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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과 십자가의 메시지(질문, 대답, 설명) 07/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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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6-07-03 08:07 조회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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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과 십자가의 메시지

(7월 11일 안식일/일몰 오후 7시 55분)

 

기억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 연구 범위 - 고전 1:17-31; 골 1:20; 벧전 2:24; 행 13:16-47; 고전 2:1-5

 

 로마의 저술가이자 연설가인 키케로는 로마인들에게 십자가에 대해서는 생각을 떠올리지도 말라고 했다. 그만큼 끔찍한 사형 도구였던 것이다. 키케로는 예수 탄생 반세기 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로마인들이 십자가를 얼마나 치욕스럽게 여겼는지를 그의 진술에서 알 수 있다.

 그와 반대로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하나님의 능력”(고전 1:18)이라고 기록했다. 바울에게 십자가는 하나님과 인간을 화해시키는 수단이자(엡 2:16; 골 1:20) 그리스도의 겸손을 보여 주는 최고의 상징이며(빌 2:8) 우리의 엄청난 빚이 탕감되는 자리였다(골 2:14).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문제에 대해 십자가로 답한다. 고린도전서 1장 앞부분만 읽어도 그가 깊이 염려하는 한 가지 문제를 알 수 있는데 바로 교회의 분열이다. 걱정이 얼마나 심했는지 바울은 문안 인사(1-3절)와 감사의 글(4-9절)을 끝내자마자 가장 먼저 이 문제를 언급한다(10-17절).

 이번 주에는 이 문제와 고린도 교회 내 다른 문제들의 해결책이 되는 십자가의 강력한 메시지를 살펴보겠다.

 

말씀 속으로

“17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침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8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 1:17-25)

 

토의 질문

1. 십자가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답: 각각 대답해보자. 사망이 처리된 은혜가 떠오르지 않는가?

2. 십자가는 왜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받는 이들에게는 능력인가요?

*답: 예수님의 십자가를 외면하면 멸망하는 것을 깨닫비 못하니 미련하고 깨달으니 구원에 이르게 되니 능력이다.

3. “하나님의 어리석음”이란 표현은 하나님도 어리석을 수 있다는 말인가요?

*답: 아니다. 미련한 인간의 지혜가 그렇게 보고 십자가를 무시한다는 뜻이다.

4. 오늘 나의 삶에서 십자가는 실제로 어떤 의미가 있나요?

*답: 사망을 처리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다. 아멘.

 

핵심 교훈

십자가는 세상의 기준으로는 어리석고 약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죄를 해결하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교회의 문제와 인간의 한계를 해결하는 길은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7월 5일(일) 십자가의 복음

 

 십자가의 메시지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바울은 말한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고전 2:2)이 그의 설교에서 핵심을 차지한다는 사실은 놀라울 게 없다.

 

고린도전서 1장 17-31절을 읽어 보라. 바울이 말하는 중요한 요점은 무엇인가?

[고전1:25~31]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답: 예수님만이 지혜요 의로움, 거룩함, 구원이다. 세상의 것과 비교할 수조차 없다.

 

 고린도전서 1장 18-31절에서 바울은 인간의 어리석음과 하나님의 지혜를 대조한다. 십자가에는 인간의 최악과 하나님의 최선을 드러내는 힘이 있다. 이 단락은 고린도전서 1장 17절의 진술로 시작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능력이 헛되이 돌아가지 않도록(고전 1:17) 우리의 설교는 십자가 기별이 중심을 차지해야 한다(고전 2:2 참조).

 자신은 침례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십자가 복음을 전하러 보내심을 받았다고 바울은 말하는데 여기서 두 가지를 주목해야 한다. 첫째, ‘보내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동사 ‘아포스텔로’가 ‘사도’라는 말과 어원이 같다는 점이다. 사도로서 바울의 근본 과업은 복음 전파였다. 둘째, 침례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그의 말은 침례가 중요하지 않다거나 적어도 복음 전파보다는 덜 중요하다는 뜻이 아니다. 모든 교인이 한 분이신 예수 안에서 침례받았는데도 그분을 제쳐 놓고 어떤 사람에게 침례받았느냐로 옥신각신하는 이들이 있었을 때 바울은 이 문제를 좌시하지 않고 당사자들을 꾸짖었다.

