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과 사랑이 이끄는 사역(질문, 대답, 설명) 08/2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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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6-08-21 11:07 조회32회 댓글0건본문
제9과 사랑이 이끄는 사역
(8월 29일 안식일/일몰 오후 7시 6분)
기억절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2:4)
● 연구 범위 - 고후 1:3-14; 2:17; 4:2; 고전 16:5-7; 고후 7:5-13; 2:5-17
바울의 사역이 늘 순탄하지는 않았다. 그는 투옥과 생명의 위협을 겪었을 뿐 아니라 이런 기록도 남겼다.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후 11:24-28).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우리는 이 교회에 대한 바울의 “염려”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그들을 위한 바울의 사랑은 결코 식지 않았다.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절대로 식지 않듯 말이다. 사실 바울은 교회 사랑하는 법을 예수님께 배웠고,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교회에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고후 5:14; 고전 11:1 참조).
말씀 속으로
“5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6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7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8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10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11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고후 1:5-11)
토의 질문
1. 교회에 걱정스러운 일이 생길 때 어떤 마음과 태도를 지녀야 할까요?
*답: 먼저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고 말씀으로 자아를 굴복하고 사랑과 긍휼의 마음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2. 바울은 어떻게 고난 중에도 감사할 수 있었을까요?
*답: 십자가를 바라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3. 순수한 의도와 사랑이 오해받을 때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답: 진심을 조용히 말씀과 기도와 함께 드러내는 것이다.
4. 죄를 바로잡으면서도 사랑과 회복의 마음을 잃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답: 자아 부정과 주님의 사랑과 성령의 감동이 필요하다.
핵심교훈
참된 그리스도인의 사역은 능력이나 성과보다 사랑과 진실함에서 시작된다. 바울은 고난과 오해 속에서도 교회를 향한 사랑을 잃지 않았고 책망조차 회복과 구원을 위한 마음으로 감당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붙들린 사람은 진실함과 인내로 다른 이들을 섬기며 약함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승리를 경험한다.
8월 23일(일) 감사
고린도후서 1장 3-7절을 읽어 보라. 바울이 감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고후1:3~7]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6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7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답: 고난당할 때도 건지시고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인하여 감사한다.
바울의 감사는 고난당하는 이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위로에 초점을 맞춘다. 3-7절에서는 동사 ‘파라칼레오(위로하다.)’와 명사 ‘파라클레시스(위로)’가 총 10회 등장하는데 고린도후서에 언급된 총횟수(29회)의 3분의 1이다. 여기서 하나님은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시는 이”(고후 1:3, 4)로 묘사된다.
하나님의 위로는 자기 혼자만 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고후 1:4, 5). 괴로울 때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한 사람이야말로 괴로워하는 또 다른 이를 적절하게 위로할 수 있다.
바울은 그 자신이 고통 중에 하나님께 위로를 받았기에 남들을 위로할 수 있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하여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니…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한 것이라”(고후 1:6, 한글킹). 이런 것이 사랑이다.
고린도후서 1장 8-11절에서 바울은 무엇에 감사하는가?
[고후1:8~11]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10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답: 죽을 지경에서 건져주신 것에 감사한다.
바울은 죽겠다는 공포가 엄습할 만큼 자신과 동료들이 “힘에 겹도록 심한”(고후 1:8) 고난을 받았다고 말한다. 남은 것은 부활의 소망뿐이라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건지셨고 상황은 달라졌다(10절). 그들은 죽음의 두려움(8절)을 딛고 일어나 하나님께서 또 건져 주시리라는 분명한 희망을 품었다(10절). 지난날 하나님의 승리는 앞으로도 그분이 승리하시리라는 확신을 준다. 하나님은 고난을 사용하여 우리가 그분을 신뢰하도록 가르치신다. 고난을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는 계기로 삼는 한 우리는 고난 속에서 영적으로 성숙해질 수 있다. 바울의 감사에는 중보 기도의 위력과 하나님의 구원에서 경험하는 고마움이 드러난다.
