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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과 서로 함께 사는 삶(질문, 대답, 설명) 03/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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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6-03-13 11:10 조회9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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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과 서로 함께 사는 삶

(3월 21일 안식일 / 일몰: 오후 6시 44분)

 

연구 범위: 골로새서 3:18–4:6; 에베소서 5:22–25, 33; 잠언 22:6, 15; 베드로전서 2:16; 데살로니가전서 5:17

 

기억절: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골 4:6).

 

사람이 서로 가까이 살면서 일하다 보면, 다양한 문제를 경험하게 된다. 의견 차이가 긴장을 유발할 수 있고, 논쟁이 이어질 수도 있다. 관계가 가까울수록 그 관계를 형성하는 모든 사람이 서로 잘 지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가장 가까운 관계는 당연히 가족이다. 가정을 때로 ‘가족 공동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것은 가정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지를 말하는 흥미로운 방법이다. 공동체를 운영하는 것과 가정을 운영하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유사점이 있다. 가치관, 목표, 목적에 대한 전체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서로 잘 지내고 원활한 운영을 위해 각자의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한다. 같은 원리가 교회에도 적용되는 것은 교회가 본질적으로 확장된 형태의 가족이기 때문이다. 

이번 주 본문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 가정이 가장 잘 기능하는 데 필요한 몇 가지 중요한 원칙을 제시한다. 그리스도인 가정은 성경의 원칙에 따라 존재해야 하므로, 로마의 일반적인 가정과는 다소 다른 방식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다. 바울은 또한 가정 안팎의 다양한 사회적 관계에 도움이 되는 다른 귀중한 원칙도 제시한다. 

 

학습 목표

깨닫기: 가족관계는 성경을 따라 주께서 우리를 대하듯 해야하며 이 원리를 다른 관계에도 적용한다. 

느끼기: 하나님의 지혜는 언행에 나타나야 하며, 이는 성령의 감화와 은혜를 담은 것이어야 한다. 

행하기: 서로를 성실하게 대하며 관계와 상호작용을 위해 주신 기도에 열심을 낸다. 

 

TMI 위로

2. 바울은 아내가 무조건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까?(골 3:18) 

*답: 주님 안에서 그렇게 하라고 했다.

3. 부모에게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권면은 어떤 면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합니까?(골 3:21)

*답: 자녀가 낙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권면이다.

4. 바울은 노예제도인 종과 주인 관계를 인정합니까? 복음은 어떤 변화를 가져왔습니까?(골 3:23) 

*답: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형제라는 것을 지적했다.

5. 바울의 기도에 대한 권면은 우리에게 어떤 자세를 가지라고 말하는 것입니까?(골 4:2) 

*답: 깨어서 항상 기도하고 언제나 감사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기도가 생활이 되라는 권고다.

6. 말을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한다는 것은 어떤 말을 하라는 것입니까?(골 4:6)

*답: 온유하고 예수님이 하신 것과 가은 은혜로운 말을 하라는 것이다.

 

결론: 신자의 가정은 성경 원칙에 따라 존재하므로 일반 가정과는 다르게 작동한다. 아내는 먼저 주께 충성하고 그다음 남편에게 해야 한다. 아내는 남편에게 종속되면 안 되고, 남편이 아내의 양심 역할을 해서도 안된다. 부모가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는 자녀의 영적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 바르게 훈련될 때 그들은 세상에 축복이 될 것이다. 주인은 종을 공정하게 대하며 주 안에 형제로 여기고 종은 주님을 섬기며 그 원칙으로 성실해야 했다. 기도는 관계와 상호작용을 위해 하늘이 주신 방법이기에 바울은 기도를 강조했다. 하나님의 지혜는 우리의 언행에 나타나야 하며, 그것은 성령의 감화와 은혜를 담은 것이어야 한다. 

 

3월 15일(일) 남편과 아내

 

신약성경에는 그리스도인 가정을 위한 여러 지침이 포함되어 있다(엡 5:21–6:9, 골 3:18–4:1, 딛 2:1–10, 벧전 2:18–3:7 참조). 주목할 점은 이 “가정 규범”이라 불리는 지침들이 완전히 위계적이기 보다는 오히려 관계를 더 호혜적이고 서로를 유익하게 하는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골로새서 3:18, 19을 읽어보라. 여기서 어떤 균형을 발견할 수 있는가? 바울은 에베소서 5:22-25, 33절에서 어떤 권면을 더하는가?

