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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과 화목과 소망(질문, 대답, 설명) 02/2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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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6-02-20 13:39 조회1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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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과 화목과 소망

(2월 28일 안식일 / 일몰: 오후 6시 24분)

  

연구 범위: 골로새서 1:20–29, 에베소서 5:27, 에베소서 3:17, 로마서 8:18, 에베소서 1:7–10, 에베소서 3:3–6, 잠언 14:12

  

기억절: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바울은 골로새서 1:20에서 매우 생생하게 강조한 화목의 주제를(8과 목요일 참조) 계속 이어간다. 우주적 범위의 화목을 묘사했던 바울은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차원의 화목으로 이어간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통해 모든 사람과 만물을 위한 화목을 이루셨다. 특히 죄로 인해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멀어졌던 인간은 이제 믿음을 통해 그분과 화목할 수 있다. 

이번 주의 본문은 개인의 화목의 과정을 설명한다. 우주적 영역이 그러했던 것처럼 개인적인 화목 또한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이루어진다. 개인적 차원에서 십자가는 수동적인 상징이 아니라 능동적인 현실이 되며, 복음을 듣고 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바울은 또한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비밀(골 1:26)에 대해서도 말한다. 이 비밀은 무엇이며, 개인과 우주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이 “비밀”은 바울이 그토록 열정적으로 선포한 복음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학습 목표

깨닫기: 하늘과 땅을 하나 되게 할 비밀, 복음이 밝혀졌고 이를 통해 한 몸인 교회로 연합하게 되었다. 

느끼기: 하나님은 구원의 완벽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인간의 사역은 크고 원대한 계획의 한 부분이다. 

행하기: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는 복음의 계획을 따르며 그 소망 위에 굳게 선다.  

 

TMI 위로

2. 사탄의 계획에 넘어간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까?(창 3:15)

*답: 여자의 후손(씨)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계획.

3. 바울이 골로새 성도에게 믿음 안에 거하라고 권면한 것은 무엇을 염려했기 때문입니까?(골 1:23)

*답: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릴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4. 바울은 옥중에서의 활동을 포함한 자신의 사역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았습니까?(엡 1:4) 

*답: 창세 전에 예정하신 하나님의 계획의 관점에서 봤다.

5. 만물을 연합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비밀은 어떤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까?(고후 5:15)

*답: 산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 하나가 되는 것이다.

6. 바울은 복음을 전파하여 무엇을 이루기를 추구합니까?(골 1:28)

*답: 각 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데 서기를 추구했다.

7.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이 참된 겸손함을 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 그리스도의 생명은 섬기는 생명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결론: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이 인간적인 구원의 길을 따를까 염려하여 흔들리지 않고 복음의 소망에 굳게 설 것을 권면했다. 하나님은 구원의 완벽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 바울은 그의 사역을 “창세부터” 시작한 더 크고 장기적인 계획의 작은 부분으로 인식했다. 하늘과 땅을 하나 되게 할 비밀이 복음을 통해 밝혀졌고 모든 사람이 복음을 통해 약속을 공유한 한 몸인 교회로 연합하게 되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며(골 1:28) 이를 위해 성경을 따라야 한다. 

 

2월 22일(일) 악한 행실에서 돌이켜 화목하게 하심

 

골로새서 1:21, 22절을 읽어보라.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다는 말을 통해 바울은 무엇을 암시하는가? 이를 통해 예상되는 그리스도의 죽음의 최종 결과는 무엇인가?(엡 5:27 참조)

[골1:21,22]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엡5: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답: 흠 없고 거룩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것이다. 

 

바울은 언제나 인류를, 적어도 그리스도의 의에서 분리된 인류를 어두운 모습으로 제시했다. 그로부터 이천여 년이 지난 오늘날, 누가 그러한 견해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는가? 누군가 말한 것처럼 신앙이 없어도 모두가 받아들이는 유일한 기독교 교리는 ’인간의 죄된 본성‘이다.  

죄가 들어온 이후,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리 악하다 하더라도 우리를 당신과 화해시키기 위해 먼저 나서셨다. 다시 말해 처음부터 하나님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하셨으며, 유일한 해결책이 십자가 위에서의 당신 자신의 죽음일지라도 그리하셨다. 

에덴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창조의 걸작인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창 3:9)라고 부르셨다. 오늘도 하나님은 잃어버린 한 마리 양, 곧 우리를 계속 찾고 계신다. 그분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으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하실 완벽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우리와 사탄 사이에 적의를 두시고 창세기 3:15에서 주셨던 원복음의 약속을 이행하신다. 

