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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과 회개와 용서(질문, 대답, 설명) 06/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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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6-05-29 02:05 조회1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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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과 회개와 용서

(6월 6일 안식일/일몰:7시 51분)

 

● 연구 범위 사 61:10; 호 6; 행 3:18, 19; 출 34:1–10; 롬 6:23; 마 22:1–14

● 기 억 절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구름 기둥 아래 평야에 진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의 땅은 너무 멀게 느껴졌다. 모세가 산 정상을 뒤덮은 짙은 흑암 속으로 올라간 지도 여러 날이 되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지도자가 굶어 죽었거나 산꼭대기의 불타오르는 화염에 타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스라엘 백성 그리고 출애굽 할 때 애굽을 떠난 자들로 구성된 이 섞인 무리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가기를 간절히 바라며 초조해했다. 불과 며칠 전 하나님께 순종하겠다고 엄숙히 언약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 이제는 직접 볼 수 있는 형상을 원했다. 그들은 아론의 장막 주위를 둘러싸고 우상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자신의 안전을 두려워한 아론은 이에 응했고 출애굽기 32-34장은 이 슬픈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말해 준다.

이 이야기는 이번 주 학습 주제인 회개와 용서에 대해 가르쳐 주는 성경의 많은 이야기 중 하나이다. 하루하루 공부하면서 이번 주 기억절의 주제를 마음에 새겨 보라.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덕분에 진심으로 고백하고 회개하는 죄인에게는 용서가 주어진다.

 

깨닫기 : 죄의 고통 가운데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관계를 회복하게 하신다.

느끼기 : 죄는 관계를 막는다. 십자가를 멀리서 보지 말고 예수께 나아가 우리의 짐을 의로 바꾸어야 한다.

행하기 :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매일 의의 옷을 입혀주시기를 간구하며 주님의 희생을 의지한다.

 

TMI 위로

➋ 삶의 분주함으로 주님께 가까이 가는 것을 잊을 때 무엇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까?(계 7:14)

*답: 환난 중에도 함께 하시는 주님을 기억해야 한다.

➌ 잘못 하면서 그것을 정당화 할 수도 있는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까?(눅 11:13)

*답: 우리가 악해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거든 하물며 우리 주님이시겠습니까?

➍ 회개하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부르심은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막 1:14)

*답: 요한이 잡힌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셨다. 준비과정이 끝났을 때다.

➎ 죄를 고백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어떻게 일하고 계신다고 생각합니까?(눅 18:13)

*답: 우리를 의롭다고 하신다.

➏ 예수님은 왜 당신이 주시는 의를 옷으로 비유하셨습니까?(계 19:8)

*답: 그것은 보이도록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 삶의 분주함은 주님과의 관계를 약화하고 무너뜨릴 수 있다. 죄와 그분과의 단절의 고통으로 부르짖을 때, 그분은 우리를 용서해 주신다. 죄가 하나님과의 사이를 가로막을 때 그 관계는 성장할 수 없으며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실 때 회개해야 한다. 재림을 위해 자신을 준비할 때 하나님은 관계를 바르게 회복할 때를 주신다. 성령이 역사하며 죄를 제하기 위해 기다린다. 주님의 십자가를 멀리서 보지 말고 속히 나아가 우리 짐을 의로 바꾸어야 한다. 의의 옷을 받음은 그분의 희생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주님은 회개하고 믿는 자를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하신다.

 

5월 31일(일) 삶의 분주함

정신없이 바쁜 한 주였다. 안식일 전에 해야 할 일이 많은 걸 알았지만 급한 일들이 중요한 일을 압도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해는 저물었다. 가족이 모여 금요일 저녁 특식을 나누고 함께 예배 드렸다. 안식일 아침 일찍 일어난 그녀는 더러운 욕실을 보고 그냥 둘 수 없어서 결국 욕실을 닦았다. 어린 아들이 밤중에 실수한 것을 발견하고는 다른 옷과 함께 침대 시트를 세탁기에 넣었다. 가족을 위해 아침을 준비하던 중 점심에 먹을 후식이 없다는 걸 깨닫고 바나나 빵을 급하게 구웠다. 남편이 교회에 갈 옷을 다림질한 후에는 빨래를 개고 쓰레기도 버렸다.