[골3:18,19]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19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엡5:22~25,33]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24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답: 부부는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라. 사랑은 부부가 평등하다.

 

어떤 남성들은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골 3:18)는 구절만 인용하고 말지만, 바울이 “주 안에서 마땅”하게 라고 덧붙인 중요한 조건을 놓쳐서는 안된다. 신약성경은 어디에서도 여자가 모든 남자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으며, 아내가 남편에게 종속되거나 지배받아야 한다고도 하지 않는다. 또한 남편의 모든 변덕이나 욕망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고도 하지 않는다. 바울의 요점은 아내가 먼저 주님께 충성을 다하고 그다음으로 남편에게 충성하라는 것이다. 아내의 독립성이 남편에게 종속되어서는 안 되며, 남편이 아내의 양심 역할을 해서도 안된다. 

교회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은 남편이 아내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보여준다(엡 5:25). 남편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신실해야 한다. 그는 아내의 최선의 유익을 위해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이 이익은 서로 일치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사랑은 아내가 남편을 존경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엡 5:33)에 기꺼이 순종할 수 있게 만든다. 

건강한 기독교 결혼관계는 서로 상의하고 숙고하며, 부부로서 함께 결정을 내리는 상호성을 특징으로 한다. 때로는 온 가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내릴 때 자녀들을 논의에 포함시키는 것이 적절할 수 있지만, 그때 부모는 결코 자녀 앞에서 다투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후에도 부부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 성경이 제시하는 평화의 길은 그 결정이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지 않는 한 아내가 남편의 판단에 순응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경우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남편은 자신이 아내의 말에 귀 기울이고 조언을 받아들였을 때 그들이 행복했던 것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부부가 한마음으로 더 많이 협력할수록 결혼 생활은 더욱 행복해질 것이다. 

 

<교훈> 아내는 먼저 주께 충성을 다하고 그다음 남편에게 충성해야 한다. 아내는 남편에게 종속되어서는 안 되며, 남편이 아내의 양심 역할을 해서도 안된다. 

 

<부가설명>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은 아름답게 창조한 지구에 하나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들이 충만하도록 계획하셨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는데, 여자는 남자의 갈빗대를 취하여 만드셨다. 남자인 아담은 이렇게 노래했다.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창2:23). 이렇게 남편과 아내가 창조되고 가정이 이루어졌다. 두 개체이지만 한 몸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2:24)라고 명령하셨다. 그리고 창1:28에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말씀 하실 때 이 지구에 충만하게 될 모든 사람이 창조된 것이고 세상 맨 마지막에 출생할 사람도 이 명령으로 이미 창조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아름다운 말씀이 아닌가? 이렇게 출생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생령으로 출생한다. 그런데 아담 부부가 선악과를 먹어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자(호6:7) 생령은 육체가 되고(창6:3, 시78:39) 영생은 사망이 되었다. 그래서 가정은 유지 되었다. 그런데 여자가 먼저 죄에 빠진 결과로(딤전2:14) 남편이 여자를 다스리게 되었다(창3:16). 이것을 빌미로 남존여비가 사상이 생겼고 긴 역사동안 여자가 남자에게 억눌리며 살았다. 예수님은 이것도 바꾸셨다. 그것이 바울과 사도들을 통하여 신약성경에 자세히 기록하였다. 동등이요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여 가정이 하나님의 가정이 되도록 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어서 거듭나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때문에 창세기의 범죄 전의 에덴동산 가정으로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신 것이다. 

 

3월 16일(월) 부모와 자녀

 

자녀들은 가족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또한 하늘나라의 한 가족으로서 사랑받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단순하지만 규칙적으로 아침과 저녁에 드리는 가정 예배는 매우 중요하다. 자녀들은 어린 시절부터 청소나 다른 의무를 돕기 시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자녀들이여,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를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골 3:20, 우리말)라는 바울의 권면에 귀 기울여야 한다. 

