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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과 그분을 전하라(질문, 대답, 설명) 06/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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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6-06-12 21:08 조회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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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과 그분을 전하라

(6월 20일 안식일/일몰:오후 7시 56분)

 

● 연구 범위 마 28:18-20, 벧후 3:18, 벧전 3:8-15, 호 7:, 슥 10:

● 기 억 절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사 50:4).

 

바쁜 안식일 아침이었다. 지목사는 안식일 학교와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 일찍 일어났고 저녁에는 전도회도 이끌어야 했다. 그는 열쇠를 집어 들고 문을 박차고 나가 서둘러 차를 몰았다.

그는 도시의 교통 체증을 헤치며 달렸다. 토요일 아침인데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교회에 늦을까봐 짜증이 났다. ‘대체 다들 어딜 가길래 이 시간에 나온 거야?’ 그때 갑자기 한 차가 그의 앞으로 끼어들었다. 겨우 급제동을 하고서 그는 분노와 불만에 차서 주먹을 치켜들며 상대 운전자를 향해 소리쳤다.

마침내 지목사는 교회에 도착했다. 교과를 가르치려고 일어섰을 때 교과반을 살펴보던 그의 시선은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을 보고 놀랐다. 바로 20분 전 그가 화를 냈던 바로 그 차의 운전자였다.

나중에 한 교인이 친척을 방문한 비재림교인이라고 소개했을 때 지목사는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모든 사람과의 관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관계에서 흘러나오는 사랑으로 가득 차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당신의 행동, 특히 믿는 사람으로서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결코 다 알 수 없다.

 

※ 학습 목표

깨닫기 :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은 그분과의 관계 속의 경험을 통해서 그것을 다른 이와 나누는 것이다.

느끼기 : 전도는 강요하는 것이 아니며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면서 내 안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다.

행하기 : 주께서 떠나간 이들을 포기하지 않기에 우리도 소망을 가지고 삶으로 사랑을 보이며 전한다.

 

TMI 위로

➋ 우리가 주님을 위해 증거하는 일은 어떤 것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까?(행 4:20)

*답: 말씀을 보고 듣는데서 시작한다.

➌ 주께서 진리를 주실 때 결코 사용하지 않는 방식은 어떤 것입니까?(신 4:30-31)

*답: 강제하지 않으신다.

➍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전도와 관련해서 어떤 준비를 하라고 하셨습니까?(벧전 3:15)

*답: 소망의 이유를 항상 대답하도록 준비하라고 하셨다.

➎ 주님을 떠나 전혀 소망이 없을 것 같은 이들에게 그분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렘 31:17)

*답: 최후의 소망이 있을 것이며 자녀들이 돌아올 것이라고 하셨다.

➏ 주님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절망과 안타까움을 무엇으로 바꾸라고 말씀하십니까?(엡 3:19)

*답: 예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게 하라고 하신다.

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답: 말씀대로 생활하는 빛이다.

 

결론: 우리의 모든 관계는 하나님과의 동행에서 흘러나오는 사랑에 기초해야 한다. 주님을 증거하는 것은 주께서 삶에서 행하시는 일을 보고 깨달으며 그분이 행하신 일을 경험을 통해 다른 이와 나누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강요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복음은 강요가 아닌 우리에게 채워주신 사랑으로 상대의 필요를 채워주고 나누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 안에 있는 믿음과 소망에 대해 항상 증거 할 준비를 하라고 말씀하셨다. 떠나간 이들에 대해서도 주께서 포기하지 않기에 언제나 소망이 있다. 고집 센 백성을 책망하시지만 자비는 결코 끊어지지 않는다. 오직 주께서 주시는 사랑으로 그들을 대할 때 당신의 삶, 행동, 말, 기도는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

 

6월 14일(일) 넘치는 것에서

마태복음 28:18-20에 기록된 대사명을 읽고 예수께서 “모든” 또는 “항상”이라고 말씀하실 때(동일한 헬라어 파스, Pas) 그 안에 담긴 여러 의미들을 적어보라.

