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과 그리스도의 탁월하심(질문, ,대답, 설명) 2/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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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6-02-13 11:56 조회104회 댓글0건본문
제8과 그리스도의 탁월하심
(2월 21일 안식일 / 일몰: 오후 6시 17분)
연구 범위: 창세기 1:26, 27; 골로새서 1:13–19;
요한복음 1:1–3; 에베소서 1:22; 고린도전서 12:12–27; 고린도전서 4:9; 로마서 6:3, 4
기억절: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5-17).
이번 주부터 우리는 골로새서 연구를 다시 시작한다(1과, 2과 참조). 2과 목요일에 우리는 골로새서 1:9-12에서 바울이 골로새 신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기를 간구하는 것을 보았다. 12절과 13절에서 바울은 “빛의 나라”(골 1:12, NIV)와 “흑암의 권세”(골 1:13)를 말하며 빛의 왕국과 어둠의 왕국을 대조한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빛의 왕국의 영원한 기업에 참여할 자격을 주사,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시고,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골 1:13, 14)다.
다시 말해, 우리는 사람이신 예수님, 또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하나님이신 예수님 안에서 구속을 받는다.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구원을 이루셨으며, 그분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는 흑암의 권세에서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졌다.
이번 주 우리는 신약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에 대한 가장 포괄적이고 숭고한 진술을 살펴볼 것이다. 예수님께서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며,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골 1:15)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학습 목표
깨닫기: 그분은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시며 십자가의 사랑으로 만물을 화목하게 하신다.
느끼기: 만물보다 먼저 계신 그분 안에서 만물이 시작되었으며 그분의 부활로 만물이 재창조된다.
행하기: 하나님인 예수님 안에서 구속을 받아 흑암의 권세에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들어간다.
TMI 위로
2.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어떤 의미입니까?(요 14:9)
*답: 아버지와 예수님은 동등한 하나님이사는 의미다.
3. 그분이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셨다는 말은 먼저 창조된 피조물이라는 말입니까?(골 1:15)
*답: 그분이 만물의 으뜸이라는 뜻이고 창조주라는 의미다.
4. 그리스도께서 몸의 머리라는 것은 교회가 가진 어떤 특성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까?(골 2:19)
*답: 일사불란한 유기체로서 그리스도 안에 통일된 특성을 말한다. 그리스도의 지도를 전적으로 따라야 하는 것도 말한다.
5. 바울은 그분이 머리이신 것에 더해 어떤 면을 들어 만물의 으뜸이신 것을 말합니까?(골 1:18)
*답: 그분이 만물을 창조를 시작하신 분임을 말한다.
6. 모든 충만이 예수 안에 거한다는 말에 담긴 깊은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골 1:20)
*답: 온 우주와 만물이 예수님 안에서 완전히 통일된 하나가 된다는 의미다(엡1:10 창고).
7.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라는 말은 어떤 의미입니까?(히 1:3)
*답: 그분이 하나님과 동등이시고 그분만이 하나님을 나타내실 수 있는 분이라는 뜻이다.
결론: 우리는 사람이시며 창조주이시고 하나님이신 예수 안에서 구속을 받는다. 그분이 구원을 이루셨으며, 우리는 믿음으로 흑암의 권세에서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졌다. 그는 보이지 않은 분을 보게 하는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시다.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재하며, 만물보다 먼저 계신 분으로 만물을 연합하게 하신다. 그는 교회의 머리시며 또한 부활하심을 통해 재창조의 시작이 되신다. 그분은 세상을 너무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희생하시고 이로 만물을 화목하게 하신다.
2월 15일(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
사진이나 거울을 볼 때, 우리는 자신의 형상을 본다. 그러나 그것은 평면적이고 2차원적 묘사일 뿐이다. 조각상이 조금 더 실제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지만,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생생한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성경의 형상이라는 개념은 때로 이와 같은 제한된 표현들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보통은 그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것을 암시한다.
