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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과 교회 안의 죄(질문, 대답, 설명) 07/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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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6-07-18 02:16 조회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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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과 교회 안의 죄

(7월 25일 안식일/일몰 오후 7시 47분)

 

기억절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 20)

 

● 연구 범위 - 고전 5:1-13; 고후 2:5-10; 고전 6:1-13; 살전 4:1-8; 고전 6:19-7:9

 

 인간의 뇌는 스펀지와 같아서 감각을 통해 들어오는 모든 것을 저장한다. 우리는 그 대부분을 의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만약 그것들을 낱낱이 기억한다면 정돈된 사고 활동이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 정보들은 여전히 남아 우리의 생각과 감정, 행동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 그리스도인조차 주변의 나쁜 것에 영향받는 이유가 여기 있다. 교회는 처음부터 이런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예를 들어 일요일을 지키는 관습은 어디서 생겨났는가? 하늘에서 뚝 떨어졌을까? 당연히 아니다. 그것은 당대의 문화에서 흘러들었다.

 이러한 현상은 고린도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바울은 먼저 파벌 싸움을 경고하고(고전 1-4장) 뒤이어 성적 부도덕과 소송, 성매매, 결혼과 독신의 문제를 다룬다(5-7장). 고린도 교인들은 세상의 기준에 깊이 영향받고 있었다. 고린도전서 1-4장에 폭로된 파벌주의는 이후 장들에 언급된 도덕적 문제들이 발생할 길을 터 주고 말았다. 교회 내부의 이 죄악을 바울은 어떻게 다루고 있으며 우리는 그의 가르침에서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까?

 

말씀 속으로

“1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2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3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같이 이런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4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5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6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1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12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13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고전 5:1-6, 11-13)

 

토의 질문

1. 고린도 교회에 도덕적으로 어떤 문제가 생겼고 바울은 어떤 대응책을 내렸나요?

*답: 음행 문제가 생겼고 단호히 대처하라고 말했다. 

2. 왜 교회에서는 죄를 범한 교인을 때로는 단호히 징계해야만 하나요?

*답: 죄가 번지는 것을 막는 것이다. 아간의 경우와 아나니아 삽비라의 경우가 본보기다. 

3. 성적인 문제와 관련한 바울의 결혼관은 무엇인가요?

*답: 혼자 지내든지 결혼하면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결혼생활 하라는 것이다.

4. 오늘날 교회는 세상의 어떤 문화에 물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까요?

*답: 자유분방한 쾌락 주의 문화를 경계해야 한다. 

 

핵심 교훈

교회는 세상의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죄를 용인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거룩함을 지켜야 하는 공동체이다. 죄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응하되 그 목적은 정죄가 아니라 회복이며 교인 각자는 성령의 전으로서 구별된 정체성을 지녀야 한다.

 

7월 19일(일) 믿음과 실생활의 불일치

 기독교 역사에 걸쳐 신학자, 목사, 평신도들은 어떤 교회가 이상적인지를 확인하고자 신약 성경을 연구해 왔다. 예를 들어 우리는 사도행전 당시의 교회에 감탄한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쉽사리 놓쳐 버린다. 문제없는 사람은 없다는 점이다. 신약성경을 읽으면 어떤 교회가 되지 말아야 하는지도 동시에 알 수 있다. 그 좋은 사례가 바로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내는 바울의 편지이다.

 

고린도전서 5장 1-13절을 읽으라. 바울은 어떤 파렴치한 상황을 말하고 있으며 왜 이것이 그토록 충격적인가?

[고전5:1~13]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2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3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런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4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5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6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8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9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10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11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12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13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답: 교인 중에 아버지의 아내를 취한 남자가 있었다. 계모를 범한 것이다. 이것은 도를 넘은 행패다. 

 

 “아버지의 아내”(고전 5:1)라는 표현에서 바울은 남자와 계모 사이의 근친상간 관계를 언급하고 있다. 이 상황은 아마도 “글로에의 집 사람들”(고전 1:11, 바른)이 전해 주었을 것이다. 근친상간은 “이방인들 사이에서도 볼 수 없는”(고전 5:1, 쉬운) 끔찍한 죄악이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초기 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5장 1, 2절의 어조를 보면 교인이 이런 일을 저지르고 있다는 소식으로 바울이 충격에 빠졌음을 알 수 있다.