 

다음 구절들을 읽어보라. 자녀 양육에 관한 어떤 원칙들이 제시되어 있는가?

1. [잠언22:6,15]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15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답: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고 징계하여 미련한 마음을 쫓아내라.

2. [마태복음19:14]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답: 아이들이 예수님께 오도록 가르치라.

3. [신명기6:6,7]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답: 하나님의 말씀을 때를 가리지 말고 가르치라.

4. [잠언1:8,9]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9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 사슬이니라.

*답: 부모의 훈계와 법을 잘 듣도록 가르치라.

교훈과 모범을 통해 주님을 위해 바르게 훈련된 자녀는 가정과 교회, 그리고 그 너머에까지 축복이 될 것이다. 바울이 부모에게 준 지침은 남편과 아내에게 준 지침처럼 균형지고 상호적이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골 3:21). 부모, 특히 아버지가 자녀와 어떻게 소통하고 훈육하는지는 자녀의 영적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연구에 따르면 부모가 모두 다 교회에 다닐 때, 한쪽 부모만 출석하는 것보다 더 높은 비율로 자녀들이 교회에 남는 것으로 밝혀졌다. 더 놀라운 것은 어머니보다도 아버지가 꾸준히 교회에 출석할 때 더 많은 자녀가 성인이 되어서도 교회에 남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자녀의 영성 형성에 있어서 아버지의 역할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 아버지들이 자신의 역할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교훈> 부모가 어떻게 소통하고 훈육하는지는 자녀의 영적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 교훈과 모범을 통해 바르게 훈련된 자녀는 가정, 교회, 사회에 축복이 될 것이다. 

 

<부가설명> 우리는 가정교육을 말하면 자녀 교육으로 넘어가는 것이 거의 대부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데 사실 자녀 교육은 부모 교육이다. 부모가 제대로 가정과 자녀에 대한 교육이 없으면 그 부모의 자녀들은 제대로 자녀 교육을 받지 못한다. 부모 교육을 어떤 교육기관에서 받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하면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교육은 지식습득이 아니다. 사람이 교육 내용 대로 변화하는 것이다. 이런 변화가 없으면 교육받은 지식은 자녀 교육이나 부모 교육으로 변화하는 것을 오히려 방해한다. 사람이 변하는 교육은 교육기관에서 전문가에 교육받는 것도 좋지만, 성경에서 교육을 받고 성령님 역사로 진정한 변화를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은 이것을 가르친다. 진정한 가정교육은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성경으로 교육하는 것이다. 역사의 종말에 남은 자손으로서 재림 성도들은 이 교육을 반드시 경험해야 할 것이다.

 

3월 17일(화) 직업 관계

 

골로새서 3:22-25과 골로새서 4:1을 읽어보라. 종들에게는 어떤 지침이 주어졌는가? 오늘날의 일반적인 직업 관계에 적용할 수 있는 원칙은 어떤 것인가? 

[골3:22~25]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24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25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느니라.

[골4:1]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답: 고용된 사람들은 고용주에게 성실하게 맡은 소임을 감당하고, 고용주는 고용인들을 의와 공평으로 대해야 한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대하라는 원리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성경의 권면 중 일부를 과거의 유물로 치부하거나 심지어 성경 전체를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 위해 노예제도를 언급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구약 시대 이스라엘과 신약 시대 교회의 역사적 배경을 거의 고려하지 않은 주장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으며, 하나님께서 만드신 다른 모든 지성적 존재와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존재로 창조되었다. 모세의 법은 이스라엘 백성이 영구적으로 노예가 되는 것을 금지했고(신 15:12), 빚을 갚기 위한 최대의 노역 기간을 6년으로 규정했다(출 21:2-6, 레 25:39-43). 성경의 노예제도는 현대적 감각으로 볼 때 혐오스러울 수 있겠지만 서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인류에 대한 재앙이자 끔찍한 범죄행위였던, 가증스러운 노예제도와는 사뭇 달랐다.  

