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과 사랑의 본모습(질문, 대답, 설명) 08/15/26 > 교과토의 자료

본문 바로가기

운영진
x


교과토의 자료 보기

교과토의 자료

제7과 사랑의 본모습(질문, 대답, 설명) 08/15/26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6-08-07 09:51 조회42회 댓글0건

본문

제7과 사랑의 본모습

(8월 15일 안식일/일몰 오후 7시 25분)

 

기억절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

 

● 연구 범위 - 고전 13장; 마 24:12; 갈 5:22, 23; 딤전 1:14; 요일 4:8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 바울이 사랑에 대해 할 말이 많은 이유가 그 때문이다. 신약 성경에서 사랑을 뜻하는 가장 흔한 용어인 ‘아가파오’의 동족어가 그의 서신에서는 135회나 등장한다. 신약 성경 용례의 절반에 가까운 수치이다. 이것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핵심 주제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신약에는 사랑에 관한 뛰어난 구절이 많지만(롬 8:35-39; 고전 2:9; 8:3; 갈 2:20; 골 1:13; 살전 3:12) 그 무엇도 고린도전서 13장과는 견줄 수 없다.

 지난주에는 사랑이 없으면 모든 것, 심지어 영적인 은사도 무가치하다고 배웠다. 이번 주에는 고린도전서 13장에 아름답게 묘사된 사랑의 본모습을 더 깊이 살펴보겠다.

 사랑이란 감정이라기보다 삶과 행동과 말에서 드러나는 태도이다. 그렇지 않다면 사랑은 아무 의미가 없다.

 사랑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표현되는지는 예수의 생애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말씀 속으로

“1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3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4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1-7)

 

토의 질문

1. 갚을 수 없는 사랑이 있다면 무엇입니까?*답: 예수님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의 사랑이다.

2. 세상의 사랑과 아가페 사랑은 어떻게 다른가요?

*답: 세상 사랑은 도덕적, 윤리적, 감성적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생명을 주는 것이다.

3. 사랑은 왜 느낌이나 감정보다 행동인가요?

*답: 생명은 행동하게 되기 때문이다. 행동 없는 사랑은 생명이 아니다.

4. 사랑에 관한 고린도전서 13장의 진술에서 어떤 부분이 가장 와닿습니까?

*답: 사랑은 언제까지 떨어지지 않는다. 

 

핵심 교훈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품성이다. 참된 사랑은 오래 참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며 끝까지 믿고 바라며 견딘다. 교회와 성도의 삶은 이런 사랑으로 견실해지며 그 사랑으로만 분열과 상처가 치유되고 사람이 변화된다.

 

8월 9일(일) 사랑의 본질

 

 지난주에는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았다. 여기서 바울이 사용한 표현을 더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린도전서 13장을 읽고 사랑을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요약해 보라.

 

 바울은 방언(1절), 예언, 깨달음, 지식, 믿음(2절), 선행(3절)이 쓸모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이 은사들도 사랑으로 행하지 않으면 쓸모없다는 것이다.

 바울이 말하는 사랑이란 ‘나는 딸기를 사랑해.’ ‘내 친구를 사랑해.’ 심지어 ‘내 배우자와 아이들을 사랑해.’라는 말에 담긴 사랑과 다르다.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종류의 사랑도 아니다. 이 본문이 결혼식 주례에서 자주 인용되기는 하지만 바울은 여기서 이성 간의 이끌림을 말한 것도 아니다.

 이 사랑은 애정, 자선, 선행, 자비 등으로 축소될 수 없다. 그러면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 모든 것을 아우른다. 이 사랑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특별한 은사이다. 사실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이란 애정, 자선, 선행, 자비를 펼치도록 성령께서 불어넣어 주시는 동기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이웃을 향해 우리의 행동, 감정, 생각을 쏟아붓는 전적인 헌신이다.

 

마태복음 24장 12절을 읽어 보라. 예수는 무엇을 경고하시는가?

[마24: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답: 불법이 성하면 사랑이 식어진다고 경도하셨다. 