 상황은 갈수록 심각해진다. 이 문제를 놓고 고린도 교인들이 통탄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런 죄에 관대한 자신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사실에 바울은 더욱 기가 막힌다(고전 5:1, 2). 그래서 바울은 부도덕한 그 남자뿐 아니라 믿음과 실생활이 명백하게 불일치하는 교회를 바로잡기로 마음먹는다. 사실 바울은 근친상간을 저지른 남자를 용인하는 교회의 태도가 시정되어야 한다고 계속해서 분명히 말한다. 그런데도 이런 성적 추문을 자랑으로 여기며 심지어 거들먹거리기까지 하다니!(2, 6절) 바울에게 이것은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심각한 일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고린도 교회가 그 남자에게 왜 그리 너그러운지에 대해서 성경은 설명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부자라서 교회가 그의 덕을 보고 있었는지 아니면 “모든 것이…가하”(고전 6:12)므로 딱히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사실이 어떻든지 간에 그들은 성경이 지적하는 명백한 죄에 눈을 감았고(레 18:7, 8) 심지어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나의 삶 속으로: 성경에서 분명히 단죄하는데도 ‘사랑’과 ‘수용’이라는 명목으로 우리가 버젓이 용인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부가설명> 이런 죄의 가장 흔한 것이 식생활 문제가 아닐까? 레위기와 신명기에 분명히 부정한 것들을 먹지말라고 경고하셨다. 그것을 먹을 때는 하나님의 성전인 몸이 더럽혀진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렘11:43~45). 요즘 재림교회 내에는 음식물에 관한 기별을 거의 유의하지 않는다. 지도자들부터 그렇다. 심지어 교회당 내에 까페를 열고 커피를 파는지 그냥 주는지 모르지만 소위 사람들을 만나서 전도할 수 있다는 변명으로 합리화한다. 이것은 오늘 본문의 죄와 동일시할만하지 않을 지는 몰라도 증언에서 분명히 경고했고 성경에도 몸을 더럽게 하는 식생활에 대한 경고가 있다(고전3:16~18, 고후6:17~7:1). 교회 부서에서 절제부는 없어지고 보건복지부가 생겼는데, 그것은 절제 사업과 별 상관없는 것으로 보인다. 두아디라교회는 사랑고 수고에 칭찬을 받았다. 그 사랑의 결과로 이세벨이 교회를 뒤흔들게 되었다. 오늘날 재림교회가 이 문제에 깊이 회개하고 심각하게 검토하고 다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일을 용납할 때 교회는 죄와 친숙해지고 더럽려진다.

 

7월 20일(월) 스캔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성적인 문제는 늘 다루기가 어렵다. 바울도 힘들어했고 우리 또한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는 성경에 충실해야 하며 기도와 사랑으로 문제를 대해야 한다. 우리의 목표는 회복이라는 점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

 

고린도전서 5장 1-13절을 다시 보라. 바울은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라고 말하는가?

*답: 위의 문제에 적어둔 성구를 다시 읽어보자. 분명히 징계하고 내어쫓으라고 했다. 그러나 그가 진정으로 회개하고 영의 사람으로 돌아오도록 이끌라고 했다. 

 

 성적인 문제에는 교회의 징계가 필요하다고 바울은 고린도전서 5장에서 분명히 밝힌다. 그는 근친상간을 저지른 사람을 제거하고(2절) 심판하고(3절) 사탄에게 넘겨주고(5절) 내쫓아야(13절) 한다고 말한다(새번역). 교인들은 그 사람과 “사귀지도 말고”(고전 5:9, 11),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11절)는 주의를 받았다. 바울의 강력한 표현이 오늘날 사람들에게는 불편하게 들릴 수 있지만 우리는 그의 말을 역사적인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또 그가 명백하게 죄스러운 생활방식을 다루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강경한 표현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특정 표현들을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그러한 일을 저지른 자를 여러분 가운데서 제거했어야”, “내쫓으십시오”(2, 13절, 새번역). 이것은 교회의 징계를 말한다.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5절). 그 남자는 하나님을 따르며 그분께 보호받기로 선택하지 않았으므로 사탄에게 취약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표현은 단순히 ‘그가 자기 선택의 열매를 거두게 하라.’는 뜻이다.

