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과 그리스도인의 참된 직무(질문, 대답, 설명) 09/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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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6-08-27 20:29 조회40회 댓글0건본문
제10과 그리스도인의 참된 직무
(9월 5일 안식일/일몰 오후 6시 56분)
기억절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8-10)
● 연구 범위 - 고후 3:1-9; 4:7-18; 5:11-15; 골 1:19-23; 엡 2:13-16; 고후 6:11-7:1; 7장
지난주에 살폈듯 바울은 자신을 변덕스럽고 사랑이 부족한 사람으로 매도하는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자신의 순수함과 진실함을 확인시켜 주며 자신을 변호했다. 그는 영적 자녀들의 유익을 위해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고린도후서 2장 12-17절에서 바울은 한 가지 논지를 전개하는데 이 논지는 7장까지 이어진다. 여기서 그는 그리스도를 위한 참다운 사역이란 무엇인지를 보여 준다. 이와 관련한 바울의 가르침에서 배울 점이 많다.
이번 주에는 고린도후서 3-7장을 들여다보겠다. 여기서 바울은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사역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엘렌 화잇은 이렇게 말한다. “목사에게는 죄인들이 회심하고 진리로 거룩해지는 일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역으로 부르셨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된다. 그가 사도라는 증거는 회심한 자들의 마음에 기록되어 있으며 그들의 새로운 삶으로 입증된다. 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께서 그들 안에 나타나셨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역의 증거에서 목회자는 큰 힘을 얻는다”(사도행적, 328).
말씀 속으로
“1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2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3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4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5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6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7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8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9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고후 3:1-9)
토의 질문
1. 새 언약과 옛 언약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답: 구원을 자기 노력으로 이루려는 것과 예수께서 이루신 것을 믿음으로 받는 차이다.
2. 바울은 왜 자신을 질그릇에 불과하다고 말했나요?
*답: 바울뿐만 아니라 우리도 다 그렇다. 오직 예수님만 보배다.
3. 그리스도는 어떤 의미에서 화목하게 하는 분이신가요?
*답: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죄를 처리하시고 생명과 썩지 않는 것을 드러내어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셔서 하나님과 일체가 되게 하셨다.
4. 거룩함에서 우리는 어떤 몫을 담당해야 하나요?
*답: 버릴 것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핵심교훈
참된 사역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연약한 사람들을 통해 복음을 전하시고 화목과 거룩함의 사명을 이루신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붙들린 사람은 고난 속에서도 위로와 기쁨으로 사명을 감당한다.
8월 30일(일) 참된 사역의 결실
고린도후서 3장 1-9절을 읽어 보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고후3:1~9] 이 구절은 ‘말씀 속으로’에 다 기록되어 있다.
*답: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읽을 수 있는 존재가 돼야 한다는 뜻이다.
추천서는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흔했다. 그러나 바울은 추천서를 지니고 다니지 않았다. 고린도 교인들의 삶에 드러난 성령의 변화시키는 능력이 곧 자신의 사역이 참되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바울은 자신의 지혜나 노력으로 고린도 교회가 탄생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는 자기 홍보에 몰두하지 않았다(고후 3:4-6; 고전 2:2).
자신의 사역에 대해 말하면서 바울은 두 가지 언약을 간략하게 언급한다. 모세로 대표되는 옛 언약과 바울 자신 및 그의 동료들로 대표되는 새 언약이다. 성급한 독자라면 옛 언약은 아무런 구원의 소망도 주지 못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구원은 새 언약뿐 아니라 옛 언약에서도 가능했다. 옛 언약은 미리 주어진 복음이었다.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갈 3:8).
고린도후서 3장 1절-4장 6절에서 바울이 차용한 ‘옛 언약’이라는 표현은 순종의 행위로 하나님께 인정받으려는 율법주의적 경험을 가리킨다. 반면에 ‘새 언약’은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이들의 경험을 말한다. 다시 말해 새 언약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그들 안에 이루어 놓겠다고 약속하신 모든 것이 그분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경험을 상징한다.
여기서 바울은 복음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두 가지 반응을 언급한 것이지 구약과 신약에 서로 다른 두 복음이 있다고 말한 게 아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음은 오직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 1:9).