 또 바울이 언급한 “말의 지혜”(고전 1:17)란 유창한 연설 자체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인간의 지혜로 십자가의 기별이 흐려져서는 안 된다는 게 핵심이다. ‘말의 지혜’는 그리스·로마의 수사법을 가리킨다. 아테네에서 바울은 논리, 과학, 철학을 활용했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그래서 “고린도에서는 냉담하고 무관심한 이들의 관심을 사로잡기 위해 다른 방식으로 사역하기로 했다. 그는 복잡한 논쟁과 토론을 피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했다”(사도행적, 244).

 

나의 삶 속으로: 왜 아테네에서 논리, 과학, 철학을 사용할 때보다 고린도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선포했을 때 더 큰 결실을 거뒀을까요?

<부가설명> 세상의 논리와 과학 철학은 세상적 바탕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세상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에드윈 아보트는 19세기 성직자이면서 수학자였다. 그는 ‘플렛랜드’라는 일종의 SF 소설울 썼다. 오늘날 사람들은 그것을 모든 SF 소설의 비조(鼻祖)라고한다. 내용은 평면 세계 사람인 스퀘어(Square) 씨가 라인랜드에 갔는데 그들은 앞뒤로 가는 것밖에 몰랐다. 그래서 그가 면적이 있다고 말해도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런데 어느날 플렛랜드에 스피어(Sphere-구(球)) 씨가 왔다. 그는 스퀘어에게 공간(구체-球體-Sphere)에 관한 이야기를 해도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성경은 하늘 이야기다. 사망 세상에 생명 이야기다. 아무리 세상의 지혜와 지식이 풍성한 석학이라도 차원 다른 사상이기 때문에 알아듣지 못한다. 사탕은 전혀 먹어보지 못한 사람에게 단맛을 설명해서 알아듣겠는가? 맛을 보면 설명 안 해도 알게 된다. 그래서 복음은 세상적 논리로 증거하면 결실이 적다. 바울은 아테네에서 이것을 절감한 것이다. 우리도 이 도리를 깨달아야 한다.

 

7월 6일(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

 

 바울은 인간의 어리석음을 하나님의 지혜와 대조하면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고전 1:18)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고린도전서 1장 18-31절에 여섯 차례 언급되는 ‘미련’(또는 어리석음) 중 첫 번째다.

 

고린도전서 1장 20, 21, 23, 25, 27절을 읽어 보라. 미련함에 관한 이 언급들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라는 바울의 말뜻을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되는가?

[고전1:20,21,23,25,27]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 25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답: 차원이 다른 이야기를 하면 낮은 차원 사람에게는 이해가 안 되고 미련한 헛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의 “미련한 것”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모리아’이다. 이 용어는 신약에서 다섯 번 등장하며 모두 고린도전서에 있다(1:18, 21, 23; 2:14; 3:19). 신약에는 ‘모리아’와 어근이 같은 동족어도 여러 번 언급되는데 그 대부분이 고린도전서에 나타난다.

 고린도전서 1장 18, 23절에 표현된 ‘미련한 것’이란 고린도 사람들의 지적 역량을 폄하하는 게 아니라 복음 진리에 대해 생각하기를 꺼리는 그들의 태도를 가리킨다. 그런 태도의 결과로 바울이 맞닥뜨리게 된 문제들이 바로 부도덕한 행동과 생각, 분별력의 부족, 심지어 하나님에 대한 배반이었다.