“어울리지 말라”(9절, 쉬운).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11절). 음란한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은 그들의 행동에 영향받을 수 있으므로 위험하다고 여겨졌다. 고대에 음식을 나누는 것은 가치관의 공유를 의미하기도 했다. 우리 모두는 주위의 영향력에 취약한 존재이므로 특히 이런 문제를 다룰 때는 최대한 자신을 방어해야 한다.

“그의 영혼은 구원을 받도록 하려는 것”(5절, 공동번역), 교회의 징계는 회복을 위한 것이다. 죄인을 일깨워 정신 차리게 하고 죄스러운 생활 방식을 버리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육신은 멸”(5절)한다는 바울의 표현은 아마도 그런 뜻일 것이다. 어쩌면 나중에 언급된 회개한 사람(고후 2:5-10 참조)이 바로 고린도전서 5장의 그 남자일지도 모른다. 잘못한 교인이 돌이켜 교회 공동체로 돌아올 때 교회의 징계는 비로소 그 목적을 다한 것이다.

 

나의 삶 속으로: 성적인 부도덕 외에도 교회는 어떤 죄악들을 단호히 대처해야 합니까?

<부가설명> 징계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한 사람을 교회로 인도하여 지정한 신자가 되도록 이끄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런데 교회 출석 잘하고 재정적으로 많이 돕고 일도 열심히 하는 교인이 그런 죄에 걸렸으면 교회는 아주 곤혹스럽다. 그러나 성경이 성령으로 지시한 것은 실현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무질서해지고 죄를 용납하는 교회라는 이름의 죄 수용소가 될 위험에 놓인다. 죄인을 불러 회개하여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일을 하는 교회가 회개하지 않는 죄인의 피난처가 되는 것을 예수께서 어떻게 보실 것인가? 그것은 예수님의 몸인 교회를 파괴하는 사탄의 일을 하는 것이다. 어럽지만 눈물로 징계해서 그가 회개하고 진리의 품으로 돌아오도록 도와햐 할 것이다.

 

7월 21일(화) 교회의 정체성 수호

 

 고린도전서 6장 1-11절에서 바울은 교인들 간의 문제를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를 계속한다.

 

고린도전서 5장 3, 12, 13절과 6장 1-13절을 읽어 보라.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과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자 하는가?

[고전5:3,12,13]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런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12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13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고전6:1~13]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2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4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5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6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7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8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그는 너희 형제로다 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10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12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13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 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답: 교회에서 판단할 것을 외부에 공개하는 것은 결단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교회의 불미스런 문제가 외부에 드러나면 예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여기 소송은 13절 말씀에 비추어 아마도 음행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형사사건이 아닌 것 같다.

 

 고린도전서 6장 1절의 “다툼”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프라그마’는 일반적으로 ‘어떤 일’, ‘문제’를 뜻하며 여기서는 법적인 분쟁을 가리킨다. 고린도전서 6장 1-11절은 형사 사건을 언급한 게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형사 처벌에 대한 법정의 권위는 로마서 13장 1-5절에서 확인된다. 바울은 성적 부도덕 문제를 다룬 직후 소송 문제를 언급하는데 이는 신명기 22장 22-24절에서 모세가 취한 방식과 비슷하다. 교회 문제를 다루는 바울의 방식이 얼마나 성경적인지를 여기서 알 수 있다.

 6장 1-11절의 분쟁 이야기가 음행을 다루는 구절들(고전 5장; 6:12-20) 사이에 위치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1절에서 말하는 “다툼” 역시 성적 부도덕과 관련된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재산 분쟁 같은 단순한 민사 문제였는지 성적인 문제였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다. 그 ‘다툼’(프라그마)의 성격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바울은 이런 문제로 교인들이 세상 법정에 호소하는 모습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인 그들이 이 문제를 “불의한 자들”(고전 6:1) 앞으로 가져가지 않고 스스로 해결할 수는 없었단 말인가?