 

 ‘아가페’ 사랑이 본질적이고 필수적인 이유가 여기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가정, 교회, 이웃에서 사랑이 식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모본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이시다. 이 사랑을 이보다 더 뛰어나고 강력하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절대로 그만큼 이 사랑을 표현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있는 힘껏 이 사랑을 삶에서 드러내야 한다.

 

나의 삶 속으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느꼈던 경험이 있나요? 사람들을 지금보다 더 사랑해야 한다면 그 사랑은 어떤 식으로 표현되어야 할까요?

<부가설명> 성경은 불법이 성하므로 사랑이 식는다고 했다. 이 말씀은 사랑은 합법이라는 말이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다. 합법이라고 하면 그것은 삶의 원칙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이 계시한 사랑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면 관념적으로 이해한다. 구체적이지 못하고 추상적이다. 말을 바꾸면 하나님의 형상을 진짜로는 모르는 것이다. 교리로 이해하고 성경이 말씀했으니 받아 믿는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살피면 하나님의 형상은 그분의 자존성(自存性)이다. 이것을 이름이라고 하시며 말씀하신 이름이 ‘여호와’다. 성경의 하나님의 형상은 ‘여호와’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어떻게 그런가? 그분은 생명 자체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생명성(生命性)이다. 내가 깨달은 것은 이렇다. 자존하신다는 말씀과 생명 자체라는 말은 같은 뜻이다. 그래서 그분에게는 사망이 없다. 성경은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딤전6:16)라고 계시했다. 이 생명은 창조하신 피조물에게 사랑으로 나타난다. 이 사랑은 하나님의 본성이다. 말을 바꾸면 하나님 생명이 나타나는 모습이 사랑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어서 생명을 얻었으면 그는 사랑이 생활화하게 된다.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요일3:14). 이 말씀은 예수님을 믿어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들어간 사람은 사랑으로 그것이 증명된다는 말씀이다. 사랑이 생활화하지 않았으면 그는 사망의 존재라고 했다. 그러니까 성경의 사랑은 생명이고 생명 없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려는 정신과 삶이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예수님을 통하여 대신 죽어주기까지 하면서 아담 자손들을 사망에서 영생의 생명으로 옮기신 것으로 증명했다(롬5:8). 우리는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하면서 그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고 말만 한다. 이 정신이 없는 정서적 윤리적 사랑은 도덕적 정서적 사랑인지는 몰라도 유익이 없는 사랑이다(고전13:1~3). 고전 13장은 이 사랑을 계시한 말씀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다(요일4:8). 이런 정신이 없는 믿음은 불법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을 알고 있는지? 

 

8월 10일(월) 사랑이란 어떻게 하는 것인가?

 

 고린도전서 13장의 핵심은 4-7절이다. 바울은 사랑의 특징에 초점을 맞추면서 사랑이란 무엇이며 무엇이 아닌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는지를 알려 준다. 그는 사랑을 의인화하여 성령께서 주신 사랑으로 가득한 사람은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여 준다. 바울은 여러 가지 동사를 사용해 사랑을 묘사한다. 그에게 사랑이란 감정이나 느낌보다는 행동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사랑인가?

1. 오래 참고(마크로튀메오). ‘마크로튀메오’란 힘겨운 상황에서도 인내를 보여 준다는 뜻이다. 인내는 또한 서로를 용납하는 능력을 강조한다(엡 4:2).

 

2. 온유하며(크레스튜오마이). ‘크레스튜오마이’라는 말은 신약 성경에서 여기에만 나오지만 어근이 같은 다른 말은 곳곳에서 자주 사용된다. 구약 성경을 그리스어로 옮긴 『칠십인역』 시편에는 같은 어근에서 파생한 말이 여러 번 등장하는데 하나님의 긍휼과 관련된 그분의 친절함을 뜻한다(시 145:9). ‘사랑은 온유하다’는 바울의 말은 타인을 향한 사랑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깃들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3.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싱카이로). ‘싱카이로’란 다른 사람과 함께 기뻐할 줄 아는 능력을 가리킨다(눅 1:58; 15:6, 9; 고전 12:26; 빌 2:17, 18).