 고린도에서 바울이 처한 상황을 생각해 보자. 바울은 이른바 자신들의 지식, 지혜, 세련된 문화에 자부심을 지닌 도시로 왔다. 거기서 그는 갈릴리 출신의 유대인 나사렛 예수를 전한다. 그 예수라는 사람은 로마인에게 십자가형을 당해 죽은 뒤 부활했는데 이 모두가 그들의 죄뿐 아니라 세상의 죄를 위해서였다고 바울은 말한다. 이런 이야기를 과연 정상적이라 할 수 있을까? 이게 농담이 아니라 진실이라는 말인가? 이것은 새롭고 심오한 철학적 개념도 아니고 철학적 방법으로 분석될 수도 없다. 현명하고 유식한 고린도 사람이라면 절대로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이며 정신 나간 말이나 허튼소리로 들릴 말이다.

 바울의 메시지는 이방인에게 ‘미련한 것’으로 다가왔고 유대인에게는 더욱 어처구니없었다. 그 어떤 유대인이 로마인에게 처형당하는 메시아를 고대하겠는가? 메시아란 로마인에 의해 십자가에 달리는 존재가 아니라 로마를 뒤엎을 존재여야 하는데 말이다. 이렇듯 고린도에서 바울은 시작부터 많은 난관에 부딪혔다. 그럼에도 영혼들,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였다. 여기서 얻을 교훈은 무엇인가? 우리가 어떤 반대를 만나든 하나님께는 진리에 마음이 열린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분에게 쓰임받도록 준비되어 오늘날 사람들이 어디에 있든지 찾아가야 한다. 그곳이 고린도 같거나 그보다 더 심하다 해도 말이다.

 

나의 삶 속으로: 전혀 예상하지 않았지만 마음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이 있다면 누구입니까?

<부가설명> 삭개오 같은 사람은 예상하지 않았는데 마음이 열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이 아닐까? 십자가는 가장 흉악범에게 가해지는 형벌이다. 그런 형벌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세상의 구주라는 것을 그 시대와 가까운 시기의 사람들에게 웃음거리밖에 아무것고 아니었을 것이고 바울은 미치광이로 대우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고후5:13)라고 말했을 정도다. 세상의 지혜와 지식의 눈으로 볼 때 그리스도인은 미친 자들로 보이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온전한 정신이고 영생의 복음이 된다. 우리는 이 미련한 길을 생명의 길로 받았으니 세상의 복이 아니라 하늘의 복을 받은 것이다. 세상 사망의 복이 아니라 하늘의 생명 복을 잘 지켜야 할 것이다. 

 

7월 7일(화) 구원을 받는 이들에게는 능력

 

 고린도전서 1장 18절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십자가의 의미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에게 십자가는 미련한 것이지만 그분의 구원을 기다리는 자에게 십자가는 능력이다.

 

골로새서 1장 20절과 베드로전서 2장 24절을 읽어 보라. 예수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무엇을 이루셨는가?

[골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벧전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답: 우리의 죄를 그 몸으로 담당하여 예수님 안에서 하늘과 땅이 화목하게 하셨다.

 

 이미 살펴보았듯 복음을 전할 때는 “말의 지혜로 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시려는 것이다”(고전 1:17, 바른). 18절에서 미련한 것을 인간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능력과 대조하는 이유가 17절에서 쉽게 확인된다. 인간의 지혜와 정반대인 십자가는 인간의 지혜가 실제로 얼마나 미련한지를 드러낸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서 “멸망하는 자들”은 그리스어 원문에 의하면 자신이 저지른 행동의 결과를 거두는 사람을 말한다. 따라서 이 구절은 “십자가의 도가 ‘스스로를 멸망시키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라고 해석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멸망하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동사 ‘아폴뤼미’는 ‘멸망시키다.’라는 뜻도 동시에 지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절에서는 아폴뤼미를 ‘멸하다.’로 번역했다.

