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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과 실태 파악(질문, 대답, 설명) 04/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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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6-03-27 21:05 조회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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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과 실태 파악

(4월 4일 안식일 / 일몰:오후 6시 57분)

 

● 연구 범위 계 3:14. 22; 4:9. 11; 창 2:7; 3:8.10; 렘 31:3, 4; 요 15:1 .11; 롬 8:9. 11 

● 기 억 절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요 15:9).

 

오늘 당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활기가 넘치고 굳건한가? 당신은 신령한 말씀을 탐구하며 그분과 친구처럼 대화하고 이 관계에 시간을 투자하며 할애하는가? 그렇게 하고 있다면 이를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이는가? 또 하나님과의 관계가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관계이기에 다른 이에게 나누고 싶은 마음을 느끼는가? 아니면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식어버렸는가? 물론 그 관계가 존재하고 이럭저럭 만남을 갖지만 솔직히 예전만큼 굳건하지는 않은가? 당신은 혹시 성경이 ‘미지근’(계 3:16)하다고 말하는 그 어디쯤에 있는가?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천사들은 왜 우리가 매일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고자 하는 갈망과 열정을 다해 구주이자 구속주인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진실로 하나님과의 관계는 이 세상과 영원까지의 모든 것을 좌우한다.

이번 주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현재 어떤 상태인지 그리고 성경이 우리에게 무엇을 권면하는지 생각해 보자. 먼저 자신을 솔직하게 돌아보고 예수께서 제시하시는 해결책을 듣는 것이야말로 현재의 상태에서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가는 토대가 될 것이다.

 

학습 목표

깨닫기 : 이 세상과 영원까지의 모든 것은 주님과의 관계에 달려있으며 주님은 함께하기를 원하신다. 

느끼기 : 우리를 위해 죄를 이기신 주님은 부족함을 채우시고 성령을 통해 생명을 얻고 성장하게 하신다. 

행하기 : 성령의 도움으로 계명을 지키고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 영원까지 이르는 위대한 비결이다. 

 

TMI 위로

2. 예수님은 마지막 때의 신자들의 상태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계 3:15)

*답: 예수님을 문밖에 세워뒀다고 하신다. 그래서 미지근하고 가난하다.

3. 예수님은 왜 그렇게 마지막 때의 신자들을 심하게 책망하십니까?(계3:19)

*답: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그들을 어떻게 하든지 생명을 얻게 하고 풍성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4. 예수께서 당신의 승리를 우리의 승리와 연결시키는 데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렘 31:3)

*답: 무궁한 사랑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5. 우리가 예수 안에 거하는 것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야 합니까?(요일 5:3)

*답: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야 한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계명이 지켜지는 것으로 드러난다.

6. 성령이 우리 안에 역사하실 때 주님은 어떤 일을 하실 수 있습니까?(요 15:26; 16:7, 8, 13)

*답: 예수님을 증거하게 되고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고 진리의 말씀으로 인도하신다.

7. 포도나무의 비유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은 어떤 의미라고 알 수 있습니까?(요 15:4) 

*답: 열매맺는 일이다. 

 

결론: 이 세상과 영원까지의 모든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달려있다. 주님은 마지막 때 라오디게아 같은 신자들의 영적 상태를 진단하며 부족한 것을 채우라고 하신다. 그분은 사랑하시기에 책망하시고 우리와 함께하며 더 강하고 깊은 관계를 맺기 원하신다. 죄와의 투쟁이 있지만 주께서 죄를 이기셨고 우리와 항상 함께 가까이 있기를 원하신다. 계명을 지키고 의미 있는 삶을 살며 그분 안에 거하는 것은 영원까지 이르게 하는 위대한 비결로서 라오디게아 같은 상태를 해결하는 치료약이다. 우리는 자기 힘이 아닌 성령의 역사를 통해 생명을 얻고 성장할 수 있으며 주님과 연결되어 성령이 우리 삶에 역사하시도록 구해야 한다.

