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과 기도의 용사들(질문, 대답, 설명) 05/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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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6-05-02 01:48 조회178회 댓글0건본문
제6과 기도의 용사들
(5월 9일 안식일/일몰:오후7시 29분)
● 연구 범위 단 2:20-23; 단 6:10, 11; 행 20:36; 창 5:22-24; 출 33:15-23; 출 32:31, 32
● 기 억 절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시 116:1, 2).
가장 친한 친구나 배우자와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라. 머지않아 관계가 무너지고 문제가 생길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도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기도는 우리 각자에게 필요하고 더 강화할 수 있는 중요한 경건의 습관이다. 자주 그리고 꾸준하게 기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머지않아 주님에게서 멀어지게 될 것이다.
성경은 다양한 방식으로 기도한 여러 인물의 삶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과의 교제가 그들과 그분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우리는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지, 그들의 기도가 다른 사람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엿볼 수 있다. 우리의 기도 생활은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성경 연구와 마찬가지로 기도라는 주제는 방대하고 중요하며 2주라는 제한된 시간동안 다룰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뛰어넘는다. 이번 주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강한 관계를 맺는데 기도가 얼마나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지를 보여 준 성경 속 인물들을 통해 교훈을 얻을 것이다. 그들의 모본을 통해 함께 배워 보자.
※ 학습 목표
깨닫기 : 성경은 기도와 하나님과의 교제가 기도하는 사람과 공동체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보여 준다.
느끼기 : 성경의 인물들의 모본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를 느낀다.
행하기 : 우리도 담대하게 하나님을 신뢰하며 자신과 민족을 위한 기도의 삶을 살 수 있다.
TMI 위로
➋ 왕의 조서에도 변함없이 기도한 다니엘의 모습은 기도가 어떤 것임을 말해줍니까?(단 6:10)
*답: 기도가 호흡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➌ 우리가 기도하는 자세는 우리의 신앙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눅 22:41)
*답: 하나님을 진정으로 공경하고 그 말씀에 전적으로 굴복하는 것을 나타낸다.
➍ 우리는 짧게 묘사된 에녹의 삶에 어떤 일들이 있었음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까?(창 5:22)
*답: 그의 삶 전제가 기도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애였음을 볼 수 있다.
➎ 모세의 기도를 관찰해 보면 그 기도에서 어떤 특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출 20:21)
*답: 자기 부정과 진정한 겸소과 사랑의 특성을 볼 수 있다.
➏ 모세는 얼마나 많이 중보 하였습니까? 무언가를 반복해서 간구하는 데는 어떤 어려움이 있습니까?
*답: 40년을 중보하는 마음으로 이스라엘과 함께 했다.
결론: 성경은 기도와 하나님과의 교제가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보여준다. 고난 앞에서 기도한 다니엘은 위협에도 두려움 없이 무릎 꿇고 감사와 간구에 초점을 맞추었다. 신체적 자세는 경외심, 순종과 그분이 주권자이시고 마음을 다해 섬길 준비가 되었음을 보이기에 중요하다. 에녹이 생산적이면서 주변을 돌아보며 일할 수 있던 것은 그를 통해 당신의 놀라운 성품을 드러내도록 주님과 대화하고 동행했기 때문이다. 모세는 기도 중에 끊임없이 주님의 임재 속에 있었다. 그는 중보 기도를 통해 용서하시는 은혜를 강력하게 나타냈다. 그는 이스라엘을 위해 반복적으로 담대히 중보 했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인도하심을 기억하고 당신의 언약을 상기하며 중보 하였다. 우리도 그들처럼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의 삶을 살 수 있다.
5월 3일(일) 신실한 다니엘
다니엘은 성경의 위대한 영웅이다. 우리는 다니엘이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단 1:8)고 결심한 그의 첫 번째 이야기도 잘 안다(단 1: 참조).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에 대해 성경은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으니 다니엘은 또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다(단 1:17). 또 성경은 다니엘을 지혜로운 사람으로 묘사한다(단 1:20; 단 2:14, 21, 23, 48). 이는 하나님의 영이 그 안에 있고(단 4:9, 18; 단 5:14; 단 6:3) 그는 하늘로부터 크게 사랑받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단 9:23; 단 10:11). 이것들은 하나님과 강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가진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특징들이다.