 바울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멸망하는 자들에 관한 진술(18절)의 출처로 그는 이사야 29장 14절의 하나님 말씀을 19절에 인용한다. 결국 19절에서는 멸망시키는 주체자가 다름아닌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셈인데 이것은 ‘스스로를 멸망시키는 자들’이라는 바로 앞 절의 이해와 조화되지 않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다. 하나님은 이미 스스로를 파멸로 몰아가고 있는 존재를 멸망시키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한편 ‘멸망하는 자들’과 달리 “구원을 받는 우리”(고전 1:18)라는 표현은 구원이 오직 하나님께로 말미암는 것임을 말해 준다. 구원은 받는 것이지 성취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는 결코 자신을 구원하지 못한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 밖에서 온다. 멸망은 제 스스로 끌어들일 수 있지만 구원은 오직 주어지는 것 즉 죄인에게 베푸시는 은혜의 선물이다. 고린도전서 1장 21절에서 분명히 알 수 있듯이 믿는 자를 구원하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이런 의미에서 ‘미련함’이란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제공하신 것(고전 1:30)을 거부하는 행위이며 그렇게 스스로 멸망을 선택하는 것이다.

 

나의 삶 속으로: 지혜로워 보였지만 어리석었고 미련해 보였지만 지혜로웠던 길은 무엇이었습니까?

<부가설명> 세상 사람들은 자기 생명이 자기 것인 줄 알고 생활한다. 조금만 더 생각하면 그 생명은 자기에게서 온 것이 아닌 것을 당연히 알것인데, 사탄이 파놓은 진화론의 구덩이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진화론은 아니라고 생명에 관해 생각하지 않고 그냥 태어났으니 자라고 살아가는 것쯤으로 여기고 지내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자살하는 사람은 자살해야 할 정도로 살아야 할 자기가 아닌데 그렇게 살아지니까 ‘에라’ 하고 자살하는 것이 아닐까? 분수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이런 상태를 하나님이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게 했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 관하여서는 미련하더라고 하늘 진리에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복이요 진정한 지혜다. 성경은 죽는 사람에게는 지혜가 없다고 분명히 말했다. “장막 줄을 그들에게서 뽑지 아니하겠느냐 그들이 죽나니 지혜가 없느니라”(욥4:21, 개역).

 

7월 8일(수) 십자가에 달린 메시아

 

 바울은 “유대인들은 표적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추구”한다고 했다(고전 1:22, 킹흠정). 십자가 다시 말해 메시아가 십자가에 달려야 한다는 하나님의 계획은 유대인들이 기대하는 표적이 아니었다. 그리스인들이 바라는 지혜도 아니었다. 십자가는 모두의 기대와 어긋났다.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야 한다는 예수의 가르침에 제자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읽어 보기만 해도(막 8:31, 32; 9:30-32; 10:32-34) 이런 개념이 특히 유대인에게는 얼마나 낯설고 혐오스러운 것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앞에서 말했듯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로마를 정복하길 바랐지만 적어도 세속적 군사력의 의미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수백 년간 그리스도인에게 십자가는 믿음의 상징이었다. 21세기를 사는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다는 것이 얼마만큼 허무맹랑한 소리였는지가 쉽게 와닿지 않는다. 그런데 십자가가 가장 깊이 묵상할 가치가 있는 주제인 이유는 그만큼 충격적인 메시지였기 때문이다. 십자가에 달린 메시아의 모습은 구속의 계획을 완성하기 위해 하나님이 어떻게까지 하실 수 있는지를 온 우주에 더없이 뚜렷하게 보여 준다. 십자가 그 자체 그리고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임당한다는 생각은 이 땅의 죄인인 인간들에게조차 충격적이다. 하물며 하늘에서 주 예수를 알고 그분께 경배했던 죄 없는 존재들에게는 얼마나 충격적이었겠는가!

