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과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 서라(질문, 대답, 설명) 03/2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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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6-03-19 06:23 조회102회 댓글0건본문
제13과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 서라
(3월 28일 안식일 / 일몰: 오후 6시 51분)
연구 범위: 골로새서 4:7-18; 에베소서 6:21; 사도행전 15:36-40; 디모데후서 4:10, 11; 베드로후서 3:10-14; 이사야 60:1-3
기억절: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골로새서의 마지막 부분에는 바울의 더 넓은 동역자 관계망이 나타난다. 사도행전은 그가 먼저 바나바, 다음은 실라와 짝을 이룬 것, 그 후 그의 세 차례 선교 여행에 대한 개요를 보여준다.
이번 주 우리는 바울의 선교 전략을 살펴볼 것이다. 바울은 로마 제국의 주요 중심지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시간과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했고, 자신이 직접 방문하지 않았던 골로새, 라오디게아, 히에라볼리 등의 도시와 마을에 선교하기 위해 유망한 평신도 사역자들을 훈련하기도 했다.
바울은 여행 중에는 직접 방문하고, 특히 수감 중에는 편지로 사람들과 교회를 끊임없이 연결했다. 그는 복음 사명의 성공이 유대인과 이방인 신자, 남자와 여자, 두기고, 아리스다고, 유스도, 에바브라, 누가, 눔바와 같은 사람, 곧 모든 사람이 함께 일하는 것에 달려 있음을 알았다. 지금은 유실되어 볼 수 없지만 바울이 라오디게아에 보냈던 편지에 대해서 듣는 것도 흥미롭다. 바울은 아킵보라는 사람에게 보낸 개인적인 권면을 포함한 많은 내용을 이 마지막 구절에 담았다. 바울은 자신에게 남아 있는 시간 동안 교회를 든든하게 세우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학습 목표
깨닫기: 바울은 하늘과 땅을 하나로 만드는 일에 사람과 교회를 연결하여 함께 일하게 했다.
느끼기: 바울의 선교는 전략적이었으며 선교와 기도에 분명한 초점을 가지고 있었다.
행하기: 마지막 때에도 반복되는 선지자와 사도들의 회개, 심판의 기별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다.
TMI 위로
2. 바울의 전도는 주로 어떤 모습으로 이루어졌습니까? 그것은 무엇을 나타냅니까?(골 4:8)
*답: 동역자들을 파송해서 복음을 전하게 했다.
3. 바울은 왜 교회에 보내는 서신에서 어떤 개인이나 일들을 소개하곤 합니까?(골 4:10)
*답: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이룬 일들이 교훈과 감동과 전도가 되기 때문에.
4. 골로새에 복음을 전한 에바브라는 무엇을 위해서 기도한다고 말했습니까?(골 4:12)
*답: 너희가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기도했다.
5. 마지막 때를 위해 준비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막 14:38)
*답: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는 것이다.
6. 골로새서의 주제와 라오디게아 교회를 위한 기별은 어떤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까?(골 4:16)
*답: 예수님을 마음에 모셔서 바른 믿음으로 생활하고 증거하라는 것이다.
결론: 단절된 고대 세계에서 교회를 연합하고 함께하게 하는 것은 큰 도전이었다. 바울의 선교는 전략적이었으며 방문, 편지 등을 통해 사람과 교회가 함께 일하도록 연결했다. 그의 편지는 사랑과 관심을 전하고, 믿음을 강화하여 다른 이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는 방식이었다. 초기교회의 선교와 기도는 분명한 초점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으며 세상에 속하지 않기 위해 깨어 기도하며 필요한 준비를 해야 한다. 용서와 정결함을 위해 돌아오라는 호소와 심판의 시험을 견딜 수 있도록 회개하고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는 요청은 마지막 때에도 반복된다.
3월 22일(일) 전도에 대한 교훈
우리는 바울에게서 복음 전파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운다. 그의 여행 거리는 약 21,600Km에 달한다. 대부분의 여정이 도보로 이루어졌고 어떤 때는 감옥에 갇혀 있었기에 이것은 놀라운 기록이다.
