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과 영원으로(질문, 대답, 설명) 06/2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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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6-06-19 21:59 조회36회 댓글0건본문
제13과 영원으로
(6월 27일 안식일/일몰:오후 7시 57분)
● 연구 범위 시 80, 살전 4:17, 계 21:9-27, 사 25:8, 계 7:17, 계 21:4, 요 6:44
● 기 억 절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요일 3:2).
당신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까? 그것은 벅참, 설렘, 두려움, 경이로움을 함께 느끼게 한다. 예수님은 신실하시며 그분의 말씀은 참된 것을 기억하라(계 3:14). 장차 고난의 때가 있을 것이다(마 24:21, 22) 그러나 주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거나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히 13:5). 그분은 말씀하신 대로 행하실 것이다. 예수님은 언제나 그러하셨고 앞으로도 그러실 것이다(히 10:23).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마 24:13)을 것이다.
이 땅에 우리에게 남은 날이 얼마이든지 우리는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그분을 굳건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의 관심을 빼앗아 가는 세상 속에서 이렇게 하는 것이 항상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바라봄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시 25:15)이라고 다윗처럼 고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주에는 천국의 상급과(마 5:12, 계 22:12) 천국은 어떤 곳일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를 창조하시고 죽기까지 사랑하셔서 죄에서 구속하시고 곧 다시 오실 분과 마침내 함께하게 되는 일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알아보자. 우리는 그때까지 믿음으로 굳게 견디면 된다.
※ 학습 목표
깨닫기 : 주님의 약속은 참되기에 확신할 수 있으며 그 날에 우리는 하늘 도성에 거할 것이다.
느끼기 : 우리가 부족함을 느낄지라도 그분은 내쫓지 않으며 내게 오라고 초청하신다.
행하기 : 소망을 간직하고 날마다 하늘을 바라며 살 때 하늘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TMI 위로
➋ 우리는 무엇을 통해서 구원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시 80:19)
*답: 여호와께서 우리를 돌이켜 주셨기 때문이다.
➌ 오랫동안 기다린 재림의 약속이 분명 이루어질 것을 무엇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까?(계 22:20)
*답: 예수님의 약속으로 확신할 수 있다.
➍ 주께서 예비한 새 예루살렘을 어떻게 묘사할 수 있으며 성경은 무엇으로 표현합니까?(계 21:2)
*답: 신부가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것으로 비유했다.
➎ 하늘에 있는 백성의 이마에 그분의 이름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계 22:4)
*답: 그들의 생각은 오직 하나님께 집중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➏ 오늘도 우리에게 주어진 오라 하시는 초청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습니까?(요 6:44)
*답: 오늘도 구원받을 기회가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결론: 우리는 세상에 거하지만 예수께 시선을 고정해야 한다. 그분이 행하신 일을 받고 용서 받았으며 믿음을 통해 완전한 의로 덮인 것을 알 때 당신은 구원받았음을 알 수 있다. 그날 고대하던 그분을 대면하게 될 것이다. 그의 약속은 참되기에 확신할 수 있으며 그날에 우리는 하늘 도성에 거할 것이다. 이 땅에서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는 것처럼 예수님은 하늘에서도 인도하실 것이며 우리는 항상 그분을 따르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부족함을 느낄지라도 예수님은 결코 내쫓지 않으시며 내게 오라고 하신다. 또 속히 다시 오겠다고 하신 소망을 마음에 간직해야 한다. 하늘이 익숙하고 그것을 위해 준비될 때 우리는 영원에 들어갈 수 있다.
6월 21일(일) 오늘을 살라
주위를 둘러보면 세상은 요동치고 신음하며 예수께서 말씀하신 징조들이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전쟁과 전쟁의 소문,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고 기근과 전염병, 지진, 박해(마 24:6-11)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심해지는 듯하다. 그렇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굳건한 관계가 필요한 위기의 때를 살고 있다.