“이것은 고린도후서 2장 14절-4장 6절에 역사적 요소가 일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게 아니다”(스킵 매카티, 『돌판인가 마음판인가? In Granite or Ingrained?』, 120). 바울은 이 역사적 요소를 활용해 그중에는 “구원받는 자”도 있고 “망하는 자”도 있다는 논점을 펼칠 뿐이다(고후 2:15). 그들의 반응 즉 모세의 사역에 대한 이스라엘의 불신에 찬 반응 때문에 모세의 사역은 ‘정죄하고 죽게 하는 사역’으로 비칠 수 있다. 그와 반대로 고린도 교인들은 믿었기 때문에 그들을 위한 바울의 사역은 그들에게 ‘의의 사역이자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사역’이 되었다.
고린도 교회가 경험한 구원은 바울의 사역이 참되다는 증거로 작용한다.
나의 삶 속으로: 일이 힘들었어도 수고한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우리가 그리스도의 편지라면 그 편지에 묘사된 그리스도는 어떤 모습일까요?
<부가설명>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 출생한 사람들이다. 에덴동산의 첫 아담은 창조주와 맺은 언약을 어겨서(호6:7) 영생을 잃었다. 그에게는 영생 생명의 씨가 없어졌다. 그래서 말씀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 생명의 씨가 되어 동정녀에게서 사람으로 탄생하셨다. 그는 마지막 아담이시다. 사람들이 둘째 아담이라는 말을 하지만 성경에는 그런 표현이 없다. 마지막 아담이라고 했다(고전15:45). 옛 언약은 히브리서의 설명으로 보면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이다. “7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8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말씀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 9 또 주께서 이르시기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 10 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히8:7~10). 에덴동산에 아담과 맺은 언약이 첫 언약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교과 저자의 말대로 첫 언약은 하나님의 약속을 사람이 행위로 이루겠다는 언약이다. 결코 성공하지 못했다. 이미 사람은 아담 안에서 사망이 되어 종신으로 달려가는데, 그들이 스스로 행동해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길 수 있겠는가? 새 언약은 그리스도께서 사망을 처리하시고 부활하셔서 누구든지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면 그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서 마지막 아담으로부터 영생의 생명을 얻어서 영생의 나라의 백성으로 살게 되며 그렇게 된 사람들은 이 사망의 세상에서 사망의 존재들에게 생명이신 예수님의 편지가 되는 것이다.
8월 31일(월) 고난과 영광
고린도후서 4장 7-18절을 읽어 보라. 바울은 어떤 고난을 겪었고 어떻게 견뎠는가?
[고후4:7~18]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13 기록된 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14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15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답: 예수님을 위하여 항상 죽을 고비에 넘겨졌으나, 예수님의 생명이 그들을 이기게 했다.
보헤미아의 위대한 종교 개혁자 얀 후스는 예수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그분은 세상의 주인이시고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이다. 그런데도 그분이 고난을 당하셨다. 그렇다면 우리도 고난받아 마땅하지 않은가? 무엇보다 우리를 정결하게 하는 고난이라면”(각 시대의 대쟁투, 105).
그보다 수 세기 전에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를 위해 기꺼이 고난받고자 했다. 그는 자신을 흙으로 빚은 질그릇에 불과하다고 여겼다(고후 4:7). 끊임없이 사방으로 짓눌리고 답답한 일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거꾸러뜨림을 당했어도 그는 움츠러들지도 낙심하지도 버림받지도 망하지도 않았다(8, 9절). 그가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몸에 나타나게” 하기 위해서였다(10절).
“예수의 죽음”이란 바울이 앞 절에서 언급한 고난을 말할 것이다. 따라서 “예수의 생명”은 죽음에서 벗어나는 구원이나 현재의 삶에 필요한 영적인 힘을 의미할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부활을 가리킨다(고후 4:12).
흥미롭게도 고린도후서 4장 10-12절에는 ‘죽음’과 ‘생명’이 세 번씩 언급되어 이 세대에는 삶과 죽음이 뒤엉켜 있음을 일깨워 준다. 그러나 영광스런 미래에 우리는 죽음 없는 삶을 경험할 것이다(계 20:14; 21:14).
