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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과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질문, 대답, 설명) 07/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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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6-07-10 08:12 조회11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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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과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

(7월 18일 안식일/일몰 오후 7시 52분)

 

기억절: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 1:10)

 

● 연구 범위 - 고전 1:12-17; 롬 1:29; 고전 1:10; 3:1-4; 빌 2:5-8; 고후 11:23-28; 골 1:24

 

 자연에는 무리를 지어 사는 동물들이 있는데 그 집단의 크기는 제각각이다. 늑대부터 돌고래, 개미 군단에 이르기까지 많은 생물이 떼 지어 다닌다. 특히 침팬지는 사회적 결속력이 강하기로 유명하며 15마리에서 150마리까지 모여 지낸다. 그러나 그 관계가 늘 화목하지는 않다. 침팬지들은 자기들끼리 싸우기도 한다.

 인간도 그와 비슷하다. 집단을 이루어 살면서 서로 충돌하기도 한다. 심지어 교회에서도 그런 일이 생긴다. 종종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파벌이 형성되며 심할 때는 파벌 간에 사이가 벌어진다.

 여러분의 교회에서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있다면 바울이 고린도에서 마주한 문제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이번 주에는 고린도전서 1-4장을 살펴보겠다. 여기서는 교회 내의 분쟁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 이 문제를 극복하는 법에 대해 다루고 있다.

 

말씀 속으로

“12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13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침례를 받았느냐 14나는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침례를 베풀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15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6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침례를 베풀었고 그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 침례를 베풀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17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침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전 1:12-17)

 

토의 질문

1. 선한 일을 하면서도 다툴 때가 있습니까? *답: 있다. 이것은 미련한 짓이다.

2. 바울은 왜 교회의 분쟁을 심각하게 다루었습니까? * 답: 예수님 정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회를 사탄의 손아귀에 맡기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3. 교회 안의 대립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중요합니까? *답: 예수님과 그분의 십자가의 희생 정신과 그 사상이다.

4. 친한 교인끼리 어울릴 때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할까요? *답: 동아리 사상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 해야 한다. 파벌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 

 

핵심 교훈

교회의 분쟁은 인간 중심의 시선과 미숙한 신앙에서 비롯되며 오직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중심에 둘 때만 참된 연합이 이루어진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겸손히 섬기며 살아갈 때 교회는 하나 되어 세상에 복음을 증언할 수 있다.

 

7월 12일(일) 교회 안의 편 가르기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 1:10). 바울의 이 호소는 고린도전서 첫 네 장의 중심 주제이다. 사실상 고린도전서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연합이라는 데는 학자들 대부분의 의견이 일치한다.

 

고린도전서 1장 12-17절을 읽어 보라. 지역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편을 가르는 행동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가? 바울의 해결책은 무엇인가?

[고전1:12~17]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13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침례를 받았느냐 14 나는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침례를 베풀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15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6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침례를 베풀었고 그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 침례를 베풀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침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답: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의 도리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분열을 매우 강한 어조로 묘사한다. 여기서 그는 그리스어 ‘스키스마’(10절, ‘분열’)와 ‘에리스’(11절, ‘분쟁’)를 사용했다(한글 개역개정판에서는 둘 다 ‘분쟁’). 신약 성경의 다른 곳에서 명사 스키스마와 동사 ‘스키조(쪼개다.)’는 다툼으로 이어지는 의견 차이를 표현할 때 사용된다. 또 에리스(분쟁)는 그리스도인들이 하지 말아야 할 악습의 하나로 나열된다.

 

다음 성경절에서 ‘에리스’(분쟁·다툼)는 어떤 심각한 죄악들과 함께 나열되고 있는가? 롬 1:29; 13:13; 고전 3:3; 고후 12:20; 갈 5:20

[롬1: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여기 분쟁이 에리스(ἔρις)다. 이것은 여기 열거된 다른 죄와 동일한 죄다. 

[롬13: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여기 다투거나=에리스(ἔρις)다.

[고전3:3]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여기 분쟁이 에리스.

[고후12:20] 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내가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가 원하지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거만함과 혼란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여기 다툼이 에리스

*답: 이 구절들에 열거된 전혀 바람직하지 못한 죄의 모습들 속에 에리스가 포함되었다. 

