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과 은혜, 사랑, 친교(질문, 대답, 설명) 09/2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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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6-09-18 22:19 조회83회 댓글0건본문
제13과 은혜, 사랑, 친교
(9월 26일 안식일/일몰 오후 6시 24분)
기억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 13:13)
● 연구 범위 - 고후 8:9; 롬 16:20; 요일 4:8-11; 고후 13:11; 빌 2:1, 2; 갈 4:4-6
고린도후서를 마무리하면서 바울은 자신의 편지에서 다룬 핵심 사항들을 다시 강조한다. 이것을 그는 다섯 가지 명령으로 제시한다(고후 13:11).
첫째 명령인 ‘기뻐하라.’는 서신 앞부분의 내용을 떠올리게 한다.
둘째 명령인 ‘온전하게 되기를 힘쓰라.’(새번역)는 그리스어로 한 단어(‘카타르티조’)이며 이곳과 고린도전서 1장 10절에 나온다.
셋째 ‘서로 격려하라.’(새번역)는 고린도후서 1장 3-7절의 내용을 이어받는다. 바울은 본 서신을 격려로 시작하여 격려로 끝맺는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격려하기 위해 하나님께 격려를 받는다(고후 1:4, 6).
넷째와 다섯째 명령인 ‘마음을 같이하며 평안하라.’는 연합을 촉구하는 말이다. 이렇듯 기쁨, 온전함, 격려, 연합, 평화가 이루어질 때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고후 13:11)께서 임하신다. 이것은 인간의 마음에 삼위 하나님이 활동하실 때 이루어진다(13절).
은혜와 사랑과 친교는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역사하신 결과이다. 이런 특징이 나타나는 곳에서는 하나님의 임재를 깊이 느낄 수 있다.
말씀 속으로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롬 16:20).
“9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 4:9-11).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하게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후 13:11).
토의 질문
1. 살아오면서 하나님께 어떤 은혜를 가장 깊이 경험했습니까?
*답: 각각 대답해보자.
2. 우리는 어디서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분명히 느낄 수 있나요?
*답: 자신이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인도하신 사실이 아니겠는가?
3. 사람들이 하나님의 품성을 오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 자신의 상태를 확실히 모르고, 또 하나님을 인간의 표준으로 재어보기 때문이다.
4. 성령의 교제는 우리의 삶과 공동체에서 어떻네 나타날까요?
*답: 사랑과 연합과 봉사로 나타난다.
5. 삼위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함께 일하시나요?
*답: 연합하여 한 분의 봉사처럼 일하신다.
핵심 교훈
은혜와 사랑과 교제는 삼위 하나님께서 함께 이루시는 구원의 역사이다. 예수의 은혜, 아버지의 사랑, 성령의 교제 안에 거할 때 교회는 연합과 회복을 경험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세상에 드러낼 수 있다.
9월 20일(일) 예수의 은혜
고린도후서의 첫 부분과 마찬가지로 마지막 부분에도 예수의 은혜가 언급되었다는 점이 감격스럽다(고후 1:2; 13:13). 바울은 그분의 은혜를 말하면서 편지를 시작하고 끝맺는다. 제1과에서 보았듯이 바울은 예수에 관하여 생각하고 말하기를 멈출 수 없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8:9).
예수의 은혜는 얼마나 경이롭고 강렬한가! 그분은 하늘의 영원한 삶이라는 부유함을 버리고 가난해지셨다. 그분은 그 옛날 갈릴리의 먼지 나는 길을 걸으셨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8). 그렇게 하신 이유는 우리를 “부요하게” 하려고 다시 말해 자기와 함께 하늘에서 지낼 기회를 우리에게 주기 위해서였다. 죄와 죽음과 고통의 세상밖에 모르는 우리로서는 예수께서 하늘 궁정을 버리고 이 땅에 내려와 우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주신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다음 성경절들을 읽어 보라. 어떤 중요한 가르침이 담겨 있는가? 롬 16:20; 갈 6:18, 빌 4:23; 살전 5:28
[롬16:20]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갈6:18]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빌4: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살전5:2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답: 모든 신자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기를 구하였다.