신약 시대의 교회는 로마 법체계 안에서 존재했으며 당시 노예 소유는 불법이 아니었다. “그러나 근대의 노예제도와 달리, 로마법은 노예에게 상당한 권리와 기회를 부여했고, 이러한 관행을 뒤집으려는 시도는 복음의 진전을 위협할 수 있었다”(클린턴 왈린, Clinton Wahlen, Culture, Hermeneutics, and Scripture: Discerning What Is Universal). 

실제로 로마 제국의 일반적인 원칙과 달리 교회에서의 종의 첫 번째 섬김의 대상은 주님이었다. 그리고 주인들은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골 4:1)고 그들을 공정하게 대우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게다가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더 이상 노예가 아닌 형제로 대하라고 권면했다(빌 16). 사실 구약과 신약 모두에서 신자들은 하나님의 종이라 불린다(시 34:22, 눅 17:10, 벧전 2:16 참조). 

비록 어떤 성경 본문이 기록된 문화적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본문의 권위는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신과 우리의 문화를 성경보다 높이 두는 것이다. 더 나은 선택은 성경이 어떤 주제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지 결론을 내리기 전에 그 주제에 관한 성경의 모든 말씀을 살펴보는 것이다. 

 

<교훈> 교회에서 종의 첫째 섬김의 대상은 주님이었다. 주인은 종을 공정하게 대해야 했고 바울은 오네시모를 더 이상 노예가 아닌 형제로 대하라고 권면했다. 

 

<부가설명> 창조주 하나님은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실 때 동등하고 평등하게 창조하셨다. 여자는 아담의 허리에서 나오게 하셔서 동등하다는 것을 알도록 하셨다. 그리고 생육하는 자녀들도 다 부모로부터 생명을 받고 양육을 받아서 인격적으로 동등하고 생명도 동등하게 하셨다. 그리고 진짜 아버지는 오직 하나님이셨고 생육한 모든 사람들은 다 형제자매가 되게 하셨다. “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9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마23:8,9). “11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12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히2:11,12). 그러므로 상전도 없고 종도 없었다. 죄가 들어오면서 사망이 되고 사탄이 지배하게 되자 상하관계, 주종관계 등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최고의 상전은 창조주이시다. 우리는 생활에서 이 원리를 잘 이해하고 예수님이 사람을 대하신 정신으로 대하도록 성령게서 마음에 역사하시기를 바란다.

 

3월 18일(수) 서로를 위해 기도하라

 

골로새서 4:2-4을 읽어보라. 이 구절에서 기도에 관한 어떤 원칙을 발견할 수 있는가? 바울은 무엇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요청하는가? 

[골4:2~4]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3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 4 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

*답: 계속해서 기도하며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했고 바울 일행을 위한 기도와 전도의 문이 열려서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할 수 있도록 기도부탁을 했다.

 

가족, 건강, 돈 등의 다양한 문제로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말 가운데 가장 중요한 말은 바로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이다. 이것은 관계와 상호작용을 위해 하늘이 주신 방법이다. “구하지 않으면 주어지지 않을 것을,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의 한 방편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525). 

바울이 기도에 대해 사용하는 강력한 표현을 주목하라. “계속해서,” “간절히,” “깨어서,” “감사함으로” 기도하라는 말은 믿음의 기도가 어떤 모습인지 알려준다(골 4:2). 그는 ‘항상’(엡 6:18) 그리고 “쉬지 말고”(살전 5:17) 기도하라고 한다. 가장 놀라운 것은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롬 8:26)신다는 사실이다. 

 

골로새서 4:3을 다시 읽어보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믿음을 나눌 수 있도록 어떤 “전도의 문”을 열어주시는가?

[골4:3]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

*답: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할 수 있는 전도의 문을 열어주도록 기도 요청했다. 