 

3월 29일(일) 우리의 상태

예수께서 지금 우리와 그분과의 현재의 관계를 이야기하신다면 무엇이라고 말하실지 생각해 본 적 있는가? 그 관계가 굳건하다고 하시거나 이전에는 더 굳건했었다고 하실지 모른다. 예수께서 이 마지막 시대에 살고 있는 당신의 백성에 대해 이야기하신다면 무엇이라고 말하실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예수님은 실제로 요한계시록 3:14-22에서 마지막 시대를 사는 당신의 백성에 대해 묘사하신다. 그분은 먼저 당신을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계 3:14)라고 말씀하신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은 거짓을 말하지 않으며 분명하고 정직하게 증언한다.

예수님이 오늘날 당신의 백성의 영적 상태를 묘사하신 요한계시록 3:14-17을 읽어보라. 이 구절은 당신을 얼마나 잘 묘사하고 있는가?

예수님은 마지막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 각자를 안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데 그것은 우리 입장에서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루가 지나가고 매주가 흘러가도 우리는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하나님과 짧은 시간을 보내며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는 훨씬 더 절실하게 그분이 필요하다. 차라리 온 마음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위해 살든지, 아니면 아예 사랑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관점에서 미지근한 것보다 더 나은 것인가? 예수님은 지금의 상태는 끔찍하기 때문에 우리를 입에서 토해 내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아직 그렇게 하지 않으셨으며 우리에게 지금 확실한 선택을 하라고 요청하신다.

 

요한계시록 3:18, 19에서 그분은 우리에게 무엇을 권하고 계시는가?

[계3:18,19]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답: 순금, 흰옷, 안약을 사서 자신을 바르게 세우도록 하라고 하신다. 

 

고대에 무언가를 사는 것은 물물교환이나 물품을 바꾸는 것을 의미했다. 예수님은 우리의 무관심을 당신의 금, 흰옷, 안약으로 바꾸자는 매우 너그러운 교환을 제안하신다.

 

교훈: 예수님은 마지막 때 신자들의 영적 상태를 진단하며 부족한 것을 채우라고 하신다. 그분을 받아들이고 영접할 때 우리는 스스로 얻을 수 없는 것을 받는다.

 

  그분은 우리를 부유하게 만들고 싶어 하신다. 우리를 당신의 완전한 의의 옷으로 덮어 주길 원하시며 우리 눈을 열어 당신과의 지속적인 관계가 모든 것을 어떻게 완전히 바꾸는지에 대한 진리를 보게 되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시는데 그중에서도 우리에게 필요하지만 스스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들을 주신다. 오직 그분만이 우리의 필요를 채우실 수 있고 또 그렇게 하실 것이지만 그것은 오직 우리가 받아들일 때에 이루어질 것이다.

 

<부가설명> 태초에 창조된 사람의 상태에서는 자기 얼굴을 자신이 볼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자기 얼굴을 자기가 거울이나 물이나 비춰주는 것이 없이는 볼 수 없다. 자기의 뒷모습도 여전히 그렇다. 다른 무엇의 도움이 없이는 자기의 뒷 모습이나 앞 모습을 스스로 알 수 없다. 영적 사실도 그렇지 않을까? 야고보는 거울 이야기를 했다. “23 누구든지 도를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24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25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 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약1:23~5). 하나님의 율법은 자유하게 하는 완전한 율법이다. ‘온전한’이라고 번역한 헬라어는 ‘텔레이오스’인데 ‘완전한’ ‘완성한’이라는 뜻이다. 이 율법이 무엇인지 야고보는 2장 9~12에서 해석했다. “9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약2:9~12). 그것은 우리가 십계명이라는 그 율법이다. 이 율법은 완전한 율법이다. 내 사상과 생활이 이 율법의 거울이 비춰서 확인해야 한다. 이 말씀들과 일치하지 않으면 나의 영적 상태는 심각하다. 성령님 역사로 우리는 바울처럼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나를 살아주시도록 해야 할 것이다.

