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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과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질문, 대답, 설명) 08/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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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6-07-24 06:53 조회1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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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과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8월 1일 안식일/일몰 오후 7시 41분)

 

기억절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 연구 범위 - 고전 8장; 행 15:20; 고전 9:1-6; 10:5-22; 신 6:4, 5; 막 12:28-31

 

 고린도전서 8-10장에서는 성 문제(5-6장)를 마무리하는 동시에 고린도 교인들이 편지로 제기한 특정 질문들(고전 7:1)에 대한 바울의 답변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 답변이 고린도전서의 나머지 부분을 이끈다.

 고린도전서 7장은 화제가 전환되는 지점으로 음행(5-7장)과 우상 숭배(8-10장)가 서로 연관된 문제임을 보여 준다. 실제로 두 문제는 신약에서 함께 언급될 때가 많다(행 15:20, 29; 21:25; 고전 6:9; 엡 5:5; 골 3:5; 계 21:8; 22:15).

 고린도전서 5-7장에서 바울은 음행 문제를 다루고 8-10장에서는 우상 숭배 문제를 주로 다룬다(고전 6:18; 10:14).

 지난주 우리는 ‘성령의 전’이 되어야 음행을 피할 수 있다고 배웠다. 이번 주에는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고전 10:31) 할 때 우상 숭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을 살펴본다.

 

말씀 속으로

 

“4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7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8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 9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10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11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12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13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고전 8:4-13)

 

토의 질문

1. 먹는 문제로 불편을 느꼈던 적이 있습니까?

*답: 각각 대답해보자. 나는 많이 있다. 

2. 바울이 말하는 ‘약한 자’와 ‘강한 자’는 각각 어떤 사람인가요?

*답: 강하다는 것은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이라는 사상으로 우상을 무시하는 믿음의 사람이고 약한 것은 우상의 제물을 먹는 사람을 보고 시험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진짜 강한 믿음은 약한자를 배려하는 믿음의 사랑이다.

3. ‘지식은 교만하게 한다’는 말은 지식이 필요 없다는 뜻인가요?

*답: 지식으로 자아를 드러낼 때 그런 지식은 주님께 굴복해야 한다는 말이다.

4. 그 자체가 나쁘지 않더라도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답: 이웃을 상하게 하는 것이다. 

 

핵심 교훈

그리스도인은 자기 만족이나 우월감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데 지식과 자유를 활용해야 한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과 타인의 유익을 먼저 생각할 때 우상 숭배를 이기고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7월 26일(일) 지식 대 사랑

 

고린도전서 8장 1-13절을 읽어 보라. 바울은 왜 지식을 사랑과 대비하는가? 그 맥락은 무엇이며 그는 무엇을 강조하고 있나?

[고전8:1~13]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2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3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 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5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7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8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 9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13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답: 사랑이 없는 지식은 참 지식이 아니다. 참된 지식은 다른 사람의 생명력을 약하게 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바울은 우상에게 바친 음식과 관련해 더 깊은 문제 곧 타인에 대한 사랑의 결핍을 다룬다(고전 8장). 우상의 음식 문제 때문에 고린도 교회는 두 무리로 나뉘었다. 먼저 다른 신은 존재하지 않으니 무엇이든 먹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다(고전 8:4). 그들은 ‘강한 자’(고전 4:10)로 불린다. 그리고 이들의 행동에 반대하는 이들은 “약한 자”(고전 8:9-12)로 불린다. 바울이 약한 자라고 부른 이유는 그들이 이전의 이교적 삶에서 비롯된 미신적 사고를 완전히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약한 자들은 우상에게 드린 음식을 강한 자들이 먹는 모습을 보면서 기독교에서 우상 숭배를 금하지 않는다고 결론지을 수도 있다. 그래서 바울은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하고자 했다.