그 순간 문뜩 깨달았다. 오늘은 안식일, 내가 어떤 날보다 가장 사랑하는 날인데!

나는 이렇게 온갖 일을 하면서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인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일에서 멀어지고 있구나. 잠시 동안 그녀는 마음으로 이것들은 모두 해야 할 일이었다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시도했다. 정말 그랬을까? 그녀는 자신이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눅 10:40)한 마르다와 같았음을 깨달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이 마음속을 울렸다.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눅 10:41, 42). 이 좋은 편, 그분을 향한 깊은 사랑으로 예수님의 발치에 앉는 것, 안식일뿐만 아니라 매일 그렇게 이 좋은 편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녀는 오늘 아침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녀는 하나님을 사랑했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굳건히 하기 위해 시간 속에 안식일을 선물로 주셨다는 사실을 쉽게 잊고 만 것이다. 그녀는 부엌에 서서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이 예시는 우리가 안식일에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약화시키거나 무너뜨리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왜 중요한 지를 일깨우기 위한 것이다. 우리 마음이 죄와 하나님과의 단절의 고통으로 그분께 부르짖을 때 예수님은 매우 가까이 계신다(시 53:2).

그분의 피 묻은 손에는 흰 옷이 들려 있다. 그분은 우리의 회개의 눈물을 보시고 우리의 더러운 옷을 벗겨주신다. 그리고 당신의 의의 순결한 옷으로 우리를 완전히 덮어주신다. 그분의 순결함이 우리가 고백한 죄를 완전하고 완벽하게 덮는다. 우리는 그분의 피로 우리의 옷을 씻을 수 있다(계 7:14).

 

교훈: 삶의 분주함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약화하고 무너뜨릴 수 있다. 우리의 마음이 죄와 그분과의 단절의 고통으로 부르짖을 때, 그분은 우리를 용서해 주신다.

 

<부가설명> 의의 옷의 실상이 무엇인가? 빛나는 세마포는 무엇을 뜻하는가?

[이사야 64:6]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스가랴 3:4]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이사야 61:10]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이 구절은 그리스도의 의라는 중요한 진리를 어떻게 드러냅니까?

  더러운 옷을 벗기고 구원의 옷과 공의의 겉옷을 입히는 것을 드러낸다. 더러운 옷은 무엇인가? 의의 옷은 무엇인가? 아담 부부는 선악과를 먹은 후에 그들이 벌거벗은 것을 알았다. 그전에는 왜 몰랐을까? 두 사람이 다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했는데(창2:25). 창조주께서 그들에게 하님의 생명 곧 영생하는 생명을 주셨다(요일2:25). 그 생명은 빛이었다(요1:4). 그들이 그 생명을 잃었을 때 그들을 덥고 있던 빛이 없어진 것이다. 의의 옷은 빛의 옷이고(롬13:12) 그것은 영원한 생명의 옷이다. 우리가 부활할 때 입을 바로 그 옷이다. 의의 옷 영생을 보이는 표현으로 묘사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빛이고(마6:14) 빛의 열매를(엡5:9) 생활로 사는 사람들이다. 

 

6월 1일(월) 성령의 감동

아내와 거리가 멀어진 것을 생각하며 그는 자신이 잘못했음을 깨달았다. 그는 무정하고 모질었으며 후회할 만한 말을 했다. 그러나 곧이어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건 그녀가 자초한 거야, 그녀에게도 원인이 없다고 할 순 없잖아?’

