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과 죄, 복음, 그리고 율법(질문, 대답, 설명) 05/30/26 > 교과토의 자료

본문 바로가기

운영진
x


교과토의 자료 보기

교과토의 자료

제9과 죄, 복음, 그리고 율법(질문, 대답, 설명) 05/30/26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6-05-22 02:37 조회4회 댓글0건

본문

제9과 죄, 복음, 그리고 율법

(5월 30일 안식일/일몰:7시 46분)

 

● 연구 범위 삿 14; 막 9:42-48; 롬 3:20; 마 5:17, 18; 롬 3:28; 마 7:24-29

● 기 억 절 “내가 주의 법도들을 영원히 잊지 아니하오니 주께서 이것들 때문에 나를 살게 하심이니이다 나는 주의 것이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법도들만을 찾았나이다”(시 119:93, 94).

 

죄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인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죄는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사 59:2), 우리를 속이고 상처 입히고 삼키며 결국 파멸로 이끈다. 죄와 자아와의 싸움은 우리가 직면하게 되는 가장 큰 전투이며 그 결과는 지대하고 영원하다. 어떤 사람들은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죄를 단지 삶과 불가분의 것이라고 치부한다. 하지만 사회가 죄에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우리도 죄를 가볍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죄를 그대로 죄라고 말하는 것이 누군가를 불쾌하게 할까 염려하며 죄라는 주제를 조심스럽게 피해갈 수도 있겠지만 결국 우리가 죄와 더불어 편안하게 살기로 선택할수록 하나님과의 건강한 관계에서 더욱 멀어지게 될 뿐이다.

그렇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에 우리의 생각, 동기, 행동, 말은 다른 사람들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하나님께도 그러하다. 결국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삶의 죄, 빛을 비추는 당신의 율법에 대한 지식을 통해 우리에게 당신을 계시하셨다.

이번 주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와, 누군가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고 그 결과로 죄를 지었을 때 무엇 혹은 누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살펴보자.

 

※ 학습 목표

깨닫기 : 율법은 하나님의 성품과 그가 무엇을 중요히 생각하는지 또 우리의 생애와 성품을 명확히 알게 한다.

느끼기 : 율법은 의의 필요를 말하지만 의는 율법이 아닌 복음과 하나님 사랑을 통해 얻는다.

행하기 : 진리를 아는 데서 머물지 않고 말씀과 율법을 존중하며 주와 함께 삶의 변화를 이끈다.

 

TMI 위로

➋ 예수께서 한적한 곳에서 자주 기도하셔야 했던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눅 5:16)

*답: 하나님과 깊은 교제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수행하는 능력을 위한 것이다.

➍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까?(막 12:30, 31)

*답: 하나님의 성품과 뜻을 말해준다. 곧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가르친다.

➎ 율법의 중요한 역할과 함께 그 한계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합니까?(마 5:17)

*답: 율법은 우리의 실상을 보여 주지만, 고쳐주지는 못한다. 

➏ 주님을 아는 이들이 그 이름을 부르지만 주께서 모른다 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마 7:21)

*답: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➐ 율법이라는 주제가 이토록 왜곡되고 도전받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답: 사탄의 작용과 인간 중심의 생각 때문이며 하나님을 바르게 모르기 때문이다.

 

결론: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기에 하나님은 율법에 대한 지식을 계시하셨다. 죄는 주님과의 관계를 가로 막는 장벽이며 이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율법은 우리의 생애와 성품을 명확하게 알게 하고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알려준다. 율법은 속죄, 의의 필요를 말하지만 그것을 주지는 못하기에 복음이 함께 가야하며 율법을 이해하는 기초도 복음에서 비롯된다. 복음과 성경 진리를 아는 일은 중요하지만 행동이 따르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헌신과 동행을 깊게 하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다. 우리가 의의 말씀과 율법을 존중할 때 변화가 따를 것이다.