 

3월 30일(월) 책망, 회개, 상급 

예수님은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고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어 회개하라”(계 3:19)라고 말씀하신다. 단 한 순간이라도, 그 누구라도 예수께서 우리나 우리의 미래를 돌보지 않으신다고 단정할 수 없다. 예수께서 인류를 포기하시고 이 땅에서 고난의 길을 거부하셨더라면 그분의 길은 얼마나 수월했겠는가? 그분이 우리의 지금 모습을 책망하시는 것은 바로 우리를 그렇게 깊이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와 훨씬 더 강하고 깊은 관계를 맺기 원하신다. 그분은 우리의 변덕스러운 태도, 곧 “필요할 때만 그분께 나아가는” 자세에 만족하지 않으신다.

그분의 책망하며 회개하라는 말씀은 오히려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회개하라고 하시지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깨닫지 못한다면 회개할 수 없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의 어떤 점이 잘못되었는지도 정확하게 알려 주셨다. 우리는 스스로 부유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불쌍하고 비참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자”이다(계 3:17, 쉬운).

 

요한계시록 3:20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을 약속하는가? 그 약속이 이루어지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계3:20]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답: 문을 열고 영접해야 한다. 문을 여는 것은 자신의 몫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정말 아름답고 놀라운 장면이다. 우주의 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하며 식사하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좋은 음식을 함께 나누며 서로 교제하고 대화하기를 원하신다. 친밀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원하시는 예수님은 우리가 그분과 이런 관계를 가지도록 초대하신다. 예수님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시며 당신의 마음 문을 두드리신다. 아마 당신도 훤칠하고 자비로운 모습의 구주께서 부드럽게 문을 두드리는 그림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분은 갑자기 들이닥쳐 대화를 강요하지 않으신다. 우리의 시간이나 바쁜 삶을 방해하지도 않으신다. 시간이 많지 않다. 그러니 그분의 음성을 듣거든 문을 열라. 거기 계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삶으로 들어오실 것이다.

이 비유는 예수께서 우리 각자와 어떤 관계를 맺고자 하시는지 보여준다. 언젠가 예수님을 직접 대면하게 되는 날, 창조주를 예배하는 수천수만의 무리와 함께 찬양과 경배 가운데 그분의 발 앞에 면류관을 드릴 그날(계 4:9-11; 5:11-14), 이 땅에서의 시련들이 얼마나 아무 것도 아니었는지를 깨닫게 될 때, 그 때 이 땅에서 예수님과 함께한 시간이 과연 조금이라도 후회스럽겠는가?

 

교훈: 변덕스러운 태도, 지금의 모습을 책망하시는 것은 바로 그분이 우리를 깊이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우리와 함께하며 더 강하고 깊은 관계를 맺기 원하신다.

 

<부가설명> 라오디게아교회의 병이 무엇인지 물으면 여러분은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대부분 사람들이 미지근한 상태라고 대답을 한다. 그것은 완전히 틀린 대답이다. 미지근한 것은 라오디게아교회 질병의 증상이다. 미지근한 증상이 나타나는 질병이 무엇일까? 치료하려면 병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아야 처방이 나오고 복용할 때 치료가 된다. 병이 무엇인지 모르면 치료한다고 쓰는 약이 도리어 병을 악화시킬 수 있다. 라오디게아교회 질병이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님을 모시지 않은 병이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신다. 문밖에 계신다고 하시고 문을 열라고 하신다. 예수님은 밖에 세워두고 교회는 비즈니스에 바쁘다. 그래서 부자가 되었다. 우리 개인은 어떤가? 지금 교회는 행사에 바쁘다. 말씀은 없고 친교와 선교자원이라는 명목의 여행과 소그룹이라는 친목회와 집회는 주말집회가 고작이다. 예수님은 지금 어디 계시는가? 잘 진단해보자.