다니엘 2장에서 느부갓네살왕이 바벨론의 모든 박사에게 사형을 선고했을 때 다니엘은 왕의 꿈의 비밀을 보여 주시도록 하나님의 자비를 구했다(단 2:18).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왕의 꿈을 보여 주시자 그는 즉시 기도했다.
다니엘 2:20-23을 읽어보라. 다니엘이 기도한 이유는 무엇이며 이 기도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단2:20~23] 다니엘이 말하여 이르되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능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 21 그는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한 자에게 지식을 주시는도다 22 그는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 어두운 데에 있는 것을 아시며 또 빛이 그와 함께 있도다 23 나의 조상들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이제 내게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우리가 주께 구한 것을 내게 알게 하셨사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고 주를 찬양하나이다 곧 주께서 왕의 그 일을 내게 보이셨나이다 하니라.
*답: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배푼 은혜와 은사에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기도를 했다.
세월이 흐르고 왕들이 바뀌는 동안에도 다니엘은 왕들의 고문으로 남아 있었던 것은 “뛰어난 영이 그 속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왕은 그를 세워 온 영토를 다스리게 하려고 생각하”(단 6:3, 흠정역)였다. 성경은 그가 탁월한 사람이었다고 기록한다. “그는 신실하였으므로 그에게서 어떤 실수나 허물도 찾아볼 수 없었”(단 6:4)다. 동료들의 맹렬한 시기와 악한 음모(단 6:5-9)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의 기도 생활은 언제나 한결같았고 두려움이 없었다.
다니엘 6:10, 11을 읽어보라. 이 구절은 다니엘에 대해 무엇을 말해 주는가?
[단6:10,11]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11 그 무리들이 모여서 다니엘이 자기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을 발견하고,
*답: 다니엘은 왕이 왕 외에 다른 존재에게 기도하면 사자굴에 던진다는 칙령에 인친 것을 알고도 하나님께 기도하며 감사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고난에 직면했을 때 다니엘은 기도했다. 생명의 위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습관대로 매일 세 번씩 꾸준하고 끈기 있게 기도했다. 그가 하루 세 번 열린 창가에서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하는 것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는 무릎을 꿇는 신체적 행동을 동반하며 감사와 간구에 초점을 맞추고 기도했다.
교훈: 고난 앞에서도 기도한 다니엘의 기도는 생명의 위협에도 변함없고 두려움이 없었으며, 무릎을 꿇는 신체적 행동을 동반하며 감사와 간구에 초점을 맞추었다.
<부가설명> 성경에 나타난 기도의 사람들은 그의 인격과 생활자체가 기도였던 것을 보게 된다. 다니엘이 그렇고 다윗이 그랬다. 우리 주님도 그랬다. 기도는 무릎을 꿇고 엎드릴 때만 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라고 말했다(복음 봉사자-GW-254). 호흡은 의식적으로 멈추려고 하지 않으면 멈추어지지 않는 생명의 작용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기도가 생명의 능력인 것을 안다. 예수께서 기도하셨고 우리들에게 ‘이렇게 기도하라’라고 가르치셨다. 우리는 거의 형식적으로 주님 가르치신 기도를 외우고 있지 않은가? 정말 우리의 삶이 기도의 실현이 되기를 기도하자.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존재가 기도의 실현이 되도록 성령께서 능력으로 주장해 주시기를 기도한다.
5월 4일(월) 기도의 자세
삶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대부분 가까운 친구에게 전화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좋은 소식이 있을 때도 함께 나눌 사람을 찾는다. 하나님과도 마찬가지이다. “기도는 마치 친구에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심정을 펴놓는 것이다”(정로의 계단, 93).
기도는 우리를 하나님과 연결해 줄 뿐 아니라 우리가 누구에게 속한 사람인지 사탄에게 알려 준다. 아침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은 어둠의 세력에게 우리가 오늘 하나님을 선택했음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것과 같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천사들을 우리 곁으로 보내어 우리를 보호하고 어둠의 원수로부터 지켜 주신다(시 91:). 복종하는 마음으로 무릎을 꿇는 물리적 행동은 겸손한 자세를 나타낸다. 편한 자세로 기도할 수도 있지만 의자에 앉거나 침대에 누운 채로 기도하는 것과 무릎을 꿇는 것은 사뭇 다르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을 때 우리는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섬길 준비가 되었음을 보이는 것이며 우리의 말은 그분이 주권자이시고 우리는 그분이 만드신 자녀임을 선포한다.