 

4. 모든 것을 참으며(스테고). ‘스테고’가 ‘덮다.’ 즉 무언가를 비밀로 한다는 뜻인지(보호한다는 의미까지 포함) 아니면 탄력성 있게 ‘버티다.’라는 뜻인지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갈린다. 이 단어가 고린도전서 9장 12절에서는 인내를 뜻하므로 해석자들과 성경 번역가 대부분은 두 번째 의미를 선호한다.

 

5. 모든 것을 믿으며(피스튜오). ‘피스튜오’는 ‘믿음’을 뜻하는 그리스어 ‘피스티스’와 어근이 같다. 고린도전서 13장의 문맥상 ‘모든 것을 믿는다’는 것은 서로를 좋은 쪽으로 해석한다는 뜻이다.

 

6. 모든 것을 바라며(엘피조). 신약 성경에서 언제나 동사 ‘엘피조’는 무언가 좋은 일이 일어나리라는 믿음이나 기대를 뜻한다.

 

7.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휘포메노). 고린도전서 13장 7절의 동사 ‘스테고’와 ‘휘포메노’는 서로 동의어이다. 둘 다 역경을 참고 견딘다는 뜻이다. 바울은 ‘스테고’의 중복을 피하고자 문장 끝에는 ‘휘포메노’를 사용했다. 그는 두 단어로 같은 뜻을 반복하면서 믿음과 소망을 강조하고 있다. 사랑은 믿음과 소망으로 인내하는 것이다.

 

나의 삶 속으로: 고린도전서 13장 4-7절과 갈라디아서 5장 22, 23절을 비교해 보십시오. 두 구절의 공통점은 무엇인가요?

<부가설명> 고전13:4~7]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갈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이 말씀에서 ‘열매’라는 말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것은 열매다. 이 열매는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그 생명의 열매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빛의 열매라고(엡5:9) 표현했다. 열매다. 또 의의 열매라는 표현도 있다(고후9:10, 빌1:11, 약3:18). 열매라는 말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이 열매들은 예수님의 생명, 여호와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사람들의 생명의 결과물들이다. 그래서 열매라고 한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진정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을 때 그 생명이 맺는 열매다.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고 이 생명을 사람들의 빛이다. 그래서 빛의 열매, 의의 열매 성령의 열매는 다 여호와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성도들의 열매들이다. 아멘.

 

8월 11일(화) 사랑이란 어떻게 하지 않는 것인가?

 

 고린도전서 13장 4-7절을 다시 읽어보라. 왜 바울은 사랑의 특징을 긍정문뿐 아니라 부정문으로도 함께 서술했는가?

[고전13:4~7]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어제 우리는 사랑할 때 하는 일곱 가지를 살폈다. 오늘은 사랑할 때 하지 않는 여덟 가지를 생각해 보자.

 

1. 시기하지(젤로) 아니하며. ‘젤로’는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젤로)”(고전 12:31),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젤로)”(14:1), “예언하기를 사모하며(젤로)”(14:39)에서처럼 긍정적인 뜻으로도 사용된다. 그러나 여기서는 사도행전 7장 9절처럼 부정적인 뜻이다. 영적 은사를 사모하는 것은 좋지만 은사가 있는 사람을 시샘하는 것은 나쁘다. 시기는 분열을 일으킨다(고전 3:3).

 

2. 자랑하지(페르페류오마이) 아니하며. 동사 ‘페르페류오마이’는 허영심과 남에게 칭찬받으려는 욕망을 뜻한다. 그러나 사랑은 자기중심적이지 않다. 이는 다음 항목에서 더 명확해진다.

 

3. 교만하지(퓌시오) 아니하며. 동사 ‘퓌시오’는 바울의 유명한 진술인 고린도전서 8장 1절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에 등장한다. 이것은 거들먹거리는 사람을 말한다.

 

4. 무례히 행하지(아스케모네오) 아니하며. 동사 ‘아스케모네오’는 여러 가지 뜻을 지니지만 대체로 사회적·도덕적 기준에 어긋난 버릇없고 민망하고 추하고 경박한 행동을 의미한다. 바울 역시 고린도 교회의 ‘약한’ 교인들에 대한 ‘강한 자들’의 거만하고 조심성 없는 행동을 가리켜 이 말을 사용한다(고전 4:10; 고전 8장)

 

5.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제테오) 아니하며. 이것은 ‘누구든 자기의 권리가 아니라 타인의 권리를 구하라’(필자 직역)는 고린도전서 10장 24절과 비슷한 말이다. 사랑이란 타인을 위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다(제5과 참조). 서로 상대의 권리를 구하는 환경은 모두에게 유익하다.

