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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과 바울의 고린도 사역(질문, 대답, 설명) 07/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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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6-06-26 02:50 조회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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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과 바울의 고린도 사역

7월 4일 안식일 / 일몰 오후 7시 57분

 

기억절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행 18:9, 10)

 

● 연구 범위 -고전 1:1; 갈 1:1; 행 17:16-34; 고전 5:9-11; 행 18:4-10; 고후 2:4

 

 영국의 위대한 선교사 윌리엄 캐리는 구두 수선이 생업이었지만 자신의 진짜 사업은 영혼 구원이라고 말하곤 했다.

 마찬가지로 바울은 천막 만드는 일로 생활비를 벌었지만(행 18:1-3) 그의 진짜 사업은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일이었다.

 이번 주에는 바울의 고린도 교회 사역을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고린도 교회는 문제투성이였고 그 문제들은 거의 2,000년이 지난 오늘날의 교회가 겪는 문제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교회에 몸담았거나 직분을 맡은 사람이라면 신앙 연수에 관계없이 누구나 이런 의문이 떠오를 것이다. ‘과연 문제없는 기독교 공동체가 존재할까?’ 답은 자명하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마주한 문제들을 십자가의 기별로 헤쳐 나간다(고전 2:2). 십자가의 메시지에 충실하다면 오늘날의 문제들도 헤쳐 나갈 수 있다. 이번 기에 살피게 될 고린도전·후서의 메시지는 우리의 삶에도 적용된다.

 

말씀 속으로

“1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6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7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침례를 받더라 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행 18:1, 4-10)

 

토의 질문

1. 시간 여유가 생길 때 하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답: 각각 대답할 질문이다.

2. 바울은 왜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했나요?

*답: 그분과 그분의 십자가가 모든 문제의 해결이기 때문이다.

3. 고린도에서는 어떤 선교적 도전들이 있었나요?

*답: 종교적 도덕적 부패가 만연했고 교회가 그 영향을 크게 받았다.

4. 하나님은 어떻게 바울의 고린도 사역을 격려하셨나요?

*답: 친히 환상으로 바울에게 나타나셔셔 격려했다. 

 

핵심 교훈: 고린도 교회는 안팎으로 다양한 도전을 만났고 바울은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원동력으로 이 문제들에 맞섰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문제없는 교회는 없다. 고린도전·후서는 문제 많은 현실 속에서도 교회가 어떻게 복음 위에 서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

 

6월 28일(일) 하나님이 부르신 예수의 사도, 바울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첫머리에서 바울은 자기를 “하나님의 뜻을 따라” 부름 받은 예수의 사도라고 소개한다(고전 1:1; 고후 1:1). 자신이 예수와 어떤 관계인지를 확신했기에 그의 편지는 대부분 비슷한 형식으로 시작한다.

 

고린도전서 1장 1절과 로마서 1장 1절을 읽어보라. 바울의 사역에서 어떤 두 가지 요소가 강조되고 있는가?(갈 1:1 참조)

[고전1: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롬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갈1: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답: 바울은 사도가 된 것을 하나님의 뜻을 따 부르심을 받아서 직분을 받았다고 말한다.

 

 바울은 자신의 부르심과 사도 직분을 하나님 뜻에 따른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다고 그는 확신했다(갈 1:1). 예레미야처럼 바울은 모태에 있을 때 하나님의 은혜로 부름받았는데(갈 1:15) 이는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고린도전서 15장 8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부활 이후 자신에게도 나타나셨다고 말한다(고전 15:5-7). 이어지는 몇 절에서는 그렇게 예수를 만난 결과 자신이 사도로 부름받았음을 암시하고 있다.

 “예수의 사도”라는 칭호는 몇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데 가장 먼저는 ‘예수께서 보내신 자’라는 뜻이다. 바울은 자기를 종으로 소개할 때는 물론 복음 전파자와 교사로 소개할 때도 이 표현을 사용한다(롬 1:1; 딛 1:1; 갈 1:10). 복음을 전할 때든 가르칠 때든 그의 기별에는 언제나 그리스도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바울은 예수의 사도였다.