다음 성경 구절을 읽고 기도할 때 무릎 꿇었던 이들의 삶을 살펴보라(단 6:10, 눅 22:41, 행 7:60, 행 9:40, 행 20:36).
[단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눅22:41]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행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행9: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행20:36]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니,
*답: 이들은 다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그들은 다 주님을 위하여 순교까지 한 사람들이다.
성경 시대에는 서서 기도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다(대하 20:5, 6, 13; 삼상 1:26; 욥 30:20; 눅 18:11, 13). 기도할 때 앉았던 사람들의 사례도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삼하 7:18).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자세는 기도보다는 오히려 상급자 앞에 굴복하는 자세로(열상 1:47, 막 14:35) 여겨졌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런 자세로 기도했다.
당신은 기도할 때 보통 어떤 자세로 기도하는가? 성경은 특정한 자세로 기도하라고 요구하지 않지만 우리의 자세는 경외심, 내적 감정, 하나님께 순종하려는 마음을 반영하기에 중요하다.
무릎을 꿇을 수 없는 이도 있다. 그렇기에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상태이다. 무릎을 꿇을 수 있지만 대개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다음에는 무릎을 꿇어 보고 그것이 하나님과의 시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는 것은 어떤가?
교훈: 육체의 자세는 주를 향한 경외심, 내적 감정, 순종을 반영하며 그분은 주권자이며 우리는 마음을 다해 섬길 준비가 되었음을 보이는 것이기에 중요하다.
<부가설명> 공식적으로 예배할 때 기도하는 자세는 무릎을 꿇는 것이 성경적이다. 가족 예배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위의 성경의 예처럼 개인적으로도 다니엘처럼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할 경우는 그렇게 하는 것이 합당하다. 그러나 호흡처럼 기도할 때는 자세가 반드시 무릎을 꿇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느헤미야는 왕 앞에 서서 잠깐 묵도했다(느2:4).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도 즉시 응답하셨다. 때로는 자리에 누워서 기도할 수도 있다. 병석에 누운 환자들의 경우가 그렇고 때로는 잠자리에 들어서 기도할 수도 있다. “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시4:4). 성도의 존재와 삶자체가 기도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쉬지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바로 이런 삶과 인격에 관한 권면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 교과를 공부하고 기도생활이 이렇게 이어지는 생활습관이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
5월 5일(화) 주와 동행하며 대화한 에녹
창세기 5:22-24을 읽어보라. 우리는 에녹에 대해 정확히 무엇을 알고 있는가?
[창5:22~24]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23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답: 그가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데려간 것을 안다.
성경은 에녹의 삶에 대해 많은 것을 기록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하늘로 데려가시기 전에 300년 동안 그가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말한다. 누군가의 삶을 “하나님께 대한 변함없는 헌신”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우리는 에녹이 “기도에 항상 힘쓰며”(롬 12:12) 인내하고 매일의 경험을 통해 믿음 안에서 하나님과 더 가까워졌을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그가 살던 시대에 세상은 점점 더 악해지고 있었고 에녹은 하나님을 섬기는데 열심이었지만 그분과 동행하지 않고서는 이를 잘 해낼 수 없었다.
“활동적인 생활 가운데서도 에녹은 하나님과의 교통을 꿋꿋이 유지하였다. 그의 일이 더 커지고 더 분주하게 될수록 그는 더 부단히 그리고 간절하게 기도했다. …한동안 백성 가운데 머물며 교훈과 행실의 모본으로 그들의 유익을 위하여 일한 후에 그는 물러나 하나님만 주실 수 있는 거룩한 지식을 갈망하고 목말라하며 잠시 한적한 곳에서 지내곤 하였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에녹은 점점 더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였다.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그의 얼굴에 찍힌 하늘의 인상을 경외심을 가지고 바라보았다”(부조와 선지자, 86).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과 너무 단절되어 이 땅에 크게 쓸모가 없는 은둔자나 수도사처럼 살라고 요구하지 않으신다. 에녹처럼 우리도 생산적이면서 주변의 필요를 돌아보며 일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당신의 놀라운 성품을 드러내실 수 있는 꾸준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통해 그분과 동행하며 대화할 때에만 가능하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기도할 수 있다.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지 못하거나 듣지 않으시는 곳은 없다(시 139:7-12). 우리가 어디에 있든 그분은 항상 우리 마음의 부르짖음을 들으신다(애 3:55-57 참조).