  

3월 31일(화) 영원한 사랑

예수님은 우리의 무심한 상태를 묘사하신 후 이는 극복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계 3:21). 우리 중 어떤 이들에게는 자신의 연약하고 자기만족 가운데 있는 상태를 깨닫고 예수님의 책망을 받아들이며 회개하고 예수님의 의의 옷을 입는 단순한 일이 평생 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가장 큰 싸움일지도 모른다. 놀라운 것은 예수께서 우리의 무심하고 미지근한 상태를 이해하시고 우리와 당신을 동일시하신다는 점이다(예수께서 미지근하셨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그분은 “이기는 그에게는…내가 이기”(계 3:21)는 것과 같이 하겠다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죽으셨기에 그분께서 죄와 그 형벌을 이기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직면하는 죄와의 싸움을 이해하시며 우리를 돕겠다고 약속하신다. 성경 속 많은 이들이 하나님과 언약 관계를 맺으라는 그분의 초대에 응답했다. 이것이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이자 주제이다. 이 사람들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각기 다른 시기에 각각 다른 방법으로 그들과 교제하셨음을 알 수 있다.

아래의 기록들은 하나님이 다양한 상황의 사람들과 어떻게 교제하시는지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답: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셔서 생령이 되게 하셔서 교제하셨다.

[창3:8–10]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답: 금지한 과일을 먹고 숨은 아담 부부에게 먼저 찾아오셔서 부르셔서 대화를 시도하셨다.

[창5: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답: 에녹과를 동행하시다가 하나님께로 데려가셨다.

[창6: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답: 포악함이 땅을 채웠을 때는 그들을 없이 하셨다.

[창12:1–4]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답: 아브람에게 사명을 맡기시며 그 임무를 말씀해 주셨다.

[출34:29]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답: 만나서 대화한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셨다.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들과 직접 함께 동행하셨든, 말씀만을 나누셨든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항상 사람과 가까이 있기를 원하셨다는 것이다.

 

오늘 당신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든지 그분은 당신과 가까이 있기를 원하신다. 예레미야 31:3, 4에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 …내가 다시 너를 세우리니 네가 세움을 입을 것이요.” 지금 그대의 하루가 시작되었든 아니면 이제 마치고 있든 하나님은 그대를 찾으시고 기다리시며 그대를 당신에게 더 가까이 이끌기 원하신다. 하나님은 그대와의 관계를 세우거나 회복하기를 바라신다. 만약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바람이 이루어질지 여부는 그분이 아닌 당신의 손에 달려 있다.

 

교훈: 죄와의 큰 싸움을 앞두고 있지만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죄와 형벌을 이기셨다. 그분은 우리를 도우시며 항상 함께 가까이 있기를 원하신다.

 

<부가설명> 성경은 말한다.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롬1:19,20). 천연계는 사람의 생활 환경이다. 아담이 범죄했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땅이 너를 인하여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고”(창3:17,18). 오늘날 이 지구 사람들이 보는 천연계는 저주받은 환경이다. 그래도 그것을 보는 눈이 기록된 말씀으로 밝아지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볼 수 있게 한다. 이 사실을 깨달으면 천연계를 통하여 호흡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닌가? 천연계를 통하여 만일 하나님을 못한다면 그는 호흡이 멈출 때다. 호흡은 의식적으로 멈추지 않으면 멈추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와 함께 하신다. 잠시도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는 것은 피조물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모르고 있으니 창조주 하나님은 얼마나 안타까우실까?

 

<부가설명> 성경은 말한다.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롬1:19,20). 천연계는 사람의 생활 환경이다. 아담이 범죄했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땅이 너를 인하여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고”(창3:17,18). 오늘날 이 지구 사람들이 보는 천연계는 저주받은 환경이다. 그래도 그것을 보는 눈이 기록된 말씀으로 밝아지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볼 수 있게 한다. 이 사실을 깨달으면 천연계를 통하여 호흡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닌가? 천연계를 통하여 만일 하나님을 못 만난다면 그것은 호흡이 멈출 때다. 생명을 잃을 때라는 말이다. 세상은 호흡하면서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하나님의 눈에는 다 죽은 존재이다. “14 그가 만일 자기만 생각하시고 그 신과 기운을 거두실진대 15 모든 혈기 있는 자가 일체로 망하고 사람도 진토로 돌아가리라”(욥34:14,15). 호흡은 의식적으로 멈추지 않으면 멈추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와 함께 하신다. 잠시도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는 것은 피조물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모르고 있으니 창조주 하나님은 얼마나 안타까우실까?