[마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답: 주님이 항상 전도하는 사람과 함께 하신다. 항상은 ‘파스-πᾶς’인데, 영어로는 All이다. 시간 장소 물건 등등 모든 것에 적용되는 단어다. 주님은 제자들이 주님의 일을 하는 모든 일에 함께 하신다는 약속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상에 당신의 기별을 전하라는 명령을 주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사명은 제자를 만들고 그들이 또 다른 제자를 만들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모두는 영원한 복음과 세 천사의 기별(계 14:6-12)을 선포하여 세상을 예수님의 재림을 위해 준비되게 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은 사람은 누구든지 증거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하지만 너무도 흔히 사람들은 증거하는 일을 자신이 할 수 없거나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길거리에서 전파하거나 어려운 성경 공부를 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고개를 저을지도 모른다. “난 아니야. 절대 안 돼! 전도는 절대 내성적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하지만 진정한 증거란 많은 경우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에서 행하시는 일을 목도하고 하나님 안에서 성장하며 그분이 가르쳐 주시는 것을 발견한 그 경험을 그대로 다른 이들과 나누는 데서 비롯된다. 하나님은 너무 좋으시고 그분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은 이 세상이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소식이다. 우리는 침묵할 수 없고 침묵해서도 안 된다! 그분은 당신을 구속하셨고 당신을 지명하여 부르시며 당신은 그분의 것이다. 세상 어디에, 누가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을 가지고 있겠는가?

초기 교회의 제자들은 랍비 학교에서 교육을 받지 않았고 구전 전통에도 능통하지도 않았지만 우리는 오늘도 여전히 그들에게서 배울 수 있다.

 

사도행전 1:8과 4:13을 읽어보라. 초기 교회에서 전도는 어떤 모습이었는가? 베드로와 요한은 그들의 증거를 들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4:13]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답: 제자들이 담대하게 전할 때 예수와 함께 있던 줄을 알았다. 

 

베드로와 요한은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행 4:20)다라고 선포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행 4:13)었기에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령께서 그들에게 담대함과 말로 감화시키는 능력을 주셨다.

 

교훈: 진정한 증거란 주님께서 우리 삶에서 행하시는 일을 보고 깨달으며 너무 좋으신 그분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을 경험을 통해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이다.

 

<부가설명> 가장 좋은 전도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이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이 사도들을 학문없는 무지한 자로 알았다. 그런데 그들이 막힘이 없이 복음 전하는 것을 보고 그들이 에수님과 함께 있었던 것을 기억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의 행동과 언어에서 예수님을 봤다는 뜻이다. 이런 삶이 가장 좋은 전도다. 우리 존재가 예수님을 보여주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제자들처럼 예수님과 함께 있지 못하지 않으냐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지금 그의 백성과 항상 함께 하신다. 그분의 말씀으로 함께 하신다. 우리가 현재 예수님을 만나는 장소는 기록된 말씀이다. 예수님의 이름이 하나님의 말씀 아닌가! 베드로는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벧전1:8), 지금 우리나 베드로의 편지를 받은 사람이나 똑같은 입장이다. 우리는 말씀을 배우고 깨닫고 실천하면 예수와 함께 있던 줄을 알게 살아가게 된다. 그래서 바울은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엡1:12)라고 말한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면 요일4:7~11이 실현될 것이다.

 

6월 15일(월) 강요가 아닌 능력으로

예수께서 날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위해 수고하고, 치유하고, 위로하고, 전도하고 가르치실 수 있는 동력을 어떻게 유지하셨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성경은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마 9:36)라고 기록한다. 예수께서 이와 같이 봉사하실 수 있었던 것은 인류에 대한 당신의 사랑과 긍휼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영혼들을 당신과 당신의 진리 가운데로(고후 5:14) 인도하여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도록 우리를 이끌어야 한다.