 성경에서는 우상에게 바친 음식을 먹는 행동을 매우 부정적으로 본다(행 15:20, 29; 21:25; 계 2:14, 20). 그러나 바울의 어조는 이 구절들만큼 격하지 않다. 그에게 주된 관심사는 지식의 오용으로 빚어지는 교회의 불화였기 때문이다. 바울은 지식 자체를 악하다고 비판하는 게 아니라 교만과 분열을 낳는 종류의 지식을 반대하는 것이다. 사랑이 없는 지식은 참된 지식이 아니다(고전 8:2).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인정받는 사람에게만 참된 지식이 생긴다(3절).

 신명기 6장 4절을 인용해 바울은 신자들에게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고전 8:4-6). 흥미롭게도 바울은 신명기 6장 4, 5절과 동일한 사고방식을 따르고 있다. 신명기에서는 우리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라는 진술 뒤에 “너는…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명령이 이어진다. 바울과 모세 모두에게 사랑이 없는 지식은 무가치하다. 자신의 지식을 확신했던 ‘강한 자’들은 우상에게 바친 음식을 먹어도 아무 해가 없다고 믿었다. 수요일과 목요일 단원에서 살펴보겠지만 바울은 특정한 상황에서는 그 권리를 인정했다. 그러나 그 권리가 ‘약한 자’에게 걸림돌이 될 때는(고전 8:9) 삼가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제력을 발휘해야 한다.

 

나의 삶 속으로: 상대방의 유익을 위해 권리를 양보했던 적이 있습니까? 바울은 사랑 없는 지식은 해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고전 8장). 사랑 없는 지식이 해로울 때는 언제인가요?

<부가설명> 언젠가 부가설명에 쓴 기억이 있는데, 성경이 계시한 사랑이 무엇인가?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했는데, 그 사랑이 무엇인가? 예수께서 주신 새계명이 서로 사랑하라는 것인데 그 사랑이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사람이 사랑을 말하면 감성적인 것이나 감각적인 것을 생각한다. 인정, 동정, 등등이 다 사랑이라는 말에 포함되지 않는가?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은 이런 인간의 차원을 벗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다. 그 독생자를 죽게 하셔서 그를 믿는 사람이 생명을 얻게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 사랑의 본질이다. 결국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지식은 하나님의 사랑을 염두에 둔 말씀이다. 이 사랑은 상대방에게 생명을 주고 생명력을 풍성하게 하려는 정신의 발로다. 이 정신 없는 사랑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사랑이 아니다. 이 사랑이 없는 지식으로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지식도 사랑도 아니고 죄가 된다. 우리는 어떤 사랑을 나타내는가? 어떤 지식을 나타내는가?  

 

7월 27일(월) 사심 없는 사랑

 

고린도전서 9장 1-6절을 읽어 보라. 사랑에서 우러난 자기 부정의 실례를 어떻게 보여 주는가?

[고전9:1~6]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2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3 나를 비판하는 자들에게 변명할 것이 이것이니 4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5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6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답: 바울은 구도자들과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바르게 깨닫도록 하는 방편으로 자기 부정을 드러냈다. 그는 그들을 위하여 자기 권리를 내려놓았다. 

 

 언뜻 보기에 고린도전서 9장에서 바울이 자신의 사도직을 변호하는 내용은 ‘지식 대 사랑’을 논하는 이전 장과 아무 연관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성경은 본래 장절 구분이 없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9장에서 가르치는 내용은 앞장의 내용과 무관한 게 아니다. 사실상 고린도전서 9장은 그리스도와 형제를 향한 사심 없는 사랑의 실제적인 본보기를 제공한다. 사랑을 위해 바울은 자신의 몇 가지 권리를 포기했다.

 “먹고 마실 권리”(고전 9:4). 여기서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은 일반적으로 재정적인 지원을 말한다. 바울은 사도로서 자신이 사역하는 이들에게 물적 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었다. 당대의 다른 종교 지도자들은 대부분 그렇게 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고 천막 만드는 일로 자급자족했다(행 18:3).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고전 9:5). 결혼한 사도일 경우 교회 재정으로 선교 여행에 아내를 동반하도록 허용됐다. 예를 들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안드로니고와 유니아가 선교에 함께한 부부들이다(롬 16:3, 7). 그러나 바울은 독신으로 지냈다(고전 7:8). 그는 결혼하여 아내를 데리고 다니며 둘의 비용을 지원받을 수도 있었다.