때때로 복음은 21세기의 삶에서 거의 실질적인 의미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너무 복잡하고 이론적으로 변질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복음은 사실 매우 단순하고 명쾌하다.

복음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첫째, 우리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께서 오셔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롬 5:6-8 참조). 

둘째, 믿음과 회개와 침례를 통해 그분의 죽음을 우리의 죽음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의롭게 되고 죄의 정죄에서 해방된다(롬 5:9-11; 롬 6:6, 7 참조). 

셋째, 우리가 지금 사는 삶은, 그분의 재창조하시는 능력을 경험하고 그분이 우리 안에서 사시게 하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결과이다(고후 5:17-21, 갈 2:20 참조). 

세 단계가 반드시 확연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 삶에 받아들일 준비가 된 순간 이 모든 과정이 한 번에 일어날 수도 있다. 그리고 매일 아침 우리 자신을 그분께 드릴 때 날마다 새롭게 경험하기도 한다. 우리 각자가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어떻게 경험했든, 구원의 기초는 항상 예수님의 죽으심 위에 놓여있다. 우리는 항상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교훈> 하나님은 우리를 구하실 완벽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우리와 사탄 사이에 적의를 두시고 창세기 3:15에서 주셨던 원 복음의 약속을 이행하신다. 

 

<부가설명> 성경에 죄된 본성이라는 문자적 표현이 없다. 그냥 정죄에 이르렀다고 표현하고(롬5:18)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고(엡2:3) 하고 죄인이라고 했을 뿐이다. 죄인이니까 신학이나 교리가 죄된 본성이라는 말을 만들었을 뿐이다. 이런 교리가 마치 성경에 ‘죄된 본성’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믿어버리게 한다. 이런 것이 교리 용어의 부정적 기능이다. 성경에 삼위일체라는 말이 없다. 그 말은 완전히 신학적 교리적 용어다. 그래서 학자들은 성경에 따라서 삼위 여호와를 이해하지 않고 삼위일체라는 용어에 맞추어 아버지 아들 성령을 이해하려고 애를 쓴다. 그러니까 바른 이해가 될 수 없다. 틀린 용어로 어떻게 바른 이해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인간의 죄된 본성이라는 표현도 그렇다. 구글에 어거스틴의 원죄론을 간단히 말하면? 이라고 물었더니 “어거스틴의 원죄론은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원죄)으로 인해 모든 인류가 본질적으로 죄인이라는 교리로, 이 죄가 성행위와 같은 육체적 유전을 통해 모든 인간에게 전달되어 인간의 자유의지를 심각하게 손상시키고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massa damnata)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스스로 선을 선택할 수 없으며”라고 답했다. 더 긴 설명이 있지만 요지는 이것이다. 그런데 재림교회는 죄된 본성이라고 표현한다. 이 두 표현을 대조해 보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무엇인가? 다만 성행위로 유전된다고 주장하지 않는 것만 다를 뿐이 아닌가? 이런 표현이 나오는 것은 죄를 인간의 도덕적 행위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이 죄를 짓지 않으면 죄가 없고 죄인이 아니라고 말한다. 과연 성경이 그렇게 가르치는가? 성경은 모든 사람은 아담 안에서 죽었다고 단정적으로 계시한다(고전15:22). 죽었으니까 썩는다고 설명한다(엡4:22). 그래서 아담 자손들은 다 썩는 씨로 출생한다고 했다(벧전1:23). 그래서 썩는 것 외에 다른 현상이 없다. 성경은 근본적인 죄 문제를 인간의 도덕성이나 도덕적 행위 이전에 인간 존재와 생명에 관한 것으로 계시한다. 아담 안에서 죽었으니 생명이 없고, 생명이 없으니 존재를 상실한다. 다만 회복할 기회를 위하여 수명을 주신 것이다. 그러나 그 수명은 종신(창3:17~19)할 때까지고 이 기간을 ‘은혜 받을 만한 때, 구원의 날이’(고후6:1,2)라고 계시했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은 썩는 존재다. 그것을 옛사람이라고 했고 썩는 상태를 구습이라고 했다(엡4:22). 그래서 속죄의 가장 확실한 길은 중생이다. 이것을 잘 설명한 것이 로마 6:1~7이다. 중생을 우주 앞에 선표하는 예식이 침례식이다. 성경은 단순하게 가르치는데 신학을 복잡하게 말한다. 쉬운 것을 어렵게 만든 것이 신학이 아닌가?