군중 속 낯선 이의 얼굴을 보면서 영원을 생각하며 그들이 예수님을 알고 있을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오직 하나님만이 당신에게 주실 수 있는 도움이 필요한 낯선 이를 향한 사랑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영혼들을 주님께 인도해야 한다는 사명을 느끼게 한다. 예레미야는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렘 20:9)라며 그 사명을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때 결코 하나님이나 성경 진리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 강요는 하나님의 성품의 본질과 정면으로 반하는 행위이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가까이 하지 말라고 강요하지 않으셨고(창 2:16, 17) 홍수에서 구원받기 위해 방주로 억지로 들어가게 하지 않으셨다(창 7:1).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당신과의 언약을 지키도록 강제하지 않으셨으며(신 4:29-31) 오히려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시고(마 4:23-25), 이후에 따르도록 부르셨다. 예수님은 누구에게도 당신이나 당신의 진리를 따르도록 강요하지 않으셨지만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도 않으신다(마 23:37).

우리가 증거할 때 우리의 접근은 항상 예수님의 방식을 따라야 한다. 엘렌 화잇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에게 그분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명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 양심을 강요하는 것은 사탄과 그의 영에 이끌리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우리의 사업을 바르게 평가하지 않거나 우리의 이상에 반대되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해치고 멸하려는 성향이야말로 우리가 사탄의 정신을 소유하고 있다는 가장 결정적인 증거이다”(시대의 소망, 487).

우리는 하나님의 사역을 위한 통로가 되어야 한다. 비록 진리를 미워하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그런 현실이 우리가 사려 깊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진리를 나누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된다. 특히 전도의 초기 단계에서 우리 자신의 개인적인 간증이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을 기억하라(계 12:11).

교훈: 하나님은 진리를 따르도록 강요하지 않으셨으며 그들의 필요를 채우시고 이후에 따르도록 부르셨다. 복음은 강요가 아닌 우리를 채운 사랑으로 나누는 것이다.

 

<부가설명> “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벧후3:18). 그리스도인은 성장하는 생명을 받은 사람이다. 그 생명은 은혜와 지식의 음식으로 성장한다. 그래서 갓난아이가 젖을 사모하듯이 말씀의 젖을 사모하고 먹어야 한다(벧전2:2). 예수님을 아는 지식으로 자라려면 말씀의 젖을 먹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예수님은 전도 사명을 주시면서 예수님이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다. 여기 ‘모든 것’도 ‘파스’다. 이 모든 것을 가르칠 때 항상 함께 하시는 은혜와 능력을 베푸실 것이다. 제자들은 이 모든 것을 배워야 한다. 아무쪼록 안교 학생들이 이렇게 배우고 실천하는 성도들이 되도록 성령님의 강한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바란다.

 

6월 16일(화) 예수님을 전하는 방법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누구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있는가? 우편 배달원, 가게 점원, 혹은 산책할 때 만나는 사람인가? 하나님은 모든 믿는 자에게 이 사명에 동참하라고 부르시며 “학식 있는 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내가 피곤한 자에게 때에 맞는 말을 할 줄 알게”(사 50:4, 흠정역) 하신다고 약속하신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우리 안에 있는 믿음과 소망에 대해 항상 대답할 준비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벧전 3:15).

 

베드로전서 3:8-15을 읽어보라. 이 구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벧전3:8~15]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12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13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14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답: 15절에 대답할 말을 항상 준비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8~14이 가르친다. 

 

다른 사람에게 더 능동적으로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기억해야 할 몇 가지 간단한 제안은 다음과 같다.

• 누군가를 알아가며 시간을 두고 친분을 쌓으라. 따뜻함, 친절함, 상대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사랑을 주고받는 것이 그들을 하나님께로 이끄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어떤 이는 이 방법을 “우정 전도”라고 부른다)

• 성령께서 그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켜 주시도록 기도하며 그들과 교류할 적절한 기회를 달라고 기도하라.

• 자신의 신앙 경험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거나 그들을 위해 기도할 만한 기회를 찾아보라. 담대하면서도 온유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 구하라.