고린도후서 4장 7-18절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복음이 연약한 인간을 통해 전파되어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 돌려진다는 점이다(15절). 선교사는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당하는 일이 허다하다. 그러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에 비하면 이 땅의 괴로움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다(17절). 믿는 사람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산다(고후 4:18; 5:7).
바울은 미래의 삶에 관한 소망으로 가득 차서 그 이야기를 본문 전체에 걸쳐 계속한다(고후 5:1-10). 그는 자신의 죽을 육신을 땅에 있는 장막 집이라고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그와 대조되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은 모든 시대의 신자들이 갈망하는 부활한 몸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다(1절).
나의 삶 속으로: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들은 무엇인가요? 왜 우리는 어떠한 일을 겪든지 부활의 소망(고전 15:52)을 간직해야 하나요?
<부가설명>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은 다 사람의 환경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현미경으로 겨우 보는 미생물이라도 보이는 것에 속한다. 보이지 않는 것은 이 세상 차원 밖의 것이다. 사람이 밤하늘의 별들을 보지만 그 실상을 정확하게 모른다. 그런데 하나님의 세계를 어떻게 바르게 알겠는가? 성경에 계시해주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을 보는 눈이 믿음의 눈이다. 믿음의 눈이 열리면 성경이 사실과 현실로 보인다. 사망과 생명이 분명히 구분된다. 동시에 산 자와 죽은 자의 실상을 알게 된다. 옛 언약에사 새 언약으로 옮기는 것이다.
9월 1일(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화목하게 하는 직분
고린도후서 5장 11-15절은 바울의 사역이 그리스도 중심적임을 어떻게 보여 주고 있는가?
[고후5:11~15]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노라 12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로 말미암아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에게 대답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13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답: 바울은 그리스도 사랑의 강권을 받아 오직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다가 다시 사신 그분을 증거했다. 그래서 그분을 믿음으로 살아 있는 자들은 그분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에 대해 그리스도께 답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고후 5:10). “주님이 두려운 분이심”(고후 5:11, 새번역)을 알았기에 그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힘써 권했다. 이 두려움이란 그리스도에 대한 존경과 경외심이다. 여기에는 그리스도를 향한 바울의 사랑과 자기를 사랑하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뢰가 함께 어우러져 있다. 구약 성경에서 주를 경외한다는 것은 마음과 뜻을 다하여 그분의 길을 따르며 그분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다(신 10:12).
바울의 사역에서 중심은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이다. 그는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다. 그의 자랑은 그리스도이다(고후 12:9).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그는 말했다(갈 6:14, 바른). 따라서 바울에 대해 고린도 교인들이 “자랑할 기회”(고후 5:12)란 그리스도 중심적인 그의 사역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뜻이다. 반대자들의 자기중심적인 사역과 현저히 대조되는 모습이다.
고린도후서 5장 16-21절, 골로새서 1장 19-23절, 에베소서 2장 13-16절을 읽어 보라. “화목하게 하는 직분”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고후5:16~21]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골1:19~23]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엡2:13~16]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답: 예수님을 믿음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져서 생명이신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경험이다. 이 일을 위하여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분을 위를 대신하여 죄가 되게 하시고 그분이 죄, 곧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우리가 그분을 믿음으로 생명 곧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셨다. 그래서 화목이 이루어졌다.
그리스도는 화목하게 하는 일의 전문가이시다. “또한 우리에게 화목의 직분을 주셨다”(고후 5:18, 바른). 고린도후서 5장 16-21절에는 화목하게 하는 일이 거듭 언급된다. 바울에게 이것은 중요한 개념이며 우리도 마땅히 그렇게 여겨야 한다.
하나님은 아들의 대속적 죽음으로 인류를 자신과 화목하게 하셨다.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사람은 새로운 피조물이다(고후 5:17). 이제 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며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계속 전해야 한다(19절).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한 대사”이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하여…권면”하신다(20절, 바른).