나의 삶 속으로: 여러 고난이 닥칠 때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힘겨운 일을 겪는 이들을 위로할 때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할까요?
*답: 동병상련(同病相憐)은 잘 아는 말이다.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서로 가엽게 여긴다는 말이다. 오늘날 우리는 바울과 그 일행의 고난을 절실하게 모른다. 오늘날도 기독교를 핍박하고 죽이는 사람들이 있는 지역에 사는 성도들은 바울의 이 고백을 절실하게 느낄 것이다. 대체적으로 우리는 입으로 위로하지만 경험해보지 못한 상태에 대한 위로는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데는 역부족이다. 욥의 친구처럼 위로한다며 정죄하지 않는 것만도 위로가 될 것이다. 사람은 스스로 위로하는 능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 믿음으로 우리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부활의 소망을 가슴에 깊이 품고 어떤 난관도 인내하는 믿음으로 스스로 굳세어야 한다. 이것이 믿음이 아닐까? 말은 쉽지만 자신에게 닥치면 약해지는 것이 우리 모습이다. 아래 영감의 말씀이 위로가 되지 않는가? 주님 불쌍히여겨 주소서.
8월 24일(월) 순수하고 진실하게
어제 확인한 대로 바울은 힘들 때 자신이 하나님께 위로받았듯 고린도 교회가 어려움을 당할 때 교인들을 위로했다. 여기서 교회를 향한 그의 사랑이 드러났다(고후 1:1-11). 그런데 그 사랑은 교인들을 향한 자신과 동료 일꾼들의 진솔함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오늘은 그 부분 살펴보겠다.
고린도후서 2장 17절과 4장 2절을 생각하면서 1장 12-14절을 읽어 보라. 바울의 진정성에서 고린도 교회를 향한 그의 사랑이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가?
[고후2:17]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고후4:2]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고후1:12~14]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13 오직 너희가 읽고 아는 것 외에 우리가 다른 것을 쓰지 아니하노니 너희가 완전히 알기를 내가 바라는 것은 14 너희가 우리를 부분적으로 알았으나 우리 주 예수의 날에는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그것이라.
*답: 바울은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고 단언하면서 고린도교회에 순전한 진리를 전했다고 고백한다.
고린도후서 1장 12-14절은 바울이 이후 전개할 논증의 도입부이다. 고린도에는 그의 진실성과 사도직을 의심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울이 갈팡질팡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이라서 사도로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자신과 동료들이 그들을 대할 때 더없이 진실하게 행동했다고 강조한다.
바울과 동료들의 행동을 묘사하는 두 단어는 순박함과 진실함이다(고후 1:12, 새번역). ‘순박함’(개역개정, ‘거룩함’)은 그리스어 ‘하플로테스’를 옮긴 것이다. 이것은 말과 행동의 고결함을 표현할 때 쓰이며 동기의 순수성을 나타낸다(엡 6:5; 골 3:22). 또 ‘진실함’(에일리크리네이아) 역시 동기의 고결성과 순수성을 가리킨다.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의 의도를 의심하지 말아야 했다. 바울은 자신의 순박함과 진실함이 하나님에게서 비롯했다고 밝힌다. 『새번역영어성경(New English Translation Bible)』에서는 이 의미를 잘 살려 “하나님께로부터 비롯한 순수한 동기와 진실함”(고후 1:12)이라고 표현했다. 같은 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와 같은 특성이 자신들에게 주어졌다고 덧붙인다.
바울의 반대자들은 이전의 편지에서 그의 말을 잘못 이해한 듯하다(고후 1:13, 14). 바울은 자신의 의도는 분명하며 이해에 어려움이 없다고 장담한다. 자신의 말과 의도와 행동의 정직함은 “주 예수님의 날에” 밝히 드러날 것이라고 그는 확언한다(고후 1:14).
나의 삶 속으로: 자신의 순수한 동기와 선한 의도가 오해나 반대를 샀던 적이 있나요? 왜 우리는 남의 동기를 함부로 의심해서는 안 되나요?