 바울에게 예수는 사도직의 중심일 뿐 아니라 삶의 중심이셨다. 바울의 생각과 감정은 예수로 꽉 차 있었다. 고린도전서의 서두와 감사 부분에서 그가 예수를 거듭 언급한 것으로 그 사실이 드러난다(아홉 절에 걸쳐 아홉 번). 바울은 예수에 관하여 생각하고 말하기를 멈출 수 없을 정도로 그분을 사랑했다. 그는 자신이 보살피는 이들에게 예수를 전했고 그들의 삶 또한 그리스도 중심적이기를 바랐다. 그는 사도로 부름받았고 그들 각자도 주어진 역량대로 충성스럽게 예수를 따르도록 부름받았다.

 

나의 삶 속으로: 바울은 사도로 불렸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에 부름받았으며 왜 이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여기고 있습니까?

<부가설명> 사도라는 이름은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친히 주신 이름이다(눅6:13). 헬라어로는 ‘아포스톨로스’라고 하는데, 아포는  ‘~로부터’, ‘~을 떠나서’라는 전치사고 스텔로는 보낸다는 뜻이다. 이것은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말인데, 예수께서 12제자에게 친히 주신 이름이니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다. 사도라는 것을 직설적으로 말하면 심부름꾼이라는 말이다. 에수님의 심부를꾼인데, 심부름꾼은 심부름을 시킨 분이 주신 내용을 올바르게 듣고 바르게 전해야 한다.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 왕을 반역하다가 우거진 숨에서 머리가 상수리나무에 걸려 요압에게 죽임을 당하고 반역군이 패퇴했을 때 이 소식을 전하려고 두 사람이 다잇에게 달려갔는데 발이 빠른 아히마아스가 먼저 도착했으나 압살롬이 죽었다는 말을 못 했다. 다윗이 그를 죽이지 말라고 부탁한 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히마아스는 소식을 바르게 전하지 못한 심부름꾼이다. 심부름 하나마나한 사람이다. 예수님의 사도들은 그러면 안 된다. 우리는 비록 사도라는 칭호를 감히 쓰지 못하지만, 복음을 전해야 하는 심부름꾼인 것은 분명하다. 모든 재림 신자가 다 복음의 심부름꾼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6월 29일(월) 아테네에서 고린도까지

 

사도행전 17장 16-34절을 읽어 보라. 바울은 고린도로 가기 전에 어디 있었고 거기서 무엇을 했나?

[행17:16~34] 아레오바고에서 설교한 것이 주 내용이다. 각각 찾아 읽어보자. 본문이 길어서 여기 옮기지 않는다.

*답: 아테네에서 많은 우상을 보고 그들에게 전도하다가 아레오바고에서 대단히 중요한 복음의 진수를 설교했고 몇 사람을 얻었다. 

 

 사도행전 17장 16-34절에 따르면 바울은 고린도로 가기 전에 아테네(아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본래 아테네 방문 계획은 없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베뢰아에서 반대를 만나 친구들의 도움으로 아테네에 간 것이다(행 17:13-15).

 바울과 함께 아테네까지 온 이들은 디모데와 실라를 최대한 빨리 자기에게 보내라는 바울의 명을 받고 베뢰아로 돌아왔다(15절). 바울이 그들을 기다리는 동안 무엇을 했는지가 17장 16-34절에 나와 있다. 그는 회당, 시장, 아레오파고스(아레오바고)에서 예수에 관하여 이야기했다. 예수에 관하여 말하지 않고는, 모든 기회를 거기에 쓰지 않고는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사도행전 18장 1-11절을 읽어 보라. 고린도에 도착해 거기 머무는 내내 바울은 무엇을 했는가?

[행18:1~11]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6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7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침례를 받더라 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11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답: 고린도에 가서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증거했다. 그곳에서 1년 육 개월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다.

 

 바울은 2차 선교 여행 중 고린도로 갔다. 거기서 1년 반을 머물렀다고 누가는 말한다.

 평소처럼 바울은 선교를 회당에서 시작한다(행 18:4-6). 사도행전 17장 1, 2절에 따르면 이것이 그의 습관이었다. 그는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명하신 ‘유대인 우선’ 전략을 따랐다(행 1:8; 롬 1:16; 행 13:46).