 

5월 24일(일) 방해와 유혹

사사기 14장, 사사기 16:1, 4, 16, 17에서 삼손의 시험에 대해 읽어 보라. 특정한 목적을 위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음에도, 삼손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또 한편으로는 유혹에 굴복했다. 그의 삶의 결과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삿14:1~20]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블레셋 여자에게 반해서 결혼한 것과 그 후에 일어난 사건이다.

[삿16:1,4,16,17] 삼손이 가사에 가서 거기서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4 이 후에 삼손이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 이름하는 여인을 사랑하매/ 16 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 17 삼손이 진심을 드러내어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 위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하니라.

*답: 삼손은 하나님의 은사를 받고 행사한 사람인데도 여자의 유혹에 굴복했다. 누구든지 얽매이기 쉬운 죄와 무거운 것이 있다(히12:1). 속히 벗어버려야 한다.

 

  대쟁투는 실재이며 우리 모두는 이 전쟁 가운데 있다. 하늘에서 시작된 우주적 전쟁은 오늘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사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재림이 임박한 이 시대에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갖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쩌면 당신은 그 자체가 반드시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아 하나님을 위한 시간을 거의 낼 수 없게 하는 어떤 것에 빠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직장, 사회관계망(SNS), 쇼핑, 운동, 음식일 수도 있다. 자신을 냉정하게 돌아볼 때 이러한 것들 중 어느 것에든 지나치게 시간을 보내고 균형을 잃으면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위해 낼 시간이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원수는 우리 각자의 약점과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들을 알고 있다. 우리는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닥쳐올 모든 일 가운데 뛰어들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찾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마 6:33).

예수님은 우리의 상태를 이해하시지만 우리의 무관심을 책망하신다(계 3:14-22). 이 땅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도 우리와 같이 피곤함을 느끼는 인간이셨다(요 4:6). 그분도 우리와 같은 삶의 무게를 아셨지만 자주 홀로 떠나 아버지께 기도함으로써 마음의 평안을 얻으셨다(눅 5:16, 6:12, 막 1:35, 마 14:23). 그분은 아버지와 함께하는 시간이 유혹과 싸울 힘을 되찾는 최선의 방법임을 아셨다. 그것은 우리에게도 가장 확실하고 좋은 방법이다.

  삼손이 스스로 무너진 것은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유혹을 이기기 위해 자신의 힘에 의존했다. 영혼의 원수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약화시키고 파괴하려고 애쓰기 때문에 우리 각자는 매일 죄와의 싸움에 직면한다.

  원수는 우리의 약점을 알고 있으며 그것들을 집중 공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무디게 하고 우리에게 죄책감과 무가치함을 느끼게 만든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마귀는 우리 삶의 어떤 부분에라도 거점을 얻기 위해 우리의 생각, 의도 그리고 행동을 바꾸려고 힘쓴다. 하지만 기억하라. 믿음이 우리를 굳게 서게 해 줄 것이며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난다.

 

교훈: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삶의 무게를 아셨지만 아버지와 함께하는 시간이 유혹과 싸울 힘을 되찾는 최선의 방법임을 아셨기에 홀로 기도하며 평안을 얻으셨다.

 

<부가설명> 아담의 후손으로 출생한 사람들은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이다(엡2:3). 본질적으로 이들에게는 성령이 업다(유1:19). 성령이 없는 사람을 육체에 속한 자라고 했다. 시편에는 이런 사람을 육체뿐이라고 했다(시78:39). 창세기 6:3에서 이런 사람을 육체가 되었다고 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진정한 회개를 경험하여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면 우리는 육체에 있지 않고 영에 있는 자가 된다(롬8:9). 그러나 육신, 즉 몸을 가지고 있다. 이 몸은 한 번 죽어야 하는 사망의 몸이다(롬7:24). 이 몸의 지체에는 죄의 법이 도사리고 있다. 삼손이 바로 이 도사리고 있는 죄의 법이 유혹 앞에 굴복한 것이다. 히브리서에는 이것을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라고 했다(히12:1). 우리가 이런 죄의 법이 도사리고 있는 사망의 몸을 가지고 있는 동안 사탄은 이것을 통하여 우리를 공격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이것과 싸워야 한다. 이것이 대쟁투의 핵심이다. 사망과 생명의 싸움이다. 생명의 성령께서 이 싸움에서 이기게 하신다(롬8:2).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로 성령님과 언제나 함께 해야 한다. 