<부가설명> 사람은 자기의 모습도 정확하게 모른다. 등은 본 일이 없다. 자기 얼굴도 거울이 없던 때는 몰랐다. 가장 모르는 것이 자기 자신이다. 그래서 물에 비추어보고 거울을 만들고 사진을 찍어 자기 모습을 확인한다. 외모도 그런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알겠는가? 그런데도 욥의 친구들처럼 위로를 비판으로 끌고 간다. 그래서 상담 교육의 중요한 부분이 진지하게 듣는 것이라고 한다. 믿음에 있어서도 쉽게 판단하지 않아야 하고 부정확한 자기 생각을 쉽게 말하지 않아야 한다. 사람의 마음을 보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성령께서 인도하신다. 우리는 오히려 기도로 주님의 돌보심을 간구해야 할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가장 큰 위로가 아니겠는가?
8월 25일(화) 사랑으로 바꾼 계획
고린도에는 바울이 여행 계획을 바꾸었다는 이유로 그의 의도와 사랑을 의심한 교인들이 있었다(고후 1:15-2:4). 오늘은 이 부분을 살펴보겠다.
고린도전서 16장 5-7절에 따르면 바울의 원래 여행 계획은 무엇이었는가?
[고전16:5~7] 내가 마게도냐를 지날 터이니 마게도냐를 지난 후에 너희에게 가서 6 혹 너희와 함께 머물며 겨울을 지낼 듯도 하니 이는 너희가 나를 내가 갈 곳으로 보내어 주게 하려 함이라 7 이제는 지나는 길에 너희 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만일 주께서 허락하시면 얼마 동안 너희와 함께 머물기를 바람이라.
*답: 고린도교회 교인들과 함께 머물기를 바랐다.
바울은 이전에도 고린도에 간 적이 있었다. 그는 마케도니아를 거쳐 고린도를 다시 찾아가 겨울을 보내고자 했다(고전 16:5, 6). 고린도에 머문 뒤에는 예루살렘의 가난한 이들을 위해 마케도니아와 아카이아, 갈라디아, 아시아 등지에서 헌금한 구제금을 가지고 유대로 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계획이 바뀌었다. 고린도에 관한 좋지 못한 소식을 디모데에게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고전 4:17; 16:10; 고후 1:1).
디모데에게 보고받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바울은 에베소에서 마케도니아를 거치지 않고 곧장 고린도로 가기로 했다. 새로운 여정은 ‘에베소 → 고린도 → 마케도니아 → 고린도 → 유대’ 순이었다(고후 1:15, 16). 그런데 그는 에베소에서 고린도로 갔다가 에베소로 돌아왔다. 새로 짠 일정과 달리 고린도에 다시 방문하지 않았다. 적어도 당장은 아니었다. 앞서의 방문이 순조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에베소로 돌아가 그들에게 편지를 썼다. 다시 방문해 상황을 악화시킬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편지를 보내는 편이 낫다고 여긴 것이다(고후 2:1, 3).
고린도를 다시 방문하지 않은 바울의 의도는 오해를 샀다. 고린도 교회 일각에서 바울은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며 자기들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후 1:17). 이에 대해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시선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이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하신 약속을 그리스도를 통해 충실하게 이행하셨듯 자신도 가장 알맞은 때에 고린도 교인들을 방문하겠다는 본래의 의도에 충실했다는 것이다(고후 1:18-22).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 1:20).
하나님의 일이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예’만 되듯이 바울의 태도 역시 교인들의 말마따나 상황에 따라 ‘예’와 ‘아니요’ 번복한 게 아니라 항상 ‘예’였다(고후 1:19).
이렇듯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다시 찾지 않고 편지를 쓴 것은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이지 그 반대가 아니었다(고후 2:4). 가슴 아픈 방문을 경험한 직후 또다시 찾아간다면 기대했던 기쁨은커녕 고통만 더했을 것이다(고후 1:24; 2:3). 선한 의도가 얼마나 쉽게 오해되는가!