 

2월 23일(월)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한다면

 

골로새서 1:23을 읽어보라. 믿음 안에서 “터를 잡고 굳건히 서”라(새번역)는 바울의 말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골 2:5, 엡 3:17 참조)

[골1: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골2:5]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가 질서 있게 행함과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이 굳건한 것을 기쁘게 봄이라

[엡3: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답: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않고 믿음으로 사람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굳건한 것이다.

 

헬라어에는 네 가지 유형의 조건절이 있으며, 각각 미묘한 차이가 있다. 골로새서 1:23의 시작 부분의 “만일”은 그 조건이 사실임을 전제로 한다. 즉,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이 확실히 믿음 안에 거할 것이라는 확신으로 그들을 격려한다. 바울이 이내 언급하듯이, 그는 이미 그들의 믿음과 굳건함의 증거를 보았다(골 2:5).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소망은 여전히 그들이 들어선 믿음의 길을 계속해서 걷는 것에 달려 있다. 

이 '계속하다'는 개념이 바로 '거하'다(epimeno)로 번역된 헬라어의 의미이다(골 1:23). 이 단어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요 8:7)이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예수님께 계속해서 답변을 요구했을 때, 로데가 베드로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문을 잠근 채 안으로 달려가 다른 사람들에게 알린 후에도 베드로가 계속해서 문을 두드린 때(행 12:16), 그리고 바울이 디모데에게 자신이 준 교리적이고 실천적인 가르침에 충실하라고 격려할 때도 사용되었다(딤전 4:16). 이 구절에서 바울의 권면의 의미는 디모데에게 한 말과 비슷하며, 다만 그 대상이 일반적으로 신자들에게 적용된다는 점에서만 차이가 있다. 

다음 주 교과에서 보게 되겠지만,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이 복음이 주는 소망을 굳게 붙잡기보다 인간적인 구원의 길을 따라갈까 염려하였다(골 2:8, 20-22 참조). “터 위에 굳게 서서”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믿음과 사랑의 견고한 기초를 놓았음을 의미한다(마 7:25, 엡 2:20, 엡 3:17 참조).

여기 “굳게”로 번역된 헬라어(hedraios)는 움직일 수 없는 구조물을 의미하며, 더 나아가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는 그리스도인을 의미한다(골 1:23). 

같은 단어가 고린도전서 15:58에서도 사용된다.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는 일반적인 믿음과 달리, 바울은 완전히 다른 것을 말하고 있다. 

 

<교훈>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이 복음이 주는 소망을 굳게 붙잡기보다 인간적인 구원의 길을 따라갈까 염려하여 그 소망에서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설 것을 권면했다.  

 

<부가설명> 믿음을 계속해서 실천하는 것은 중요하고 덜 중요한 사항이 아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본성이 제시되어 있다. 하나는 아담 안에서 죽은 사망의 본성이다. 그것은 썩다가 종신하는 것이다. 하나는 예수님 안에서 주어지는 생명의 본성이다. 이것은 생활하며 열매 맺는 본성이다. 이 세상에 출생하는 사람들은 아담의 씨로(남자의 씨) 출생하는데 그것은 썩어질 씨다(벧전1:23). 이것은 썩는 것밖에 할 것이 없다. 아담의 자손들은 예외 없이 다 썩는다. 그래서 구주 예수님은 여자의 씨로 오셨다. 아담의 씨와 전혀 상관없는 생명 자체의 씨다. 생명이신  말씀하나님이 친히 하나님의 생명의 씨(요일3:9 참고)로 남자를 경험한 일이 절대로 없는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하시고 출생하셔서 십자가에서 사망을 멸하시고(딤후1:10) 부활하셔서 생명과 썩지 않는 것을 드러내셨다(딤후1:10). 이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그분 안에서 썩지 않는 생명의 씨로 중생한다. 이것은 썩지 않는다. 열매 맺는다. 그것은 빛의 열매다(엡5:9. 요1:4 참고). 그것은 생명의 성령이신 분이 맺게 하는 성령의 열매다(롬8:2, 갈5:22,23). 그러니까 믿음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한 사항이 아니고 썩지 않는 생명을 가진 자는 믿음이 실천된다. 이것을 야고보는 산 믿음이라고 하였다(약2:17). 우리가 이 생명의 본성을 가진자라면 믿음이 삶이라는 열매로 드러날 것이다. 