그러나 마음속으로만 조용히 기도하는 것보다 소리 내어 기도하는 것에는 분명한 유익이 있다. 조용히 기도할 때 우리는 집중하지 못하거나 생각의 흐름이나 문장을 끝까지 말하지 못할 수도 있고 생각의 초점을 유지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속삭이거나, 혹은 보통의 목소리로 하거나 소리 내어 기도할 때 그것은 하나님이 실재하시고 듣고 계시며 우리가 그분과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것이 있음을 자신에게 상기시키는 것이다.
교훈: 에녹은 생산적이면서 주변을 돌아보며 일할 수 있었다. 이는 우리를 통해 당신의 놀라운 성품을 드러내실 수 있도록 주님과 동행하며 이야기할 때만 가능하다.
<부가설명>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읽어서 알고 있다. 증언은 그가 동행한 것이 오늘날 사람들이 함께 얼굴을 보며 때로는 손을 잡고 동행하는 그런 형태의 동행이 아니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한 것은 황홀경 속에서나 이상 중에서가 아니라 그의 일상 생활의 모든 의무를 행하는 가운데서였다. 세상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할 일이 있었던 까닭에 그는 이 세상을 완전히 등진 은둔자가 되지 않았다. 가정에서와 사교 생활에서, 남편이요 아버지로서, 친구로서, 시민으로서 그는 확고 부동한 하나님의 종이었다. 에녹의 마음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였다. 왜냐하면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암 3:3)면 동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거룩한 동행은 3백 년간 계속되었다.”(부조 85쪽). 그런데 성경을 읽으면 에녹이 동행한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 수 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5,6).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로 살았다는 설명이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산다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8,9). 에녹은 육체에 있어서 행했으나 육체대로 산 사람이 아니다(고후10:2~5). 그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우리 삶의 모습도 이러면 얼마나 좋겠는가?
5월 6일(수) 경건한 지도자 모세
에녹이 하나님과 매우 가까운 관계를 맺은 것이 분명하지만 우리는 모세와 하나님의 관계를 통해 더 많은 통찰을 얻을 수 있으며 심지어 모세가 하나님과 나눈 수많은 대화의 기록을 읽을 수도 있다. 이 겸손한 지도자의 삶의 굴곡을 함께 살펴 볼 때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자 경건한 지도자로서 성공의 비결은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소통과 변함없는 관계였음을 거듭 확인할 수 있다.
출애굽기 33:15-23을 읽어보라. 모세와 주님이 나눈 대화의 내용과 방식은 어떠했는가?
[출33:15~23]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 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16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1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 18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1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20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21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기를 보라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22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23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답: 모세는 자기의 마음을 그대로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하나님께서도 격의 없이 대답하시고 대화하셨다. 정말 친구가 만나서 대화하듯이 서로 말씀을 나누었다.
하나님과 직접 대화하며 그분의 음성을 이토록 분명하게 듣는 것이 어떠했을지 상상해 보라.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에게 하나님을 대신해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게 해 달라고 간청하면서(출 20:18-21)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제를 원하지 않았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해 바로 이 산에서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서 시작된 만남을 통해 모세를 준비시키셨다. 우리가 모세의 다른 개인적인 기도를 읽어볼지라도 그는 거의 끊임없이 하나님의 임재 속에 머물며 인도하심을 구하고 자신이 이끄는 백성을 위해 중보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중에서 모세는 가족을 위해 두 번 중보 기도 한다. 그의 중보 기도는 어떤 상황에서 이루어졌으며 만약 그가 중보 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겠는가?