이런 생각의 흐름이 익숙한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후회하는 마음에서 정당화하는 태도로 쉽게 넘어가곤 한다. 잘못했을 때 “미안해”라고 말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관계를 회복하거나 강화하는 데는 이 말이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도 마찬가지이다. 성령님은 종종 우리가 범한 죄를 생각하도록 우리 마음에 감동을 주신다. 이런 감동으로 우리의 마음이 움직이다가도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정당화하다보면 그 작고 세미한 음성을 외면하기 쉽다. 성령이 하는 역할은 “죄에 대하여…세상을 책망하시”는 것이다(요 16:8). 하나님께서 주신 얼마나 놀라운 선물인가(눅 11:13).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 어느새 스며든 거리감을 회복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이러한 죄의 깨달음이 필요하다!

 

호세아 6장을 읽어보라. 하나님은 회개를 촉구하는 당신을 어떻게 묘사하는가? 여기서 무엇을 특별히 주목하게 되는가?

[호6:1~1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4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5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노니 내 심판은 빛처럼 나오느니라 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7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 8 길르앗은 악을 행하는 자의 고을이라 피 발자국으로 가득 찼도다 9 강도 떼가 사람을 기다림 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 길에서 살인하니 그들이 사악을 행하였느니라 10 내가 이스라엘 집에서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거기서 에브라임은 음행하였고 이스라엘은 더럽혀졌느니라 11 또한 유다여 내가 내 백성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네게도 추수할 일을 정하였느니라.

*답: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시는 하나님을 묘사한다. 그분은 돌아오는 자들을 회복시키실 것이다. 

 

우리를 포도나무에 다시 접붙이는 과정(요 15:4)에서 성령의 역할을 생각해 보라. “우리는 흔히 우리의 악한 행실이 자신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슬퍼한다. 그러나 그것은 회개가 아니다. 죄를 진정으로 슬퍼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의 결과이다. 성령께서는 구주를 모욕하고 슬프게 한 감사하지 아니한 마음을 드러내어 우리로 십자가 밑에서 통회하게 하신다. 모든 죄로 말미암아 예수께서 다시 상처를 입으시는 바 … 우리는 그리스도께 고뇌를 안겨 준 죄로 인하여 슬퍼하게 된다. 이러한 애통이 죄를 버리게 하는 것이다”(시대의 소망, 300).

실제로, 우리가 선택하고 소중히 여기는 죄들이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고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결코 성장할 수 없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부족한 존재지만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죄를 깨닫게 해 주실 때 우리는 회개할 수 있고 또 회개해야 한다(엡 4:30).

 

교훈: 우리가 선택하고 소중히 여겼던 죄가 하나님과의 사이를 가로막을 때 그 관계는 성장할 수 없다. 성령께서 죄를 깨닫게 해 주실 때 우리는 회개해야 한다.

 

<부가설명> 묵상에 제시한 문제는 각각 대답할 문제다. 오늘 교과에서 말하는 중요한 것은 잘못에 관해서 변명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자기 합리화 정당화를 꾀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은 묘해서 쉽게 자기 정당화를 도모한다. 잘못의 원인이 누구에게 있었던지 먼저 잘못을 말하고 화목하는 것이 바른 길이다. 상대의 반응은 그에게 맡겨야 한다. 때로는 잘못의 원인을 제공한 자가 자기가 정당하고 상대가 잘못을 사과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태도를 취한다. 그러면 사과하지 않은 것보다 못한 결과를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일을 이행해야 할 것이다. “10 너희가 무슨 일에든지 누구를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11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고후2:10,11).

 

6월 2일(화) 진정한 회개

세상은 독립, 방종, 자기 과시라는 가치관을 우리에게 쏟아 붓는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원칙과는 정반대되는 것들이다. 흥미롭게도 성경에 기록된 침례 요한과 예수님의 첫 기별은 비슷하다. 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말했다(마 3:1, 2). 예수님은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막 1:14, 15; 눅 24:46, 47 참조)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과 요한 모두 듣는 이들에게 천국이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고 촉구했다. 이 기별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똑같이 중요하지 않은가?

 

사도행전 3:18, 19을 읽어보라. 영적 성장 과정에서 회개는 왜 그토록 중요한가? “새롭게 하는 때”(흠정역)란 어떤 것을 말하는가?