 

 고린도 교회에서는 분쟁이 불거졌고 심지어 법적 소송까지 이어졌다(고전 6:1-3). 교인들 간의 이런 소송에 대해 바울은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라고 말했다. 사실 그들은 성찬식을 거행할 때도 다툼을 그치지 않았다(고전 11:17-22).

 교회의 내분은 매우 무서운 문제이며 바울은 이것을 몹시 염려했기에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 문제를 가장 먼저 언급했다.

 

나의 삶 속으로: 고린도전서 1장 12-27절을 다시 읽고 파벌 형성이 교회의 연합에 왜 그렇게 위험한지 생각해 보십시오.

<부가설명> 예수께서 겟세마네에 가시기 전에 성전에서 드린 요한 17장의 마지막 기도가 모든 제자가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라는 것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교회는 분열을 거듭했다. 교회가 분열시키는 세력에 휘둘린 것이다. 분열하면 예수님께 붙어있지 못한다. 지역따라 교회들이 많이 조직이 되어도 진리와 신앙에서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신자들이 자기가 존경하는 지도자인 사람에게 자신을 매어버리면 예수님과 직접적인 연결이 안 된다. 지도자는 중보가 아니다. 고린도 교회는 하나되는 진리를 떠난 것이다. 그래서 바울파, 베드로파, 아볼로파, 그리스도파가 다투었다. 그러나 그 지도자들이 가르친 것은 다 예수님과 그분의 십자가 사랑이다. 그러므로 누구에게 배웠든지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우물 긷던 여자에게서 예수님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여자 때문에 예수님을 알았어도 예수님께 직접 연결되었다. 오늘날 신자들도 이 경험으로 신앙생활해야 한다. 성경과 다르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면 진리 안에서 한 길을 걸어야 한다. 아멘.

 

7월 13일(월) 예수님을 중심에

 

고린도전서 1장 10절을 읽어 보라.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는 바울의 말뜻은 무엇인가?

[고전1: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답: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생각이 모든 신자의 생각이 되고 사상이 되어서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구절에 따르면 파벌 형성은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을 부정하는 것이다(고전 1:10). 하나님은 우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고전 1:9) 하셨다. 우리 주님은 그리스도이시며 우리는 그분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침례를 받았느냐”(고전 1:13)라는 반어적 질문에 대한 답은 분명하게 ‘아니다.’이다. 그리스도는 나뉘지 않는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분이다.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마 28:19) 침례를 받았다.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고전 12:27)이라고 말한다. 신체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수많은 부분으로 구성되지만 여전히 한 몸이다. 몸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각 부분이 주어진 역량껏 작동해야 한다. 바울이 바라는 것은 ‘획일성’이 아니라 ‘연합’임을 이 비유에서 알 수 있다. 그는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생각과 의견은 그리스도께 복종해야 한다. 그리스도가 우리 주님이시라는 개념은 고린도전서 첫머리에서(고전 1:2, 7, 8, 9, 10) 거듭거듭 말해야 할 만큼 바울에게 매우 중요했다. 그렇기에 바울은 파벌과 인간 지도자 문제를 다루기에 앞서 우리 모두가 예수를 주님으로 모시고 있음을 먼저 강조한다. 교회의 중심은 인간 지도자가 아니라 예수님이다.

 이 점을 명심할 때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 1:10)는 바울의 말뜻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합하라”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동사 ‘카타르티조’는 무언가를 원상 복구한다는 뜻이다. 인간 지도자들 사이에 파벌이 생겼다면 교회 내의 관계는 온전한 상태로 회복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 그 결과로 자아가 죽을 때만 가능하다.

 

나의 삶 속으로

지난 수십 년간 재림교회 일부에서 소그룹 성경 연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파벌과 소그룹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부가설명> 교회 안에는 여러 부서들이 있다. 목회부도 있고 안식일학교도 있고 선교부도 있고, 도르가회도 있고, 등등. 그런데 그것을 책임진 지도자들은 자기 부서가 뛰어나기를 은근히 기대할 수 있다. 이 기대가 예수님을 밀어내면 그것은 엄청난 잘못이다. 모든 부서들은 몸의 각 지체처럼 예수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다. 몸이 건강하려면 모든 지체가 건강해야 하고 머리가 지시하는대로 움직여야 한도 교회 내의 어떤 부서라고 예수님 정신과 어긋나면 그것을 곧 시정해서 곧 원상복구해야 한다. 소그룹도 몸의 지체로서 자기 위치를 예수님 중심으로 지킬 때 파벌이 될 수 없다. 교회 부서들고 부서장들은 이 진리를 깊이 깨닫고 새기고 머리의 지시를 올바르게 수행하는 부서와 부서 지도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아멘.