• 아론: 출애굽기 32:1–14, 31–34; 신명기 9:20
[출32:1~14, 31~34]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2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3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5 아론이 보고 그 앞에 제단을 쌓고 이에 아론이 공포하여 이르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6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8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예배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9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10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11 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12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13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14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31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32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주옵소서 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34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
[신9:20]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진노하사 그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그 때에도 아론을 위하여 기도하고,
*답: 아론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백성들에게 경배하라고 한 사건에 대하여 모세는 사유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했고 응답받았다.
• 미리암: 민수기 12:13
[민12:13]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하나님이여 원하건대 그를 고쳐 주옵소서.
*답: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를 원망하고 공격했을 때 미리암이 문둥병에 걸리자 그것을 낫게 해주시기를 간구했고 응답을 받았다.
미리암과의 관계에서 특별히 놀라운 점은 모세가 그녀의 부당한 대우와 질투의 피해자였다는 사실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미리암과 아론에게 마땅한 벌을 내리도록 그저 물러서서 내버려 둘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즉시 누이를 용서하고 그녀의 치유를 위해 중보 했다.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가 모세의 행동을 통해 얼마나 강력하게 투영되었는가!
교훈: 모세는 기도 중에 거의 끊임없이 하나님의 임재 속에 있었다. 그는 중보 기도를 통해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를 강력하게 나타냈다.
<부가설명> 그리스도인은 내게 대하여 잘못하는 사람을 용서하기를 주님이 우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할 줄 알아야 한다. 마음에 원한을 품고 있으면 실은 자기가 상한다. 용서하고 털어버리면 자기가 상대에 대한 원한에서 해방된다. 그리스도인은 이런 용서의 정신을 살아야 하고 그 정신으로 상대를 위하여 기도할 것이다.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안을 빌라고 하시고 그들이 그 평안을 받지 않으면 그 빈 평안에 자신에게 돌아온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이 원리를 지적한 것이다(마10:12,13). 우리가 용서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사탄의 계획이다(고후2:10,11). 이 계획에 우리가 빠지지 않도록 성령께서 주장해 주시기를 기도하자.
5월 7일(목) 모세가 백성을 위해 중보 하다
출애굽기 32:31, 32을 읽어보라. 이 구절은 모세와 기도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출32:31,32]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답: 모세는 자기가 희생이 되더라도 백성이 용서받기를 진심으로 간구했다.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셨다.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반복적으로 담대하게 중보 했다. 백성이 목마를 때(출 15:25, 출 17:2-6), 굶주릴 때(민 11:21, 22) 그리고 절망에 빠졌을 때도(민 11:11-15) 그는 하나님께로 나아갔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직후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었을 때에 대해 모세는 이렇게 회상했다. “여호와께서 심히 분노하사 너희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두려워하였노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때에도 내 말을 들으셨고”(신 9:19).
모세는 정탐꾼들이 약속의 땅에서 돌아왔을 때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했다. “내가 처음과 같이 사십 주 사십 야를 산에 머물렀고 그때에도 여호와께서 내 말을 들으사 너를 참아 멸하지 아니하시고”(신 9:25).
레위 지파가 성소 봉사를 위해 다른 지파들로부터 구별되었을 때에 대해서도 모세는 이렇게 회상했다. “내가 처음과 같이 사십 주 사십 야를 산에 머물렀고 그때에도 여호와께서 내 말을 들으사 너를 참아 멸하지 아니하시고”(신 10:10).
기도 그리고 하나님을 굳게 붙잡는 일에 대해 우리는 모세의 삶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 모세는 하나님을 깊이 사랑했고 그분의 성품을 분명하게 이해했다. 출애굽기 34:6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을 이렇게 묘사하셨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 모세는 약속의 땅으로 가는 고된 여정의 우여곡절 속에서도 하나님을 굳게 붙잡으며 담대하고 신실했다. 우리 모두가 그런 것처럼 모세도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임재, 인도하심을 신뢰했다(출 33:13).
• 모세는 하나님께 당신의 언약을 상기시켰고(출 32:13), 백성을 위해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했으며(신 7:8) 과거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억했다(신 8:2).
• 모세는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자신이 바라던 것이든 아니든 하나님의 답을 모두 받아들였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에 있다고 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항상 얻게 되는 것은 아니다(신 3:23-29). 그럼에도 우리는 끈기 있게 기도해야 한다(눅 18:1-8).