우리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는 말씀을 들었다.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더욱 굳건히 하고 강화해야 할 때이다. 시간이 앞으로 얼마나 오래 지속되든지 우리 개인의 삶은 아무리 장수한다고 해도 항상 짧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 4:13, 14, 새번역). 이 경고가 얼마나 진실한지 우리는 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중 어떤 이는 오늘이 끝날 때쯤에는 더 이상 살아 있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이 죄가 들어온 이후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슬픈 현실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확고히 하고 항상 하나님과 그분의 구원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하루를 사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시편 80편은 하나님께 드리는 아름다운 기도이다. 이 시를 읽고 그중에서 1-3, 14-17, 18, 19에서 “우리” 대신 “나”라는 단어를 넣어 보라. 이 시편과 지금의 시간, 장소, 상황이 아무리 다르더라도 당신은 개인적으로 어떤 점에서 이 시편에 공감할 수 있는가?
[시80:1~19] 요셉을 양 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귀를 기울이소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이여 빛을 비추소서 2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므낫세 앞에서 주의 능력을 나타내사 우리를 구원하러 오소서 3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4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백성의 기도에 대하여 어느 때까지 노하시리이까 5 주께서 그들에게 눈물의 양식을 먹이시며 많은 눈물을 마시게 하셨나이다 6 우리를 우리 이웃에게 다툼 거리가 되게 하시니 우리 원수들이 서로 비웃나이다 7 만군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회복하여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8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 9 주께서 그 앞서 가꾸셨으므로 그 뿌리가 깊이 박혀서 땅에 가득하며 10 그 그늘이 산들을 가리고 그 가지는 하나님의 백향목 같으며 11 그 가지가 바다까지 뻗고 넝쿨이 강까지 미쳤거늘 12 주께서 어찌하여 그 담을 허시사 길을 지나가는 모든 이들이 그것을 따게 하셨나이까 13 숲 속의 멧돼지들이 상해하며 들짐승들이 먹나이다 14 만군의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돌아오소서 하늘에서 굽어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돌보소서 15 주의 오른손으로 심으신 줄기요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신 가지니이다 16 그것이 불타고 베임을 당하며 주의 면책으로 말미암아 멸망하오니 17 주의 오른쪽에 있는 자 곧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신 인자에게 주의 손을 얹으소서 18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에게서 물러가지 아니하오리니 우리를 소생하게 하소서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19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돌이켜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우리에게 비추소서 우리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답: 구원받아야 한다는 상황은 같고 주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이 같다. 주님께서 생명과 생활에 진정한 부흥을 주셔야 한다는 것이 같다.
우리 모두는 삶에 부흥이 필요하다. 우리는 쉽게 안일해 지거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과 지금도 행하고 계시는 일을 잊어버리곤 한다.
신실한 신자라면 비록 고난 중일지라도 시편 80:19처럼 “주의 얼굴의 광채를 우리에게 비추소서 우리가 구원을 얻으리이다”라고 기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을 받아들이고 우리의 죄가 용서받았으며 믿음을 통해 받은 그분의 완전한 의로 덮여 있음을 알 때, 우리는 주님 안에서 구원받았음을 알 수 있다.
교훈: 예수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일을 받고 죄가 용서받았으며 믿음을 통해 받은 완전한 의로 덮여 있음을 알 때, 당신은 주님 안에서 구원받았음을 알 수 있다.
<부가설명> 사람들의 삶은 하루뿐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다. 그 하루를 믿음으로 올바르게 살면 호흡이 있는 동안 올바른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우리 생명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라는 야고보서의(4:14) 말씀은 현실이다. 그런데 다 쓰지도 못할 재물을, 가져갈 수도 없는 돈을 위하여 사람은 오늘이라는 생명의 시간을 허비한다. 아담은 930세를 살고 죽었다고 창5:5에 기록했는데 직역하면 아담은 하루씩 산 세월이 930년이었다는 말이다. 아브라함도 175년이 그의 향년이었다고 번역되었는데(창25:7), 그것도 문장은 약간 달라도 내용은 같다. 성경은 사람이 하루씩 산다고 계시하신 것이다. 그 하루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루의 삶을 믿음으로 오늘 내 호흡이 끊어져도 우리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진 믿음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주께서 그 얼굴빛을 우리에게 비추시는 것은 생명을 항상 공급하신다는 시적 표현이다.