나의 삶 속으로: 죄 아래 있는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하셨는지 생각해 봅시다. 십자가가 없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우리는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부가설명> 성경에서 화목은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을 뜻한다. 예수께서 십자가 지시기 전 제자들을 위한 마지막 기도가 하나 되게 해 주시라는 것이었다. 요한복음 17장이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려면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 보기를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하나님을 보고 살 자가 없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려면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도 살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것을 가르친 것이 성소와 그 봉사다. 그것은 곧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셔서 죽으심으로 죄를 없이하시는 길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마침내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함께 거하실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임마누엘이다. 그러려면 우리는 반드시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을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것이 화목의 결과다. 에베소에서 바울은 이것을 하나되게 하셨다고 표현했다(엡2:13~16).
9월 2일(수) 거룩해지라는 부르심
고린도후서 6장 3-10절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권면한다. 그는 고난과 승리의 긴 목록을 나열하면서 그리스도를 따르고 하나님의 사역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려 준다. 그는 힘든 상황들(4, 5절), 품성의 덕목(6절), 사역을 위한 무기(7절), 사역의 우여곡절(8-10절)을 열거한다. 하나님과 화합하라고 권면한 뒤 그는 교인들에게 거룩한 삶을 살라고 즉 불신자와 부정한 것의 악영향에서 벗어나라고 호소한다(14-17절).
고린도후서 6장 11절-7장 1절에 따르면 거룩한 삶이란 무엇인가?
[고후6:11~7:1]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 12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13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것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17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7: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답: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기를 깨끗게 하고 하나님이 거하시기에 합당한 몸 성전이 되는 것이다.
본문에서 바울은 교인들 간의 애정과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후 6:11-13). 하나님과 화목해졌다는 증거는 서로 화목해지려고 애쓰는 모습에서 발견된다. 그런 사람은 수평적인 화목을 이루는 사람이다.
거룩해지라는 요청은 다음의 여섯 가지 권고로 표현된다. ①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고후 6:14). ② “그들 중에서 나와서” ③ “따로 있고” ④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17절). 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⑥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후 7:1).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우상 숭배를 내버린 거룩한 삶을 요구하신다.
또 본문에서는 성전으로서 교회의 역할을 강조한 일곱 가지 약속도 제시한다. ①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② “두루 행하여” ③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④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⑤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⑥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⑦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고후 6:16-18).
눈여겨볼 것은 ①-④의 약속이 17절에 언급된 세 가지 명령에 대한 보증이 된다는 점이다(17절이 “그러므로”라는 말로 시작된다는 점을 참조하라.). 거룩함은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성령께서 마음에 활동하신 결과임을 여기서 알 수 있다. 거룩함이 하나님을 힘입은 결과이기는 하지만 신자들이 담당해야 할 몫이 있다. 우상 숭배와 온갖 더러운 습관을 버리는 것이다.
나의 삶 속으로: 고린도후서 6장 16-18절의 약속에 따르면 거룩함이란 무엇인가요?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는 명령을 어디에 적용할 수 있을까요?
<부가설명> 거룩함이란 무엇일까? 여기서 말하는 것은 구별되라는 것이다. 믿지 않는 자와 구별되고 우상에게서 구별되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거하시기에 합당한 성전이 되라는 것이다. 그것은 부정한 것을 만지지 않는 것이다. 부정한 것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거룩함이 손상당한다. 거룩하다는 것은 성품이 아니다. 세상과 구별되는 것이다.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과 구별되시는 분이다. 세상은 사탄에게 속해 있다. 세상의 것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를 끊는 것이다. 우리는 성화를 성품 변화라고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성화는 세상과 관계를 끊는 것이다. 그렇게 끊어버린 후에는 하나님께만 속해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의 생명이 그 사람에게 작용하기 때문에 그 생명의 열매를 맺는다. 그것이 빛의 열매다(엡5:8,9). 하나님이 빛이시니 세상과 단절하고 하나님께 속하면 당연히 그 빛이 내게 비치고 빛의 옷을 입으며 빛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9월 3일(목) 위로와 기쁨
고린도후서 7장을 읽어 보라. 고린도 교인들이 회개했다는 소식에 바울은 어떤 심정이었는가?