 

사도행전 13장 16-47절을 읽어 보라(특히 26, 38, 47절). 십자가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행13:16~47] 26 형제들아 아브라함의 후손과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38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47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답: 십자가는 구원의 필수적인 도구다. 이것은 사망의 세상에 생명을 전하는 유일한 빛이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도록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보내셨다고 말한다. 그래서 바울은 십자가에 달린 메시아를 전했다(고전 1:23). 이런 생각을 그는 고린도전서 2장 1-15절에서 다시 밝힌다. 사도는 그리스도의 명령에 충성했다. 복음을 선포할 때 그는 “유식한 말이나 지혜”(고전 2:1, 공동번역)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분”(2절, 바른)께만 집중했다. 그의 말과 기별은 “지혜롭고 그럴듯한 말들로 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이 나타낸 증거로 한 것”(4절, 우리말)이다. “사람의 지혜”는 “하나님의 능력”과 분명하게 대조되기 때문이다(5절).

 

나의 삶 속으로: 십자가에 달린 메시아는 유대인과 그리스인에게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예상대로만 일하시지 않는다는 사실과 관련해 십자가에서 배울 점은 무엇입니까?

<부가설명> 이 세상 사람들은 자기의 실상을 전혀 모른다. 그들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죽어가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태초에 아담이 하나님과 언약을 어겼을 때(호6:7) 그들은 아담 안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은 종신수들인 것을 모를 뿐만 아니라 가르쳐도 차원 다른 세계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들으려고 하지 않고 미친자의 말로 돌린다. 인간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종신을 향해 죽어가고 있다. 하나님은 사망이 된 인간을 생명으로 옮기려고 하시는데, 먼저 사망을 처리해야 했다. 그래서 말씀 하나님께서 여자의 씨로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셨다. 그분은 남자의 씨가 아니다. 만약 남자의 씨는 모두 아담의 씨로 출생하는 자다. 남자 아단에게 주신 생명의 씨는 언약을 어길 때 하나님이 거두어가셨다. 그에게 남은 것은 종신할 때까지 구원의 날과 은혜의 시간으로 주신 것이다. 그 시간이 다 지나면 종신한다. 이것을 예수께서 대신 죽으셔서 인간의 종신을 없앤 것이다. 세상의 지혜가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예수께서 동정녀에게서 출생하신 이유를 깨달아야 하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를 깨달아야 하는데 인간 존제 자체가 종신수라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십자가의 도를 깨닫는 철 발을 떼는 것이다. 우리 주님 얼마나 답답하실까?

 

7월 9일(목) 하나님의 능력이자 지혜이신 그리스도

 

 고린도전서 1장 19, 20, 30, 31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와 인간의 지혜는 근본적으로 다르며 서로 배타적이라고 말한다. 바울이 지혜 자체를 거절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과 맞붙는 인간의 지혜를 거절한다는 점을 주목하라. 인간의 지혜는 사람을 죄에서 해방할 수 없다. 이 일은 하나님의 지혜이신 그리스도만이 하실 수 있다. 아래 도표를 보라.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 [십자가의 도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고전 1:18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고전 1:24

 

 고린도전서 1장 18, 24절에 따르면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능력이신 이유는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21절). “구원을 받는 우리”(18절), “믿는 자들”(21절), “부르심을 받은 자들”(24절)은 모두 같은 무리 즉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경험하는 이들을 언급한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이기도 하다. 이는 인간의 지혜로 해결할 수 없는 죄 문제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힘입어 해결하신다는 뜻이다. 이 세상의 지혜로는 사람이 하나님을 알 수 없다(고전 1:21).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딤후 3:15).

 

고린도전서 1장 24-29절을 읽으면서 “어리석음” “약하심” “능력” “지혜”와 같은 용어를 눈여겨보라. 바울의 요점은 무엇인가?

[고전1:24~29]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답: 하나님의 지혜와 인간의 지혜를 대조하여 인간의 지혜는 그 자체로서는 하나님의 지혜를 이해지 못한다는 것을 드러낸다. 그래서 하나님의 지혜를 받으라는 간절한 호소다.

 

 고린도전서 1장 24-29절을 읽어 보면 어리석음(미련함), 약함 같은 말이 눈에 띈다. 인간의 지혜로는 십자가의 도가 미련하고 약하게 보일 수 있다고 바울은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어리석은 것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연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다”(고전 1:25, 바른). 이것은 하나님이 약하거나 어리석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인간보다 얼마나 뛰어난지를 나타낸 표현이다.