• 교회 공동체가 따듯하게 풀어주는 것을 경험할 수 있도록 새로 사귄 친구를 교회의 다른 구성원과 연결할 방법을 찾으라. 이후에 친교 모임이나 소그룹 성경 공부로 연결하는 것이 좋은 다음 단계이다.

• 새 친구가 가지고 있는 구체적인 필요나 질문에 대해 기도하고 성경이 우리 삶에 어떻게 위로, 조언, 지침을 제공하는지 보여줄 기회를 찾으라. 간단하게 성경의 약속을 나누거나 한 가지 질문에 답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더 깊은 대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대화를 위해서도 기도하라.

• 친구에게 성경 공부나 궁극적으로 침례를 받기 원하느냐고 물어보고 싶은 때가 올 것이다. 이 단계를 서두르지 말고 지체하지도 말라. 이 일을 위해 기도하라.

• 우리의 행동은 우리가 누구에게 속한 사람인지를 나타내야 한다. 우리가 삶 속에서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는 많은 것을 말해 줄 것이다. 우리의 인격이 그분의 형상을 닮아가며(성화) 빚어질 때 우리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께로 이끌기 위해 살게 될 것이다.

 

교훈: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복음 전도에 동참하라고 부르시며 우리 안에 있는 믿음과 소망에 대해 항상 대답할 준비를 하라고 말씀하셨다.

 

<부가설명> 성경에는 자라라는 표현이 여러번 나온다. 그 표준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려고 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사탄의 자손이 점점 진화해서 예수처럼 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사람으로 성장하려면 사람으로 출생해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말인데 이런데 이런 말을 써야 하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교회는 성화라는 표현으로 성화 진화론을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거룩하지 않은데 점점 자라면서 거룩하게 되어가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인식하는 것은 성화를 성화 진화론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거룩하게 되는 것은 거룩한 씨로 출생할 때 되는 것이다.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사6:13). 그래서 예수님은 거듭나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우리는 거듭나서 그 거듭난 상태가 성장해야 한다. 아멘.

 

6월 17일(수) 방황하는 자녀

신앙적으로 굳건한 가정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과의 관계에서 떠나기로 선택한 자녀를 둔 고통과 슬픔은 많은 사람이 직접 경험하는 일이다.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의 일원이었던 에브라임 지파는 그분을 떠났다. 호세아 4:17과 호세아 7장은 에브라임의 죄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가?

[호4:17] 에브라임이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버려 두라.

[호7:1~16] 내가 이스라엘을 치료하려 할 때에 에브라임의 죄와 사마리아의 악이 드러나도다 그들은 거짓을 행하며 안으로 들어가 도둑질하고 밖으로 떼 지어 노략질하며 2 내가 모든 악을 기억하였음을 그들이 마음에 생각하지 아니하거니와 이제 그들의 행위가 그들을 에워싸고 내 얼굴 앞에 있도다 3 그들이 그 악으로 왕을, 그 거짓말로 지도자들을 기쁘게 하도다 4 그들은 다 간음하는 자라 과자 만드는 자에 의해 달궈진 화덕과 같도다 그가 반죽을 뭉침으로 발효되기까지만 불 일으키기를 그칠 뿐이니라 5 우리 왕의 날에 지도자들은 술의 뜨거움으로 병이 나며 왕은 오만한 자들과 더불어 악수하는도다 6 그들이 가까이 올 때에 그들의 마음은 간교하여 화덕 같으니 그들의 분노는 밤새도록 자고 아침에 피우는 불꽃 같도다 7 그들이 다 화덕 같이 뜨거워져서 그 재판장들을 삼키며 그들의 왕들을 다 엎드러지게 하며 그들 중에는 내게 부르짖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8 에브라임이 여러 민족 가운데에 혼합되니 그는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 9 이방인들이 그의 힘을 삼켰으나 알지 못하고 백발이 무성할지라도 알지 못하는도다 10 이스라엘의 교만은 그 얼굴에 드러났나니 그들이 이 모든 일을 당하여도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구하지 아니하도다 11 에브라임은 어리석은 비둘기 같이 지혜가 없어서 애굽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앗수르로 가는도다 12 그들이 갈 때에 내가 나의 그물을 그 위에 쳐서 공중의 새처럼 떨어뜨리고 전에 그 회중에 들려 준 대로 그들을 징계하리라 13 화 있을진저 그들이 나를 떠나 그릇 갔음이니라 패망할진저 그들이 내게 범죄하였음이니라 내가 그들을 건져 주려 하나 그들이 나를 거슬러 거짓을 말하고 14 성심으로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며 오직 침상에서 슬피 부르짖으며 곡식과 새 포도주로 말미암아 모이며 나를 거역하는도다 15 내가 그들 팔을 연습시켜 힘 있게 하였으나 그들은 내게 대하여 악을 꾀하는도다 16 그들은 돌아오나 높으신 자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니 속이는 활과 같으며 그들의 지도자들은 그 혀의 거친 말로 말미암아 칼에 엎드러지리니 이것이 애굽 땅에서 조롱거리가 되리라.