 

7월 14일(화) 지혜와 성숙

 

 흔히 파벌은 인간 지도자를 과대평가할 때 생긴다. 이것은 교회의 연합과 교인들의 영적 건강을 매우 위태롭게 한다. 기독교 사역을 바른 시각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교회는 특정 지도자를 지나치게 중시하게 되고 이 모든 것은 타인들에게 해를 끼친다. 이런 행동의 결과로 경쟁 분위기가 형성되면 교회가 분열될 수도 있다. 그뿐 아니라 인간 지도자를 기독교 정체성의 중심으로 삼으면 그리스도를 우리 삶의 바른 자리에서 내몰 위험이 생긴다.

 

고린도전서 3장 1-4절을 읽어 보라.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미숙함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고전3:1~4]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4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답: 그리스도 안에 있기는 한데 어린아이라서 미숙한 사람, 곧 육의 사람이라고 나무랐다.

 

 영적으로 성숙한 신자는 하나님의 지혜(고전 2:6, 7)를 인식한다고 바울은 분명히 말한다. 이 지혜는 성령으로 말미암으며 세상 지혜, 사람의 지혜와 대조된다(고전 2:6, 13). 하나님의 지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나타난다(고전 2:1-4). 더 정확히 말해 하나님의 지혜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로 계시된다. 따라서 바울은 연합을 다시 호소하기 전에(고전 3:1-17) 참된 지혜와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해야 할 필요성을 독자들이 인정하기를 바라고 있다.

 지혜롭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신령한 사람이다. 육에 속하지 않고 어린아이 같지 않다(고전 3:1). 그들은 영적인 것을 영적인 것과 비교한다.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다(고전 2:13, 14). 지혜롭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젖이 아니라 단단한 음식을 먹는다(고전 3:2; 히 5:12 참조). “젖을 먹는 자마다 의의 말씀에 익숙하지 못한 자이니, 이는 그가 어린아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들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과 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다”(히 5:13, 14, 바른). 지혜롭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나는 바울” “나는 아볼로”라는 식으로 사람을 따라 갈라서지 않는다.

 그 사람들 역시 모두 자기처럼 “하나님의 동역자들”이기 때문이다(고전 3:9). 교회를 이루는 우리는 하나님의 밭이며 하나님의 성전이다(3:9, 16, 17). 우리모두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속했다(3:11).

 

나의 삶 속으로

존경하는 사람에게 실망한 적이 있습니까? 그 경험에서 어떤 교훈을 얻었습니까?

<부가설명>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다 썩어질 씨로 출생한 사람이다(벧전1:23). 당연히 썩는 구습이 생활로 드러나는 옛사람이다(엡4:22). 거듭날지라도 아직 어린아이는 썩어질 씨로 출생한 사람의 옛습관이 다 없어진 것이 아니다. 젖을 먹이고 성장하도록 교회가 양육해야 한다. 문제는 양육하는 선생, 또는 지도자가 어직 젖 먹을 상태에 있을 때 문제가 생긴다. 파벌을 만들고 교회를 시끄럽게 한다. 그들은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이고 세상적 지식과 판단으로 성경을 읽고 해석한다. 그들은 3차워 세계에서 어른인지 모르지만 하늘 차원에는 아직 출생하지 못하고 예수를 믿는다는 이름으로 교회를 어리럽히는 가라지들이다. 가라지가 교회 선생이 되면 교회는 분열한다. 그 가라지는 추수때까지 교회 안에 있을 것이다. 교회 지도자들은 확실하게 분별해서 가리지가 지도자가 되지 않게 해야 한다. 두아디라교회 현상이 우리 교회 안에 발생하면 안 된다. 

 

7월 15일(수) 그리스도와 같은 종

 

고린도전서 4장 1, 2절을 읽어 보라. 무엇이 인간 지도자를 대하는 바른 시선이라고 가르치고 있는가?