바울은 복음을 내륙 도시까지 전파할 거점인 고린도와 에베소 같은 무역 중심지에서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 그는 또한 자신이 세운 교회들의 새 신자들을 굳건하게 하고 격려하기 위해 다시 찾아갔고, 직접 갈 수 없을 때는 편지를 보냈다. 이렇게 함으로써 신자들은 바울이 그들을 기억하고 아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골로새서 4:7-9을 읽고, 에베소서 6:21과 비교해 보라. 두기고는 어떻게 묘사되었으며, 바울이 그와 오네시모를 골로새로 보낸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골4:7~9]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그는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8 내가 그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9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그들이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
[엡6:21] 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리려 하노니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꾼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리리라.
*답: 자기의 사정을 자세히 알리도록 하기 위하여서이다.
어떤 소식은 글보다 말로 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두 사람이 골로새 교회에 어떤 소식을 전했는지 알 수 있다면 흥미로울 것이다. 이 소식이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골 4:7-9)할 것이라는 바울의 의도로 미루어 볼 때 아마 그것은 감옥에 있는 바울의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도 포함했을 것이다. 어떤 일이든지, 이러한 소통은 신자들을 하나로 묶는 개인적 유대를 유지하는 수단으로서도 중요했다.
“행운”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두기고는 분명히 신뢰받는 사자였다. 그는 “신실한 일꾼”이자 “함께 종이 된 자”로 묘사되었으며 예루살렘의 궁핍한 신자들을 위한 연보를 전달하는 여정에 동행하도록 바울이 아시아에서 택한 두 사람 중 하나였다(행 20:4). 그는 또한 바울이 로마에서 두 번째로 갇혔을 때 함께 있었으며, 그곳에서 에베소로 보내져 그곳의 사역을 든든하게 했다(딤후 4:12). 바울은 또한 그를 그레데에 있는 디도에게 보내려고도 했다(딛 3:12). 그와 함께 한 사람은 오네시모였는데, 바울은 그를 로마에서 회심시켰고(1과 참조), 그에 대해 “신실”하다고 말했다.
바울은 또한 골로새 신자들의 사정을 알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두기고가 직접 회신하지 않았더라도 누군가를 통해 그에게 소식을 전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바울이 직접 교회를 방문하지는 않았지만 그곳 신자들을 향한 사랑과 관심을 전하고, 그들의 믿음을 강화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는 또 다른 방식이었다.
<교훈> 바울은 새 신자들을 굳게 하기 위해 찾아가고 편지를 보냈다. 이는 사랑과 관심을 전하고, 믿음을 강화하여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는 방식이었다.
<부가설명> 좋은 소식을 듣는 사람에게 기분좋게 한다. 성경은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 같으니라”(잠25:25)라고 기록했다. 특별히 믿음의 소식은 더욱 그렇다. 바울의 소식을 듣고 위로와 격려를 받은 소식이었다면 좋은 기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성경에서 듣는 기별은 복음이다. 복음은 좋은 소식이라는 뜻이다.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고 있는 옛습관으로 생활하고 있는 옛사람에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준다는 소식은, 사망 진단을 받고 죽을 날만 남아있는 환자에게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길 수 있다는 기별을 들려주고 정말 그렇게 되었다면 그것보다 좋고 기쁜 소식이 있겠는가? 죽은지 나흘이 되어 썩는 냄새가 코를 막고 멀리 도망가게 하는 나사로가 곧 살아날 것이라고 했을 때 그 누이들은 믿어지지 않았으나 그들 눈앞에 그 일이 이루어졌다. 얼마나 기뻤고 흥분했겠는가? 바울은 이런 생수 같은 소식을 두기고와 오네시모를 통하여 전했다. 오네시모는 그 기쁨의 경험적 증인이 되었다.
3월 23일(월) 교회의 연결
인터넷, 사회관계망, 수많은 기기로 연결되어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당시 바울이 교회로 하여금, 자신들이 지역 교회 이상의 더 큰 무언가의 일부라고 느끼도록 돕기 위해 마주해야 했던 도전들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골로새서 4:10, 11을 읽어보라. 사자들을 통해 소식을 주고받는 것(골 4:7-9) 외에, 바울은 어떤 다른 방법으로 교회의 연결을 독려했는가? 바울이 이 서신에서 다룬 몇 가지 문제를 고려할 때, 이러한 인사를 통해 어떤 기별이 전달되었겠는가?