*답: 그들은 우상과 연합하고 외국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고 곡식과 새 포도주를 얻기 위해서만 하나님을 바라보는 이기심이 가득한 배반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과 언약 관계를 완전히 저버린 배반자이다.

 

그가 주님과의 관계를 저버렸기 때문에 에브라임의 할머니인 라헬이 통곡하고 있다는 비유적인 기록도 볼 수 있다(렘 31:15). 라헬의 큰 슬픔에 대해 주님은 예레미야 31:16, 17에서 이렇게 응답하신다. “네 울음 소리와 네 눈물을 멈추어라 네 일에 삯을 받을 것인즉 그들이 그의 대적의 땅에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의 장래에 소망이 있을 것이라 너의 자녀가 자기들의 지경으로 돌아오리라.”

 

예레미야는 라헬에게 방황하는 자식을 위해 울지 말고 소망을 가지라고 말한다. 예레미야는 또 무엇을 말하는가? 예레미야 31:18, 19을 읽어보라.

[렘31:18,19] 에브라임이 스스로 탄식함을 내가 분명히 들었노니 주께서 나를 징벌하시매 멍에에 익숙하지 못한 송아지 같은 내가 징벌을 받았나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이시니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 19 내가 돌이킨 후에 뉘우쳤고 내가 교훈을 받은 후에 내 볼기를 쳤사오니 이는 어렸을 때의 치욕을 지므로 부끄럽고 욕됨이니이다 하도다.

*답: 에브라임이 회개하고 돌아올 것이라고 하셨다.

 

에브라임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시기에 언제나 소망이 있음을 배운다. 비록 고집 센 백성을 거듭 책망하시지만, 하나님의 긍휼은 결코 끊어지지 않으며 이 장에 담긴 하나님의 기별은 계속된다(렘 31:20 참조).

우리는 큰 고통과 좌절, 낙담을 느끼거나 심지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떠나간 가까운 이들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떠나간 자녀를 결코 잊지 않으셨음을 상기시켜 주신다.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간절하고 진실된 것이다. 사실 하나님은 그들을 향한 마음으로 “들끓는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그들이 당신에게 돌아오기를 갈망하시며 그분의 자비는 무궁하다.

 

교훈: 주님은 떠나간 이들을 포기하지 않기에 언제나 소망이 있다. 고집 센 백성을 책망하시지만 자비는 결코 끊어지지 않으며 주님을 그들을 결코 잊지 않으신다.

 

<부가설명> 에브라임은 북방 이스라엘의 대표지파다. 에브라임 개별 지파에 관한 말씀이 아니고 북방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에브라임을 책망하시고 돌아오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호11:8)라고 사랑의 마음을 토하셨다. 가슴 뭉클하고 눈물 나는 말씀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향해 이같은 심정을 나타내신다. 우리는 돌아가서 말씀대로 굴복해야 한다. ‘남은 자손아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라고 하시지 않겠는가? 남은 자손이여, 회개하고 진정 말씀으로 돌아가자. 에브라임은 우상과 연합하고, 이익을 따라 흔들렸다. 이 교회는 지금 어떤가? 나는 어떤가?