[고후7:2~16]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 우리는 아무에게도 불의를 행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해롭게 하지 않고 아무에게서도 속여 빼앗은 일이 없노라 3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를 정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전에 말하였거니와 너희가 우리 마음에 있어 함께 죽고 함께 살게 하고자 함이라 4 나는 너희를 향하여 담대한 것도 많고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 5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 6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7 그가 온 것뿐 아니요 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고함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8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9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12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그 불의를 행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그 불의를 당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오직 우리를 위한 너희의 간절함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나타나게 하려 함이로라 13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위로를 받았고 우리가 받은 위로 위에 디도의 기쁨으로 우리가 더욱 많이 기뻐함은 그의 마음이 너희 무리로 말미암아 안심함을 얻었음이라 14 내가 그에게 너희를 위하여 자랑한 것이 있더라도 부끄럽지 아니하니 우리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다 참된 것 같이 디도 앞에서 우리가 자랑한 것도 참되게 되었도다 15 그가 너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과 떪으로 자기를 영접하여 순종한 것을 생각하고 너희를 향하여 그의 심정이 더욱 깊었으니 16 내가 범사에 너희를 신뢰하게 된 것을 기뻐하노라.
*답: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의 편지를 받고 회개한 결과를 듣고 바울은 대단히 기뻤다. 그 기쁨은 넘치는 위로가 되었다.
“너희가 우리 마음에 있어”(고후 7:3)라는 말에는 사랑이 넘쳐흐른다(고후 6:11 참조). 자신의 사랑에 반응이 있기를 갈망하는 바울은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고 말한다(고후 7:2). 그리스어 본문에는 “마음으로”라는 말이 없지만 성경 역본 대부분은 이 말을 덧붙여 놓았는데 이는 문맥적으로도 옳다.
분명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에게 마음을 열었다. 기쁨으로 벅차오르는 그 순간의 감격을 바울은 이렇게 표현한다. “나는 너희를 향하여 담대한 것도 많고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고후 7:4). 교회가 그리스도께 충성스럽게 헌신할 때 사역자들은 가장 큰 위안과 기쁨을 느낀다.
고린도후서 7장 5-16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위로와 기쁨을 얻는 이유를 더 상세히 설명한다. 위로와 기쁨은 여기서 가장 두드러지는 개념이다. 7장에는 동사 ‘파라클레오(위로하다.)’ 또는 명사 ‘파라클레시스(위로)’가 7번이나 등장한다. 고린도후서의 이 대목은 도입부(고후 1:3-7)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안에서 얻는 큰 위로를 여러 차례 언급하며 끝맺는다. 바울이 느낀 위로는 ‘엄중한 서신’에 결실이 따랐다는 안도감에서 비롯한다.
이 안도감은 디도에게 긍정적인 소식을 들은 결과이지만 궁극적으로 바울이 얻은 위로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고후 7:6). 참으로 하나님은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는 분이시다(고후 1:3, 4).
흥미롭게도 바울은 “위로가 가득”한 동시에 “기쁨이 넘치고 있다”(고후 7:4, 바른). 그가 보낸 고뇌의 편지는 큰 아픔을 유발했지만 그것은 회개를 이루는, 하나님의 뜻에 맞는 근심이었다(고후 7:9-11). 고린도 교인들은 “하나님께 속한 방법대로” 근심했고(11절, 킹흠정) 이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10절)를 이루었다. 하나님의 참된 일꾼에게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겠는가!
나의 삶 속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는 근심을 해 본 적이 있습니까? 그것이 회개를 이루는, 하나님의 뜻에 맞는 근심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나요?