 “일하지 아니할 권리”(고전 9:6). 바울과 바나바는 자신들의 선교 사역에 대해 급여를 받을 권리가 있었다(고전 9:4-6). 바울은 천막 만드는 일로 생계를 이었지만(행 18:3) 바나바의 직업이 무엇이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매우 너그러운 사람이었기에(행 4:36, 37) 자급을 감수하려 했다는 점이다.

 고린도전서 9장 7-11절에서 바울은 6절의 논지를 펼치면서 자신과 바나바가 교회에서 생계를 보장받아야 할 타당성을 밝힌다(고전 9:11, 12).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전 9:14)고 친히 말씀하셨다(딤전 5:18 참조). 그럼에도 바울은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했다고 말한다(고전 9:12). 이렇듯 바울은 자신을 자기 부정의 본보기로 제시하면서(고전 9:1-18) 이렇게 하는 이유가 고린도 지역 복음 전파의 유익을 위해서라고 말한다(19-23절).

 

나의 삶 속으로: 주님을 더 효과적으로 증언하기 위해 내려놓는 편이 더 나은 것들은 무엇인가요? 아무런 대가 없이 봉사하는 분들에게 어떻게 고마움을 표할 수 있을까요?

<부가설명> 오지에 가는 선교사들은 편하게 살던 자기 생활을 내려놓았다. 오늘날 우리가 이웃이나 같은 지역에서 전도하는 것이나 전도회를 여는 것과 다르다. 그들은 예수님의 생명을 증거하기 위하여 바울처럼 자기 권리를 내려놓았다. 그들에게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이들의 이런 희생을 올바르게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같은 지역에 살면서 복음을 전할 때 자기 권리와 인간적 주장을 드러내게 한다면 참 사랑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의 죽음이라는 희생으로 드러났다(롬5:8,10). 우리가 그렇게는 못해도 자기 욕심은 내려놓아야 하지 않을까? 교회 안에서도 이런 사랑의 정신이 있다면 다툼이나 편당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바울은 이런 정신을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이라고 기록했다(빌2:3). 성령께서 우리를 주장하셔서 이런 경지까지 이르도록 인도하시기를 기도한다. 

 

7월 28일(화) 과거의 교훈

 

 바울은 자기 부정의 사례로 자신의 경험을 제시한 뒤 우상 숭배 문제를 더 자세히 다룬다. 고린도전서 10장은 어떤 면에서 고린도전서 9장 27절의 확장이라 할 수 있다. 바울은 자신을 단련하는 이유가 자신이 버림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는 고린도 교인들도 자신의 모본을 따르기를 바란다. 그러나 가장 뛰어난 모본은 예수님이시다(고전 11:1).

 

고린도전서 10장 7-11절을 읽어 보라.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어떤 죄를 저질렀는가? 주어진 특권 때문에 그들의 죄는 왜 더 심각해졌는가?

[고전10:7~11]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8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9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10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11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답: 우상숭배, 음행, 하나님 시험 등의 죄를 저질렀다. 그들은 애굽에서 구원받아 홍해에서 침례를 받고 신령한 음식과 신령한 음료를 마시는 특권을 누렸다. 그러나 그들은 죄아게 빠졌다. 

 

 고린도전서 10장 1-5절에서 바울은 광야에 있던 이스라엘의 역사를 언급한다. 구름과 바다의 언급은 하나님의 인도, 임재, 보호를 생각나게 한다. 음식과 음료는 하나님의 공급을 상징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구름 아래서 바다 가운데를 지나간 경험을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침례와 유사한 것으로 언급한다. 또 음식과 음료는 성만찬을 암시한다.