[행3:18,19]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답: 개역은 ‘유쾌하게 되는 때’라고 번역했다. 진정으로 회개하면 새 사람으로 거듭난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우리를 회개로 이끈다(롬 2:4). 회개에는 (1) 죄를 진정으로 괴로워하고 슬퍼하는 것; (2) 죄를 떠나려는 간절한 결심의 두 단계가 포함된다. 성경에서 회개는 대부분 그리고 항상 용서로 이어진다. 우리가 진심으로 회개하면 하나님은 우리 죄를 용서하신다. 이토록 간단하다(요일 1:9, 계 3:1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우리가 재림을 위해 개인적으로 자신을 준비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회복할 때를 주신다.

예수께서 고난 받으시고 죽으신 후 부활하셨기 때문에 회개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삶에 기적을 일으키실 수 있다. 세상은 우리의 지금 모습 그대로 괜찮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와 믿음으로 당신에게 돌아오기를 바라신다(행 20:21).

우리를 온전히 당신의 손에 맡길 때, 하나님을 증거 할 수 있도록 그분께서 가지치기하시고 아름답게 다듬어 우리의 성품이 당신의 형상을 닮도록 만드실 수 있다(요 15:2, 8). 그때 우리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며 성장할 것이다(마 3:8).

“개혁이 따르지 않는 회개는 참된 회개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의는 자복하지 않고 버리지 않은 죄를 덮는 외투가 아니다. 참된 회개는 품성을 변화시키고 행동을 제어하는 생명의 원리이다”(시대의 소망, 555).

 

교훈: 재림을 위해 개인적으로 자신을 준비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회복할 때를 주신다. 그때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며 성장할 수 있다.

 

<부가설명>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다. 예수님이 오셔서 만나기 전에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생명이 없는 자였다는 것을 내포한 말씀이다. 같은 살(肉)을 가지고 있어도 죽은 살과 살아 있는 살은 나타나는 상태가 다르다. 똑 같은 사람이 살았을 때는 그 살이 생명의 작용을 나타낸다. 그런데 그 사람이 죽으면 같은 살이 썩기 시작한다. 그 살을 생명이 주장하느냐 사망이 주장하느냐에 따라서 살의 상태가 다르다. 성경은 예수님이 없는 사람은 생명이 없다고 했다(요일5:11.12). 생명이 없으니 썩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썩는 사람을 옛사람이라고 말한다(엡4:22). 예수님은 새사람으로 오셔서 생명이 없어서 썩고 있는 사람에게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신다. 사망이 사망인 줄 알고 생명이신 예수님 앞에 그 상태를 솔직히 고백하는 것이 회개다. 진정으로 회개하면 생명을 얻는다. 새롭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본질적인 회개를 생명 없는 회개라고 했다(행11:18). 우리는 생명을 얻었는가? 

 

6월 3일(수) 넉넉한 은혜

자기 죄의 무게를 느끼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십자가 아래로 나아갈 때, 우리는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시 103:8)다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해야 한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 당신을 슬프게 한 후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다(출 34:6).

 

출애굽기 34:1-10을 읽어보라. 여기서 어떤 중요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가?

[출34:1~10]

 

주님께서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긍휼이 풍성하시다는 사실이 바로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가 다시 회복될 수 있게 만들기 위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가 기꺼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고백할 때, 곧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18:13)라고 말할 때가 우리가 부르짖기도 전에 이미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서,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셨던 예수께서 그 죄의 무게를 보시고 우리에게서 그것을 가져가시는 때이다. 우리의 죄짐은 갈보리에서 벗겨졌고 우리가 당신에게 나아갈 때 예수님은 분명 우리 가까이에 계시며 심지어 우리가 예수님을 찾기 전에 선한 목자이신 예수께서 먼저 우리를 찾으시며 문 밖에 서서 두드리신다(계 3:20). 십자가에서 멀리 떨어져 하나님을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지 말자. 예수께 속히 나아가 우리의 죄와 짐을 그분의 의로 바꾸자(슥 3:4).

