 신비와 아름다운 만물과의 끊임없는 접촉은 정신을 민활하게 하고 품성을 세련되게 하고 향상시킨다”(재림신도의 가정, 143).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천연계가 아무리 놀랍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창조하신 하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이런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는 것이 중요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➋모든 자연 과학의 진보와 지식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능력을 찬양하는 데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어야 합니까? 고대에는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오늘날 밝혀진 모든 자연의 신비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적인 능력에 경탄할 수 있는 특권을 다른 시대보다 어떻게 더 많이 누리고 있습니까?

댓글목록

조춘호님의 댓글

조춘호 작성일

죄송합니다. 의료봉사를 다녀오고 교회의 밀린 일들과 대심방이 과정공부가 좀 늦었습니다. 여러분의 과정공부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nikefather님의 댓글

nikefather 작성일

좋은 자료 감사드립니다.

푸른초원님의 댓글

푸른초원 작성일

무사히 의료봉사 여행 다녀오셔서 환영합니다
올려 주시는 자료들 반생들과 함께 나누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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