 

5월 25일(월) 하나님과의 관계를 막는 걸림돌들

성경에는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는 것을 방해하는 장벽에 대한 많은 내용이 있다. 이에 대한 예수님과 바울의 권면을 살펴보자.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삼손과 같이 자신을 의지하면 넘어지게 될 것이다.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마 6:2).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지 남들에게 자랑하는 것을 멈추라! 예수님이 겸손하셨던 것처럼 겸손하라.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마 5:28, 29). 이러한 그릇된 욕망을 제거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라.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 막는 장벽이기 때문이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마 7:1, 2). 다른 사람들에 대해 유독 비판적이고 판단하는 것을 멈추라. 심판자는 하나님이시니 그분에게 판단을 맡기라(고전 4:5).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 원수를 미워하는 것을 그만 두라. 당신을 나쁘게 대하는 사람들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순간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도 장벽을 만든다. 대신 원수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하라. 그리고 이것이 당신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관계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보라.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마 5:22). 어쩌면 당신은 가까운 사람들에게 소리 지르는 것을 나름의 이유를 대며 정당화 해왔을지도 모른다. 당신의 분노는 그 대상이 된 사람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이것들은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몇 가지 영역일 뿐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손, 발, 눈이 죄를 짓게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경고하셨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경고하셨는가? 마가복음 9:42-48을 읽어보라.

[막9:42~48]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44 (없음) 45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6 (없음) 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8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답: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모든 것을 잘라내 버리라는 권고의 말씀이다. 

 

 손이나 발을 자르거나 눈을 빼내는 것은 그것이 당신으로 범죄하게 하기 때문일지라도 매우 극단적인 처사이다. 이것은 그렇게 느끼도록 의도된 것이지만 이는 바로 죄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예수께서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시는지를 보여준다. 당신은 죄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교훈: 부정적인 생각을 멈추고 마음에서 정욕을 제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무엇이든 하라. 이것은 주님과의 관계를 가로 막는 장벽이기 때문이다.

 

<부가설명> 사람의 생각이 어떤대로 인격이 그렇게 형성된다고 성경은 계시한다. “무릇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의 사람됨도 그러하니,”(잠23:7 상반, 새번역),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생각을 예수님께 굴복시켜야 한다. “4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5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고후10:4,5). 생각은 물건이 아니라서 잡아 던져 버릴 수가 없다. 그리스도인은 이 생각을 다스리기 위하여 말씀이 생각의 근원이 되도록 훈련해야 한다. 열왕기에는 왕들에 대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악했다. 여호와 보시기에 선했다’라는 말씀이 나온다. 시139편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생각을 아시고 앉고 일어서는 것을 다 아신다고 계시했다. 우리의 생각을 예수님께 굴복하자. 순간마다 굴복하자. 성령님 도와주소서.

 

5월 26일(화) 율법

비신자에게 죄를 어떻게 정의하고 설명하겠는가? 성경은 죄를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로마서 3:20과 요한일서 3:4을 읽어보라.

[롬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요일3:4]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답: 죄는 하나님의 법을 범하는 것이다.

 

죄는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는 것이며(요일 3:4) 우리의 본성 속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시 51:5, 렘 17:9). 율법은 죄의 실체를 드러낸다. 율법은 마치 우리가 주변에 실제로 무엇이 있는지를 명확하게 볼 수 있게 하는 안경을 쓰는 것과 같고 우리의 실제 모습이 어떤지를 거울을 통해 보는 것과 같다. 율법은 우리 삶과 성품을 명확히 보게 하고 죄를 깨닫게 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알려준다.