[골4:10,11]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11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들은 할례파이나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답: 바울이 함께 있는 동역자들을 골로새로 보내며 그들이 골로새교회와 연결되도록 했다. 그들을 통하여 복음을 더 잘 이해하는 은혜가 있었을 것이다. 곧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 사이의 돈독한 연합의 기별이다.
이러한 인사말을 통해 바울은 동료 신자들 사이의 연결을 만들고 증진한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마가가 바나바의 사촌이었음을 알게 된다. 바울은 이렇게 마가가 골로새를 방문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다. 아리스다고는 문자 그대로 “동료 수감자”로 묘사되며, 그것은 그가 바울과 함께 갇혀있다는 의미이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전신갑주”(엡 6:10, 11)를 입은 군사로, 사탄의 포로들을 해방시켜 하나님의 나라에서 섬기게 하기 위해 함께 싸웠다(딤후 2:1-4 참조). 예수와 유사하게 들리는 이름의 유스도(Justus)는 복음 안에서 신뢰할 수 있는 동역자로 그들에게 추천된다.
바울은 아리스다고, 마가, 유스도가 유대인 신자(할례자)임을 특별히 밝힌다. 이어서 그는 에바브로, 누가, 데마, 이 세 명의 이방인을 말한다(골 4:12-14). 교회 내에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약간의 긴장이 있었음에도, 이 동역자들이 효과적으로 함께 일하며 연합하고 조화를 이루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오직 이들만이”(우리말)라는 표현을 통해 바울은 더 많은 유대인 그리스도인이 그의 고난에 동참하지 못한 데 대한 어느 정도의 실망을 내비치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년 전 1차 선교 여행 중 바울과 바나바를 버리고 떠났던 요한 마가(행 13:13)가 이 무렵 충성될 뿐만 아니라 바울에게 “위로”가 되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행 15:36-40).
연합에 대한 위협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근래 들어 재림교회가 전 세계로 확장되면서 커다란 변화를 겪었고, 여러 세력이 교회의 연합을 해치려고 공격해 왔다. 연합에 대한 이런 긴장은 교회의 모든 차원에서 감지된다.
<교훈> 단절된 고대 세계에서 신자들이 연합하고 조화되게 만드는 것은 큰 도전이었다. 바울은 편지와 여러 방법으로 이런 신자들 사이의 연결을 만들고 증진했다.
<부가설명> 진정한 성경적 교회는 예수님을 머리로 하여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온전히 연합된 조직이어야 한다. 그렇게 연결하고 연합하는 신경 줄과 핏줄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말씀이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한 그 깨달음으로 교회를 하나되게 해야 한다. 예수께서 요한복음 17장의 기도로 하나님께 간절히 부탁한 것은 여호와 삼위께서 하나인 것과 같이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렇게 되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 일을 위하여 성령께서 보혜사로 오셨고 진리의 말씀을 하나님께서 깨닫기를 원하는대로 깨닫도록 감동하시고 지혜를 주시도록 하셨다(요16:12~15, 고전2:9~14). 그러므로 온 세에 흩어져 있는 각민족 각나라의 진리교회는 이 말씀의 신경줄과 핏줄로 연결되어 온전한 연합을 이루어야 한다. 이 연합이 성경적으로 확실하도록 하기 위하여 예언의 신이신 성령의 증언 선지자를 통하여 주셨다. 하나님의 사랑의 배려다. 이것을 벗어나면 몸에서 잘려나간 지체가 되고 더는 지체도 몸도 아닌 상태에 떨어지게 되고 참 생명에서 떠나게 될 것이다.
3월 24일(화)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목적이 이끄는 교회, 목적이 이끄는 삶에 관한 책이 많다. ‘목적이 이끄는’이라는 표현이 꼭 맞는 것은 아닐 수 있지만, 목적에 집중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의 성취에 필수적이다. 바울과 그의 동역자, 그리고 다른 사도들의 삶과 사역은 바로 이러한 집중을 보여준다(빌 3:13, 14 참조). 복음이 로마 제국 전역과 그 너머로 급속히 퍼져 나간 결과가 그것을 스스로 말해준다(골 1:23). 오늘도 이와 같은 집중이 필요하다.