서신들에서 바울은 예수의 은혜를 자주 언급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롬 5:15)라는 말씀도 그중 하나다. 이 넘치는 은혜를 받은 사람은 ‘예수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게 될 것이다(롬 5:17). 바울은 고린도후서뿐 아니라 다른 서신에서도 예수의 은혜를 언급하며 글을 시작하고 마친다(롬 1:7; 16:20; 고전 1:3; 16:23; 갈 1:3; 6:18; 빌 1:2; 4:23). 그는 이 주제에 사로잡혀 있었고 고린도 교인들의 마음도 이 생각으로 가득 차기를 바랐다.
모든 교회가 그렇게 되는 것이 바울의 소원이었다. 에베소 교인들에게도 그는 말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엡 6:24). 바울은 예수를 향한 우리의 사랑이 변덕스런 사랑이기를 바랄까? 절대 그렇지 않다. 그는 예수의 은혜가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고후 4:15, 새번역) 퍼져서 자기뿐 아니라 그들에게도 흘러넘치기를 바랐다.
나의 삶 속으로: 나를 위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 봅시다.
내가 한 말과 행실에 따라 치러야 할 대가 대신에 하나님께서는 어떤 은혜를 베푸시나요?
<부가설명> 은혜 한자로 恩惠라고 쓴다. 두 글자의 뜻은 다 은혜다. 은혜는 댓가를 바라지 않고 선의로 베푸는 지극한 사랑과 배려를 뜻한다. 받을 가치가 없는 상대에게 그냥 베푸는 것이다. 예수님이 바로 그렇게 하셨다. 그분은 존재 자체가 은혜와 진리다(요1:14). 예수님은 말씀 하나님 여호와시다. 그런 그분이 자기를 비오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사람으로 탄생하셔서 인류의 사망을 대신 지시고 죄 자체가 되셨다(고후5:21, 소망 756쪽). 그래서 십자가에서 엘리엘리라마사박다니를 외치시고 사망에 떨어지셨다. 그리고 삼일만에 부활하셔서 죄와 사망을 폐하시고 생명과 썩지않는 것을 드러내셨다(딤후1:10). 그렇게 하셔서 그분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사망을 폐하시고 부활의 생명을 얻게 하셨다. 이 모든 일을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하셨다. 그분의 이런 사랑이 은혜다. 이 은혜로 그분을 믿는 사람들은 영생을 얻게 되었다. 이것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8:9). 이 구절은 구절 안에 이것이 은혜라고 해석했다. 예수님이 가난하게 되셨다는 것은 그분이 생명을 버리신 것을 뜻하는 말이고 우리를 부요하게 하신다는 것은 영생을 얻게 하셨다는 뜻이다.
9월 21일(월) 하나님의 사랑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 13:13). 바울은 이 말로 고린도후서를 끝맺는다. 그는 삼위 하나님을 아들, 아버지, 성령순으로 언급하고 있다. 삼위 하나님의 활동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요한복음 3장 16, 17절, 로마서 8장 37-39절, 요한일서 4장 8-11절을 읽어 보라.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요3:16,17]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롬8:37~39]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요일4:8~11]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답: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게 하시고 그분을 통하여 우리를 살게 하셨다고 계시한다.
요한일서 4장 8절에서는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한다.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이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어 우리를 위해 죽게 하셨기에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다고 요한은 힘주어 말한다(요 3:16).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고자 예수를 보내셨고(요 3:17) 이것은 구속 계획의 일부였다(행 3:20; 요일 4:10, 14). 복음서에서 예수는 자기를 보내신 이가 아버지라고 여러 차례 말씀하신다(마 10:40; 막 9:37).