6월 22일(월) 마침내 대면하여 만날 때
우리는 하나님과 가까이 지내도록 창조되었다(창 2:7).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신 이래 그분은 우리와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셨다(요 3:16).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심어주셨지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의 시종을 헤아릴 수 없게 하셨다(전 3:11).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심지어 우리 안에서 격렬하게 벌어지는 대쟁투 가운데 있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하나님께서 우리와 맺고자 하시는 관계로 회복하기 위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셨는지 헤아려 보지 않는다. 우리는 자주 이 땅의 싸움과 시련에 휘말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며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빌 3:20, 21)실 것이라는 사실을 잊곤 한다.
세상이 종말에 가까워질 때 동쪽 하늘에 작은 검은 구름이 나타날 것을 우리는 안다. 그 구름이 점점 가까이 올 때 우리는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계 14:14)진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셀 수 없는 수많은 천사들과 함께 오실 것이며(마 25:31) 모든 눈이 그분을 볼 것이다(계 1:7). 주께서 강림하실 때 우리는 그분의 외침, 곧 호령과 천사장과 하나님의 나팔소리를 들을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자들의 무덤이 열리고 그들이 먼저 일어날 것이다(살전 4:16). 그들은 자기를 부르는 분의 음성을 알 것이다(요 5:28).
그다음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데살로니가전서 4:17을 읽어보라. 결국 바울이 빌립보서 2:10, 11에 기록한 일이 온 우주에서 펼쳐질 것이다.
[살전4: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빌2:10,11]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답: 모든 성도가 하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영광의 주님을 만날 것이고 온 우주가 우리 주님 예수님께 무릎 꿇고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얼마나 놀랍고도 장엄한 일인가! 그날에 우리는 예수님을 보게 될 것이다. 정말로 그리고 실제로 그분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분의 음성을 들을 것이며 그분이 주님이심을 고백할 것이다. 우리가 성경에서 읽고 기도하며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했던 그분, 우리 마음에 간절히 사모하는 그분을 … 실제로 얼굴을 마주하며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확신하고 확언할 수 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그분의 약속은 참되기 때문이다(계 22:6).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고 모든 이들의 눈이 예수를 바라보는 그 순간 우리는 기다려온 보람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인내하며 드린 모든 기도, 그분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장 우선으로 삼았던 모든 순간, 그분을 위해 담대히 말했던 모든 일들, 혹은 모든 시련은 주님의 얼굴을 보는 것으로 정점에 이를 것이다(계 22:4).
교훈: 그날에 우리는 성경에서 읽고 기도하며 마음에 간절히 고대하는 그분을 실제로 대면하게 될 것이다. 그의 약속은 참되기에 우리는 이것을 확신할 수 있다.
<부가설명> 요즘은 컴퓨터가 가상현실을 펼친다. 젊은이들이 이 가상현실을 진상현실로 착각하는 리플리 증상에 빠지는 현상이 증가하고 있는 것 같다. 가상현실을 진짜 현실로 착각하는 것을 보고 답답하고 안타깝게 여긴다. 그런데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성경의 부활과 재림과 새 하늘 새 땅의 계시를 마치 예수 믿는 사람들이 보는 가상현실로 치부하는 것 같다. 그래서 창조와 구원과 신천신지에 관한 진리를 증거해도 믿지 않는다. 사탄은 가상현실을 만들어서 사람이 자아를 완전히 잊어버리게 하는 전술을 구사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기록된 말씀과 예언의 성취와 예수께서 역사적으로 이루신 역사적 사실을 말씀 안에서 확인 확신하고 그날을 위하여 오늘 하루를 오직 믿음으로 위엣것을 생각하며 주님의 영광이 되도록 살게 성령님 인도에 굴복하자.