 

6월 18일(목) 그들이 돌아오게 하리니

우리 모두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과정에서 마음이 불충실했거나 너무 오랫동안 미지근하여 믿음이 약하거나 흔들리는 골짜기의 시기를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 때 당신을 하나님과 동행하는 관계로 다시 돌아오게 이끌었던 것은 무엇이었는가?

 

스가랴 10장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아름다운 기별을 말한다. 지금 이 장을 천천히 읽고 핵심 기별을 기록해 보라.

[슥10:1~12] 봄비가 올 때에 여호와 곧 구름을 일게 하시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시리라 2 드라빔들은 허탄한 것을 말하며 복술자는 진실하지 않은 것을 보고 거짓 꿈을 말한즉 그 위로가 헛되므로 백성들이 양 같이 유리하며 목자가 없으므로 곤고를 당하나니 3 내가 목자들에게 노를 발하며 내가 숫염소들을 벌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그 무리 곧 유다 족속을 돌보아 그들을 전쟁의 준마와 같게 하리니 4 모퉁잇돌이 그에게서, 말뚝이 그에게서, 싸우는 활이 그에게서, 권세 잡은 자가 다 일제히 그에게서 나와서 5 싸울 때에 용사 같이 거리의 진흙 중에 원수를 밟을 것이라 여호와가 그들과 함께 한즉 그들이 싸워 말 탄 자들을 부끄럽게 하리라 6 내가 유다 족속을 견고하게 하며 요셉 족속을 구원할지라 내가 그들을 긍휼히 여김으로 그들이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가 내버린 일이 없었음 같이 되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라 내가 그들에게 들으리라 7 에브라임이 용사 같아서 포도주를 마심 같이 마음이 즐거울 것이요 그들의 자손은 보고 기뻐하며 여호와로 말미암아 마음에 즐거워하리라 8 내가 그들을 향하여 휘파람을 불어 그들을 모을 것은 내가 그들을 구속하였음이라 그들이 전에 번성하던 것 같이 번성하리라 9 내가 그들을 여러 백성들 가운데 흩으려니와 그들이 먼 곳에서 나를 기억하고 그들이 살아서 그들의 자녀들과 함께 돌아올지라 10 내가 그들을 애굽 땅에서 돌아오게 하며 그들을 앗수르에서부터 모으며 길르앗 땅과 레바논으로 그들을 이끌어 가리니 그들이 거할 곳이 부족하리라 11 내가 그들이 고난의 바다를 지나갈 때에 바다 물결을 치리니 나일의 깊은 곳이 다 마르겠고 앗수르의 교만이 낮아지겠고 애굽의 규가 없어지리라 12 내가 그들로 나 여호와를 의지하여 견고하게 하리니 그들이 내 이름으로 행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답: 헛된 것을 버리고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아오면 늦은 비(봄비)를 부어주셔서 온전한 회복을 이루게 하신다는 약속이다.

 

실제로 주님과의 관계에서 멀어진 사랑하는 사람과 어떻게 관계하고 소통할 수 있을지를 찾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닐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런 상황이 오지 않을 수 있었을까 하며 골몰하기도 하고 이제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할 수도 있으며 그들이 여전히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좌절감과 무력감을 느낄 수도 있다. 이런 생각들은 항상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주님과 함께하는 개인적인 시간을 통해 받은 충만한 은혜를 바탕으로 그들과 함께하고 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을 떠난 배우자나 자녀를 위한 당신의 삶의 증거, 행동, 말, 기도는 그들의 삶과 미래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 

 

누가복음 22:31, 32과 요한복음 21:15-17에서 예수께서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신 것이 그의 미래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살펴 보라. 

[눅22:31,32]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요21:15~17]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답: 베드로는 돌이켰고 충성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달리는 형벌로 순교했다. 