 

2월 24일(화)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골로새서 1:24, 25을 읽어보라.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위해 겪는 고난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골1:24,25]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25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답: 오히려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기 육체에 채운다고 했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것이라고 했다.

 

바울은 로마에서 가택 연금 상태로 골로새서를 썼지만, 그가 느꼈을 가장 큰 괴로움은 이전처럼 이곳저곳, 집집마다 다니며 열심히 일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을 것이다(행 20:20). 그리스도께서 미리 경고하셨던 이 고난은(마 24:9, 요 16:33)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롬 8:18). 이것이 더 큰 그림이다. 바울이 빌립보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했던 것처럼, 그는 이제 골로새 성도들에게도 그들의 유익을 위한 자신의 고난을 기뻐한다고 말한다(골 1:24). 

바울은 감옥에 갇혔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였다(딤후 2:9). 바울이 이렇게 갇혀 있는 동안 빌립보서, 에베소서, 빌레몬서가 기록되었다. 석방 후에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영감을 주셔서 중요한 권면들이 담긴 디모데전서와 디도서를 기록하게 하셨다. 그리고 로마 감옥에서의 마지막 투옥 기간 동안 그는 디모데후서를 남겼다. 요컨대, 이 마지막 몇 년 동안 바울은 신약성경의 상당 부분을 기록할 기회를 얻었으며, 아마 히브리서도 이 기간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은 이 모든 일과 그 너머를 바라본다. 바울이 골로새서 1:25에서 사용한 헬라어 단어는 일반적으로 “청지기 직분”으로 번역되는 '오이코노미아(oikonomia)'이다. 제한된 의미로 사용될 때(딤전 1:4 참조), 이 단어는 “하나님의 다스리시는 방법”을 가리킨다(Luke Timothy Johnson, The First and Second Letters to Timothy, 2001, 164). 여기에는 바울의 사도직도 포함된다. 그러나 더 넓은 의미에서, 그것은 하나님께서 구원의 계획 안에 마련하신 모든 것을 포함한다. 바울과 다른 사도들, 심지어 모세를 포함한 구약의 선지자들(엡 2:20, 엡 3:5)의 직분은 모두 이 신성한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골 1:25)기 위해 마련되었다. 

내일 교과에서 이 주제를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바울이 자신의 직분을 “창세부터” 시행되기 시작한(마 13:35, 엡 1:4) 훨씬 더 크고 장기적인 하나님의 계획의 작은 부분으로 인식했다는 점을 주목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교훈> 바울이 옥중활동을 포함한 자신의 사역을 “창세부터” 시행되기 시작한(마 13:35, 엡 1:4) 훨씬 더 크고 장기적인 하나님의 계획의 작은 부분으로 인식했다.

 

<부가설명> 바울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는 눈은 우리와 달랐다. 그는 예수님 안에서 성령님 역사로 창세전에 여호와 회의에서(렘23:18) 일어난 일들을 보는 그 시각으로 현재의 일을 보고 있었다. 우리는 대단히 현세적이다. 그러나 바울은 장차 올 영원한 영광을 보면서 현재를 해석하고 이해했다. 그가 현재 당하는 고난은 영원한 미래의 영광과 비교할 수 없었다. 그 시간이 바울에게는 현실이었다. 아마도 그가 현재 받는 고난의 아픔은 장차 올 영원한 영광에 압도되어 그 아픔을 느끼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순교자들도 이런 시선으로 영광을 보면서 고통을 잊지 않았을까? 그래서 순교도 성령님의 은사가 아닐까, 생각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재림성도들도 이런 시각이 있었으면 얼마나 복될까? 정말 우리 생활의 모든 순간이 장차 올 영원한 영광에 연결되었으면 좋겠다. 

 

2월 25일(수) 나타난 하나님의 비밀

 

골로새서 1:26, 27을 읽어보라. 바울은 두 번이나 “비밀”에 대해 언급한다. 어떤 비밀을 말하는 것인가?

[골1:26,27]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답: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계획한 사실이다.

 

바울은 다른 곳에서 “하나님의 비밀”을 언급하면서, 이는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고전 2:7)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며 구원의 계획을 통해 나타났다고 말한다. 베드로는 이 진리를 선지자들이 예견했고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벧전 1:10-12)이라고 기록했다. 이 비밀은 “창세전부터 미리”(벧전 1:20) 계획되었고 “영세 전부터 감취어졌”(롬 16:25)던 것이다. 그러나 이 비밀은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 부활을 통해 마침내 나타났다(고후 3:14). 

