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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과 선지자가 되라는 부르심(질문, 대답, 설명) 10/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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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6-10-02 22:15 조회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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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과 선지자가 되라는 부르심

(10월 10일 안식일/일몰 오후 6시 3분)

 

기억절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사 6:8)

 

● 연구 범위 -창 15:6; 갈 3:6-9; 왕상 18:19-39; 사 53장; 단 2:46-48; 막 1:2-5; 마 11:1-6

 

 성경 시대에 선지자들은 하나님 백성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때때로 그들은 무대의 중심에 서서 공동체의 삶에 결정적이고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선지자의 길은 어려운 부르심이었다. 그 삶은 순탄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슬픔과 거절, 오해와 좌절로 가득할 때가 많았다.

 선지자들은 부르심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할 때도 종종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메시지를 귀담아들어야 할 이들에게서 오히려 거센 반대를 겪는 일이 파다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무시와 조롱을 당했고 두들겨 맞거나 옥에 갇히기도 했다. 어떤 선지자들은 돌에 맞았고 들짐승처럼 쫓겨 다녔다. 순교당한 이도 여럿이다.

 폭력, 탐욕, 부도덕, 착취와 사탄의 온갖 영향력이 넘쳐 나는 오늘날 선지자의 음성은 쉽게 거부되거나 무시당하곤 한다. 우리는 선지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들이 전한 희망을 나누라는 부름을 받고 있다.

 지난주에 살폈듯 에덴의 타락 이후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소통을 회복하기 위해 일하셨다. 이번 주에는 하나님께서 타락한 세상을 향한 자신의 기별로 백성을 바로 세우고자 선지자들을 부르셨던 중요한 순간들을 살펴보겠다.

 

말씀 속으로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6)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39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왕상 18:38, 39)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

“왕이 대답하여 다니엘에게 이르되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들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네가 능히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었으니 네 하나님은 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시로다”(단 2:47)

“침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전파하니 5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침례를 받더라”(막 1:4, 5)

 

토의 질문

1. 성경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선지자는 누구입니까?

*답: 각각 대답해 보자. 어쩌면 침례요한일 수도 있다. 또 다니엘이나 이사야일 수도 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행동해야 할 때 우리를 주저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답: 불확실성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믿음이 필요하다.

3. 엘리야, 이사야, 다니엘은 어떻게 담대히 하나님의 기별을 전할 수 있었나요?

*답: 전적인 신뢰로 말씀을 받았기 때문이 아닐까?

4. 침례 요한의 삶에서 우리는 어떤 용기를 얻을 수 있나요?

*답: 불확실성도 예수님의 대답 말씀으로 극복했고 용기를 얻었다. 

 

핵심 교훈

하나님께는 각 시대의 충실한 남은 무리가 있었고 그들을 불러서 세상에 자신의 뜻과 구원의 소망을 전하게 하셨다. 선지자들은 반대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회개와 믿음, 충성의 삶을 촉구했다. 오늘날 우리도 삶과 말로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증인이 되어야 한다.

 

10월 4일(일) 언약의 옹호자 아브라함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께는 신실한 남은 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그분의 은혜에 반응했고 순종하라는 부르심을 받아들였다(렘 31:7, 31-34 참조). 예를 들면 인류가 바벨에서 흩어진 여러 해 뒤에 하나님은 아브람(나중에 아브라함)을 불러 언약에 충실한 본보기로 삼으셨다. 그는 자기 가족뿐 아니라 미래의 모든 세대를 위한 본보기였다. 배도와 도덕적 이중성으로 둘러싸인 환경에서도 아브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충실했다(창 12:1-9 참조).