창세기 1:26, 27; 창세기 5:3; 고린도전서 15:49; 고린도후서 3:18; 히브리서 10:1을 읽어보라. 이 구절에서 “형상”의 다양한 의미를 요약해 보라. 이 의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형상이라 묘사한 것과 어떻게 다를 수 있는가?
[창1:26,27]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5:3]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고전15: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고후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히10:1]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답: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시다. 우리는 피조된 하나님의 형상이다.
인간은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관계적으로, 기능적으로 가능한 한 하나님을 닮게 창조되었다. 그럼에도 인간은 특정 측면에서만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며, 죄는 그것마저 손상시켰다. 하지만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하신다.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요 14:9)다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본체의 “정확한 형상”(히 1:3, 흠정역)이시다. 그분은 들리는 하나님의 뜻이며 보이는 하나님의 성품이시다.
마태복음 11:27과 요한복음 1:1, 2, 14, 18을 읽어보라. 예수님만이 아버지를 드러내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신 이유는 무엇인가?
[마11:27]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요1:1,2,14,18]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답: 예수님은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피조물에게 보이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다.
예수께서 당신과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를 설명하신 다른 방식들을 살펴보라.
•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
•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30).
•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예수님은 또한 하나님의 이름을 통해 반복해서 당신을 절대적인 차원으로 묘사하셨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출 3:14 참조); “나는 생명의 떡이”다(요 6:35);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 8:12); “나는 선한 목자라”(요 10:11, 14);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요 11:25);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요 14:11);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요 8:58).
<교훈>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하는 하나님의 본체의 “정확한 형상”이시다. 그분은 들리는 하나님의 뜻이며 보이는 하나님의 성품이시다.
<부가설명>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표현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단어로 사람들이 알아듣도록 표현한 말이다. 형상이는 말과 모양이라는 단어를 풀이하면서 하나님의 형상을 묘사한다는 것은 불가능을 시도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사람이 자기 모양과 같은 자녀를 낳는다. 그 자녀는 부모의 형상을 나타낸다. 외모만이 아니고 성질까지 나타낸다. 오늘날은 그것을 유전자라는 말로 표현한다. 이 유전자는 어디 있는 것일까? 그것은 생명의 요소가 아니겠는가? 나는 의사도 아니고 생물학자도 아니다. 상식으로 이야기할 뿐이다. 부모의 생명은 유전자를 통하여 자녀에게 전해지는 것이 아닐까? 하나님의 생명은 생기를 통하여 사람에게 전달 되었고 하나님께 유전하도록 만든 사람에게 주신 유전자는 그 생명이 나타내는 형상을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형상의 근본은 생명력이라는 생각이다. 아담이 하나님께로부터 생명을 받았을 때 그 생명은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 생명을 잃어버렸을 때 아담은 육체가 되었다(창6:3 참고). 이제 아담으로부터 생명을 받으면 그것은 하나님의 생명이 아니고 육체의 생명이다. 육체의 생명은 육체의 형상을 나타내게 된다. 성경은 그것을 썩어져가는 구습이라고 했다(엡4:22). 인류는 이 형상을 드러내며 생활하고 있다.
2월 16일(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
신약성경에서 “맏아들”과 “먼저 나신 이”라는 말은 거의 대부분 예수님을 가리키며(눅 2:7, 롬 8:29, 히 1:6, 계 1:5 참조), 골로새서에 기록된 두 번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 단어가 다른 사람을 가리키는 경우에도 반드시 연대순으로 먼저 태어난 자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성경의 “장자” 개념은 출생 순서와 관계없이 아들이 아버지와 가진 특별한 관계를 강조한다. 이삭, 야곱, 요셉과 같이 늦게 난 아들이 더 탁월한 경우도 있다.