십계명(출 20:3-17)은 하나님께서 손으로 친히 쓰신 것이다. 예수께서도 그 중요성을 강조하시며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막 12:30, 31)다고 하셨다.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마 22:40)라고 예수님은 덧붙이신다.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히 1:1, 2)은 율법이 관계에 관한 것임을 알려준다. 하나님은 사람과 하나님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로 율법을 주셨다. 그러나 사탄이 하나님의 율법의 아름다움을 왜곡하여 급기야 어떤 이들은 율법을 짐으로 여기게 되었다. 율법을 생각하면 주로 사랑과 자유가 아닌 율법주의가 연상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 5:3)라고 말한다.

 

1. 살아있는 말씀이신 예수님과 그분의 성품인 율법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5점 만점의 척도로 평가해 보라.

*답: 각각 평가해보자.

2.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때 그것은 나를 속박하는가? 아니면 능하게 하는가? 만약 율법이 나를 속박한다고 느낀다면 어떻게 하면 율법을 더 바르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답: 생물은 각각 생리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전혀 불편한 것이 아니고 그것이 바르게 작용하지 않으면 불구가 되거나 생명을 잃는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의 법은 바로 생명의 법이다. “나는 그분의 계명이 영생임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는 것은 무엇이나 아버지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이르는 것이라."고 하시더라”(요12:50. 한글킹). 이 법을 벗어나면 생명을 잃는다.

3.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의 율법이 내 삶과 가정, 교회의 중심에 자리 잡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나의 삶과 내가 맺고 있는 관계에는 어떤 변화가 생기겠는가?

*답: 화목과 일체의 경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교훈: 율법은 우리 삶과 성품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알게 해주며 동시에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알려준다.

 

<부가설명> 시편 19편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1~6은 천연계의 운행에 관한 내용이다. 천연계는 창조주께서 정하신 규례를 따사 운행한다(시119:89~91). 천연계가 이 규례를 벗어나면 궤도를 벗어나고 파괴된다. 시19:7~14은 하나님의 율법에 관한 내용이다. 얼핏 보기에 조화가 되지 않는 시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율법은 천연계의 운행 법칙과 같아서 그 율법으로 사람은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온전한 사람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것을 계시한 것이다. 궤도를 벗어나는 별똥별이 낙하하듯이 하나님께서 생명의 법을 벗어나면 사망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12:50에서 하나님의 계명이 영생이라고 하신 것이다. 개구리는 개구리처럼 사는 것밖에 못한다. 개구리에게 붕어의 삶을 살아보라고 하면 될까?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것밖에 못한다. 그렇게 살게 하는 생리의 법이 하나님의 법이다. 아멘.

 

5월 27일(수) 율법과 복음

예수님은 친히 당신과 율법과의 관계를 매우 강력하고 간결하게 설명하셨다. 마태복음 5:17, 18에서 예수님은 율법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마5:17,18]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답: 하나님의 법과 말씀은 폐할 수 없고 다 이루어지게 된다.

 

부모가 자녀에게 정해 주는 선을 통해서 그들이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율법은 그분의 성품과 그분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 안에서 성장해 나갈 때 당신의 율법이 우리 삶의 모든 면을 인도할 것을 아시고 우리와 하나님 그리고 인간 상호간의 관계를 보호하기 위해 율법을 주셨다. 실제로 율법을 어기는 죄가 각자에게 초래하는 끔찍한 결과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율법의 핵심은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다.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라고 말씀하셨다(요 14:15).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분의 율법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을 분명히 이해할 때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는 마음을 느끼게 된다. 더 중요한 것은 십자가와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항상 마음에 새기는 것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이 복음과 율법이 함께 가는 이유이다. 즉, 우리가 율법을 얼마만큼 신뢰하며 율법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한다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법적 지위의 측면에서 율법은 오직 정죄할 뿐이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율법은 결코 용서하지도, 의를 주지도, 대속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율법은 우리가 왜 용서받아야 하고 왜 의롭다 함을 받아야 하며 왜 속죄가 필요한지를 지적할 뿐이다. 그래서 율법과 함께, 심지어 율법을 이해하는 기초가 되는 것은 복음이다.