 

6. 성내지(파록쉬노) 아니하며. 감정이 격해지는 상태를 뜻하는 동사 ‘파록쉬노’는 쉽게 화내는 사람을 가리킨다. 즉 사랑은 성마르고 과민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7. 악한 것을 생각하지(로기조마이) 아니하며. 여기서 동사 ‘로기조마이’는 회계 장부를 기록한다는 의미로 사용됐는데 사랑은 남의 잘못을 거듭거듭 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사랑은 용서다.

 

8. 불의를 기뻐하지(카이로) 아니하며. 사랑은 남의 잘못을 마음에 담아 두지 않으며 그 잘못에 손뼉을 치지도 않는다. 진심으로 타인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그의 실수를 통쾌히 여기지 않고 오히려 그를 도와주려 할 것이다.

 

나의 삶 속으로: 고린도전서 13장 4-7절에 소개된 ‘하지 말아야 할’ 8가지 항목 중 무엇이 가장 와닿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우리는 무엇을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까요?

 

<부가설명> 바울은 로마 13장에서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13:10)라고 말한다. 소극적인 표현으로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않는 것이다. 악은 도덕적 악행도 포함되는 것은 당연하다. 가장 핵심을 이웃이 예수님을 믿을 수 없도록 하는 것이 성경이 지적하는 가장 강한 악행이다. 이웃에 있는 불신자에게 불친절하거나, 속상하게 하거나, 손해를 끼치거나 이런 삶의 태도는 이웃이 예수님을 오해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이것은 보기에는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크게 나무랄만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이 이웃이 예수님을 믿는데 방해가 되었다면 이웃에게 악을 행한 것이다. 사람을 죽게 하는 것이 악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막3:4). 영생의 생명의 기를 막는 것 이상으로 악한 것이 없다. 

 

8월 12일(수) 예수의 초상화

 

 고린도전서 13장 4-7절을 읽다 보면 사랑의 이 모든 특징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바울 역시 고린도전서 13장을 기록하면서 예수님의 성품을 생각했을 것이다. 사랑의 이 모든 특성을 온전히 드러내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다. 그런 면에서 바울이 그린 사랑의 묘사는 결국 예수의 초상화이다.

 

다음의 성경절들을 읽어 보라.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요13:1,34]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15:9,12]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딤전1: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딤후1:7,13]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14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요일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요일4:7~12,19~21]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답: 이상의 말씀들은 고전13장에 기록된 사랑의 성질들을 예수께서 친히 실천하신 것을 기록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일 4:8). 그분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여 독생자를 주셨다(요 3:16). 예수는 이 사랑을 남김없이 드러내신 분이다(히 1:3). 사랑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알고 싶다면 우리는 예수를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신약에 묘사된 예수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고린도전서 13장에 소개된 사랑의 특징이 그분 안에 모두 담겨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예수는 오래 참으신다.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마크로튀미아)을 보이사”(딤전 1:16).

 

예수는 온유하시다. 성경은 “주의 인자하심”(벧전 2:3)을 말한다. 여기서 “주”는 예수를 가리킨다. “인자하심”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크레스토스’는 고린도전서 13장 4절에 언급된 동사 ‘크레스튜오마이(친절을 베풀다.)와 어근이 같다.

 

예수는 진리와 함께 기뻐하신다. 예수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면서 또 자기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느끼면서 기뻐하셨다(요 15:9-11; 17:12-14).

 

예수는 모든 것을 참고 견디신다. 히브리서 12장 2, 3절에서는 예수가 “십자가를 참으사…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분이라고 말한다. 예수처럼 참은 이는 아무도 없다(빌 2:8). 그분은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해 견디셨다.

 

예수는 모든 것을 믿으신다. 아나니아가 바울의 회심에 의문을 품었을 때(행 9:13, 14) 예수께서는 “이 사람은…내가 택한 그릇”(15절, 바른)이라고 대답하셨다. 예수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실 뿐 아니라 자신을 힘입어 어떻게 될지도 내다보신다.