 마침내 실라와 디모데가 고린도에서 합류하자 바울은 “말씀 전하는 데만 전념해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유대 사람들에게 증언”했다(행 18:5, 우리말). 고린도에 있을 때 그는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다”(행 18:11, 바른). 고린도 교인들과 함께 지내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분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하였다.”(고전 2:2, 바른)는 유명한 진술도 이런 상황에서 나온 말이다.

 

나의 삶 속으로: 바울의 아테네와 고린도 선교에서 배울 점은 무엇입니까? 

*답: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 열정이 우리의 열정이 되도록 복 주시기 바란다.

 

<부가설명> 우리는 폐가 가슴에 있다는 것과 내가 생명이 있다는 사실을 의식적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그래도 폐는 숨을 쉬게 한다. 특별한 호흡이 아니면 호흡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 폐가 제 일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의식하지 않는다.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다면 우리 생명이 말씀을 증거하게 한다. 삶 자체도 말씀의 실현이 된다. 의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거듭난 생명이 작용하는 것이다. 폐가 호흡하도록 하는 것을 의식하지 않아도 호흡하는 것과 같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의 선한 삶을 보고 빛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다. “어떤 이는 자신이 합당한 자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이들에게 결코 당신이 합당해질 수 없다고 말하고 싶다. 만약 그것이 가능했다면 하늘의 왕자께서 이 세상에 오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6월 13일 아침 기도력에서

 

 

6월 30일(화) 도시 고린도

 

사도행전 18장 1-3절, 고린도전서 5장 9-11절, 8장 4절을 읽어 보라. 고린도의 경제, 도덕, 신앙생활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는가?

[행18:1~3]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고전5:9~11]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10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11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고전8: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답: 상업이 잘 되는 지역인 것을 알 수 있다. 또 음행이 보편화 되어 있는 성문란의 도시인 것도 알 수 있고, 우상의 도시인 것도 알 수 있다.

 

 고린도는 고대 세계의 경제 중심지로 무역이 발달한 도시였다. 이 도시는 기원전 146년 로마에 의해 파괴됐고, 기원전 4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재건해 로마 식민지로 삼았다. 신약에 등장하는 것은 로마 치하의 고린도이다. 바울 당시 고린도는 아테네와 어깨를 견주었고 아테네를 앞서는 부문도 많았다. 고린도에는 중요한 항구 두 곳이 있어서 물품 교환과 무역이 성행했다.

 실제로 바울이 고린도를 택한 이유도 이런 중요성과 지리적 이점 때문이다. “이렇듯 복음이 전파될 기회가 주어졌다. 고린도에 일단 복음이 확립되면 세상 곳곳으로 손쉽게 퍼질 수 있었다”(바울의 생애, 99).

 또 고린도의 활발한 경제 덕분에 바울은 거기서 복음을 전하는 동안 천막업자로 생계를 유지하기가 매우 수월했다(행 18:2, 3). 그러나 크고 부유한 도시에서는 선교하는 데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고린도에는 종교다원주의 또한 두드러졌다(고전 8:5). 아폴로, 아테나, 아프로디테를 위한 신전이 많았고 세라피스와 이시스 같은 이집트 신들도 숭배했다.

 다양한 종교에 더해 고린도는 성적인 방탕으로도 유명했다. 고대 그리스의 지리학·역사학자인 스트라보는 고린도의 아프로디테 숭배에 고용된 신전 창녀가 1,000명이나 되었다고 말한다. 이런 주장을 고린도에 대한 아테네 측의 과장된 평가라고 여기며 의구심을 품는 학자도 많지만 신전 창녀는 고대 세계에서 흔했다. 음행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고린도에서도 문제였다. 우상 숭배와 부도덕은 일상의 일부였고 이 안타까운 현실이 고린도전·후서 상당 부분의 배경이다.

 

나의 삶 속으로: 고린도에서 바울이 마주한 선교적 도전은 우상 숭배와 방탕에 빠진 사회상이었습니다. 고린도와 오늘날 도시 간의 차이는 얼마나 될까요?