바울은 다음과 같은 놀라운 진술을 남겼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우리는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간의 사랑 넘치는 관계, 참된 우정 등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엿볼 수 있다. 또 자연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엘렌 화잇은 이렇게 말한다. “피어나는 새싹과 돋아나는 풀잎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적혀 있다. 행복한 노래를 지저귀며 하늘을 울리는 사랑스러운 새들과 형형색색 완벽한 자태로 향기를 내뿜는 꽃들, 짙고 생생한 초록 잎사귀가 무성한 숲속의 키 큰 나무들, 이 모든 것이 자상한 아버지 같은 우리 하나님의 보살핌과 자녀의 행복을 갈망하는 그분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 준다”(정로의 계단, 10).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 예수를 제물로 주신 일만큼 더 확실한 것은 없다. 예수를 보내어 목숨을 내주게 할 정도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요일 3:16)이 마땅하다고 응답하게 된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연합하기를 바랐는데 사랑이 없으면 연합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들에게 “사랑은 덕을 세운다.”고 가르쳤다(고전 8:1, 바른). 사랑이 없으면 모든 것이 소용없고 헛되다(고전 13:1-3). 따라서 우리는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해야 한다(고전 16:14).
나의 삶 속으로: 예수께서 온전하고 영원한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복음에서 왜 중요한가요?
아들을 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부가설명> 우리가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말씀을 읽고 말씀에 있으니까 그냥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하지만, 그 사랑이 무엇인지 성경적으로 정확하게 아는지 모를 일이다. 초기에 말시온 같은 사람은 하나님을 악신이라고 했다. 구약을 보면 진멸하라, 멸절하라, 유아까지도 다 죽이라는 기록이 여러번 있다. 그런 구절을 읽으면서도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구절과 사건을 제시하면서 하나님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시온 같이 주장한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그런 끔직한 사건과 역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신약에 와서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강하게 계시한다. 구약 시대에는 왜 그런 명령이 있는가? 이 이유를 알 때에 비로소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계시를 바르게 깨닫는다. 그런 명령은 아담 안에서 죽은 존재를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회복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을 완강하게 거절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거절하게 만드는 존재들을 벌하여 구원받을 사람을 멸망으로 끌어들이지 못하게 하신 것이다. 이것은 아담의 모든 후손들이 아담 안에서 다 죽은 자라는 말씀을 올바로 깨닫지 못하면 알지 못하는 진리다. 아담 안에서 죽은 것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다시 살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 일을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방해하는 사람들을 멸하신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다. 그래서 출32:26~29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게 된다. 참으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 사랑이 독생자의 죽음과 부활로 증명되었다.
9월 22일(화) 사랑의 하나님
고대 이방 세계에서는 신이 인간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들은 악의와 분노로 가득 차 있고 인간이 달래 주어야 할 존재였다. 성경에 나타난 사랑의 하나님은 참신한 개념이었다. 그 당시로서는 놀랍게도 바울은 우리 하나님을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고후 13:11)으로 묘사한다.
고린도후서 13장 11절을 읽어 보라. 이 구절에서 어떤 희망을 찾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이 가르침을 더 잘 체험할 수 있을까?
[고후13:11]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하게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답: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시다. 회개하고 그분께 굴복하면 우리는 온전하게 되며 위로 평강을 누린다.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하나는 하나님을 사랑과 평화의 근원으로 보는 해석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과 평화가 하나님의 특징이라는 견해이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할 필요는 없다. 사랑과 평강은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이며 그분은 사랑과 평강을 우리에게 주시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 바울은 하나님을 “끈기와 용기를 주시는 하나님”(롬 15:5, 현대어), “소망의 하나님”(롬 15:13), “평강의 하나님”(롬 15:33; 16:20; 고전 14:33; 빌 4:9; 살전 5:23), “위로의 하나님”(고후 1:3)으로 묘사한다. 하나님은 이 모든 복의 근원이시다. 그분은 한결같은 사랑으로 우리 모두에게 이런 복을 주신다.
“평강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성경에서 비교적 흔하지만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고린도후서 13장 11절에만 나온다. 그러므로 이 표현은 깊이 묵상할 가치가 있다.