다윗은 여덟 형제 중 막내였으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으며(삼상 16:10-13), 시편을 통해 하나님은 “내가 또 그를 장자로 삼고 세상 왕들에게 지존자가 되게 하”(시 89:27)겠다고 말씀하셨다. 또 모세에게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출 4:22)고 말씀하셨다. 이런 의미에서 장자는 탁월하다는 측면에서 첫째를 의미한다.
골로새서 1:15-17을 읽어보라. 바울은 예수님을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라고 부르는 이유로 무엇을 제시하는가?
[골1:15~17]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답: 예수님의 선재(先在)를 제시한다.
바울이 예수님을 제일 먼저 창조된 존재라고 제시하려는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실제로 그는 그러한 가능성을 단호히 배제한다. 그는 두 번의 다른 방식으로 예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말한다. 만물은 그분에 의해, 그분을 위해 창조되었다(골 1:16). 두 경우 모두,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창조 과정을 수행하게 한 인격적 대리인으로 나타난다(엡 3:9, 요 1:1-3, 계 4:11 참조).
바울은 가능한 포괄적으로 진술하였다. '모든 것'이란 공간적으로(하늘과 땅), 존재론적으로(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기능적으로(보좌와 권세와 주관자와 권능) 모든 것을 의미한다. 기능적인 진술은 일반적으로 천상의 존재들을 가리킨다(엡 3:10, 엡 6:12 참조). 마치 오해의 여지를 없애려는 듯이, 바울은 예수께서 “만물보다 먼저”(골 1:17) 계셨다고 밝힌다. 헬라어의 표현은 시간적인 것만 아니라 순위에서 먼저인 것을 의미할 수 있지만, 바울의 글에서 다른 모든 경우는 시간을 가리킨다(고전 2:7, 갈 1:17, 엡 1:4 참조).
바울이 예수님의 탁월함을 설명하는 또 다른 근거는 “만물이 그 안에 함께”(골 1:17)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헬라어 쉬니스테미(synistēmi)는 “함께 모으다” 또는 “통합하다”를 의미한다. 예수님은 창조주이실 뿐만 아니라 구속주이시기 때문에 우주를 하나로 연합하게 하시는 분이다.
<교훈> 성경의 장자라는 말은 탁월하다는 면에서 첫째를 의미한다. 만물보다 먼저 계신 그분 안에서 만물이 함께 존재하며 그분은 우주를 하나로 연합하게 하신다.
<부가설명> 여호와의 증인들은 골로새서의 이 말씀으로 예수님이 모든 피조물 중에 최초의 피조물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또 잠언8:22~30절을 추가해서 주장한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예수님을 맨 먼저 창조하시고 그를 통하여 다른 만물을 창조했다고 강조한다. 그들의 성경 신세기역에는 골1:16,17에 있는 ‘만물’이라는 단어 앞에 ()하고 그 안에 ‘(다른) 만물’이라고 번역해서 성경 원문에 없는 말을 추가했다. 이런 주장을 만났을 때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가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런 주장은 성경 전체의 사상과 일치하지 않는다. 요1:3에는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라는 말씀이 있다. 이 말씀 중에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다’는 말씀을 잘 생각해야 한다. 만일 예수님도 지음 받은 존재라면 ‘지은 것이 하나도’ 예수님 없이 된 것이 없다고 했으니 예수님도 지은 것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예수님이 지었다는 논리가 된다. 이 주장을 반론하는 자리가 아니라서 이쯤에서 멈춘다. 예수님은 창조주이시다. 그는 창조주로서 만물의 으뜸이시다. 장자라는 말 ‘프로토토코스’는 으뜸이라는 뜻도 있다.
2월 17일(화) 몸(교회)의 머리
에베소서 1:22와 골로새서 2:10을 읽어보라. 이 구절에서 “머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울이 예수님을 “교회의 머리”(엡 5:23)라고 부를 때 그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엡1:22]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골2:10]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답: 교회의 지도자요 주관자라는 의미다.