 

4월 1일(수) 나의 안에 거하라

제자들은 다락방에서 내려와 아래쪽 거리로 예수님을 따라갔다. 그들이 함께 겟세마네로 걸어가던 그날 밤은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밤이었지만 그들은 아마도 다락방에서 예수께서 그들에게 하신 마지막 말이 정말 얼마나 간절하고 소중한 의미를 담고 있는지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요한복음 15:1-11에서 예수님은 무엇을 말씀하셨는가?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요15:1~1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답: 하나님의 백성된 사람들은 예수님과 일체된 사람들이라고 하신다. 우리는 이 경험으로 매일을 호흡하고 사고(思考)해야 한다.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어떤 것인지를 묘사한다. 거하라는 단어가 거듭되는 정도를 넘어 열 번이나 반복해서 나타나는 것에 주목하라.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은 그분과 연결되어 살아가는 것이다. 십자가를 목전에 두신 예수님은 그분 안에 거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 삶에서 그것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실제적인 측면을 분명하고 간결하게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이시고 우리는 가지이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거할 때(그분과 연결될 때) 우리의 가지에 열매가 맺힐 것이다. 우리 스스로는 열매를 맺을 수 없다. 때로는 우리가 그분과 함께 거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열매가 없다면 그 안에 거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될 것이며 결국 우리 가지는 말라버릴 것이다. 우리가 시들어 버린다면 포도원 지기는 결국 가지를 쳐낼 것이고 열매를 맺건 그렇지 않건 우리 가지의 가지치기가 이루어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도 어려움과 고통스러운 순간을 겪는다.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한다면 이런 순간들이 나중에는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할 것이다. 가지에 맺힌 열매는 우리가 누구인지, 곧 그분의 제자인지를 확증한다. 우리의 열매는 우리 자신이 아닌 그분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것이다. 예수 안에 거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름다운 성품인 이타적 사랑을 보여 주는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 안에 거할 때 큰 기쁨을 얻을 것이다. 예수 안에 거하는 것은 예수께 반응하여 그분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을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 5:3).

생각해 보면 예수 안에 거하는 것은 우리의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은 상태(계 3:20, 요 15:4)를 해결하는 치료약이다. 이는 이 땅에서 충만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며 영원까지 이르게 하는 위대한 비결이다. 그런데도 왜인지 우리는 예수님의 권면을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궁극적으로 예수님은 우리 각자에게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요 15:9)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사랑이야말로 우리를 그분께로 이끌어가는 가장 강력한 끈이며 우리가 이 사랑을 알게 될 때, 하나님과 이웃에게 사랑으로 응답하려는 마음으로 깊이 감동될 것이다.

 

교훈: 계명을 지키고 그와 연결되어 의미 있는 삶을 살며 주 안에 거하는 것은 영원까지 이르게 하는 위대한 비결로 라오디게아 같은 상태를 해결하는 치료약이다.

 

<부가설명>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이 실제로 어떤 상태일까? 요한복음 15:1~11을 맑은 정신으로 읽으면 아주 쉽게 이 말을 알 수 있다.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4,5). 예수께서 이 말씀을 친히 해석하신다.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슴이 우리 안에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생활하는 것이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뜻이다.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10절).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때 예수님이 우리 안에,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이 현실 생활에서 실행되고 있는 것이다. 아멘.