나의 삶 속으로: 오해를 무릅쓰며 자신이 감행하는 일이 사랑 때문인지 욕심 때문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직접 만나기보다 편지나 문자가 더 나을 때는 언제인가요?
<부가설명> 사람이 속는 것은 스스로 속는 것이다. 속는 이유는 거의가 자기도 의식하지 못하는 욕심 때문이다. 순수하다면 속을 이유도 속을 필요도 없다. 사탄은 사람 마음에 감추어진 욕심을 끌어내는데 명수다. 증언의 말씀에는 사탄은 사람의 마음을 스스로 알지 못한다고 했다. 어떤 경로든지 그것이 눈곱만큼이라도 드러나면 사탄은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다. 사람의 언어는 자기 속을 드러내는 도구다. 진담으로나, 농담으로나, 장난으로도 속이 드러난다. 그렇게 드러나게 때문에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탄은 그런 것을 노린다. 그래서 성경은 마귀가 틈타지 못하게 하라고 경고했다(엡4:27). 그것이 말로 표현이 안 되고 생각만 했어도 사탄은 잡아내고 틈을 만든다. 성경은 지킬만한 것 보다 더욱 마음을 지키라고 했다(잠4:23). 우리는 마음을 주님께 맡기고(잠23:26), 모든 생각을 예수님께 굴복하여 땅의 것을 생각하지 않고 위엣 것을 생각하는 믿음으로 사랑인지 욕심인지가 제절로 구분되는 인격을 이루면 얼마나 좋을까?
8월 26일(수) 용서 그리고 사랑의 재확인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재방문하지 않고 에베소로 돌아온 뒤 편지를 보냈다. 이른바 ‘엄중한 서신’으로 알려진 편지다(참조, 고후 2:3, 4; 7:8, 12).
고린도후서 7장 5-13절을 읽어 보라. 그가 편지를 보낸 결과는 어땠는가? 그 결과에 바울은 어떻게 반응했나?
[고후7:5~13]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 6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7 그가 온 것뿐 아니요 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고함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8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9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12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그 불의를 행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그 불의를 당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오직 우리를 위한 너희의 간절함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나타나게 하려 함이로라 13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위로를 받았고 우리가 받은 위로 위에 디도의 기쁨으로 우리가 더욱 많이 기뻐함은 그의 마음이 너희 무리로 말미암아 안심함을 얻었음이라.
*답: 그들이 회개했고 바울은 위로받고 기뻐했다.
바울과 디도는 나중에 마케도니아에서 만났고 거기서 바울은 자신의 단호한 말이 긍정적인 결과를 일으켰다는 반가운 소식을 그에게 들었다. 사도의 마음은 기쁨으로 벅차올랐다. 전에 고린도 교인 일부가 바울을 반대했다면 이제는 교회가 그와 한편이 되었다. 우리 지도자들을 지지하는 일은 참으로 중요하다. 교인으로서 우리는 그들의 일을 훨씬 수월하게 해 줄 수 있다.
고린도후서 2장 5-11절을 읽어 보라. 여기서 중심 사상은 무엇인가?
[고후2:5~11] 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지라도 나를 근심하게 한 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 너희 모두를 근심하게 한 것이니 어느 정도라 함은 내가 너무 지나치게 말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6 이러한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서 벌받는 것이 마땅하도다 7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8 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그들에게 나타내라 9 너희가 범사에 순종하는지 그 증거를 알고자 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10 너희가 무슨 일에든지 누구를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11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답: 교회의 징계하는 정신과 의도를 분명히 나타낸 말씀이다. 징계는 하나님 앞에 회복시키는 것이 목적이고 용서와 사랑을 확인하는 것이다. 용서하지 않는 것은 사탄의 계책에 넘어가는 것이다.
이 본문은 교회의 징계에 관한 것이다. 징계의 대상이 근친상간을 저지른 고린도전서 5장 1-5절의 남자인지 아니면 바울의 여행 계획 변경을 변덕스럽고 무책임한 처사로 내몰도록 교인들을 선동한 사람인지는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문맥상으로는 후자가 더 그럴듯하다. 어쨌든 여기서 중요한 교훈은 죄지은 사람을 교회가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이다.