 

다음 구절을 천천히 읽고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지 자신의 말로 적어 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답: 주님은 우리에게 부디 죽지 말고 생명을 받아서 살라고 강권하신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롬 5:20, 21).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교훈: 성령은 우리 속에 역사하며 구하는 즉시 죄를 제하기 위해 기다린다. 십자가에서 떨어져 주님을 멀리서 보지 말고 속히 나아가 우리 짐을 그의 의로 바꾸자.

 

<부가설명> 예수를 믿는 믿음의 출발점이 회개다. 회개는 죄를 고백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죄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아야 올바르게 회개한다. 본질적인 죄가 뭣인가? 내가 저지른 도덕적 허물인가? 성경 말씀대로 생활하지 못한 허물인가? 물론 그런 것도 다 포함된다. 이런 것 이전의 본질적인 죄를 알아야 한다. 도덕적인 것 성경 말씀대로 생활하지 못하는 것들은 다 본질적 죄의 열매인 죄들이다. 그것은 아담 안에서 사망이 된 사실이다. 아담 후손들은 생명이 없다. 육체뿐이다(시78:39). 그래서 썩어지는 구습을 드러낸다. 우리는 이렇게 드러나는 썩는 구습을 죄자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생명 없는 존재의 삶의 모습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없이는 나는 생명 없는 자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고 솔직하게 고백해야 한다. 그러면 생명을 얻는다. 그것이 구원이다(요3:16). 앞과 부가설명에서 말했듯이 회개의 결과는 생명을 얻는 것이다(행11:18). 

 

6월 4일(목) 가장 값비싼 옷

좋은 옷차림이 세상의 기준에서 부를 나타내는 척도가 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다. 어떤 사람은 “나는 내가 누구인지를 표현하기 위해 이렇게 입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천국에 가면 우리의 관계 외의 모든 것은 사라져 없어질 것이다(마 6:19-21). 우리의 정체성은 예수님과 그분의 완전한 의의 옷으로 덮여야 한다.

 

예수께서 이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말씀하신 마태복음 22:1-14의 비유를 읽어보라. 이 비유에서 어떤 기별을 발견할 수 있는가?

[마22:1~14]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3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4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5 그들이 돌아 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6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7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8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9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 대 10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11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답: 모든 것은 주님이 준비하셨다. 청함을 받고 잔치집에 들어가면 수종하는 자들이 예복을 입으라고 내어준다. 입기만 하면 된다. 

 

예수님은 옷을 입지 않은 사람을 “친구”라고 부르셨고 그 사람은 응답하지 않았지만 둘 사이에는 분명 관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는 옷을 입어야 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입지 않기로 선택했다. 예수님의 성품은 완전하고 흠이 없으며 당신의 교회도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계 19:8)고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엡 5:27)도록 그분은 당신의 성품을 우리에게 주신다.

“이 세마포는 그리스도의 의, 곧 믿음으로 예수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는 흠이 없는 품성을 표상한다”(실물교훈, 310).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짓기 전에는 부드러운 빛의 흰 옷을 입고 있었다. 죄를 지은 후 그들은 벌거벗은 것을 깨닫고(창 3:7) 무화과 잎으로 옷을 만들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들이 무화과 잎으로 엮은 옷 대신 동물 가죽으로 만든 옷을 주셨다. 그들의 옷을 만들기 위해서 희생이 필요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예수님의 의의 옷을 받아들임으로써 그분의 희생을 받아들인다. “벌거벗게 되자 부끄러워서 저희는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몸을 가림으로 하늘의 옷을 대신하려 했다. …사람은 저희가 잃어버린 순결한 두루마기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 낼 수 없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그리스도와 천사들과 함께 앉을 사람들은 무화과나무 잎으로 엮은 옷이나 세상 나라 백성이 입는 옷을 입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준비하신 옷만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서게 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옷 곧 그리스도의 의의 두루마기를 회개하고 믿는 모든 자에게 입혀 주실 것이다”(실물교훈, 311).