 

나의 삶 속으로: 혼자서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움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부가설명> 혼자서가 아니라 인류 전체가 매달려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사망 문제다. 역으로 생명 문제라고 해도 괜찮다. 사람 사이의 문제도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을 때 도울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 그런데 사망 문제는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그도 사망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나는 생명이요 부활이라고 선언하셨을 때 사망에 관한 것은 오직 예수님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선포다. 그런데 어리석은 세상 지혜는 사람이 스스로 해결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래서 냉동 사람도 생기고 기계 사람도 만든다. 그것이 생명이 되겠는가? 생명은 오직 생명에게서만 나온다. 생명 아닌 것에서 생명이 나올 수 없다. 그런데 이 세상 종신수들은 생명 아닌 것에서 생명을 찾으려고 헛된 노력을 한다. 그러면 생명의 복음을 미련하게 여긴다. 자기 노력이 거부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기가 뭔가를 해야 보람을 느끼는 성벽(性癖)이 있기 때문이다. 버리지 못하는 타고난 성벽이다. 그것이 해로운 줄 알면 버리는데, 유익하다고 생각하니 버리지 못한다. 

 

7월 10일(금) 더 깊은 묵상을 위해

 

『시대의 소망』 제78장 ‘갈보리’(741-757)를 읽어 보라.

 

 “오늘날 사람들에게 갈보리의 십자가는 거룩한 역사로 기억되고 있다. 그들에게 십자가의 장면은 신령한 개념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바울 당시의 사람들은 십자가를 혐오와 공포의 감정으로 대했다.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이를 인류의 구주로 높이는 일은 당연히 조롱과 반대를 불러일으켰다.

 바울은 고린도의 유대인과 그리스인 모두가 자신의 메시지를 어떻게 생각할지 잘 알고 있었다. …유대인 청중 가운데는 그가 선포하려는 기별로 인해 분노할 사람이 많았다. 그리스인들도 그의 말을 터무니없고 어리석다고 여길 것이다. 십자가가 인간의 향상이나 인류의 구원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밝히려다가 오히려 어리석은 사람으로 여겨질 상황이었다.

 그러나 바울에게 십자가는 가장 흥미로운 단 하나의 관심사였다. 한때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힌 나사렛 예수의 추종자들을 박해했지만 그러한 삶에서 돌아선 순간부터 그는 끊임없이 십자가를 드높였다. 그때 그에게는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이 계시되었고 그의 삶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 자신의 계획과 목적이 모두 하늘과 조화를 이루게 되었다. …죄인이 일단 아들의 희생으로 나타난 아버지의 사랑을 바라보고 거룩한 감화에 순복하면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고 그 후로는 그리스도가 가장 귀중해진다는 사실을 바울은 경험으로 몸소 터득했다”(사도행적, 245, 246).

 

함께 나누기

1.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는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마 26:39)라고 하셨다. 이 기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치르신 엄청난 대가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답: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일을 감당하신다는 것을 말한다.

2. 바울은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다’고 말한다(고전 1:25). 하나님의 지혜는 사람의 지혜와 어떻게 다른가?

*답: 하나님의 지혜은 생명이고 사람의 지혜는 사망이다. 그렇게 다른다.

3.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라는 기별은 유대인에게 거리끼는 것이며 그리스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전하는 성경의 기별 중 어떤 것이 사람들에게 그렇게 여겨질 수 있을까?

*답: 부활과 재림의 기별과 새 하늘 새 땅의 기별이 아닐까? 조사심판의 기별도 그렇다.

4. 바울은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고전 2:14)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를 소개해야 사람들의 마음에 와닿을까?

*답: 그것은 성령의 역사로 가능할 뿐이다. 그래서 기도하고 자기 사상을 버리고 성령님의 지도에 전적으로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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