 우리를 대신하신 그리스도의 죽음은 율법이 결코 할 수 없는 일, 곧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의롭다 하는 일을 성취한다.

 

교훈: 율법은 속죄, 의를 주지 않으며 필요를 알려줄 뿐이다. 율법 이해의 기초는 복음이며 복음이 함께 가야 한다. 율법이 결코 할 수 없는 일을 복음이 이루었다.

 

<부가설명> 다음 성구들은 사람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이 의는 사람의 도덕적 의가 아니다. 율법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할 때 그 의가 무엇인지 성경의 설명을 분명히 알고 이 말을 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이것을 설명할 지면이 없다. 

[롬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롬4:13-16]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14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15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16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갈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빌3: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5월 28일(목) 앎과 행함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은 당신과의 관계와 사람사이의 관계에 대해 많은 말씀을 주신다. 그 교훈의 말미에 예수님은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신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예수님은 어떤 이들이 당신을 부르며 분명히 주님에 대해 알긴 하지만 진정으로 당신을 알지는 못한다고 알려 주셨다. 지식을 추구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버렸기 때문에 멸망한다고 말한다(호 4:1, 6, 10). 시대를 초월하는 성경 진리를 아는 일의 중요성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우리를 변화시키지 못하고 하나님에 대한 헌신과 동행을 깊게 하지 못하는 지식이라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예수님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전제 조건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모르면서 그분의 뜻을 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정적인 요인이며 매우 합당한 기대이다. 당신의 자녀들이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당신이 하라고 하는 일을 대체로 이행한다면 그들의 행동은 당신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깊이를 보여 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 우리는 그분의 뜻을 행하고 싶어 할 것이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분께 대한 우리의 반응 그리고 궁극적으로 충만한 사랑 때문에 나타나는 그분에 대한 우리의 순종은 그분과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의 실체를 보여준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을 마무리하면서 청중들이 가슴 깊이 새겨야 할 마지막 도전을 남기셨다. 그것은 무엇이었는가? 마태복음 7:24-29을 읽어보라.

[마7:24~29]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29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답: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과 행하지 않는 것의 결과에 대하여 분명히 말씀하셨다. 

 

우리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진심으로 듣는다면 우리는 도전을 받고 변화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의 귀가 열리고 마음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도록 하는 그분의 계획이 숨 쉬는 매 순간 우리의 영혼에 새겨질 수 있다. 우리의 삶은 반석이신 예수님 위에 그리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완전한 계획 위에 세워질 수 있다. 이 친밀한 관계를 위한 설계도는 결코 비밀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 속에 나타나 있으며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이것을 제시하신다. 이 계획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를 주장하며 그 의를 삶으로 실천하는 것은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교훈: 영원한 성경 진리를 아는 일은 정말 중요하지만 그 지식이 변화시키지 못하고 하나님에 대한 헌신과 동행을 깊게 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는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 우주와 그 가운데 만물을 다 창조하셨지만, 여기서는 지구 이야기만 할 것이기 때문에 지구상의 존재만 말한다. 그중에 생물들에게는 생물들의 생명 법칙을 제정해 주셨다. 각 생물들은 그들에게 제정해 주신 생명 법칙을 벗어날 수 없다. 벗어나면 생명을 잃게 된다. 이것이 생명 법칙이다. 그것을 생리라고 간단하게 표현한다. 어떤 생물이든지 이 법칙을 벗어나면 존재를 상실한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한 사람에도 이 원리를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이 영생 생명의 법칙이다. 늑대가 여우처럼 살 수 없고 오직 늑대처럼만 살아간다. 사람도 같다. 그런데, 우리 시조가 이 생명 법칙을 벗어났다. 그래서 창조한 그대로의 사람으로 생활하지 못한다. 성경은 이것을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고 단정했다(신49:20. 전3:18,19). 예수님은 이렇게 된 사람을 다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려고 오셨다. 그분은 짐승처럼 된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시려고 세상에 오실 때 짐승의 우리에서 탄생하셨다. 이것은 그분이 구원하러 오신 이 세상의 형편을 기막히게 상징하는 사건이다. 우리가 거듭나서 영이 되어야 한다(롬8:9). 그러면 영으로 살게 된다. 영으로 사는 것 외에 달리 사는 방법이 없다. 양이 양으로 사는 법 말고 다른 사는 방법이 없는 것과 같다. 우리는 어떤가? 깊이 성찰해보자.