6월 23일(화) 신부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 중에 우리가 하나님과 다시 만나 영원히 함께 지내게 될 때의 모습에 대한 환상을 받았다.
요한계시록 21:9-11을 읽어보라. 여기에 어떤 비유가 사용되었으며 왜 그 비유가 사용되었다고 생각하는가?
[계21:9~11]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10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11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답: 신부라는 비유를 썼다. 이땅에 있는 동안은 교회는 예수님의 정혼자다. 재림하실 때 결혼한다. 그때 예수님과 함께 새로 단장된 신방 같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게 된다. 아멘.
신부는 아름답고 결혼식 날에는 모든 사람이 그녀를 보고 싶어 한다. 결혼식은 신부와 신랑이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전환점이며 이는 하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고 계신다(요 14:1-3). 그곳은 너무나 놀라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곳이다. 사실, “사람의 언어는 의인들이 받을 상급을 묘사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그것은 오직 바라보는 사람들만이 깨닫게 될 것이다. 유한한 사람으로서는 아무도 하나님의 낙원의 영광을 깨달을 수 없다”(각 시대의 대쟁투, 675).
비록 새 하늘과 새 땅이 어떤 모습일지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은 요한에게 그곳의 환상을 보여 주심으로 곧 있을 “혼인 잔치”를 기대하게 하신다. 실제로 우리에게는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는 권면이 주어졌다(골 3:2).
하나님은 이 예식을 위해 정성을 다해 준비하시며 이 혼인잔치가 우리에게 갑작스러운 일이 되지 않기를 바라신다(마 22:1-14, 25:1-13 참조).
온 우주는 이 예식이 진행되는 것을 보게 될 회중이며 우리는 이 이야기의 중심인물 중에 하나이다. 우리는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를 데려가실 이 성읍, 즉 ‘신부’와 하나가 될 것이다. 흥미롭게도 하나님의 백성(성도들)도 신부라고 불리는데(계 19:7 참조) 아마도 그들이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계 21:2). 성도와 이 거룩한 성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는 둘 다 ‘신부’로 불리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과 도성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성경은 그 도성이 “거룩한 성, 곧 그 나라의 수도요 대표인 새 예루살렘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라고 불”린다고 상세히 묘사 한다(각 시대의 대쟁투, 426).
교훈: 우리는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만날 신부 곧 그 도성에 거할 것이다. 성도를 신부라고 부르는 것은 그들이 새 예루살렘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부가설명> 참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11:2). 예수님은 성도들과 정혼하시고 승천하셔서 성도들이 순결을 지키도록 봉사하신다. 그리고 때가 되면 결혼을 위하여 정혼한 신부를 데리러 이 땅으로 오신다. 그래서 실제로 임마누엘의 상태로 들어가게 하신다. 예수께서 요한복음 17장에서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신 하나가 되는 일이 실제가 된다. 예수께서 신랑으로 오시는 그날까지 진리의 백성인 성도는 칠보단장(七寶丹粧)하고 신랑을 기다려야 한다. 그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자녀를 생산하며 기다려야 한다.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구로치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사54:1). 전도하여 거듭나는 사람이 많도록 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한 말씀이다. 이것이 가장 단장을 잘하는 신부다.
6월 24일(수) 어린 양을 따르라
영원을 생각하면 무엇이 가장 기대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아이들은 “호랑이를 타고 싶어요,” “기린 목에서 미끄럼을 탈래요,” “다른 행성으로 날아다닐래요”라고 말할 것이다. 십대에게 묻는다면 “더 이상 학교공부가 없었으면 좋겠어요,” “친구들과 천국을 탐험하고 싶어요”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어른들에게 묻는다면 “더 이상 고통, 괴로움, 죽음이 없는 곳에 있는 것”이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시 만나는 것”이라고 이야기 할 것이다. 이 모든 답변은 훌륭하고 진실하다. 새 하늘과 새 땅에는 기대할 것이 너무나 많다. 영원은 우리가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는 것이며 본능적으로 우리는 지금 이곳보다 우리의 삶에 더 큰 무언가가 있음을 알고 있다.