 

중요한 점은 바울 또한 적절한 말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바울의 서신이나 사도행전에 나타난 그의 연설을 읽으며 사도 바울은 항상 말이 유창하고, 무엇을 말해야 할지 결코 망설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마땅히 할 말”(골 4:4)로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요청한다. 여기 사용된 헬라어 데이(dei)는 복음을 선포하는 일의 신성한 필요성을 드러낸다. 그는 가이사의 집을 포함하여 로마 정부의 최고위층 사람들에게 기별을 전한다는 사명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도하기 위하여 언제나 그대의 무릎을 꿇고 있을 필요는 없다. 그대가 홀로 있을 때, 걸어갈 때, 일상생활로 분주할 때, 구주와 이야기하는 습관을 기르라. 마음을 끊임없이 하늘로 향하여 도움과 빛과 힘과 지식을 얻기 위하여 조용한 탄원을 올려라. 호흡마다 기도가 되게 하라”(치료 봉사, 510). 

 

<교훈> 바울이 사용하는 강력한 표현은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기도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기도는 관계와 상호작용을 위해 하늘이 주신 방법이다. 

 

<부가설명> “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시4:4). 기도는 무릎을 꿇고 겸손하고 정중하게 하는 것이 예모를 갖추고 간구하는 자세다. 그러나 위에 있는 증언의 말씀대로 기도하기 위하여 계속 꿇어앉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기도는 영적 호흡이기 때문에 걸음마다 호흡마다 기도가 되도록 살아야 한다. 이 말은 생활이 기도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리스도인은 기도가 인격이 되고 삶이 되는 존재다. 기도를 떠나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기도는 영적 호흡인데 그것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영적 존재가 된 성도들의 생명의 호흡이기 때문이다(요3:5,6. 롬8:9). 호흡은 결심하고 하는 것이 아니다. 무의식으로도 호흡은 계속된다. 참된 성도의 기도가 이와 같은 것이다. 아울러 바울의 부탁대로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위해서도 기도하는 것은 성도들의 삶의 분야다.

 

3월 19일(목) 지혜로 행하여

 

우리가 알 수 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진리는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고, 그분을 믿음으로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우리 스스로는 결코 알 수 없었던 진리이다. 이 진리는 들었거나 계시를 통해서 알게 된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졌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계시해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가 결코 알 수 없었던 많은 진리, 지식, 지혜가 있다. 하지만 이 지식과 지혜는 단순한 지식이나 그저 알아야 할 무언가로 우리에게 주신 것이 아니다. 그보다 우리는 자신의 삶 속에서 이 진리, 지식, 지혜를 실천해야 한다. 

 

골로새서 4:5, 6을 읽어보라. 바울은 어떤 상황에서 특별히 “지혜로 행하여”야 한다고 말하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골4:5,6] 외인에게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6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답: 비교인들을 대할 때 지혜로 행해야 한다. 특히 언어에 주의해야 한다. 은혜로운 말, 맛깔나는 말을 할 때 듣는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상대에 따라서 할 말을 마땅하게 하는 지혜를 구하는 것은 합당한 일이다.

 

안타깝게도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때로 전혀 그리스도인답지 못할 때가 있다. 바울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롬 2:24)다고 지적한 것처럼(사 52:5 인용), 이스라엘도 믿지 않는 자들에게 걸림돌이 되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 특히 우리와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는 매우 중요하다(딛 2:5, 벧후 2:2 참조). 그리스도인 가정, 오락이나 유흥보다 기도하기 위해 모이는 청년들, 단순한 친절, 그리고 차분하고 인내심 있는 정신은 우리의 공언하는 믿음이 진실한지 지켜보는 이들에게 많은 것을 말해준다. 

골로새서 4:6에서 바울은 특히 우리가 하는 말에 초점을 맞춘다.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하라. 단지 친절하거나 예의 바른 것 이상으로, 우리가 하는 말은 성령의 감화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또 은혜를 담은 말이어야 한다.

바울은 우리의 말을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고 말한다. 세상이 말하는 “짜디짠” 말과 달리, 우리의 말은 상대방에게 적절하고 매력적이어야 한다.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오직 성령만이 적절한 목적에 맞춰 적합한 때에 바른 말을 하게 하시고, 우리가 “마땅히”(dei가 사용됨, 어제 골로새서 4:4에 대한 설명 참조) 전해야 할 소식을 듣는 사람의 마음을 준비시킬 수 있다. 

 

<교훈> 하나님의 지혜는 행동으로 실천해야 하며, 우리의 말은 친절하거나 예의 바른 것 이상으로, 성령의 감화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담은 말이어야 한다.