 

<부가설명> 고린도는 그 시대의 소돔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도시였다. 아프로디테 신전은 높은 언덕에 자리하고 있었다. 아프로디테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잘 모르는 이름이다. 이것은 로마신화에서는 비너스라고 한다. 미와 사랑의 여신이라고 하는 신이다. 그들이 말하는 사랑은 남녀간의 정사하는 것으로 나타내었다. 그래서 그 신전에 천명이나 되는 종교창녀가 있었다. 구약에도 이 창녀가 나타난다. 일반 창녀는 조나라고 한다. 그런데 종교창녀는 ‘케데샤’라고 했다. 이 말은 거룩하다는 말, 코데쉬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래서 흔히 성창(聖娼)이라고 한다. 우리말로 직역하면 ‘거룩한 창녀’라는 표현이 된다. 고린도의 창녀는 바로 카데샤였다. 이것은 창세기 38장 유다와 다말 사건을 기록한 곳에 다 나타나는 단어다. 그래서 신전에 가서 신전창녀들고 성관계하는 것은 전혀 죄로 여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신을 섬기는 일이 되었다. 그러니 고린도는 음란의 도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로 무감각해진 성도덕이 교인이 된 후에도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울에게 이 도시에 하나님의 백성이 많다고 하셨다. 정말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다. 요즘 지구촌 전체가 고린도와 소돔 같이 되지 않았은가?

 

7월 1일(수) “이 성중에 많음이라”

 

사도행전 18장 4-8절을 읽어 보라. 바울이 전한 결과는 어땠는가?

[행18:4~8]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6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7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침례를 받더라.

*답: 유대인의 방해가 있었으나 회당장도 복음을 받아들였고 많은 고린도 사람이 믿고 침례를 받았다. 

 

 고린도의 유대인들에 대한 바울의 사역은 기대만큼의 성과가 없었다. 그는 적대와 증오를 당했다. 성경에서는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행 18:6)했다고 말한다. 그리스어 동사 ‘블라스페메오(신성 모독하다.)’는 그 목적어가 사람일 때 ‘비방하다.’ ‘헐뜯다.’라는 뜻이 된다. 말하자면 그들은 바울의 명성을 훼손하고 그의 선교적 노력이 성공하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다행히도 바울의 고린도 회당 사역이 헛되지만은 않았다. 이 선교를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그분께서는 “(내 말은)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않는다”(사 55:11, 쉬운)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일부 유대인들이 상상도 못할 일이 일어났다. 회당장 그리스보와 온 집안이 예수를 메시아로 영접하고 침례를 받은 것이다. 게다가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침례를” 받았는데 이는 그리스보의 영향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행 18:8).

 

사도행전 18장 9, 10절을 읽어 보라. 고린도에서 반대를 겪을 때 바울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하나님은 자신의 종을 어떻게 격려하셨나?

[행8:9,10]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답: 환상 중에 예수께서 나타나셔서 침묵하지 말고 복음을 전하라고 격려하시고 아무도 그를 대적하여 해롭게 못할 것이라고 보증하셨다. 주님이 함께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

 

 회당을 떠난 직후 바울은 용기가 되는 경험을 했다. 그리스도께서 밤에 환상 가운데 나타나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니라”는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을 상기시켜 주신 것이다. 실제로 바울은 고린도에서 자신이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고전 2:3)라고 고백한다. 그는 거센 반대 때문에 베뢰아를 떠나 아테네로 갔고 또 다른 큰 반대로 고린도에서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예수께서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행 18:10)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바울은 그분의 도구가 되어 구원의 소식을 고린도 사람들에게 전해야 했다.

 

나의 삶 속으로: 이사야 41장 10절을 읽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어떤 놀라운 약속을 주시나요? 이 성경 구절에서 어떤 희망을 발견할 수 있나요?

*답: 예수께서 친히 이 말씀을 인용하셔서 바울을 격려하고 안심시켰다. 감사하지 않은가?