영원한 세상에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다른 축복은 어떤 것이 있는가? 이사야 25:8, 요한계시록 7:17, 요한계시록 21:4을 읽어보라.
[사25:8]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계7: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계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답: 다시는 눈물이 없다.
천국에서 누릴 가장 큰 축복은 마침내 예수님을 뵙고 이 타락한 세상에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에 대해 직접 감사드리는 일일 것이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몸소 고난 받으심으로 영원한 죽음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그분께 찬양과 경배를 아낌없이 드리고 싶을 것이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계 5:12).
침례 요한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 소개했다(요 1:36). 요한의 제자 둘이 이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랐으며(요 1:37) 요한계시록 14:4은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사람들은 …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계 14:4)라. 그런데 우리가 천국에서 그분을 따르려면 먼저 이 땅에서 그분을 따라야 한다.
예수님은 어린 양이시며 또한 당신 외에는 아무도 할 수 없는 길로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는 우리의 목자이시다. 이 사실은 오늘 우리가 겪는 힘겨운 시간을 헤쳐 나가는 데에만 큰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인도하는 일을 결코 멈추지 않으실 것이며 하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요한계시록 7:17은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백성, 그분의 양으로서 우리는 천국에서도 예수님을 따를 것이며 영원히 그분의 임재 가운데 있기를 갈망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정의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그분의 이름이 그들의 이마”에(계 22:4, 흠정역) 있다는 것이며 이는 우리가 항상 그분을 생각할 것을 말한다.
교훈: 이 땅에서 어린 양을 따를 때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는 것처럼 예수님은 하늘에서도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며 우리는 항상 그분을 따르고 생각할 것이다.
<부가설명>
요한계시록 14:4은 이들이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어린 양의 인도를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묵상해 보십시오.
6월 25일(목) “오라!”
오늘도 우리에게 어김없이 주어지는 초대가 있다. “오라!”
마태복음 11:28–30, 이사야 55:1–3, 요한복음 6:44을 읽고 우리를 당신에게 오라고 하는 그분의 초대를 주목해 보라.
[마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사55:1~3]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요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답: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졌든지, 목마르고 배고프든지, 아버지께서 예수께로 올 수 있게 하신 동안 속히 오라고 하신다.
성령께서는 오늘 당신을 예수께로 이끌기 원하신다. 예수님은 오늘 당신이 그분에게 나아와서 주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매일 매 순간 그분 안에 거하길 원하신다. 우리가 이에 응답하여 그분께로 나아갈 때,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생각을 온전히 그분에게 맡길 때, 우리는 평안을 느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아무리 스스로를 자격없는 존재라고 느낄지라도 이 세상의 끝 날이 올 때 주께서 당신을 일으켜 세워주실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요 6:37)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예수님과의 구원의 관계로 부르기 위해 성령님과 협력해야 할 긴급한 필요를 느껴야 한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계 22:17). 이 초대는 은혜의 선물로 값없이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그분을 우리 삶에 영접하고 마음과 뜻과 힘과 정성을 다해 사랑할 때(신 6:5), 우리의 지금과 미래의 삶은 영원히 변화될 것이다.
예수께서 우리를 그분께로 오라고 초대하시는 것처럼 성경의 마지막 말씀은 이렇게 약속한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얼마나 속히 오시는가? 우리 개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죽음으로 눈을 감는 순간, 바로 그 다음에 보게 될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우리 삶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생각해보면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다시 오시는 것도 그만큼 빨리 오는 것이다.