본문에서는 교회가 징계하는 목적이 용서와 사랑을 재확인하여 죄인을 회복시키는 데 있다고 가르친다(고후 2:6-8, 10). 또 교회의 징계는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필요하다고 본문은 암시한다.
‘은혜’를 내세워 좋게 해결하려다가 노골적이고 공개적인 죄마저 단호하게 처리하지 않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어떤 교회는 너무 엄격하고 완고하고 가혹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죄는 처리해야 하지만 사랑으로 다루어야 한다. 죄를 범한 자에게 교회가 사랑을 나타내야 한다고 바울이 권면할 수 있었던 이유는(8절) 그 자신이 교회를 사랑했기 때문이다(4절).
나의 삶 속으로: 고린도 교회가 잘못을 저지른 자를 사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울의 사랑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고후 2:8). 여기서 사랑에 관하여 무엇을 배울 수 있나요? 원칙을 지키면서도 사랑으로 대하려면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할까요?
<부가설명>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원칙이다. 인간 감성적인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원칙 안에 감성도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원칙은 변경할 수 없다. 예수님은 말세가 가까워지면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는다고 하셨다(마24:12). 이 말씀으로 보면 사랑 과 하나님의 법은 동일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한 것이다(롬13:10). 계시록의 일곱교회 중에 두아디라교회에 네 사업과 사랑과 섬김을 안다고 하셨다(계2:19). 원칙 없는 사랑으로 두아디라교회는 이세벨을 용납했다. 두아디라교회는 사랑이 하나님의 율법인 것을 몰랐던 것 같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8장에서 간음 현장에서 잡혀온 여자에게 용서하시고 다시는 죄를 짓지말라고 하셨다(요8:10). 죄인을 취급하는 원리가 거기 있지 않은가? 교회에서 징계할 때 이런 정신이 주장해야 할 것이다.
8월 27일(목)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승리
고린도후서 2장 12, 13절을 읽어 보라. 바울은 ‘엄중한 서신’을 고린도에 보낸 뒤 어디로 갔는가? 거기서 무엇을 했는가?
[고후2:12,13]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13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하지 못하여 그들을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답: 드로아를 거쳐 마게도니아로 갔다.
디도를 기다리는 동안 바울은 마음이 무거웠다(고후 7:5, 6). 그럼에도 그는 끊임없이 예수에 관해 이야기했다(고후 2:12). 그는 예수님을 무척 사랑했다. 그때까지 그는 자신이 보낸 편지의 결과를 알지 못했다. 그는 디도를 만나 고린도 교인들의 반응에 대해 듣고 싶었다.
바울의 드로아 사역은 성공적이었지만 “그는 거기 오래 머물 수 없었다. ‘모든 교회를 위한 염려’ 특히 고린도 교회 문제가 그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 까닭이었다. 그는 드로아에서 디도를 만나 고린도 형제들에게 보낸 권고와 책망의 말이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를 듣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 경험에 대해 그는 ‘내 형제 디도가 나타나지 않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기록했다. 그래서 그는 드로아를 떠나 마케도니아로 건너갔고 빌립보에서 디모데를 만났다”(사도행적, 323).
고린도후서 2장 14-17절을 읽어 보라. 고린도 교인들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는 말을 디도에게 듣고 나서 바울은 어떻게 반응했는가?
[고후2:14~17]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5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16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17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답: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와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낸 것을 기뻐했다.
바울은 기쁨에 겨워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신다고 힘주어 말한다(고후 2:14). 이 얼마나 놀라운 진술인가! 마음이 그리스도의 임재로 가득하면 우리는 “어디서나…그분을 아는 지식의 향기를” 풍기게 된다(14절, 쉬운).