많은 해석자가 지적하듯 바울이 고린도후서 13장 13절의 ‘삼위 축도’ 바로 앞에서 “사랑의 하나님”을 언급한 것은 하나님을 세 위격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비록 바울이 여기서 ‘하나님’이라는 명칭을 셋 중 한 분에게 사용하기는 했지만 다른 서신들에 나타난 예수와 성령에 관한 그의 이해를 감안한다면…13절 전체는 세 위격을 지닌 한 분으로서의 하나님을 묘사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초기 교회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었다. 바울이 이미 분명히 밝혀 놓은 이 개념에 대해 신학자들은 그로부터 100년이 더 지난 뒤에야 ‘삼위일체’라는 약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톰 라이트, 『모든 사람을 위한 고린도후서』, 148).
우리는 사랑의 관계 속에서 영원히 사시는 세 위격의 연합인 한 하나님을 믿는다. 이 삼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실 뿐 아니라 삼위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사랑을 본받아 서로 사랑하라고 명하신다.
나의 삶 속으로: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어떤 식으로 오해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성품을 오해하는 이들에게 삼위일체 하나님의 개념은 어떤 도움이 되나요?
<부가설명>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는 분이신데 왜 굳이 삼위가 그렇게 계실까? 터툴리안이 ‘트리니타스(Trinitas)’라는 라틴어를 처음 창안해서 사용하였고 교회가 교리 용어로 그것을 채택했다. 그것이 한자를 쓰는 동양에 오면서 삼위일체라고 번역했다. 이 번역이 바르게한 것인지 의문이다. 성경의 하나님은 삼위 삼체지 삼위일체가 아니다. 예수님 침례 받으실 때 하늘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침례 받으시는 예수님과 그 위에 비둘기 형상으로 임하신 성령님은 일체가 아니고 삼체가 분명하지 않는가? 성경은 삼위일체를 계시하지 않는다. 삼위일명(三位一名)을 계시한다. 성경은 하나님(엘로힘)을 유일하다고 한 계시가 없다. 여호와가 유일하다고 했다(신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이렇게 유일한 여호와라고 계시했다. 스가랴 14:9에는 이 유일하다는 것이 그이름이 유일하다고 설명했다.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한 분이실 것이요 그의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라.” 여호와가 홀로 한분(유일)이신 것은 바로 그 이름이 홀로 하나인 것이라고 설명한 것이다. 그래서 마28:19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고 할 때 이름이 단수 오노마다. 복수는 오노마타이다. 아버지 아들 성령이 같은 한 이름이다. 그 이름이 여호와다. 즉 스스로 존재한다는 뜻이다. 삼위가 다 여호와다. 이유는 여호와가 사랑이기 때문이다. 셋이 100% 사랑이 균형지고 동일하다. 사랑이기 때문에 삼위가 존재하는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존재했는지는 우리는 모른다. 계시를 믿는 것이 아는 것일 뿐이다.
9월 23일(수) 성령의 교제
예수의 은혜는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낼 뿐 아니라 그 사랑의 결과로 성령의 교제를 이루게 한다. 친교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하므로 사랑이 없으면 교제도 없다. 바울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빌 2:1, 2).
성령은 단지 힘이나 영향력일 뿐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그게 사실이라면 왜 바울이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이라는 두 인격적 존재를 단순한 ‘힘’과 함께 세 위격으로 언급했겠는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이 인격적 관계로 묘사되었듯이(고후 1:3; 11:31) 성령과 인간의 관계를 미루어 볼 때 성령 또한 인격적 존재라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다(롬 8:15, 16; 참조, 요 14:16, 17, 26; 15:26).
“성령의 교제”(빌 2:1)라는 표현은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성령으로 말미암는 인간 서로 간의 친교 또는 성령과 나누는 친교이다. 이 둘은 상호 배타적인 개념이 아니라고 말하는 주석가가 많다. 사실 교인 간에 나누는 친교는 성령과 나누는 친교의 결과로 이루어진다.
다음 성경절을 읽어 보라.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성령에 관하여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 고전 2:10, 11; 3:16; 12:11; 고후 3:6, 17
[고전2:10,11]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11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고전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후3:6,17]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답: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는 분이시며 우리 안에 거하시고 생명과 자유를 주시는 분이라고 가르쳤다.