 

하나님의 비밀에 관한 다음 구절들은 구원 계획의 다양한 측면을 어떻게 밝혀 주는가? 

1. 엡1:7–10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2. 엡3:3–6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4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5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으니 6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답: 우주가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는 것과, 거기에는 이방인도 하늘의 상속자가 되는 은혜가 포함된 것이다.

 

궁극적으로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하나로 연합할 것이다. 이것이 요한복음 17장의 그리스도의 기도의 핵심이었다. 이것이 정확히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비밀이었지만 이제 복음을 통해 밝혀진다. 

하나님이 왜 하늘의 귀중한 보물인 예수님을 우리의 구원을 위해 내어주실만큼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시는지는 우리가 영원토록 연구할 주제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후 5:15). 그 결과,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동일하게 공유하며 한 몸인 교회로 연합하게 되었다.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골 1:27)는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 안에 거하시는 것을 의미한다(엡 3:17; 갈 2:20 참조). 그리스도와의 이러한 영적 연합은 믿는 자들이 지금도 “함께 하늘에 앉”아(엡 2:6) “내세의 능력을 맛보”게(히 6:5)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삶에 임재하심으로써, 이미 우리를 하늘과 연합시키기 시작하셨다. 믿는 자들의 마음 가운데 역사하는 복음이 바로 “빛 가운데 있는 성도의 유업의 몫을 받기에 합당한 자격”(골 1:12, 우리말)을 주신다.

 

<교훈> 하늘과 땅을 연합하게 할 비밀이 복음을 통해 밝혀졌다. 그 결과 믿는 모든 사람이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공유한 한 몸인 교회로 연합하게 되었다. 

 

<부가설명> 하나님의 비밀은 우주 어느 곳에서든지 창조에서 떨어져 나가는 일이 발생할 때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통일되게 하시는 계획이다. 이 계획은 떨어져 나가는 일이 발생하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는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탈이 생길 때는 그것을 드러내어 실천하신다. 이 지구가 그렇게 떨어져 나가자, 곧 여자의 후손의 구원을 발표하셨다. 비밀을 비밀한 표현으로 드러내신 것이다. 예수께서 오셔서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9롬18:25,26). 바울은 이 비밀을 깨달았고 경험했고 기록해서 우리에게 전했다. 우리도 기록된 말씀으로 이 비밀을 깨닫고 바울처럼 현세를 장차 올 영원한 영광의 시각을 볼 수 있는 믿음을 가지도록 기도하고 말씀에 굳게 서자.

 

2월 26일(목) 복음의 능력

 

골로새서 1:28, 29을 읽어보라. 바울의 초점은 무엇인가? 이 구절에 “각 사람”이 세 번 반복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골1:28,29]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답: 이 비밀을 개인적으로 깨달아 완전한데 나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기록이다.

 

바울의 설교의 초점은 그리스도,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였다(고전 1:23). 에베소서 5:27은 그리스도의 희생의 목적이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바울의 복음 전파의 목표는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다(골 1:28). 그는 가르치고 경고함으로 이를 행한다. 곧 그리스도교 교리와 실천의 여러 요점을 가르치고(살후 2:15, 딤전 4:11, 딤전 5:7, 딛 1:9) 복음을 거절하는 것의 결과와 거짓 교사들의 위험을 경고한다(행 20:29-31, 롬 16:17). 

성경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경고에 귀 기울이는 것이 바로 우리가 완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는 방법이다. 성장은 중요한 개념이다. 갓난아기의 부모는 처음 말을 하고, 걷는 법을 배우고, 읽기 시작하는 등의 모든 과정을 기뻐한다. 그러나 아이가 몇 년이 지나도 걷거나 말하지 못한다면 어떤 부모가 놀라지 않겠는가? 성장과 발달은 정상적이고 당연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완전함”으로 번역된 헬라어 텔레이오스(teleios)는 흠 없는 완벽함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의 성장 과정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의 깊이와 그 요구 사항이 “심히 넓”(시 119:96)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우리는 그것이 “마음의 생각과 뜻을”(히 4:12) 살피는 것까지 미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조심해야 한다. 그것이 바울이 골로새서 1:28에서 “경고”(흠정역)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이다. 어떤 길은 “보기에 옳으나 그것의 끝은 사망의 길”이다(잠 14:12, 흠정역). 영적 분별력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에서 나온다. 