 

교훈: 예수님의 의의 옷을 받아들임은 그분의 희생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주님은 회개하고 믿는 자에게 이 옷을 주셔서 그들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하신다.

 

<부가설명> 앞에서 부가설명에서 그 옷이 영생하는 생명에서 나오는 빛이라고 말했다.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은 빛을 옷으로 입으셨다(시104:2). 이 표현은 하나님은 생명 자체라는 것이다. 예수님도 생명 자체시다. 그래서 요1:4에서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계시했다. 예수님은 생명 잔치를 열고 생명을 옷으로 입으라고 하신다.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하고 생명의 주님께 나가기만 하면 모든 것을 갖추신 주님이 생명을 주신다. 이 생명을 주시려고 그분이 우리 사망을 십자가에서 대신 해서 처리하셨다(고후5:21, 딤후1:10). 그는 잔치 자리에서 주님과 함께 즐거워할 것이다. 주인의 증거움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 자리에 우리가 다 있기를 바란다. 

 

6월 5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성경은 종종 우리의 영적 상태를 묘사하기 위해 농사의 비유를 사용한다. 호세아 10:12은 이번 주에 논의한 내용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너희 자신을 위하여 의 안에서 심고 긍휼 안에서 거두며 너희의 묵은 땅을 부수라. 지금은 곧 주를 찾을 때니 마침내 그분께서 오셔서 의를 비같이 너희에게 내리시리라”(흠정역). 우리는 씨를 뿌리고, 거두고, 굳은 땅을 갈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까이 오시기를 구한다. 우리 마음의 굳은 땅은 성령의 비가 내리도록 갈아엎고 준비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땅을 준비하려는 마음을 주시지만 궁극적으로 그분과의 관계는 동역관계이다(빌 2:12, 13 참조). 우리는 하나님께로 얼굴을 향하고 그분께 손을 내밀며 매달려야 한다. 그러면 나머지는 그분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셔서 이루게 하신다. 하나님께 매달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훌륭한 예는 다음 구절에서 볼 수 있다. “여호와께서 바알브올의 일로 말미암아 행하신 바를 너희가 눈으로 보았거니와 바알브올을 따른 모든 사람을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에서 멸망시키셨으되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는 오늘까지 다 생존하였느니라”(신 4:3, 4).

 

함께하는 토의를 위해

➊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마 6:13).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 우리는 일상의 기도 속에 이런 생각을 담고 있는가? 유혹과 죄로부터 보호해 달라고 얼마나 규칙적으로 기도하는가?

*답: 각각 대답을 적어보자. 호흡이 기도가 되도록 하자. 

➋ 그리스도께서 주신 의의 옷이라는 귀중한 선물을 비신자나 새 신자에게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답: 각각 대답해보자. 그것은 아기가 출생하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출생하는 아기는 살이라는 옷을 입고 나온다. 우리가 거듭나면 빛의 옷으로 입혀진다. 

➌ 그리스도의 의의 옷은 하나님께서 회개하는 죄인을 용서하시고 깨끗하게 하신다는 성소의 기별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이 기별의 가치와 충만한 의미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가?

*답: 얼마나 잘 이해하는 지도 각각 대답해야 할 것이다. 성소는 속죄를 위한 제물의 피 흘려 죽는 희생이 있다. 그 희생으로 죄인은 용서받는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양이다.

 

요약: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자기 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것은 하나님과의 풍성한 관계를 맺는데 필수적인 부분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의의 옷으로 완전히 덮여 있고 용서받았음을 아는 것은 인간에게 가장 변화를 갖게 하는 경험이다. 우리는 죄의 무게가 벗어지는 것을 느낄 뿐 아니라 하나님께 더 가까이 이끌리며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감싸는 것을 느낀다. 이것은 우리를 하나님께 묶어주고 영적으로 강하게 하며 우리의 전 존재가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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