 

<부가설명> 내가 박목월 시인의 글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그는 “언제나 한 옥타브 낮게 말하려고 한다”라고 했다. 우리는 유순한 음성으로 따뜻하게 말하는 은혜를 구해야 할 것이다. 나는 늘 말의 톤이 높은 것을 의식하는데, 한 옥타브 낮은 톤으로 말하는 것이 잘 안된다. 우리의 언어가 격앙되어서는 안 된다. 차분하고 은혜로워야 한다. 우리 주님의 음성과 말씀이 그랬다. “저희가 다 그를 증거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눅4:22). 예수님을 비방하는 사람도 예수님의 말씀이 은혜로운 것을 인정했따. 우리에게 이런 언어의 은사를 항상 주시기를 바란다. 언어는 말하는 사람의 인격을 드러낸다. 성경에는 말에 관해서 많은 교훈을 주었다. 아무쪼록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시141:3)라는 말씀이 말할 때마다 이루어주시기를 기도한다.

 

3월 20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가정의 모든 구성원은 가족의 편안함과 질서와 규칙성을 높이는 데 각자에게 역할과 책임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서로 반목해서는 안 된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피차에 선한 일을 격려해야 하며 모두 온유함과 인내를 가지고 오래 참으며, 낮고 차분한 어조로 말하며, 혼란을 피하고, 어머니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각자가 최선을 다해야 한다. … 

가정의 구성원은 각각 다른 가족들로 더불어 연합하여 행하도록 자신에게 기대되고 있는 자기 몫을 알아야 한다. 여섯 살 이상의 모든 자녀들은 각자가 지고 가야 할 생애의 과제가 있음을 이해하여야 한다”(재림신도의 가정, 179). 

“만일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한다면, 마땅히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심령과 가정에 거하시도록 할 것이다. 가정이라는 말 그대로의 의미가 그곳에서 드러나야 한다. 가정은 지상의 작은 천국, 애정이 가혹하게 억눌리는 대신에 계발되는 곳이어야 한다. 우리의 행복은 가정에서 서로에 대한 사랑과 공감, 진정한 예의를 가꾸어 나가는 데 달려 있다.  … 우리는 자기중심적 사고를 버리고, 작은 일에서라도 다른 이들로부터 받은 호의에 감사를 표할 기회를 찾아야 하며, 부드러운 친절과 작은 사랑의 행동으로 다른 이들을 격려하고 그들의 슬픔과 짐을 덜어주고 경감시킬 기회를 살펴야 한다. 가정에서 시작하여 가정 밖으로 확장되는 이러한 세심한 배려는 삶의 행복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된다. 반면 이런 작은 것들을 소홀히 하면 삶의 괴로움과 슬픔이 쌓이게 될 것이다”(교회증언 3권, 539, 540). 

 

함께하는 토의를 위하여 

1. 기혼 부부의 경우 서로의 관계에 어떤 원칙이 도움이 되었는가? 결혼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결혼생활에서 항상 직면하게 되는 도전에 대비하도록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겠는가? 

*답: 언어는 온유와 친절로 하고 상대방을 평안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서 그런 삶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중요하다.

2. 훌륭한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자녀를 양육한 사랑 많고 자상한 부모들이 종종 자녀가 성인이 된 후 신앙을 거부하는 것을 경험하곤 한다. 그들에게 어떤 조언과 위로를 줄 수 있는가? 아예 하지 않는 것이 나은 말은 무엇인가?

*답: 상대방의 자존감을 상하게 하는 말은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성경의 진리를 바르게 가르치고 성령님의 감동을 늘 기도하며 주님을 바라보는 눈을 뜨게 해여 할 것이다.

3. “지혜로 행하”라는 권면을 더 깊이 논의해 보라. 지혜가 아닌 “어리석게” 행하는 것은 또 무엇인가? 지혜로 행했을 때와 어리석게 행했을 때의 차이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답: 지혜로 행하는 것은 우리의 지혜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말씀의 원칙에서 떠난 모든 행동은 어리석게 행한 것이다. 결과는 각 사람마다 경험으로 인식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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