거짓 가르침은 대개 어느 정도 진리를 포함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것에서 무언가를 더하거나 빼버린다(사 8:20 참조). 후자의 경우, 하나님 말씀을 직접적으로 의심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그것이 정말 가능한지, 혹은 우리 시대에 적용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함으로 종종 성공한다. 교리적 진리와 오류를 분별할 때 우리는 뱀처럼 지혜로우면서도 비둘기처럼 순결해야 한다. 

 

<교훈> 바울의 복음 전파의 목표는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며(골 1:28) 이를 위해 성경의 가르침을 받고 경고에 귀 기울여야 한다. 

 

<부가설명>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거듭날 때 이루어진다. 사람이 아기로 태어날 때 그는 완전한 사람으로 출생한다. 갓태어났을 때는 갓태어난 상태로 완전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성숙한 사람이 아니다. 1살이 되면 한 살짜리로 완전한 사람이다. 이렇게 성장의 각 단계마다 완전한 사람의 상태에서 성장한다. 20세가 되었는데, 10세 상태로 나타나면 온전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다. 모자라는 사람, 또는 미숙아라고 한다. 그래서 완전은 완성이 아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그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하면 그것은 완전이 완성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재림하실 때 이루어질 것이다(요일3:2). 그때까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즉 거듭난 상태로 성장한다면 그는 성장하는 단계마다 완전한 것이다(실물교훈 65.2).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완전이다. 그래서 성경은 어린아이로부터 시작해서 성장하는 것으로 완전을 계시하고 있다(벧전2:1, 마18:3, 고전13:11, 엡4:13,14 등 참고).

 

2월 27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를 충족할 만한 자신의 의로움은 전혀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피할 길을 열어 주셨다. … 그대가 자신을 그분께 바치고 그분을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이면 그대의 생애가 아무리 악하였을지라도 그의 공로로 인하여 그대는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그리스도의 품성이 그대의 품성을 대신하게 되고 그대는 죄를 도무지 범하지 않은 것처럼 하나님의 앞에 받아들여진바 된다. 이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는 마음을 변화시키신다. 예수님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대의 마음 가운데 거하신다. 그대는 믿음과 그대의 의지를 계속해서 그분에게 드림으로써 그리스도와의 이 연결을 유지해야 한다. 그대가 이렇게 하는 한 그분은 그대가 원하고 행하는 것을 당신의 기쁘신 뜻대로 행하게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 자랑할 것이 없다. 우리는 스스로 높일 까닭이 없다. 우리의 소망의 유일한 근거는 우리에게 입혀 주신 그리스도의 의와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의에 있다”(정로의 계단, 62).

“많은 영혼이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가 미혹하는 영들과 마귀의 교훈을 따를 것에 대하여 나는 매우 강한 기별을 받아왔다. 주님께서는 진리를 믿노라고 주장하는 모든 영혼이 무엇이 진리인지에 대하여 분명한 지식을 갖게 되기를 바라신다”(복음 전도, 363).

 

함께하는 토의를 위하여 

1. 기억절을 다시 읽어보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21).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죄가 되셨다는 것은 무슨 뜻이며, 이것은 십자가의 대속적 본질을 이해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가? 또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답: 죄가 되셨다는 것은 사망이 되셨다는 것이고 의가 되게 하셨다는 것은 영원한 생명 곧 부활의 생명을 얻었다는 뜻이다.

2. 많은 기독교인이 믿고 있는 “한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는 주장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보라. 이것을 잘못된 교리라고 믿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가르침을 믿는 사람에게는 어떤 분명한 위험이 따르는가? 어떻게 하면 이 주장을 거절하면서도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는가?

*답: 벧후2:20~22에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21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 22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라고 잘 계시해 주셨다.

3. 당신은 얼마나 믿음의 “터 위에 굳게 서”(골 1:23) 있는가? 당신은 무엇을 믿는지, 또 왜 믿는지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믿는 바를 더 잘 알기 위해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믿음의 “터 위에 굳게 서”는 것은 왜 그렇게 중요한가? 

*답: 기록된 진리의 말씀을 연구하고 깊이 깨닫는 은혜가 필요하다. 깨달은 바른 진리를 따라 흔들리지 않게 굳게 서 있어야 한다. 거짓 선지자가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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