바울은 성령의 사역에 관해 많이 이야기한다. 고린도전·후서에는 성령이 40번도 넘게 언급되고 있다. 성령은 교회의 덕을 세우게 하시고(고전 14:12), 전도하게 하시고(2:4, 5),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게 하시고(2:10, 11), 그 깊은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시고(2:13), 우리 안에 거하시고(3:16; 6:19), 그리스도와 함께 역사하시어 우리가 의롭다 함을 얻게 하시고(6:11), 영적 은사를 주시고(12-14장), 구원을 위하여 우리에게 인 치시고(고후 1:22), 인간의 마음에 율법을 새기시고(3:3),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삶을 주시고(3:6), 죄에서 자유롭게 하신다(3:17). 분명 우리는 성령 없이 살 수 없다.
나의 삶 속으로: 왜 우리는 성령께서 하나님이심을 깨달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더 온전히 이해하게 되나요? 어떻게 해야 성령과 깊이 교제할 수 있나요?
<부가설명> 성령님은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 우리에게 보혜사로 임하신 하나님이시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14:16,17). 예수님은 성령님을 ‘다른 보혜사(ἄλλον παράκλητον-알론 파라클레톤)라고 하셨다. 성령님 말고 또 보혜사가 있다는 뜻이다. 요일2: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여기 대언자가 파라클레톤이다. 기본형은 파라클레토스다. 예수님이 보혜사이시고 성령은 또 다른 보혜사이시다. 성령님은 태초부터 역사하셨고, 예수께서 탄생하실 때 성령으로 잉태하시고 탄생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성령께서 일하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승천하신 후에 성도들을 보호하시고 하나님을 대언하시고 하나님 앞에 간구하시는 일을(롬8:26,27) 위하여 보혜사의 역할을 받아 오신 것이라고 히애할 수 있다. 그래서 성령님 역사 아니면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관계를 이룰 수 없다(고전12:3). 우리는 기록된 말씀 안에서 성령님과 깊이 교제할 수 있다.
9월 24일(목) 우리의 삼위 하나님
고린도후서 13장 13절을 읽다 보면 은혜의 유일한 근원은 그리스도, 사랑의 유일한 근원은 하나님, 친교의 유일한 근원은 성령이시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다음 성경절을 읽어 보라. 삼위 하나님과 관련하여 은혜, 사랑, 교제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고전 1:3, 4, 9; 10:16; 고후 1:2, 12; 롬 8:35; 15:30; 갈 2:20; 엡 3:19
[고전1:3,4,9]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고전10:16]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고후1:2,1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12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롬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15:3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엡3: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답: 은혜, 사랑, 친교는 삼위 여호와 모두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아버지, 아들, 성령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함께 일하신다. 은혜, 사랑, 교제는 각각 한 분에게서만 오는 게 아니라 삼위 하나님 세 분으로 말미암는다. 그럼에도 각 위격은 구속의 역사에서 고유한 역할을 맡는다. 바울은 이 점을 알고 있기에 서신들에서 이것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갈라디아서 4장 4-6절은 삼위 하나님 각자가 참여하는 구원의 계획을 놀라울 만큼 절제된 언어로 설명한다. 아버지 하나님은 예수를 보내셨는데 이는 아버지께서 이 계획의 근원이심을 시사한다(갈 4:4). 아들 하나님은 여자에게서 나셨는데(4절) 이는 성육신을 말하며 옛 약속의 성취를 의미한다(창 3:15). 아들은 우리를 속량하셨고 사탄이 헐뜯었던(창 3:5) 아버지와 우리 사이의 관계를 옳게 되돌려 놓으셨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우리의 신분을 확증하신다(갈 4:6).
그 외에도 바울 서신에서는 삼위일체에 관해 여러 차례 언급한다. 세 분은 함께 활동하면서 교회가 사명을 이루게 하시고(고전 12:4-6) 우리에게 영적인 힘을 주시고(엡 3:14-19) 교회 구성원들이 삼위 하나님의 관계를 본받아 서로 긴밀히 연합하게 하신다(엡 4:4-6). 바울은 하나님께서 삼위일체이실 뿐 아니라 신성의 세 위격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함께 일하신다고 이해했다(엡 1:3, 13, 14). 더 나아가 그는 우리가 아버지, 아들, 성령의 충만하심으로 충만해져야 한다고 말한다(엡 3:19; 4:13; 5:18).