부활 때 우리 마음에 드는 첫 생각은 아마도 “우와, 주께서 정말 빨리 오셨구나”일 것이다. 지금은 우리가 거울을 보는 것처럼 희미하게 보지만 그날에는 그분의 얼굴을 대면하여 보게 될 것이다. 기다림으로 지치지 말라.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에 대한 신뢰와 믿음 가운데 이 소망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라. 주 예수여 속히 오시옵소서!
교훈: 내가 아무리 부족하다고 느낄지라도 예수님은 결코 내쫓지 않으니 오라고 하신다. 또 속히 다시 오시겠다고 하셨기에 이 소망을 항상 마음에 간직해야 한다.
<부가설명>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성경 맨 마지막에 기록된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계21:5). 성경 말씀은 다 신실하고 참된 말씀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성경을 마무리하시면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은 모든 신실하고 참된 말씀의 인친 것과 같은 말씀이 아닐까? 우리는 예수님 재림을 역사적 시간으로 생각하는 나쁜 습관이 있다. 마치 그때까지 내가 살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만 산다. 그리고 오늘 죽는다. 우리가 눈뜨는 날은 예수님 재림하시는 아침이다. 내가 죽음의 잠이 드는 바로 그 이튿날이 예수님 재림하시는 아침이다. 하룻밤만 자면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만난다. 진실로 속히 오신다. 우리 모든 사람들은 자기가 죽음의 잠이 드는 그 이튿날 예수님 재림을 맞으니 얼마나 속이 오시는가? 진실로 속히 오신다. 내일 아침 주님 맞을 오늘을 살고 있는가?
6월 26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으로 삼아 그리스도의 종교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도성에 들어갈 자격을 얻지 못할 것이다. 세상의 양식으로 살고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도록 우리의 성향을 길러왔다면 우리는 하늘의 궁정에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하늘을 감도는 순수한 천국의 분위기를 감사하지 않을 것이다. 천사들의 찬양과 그들의 수금 소리도 우리를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며 하늘의 과학은 우리 마음에 이해하기 어려운 수수께끼처럼 느껴질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를 갈망하고 목말라해야 하며 그분의 은혜의 변화시키는 영향력으로 빚어지고 다듬어져야만 하늘 천사들의 교제에 합당해질 수 있다. …
“그때에 모든 민족은 하늘의 법 외에는 다른 법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찬양과 감사의 옷을 입은 행복하고 하나된 가족이 될 것이다. …그 광경 위에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기쁨으로 외치며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함께 ‘이제 더 이상 죄도 없고 죽음도 없을 것이다’라고 선포하실 것이다.
우리는 천국, 아름다운 천국에 대해 이야기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한 계속될 그 삶에 대해 이야기하라. 그러면 당신의 작은 시련과 어려움은 잊혀질 것이다.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라.”(The Faith I Live By, 363).
함께하는 토의를 위해
➊ 가능하다면 초기문집(14–20)에 기록된 엘렌 화잇의 천국에 대한 이상을 살펴보라. 천국에 대한 묘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무엇인가?*답: 읽어보고 각각 말해보자. 생명강 좌우에 있는 생명나무, 그런데 그것이 한 나무라는 사실이 놀랍다.
➋ 예수님을 직접 대면하여 만날 때까지 하나님과의 관계를 굳건히 유지하기 위해 이번기의 교과 중 가장 기억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인가?
*답: 이것도 각각 대답할 질문이다. 9과 10과?
➌ 당신의 주변 사람 중 천국의 소망을 들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가능한 한 빨리 그들에게 전하기로 결심하라. 당신 자신이 개인적으로 소유하지 않는 한 그 소망을 다른 이들에게 나누는 것은 불가능함을 기억하라.
*답: 가족 중에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이 첫째가 아닐까? 그러기 위해 자신이 예수님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요약: 목표에 시선을 고정하고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빌 1:6)한다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라. 하나님께서 당신과의 관계를 시작하셨고 그분이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 우리가 그날을 기다리는 동안 사랑과 믿음 안에서 성장하며 오직 믿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그리스도의 의만 항상 의지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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