골로새서 4:12, 13을 읽어보라. 이 구절은 어떤 목적을 제시하며 그것은 어떻게 성취될 것인가?
[골4:12,13]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13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언하노라.
*답: 서로 기도할 때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에 완전하고 확신있게 서도록 기도하라는 목적이 있다.
에바브라는 아마도 골로새와 인근 도시인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에 복음이 전파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1과 참조). 그가 이 교회들에 보낸 인사와 기도는 그곳 신자들에게 큰 격려가 되었을 것이다. 에바브라의 기도는 분명한 초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골로새 신자들이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골 4:12)했다. 이 기도의 풍성한 구성 요소들을 더 자세히 살펴보자.
“서다.” 이 단어는 굳건히 서서 흔들리지 않음을 의미하며, 이는 오직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복음의 진리를 확신할 때만 가능하다(골 1:23). 바울은 “마귀의 궤계”(엡 6:11)에 맞서 싸우는 것과, “하나님의 전신 갑주”(엡 6:10-18;
참조 딤후 2:19)를 입어 하나님의 능력으로 어둠의 세력을 대적하는 것을 말할 때 같은 단어를 여러 번 사용했다.
“완전하고.” 이 단어는 결코 “이루었다”고 주장하지 않는 사람들(빌 3:12-15)의 희생적인 사랑(마 5:44, 48)에서 궁극적으로 표현되는 성품의 완전함을 가리킨다.
“확신있게.” 이 강력한 단어는 완전하게 만족시키거나 무언가를 완전히 채운다는 의미이다. 아브라함이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임에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일을 이루실 것을 “온전히 확신”한 것(롬 4:21, 흠정역)과 바울이 주님으로 말미암아 강건하여져서 그를 통해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딤후 4:17)게 된 것에 사용되었다.
“하나님의 모든 뜻.” “모든”이라는 단어는 포괄적이다. 바울 자신도 골로새 신자들이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지식으로 충만하여 그 영광의 “모든 능력”(골 1:11)으로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골 1:9, 10)기를 기도했다.
<교훈> 골로새에 복음을 전한 에바브라의 기도는 분명한 초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신자들이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했다.
<부가설명> 성도들은 개인적으로 몰르는 교회라도 교회를 위하여 기도할 때 모든 지체인 교인들을 위한 기도도 되지 않겠는가? 그 여자의 남은 자손으로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가진 교회를 위하여 교인 개개인은 기도해야 한다. 성경은 교회를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했다(딤전3:15). 이런 교회를 떠나는 것은 스스로 몸된 교회의 지체가 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교회는 한 무리로 이루어진다. 최소의 구성이 두세 사람이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 더 작은 단위는 두 사람이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마18:19). 홀로는 교회가 구성되지 않는다. 이 두 사람의 구성은 부부다. 부부가 성실한 성도이면 그 가정은 교회가 된다. 거기 자녀가 더해져서 두세 사람이 되어도 교회다. 이런 가정교회가 연합해서 지역교회가 된다. 그렇게 연합하여 예수님을 머리로 하여 연합될 때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사슬 이 온 세상을 두르게 될 것이다. 이것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3월 25일(수) 세상에 거하나 세상에 속하지 않음
골로새서 4:14, 15과 디모데후서 4:10, 11을 읽어보라. 누가는 데마와 어떤 차이를 보이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골4:14,15]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15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딤후4:10,11]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답: 누가는 끝까지 바울 곁에 있었고 복음 전파에 동참했다. 데마는 세상을 사랑해서 바울을 떠났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요일 2:15). 예수님과 그분의 나라에 대한 누가의 사랑은 그로 하여금 어떤 일이 있어도 끝까지 바울과 함께 서게 했으나, 데마는 장차 올 세상보다 이 세상을 더 사랑했다.
다음 구절을 읽어보라.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어떤 권면이 주어졌는가?
1. [마가복음13:32–37]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3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34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35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36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37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답: 항상 깨어있으라.
2. [디도서2:11–14]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12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답: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라.