 요컨대 고린도전서 10장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면에서 이스라엘과 같은 경험을 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런데 바울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떠올리는 이유는 그 역사가 그대로 반복되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온갖 특권을 받았음에도 우상 숭배(7절), 음행(8절) 같은 악을 탐하는 사람이 많았다(6절).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고전 10:5). 고대 이스라엘을 손가락질하면서 그들이 엄청난 죄를 저질렀다고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생애를 아는 특권을 얻었음에도 똑같은 죄를 쉽게 저지른다고 지적한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는 경고는 이 점을 명확히 해 준다. “생각하는 자”란 말은 그런 죄에 빠질 위험에 처했는데도 깨닫지 못한 교인들이 있다는 뜻이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이 경고가 얼마나 현실적인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우리 중에 있을까?

 

나의 삶 속으로: 하나님은 감당치 못할 시험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주십니다(고전 10:13). 그런데도 왜 이렇게 죄에 빠지기 쉬운 것일까요? 남을 비난하기 전에 자신부터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부가설명> 야고보는 하나님은 악으로 사람을 시험하시지 않는다고 말했다(약1:13). 사람이 시험을 받은 것은 자기 욕심에 이끌리기 때문이라고 했다(약1:14). 시험의 근원은 하나님이 아니시다. 자기 욕심이다. 우리 욕심이 시험의 근원이기 때문에 이 욕심을 버리면 시험은 없어진다. 경우에 따라 불가항력적인 어려움도 있다. 시험이라고 번역된 말은 ‘페이라조’인데 유혹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이해가 쉽다. 내 욕심에 나를 유혹하고 사탄이 유혹한다. 예수님도 광야 40일 금식 후에 사탄의 유혹을 받았다. 여기도 ‘페이라조’라는 말이다. 시험은 유혹으로 다가온다. 태초에 하와도 유혹을 받아들여서 넘어졌다. 우리가 유혹의 욕심을 따르면 썩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이 된다(엡4:22). 에베소에서 유혹의 욕심을 따라라고 했는데 유혹은 욕심과 연결되어 있다. 욕심을 버리는 것이 시험을 이기는 길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얽매이기 쉬운 죄와 무거운 짐이 있다. 이것을 벗어버리라고 성경은 말한다(히12:1) 욕심을 버리고 빈 마음으로 주님께 굴복하자. 

 

7월 29일(수) 우상 숭배에 대한 경고

 

고린도전서 10장 5-22절을 읽어 보라. 우리는 왜 우상 숭배를 피해야 하나?

[고전10:5~22]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6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7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8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9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10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11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14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15 나는 지혜 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가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 16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17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18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니냐 19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냐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냐 20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21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 22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답: 우상숭배는 귀신을 섬기는 것이다. 귀신 섬기는데는 부수적인 죄들이 따른다. 

 

 고린도전서 10장 14-22절에서 바울은 우상에게 바친 음식 문제를 다시 다룬다. 오늘날 많은 문화에서 우상에게 제물을 바치는 일이 이상해 보일 수도 있지만 성경 시대에는 흔했다. 이방 신전에서 신들에게 드린 제물의 일부는 의식을 집행하는 제사장의 몫으로 돌아갔고 그는 그 고기를 내다 팔았다. 그중 어떤 것은 시장에서 유통됐다. 이 고기를 시장에서 팔리는 다른 고기들과 따로 구별하지 않았으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자기도 모르게 구입할 수 있었다. 이런 고기는 그리스도인이 거리낌없이 구입해도 된다고 사도는 권면한다. 그런데 신전에 바쳐진 제물을 그리스도인이 집에서는 먹을 수 있어도(고전 8:1-13) 이방인의 축제 때 그들의 신전에 찾아가는 것은 명백히 금지됐다. 기준은 분명하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므로(고전 8:4) 그리스도인이 그 고기를 집에서 먹는 것은 허용되지만 그리스도인이 이방인의 의식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귀신 숭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고전 10:20, 21). 성만찬에 참여하는 것이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듯(16절) 이방인의 의식에 참여하는 것은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20절).