전 세계 수많은 언어에서 볼 수 있듯이, 지도자 직책을 비유적으로 '머리'라고 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구약과 신약성경 전반에서도 유사한 용례를 찾아볼 수 있다. 다음 구절에서 “머리”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보라.
1. 출애굽기 18:25 - 모세는 “이스라엘 무리 중에서 능력 있는 사람들을 택하여 그들을 백성의 우두머리”로 삼았다.
2. 민수기 31:26 - “가문의 우두머리들”(우리말).
3. 신명기 28:13—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실 것이다.
4. 이사야 7:8—“아람의 머리는 다메섹이요, 다메섹의 머리는 르신이며.”
5. 호세아 1:11—“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자기들을 위해 한 머리를 정하고”(흠정역).
6. 미가 3:9—“야곱 족속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통치자들.”
7. 고린도전서 11:3 -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그러므로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는 교회의 연합과 성장을 위해 지도력, 가르침, 양분을 제공하신다(골 2:19 참조).
고린도전서 12:12-27을 읽어보라. 여기서도 바울은 교회를 “몸”으로 묘사한다. 이 비유는 교회의 어떤 다른 측면을 말해주는가?
[고전12:12~27]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14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15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16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17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18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19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20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21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22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23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그런즉 24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답: 교회의 유기성과 통일성과 활동의 질서 등을 나타낸다.
머리 없이는 몸이 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몸의 한 부분을 잃거나 다치면 삶이 아주 어려워질 수 있다. 우리는 종종 무언가를 잃기 전까지는 그것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한다.
<교훈>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는 교회의 연합과 성장을 위해 지도력, 가르침, 양분을 그분이 제공하시는 것을 비유로 말하는 것이다.
<부가설명> 생물의 조직같은 완벽하고 공평한 다른 조직이 없다. 서로 도와 목적을 이루지만 지체끼리 다투는 일이 없고 또 뽐내거나 멸시하는 일도 없다. 한 지체가 아프면 온 몸이 아프다. 세상에는 수많은 조직이 있다. 그런데 교회를 몸에 비유하여 설명했다. 성령께서 하신 탁월한 지혜를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지체 중에 하나가 탈이 아면 온 몸이 아프다. 지체가 건강해야 몸이 건강하다. 세상에서는 조직의 머리쯤 되면 우쭐댄다. 조직의 하부에 있는 자들을 무시하거나 강압하려고 한다. 교회가 세상을 닮아서 성경이 계시한 몸의 기능을 완전히 잃어버리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재림교회는 그렇지 않아야 하는데, 세상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이 원리를 실천하지 않는다. 교회 직무를 맡는 것을 무슨 계급을 받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장로직이 그런 느낌을 강하게 한다. 목사직도 그런 경향이 있지는 않는지. 섬기는 자로 오신 교회의 머리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고 본을 따르면 얼마나 좋을까?
2월 18일(수) 시작
골로새서 1:18을 읽어보라. 그리스도를 머리로 보는 개념과 그분을 “시작”으로 보는 개념은 서로 어떻게 연관이 있는가?
[골1: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아르케=시작)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답: ‘아르케’는 요1:1의 태초라고 번역된 말이다. 예수께서는 태초부터 만물의 어뜸이셨다. 머리와 아르케는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
히브리어에서 “머리”(roʾš, 로쉬)와 “시작”(rēʾšît, 레쉬트)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성경에서 ‘시작’이라는 기록이 처음 등장하는 곳은 창세기 1:1이다. “태초에[레쉬트]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예수님은 성육신 때문만이 아니라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인류와 교회의 머리이시다.
헬라어에서 “시작”(archē, 아르케)이라는 단어는 폭넓은 의미를 지닌다. 이 구절에서 “시작”은 예수님을 교회의 근원 또는 시작이신 분(골 1:18)으로 가리키기에, 그분이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것은 예수님이 창조의 “시작” 또는 창시자이신 것과 같다.