 하나님은 언약의 조건을 아브라함에게 전달하셨고 인간의 구원이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어떻게 성취되는지를 보여 주셨다(창 15:6-17). 그의 믿음을 시험하고 하나님의 아들이 장차 치르게 될 희생을 보여 주고자 아브라함에게는 자기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라는 지시가 주어졌다(창 22:1-17). 믿음의 조상에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험이었던가. 아브라함은 갖가지 이유를 내세워 하나님의 분명한 명령을 무시할 수 있었음에도 충실히 순종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손을 막아 이삭을 죽이지 못하게 하셨고 그 대신 숫양을 준비해 주셨다.

 선지자 모두가 임박한 운명을 경고하도록 하나님께 부름받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을 향한 충성을 회복시키라는 부름을 받았다. 또 사람들이 변절하지 않도록, 가난하고 힘든 이들을 억압하지 않도록, 언약과 그 조항을 위반하지 않도록 경고하라는 부름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선지자는 메시아 안에 있는 구원의 약속을 드러내야 했다. 사도 시대 이후 변함없이 전해지는 성경 선지자들의 증언과 성령의 증언은 우리에게 세상에 곧 닥칠 위기를 인식하고 이것을 사람들에게 경고하라고 명한다. 그 경고의 핵심은 하나님과 언약 관계를 유지한 예수의 충성스런 백성이 구원받는다는 기쁜 소식이다.

 

창세기 15장 6절, 갈라디아서 3장 6-9절, 히브리서 11장 8절을 읽어 보라. 아브라함은 결함 있는 인간이었음에도 어떠한 품성과 삶으로 하나님의 일을 받들 수 있었는가?

[창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갈3:6~9]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히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답: 오직 믿음으로 받아들였다.

 

 아브라함 당시와 이 시대는 유사한 점이 많다. 아브라함 당시 이교 신앙과 우상 숭배가 널리 퍼졌듯 오늘날도 앞다투어 기독교를 제거하거나 궁지로 몰아가는 사상들이 널려 있다. 지배적인 문화와 대조적으로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은 사람들과 맺는 일상의 관계 속에서 그분의 형상을 드러내며 세 천사의 기별을 선포하도록 부름받았다(계 14:6-12).

 

나의 삶 속으로: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것을 그의 의로 여기셨다.”고 성경은 말합니다(창 15:6, 바른). 여기서 강력하게 나타나는 복음의 약속은 무엇입니까?

위의 약속에서 어떤 희망을 찾을 수 있습니까?

 

<부가설명>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들였다. 여호와 하나님은 자식이 없는 아브람에게 그의 자식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게 되리라고 하셨다. 이때 아브람의 나이는 85세라고 한다.성경에 기록은 없으나 이스마엘 출생과 그의 행로를 계산해서 나온 연대다. 아무튼 그때 그는 자녀가 없었다. 어쩌면 사래가 불임 여자였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로부토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후손이 나올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 그대로 믿었다. 이 약속은 생명의 약속이다. 아브람은 자신에게 생명의 씨를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창15:3). 그에 대한 대답으로 그를 밖으로 나오게 하고 하늘의 별들을 쳐다보게 했다. 아브람은 하나님이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불러 내시는 하나님이심을 의심없이 믿었다(롬4:17). 그는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것을 믿었다. 창조주의 약속은 그대로 성취될 것을 확신한 것이다. 훗날에 그는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했을 때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부활의 하나님, 곧 생명의 하나님이라는 것고 믿었다. 이 두가지 사실을 믿었을 때 그것을 아브람의 의라고 인정하셨다. 즉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창조주와 구원(생명 회복)의 하나님을 믿었고 그는 구원받는 생명을 받은 모든 사람의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10월 5일(월) 엘리야의 기별

 

열왕기상 18장 19-39절을 읽어 보라. 선지자의 직무와 관련해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왕상18:19~39] 구절이 길어서 각각 찾아 읽어보기 바란다. 엘리야가 아합의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하는 내용이다.

*답: 하나님은 엘리야를 선지자로 부르시고 아합과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해서 백성들을 참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호소했다.