 따라서 바울은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고전 10:21)고 말한다. 예수께서도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마 6:24)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온전한 충성을 바라신다고 바울은 가르친다. 우상 숭배는 “주를 질투하시게” 한다고 그는 말한다(고전 10:22, 한글킹).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바울은 고린도전서 8장 4-6절에서 우상 숭배에 대해 확실한 기준 하나를 제시한다. 여기에는 신명기 6장 4, 5절이 암시되어 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신명기 6장 5절에 덧붙여 예수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명하셨다(막 12:31; 레 19:18 참조).

 

나의 삶 속으로: 우리에게는 돌로 만든 조각만이 아니라 무엇이든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삶에서 버려야 할 우상은 어떤 것일까요? 사주, 타로 등을 재미로 보는 일조차 위험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부가설명>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를 우상으로 만든다. 무엇이든지 자기 중심이 되면 곧 자기가 우상이 되는 것이다. 그것을 교만이라고 할 수도 있고 우월감이라고 할 수도 있다. 자기 지식이 판단의 척도가 되고 자기 지위나 학위나 재산을 평가의 척도로 삼을 때 그 모든 것이 우상이다. 우리는 만들어놓은 우상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겠으나 자아 중심의 사고방식이라는 우상은 우상인줄도 모르고 애지중지 섬기고 있지 않을까? 사람은 이점에 약하다. 얽매이기 쉬운 죄와 무거운 것이다. 이것을 위하여 끊임없이 일한다. 사람이 자존감은 있어야 한다. 자기를 비하하는 것은 우월감의 또 다른 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오직 예수님을 높이고 그분의 말씀에 무조거 굴복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그래서 변화산에서 제자들이 예수 외에 아무도 보이지 않게 된 그런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도록 성령님의 능력을 간구하자. 그리고 성경 사상과 맞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에게서 나온 것이다. 그런 것을 재미로라도 하지 않아야 유혹의 세력이 들어올 틈을 막는 것이다.

 

7월 30일(목) 우상 숭배 극복하기

 

 고린도전서 8장 1-3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을 사랑할 때 우상 숭배에서 안전하다고 말한다. 이 설명은 고린도전서 10장 23절-11장 1절에서 다시 전개된다. 8장 3절에서 그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언급한다. 10장 24절에서는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면서 이웃 사랑을 이야기한다.

 

마가복음 10장 17-22절, 12장 28-31절을 읽어 보라. 두 본문의 공통점은 무엇이며 고린도전서 10장에는 어떻게 적용되는가?

[막10:17~22]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19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20 그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2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막12:28~31] 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답: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인데, 그것은 절재적으로 하나님 중심, 하나님의 사상을 따라 생활하라는 것이다.

 

 정확히 바울은 마가복음 12장 28-31절에서 예수가 하신 그대로 고린도전서 10장에서 하고 있다. 즉 율법의 두 강령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한데 묶은 것이다. 부자 청년 이야기(막 10:17-22)에서 예수는 각각 신명기 6장 4절(막 10:18 참조)과 십계명의 둘째 돌판(막 10:19)에 암시된 이 두 가지 사랑을 결합하신다. 이 젊은 부자는 하나님과 이웃보다 자기 재물을 더 사랑한다는 게 문제였다(막 10:22). 그는 이 땅의 보화를 하늘 보화보다 더 가치 있게 여겼다. 자기 재산을 가난한 자보다 더 가치 있게 여겼다(막 10:21). 그는 우상 숭배자였다.

 바울은 예수의 가르침대로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원칙이 고린도전서 10장 27, 28절의 가상적 상황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무리 합법적인 일도 그로 인해 누군가의 양심이 상한다면 유익하거나 덕이 되지 못하다는 것이다(고전 10:23). 이 원칙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는 말로 잘 요약된다. 바울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우상 숭배는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으며 무엇이든 하나님께만 드려야 할 영광을 가로채는 것은 우상 숭배라고 지적한다(사 42:8).