3. [베드로후서3:10–14]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답: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4. [요한계시록3:17–21]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답: 예수님을 모셔 들이고 그분과 함께 먹고,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예수님과 사도들은 우리에게 생각하지 않은 때에 그분을 맞지 않도록 항상 깨어서 경계하며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라고 자주 경고했다. 안타깝게도, 예수님의 “깨어 있어 기도하라”(막 14:38)는 명령에 귀 기울이지 않았던 제자들처럼 많은 사람들이 필요한 준비를 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누가 또는 무엇이 우리의 마음을 차지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기 때문이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신 말씀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분명한 처방을 주신다. 첫째, 죄를 회개하라. 둘째, 예수님이 우리를 다스리실 수 있도록 그분께 마음을 열라. 그렇게 할 때 셋째, 시련을 견뎌내고 유혹을 이겨낸 믿음과 사랑이라는 ‘금’을 얻게 된다.
<교훈> 세상에 속하지 않기 위해 깨어 기도하며 필요한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기에 이것은 누가 우리의 마음을 차지하느냐에 달려 있다.
<부가설명>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그리스도인이어야 한다. 말세가 되어서 준비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항상 준비된 그리스도인으로서 말세를 맞아야 한다. 말세거나 아니거나 언제나 예수님의 생명으로 생활해야 한다. 징조가 이루어지는 것이 보이기 때문에 준비하는 교인이 아니고 언제나 준비된 성도로서 징조를 바라봐야 한다. 그러면 징조는 두려운 것이 아니고 기쁨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재림하시는 주님 맞을 때가 가깝기 때문이다. 전혀 준비하지 않고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힘든 상태로 살다가 징조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급히 그리스도인처럼 살려는 것은 어려움을 자초하는 모습이다. 역사적으로 끝날이 있다. 동시에 개인적으로 끝날이 있다. 우리는 개인 끝날이 준비된 그리스도인을 살아야 한다.
3월 26일(목) 라오디게아 교회를 위한 기별
골로새서 4:16–18을 읽고, 골로새서 2:1–3과 비교해 보라. 예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신 말씀을 생각할 때, 바울이 라오디게아 교회에서도 읽으라고 했던 골로새서의 내용과 어떤 연관성을 찾을 수 있는가?
[골4:16~18]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부터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17 아킵보에게 이르기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 18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내가 매인 것을 생각하라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골2:1~3]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2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답: 주님께 받은 직분을 이 시대 성도들이 이루어야 한다. 예수님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
시대를 통해 하나님 백성의 역사를 살펴보면, 같은 문제들이 계속해서 반복된다.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이 이방을 따라 제사하려는 것을 책망하며, 너무 늦기 전에 회개하라고 촉구했다. 이사야는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사 1:21)라고 탄식하기까지 하며, 백성에게 용서와 정결함을 위해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호소했다(사 1:16–20). 침례 요한(마 3:2, 8–10)과 예수님(마 4:17; 12:33–37)도 이스라엘 백성에게 마지막 심판의 시험을 견딜 수 있도록 회개하고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요청했다. 사도들도 같은 기별을 전했다(행 2:38; 3:19; 17:30; 고후 7:9–10).
이사야 60:1–3과 요한계시록 18:1–4, 이사야 62:1–5과 요한계시록 19:7–8을 비교해 보라. 두 책의 기별은 어떤 유사점이 있는가?
[사60:1~3]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2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3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계18:1~4]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 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2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3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사62:1~5] 나는 시온의 공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2 열방이 네 공의를, 열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3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면류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4 다시는 너를 버리운 자라 칭하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칭하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바가 될 것임이라 5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계19:7,8]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답: 빛을 비추라는 것, 혼인하는 즐거움이 있는 것이 유사하다. 이 시대의 남은 자손들은 참된 복음의 빛을 온 세상에 비추어야 한다. 그리고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꼭 참여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하나로 만드실 것이다. 하지만 ‘대쟁투’ 때문에 그 일은 단계적으로 이루어진다.
1. 갈보리에서, 하늘의 존재들 사이에 남아 있던 사탄에 대한 어떤 동정도 모두 거두어졌다(요 12:31).
2. 하늘 성소에서 행하시는 그리스도의 심판을 통해,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심으로(히 13:21) 하나님 백성이 하늘에 합당한 자가 된다.
3. 천년기 심판과 천년기 후의 최후 심판을 통하여, 남아 있던 모든 의문은 영원히 해결되고, 회개하지 않은 죄인과 죄는 영원한 불못에서 멸망되며, 땅도 불로 정결하게 된다(계 21:8).