 

 엘리야의 소명과 말하는 방식에서는 하나님의 기별꾼이 맡은 역할이 잘 드러난다. 이스라엘의 배도를 멈추고자 하나님은 아합왕에게 엘리야를 보내 수년간 지속될 가뭄을 선포하게 하셨다. 자기 백성이 우상 숭배에서 떠나 순종의 길로 돌아오도록 이런 고난을 사용하신 것이다. 왕과 백성은 자신들에게 닥친 재앙을 엘리야 탓으로 돌렸고 그를 죽이려 했다.

 갈멜산에서 엘리야는 바알과 아스다롯의 선지자들과 맞붙었다. 성령 충만한 하나님의 기별꾼은 우상 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에게 거짓 신을 버리고 여호와께 돌아오라고 호소했다. 백성은 자신들의 선택으로 나라 전체가 배도에 빠졌음을 알았다. 그들은 이제 엘리야의 하나님을 다시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하나님은 존재하지도 않는 거짓 신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한 분이심이 확인됐다.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도 하나님은 엘리야의 기별을 다시 선포하라고 교회에 명하신다. 또 “우상”에서 돌이켜 여호와의 큰 날에 설 수 있게 준비하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지금도 자신이 선택한 통로를 활용해 자기 백성에게 말씀하신다. 그분은 자신의 말씀과 예언의 은사를 통해 책망하고 경고하고 조언하고 격려하신다.

 “참된 경건의 부흥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절실하고 긴급하다. 이러한 신앙 부흥이 우리의 첫 번째 과업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주님의 복을 받도록 열렬히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좀처럼 복을 베풀려 하시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복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가려 뽑은 기별 1권, 121).

 

말라기 4장 5, 6절을 읽어 보라. 엘리야의 기별은 하나님을 따르는 가정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말4:5,6]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답: 아버지와 자녀들이 서로 돌이키게 하는 기별을 전하게 할 것이다.

 

 참된 부흥은 마음과 가정에서 시작한다. 가족은 교회의 초석이며 지역 사회를 이루는 필수 요소다.

 가정이 부흥하면 하늘의 사랑이 교회, 지역 사회, 국가로 퍼진다. 이것이 그리스도인 가정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이다. 부흥을 경험하는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사명감이 살아난다.

 

나의 삶 속으로: 혹시 오늘날 우리의 가정, 마음, 교회에 우상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부흥이 일어나려면 나 자신이 먼저 어떻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부가설명> 엘리야는 ‘여호와가 하나님이다’라는 뜻이다. 당시 국가는 바알이 하나님이라고 믿었다. 이세벨이 권력으로 바알신앙을 나라에 퍼뜨렸다. 그들은 아마도 여호와는 광야의 신이고 전쟁의 신이지만, 이제 농경사회가 되었기에 비와 번개의 신인 바알을 숭배할 때 농사가 잘 될 것이라고 선전했을 것이다. 귀가 얇은 백성들은 왕의 권력을 업은 조직적 선전에 그대로 넘어갔다.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이후로 금 송아지를 여호와라고 믿지 않았는가? 이제는 그 송아지 여호와 대신에 비와 번개의 신인 바알을 믿으면 풍요로워진다고 외친 것이다. 그래서 엘리야를 통하여 비와 번개도 참 여호와 하나님, 곧 엘리야가 믿는 그 여호와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비를 내리지 않았다. 바알이 비를 주관한다는 것이 거짓임을 증명한 것이다. 그리고 불로 제물 태우는 내기로 바알이 불(번개)를 주관한다는 것이 거짓임을 증명했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그 기별로 성경의 하나님 여호와만이 오직 참 하나님이심을 증거하는 기별을 전파하는 사명자들이다. 종말에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도 이 엘리야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 

 

10월 6일(화) 복음의 선지자 이사야

 

 구약의 대표적 선지자인 이사야는 하나님께 직접 선지자로 부름받았다(사 6:1-8). 그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위엄에 압도되어 자신이 자격 없는 사람임을 깨달았다. 그 순간 스랍 천사 하나가 하늘 제단에서 불타는 숯불을 들고 그에게 날아와 그의 죄악을 제거했다. 그런 뒤 하나님께서는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고 물으셨다. 이에 대한 이사야의 대답은 곧 우리의 대답이어야 한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 6:8).