 

나의 삶 속으로: 그 외에도 예수님은 또 어떤 방식으로 사랑의 본모습을 보여 주시나요? 예수님의 사랑에서 특히 본받고 싶은 점은 무엇입니까?

 

<부가설명> 교과 저자가 열거한 내용들은 사랑이 생활로 드러나는 모습이다. 이 모든 모습은 하나님 생명이 작동하는 상태들이다. 그래서 요한은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 사망에 머물러 있는 상태라고 분명히 기록했다(요일3:14). 그리고 16절에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심으로 우리가 사랑을 알았다고 기록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과 그분의 사랑은 동일한 것이다. 예수님이 죽으신 것은 사망을 처리하시는 과정이었다. 부활하신 것은 죽지 않는 생명을 드러내는 것이었다(눅20:35,36).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딤후1:10). 예수님은 생명 자체시다. 그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셨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 하셨다. 그분의 이 생명이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모습이 사랑이다. 우리가 거듭나서 예수님의 이 생명으로 출생하면 이 생명이 우리를 사랑으로 살게 하신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그래서 교과 저자는 고전 13장을 예수님의 초상화라고 했다.

 

8월 13일(목) 믿음, 소망, 사랑

 

 지금까지 우리는 사랑이란 오래 참고, 온유하며, 기뻐하며, 회복 탄력성이 있으며, 믿으며, 바라며, 견디는 것임을 배웠다.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이 되시기 때문이다. 이런 특성이 예수 안에 모두 담겨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다음 단계는 그분을 본받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그러기를 바랐다. 사랑에 관한 8가지 부정문에서 ‘아니하며’를 제거한 상태야말로 “고린도 교인들의 행실을 적절히 묘사하고 있다. 시기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무례히 행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며, 쉽게 성내며, 남의 잘못을 따지는 것이다. 바울은 이 동사들을 고린도 교회의 상황에 맞추어 적용하고 있다”(벌린 D. 베르브뤼허, ‘고린도전서’, 『엑스포지터스 성경 연구 주석』, 372).

 고린도 교인들은 배워야 할 게 많았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사랑이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는 것인지를 설명한 뒤 바울은 참된 사랑의 실천을 북돋고자 사랑의 영속성을 강조하며 이 단락을 마무리한다.

 언젠가 예언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한 가지 언어로만 말하게 될 것이고 인간의 허술한 지식은 하나님에 관한 새로운 지식으로 대체될 것이다(고전 13:12). 성령의 은사는 그 목적을 다 이룬 다음에는 사라진다(10절). 그러나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한다(8절).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믿음은 직접 “보는 것”(고후 5:7)으로 대체되며 오랫동안 소망했던 것은 실현된다(롬 8:24). 그러나 사랑은 우리 삼위 하나님의 품성을 나타내며 영원히 존재한다. 어떤 면에서는 믿음과 소망도 영속적이다. 영원히 구속받은 자들에게 믿음은 구원의 경험으로(롬 4:3), 소망은 새 땅에서 얻는 새로운 희열과 지식에 대한 갈망과 기대로 이어진다. 그러나 사랑 곧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히 존재한다.

 잠시 뒤 우리는 얼굴을 맞대고 우리 주님을 볼 것이다(고전 13:12). 그날까지 우리는 믿음, 소망, 사랑을 삶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이 세 가지는 성령에 힘입은 그리스도인의 온전한 삶을 상징한다. 이 세 가지가 성경에 자주 언급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롬 5:1-5; 갈 5:5, 6; 엡 1:15, 18; 4:1-5).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결국은 사랑이야말로 하나님 자신의 본성을 설명해 주는 유일한 덕목이다(요일 4:8).

 

나의 삶 속으로: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말을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하면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까요? 설령 부분적으로만 이해한다 해도 왜 이 말은 우리에게 그토록 기쁜 소식인가요?