 

4월 2일(목) 포도나무에 연결됨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은 때로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일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일임을 알지만 삶의 급류는 우리를 끌어들여 집어삼켜 버리며 모든 것이 너무 힘들게 보일 수 있다. 하나님을 따르는 일이 겪어보지 못한 너무 무거운 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특히 예수님을 따르라고 재촉하는 누군가에 의해 부담을 느낄 때 더욱 그렇다. 이런 식의 종교는 겉으로 나타나는 행동에만 치중하고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간과하기 때문에 고된 노역처럼 느껴질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는 정반대이다. 하나님은 그저 규칙과 같은 관계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간의 사랑을 기반으로 한 관계, 곧 사랑과 자유로운 선택으로 시작되고 유지되는 관계를 원하신다. 우리는 때때로 포도나무에 부분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나 온 존재가 함께하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 교회에 가고 기도하며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지라도 마음속으로는 시들어 버린 것같이 느낀다. 가지가 스스로 포도나무에 연결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우리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를 예수 안에 거하게 할 수 없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고 그분이 먼저 시작하셨다는 것, 그것이 진리이다. 우리의 응답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에 대한 반응이다. 한편, 포도나무가 겨울을 어떻게 나는지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가지의 새싹은 수분이 빠진 채로 봄이 올 때까지 생장 체계와 단절된다. 땅이 따뜻해지면 뿌리가 물을 흡수하고 수액이 포도나무 줄기를 따라 새싹으로 흘러 들어가 생장을 시작한다. 가지를 통해 수액이 흐르지 않으면 어떤 생장도 일어나지 않는다. 포도나무의 수액은 우리 삶 속에서 성령님의 역사와 같다. 비록 우리가 죽은 가지와 같을지라도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선택할 때 뿌리에서 공급되는 수액처럼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생명을 주시고 성장하게 하신다. 예수님 안에 거하기를 원한다고 의식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마른 가지 같은 우리 삶에 성령의 수액이 흘러들어 오도록 간구해야 한다.

 

누가복음 11:13을 예레미야 31:3, 요한일서 4:19, 로마서 8:9-11과 함께 읽어보라. 이 구절이 우리에게 주는 핵심 기별은 무엇인가?

[눅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렘31:3]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

[요일4: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로8:9~11]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답: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를 열망하신다는 것이다.

 

성장하게 하며 포도나무에 연결되고 번성하게 하시는 분은 바로 성령이시다. 우리는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성령님께 다음의 일을 매일 간구해야 한다.

• 우리의 보혜사가 되어 주시기를(요 14:16–18)

• 예수님을 알게 해 주시기를(요 15:26)

•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해 주시기를(요 16:7, 8)

•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기를(요 16:13)

 

교훈: 죽은 가지 같은 우리는 자기 힘이 아닌 성령의 역사를 통해 생명을 얻고 성장할 수 있다. 우리는 주님과 연결되며 성령이 우리 삶에 역사하도록 구해야 한다.

 

<부가설명> 포도나무가지는 포도나무에서 나온다. 가시나무가지를 포도나무에 접붙일 수도 없겠으나 접 붙인다고 포도나무가 되지는 않는다. 예수께서는 예수님을 믿는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 니고데모에게 오해할 수 없도록 확실하게 설명하셨다. 곧 거듭나는 것이다.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이다. 태어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생명으로 존재하지 않는데 무슨 선택을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예수님은 먼저 존재에 관한 말씀을 하신 것이다. 니고데모를 만난 것은 요한복음 2장의 성전 청결하신 직후 어느 날이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침례 받으시고 공중 봉사를 시작하신 직후에 하신 말씀이다.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즙이 되게하신 후에 성전 청결하셨고 그리고 니고데모를 만나셨다. 그러니까 시간적으로 거듭남에 관한 교훈을 일찍 하신 것이다. 포도즙 만든 것도 거듭남을 상징하는 표적이기도 하고 곧 이어 사마리아 여자를 만나서 하신 말씀도 거듭남과 관계되는 사건이다. 거듭날 때 비로소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 존재하게 된다. 예수님에게 붙게 된다. 포도나무가지가 되는 것이다. 그때 스스로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꼭 붙어 있어야 한다. 그러면 거듭난 생명이 계속 유지 된다. 우리는 붙어 생명을 계속 받아들이는 산 가지들인가?