 이사야는 이스라엘 역사의 중대한 시점에 소명을 받았다. 그 역시 결함 있는 인간이었지만 이스라엘과 지도자들의 죄를 경고하는 사명은 매우 중요했다. 성경의 핵심 본문들인 이사야의 예언은 하나님의 본성, 인간의 본성, 점차 펼쳐지는 구원 계획에 관한 깊은 통찰을 제시한다. 사실 예수의 죽음 그리고 그 죽음이 세상에 끼친 일을 묘사하는 예언 중 가장 강력한 예언은 의심할 나위 없이 이사야 53장에 나온다.

 

이사야 53장을 읽어 보라. 십자가 사건보다 500년 이상 앞서 기록된 이 놀라운 예언은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을 얼마나 강력하게 드러내고 있는가? 여기서 예언의 은사와 관련해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답: 구주에 관한 진리를 올바르게 미리 전하여 구주가 오셨을 때 그분을 예언된 구주라는 것을 믿도록 하는 사명을 수행하게 했다.

 

 이사야의 예언은 메시아의 목적과 사명을 미리 알려 주었다(사 53:3-5). 또 그리스도께서 왜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사 53:7)같이 되셨으며 그분의 속죄 희생으로 백성이 어떻게 죄에서 구원받는지를 설명한다. 본문에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를 대신한 희생임을 너무도 분명히 묘사하며 온 인류를 위한 속죄가 무엇에 기초하는지를 보여 준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 이 구절에서는 죄의 보편성과 죄의 해결책인 십자가의 보편성이 함께 드러난다. 구약과 신약을 통틀어 이사야 53장만큼 구원의 계획을 뚜렷하고 명확하게 보여 주는 부분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사야가 받은 선지자의 소명은 쉽지 않았다. 오늘날 죄의 결과(롬 6:23)에 대해 경고받는 많은 사람의 반응처럼 그 당시 사람들은 멸망이라는 그의 불길한 예언을 터무니없다고 여겼다. 이사야가 그의 시대와 오늘날에 전하는 기별은 분명하다(사 2:4; 5:20). 예루살렘이 망한 이유는 이스라엘 민족이 정의를 실천하고 개혁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세상의 악인들도 같은 죄로 멸망할 것이다.

 

나의 삶 속으로: 이사야 53장을 다시 읽고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모두 찾아 하나하나 적어 보십시오.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성취된 일에 관한 이사야의 예언에서 어떤 위대한 소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부가설명>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부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일러 둠은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로라”(요13:19). 예언은 미리 말한 일이 그대로 성취될 때 그것을 깨닫는 사람의 믿음을 굳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다. 이사야 53장의 예언은 예수님 외에 어느 누구에게도 적용할 수 없는 예언이며, 그 예언대로 예수님의 생애가 이루어졌다. 지금 유대교가 가장 곤혹스러워하는 구약 본문이라고 한다.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는데 이사애 53장을 읽을 때 예수님의 생애에서 예언의 모든 부분이 실제로 성취된 것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결국 이사야를 선지자로 믿지 않는 것과 같은 상태에 빠진 것이 아닌가? 인간의 고집은 놀랍다. 우리는 어떤가? 