 

<부가설명> 사람들은 사랑에 관한 설명으로 고전 13장 보다 잘 된 글은 없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사랑을 논할 수 있도록 사랑의 본질을 알고 있을까? 생명이 무엇인지 모르는 만큼 사랑이 무엇인지 모른다. 고전 13:3에는 몸을 불사르도록 내어준다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고 했다.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는 것 자체를 지고한 사랑으로 여기는데, 그런 행동도 사랑이 없을 수 있다고 한 것이다. 나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많이 생각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로마5:8,10에 계시한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은 독생자를 죽게 하시므로 사랑을 확증하셨다. 또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독생자의 죽음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했다고 했다. 사랑은 화목의 줄이다.롬5:11의 화목을 kjv는 atonement라고 번역했다. 우리말로 구속이라고 번역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것을 분석해서 at one ment 라하고 하나됨이라고 설명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류가 하나님과 하나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생명을 얻어야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출생해야 한다(요1:12,13). 하나님과 하나되어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도록 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고 이 사랑을 나타내는 신자들의 삶이 다른 사람도 하나님의 생명을 얻어 하나님과 하나되도록 하는 것이 이 사랑을 나타내는 삶이다. 사랑은 이웃을 해롭게 하지 않고 이웃에게 생명력을 풍성히 얻도록 하는 삶이다. 

 

8월 14일(금) 더 깊은 묵상을 위해

 

『리뷰 앤드 헤럴드』 1888년 8월 28일 자 ‘사랑의 필요성’을 읽어 보라.

 “아무리 신앙을 내세워도 하나님과 동료를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아니다. 믿음을 지녔고 기적을 행할 능력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그 믿음은 쓸모없다. 큰 아량을 베푼다 해도 참된 사랑이 아닌 다른 의도에서 자신의 모든 소유를 나누어 가난한 이들에게 먹을 것을 준다면 그 행동으로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한다. 지나친 열성으로 순교자의 죽음을 맞이한다 해도 사랑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께 그는 착각에 빠진 광신자나 야심 가득한 위선자일 뿐이다”(사도행적, 318, 319).

 “설교는 이미 충분하다. 가장 필요한 것은…죽어 가는 영혼을 위한 사랑, 하나님의 보좌에서 풍성하게 흘러오는 사랑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존재 전체에서 사랑이 흘러나온다. 이것은 두뇌, 마음, 섬기는 손과 발 등 중요한 모든 부분에 영향을 주고,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지점에 굳게 서서 발걸음이 치우치지 않게 하며 절룩거리는 이들이 길을 잃지 않게 한다. 죽어 가는 영혼을 위한 그리스도의 불타오르는 사랑이 기독교 전체의 생명이다”(주님을 첫째로 높이자, 134).

 “오직 그리스도의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사랑만이 치유할 수 있다. 나무의 수액이나 체내의 혈액처럼 사랑이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사람만이 상한 심령을 회복시킬 수 있다”(교육, 114).

 

함께 나누기

1. 사랑의 긍정적 특성에 관한 바울의 목록이 완벽하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라면 어떤 항목을 추가하겠는가?

*답: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않는다(롬13:10). 추가가 아니라 종합인데 소극적 표현이다.

2. ‘사랑을 추구하라’(고전 14:1)는 바울의 말은 무엇을 뜻한다고 생각하는가? 이것은 고린도전서 13장 4-7절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답: 사랑은 온전하게 매는 띠다(골3:14).

3. 사랑의 특성들 중 나의 삶에서 무엇보다 실천해야 할 항목은 무엇인가? 우리 교회에서는? 그런데 바울은 왜 사랑을 예언, 방언, 지식 같은 은사들과 비교하는가?(고전 13:8)

*답: 고린도 교인들이 이런 은사를 받았다고 자랑하면서 서로 싸웠다. 그래서 영원한 사랑으로 연합하라고 한 것이 아니겠는가?

4.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분열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책이 사랑이라고 암시한다. 왜 그런가? 오늘날 우리 교회에는 어떻게 적용되는가?

*답: 사랑은 온전히 매는 띠라서 그렇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대총회 북아태지회 한국연합회 성경통신학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한국연합회 선교부 | 고유번호증번호: 204-82-62040 | 대표자: 남수명 | 부서장: 채영석
Copyright © 2014 안식일학교·선교부 All rights reserved.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