 고린도전서 10장 31절-11장 1절은 8-10장의 결론이다. 바울은 자신이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으며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고전 10:33) 했다고 분명히 밝힌다. 이와 같이 그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되었다(고전 11:1).

 

나의 삶 속으로: 어떻게 하면 이웃 사랑을 더 잘 실천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섣부른 신앙 지식이 도리어 누군가의 양심을 상하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시다.

<부가설명> 이웃 사랑하는 성경이 계시한 첫째 방법은 그들에게 예수님의 생명을 얻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는 이웃을 도우고 친절하고 자기 희생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셔서 섬기는 자가 된 것은 섬김을 받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생명, 곧 영생의 생명을 받아들여 함께 영생하자는 구원의 사랑이다. 비록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준다고 해도 이 목적이 없으면 유익이 없는 사랑이다(고전13:1~3). 하나님께서 독생자들 세상에 보내신 것을 그분을 통하여 생명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다. 이 정신이 없는 인간적 사랑은 예수님의 사랑, 성령님의 사랑, 하나님께서 사랑하라고 하신 그 사랑이 아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한다. 이유는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 창조주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사43:7). 이 영광을 가로채는 것은 다 우상이다. 

 

7월 31일(금) 더 깊은 묵상을 위해

 

『부조와 선지자』 제28장 ‘시내에서의 우상 숭배’(315-330)를 읽어 보라.

 

 “만약 우리가 다른 이들과 올바르게 친교를 나눈다면 얼마나 많은 유익을 얻었겠는가! 누구든 하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은 타인들의 길을 밝혀 줄 의무가 있다. …그러면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자기 숭배를 그치게 될 것이다”(리뷰 앤드 헤럴드, 1884. 11. 18.).

 ”바울은 교인들에게 자신의 말과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자문해 보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그 자체로는 무해하더라도 우상 숭배를 허용하거나 믿음이 약한 이들의 양심을 상하게 할 것 같은 일은 하나도 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사도의 경고는 어느 시대나 적용되며 특히 이 시대에 적절하다. 그가 말하는 우상 숭배란 우상에게 드리는 예배뿐 아니라 자기 본위, 안일의 추구, 식욕과 정욕을 채우려는 태도를 뜻한다”(사도행적, 316, 317).

 “정당한 일이라도 하나님의 사업이 차질을 빚는다면 그 일을 그만두라. 사람들이 진리와 담을 쌓게 할 일은 하나도 하지 말라. …모든 것이 허용되더라도 다 유익한 것은 아니다”(교회증언 9권, 215).

 

함께 나누기

 

1. 바울에 따르면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행동이 때때로 미숙한 그리스도인의 성장을 방해할 수 있다. 이런 일이 언제 생기는지 생각해 보라. 하나님을 첫째로,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한다는 원칙이 이 문제를 다루는 유일한 방법인 이유는 무엇인가?

*답: 자기가 생각한 성경 원칙이 마치 성경이 가르치는 그 원칙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성경의 원칙의 핵심은 사람에게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는 것이다. 이 일을 방해하는 방식으로 정죄하듯이 사람을 다루면 주님께 죄를 짓는 것이다.

2. 조심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인도 빠질 수 있는 우상 숭배에는 무엇이 있을까? 선한 것임에도 우상이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이 매우 아끼는 무언가가 우상이 되었음을 어떻게 알 수 있나?

*답: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보다 앞섰다면 그것은 우상이 된다. 

3. 바울은 자신을 단련하는 이유가 남에게 전파한 뒤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한다(고전 9:27). 이번 주 공부에 기초해 무엇이 복음 전도자의 자격을 잃게 하는지 생각해 보라.

*답: 상대를 나보다 낫게 생각하지 않고 낮게 생각하고 대하는 모든 언어, 행동, 감정이다. 

4. 고린도전서 10장에서 바울은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14절)고 말한다. 우상 숭배는 왜 이토록 해로운가?

*답: 그것은 유일하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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