 

<부가설명> 전도인은 성령님이 사용하시는 도구다. 그래서 심부름꾼이다. 12제자에게는 사도라는 칭호를 주셨지만, 풀이하면 예수님의 심부름꾼이다. 예수님도 아버지 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 오셨다. 그래서 예수님도 사도라고 했다(히3:1). 심부름꾼이라는 뜻으로 모든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사도들이다. 예수께서 요한복음 17장에서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요17:18)라고 하셨다. 우리는 심부름 잘해야 한다. 심부름꾼은 보낸 사람이 준 기별대로 전하고 답을 받아야 한다. 단순히 전하기만 하는 것도 있고 답을 받아야 하는 것도 있다. 복음의 심부름꾼은 이 둘 다에 해당한다. 답을 받는 것은 복음을 영접하는 자를 교회로 데리고 가는 것이고 전하는 것은 복음을 열심히 전하는 것이다. 주인은 주님이시고 성취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시기 때문에 맡기고 심부름꾼의 직무를 잘 감당하는데 주신 달란트 대로 각각 받은 믿음의 분량대로(롬12:3) 심부름하면 된다. 다만 맡은 자는 충성해야 한다(고전4:2).

 

7월 2일(목)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내는 바울의 편지

 

고린도전·후서에서 다음 구절들을 읽어 보라.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편지를 보낸 이유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는가? 고전 1:11-13; 4:14; 5:11; 7:1; 14:37, 40; 고후 1:12; 2:9; 11:3; 13:10

[고전1:11~13]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12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13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침례를 받았느냐.

[고전4:14]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고전5:11]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고전7:1]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고전14:37,40]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는 이 글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 40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고후1:12]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고후2:9] 너희가 범사에 순종하는지 그 증거를 알고자 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고후11:3]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고후13:10] 그러므로 내가 떠나 있을 때에 이렇게 쓰는 것은 대면할 때에 주께서 너희를 넘어뜨리려 하지 않고 세우려 하여 내게 주신 그 권한을 따라 엄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답: 고린도교회 안에 나타난 다양한 문제들에 관해 바른 이해를 하게 하고 해결하기 위하여 이 편지를 써 보냈다.

 

 고린도전서를 쓸 당시 바울은 에베소에 있었다(고전 16:5-9). 글로에의 가족은 고린도 교회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가지고 그를 찾아갔다(고전 1:11). 바울은 글로에의 가족에게 전해 들은 문제를 고린도전서 1-6장에서 언급한다. 파벌 싸움, 성적 부도덕, 소송, 매춘도 그 문제에 포함되어 있었다. 바울은 구체적인 질문이 담긴 편지도 받았다(고전 7:1). 그의 대답은 7장부터 계속 이어진다. 결혼, 이혼, 독신, 우상에게 바친 제물, 예배드릴 때의 몸가짐, 영적 은사의 활용, 그릇된 부활 개념 등에 관한 내용들이다. 고린도 교회는 문제가 많았고 미숙했다. 여러분의 교회에도 여러 문제가 있을 테지만 아무래도 고린도 교회가 훨씬 더 심각했을 것이다.

 고린도전서는 이 시대와 관련이 깊다. 오늘날도 많은 교회에서 어느 정도 비슷한 일을 겪고 있지 않는가? 이 서신은 우리에게 할 말이 많다. “바울의 서신을 통틀어 고린도전서는 가장 풍성하고 가장 교훈적이고 가장 강력한 서신 중 하나이다”(사도행적, 301).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서너 차례 편지를 보냈을지도 모른다(고후 10:9 참조). 그가 맨 처음에 쓴 글은 고린도전서보다 앞서지만(고전 5:9) 현재는 분실됐다. 또 그는 학자들 사이에 ‘엄중한 서신’(고후 2:3, 4, 9; 7:8)이라고 불리는 편지도 고린도후서보다 먼저 썼는데 이 또한 오늘날 전해지지 않는다. 이 편지를 고린도전서라고 여기는 이도 있고 그 일부가 고린도후서에 포함되었다고 보는 이도 있다.

 고린도 교인들이 주변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고린도후서에서 확인된다. 그들은 경쟁과 권력, 재물을 중시했는데 오늘날의 교회 역시 이런 문제로 어려워질 수 있다. 바울은 이에 맞서 그리스도 중심의 문화 즉 복음의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이룩하고자 힘썼다. 현재의 세상도 우리는 복음이라는 렌즈로 바라보아야 한다.

 

나의 삶 속으로: 고린도후서 2장 4절을 다시 읽어 보십시오. 이들에게 바울이 얼마나 깊은 관심을 쏟았나요?