 일부의 추측에 따르면 고린도전서 6장 1절의 소송은 5장 1절의 부자간에 벌어진 문제일 수도 있다. 바울의 논지를 이해하기 위해 그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꼭 알 필요는 없다. 바울이 염려한 것은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인 교회가 외부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치겠는가?’였다. 그리스도인은 공개석상에서 부끄러운 일을 드러내면 안 된다(고전 6:6). 또 세속적인 방식을 이용해 내부 문제를 판단해서도 안 된다. 로마 시대의 법정은 돈이 더 많거나 정치적 영향력이 더 큰 사람에게 유리한 판단을 내리는 경향이 있었다. 그와 반대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처럼 판단하며 세상의 표준과 구별되어야 한다.

 

나의 삶 속으로: 고린도전서 5장 10, 11절과 6장 9, 10절에서 바울은 왜 성적인 죄악을 우상 숭배, 도둑질, 탐욕, 착취와 함께 언급했을까요?

<부가설명> 성경은 음행을 우상 숭배, 도둑질, 탐욕, 착취와 함께 언급하여 동질의 죄에 해당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말세에 사람들은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이런 생명 돌아서라고 단호하게 말했다(딤후3:1~5). 쾌락, 곧 즐거움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은혜의 선물로 창조하실 때 주신 정서다. 창세기 2장에는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실과 나무를 나게 하셨다고 계시했다. 이것은 아름다운 것을 보려는 김각과 좋은 것을 먹으려는 감각을 주셨다는 말이다. 즉 정서감을 주신 것이다. 사람이 사망으로 떨어지지 않았을 때는 에덴에서 순수한 즐거움(쾌락)을 누렸을 것이다. 에덴동산을 낙원이라고 번역하는데 그것을 즐거울 락(樂)과 동산 원(園)이다. 영육간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게 하신 것이다. 사람은 쾌악을 위하여 돈을 아끼지 않는다. 사람이 생명에서 사망으로 타락하자 이런 아름다운 선물이 육욕의 도구로 떨어졌고 사탄은 이것을 잡고 사람들을 타락으로 끌어들인다. 교회가 조금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7월 22일(수) 성적 부도덕에 대한 해독제

 

데살로니가전서 4장 1-8절을 읽어 보라. 음란을 버리는 일과 거룩함은 서로 어떤 관계가 있는가?

[살전4:1~8]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끝으로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2 우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4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5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 6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언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라 7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8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답: 몸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몸을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정결하게 하는 것도 거룩함을 지키는 것이다.

 

 위의 본문에서 바울은 특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쓰고 있지만 그 원칙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두루 적용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런 의문이 남는다. 고린도 교회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일까? 왜 이토록 많은 문제가 있었을까?

 분명 고린도 교회에는 복음으로 자유를 얻었으니 무엇이든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위장이 음식을 위해 존재하듯 몸은 음행을 위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고전 6:13). 이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오해한 것이라고 바울은 반박한다. 성적인 문제에 대한 불성실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어긋나며 복음을 통해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를 오용한 것이다(롬 8:2; 갈 5:13). 우리는 죄에서 자유를 얻은 것이지 ‘죄지을 자유’를 얻은 게 아니다(롬 8:2; 6:18, 22). 사실 “몸은…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신다(고전 6:13).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이며(15절) 우리의 됨됨이는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이 둘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고린도전서 6장에는 이것을 세 가지 다른 방식으로 제시한다.

 첫째, 우리는 “주 예수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은 존재이다(6:11). 이와 같이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고린도전서 6장 9-10절에 열거된 죄들과 12-20절에서 책망하는 음행이 절대로 용납될 수 없다.

 둘째,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이다(6:15).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해야 한다는 뜻이다(6:17). 음행은 그 연합을 깨뜨린다(13, 15절). 혼외 성관계를 맺는 사람은 상대방과 “한 육체”가 되기 때문이다(16절, 바른).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와 맺은 연합이 곧 성 문제를 판가름하는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잣대이다.