[고전4:1,2]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답: 사람들은 지도자를 그리스도의 일꾼이며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대해야 한다. 

 

 고린도전서 3장 1-4절에서 바울은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할 때 파벌이 생긴다고 암시한다. 그러나 이 문제를 논하기 전에 그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전 2:16)라고 잘라 말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을 말하는 듯하다.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닌다는 것은 그리스도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상에서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기가 쉽지는 않다. 그렇지 않은가? 그리스·로마 세상에서는 정치가, 철학자, 사상가, 종교 지도자들 간에 경쟁이 치열했다. 고린도 교회는 문화적으로 인정받고 싶어서 세상의 기준을 따른 듯이 보인다. 오늘날의 교회도 같은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빌립보서 2장 5-8절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은 “그리스도의 마음”(고전 2:16)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빌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답: 그리스도의 마음은 자기를 낮추는 마음이다. 그리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복종하는 마음이다. 

 

 고린도보다는 덜했지만 빌립보 교회에도 분열이 발생했다(빌 2:1-4). 빌립보서 2장 1-8절에서는 그리스도와 같은 종이란 자아와 이기적인 야망을 죽이고 예수님처럼 자신보다 타인을 복되게 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일꾼”(고전 4:1)이라는 표현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와 같은 종의 모습이다. 여기에는 부하, 하급자의 자세로 그리스도를 섬긴다는 뜻이 담겨 있다. 분명 그리스도께서 모본으로 보여 주신 리더십이 참된 지도자상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나아가 종은 “청지기”(고전 4:1, 2, 한글킹)로 묘사된다. 청지기는 타인의 재산을 관리하도록 위임받은 사람이다. 우리가 무엇을 지니고 있든 그 모두는 그리스도의 것이다.

 

나의 삶 속으로: 빌립보서 2장 5-8절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자기 부정의 사랑을 어떻게 보여 주고 있습니까?

<부가설명> 그리스도의 마음은 본질이 사랑이다. 우리는 성경이 계시한 사랑을 잘 모른다. 새 계명이 무어냐고 물으면,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라고 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 대답은 절반도 맞은 대답이 아니다. 그 뒤를 잇는 말씀까지 알아야 새 계명이 된다. 서로 사랑하되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새 계명을 바르게 아는 것이다. 예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롬5:10). 이것이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이다. 이런 사랑을 하라는 것이 예수님이 주신 새 계명이다. 이렇게 사랑하는 마음이 진정으로 거듭나고 장성한 사람의 마음이다. 성령님 이런 경지까지 자라도록 길러 주소서. 감사합니다.

 

7월 16일(목) 십자가를 드러내는 생활 방식

 

 인간 지도자를 중심으로 파벌을 형성하면 안 된다는 것이 지도자들을 지원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교회를 이끄는 이들을 존중하고 도와야 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업을 맡길 사람들을 이 땅에 세우셨다. 십자가에서 나타난 순종을 삶으로 드러내는 지도자들에게는 귀를 기울이고 따라야 한다.

 오직 십자가만이 사람을 지배하려는 모든 통제를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하는 능력을 발휘한다. 그리스도를 닮은 지도자는 사역의 성공을 다 하나님께 돌린다. 심지어 예수께서도 이 땅에서 인간으로 일하실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요 17:4).

 바울에 따르면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인 사역은 십자가 신학에 기초해야 한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와 구원하는 능력을 드러내는 동시에 인간의 지혜가 어리석은 것임을 보여 준다. 이와 같은 십자가 신학이 무엇인지를 바울은 고린도전서 4장 1-13절에서 분명하게 설명한다. 먼저 그는 그리스도인 리더십의 기준을 세우는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강조한다(1-5절). 두 번째로 그는 고난을 참된 그리스도인 사역의 특징이라고 말한다(9, 11-13절). 이 두 번째 사항을 더 자세히 살펴보자.

 

고린도후서 11장 23-28절, 골로새서 1장 24절을 읽어 보라.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당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고후11:23~28]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골1: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답: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다.