 

10월 7일(수) 충성스런 선견자 다니엘

 

 다니엘이 어릴 때 배운 건강 원칙을 굳게 지켰다는 다니엘 1장의 이야기는 그리스도인 대부분이 알고 있다. 다니엘은 신실함의 본보기이다(단 1:8). 왕의 진미를 제공받고도 그는 왕이 하사한 음식을 먹지 않고 채소 위주의 식사와 물만 먹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단 1:12-16). 이것은 나중에 겪을 일에 비하면 작은 시험이었다. 다니엘 6장에서는 신실함 때문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다음 구절들을 읽어 보라. 다니엘은 주변의 이방인들에게 어떤 증인이었는가? 단 2:46-48; 4:18; 5:13, 14; 6:25-27

[단2:46~48] 이에 느부갓네살 왕이 엎드려 다니엘에게 절하고 명하여 예물과 향품을 그에게 주게 하니라 47 왕이 대답하여 다니엘에게 이르되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들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네가 능히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었으니 네 하나님은 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시로다 48 왕이 이에 다니엘을 높여 귀한 선물을 많이 주며 그를 세워 바벨론 온 지방을 다스리게 하며 또 바벨론 모든 지혜자의 어른을 삼았으며,

[단4:18] 나 느부갓네살 왕이 이 꿈을 꾸었나니 너 벨드사살아 그 해석을 밝히 말하라 내 나라 모든 지혜자가 능히 내게 그 해석을 알게 하지 못하였으나 오직 너는 능히 하리니 이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네 안에 있음이라.

[단5:13,14] 이에 다니엘이 부름을 받아 왕의 앞에 나오매 왕이 다니엘에게 말하되 네가 나의 부왕이 유다에서 사로잡아 온 유다 자손 중의 그 다니엘이냐 14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즉 네 안에는 신들의 영이 있으므로 네가 명철과 총명과 비상한 지혜가 있다 하도다.

[단6:25~27] 이에 다리오 왕이 온 땅에 있는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조서를 내려 이르되 원하건대 너희에게 큰 평강이 있을지어다 26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27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 하였더라.

*답: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능하심과 전지하심을 온전히 드러내었다.

 

 다니엘의 하나님이 지닌 능력을 이 이방인들이 어떻게 증언하는지 보라. 각 이야기는 저마다 독특하면서도 한 가지 중요한 원칙을 보여 준다. 우리의 삶과 신실함으로 또 우리에게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람들이 하늘의 하나님 곧 “모든 신들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이신 분을 알 수 있으며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니엘의 이름은 ‘하나님은 나의 재판장’이라는 뜻이다. 다니엘서의 예언에서 반복되는 주제가 심판이며 그 심판이 하나님의 궁극적 승리인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절정에 이른다는 점에서 ‘다니엘’이라는 그의 이름은 매우 적절하다. 그의 글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므로 주의 깊게 연구할 가치가 있다. 다니엘의 예언은 삶의 ‘작은 일’에도 늘 깨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

 또 선지자로서 다니엘은 나라들의 흥망과 그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한 결과를 예언했다. 다니엘은 예언적 환상에서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 승리를 보여 주었다(단 7:13, 14).

 그리스도보다 500여 년 앞서 기록된 다니엘 2장의 예를 들어 보자. 다니엘은 거대한 네 제국의 흥망을 정확히 묘사했고 신상의 발과 발가락으로 상징된 우리 시대까지 내다보았다. 그는 현대의 유럽 국가들이 “다른 민족과 서로 섞일 것이나 그들이 피차에 합하지 아니함이 쇠와 진흙이 합하지 않음과 같으리”라고 분명하게 알려 준다(단 2:43). 유럽에 관한 예언은 그야말로 놀랍다. 오늘날까지도 유럽 대륙은 통혼과 온갖 통합 시도에도 불구하고 각기 독립된 나라로 남아 저마다의 법, 관습,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구소련이 해체되기 몇 년 전까지 어떤 정보기관도 그 붕괴를 예측하지 못한 사실에 비하면 다니엘의 예언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신뢰해야 할 강력한 이유를 제시한다.