고린도에 보내는 편지를 마무리하는 바울에게 이보다 더 나은 결말은 없었을 것이다(고후 13:13). 바로 우주의 세 위격이신 삼위 하나님께서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약속이다.
나의 삶 속으로: 삼위 하나님의 활동과 서로의 긴밀한 연합에서 배울 점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면 교인들 간의 친교가 삼위일체의 사랑 넘치는 관계를 드러낼 수 있을까요?
<부가설명> 9월 22일 화요일 교과 부가설명에서 삼위일체-삼위일명에 관하여 설명했다. 그것을 다시 읽어보기 바란다. 거기 삼위로 존재하시는 이유를 설명한 것이 너무 간략하게 해서 부연(敷衍)하려고 한다. 두 사이에서는 사랑이 기울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셋이면 사랑이 기울어지는 쪽이 있다. 그런 사랑은 온전한 사랑이 아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그 사랑은 온전해야 한다. 그 사랑이 온전한 것을 우주에 드러내는 것은 여호와 삼위가 기울어짐이 없는 사랑을 드러내는 것은 삼위 여호와 하나님이 온전한 사랑이라는 것을 우주에 드러내는 방법이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삼위로 존재하시는 이유는 그분들이 사랑 자체이시기 때문이다. 삼위 사이의 사랑이 100%, 삼위 각각의 사랑도 100%다. 그 사랑이 우주를 창조하실 때 역사(役事)하셨고, 피조물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의 산물이다. 또 인류를 구원하실 때 역사하셨다. 생명이시고 사랑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삼위로 계시는 것은 우주와 우리에게 표현할 수 없는 은혜다. 아멘.
9월 25일(금) 더 깊은 묵상을 위해
『시대의 소망』 제73장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662-680)를 읽어 보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이 돌 같은 마음을 살 같은 마음으로 바꾸어 하나님을 향해 살아 있게 할 수 있다. …인간에게는 영혼을 의롭게 하거나 심령을 거룩하게 할 능력이 없다. …도덕적 병폐는 위대한 의사이신 분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치유될 수 없다. 하늘의 가장 고귀한 선물이신 분,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독생자만이 잃어버린 자를 속량할 수 있다”(영문 시조, 1892. 5. 2.).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일 4:16). 그분의 본성과 그분의 율법은 사랑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는 이, 그 행하심이 영원한 분께서는 변치 않으신다.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다(사 57:15; 합 3:6; 약 1:17). 창조의 능력이 나타난 모든 것에 무한한 사랑이 표현되어 있다. 하나님의 통치 아래서는 모든 피조물이 온전한 복을 얻는다. …하늘에서 처음 전쟁이 시작할 때부터 반역이 영원히 정복되고 죄가 완전히 소멸할 때까지의 대쟁투 역사 또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보여 준다”(부조와 선지자, 33).
“성령은…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인격적 존재이심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성령은 인격을 지니고 계신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의 증인이 되실 수도,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하실 수도 없다. 또 그분은 신격을 지닌 존재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마음에 감추어진 비밀을 통달하실 수 없다”(믿음으로 살리라, 2월 15일).
“하늘에는 삼위일체인 세 인격적 존재가 살아 계신다. 산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은 아버지, 아들, 성령이라는 전능하신 세 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는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자 힘쓰면서 하늘에 순종하는 백성을 위해 이 권능자들께서 협력하신다”(전도, 615).
함께 나누기
1. 예수님의 은혜는 어떤 점에서 놀라운가?
*답: 부요하신 자로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셔서 우리 대신 사망이 되셔서 죄와 사망을 처리하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
2. 탕자의 비유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름답게 묘사한다. 비유 속의 아버지가 사랑 많은 아버지임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답: 그 아버지는 아들의 지난날을 묻지도 않으시고 용납하여 새롭게 하고 잔치를 벌여 환영했다.
3. 어떻게 하면 지역 교회에서 ‘성령의 교제’를 생생하게 보여 줄 수 있을까?
*답: 교회가 화목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으로 보여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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