 

4월 3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으며 그분이 우리를 알고 우리가 그분을 알도록 계획하셨다. 하나님은 선한 목자처럼 우리를 찾아오시며 매일 당신 안에 거하도록 초대하신다. 우리가 할 일은 단지 그분께 응답하기로 선택하고 우리의 비참함과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은 상태를 그분이 주시는 좋은 선물과 바꾸는 것이다(계 3:18, 19 참조). 포도나무 가지가 조금씩 자라는 것처럼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천천히 성장할 수도 있고 간절히 기다리던 비가 내린 이후처럼 급속하게 자라날 수도 있다. 우리가 성장하는 속도와 삶에 맺히는 열매의 풍요로움에 상관없이 우리는 예수님과 계속 연결되게 하는 매일의 ‘수액’, 즉 성령의 임재가 필요하다.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은 그분의 성령을 계속적으로 받아들여 그분의 구속사역에 온전히 순복하는 생애를 의미한다. 교통의 통로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계속적으로 열려 있어야 한다. 포도나무 가지가 산 포도나무에서 수액(樹液)을 계속해서 빨아올리는 것처럼 우리도 예수께 매달려서 그분에게서 능력과 그분의 품성의 완전하심을 믿음으로 받아야 한다”(시대의 소망, 676). “메마르고 잘려진 가지가 어떻게 모체인 포도나무와 하나가 될 수 있으며 어떻게 살아 있는 포도나무의 생명과 양분을 함께 누릴 수 있게 되는가? 오직 포도나무에 접붙여져서 가능한 한 가장 밀접한 관계로 연결될 때 가능하다. 포도나무의 생명이 가지와 하나가 되기까지 조직과 조직이, 체관과 체관이 하나하나 생명을 주는 포도나무에 굳게 붙을 때 가지는 포도나무와 같은 열매를 맺게 된다”(원고 67, 1897).

 

함께하는 토의를 위해

➊ 삶을 돌아보라. 당신을 라오디게아와 같은 영적 상태로 빠지게 한 사건은 어떤 것이 있는가? 무엇이 당신을 하나님께 더 가까이 이끌었는가?*답: 각각 대답할 질문이다. 매일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말씀을 명상하는 삶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➋ 성령의 임재를 위해 얼마나 자주 기도하는가? “성령을 계속적으로 받”으라는 말대로 매일 성령을 받으면 무엇이 달라질 수 있겠는가?

*답: 성령은 거듭난 생명의 근원이다. 성령은 말씀 안에서 일하신다. 성령 충만은 말씀 충만이다. 말씀을 날마다 먹지 않으면 성령 충만은 기대할 수 없다.

➌ 성령을 받기 위해 간절히 정기적으로 기도하면 무엇이 달라질까?

*답: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않으면서 성령 충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식사를 전혀 하지 않으면서 일할 수 있는 힘을 달라는 것과 같다.

➍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 스스로에게 과감하게, 심지어 고통스러울 정도로 솔직해져 보라. 그분은 친밀한 관계를 원하시는데 당신이 그것을 방해하지는 않는가? 이런 친밀함을 누리기 위해 당신에게는 어떤 의도적인 선택이 필요한가?

*답: 산 사람은 밥을 먹을 것인지 죽을 먹을 것인지 국수를 먹을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그런데 먹지 않는 사람은 생명 있는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은 기록한 말씀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접근하신다. 말씀과 관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과 관계하지 않는 사람이다. 

 

요약: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성장을 위해서는 먼저 잠시 멈춰서서 현재 그분과의 관계가 어떤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만약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거나 가지가 시들어 있다면 예수님은 우리의 영적 상태를 위한 완벽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신다. “나의 안에 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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