 

<부가설명> 우리는 출애굽기부터 여호수아까지를 읽으면서 옛 이스라엘의 광야 시절고 가나안 정복 전쟁 시절의 상태를 볼 수 있다. 특히 광야 40년 세월은 문제 투성이 세월이었다. 스데반은 그것을 광야 교회라고 했다(행7:38). 고린도 교회는 광야교회의 가장 말썽 많았을 때의 모습같다. 오늘날 우리도 광야교회 같은 환경의 교회생활하고 있지 않을까? 말씀을 사모하고 순복하는 정신이 점점 없어져가는 말씀 기근의 시대다. 말씀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말씀을 들으려고 하는 열정이 없다. 아울러 교회 출석해서 영과 진리로 예배하려는 정신이 희박해진다. 거의 습관적으로 교회만 다닌다. 삶의 모습은 그리스도인 모습이 아니다. 땅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삶을 위하여 시간을 바치고 즐거움을 찾는다. 교회 다니는 것은 그냥 생활의 한 분야로 다니는 것이다. 진리의 말씀이 아니라, 오랫동안 사귄 친구들이 있어서 다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고린도 교회가 따로 없다. 내가 그 교회의 말썽피우는 교인일 수 있다. 바울처럼 깨닫는 사람이 먼저 다른 이들을 사랑하고 격려하는 믿음을 행사하자.

 

7월 3일(금) 더 깊은 묵상을 위해

 

『사도행적』 제24장 ‘고린도’(243-254)를 읽어 보라.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할 때 사도는 아테네에서 했을 때와 다른 방법을 따랐다. …그는 복잡한 논쟁과 토론을 피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했다”(사도행적, 244).

 “바울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 교회를 세우는 것이 현명한 일인지 의심스러웠다. 그는 고린도를 신뢰하기 어려운 사역지로 여겼고 그곳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더 유망한 곳을 찾아 고린도를 떠날 생각을 하고 있을 때…주님께서 밤에 환상 가운데 그에게 나타나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바울은 이를 고린도에 남아 있으라는 명령이자 뿌려진 씨앗을 주님께서 자라게 하신다는 약속으로 여겼다. …큰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 세워졌다”(바울의 생애, 106, 107).

 “기록에 따르면 바울은 1년 6개월간 고린도에서 수고했다. 그런데 그 노력은 이 도시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그는 고린도를 본부로 삼았다. …그렇게 여러 교회가 세워졌다. …바울이 교회를 비웠을 때는 영향력 있는 서신들이 역할을 일부 대신했고 많은 사람은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 …교인들은 이 편지들을 읽었다”(바울의 생애, 109).

 

함께 나누기

1. 바울은 자신이 예수의 사도이며 이 부르심을 하나님께 받았다고 확신했다. 자신이 누구이며 소명이 무엇인지가 왜 중요한가?

*답: 그것은 헌신과 충성의 근거가 된다. 이것은 봉사의 척도가 된다.

 

2. 잠시 동안 바울은 고린도에서 선교 사역을 포기하고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바뀐 계기는 무엇인가? 이것은 선교 사역을 포기하고 싶을 때 어떤 도움이 되는가? 그런데 포기해야 할 때도 있지 않을까?

*답: 예수께서 친히 나타나셔서 격려하시고 계속하도록 권고하셨다. 이 권고는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권고다. 포기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기도로 결정해야 할 것이다.

 

3. 고린도 교인들은 주변 문화에 큰 영향을 받았다. 오늘날 우리의 처지도 똑같다. 세상에 살면서도 “육체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세상 살림에 대한 자랑”(요일 2:16, 새번역)에 영향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밖에도 우리 교회는 세상 문화에서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가?

*답: 오늘날 인터넷 등 이런 기기들로 모든 사람이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이럴 때 예수님께 눈을 고정해야 할 것이다. “소경이 누구냐 내 종이 아니냐 누가 나의 보내는 나의 사자 같이 귀머거리겠느냐 누가 나와 친한 자 같이 소경이겠느냐 누가 여호와의 종 같이 소경이겠느냐

20 네가 많은 것을 볼지라도 유의치 아니하며 귀는 밝을지라도 듣지 아니하는도다”(사42:19,20). 이 구절은 읽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보인다. 그런데 증언에는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세상에 관하여 이렇게 사셨다고 이 구절을 인용했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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