고통스러운 편지가 의도한 결실을 거두었기에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했다(고후 7:5-9). 이것은 위대한 승리였다. 한편 고린도후서 2장 17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자신의 진실성을 재차 밝힌다(고후 2:17; 1:12). 그리스도의 신실한 종과 거짓 사역자의 차이점을 이 구절에서 알 수 있다. 거짓 사역자는 자기 이익을 위해 복음을 팔아먹지만 신실한 종은 그리스도를 사랑하기에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나의 삶 속으로: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은 어떤 동기에서 비롯한 것입니까? 예수님의 이름을 내세우면서 하는 일은 그 동기가 어떠해야 할까요?
<부가설명> 예수님은 삯꾼에 관해서 말씀하셨다. 그들은 돈을 위해 일한다. 기대한 자기 이익 없으면 다른 곳을 찾아간다. 진정한 주님의 일꾼은 진리와 복음 증거 자체를 위해 충성한다. 오늘날 우리 교회에 이 정신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나는 목회에 대한 철학이 있다. ‘목회는 성공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께 충성하는 것이다.’ 성공 여부는 주인 되시는 주님께서 인도하실 것이다. 사람의 눈으로 성공 실패 여부를 논한다고 해도 우쭐대지도 않고 주눅이 들지도 말고 맡은 일에 주님 뜻을 따라 충성하면 주께서 인도하실 것이다. 이런 사상을 가진다면 무슨 직분을 얻으려고 애쓰지 않을 것이고, 주님이 맡겨주시는 일에 묵묵히 충성할 것이다. 마지막 시대 주님의 종들은 묵묵히 충성하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한다.
8월 28일(금) 더 깊은 묵상을 위해
『사도행적』 제31장 ‘기별에 유의함’(323-334)을 읽어 보라.
“큰 슬픔을 이겨 낸 자들이 다른 이들을 가장 잘 위로하고, 어디를 가나 밝은 빛을 비추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들은 고난을 겪으면서 부드럽고 매력적인 사람이 되었다. 역경이 엄습할 때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오히려 주님의 보호와 사랑을 더 간절히 붙잡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상한 보살핌을 증명하는 산 증인이다.
…성별된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항상 빛과 위로와 평화가 흘러넘친다. 순결, 기지, 단순함, 유용성이 그러한 삶의 특징이다. 거룩한 영향력을 자아내는 사심 없는 사랑이 그 삶을 지배한다. 그런 삶은 그리스도로 충만하며 그는 어디로 가든지 빛의 자취를 남긴다”(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122).
“사도 바울은 교회의 잘못을 견책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수를 꾸짖을 때는 자제력을 잃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하는 이유를 조심스럽게 설명한다. 자신이 실수하는 이들의 친구라는 인상을 남기고자 얼마나 세심하게 행동했던가! 그는 그들이 고통스러운 만큼 자기도 고통스럽다는 점을 일깨워 주었다. 그들의 유익이 곧 자신의 유익이라는 인상을 심어 주었다”(화잇 주석, 고후 2:4).
함께 나누기
1. 고린도후서 2장 1-14절에서 바울은 사역에 대한 자신의 진실성을 드러낸다. 왜 이것이 사역의 필수 요소인가?
*답: 교인이나 전도의 대상이나 똑같이 전도자의 진실성이 그의 믿음의 주님의 지실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2. 바울의 여행 계획 변경에서 그리스도인 사역의 융통성에 관해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필요에 따라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답: 전도 여행은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야 한다. 바울이 마게도니아로 간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바울은 성령님 음성을 유의해서 들었다.
3. 바울은 사역하면서 괴로움과 불안을 겪었다. 교회 지도자들 역시 고통을 느끼는 인간이다. 어떻게 그들을 도울 수 있을까?
*답: 기도와 격려로 도와야 한다. 그들도 사람이라서 실수할 수 있다. 기도로 성령께서 그들을 고쳐주시도록 기도하자.
4. 바울은 자신의 초조함에 대해 언급하고 나서 곧바로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승리를 이야기한다(고후 2:13, 14). 어떻게 그는 자신의 약점과 강점을 동시에 말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도 그럴 수 있을까?
*답: 중요한 것은 말씀에 자아가 굴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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