 

5월 29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사탄이 하나님께 제기한 도전의 핵심이 바로 그분의 율법에 관한 것이었음을 생각하면, 율법이라는 주제가 이토록 왜곡되고 오해받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예수님 시대에 어떤 이들은 그분이 율법을 폐기하러 오셨다고 생각했지만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다. 예수님은 율법과 하나님의 아름다운 성품을 밝히 나타내셨고 우리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보여 주시기 위해 율법을 성취하러 오셨다(마 5:17, 18).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에 대한 경외심이 백성의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될 때에만 그들은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다윗의 치세와 솔로몬의 초기의 통치 기간에 이스라엘에게 힘을 준 것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존경심이었으며 엘리야와 요시야의 시대에 일어난 개혁은 살아 있는 말씀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였다. 그리고 예레미야가 그의 노력을 기울여 개혁을 호소한 것은 이스라엘의 가장 부요한 유산인 바로 이같은 진리의 말씀에 돌아오게 하려는 것이었다”(선지자와 왕, 465).

 

함께하는 토의를 위해

➌ 당신의 생애에서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것이 쉬웠는가? 아니면 어려웠는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었는가?

*답: 각자 대답해 보자. 자아가 살아있으면 어렵다.

➍ 교회의 이름에서부터 율법에 대한 강조가 나타나는 우리는 자신의 율법 준수에 의존하여 구원받으려는 율법주의의 함정을 어떻게 피할 수 있겠는가? 심판의 날, 거룩하고 완전하신 하나님 앞에 나의 모든 죄가 드러날 때, 당신은 무엇을 의지할 것인가? 당신의 율법 준수인가? 아니면 당신을 대신한 예수님의 완전한 의인가? 생각의 날개를 펼쳐보라.

*답: 당연히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분의 의를 받는 것이다.

➎ 지식을 가진 것, 또는 지식이 없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잠언 24:3, 13, 14을 읽어보라.

[잠24:3,13,14] 3 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명철로 말미암아 견고하게 되며/13 내 아들아 꿀을 먹으라 이것이 좋으니라 송이꿀을 먹으라 이것이 네 입에 다니라 14 지혜가 네 영혼에게 이와 같은 줄을 알라 이것을 얻으면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답: 하나님이 주시는 지식과 비혜는 소망을 확실하게 한다.

 

요약: 우리의 삶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죄로 오염되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알고 사랑하도록 초대하신다. 그렇게 할 때 자연히 다른 사람도 더 사랑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이러한 사랑은 하나님의 율법에 담겨 있으며 이 율법은 하나님과의 관계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보호하고 유지하기 위해 주어졌다. 하나님의 율법은 그분의 성품을 아름답게 반영하며 우리가 그분의 율법을 이해할 때 하나님과의 관계는 더욱 굳건해질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대총회 북아태지회 한국연합회 성경통신학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한국연합회 선교부 | 고유번호증번호: 204-82-62040 | 대표자: 남수명 | 부서장: 채영석
Copyright © 2014 안식일학교·선교부 All rights reserved.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