교훈: 모세는 이스라엘을 위해 반복적으로 담대하게 중보 했다.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인도하심을 기억하면서 당신의 언약을 상기시키며 중보 하였다.
<부가설명> 풀무불을 앞에 두고 기도한 세 청년은 하나님께서 그 불 속에서 자기들을 구하실 것이며,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우상에게 절하지 않는다고 단호히 하나님 편에 굳게 섰다. 이것이 성도들의 기도하는 정신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최선의 길로 인도하실 것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맡겨야 한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이렇게 하지 못하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주님의 자비를 굳게 붙잡을 수밖에 없다. 우리 주님의 자비와 용서가 아니면 어찌 잠시라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는가? 주님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와 사랑으로 저희를 사유하시고 기꺼이 받아주소서. 우리도 사유하는 정신으로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자.
5월 8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궁극적으로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기쁨, 삶의 승리, 마음의 짐, 걱정, 일상의 간구까지 삶의 모든 것을 그분과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매우 가까이 거함으로 뜻하지 않은 시험을 당할지라도 마치 화초가 태양을 향하는 것처럼 우리의 생각은 자연적으로 하나님을 향해야 할 것이다. 그대의 소원과 기쁨과 슬픔과 염려와 두려움을 하나님 앞에 내어 놓으라. 그대는 그분께 짐이 되거나 그분을 지치게 할 수 없다. 그대의 머리털까지 세시는 그분은 당신의 자녀들의 요구에 대해서 무관심하지 않으신다. …그분의 사랑의 마음은 우리의 슬픈 일을 보거나 그 슬픈 일에 대한 말만 들어도 민망히 여기신다. 우리의 마음을 번뇌케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에게 내어놓으라. 그분은 온 세상을 붙들고 계시며 우주의 모든 일을 다스리시기에 그분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 큰일은 없다. 다소라도 우리의 평강에 관계되는 일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그분이 주목하지 않으시는 것은 없다. 우리의 어떠한 경험이라도 그분께서 보시지 못할 만큼 어두운 일은 없고 아무리 곤혹스러운 문제라도 그분이 풀기에 너무 어려운 것도 없다. 당신의 자녀 중에 지극히 작은 자가 당하는 어떤 재난이나 그들의 심령을 괴롭게 하는 어떤 불안이나 마음을 북돋우는 어떤 기쁨이나 입술에서 새어 나오는 어떠한 기도라도 우리의 천부께서 그것들을 못 본체하시거나 거기에 즉각적인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하나님과 각 사람과의 관계는 마치 이 지상에 그분의 돌보심을 나누어 가질 다른 영혼이 전혀 없는 것처럼 혹은 마치 그분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나 외에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주시지 않은 것처럼 그렇게 개별적이고 완전하다”(정로의 계단, 99).
함께하는 토의를 위해
➊ 기도를 귀한 것이라고 하겠는가 아니면 부담스러운 것이라고 하겠는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가?
*답: 성도 중에 그런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기도를 의무로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기도는 호흡이다.
➋ 위 인용문의 내용 가운데 어떤 생각이 특별히 마음에 와 닿는가?
*답: 각각 대답을 적어보자. “그분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나 외에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주시지 않은 것처럼 그렇게 개별적이고 완전하다.”
➌ 이번 주에 공부한 세 명의 성경 인물(다니엘, 에녹, 모세) 중 누구의 기도 생활에 가장 공감이 되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답: 각각 답을 적어보자.
요약: 기도의 위인들을 보면 우리는 그들처럼 하나님과 가까운 관계를 맺거나 헌신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다. 반대가 있을지라도 다니엘과 같이 매일 무릎 꿇고 기도하는 데 한결같고 충성스러울 수 있다. 에녹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일을 하기 전에 먼저 그분께로 향하여 하나님과 함께 걷고 대화하는 삶을 선택할 수 있다. 모세처럼 인도자이자 친구이신 전능자의 그늘 아래 거하기로 선택할 때 우리도 우리의 영향력 안에 있는 사람들을 이끌며 가족과 지역 사회 사람들을 위해 중보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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