<부가설명>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자기가 보낸 편지에 어떤 반응을 나타낼는지 마음을 조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디도를 통하여 그들이 진정으로 회개한 소식을 듣고 조리던 마음이 펴이며 마음에 쉼이 왔다. 그것이 위로가 아니겠는가? 당연히 기쁨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ABC 기도 운동을 시작한 쿤 목사를 찾아와서 자기 죄 용서 받기를 원한다고 근심 띤 얼굴로 말했다. 쿤 목사가 물었다. “형제는 그 죄를 진정으로 하나님께 회개로 아뢰고 용서받기를 원하시오?” “예, 그렇고 말고요.” “그러면 하나님께 진정으로 고백했나요?” “예,” 그러면서 쿤 목사에게 허물을 털어놓으려고 했다. 쿤 목사가 말했다. “그 허물은 하나님께만 고하면 됩니다. 같은 사람인 내게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함께 기도합시다.” 그리고 함께 무릎을 꿇고 쿤 목사는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아무아무개 형제의 죄를 다 용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런데 그 형제가 아멘하지 않았다. 그렇거나 말거나 쿤 목사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형제여, 하나님께서 형제의 고백한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주셨으니 축합니다.” 그 형제는 의아한 눈을 쿤 목사님을 쳐다보면서 악수하려는 손을 뒤로 빼고 말했다. “목사님, 하나님이 내 죄를 용서한 것을 어떻게 알아요. 아무런 대답도 없는데” 그때 쿤 목사가 말했다. “형제여,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을 믿으십니까?” “그럼요.” 그는 요일1:9을 읽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진정으로 자백하면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약속하셨지요, 형제는 진정으로 고백하고 회개했지요, 그러니까 용서받은 것이 확실하지요.” “아이 목사님도, 무슨 용서한 표가 나야지요. 그런 기도 40년동안 늘 했지만, 용서하신 표를 받은 일이 없어요.” 우리는 기록한 말씀보다 내 감각과 느낌을 더 믿는 것이 아닌가? 바울을 고린도 교힌들의 회개를 진정으로 기뻐했다.
9월 4일(금) 더 깊은 묵상을 위해
『사도행적』 제31장 ‘기별에 유의함’(323-334)을 읽어 보라.
지난주에도 우리는 『사도행적』 제31장을 읽었다. 이번에는 바울의 엄중한 서신과 관련된 부분, 그 서신을 쓰면서 그가 느꼈을 감정, 수신자들의 참다운 회개 소식을 접한 바울의 기쁨에 중점을 두고 읽어 보자. 그런 다음 바울의 진정성,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우리가 배울 점 등을 생각해 보자.
“하나님은 용서하시는 분이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온 우주에, 타락한 세상과 타락하지 않은 세상에 드러내야 한다. 인간은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면서 그리스도를 자신의 속죄 제물로 믿고 하나님이 자신과 화해하셨음을 깨닫는다”(교육에 관한 특별 증언, 223).
“교회인 우리는 위대한 빛을 받았다. 주께서는 세상의 유익과 복을 위해 이 빛을 우리에게 맡기셨다. 화목하게 하는 직무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위에서 주시는 능력으로 우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호소해야 한다”(편지 32, 1903).
하나님과 화목해진 사람은 거룩함을 추구해야 한다. 화잇은 고린도후서 7장 1절을 설명하면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룬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일깨워 준다. 바울은 새 신자들이 “자립하고 성장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 믿음이 강해지고 열과 성과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께 헌신하면서 그분의 왕국을 확장하도록” 힘껏 도왔다(사도행적, 201).
함께 나누기
1. 바울은 우리를 “질그릇”(고후 4:7)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연약하고 한계가 많다는 사실이 어떻게 복음 전파를 약화하기보다 더 강하게 하는가?
*답: 인간의 약함으로 주님이 강하게 증거될 수 있기 때문이다.
2.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그렇게 될 때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셨는가?
*답: 새로운 피조물은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는 것이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자신을 나타내는 삶을 사신다.
3. 고린도후서 6장 4, 5절에서 바울은 복음을 위해 견딘 고난의 긴 목록을 나열한다. 이 고난에 그는 어떻게 반응했는가?(6, 7절 참조) 이런 고난이 나에게 닥친다면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답: 6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이겼다. 우리도 본받아야 한다.
4. 바울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과 세상 근심을 대조한다(고후 7:10). 근심은 어떻게 회개로 이어지는가? 세상 근심과 대조적인 하나님의 뜻에 맞는 근심이란 무엇인가?
*답: 자기 허물을 용서받기 위한 근심이다. 세상 근심은 자기 허물 회개와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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