 

나의 삶 속으로: 다니엘의 예언에서 특히 인상적인 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다니엘 2장의 모든 왕국이 예언대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는 사실로 미루어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 관한 예언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부가설명> 다니엘은 예언적 꿈을 해석해서 다니엘의 하나님이 오직 참 하나님 되심을 이방 대국 바벨론 왕궁에서 증명했다. 그래서 다니엘의 해석을 들은 왕들은 오직 다니엘의 하나님 여호와만이 “모든 신들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이신 분이라고 고백하게 했다. 다니엘 2장의 우상의 예언이나 7장~12장의 예언은 다니엘 당시에는 봉인된 예언이었다. 그러나 4장의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고 5장의 글자로 예언된 것을 해석했고 그대로 성취된 사실에 의하여 성취되지 않은 예언들도 성취될 것임의 보증이 되었다. 그리고 그 예언들이 역사에서 틀림없이 성취된 것을 세계 역사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는 시대에 사는 우리들은 성경 말씀이 처음부터 종말을 아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확실한 기록임을 알게 된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일이 이루기 전에 미리 말한 것은 일이 이룰 때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게 하려는 예언의 의도와 목적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이 예언을 따라 때에 합당한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주님 편에 굳게 설 수 있게 된다(딤전1:18,19). 그래서 베드로의 말씀대로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서 어두운데 비치는 등불을 들고 확실한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벧후1:19). 얼만 큰 복이요 은혜인가? 

 

10월 8일(목) 백성을 준비시킨 침례 요한

 

마가복음 1장 2-5절을 읽어 보라. 침례 요한의 사역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마1:2~5]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4 침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전파하니 5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침례를 받더라.

*답: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다.

 

 마가복음은 침례 요한의 등장이 이사야 예언의 성취라고 밝힌다(사 40:3). 요한은 어린 시절부터 장성할 때까지 한결같이 하나님께 충성했다. 사탄은 광야에 울리는 요한의 외침을 듣고서 인간에 대한 자신의 지배력을 잃을까 두려웠다(시대의 소망, 224). 요한의 말을 듣는 이들의 죄악이 드러났고 사탄은 떨 수박에 없었다. 이스라엘에 대한 사탄의 장악력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침례 요한의 신실한 삶과 메시아를 향한 그의 신뢰를 꺾으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마태복음 11장 1-6절을 읽어 보라. 침례 요한이 투옥됐을 때 예수는 그의 믿음을 어떻게 다져 주셨는가?

[마11:1~6]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명하기를 마치시고 이에 그들의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거기를 떠나 가시니라 2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5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6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답: 

 

 사탄은 예수를 죄짓도록 유혹하지 못했고 광야에서 겪은 실패에 분노했다. 그러자 전략을 바꾸어 예수의 사촌 요한을 옥에 가뒀다. 요한의 투옥으로 예수는 가슴이 아팠지만 사탄은 그분을 죄로 유인하지는 못했다. 사탄은 이런 식으로 요한을 무너뜨리고 구주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러나 요한은 예수께 격려의 메시지를 받았다. 자신의 처지가 비참했고 예수께서 능력 있는 분인데도 왜 자신이 옥에 갇혔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요한은 죽기까지 충성했다.

 옛 선지자들과 같이 우리도 회개와 믿음과 그리스도의 온전한 의를 선포하라는 부름을 받았다(계 14:6-12). 요한에게 그랬듯 사탄은 우리에게도 불확실성을 이용해 우리 삶을 향한 하나님의 사명을 의심하도록 유혹한다. 투옥된 뒤 사악한 여인과 의지박약한 남자에게 죽임당한 침례 요한처럼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지금까지 우리를 이끌어 오신 하나님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낙심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든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찾을 수 있으며 그분은 응답하신다. 그분은 우리에게 자기의 뜻을 행할 능력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다(행 1:8). 탈기독교 사회와 비기독교 세계에서도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든 충성스런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나의 삶 속으로: 옥에 갇힌 침례 요한처럼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는지 이해되지 않던 적이 있습니까? 그때 어떻게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지킬 수 있었나요?