4. 죄가 완전히 끝날 때, 하늘과 땅이 마침내 하나로 될 것이다(계 21:3).
<교훈> 시대를 통해 주신 용서와 정결함을 위해 돌아오라는 호소와 심판의 시험을 견딜 수 있도록 회개하고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는 요청은 마지막 때에도 반복된다.
<부가설명> 하나님은 역사 진행에 관한 예언을 확실하게 주셨다. 그 이유는 예언된 역사가 세상 역사에서 그래도 이루어지는 것을 보거든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구원 역사의 종결, 곧 예수님 재림과 새 하늘 새 땅에 대한 말씀도 반드시 그대로 성취된다는 것을 증명이 되기 때문이다. 다니엘 2장의 우상으로 상징해서 보여주신 역사 예언은 그대로 너무나 정확하게 성취되지 않았는가? 바벨론 다음 페르시아, 다음 헬라, 다음 로마, 다음에는 이런 통일 제국이 없는 열국(列國) 시대, 이것은 정확하게 이루어진 역사다. 로마 후에는 그런 통일 제국이 없다. 그것은 돌나라가 반드시 역사적 사건으로 건국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역사적 사건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이루어지는 세상의 징조가 어떻든지 재림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건설되는 것이 확실한 것을 믿을 수 있다. 거기 꼭 있도록 믿음으로 살자.
3월 27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배역한 세상에서 예수께서 굳게 붙드시는 당신의 성채가 되며, 그분은 당신의 권세 외의 어떤 권세도 그 성채에 허용하지 않으신다. 이와 같이 하늘의 능력으로 채워진 영혼은 사탄의 공격에 난공불락이 된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배하심에 자신을 맡기지 아니한다면 악한 자에게 지배 당할 것이다. 우리는 불가불 세상의 패권을 잡으려고 싸우는 두 큰 세력 중에 어느 한 편의 지배 아래 있게 될 것이다. 흑암의 왕국의 통치를 받기 위해서는 일부러 그것을 섬기기로 선택할 필요가 없으며, 빛의 왕국과 관계 맺는 것을 등한히 하기만 하면 된다. 우리가 하늘의 능력에 협력하지 아니한다면 사탄은 마음을 점령하여 자신의 거처로 삼을 것이다. 악에 대한 유일의 방어는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내재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산 연결을 맺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자기 사랑, 자아 방종과 죄에 대한 유혹의 부정한 영향에 대항할 수 없다. 우리는 많은 악습을 버릴 수 있을 것이며 얼마 동안은 사탄과의 관계를 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순간마다 자신을 굴복시킴으로 하나님과 산 연결을 갖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복당할 것이다. 그리스도와 개인적인 친밀함과 지적인 교통이 없다면 우리는 원수의 마음대로 되어 마침내 그의 명령을 따를 것이다”(시대의 소망, 324).
함께하는 토의를 위하여
1. 위의 인용문을 살펴보라. 그렇다, ‘대쟁투’에는 오직 두 편만 있으며, 우리의 의지로 그리스도를 선택하지 않으면 우리는 사탄의 편에 서게 된다(눅 11:23). 이런 생각이 아무리 우리의 감정을 불편하게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이 원리를 우리의 기분에 맞춰 조정하실 의무는 없다. 이 현실은 우리의 의지를 그리스도께 드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답: 우리는 이미 아담 안에서 사망의 존재가 되어 있다. 일부러 그것을 택할 이유가 없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그대로 사망일 뿐이다.
2. 요한계시록 14:14–16을 읽어보라. 오순절의 ‘이른 비’는 복음 씨앗의 싹을 틔우고 자라게 했고, ‘늦은 비’는 마지막 추수를 위해 땅을 준비시킨다. 요한계시록 14:12은 이러한 전망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답: 성도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다. 그렇지 않으면 짓밟히는 포도즙 틀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3. 교회 전체로서, 또 개별 신자로서 우리는 주변 문화와 세상으로부터 여러 가지 영향을 받는다. 각 시대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에게 항상 문제가 되어온 세상의 부정적 영향으로부터 우리는 어떻게 보호받을 수 있겠는가?
*답: 매 순간 예수님 편에 굳게 서야 한다. 말씀으로 무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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