그들을 향해 느끼는 슬픔, 정죄, 비난의 감정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사랑으로 그 감정을 덮어달라고 기도하라. 또 하나님의 성품으로 당신을 덮어주셔서 사랑스럽고 이타적인 모습을 본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라. “인간의 심령을 감싸 줄 수 있는 어떤 감화력도 이타적인 생애의 감화력과 같은 그런 능력을 가질 수 없다. 복음을 위한 가장 강력한 논증은 사랑을 베푸는, 또 사랑스러운 그리스도인이다”(치료봉사, 470).

우리가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일관된 삶의 모본을 보일 때 그리스도를 거부했던 사람들이 우리에게서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나올 수 있는 무언가를 보게 될 것이다. 이해를 뛰어넘는 평안, 결코 포기하지 않는 사랑, 모든 역경 속에서도 믿음에 서는 소망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와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변함이 없다. 우리는 이 사랑을 매일 경험하며 이 사랑을 주변 사람들에게도 나누어 줄 수 있다.

 

교훈: 주님을 떠난 이를 위한 당신의 삶, 행동, 말, 기도는 그들을 바꿀 수 있다. 안 좋은 생각, 감정을 내려놓고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사랑으로 그들을 대하라.

 

<부가설명> 주님은 기다리신다. 탕자 아버지가 문밖에 서서 아들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듯이 기다시린다.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을 거스러기 때문에 자기 죄의 부끄러움으로 돌아가기를 어려워한다. 사실을 그렇기 때문에 더욱 돌아가야 한데!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3:17~19). 이것은 바울이 에베소 교우들을 위한 기도지만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시는 기도이기도 하다. 바울처럼 자신은 매일 죽고 예수님이 매일 살려주시는 경험으로 주님께 영광이 되도록 살자.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날마다 우리를 해방시키는(롬8:2) 은혜로 충성하자.

 

6월 19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사람이 말로는 아무리 공언한다 할지라도 자기의 형제들에 대해 이기심 없는 사랑을 갖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 대한 순전한 사랑을 가질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고 애쓰는 것만으로는 결코 이러한 정신을 가질 수 없다.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 가운데 있어야 한다. 자아가 그리스도께 몰입될 때에 사랑은 저절로 생겨나게 된다”(실물 교훈, 384). “예수 그리스도에게 영혼들을 인도하기 위하여 깊은 관심과 충성심으로 가장 열렬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은 영성과 헌신 면에 있어서 가장 잘 성장한 사람들이다”(복음전도, 356). “악을 저항하는 능력을 얻는 최고의 비결은 적극적인 봉사 활동이(다)”(사도행적, 105). “그의 기쁨, 곧 그의 희생을 통하여 구속받은 영혼들을 보는 기쁨에 참여하기 위하여 그들의 구속을 위한 그분의 사업에 참여해야 한다”(시대의 소망, 142). “그리스도와 함께 봉사하기를 거부하는 자들은 곧 그리스도와 함께 받을 영광스러운 자격을 주는 유일한 교육을 거부하는 것이다”(교육, 264).

 

함께하는 토의를 위해

➊ 효과적인 전도를 위해 사랑이 그토록 근본적이고 필수적인 요소인 이유는 무엇인가?

*답: 그것이 드러나는 빛이기 때문이다.

➌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전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이해나 기초가 있는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

*답: 소망의 이유를 묻는 자에게 대답할 말을 항상 예비하는 것이다. 말씀에 몰입해야 한다.

➍ 비신자와 성경 공부를 할 때 어디서부터 시작하겠는가? 어떤 것에 초점을 맞추며 시작하겠는가? 특정 교리를 증명하는 것인가, 아니면 예수님을 알도록 초대하는 것인가?

*답: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요약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의 살아있고 능력 있는 말씀이 우리의 일상을 채울 때 우리는 그분을 사랑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그 사랑을 나누고 싶어질 것이다. 우리는 그분의 입에서 나온 말씀은 헛되이 돌아가지 않고 그분이 기뻐하시는 일을 이루며 그분이 보내신 목적을 이룰 것임을 믿으면서(사 55:11 참조)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려 깊게 그리고 의식적으로 증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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