 

 예수의 발자취를 따르는 그리스도인 지도자는 형제자매를 위해 고난을 감수하며 필요한 경우 죽음도 불사한다. 바울과 아볼로는 자신들이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고전 4:9, 쉬운)과 같다고 말한다. 그들은 먹을 것과 마실 것이 부족했을 뿐 아니라 “헐벗고 매 맞으며 집 없이” 다녔다(고전 4:11). 또 모욕당하고 박해와 비방을 받으며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같이” 되었다(12, 13절). 나아가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부자이고 왕이고 지혜롭고 존귀하다고 반어적으로 언급하면서(8, 10절) 참된 그리스도인 리더십에는 교만이 자리하면 안 된다고 설명한다. 교회를 분열시키는 뿌리가 교만이기 때문이다.

 

나의 삶 속으로: 그리스도를 위해 어느 정도까지 고난당해 보았습니까? 위와 같은 고난의 경험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나요?

<부가설명> 그리스도의 고난은 아담 안에서 사망이 된 그 사망을 처리하는 과정의 고난이다. 참으로 희한하게도 사망이 사람을 삼킬 때 평안하게 삼키는 일이 드물다. 대부분 고통을 동반한다. 병으로 죽으면 통증이 따르고 사고로 죽으면 감각이 없어지기 전에는 고통이 압박한다. 그리스도인도 참으로 거듭나게 되면 옛사람을 청산하는 고난이 따른다. 이 고난이 없으면 아직도 옛 사람을 붙들고 있는 꼴이다.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로서 성장을 거절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아이가 성장하지 않으면 불구자가 되든지 죽게 된다. 불구자가 되는 것은 온전한 사람에게 짐이 된다. 온전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는 삶에 장애가 될 수도 있고 온전한 사람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훈련이 될 수도 있다. 훈련으로 여기는 사람은 장애인을 다듬으면서 함께 성숙의 자리로 이끄는 경험이 될 수도 있다. 아무튼 중생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도록 성장해야 한다. 이 성장하는 것을 교리적으로 성화라고 하는 것 같다. 

 

7월 17일(금) 더 깊은 묵상을 위해

 

『사도행적』 제2장 ‘열두 제자의 훈련’(17-24)을 읽어 보라.

 

 “하나님의 진리를 믿는 남은 자들이 하나로 연합할 때 세상은 그들이 진리를 지녔으며 하나님께 선택받은 특별한 백성임을 확실히 믿게 된다. 원수는 이런 연합에 당황하며 이 연합을 무너뜨리기로 작정할 것이다. 현대 진리를 마음으로 믿고 삶으로 예증할 때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가 되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교회증언 1권, 327).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진리의 토대 위에서 완전히 연합하여 서도록 한 무리를 인도하고 계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고 자신을 세상에 내주셨다. 이 정결케 하는 과정이 계획된 이유는 교회를 모든 불의와 부조화와 다툼의 정신에서 깨끗하게 하고, 교회를 무너뜨리지 않고 세우며 앞에 놓인 큰 사업에 힘을 집중시키기 위해서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모두 믿음으로 연합하도록 계획하신다.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그리스도께서 드리신 기도는 하늘 아버지와 자신이 하나이듯 제자들이 하나가 되어 하늘 아버지께서 자신을 보내셨음을 세상이 믿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가장 감동적이고 놀라운 이 기도는 각 시대를 거쳐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이르러 왔다. 그분께서는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 이라고 말씀하셨다”(교회증언 4권, 17).

 

함께 나누기

1. 지상 사역이 끝날 무렵 예수께서는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1)라고 연합을 위해 기도하셨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은 왜 하나님이 세상을 구하러 자기 아들을 보내셨다는 진리의 가장 강력한 논증이 되는가?

*답: 그것이 생명으로 연결된 관계가 되기 때문이다. 

2. 고린도전서 4장 9-13절에서 사도들이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지 자세히 살펴보라. 세상이 중시하는 리더십의 특징들과 어떤 대조를 이루고 있는가? 하나님의 표준과 세상 표준의 차이점에 대해 여기서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답: 고전4:9~13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10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11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13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세상 지도자들은 지배하려는 것이고, 하나님의 종들은 섬기는 자들이다. 

3. 고린도전서 4장 16절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기를 본받으라고 촉구한다. 지도자를 본받는 것과 그 지도자를 지나치게 심지어 위험할 정도로 떠받드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답: 바울이 자기를 본받으라는 것은 자기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그것을 본받으라는 것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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