위와 같은 경험에서 얻는 교훈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부가설명>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나라가 아니다. 우리나라를 공격하고 파괴하려는 세력이 통치하는 나라에 살아가고 있다. 더 엄격히 말한다면 종신할 때까지 죽어가고 있다. 성경은 이것을 썩어져가는 구습이라고 했다(엡4:22). 그런데 예수님을 믿어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새로운 피로물이 되어 성도라는 영생의 생명을 가진 존재로 지내가고 있다. 그러니까 사망 세력의 공격 대상이요 공경 목표다. 그러므로 편할 날이 없는 것이 정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불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사탄의 좋은 공격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공격받고 낙심하면 사탄이 얼마나 기뻐 날뛰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예언을 따라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딤전1:18,19). 예언의 지도를 받지 않으면 불확실성에 빠져버릴 수 있다. 우리는 싸움에서 승리하는 믿음을 확보하기 위하여 예언을 부지런히 연구해야 한다. 오직 성경적으로 확실한 것만을 옳게 분별하며 진리의 사랑을 받는(살후2:10)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10월 9일(금) 더 깊은 묵상을 위해

 

예언 사역을 위한 부르심

 

 하나님은 특정한 때 특별한 목적으로 선지자를 부르신다. 그들은 그 시대에 필요한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엘렌 G. 화잇이 그와 같은 예언의 은사를 현대에 나타낸 비정경 선지자라고 믿는다(다음 과에서 자세히 다룬다.). 엘렌 하먼(화잇)은 1844년 12월 첫 부름을 받았다. 바로 밀러주의 재림 교도들이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되리라”는 다니엘 8장 14절에 기초해 예수의 재림을 기대했던 이후 몇 주가 지난 시점이었다. 윌리엄 밀러는 재림의 정확한 날짜를 정한 적이 한 번도 없지만 그의 추종자들은 성경적 시간 계산에 근거해 마침내 1844년 10월 22일을 그리스도가 이 땅에 재림하시는 날로 예상했다. 이 신념으로 북미와 다른 나라의 수많은 사람이 머지않아 하늘에서 구주와 연합하리라는 엄청난 기대감에 부풀었다. 예상하는 재림의 날이 다가오자 밀러 역시 기대와 열정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오시지 않았고 밀러주의 신자들은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인 대실망을 겪었다.

 이런 배경에서 하나님은 엘렌 하먼(화잇)에게 첫 환상을 보여 주셨다. 그 계시의 핵심은 그녀와 실망한 신자들에게 하나님이 그들의 잘못된 해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함께하신다는 격려의 메시지였다. 계시 가운데 지구에서 하늘 예루살렘으로 이어지는 길이 보였고 그 길 위에는 거룩한 도성으로 향하는 재림 신자들이 있었다. “자신들 바로 앞에서 그 도성으로 이끌고 계시는 예수님에게 시선을 고정하는 한 그들은 안전했다”(영적 선물 2권, 31).

 이 계시는 복음이었다. 하나님은 실망의 혼란 속에서 새로운 운동을 일으키고 계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여전히 그들과 함께하셨다. 여전히 그분은 다시 오실 것이며 여전히 그분은 구원의 길로 그들을 이끌고 계셨다. 그들은 그분께 시선을 “고정”하기만 하면 되었다. 이 극심한 혼란과 실망 속에서도 그들에게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을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이와 같이 엘렌 G. 하먼(화잇)은 17세라는 십 대의 나이에 예언 사역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그 길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이 은사는 점차 참된 것으로 인정받았지만 엘렌 G. 화잇은 하나님의 전달자가 된다는 것이 두려웠다. 하나님의 선지자란 절대로 쉽지 않았고 선망받는 일도 아니었다. 화잇은 어떻게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할 수 있었을까?

 다음 주에는 구약의 선지자들이 마주한 특별한 사역과 역경을 살펴보겠다. 그중 일부는 엘렌 G. 화잇의 사역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다(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사이트를 참고하라. https://whiteestate.org/absg/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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