 셋째, 우리의 몸은 “성령의 전”이다(6:19-20). 우리는 성령으로 그리스도와 친밀한 관계를 맺을 때만 성 문제에 대해 깨끗함을 유지하며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다. 바울은 ‘성령의 전’이되는 경험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몸을 드리는 것으로 표현하기도 했다(롬 12:1).

 

나의 삶 속으로: 성적인 죄악으로 인간에게 이른 파멸을 생각해 보십시오.

<부가설명> 지혜의 사람의 대명사인 솔로몬도 이 문제로 넘어졌고,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던 다윗도 이 문제로 넘어졌다. 그만큼 사람을 파멸로 끌어들이는 질긴 죄의 끈이다. 사람이 즐기는 쾌락의 최고경지가 성적쾌락인 듯하다. 그래서 중국위 옛 사람은 남녀의 동침할 때 느끼는 쾌감을 우화등선(羽化登仙)하는 것으로 비유했다.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기분이라는뜻이다. 죄가 사람을 주장하게 되자 사탄은 이것을 사망의 미끼로 사용하고 있다. 잠언에서 이 문제에 관한 경고와 교훈이 참 많다. 특히 젊은 이들은 이런 문제에 걸리면 요셉의 환난에 빠진다(암6:6). 요셉은 담대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이겼다. 모든 젊은이들은 요셉의 승리를 맛보도록 각별히 자기를 진리로 다스려야 하고 교회는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믿음을 튼튼히 교육해서 오직 성령님으로 진리에서만 생활하도록 양육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이기 때문이다(딤전3:15).

 

7월 23일(목) 결혼과 독신

 

 바울은 음행에 대해 경고하면서 우리 몸은 “성령의 전”(고전 6:19)이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우리는 ‘성령의 전’이 되어야만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인 공동체로서 주변 환경과 구별되어야 하며 이것은 성령께서 임하실 때만 가능하다.

 

고린도전서 6장 19절부터 7장 9절까지 읽어 보라. “음행을 피하라”(고전 6:18)는 명령을 실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가?

[고전6:19~7: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7: 1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2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3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4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5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6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허락이요 명령은 아니니라 7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8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9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답: 우리 몸은 하나님께서 값으로 산 몸이기 때문에 성령의 전인 것을 확인하고 항상 정결하게 지켜야 하며, 결혼하고 결혼 생활에 충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홀로 지내는 것이 좋다.

 

 고린도전서 7장에서는 성과 관련해 중요한 교훈을 전한다. 이 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결혼에 관한 가르침(1-24절)과 독신에 관한 가르침(25-40절)이다. 성에 대해 언급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지를 여기서 알 수 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7장을 읽을 때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바울은 여기서 고린도 교회의 문제와 관련된 특정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일부 구절을 읽으면 바울이 결혼을 낮잡아 보는 듯한 인상을 받을 수도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딤전 4:1-3; 5:14; 히 13:4).

 “음행을 피하라”(고전 6:18)는 명령이 ‘주님과의 연합’(17절), ‘성령의 전’(19절)이라는 개념 사이에 놓여 있다는 점을 주목하라. 음행을 피하는 데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성(性)은 하나님께서 오직 결혼 관계 안에서만 누리도록 창조하신 것이다. 섹스는 성경에서 유일하게 인정하는 결혼 형태인 남녀의 결혼 안에서 주어지는 특권이다.

 바울은 “음행을 피하라”고 말하면서 요셉 이야기(창 39:6-18)를 염두에 두었을지도 모른다. 성경은 보디발의 아내가 음욕을 품고 다가왔을 때 요셉이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다고 말한다(창 39:18). 이 표현이 창세기 39장 6-18절에는 무려 네 차례나 언급된다. 성경은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요셉이 성을 결혼 안에서만 누렸음을 암시하고 있다(창 41:45). 그는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고(창 41:38)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길을 걷고자 했다.

 

나의 삶 속으로: 교회 공동체로서 우리는 세상에 만연한 왜곡된 성 관념에 맞서 어떻게 자신을 지켜야 할까요? 일상에서 ‘주님과 연합’(고전 6:17)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부가설명> 성 문제에서 자신을 지키는 것은 자신이 진정으로 성령으로 거듭나는 경험을 하는 것이 첫째 발걸음이다. 그랬을지라도 사탄은 성을 미끼로 성도를 옭으려고 한다. 삼손이 걸려들었고, 이미 말한대로 다윗과 솔로몬이 걸려들었다. 물론 다 회개했으나 그런 미끼에 걸려들지 않는 것이 더욱 좋다.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께서 독생자의 피를 값으로 주고 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 몸은 우리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소유다. 이 사실을 뼈에 새기고 시ㄹ억하고 생활할 것이다. 솔로몬은 자기의 실패를 거울삼고 잠언에 이 문제를 많이 말했다. 실제로 인간 관계에서 순결해야 하지만, 영적으로도 말씀대로 순결한 신앙을 지켜야 한다. 계시록에는 음녀가 있다. 잠언에 음녀에 대한 많은 경계는 영적으로도 적용할 수 있다. 성도는 영육 간에 성 문제에 순결해야 할 것이다. 아멘.

 

7월 24일(금) 더 깊은 묵상을 위해

 

『사도행적』 제29장 ‘경고와 탄원의 기별’(298-308)을 읽어 보라.

 

 흥미롭게도 고린도전서 5장 10절과 6장 9, 10절의 죄악 목록에서는 우상 숭배와 술 취함이 음행과 함께 나열된다. 고린도전서 10장 7절(출 32:1-6 참조)에서 바울이 떠올리듯 우상 숭배 축제는 흔히 탐식과 과음으로 얼룩졌고 음행으로 이어졌다(고전 10:8). 엘렌 G. 화잇은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 이기적이고 식탐을 부리면서 성화의 복을 누릴 수는 없다. …인체는 혹사당할 때 놀라운 저항력을 발휘하지만 지나치게 먹고 마시는 악습이 끊임없이 계속되면 신체의 모든 기능은 약해진다. 심지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이들조차 왜곡된 허기와 욕망을 채우느라 몸을 망가뜨리고 신체적·정신적·도덕적 능력을 약화시킨다”(성화된 생애, 25, 26).

 “자아를 온전히 비우고 모든 거짓 우상을 마음에서 제해 버리면 성령께서 들어와 그 빈자리를 채우신다. 이런 사람은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지니고 있으며 그 믿음으로 마음은 온갖 도덕적·영적 더러움에서 깨끗해진다”(가정의 선교사, 1893. 11.).

 “하나님은 고귀하고 순결한 하늘의 표준으로 우리를 끌어올리고자 하신다. 이를 위해 성령께서 우리와 끊임없이 씨름하고 계신다. …우리의 육신적 성향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교정되지 않는 한 그 안에 도덕적 죽음이라는 씨앗을 품고 있다”(원고, 1888. 12.).

 

함께 나누기

1. 고린도 교회에는 문화적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을 표출한 이가 많았다. 이것은 그리스도인 정체성에 왜 그토록 위험한가?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 세상 문화는 인간 욕망과 연결된 경우가 많다. 편리 욕망, 쾌락 욕망, 성취 욕망 등등 수많은 욕망이 문화라는 이름으로 퍼진다.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욕망이 오직 하늘에 닿도록 해야 할 것이다.

2. “너희 몸은…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6:19). 이것은 ‘알지 못하느냐’라는 반어적 형식으로 이어지는 바울의 질문 중 마지막이다 (참조, 고전 5:6; 6:2, 3, 9, 15, 16, 19). 이 질문들은 교회에 대한 바울의 염려를 어떻게 보여 주고 있는가? 왜 우리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답: 교회도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러므로 순결하고 거룩해야 한다. 그러려면 성도의 몸성전이 거룩할 때 교회 몸이 거룩해진다.

3. 결혼은 하나님이 정하신 제도이며(창 1:27, 28; 2:18-24) 존중받아야 한다(히 13:4). 많은 사람이 결혼을 구시대적이라고 여기는 오늘날 이 제도가 에덴에서 비롯된 하나님의 선물임을 어떻게 보여 줄 수 있을까?

*답: 교회와 성도들의 순결한 가정생활, 결혼생화를 통하여 드러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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