예수님은 창조와 교회의 시작이실 뿐만 아니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을 받은 것(롬 6:3, 4)을 통해 재창조의 시작이 되신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에, 예수님의 사망에 대한 승리는 또한 죄에 대한 승리와 그분의 형상대로 우리를 재창조하실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은 그분이 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먼저 나심’의 의미는 월요일 연구 참조)이신지를 보여준다. 예수님의 부활이 최초는 아니지만(모세가 최초였고, 그의 몸을 두고 마귀와 논쟁이 벌어졌다. 유 1:9), 그리스도의 부활은 가장 으뜸인 부활이다. 그리스도의 부활 없이는 그 누구도 죽은 자 가운에서 부활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예수께서 탁월하신 이유에 대해 바울이 제시한 모든 주장을 간략히 살펴보는 것은 도움이 된다.
1. 그분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완전한 현현이시다.
2. 그분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다.
3. 그분은 만물보다 먼저 계셨으며, 만물이 그분 안에서 하나로 연합한다.
4. 그분은 교회의 머리이시며, 교회는 그분의 몸이다.
5. 그분은 창조와 재창조의 시작자이시다.
6. 그분은 죄와 죽음을 정복하셨기에 그분을 구주로 믿는 모든 사람을 부활시킬 권리를 얻으셨다.
7. 예수님은 항상 존재하셨으나, 이제 이 모든 것으로 인해 인류의 머리이자 교회의 머리로서 만물의 으뜸이 되셨다.
<교훈> 주님은 창조주시기에 인류와 교회의 머리시며, 창조와 교회의 시작이실 뿐만 아니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롬 6:3, 4)을 통해 재창조의 시작이 되신다.
<부가설명> 우주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므로 시작되었다. 그 창조를 시작하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물론 삼위일명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성경은 이렇게 계시했다.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조성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나와 함께한 자 없이 홀로 하늘을 폈으며 땅을 베풀었고”(사44:24,개역), 창조는 여호와 하나님 홀로 하셨다. 여기 ‘홀로’라고 번역한 원어는 ‘바드’인데, 정확한 번역은 ‘... 만이’이다. 즉 ‘여호와 하나님만’이 창조하셨다는 말이다. 창조하신 분은 ‘여호와’만이다. 창조에 여호와와 함께 찬 다른 이가 없다. 그래서 나와 함께 한 다른 이가 없이 여호와 만이 창조하신 것이다. 그런데, 요1:3에는 지은 것이 말씀 하나님 없이는 된 것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그 말씀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이시다(요1:14). 그러니까 예수님이 창조에 함께 하신 분이시다. 또 시104:30에는 성령께서도 함께 창조하셨다. 즉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은 다 창조에 함께 하신 분이시다. 그러니까 그 세분이 다 여호와이신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 아들, 성령께서 우리를 재창조하셔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주시는 것이다. 신학은 삼위일체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삼위일명으로 계시했다(마28:19). 이 문제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다른 소리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여호와가 홀로 하나라는 말은 그 이름이 홀로 하나라는 뜻이다(슥14:9).
2월 19일(목) 만물을 화목하게 하심
골로새서 1:19, 20을 읽어보라. 십자가를 통해 이루어지는 이 화목은 어떤 것이며, 그것은 얼마나 광범위한가?
[곻1:19,20]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답: 온 우주가 포함된다.
바울은 예수님에 대한 설명을 마무리하기 위해 매우 흥미로운 헬라어 표현을 사용하며, 골로새서 1:12에서 언급된 아버지를 간접적으로 가리킨다.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충만함으로 예수님 안에 거하게 하기를 기뻐하셨다(골 2:9 참조). 이 “충만함”은 무엇인가? 요한은 그것을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아버지의 영광이라고 말한다(요 1:14).
골로새서 1:19-20은 그 “충만함”이 많은 것을 아우르고 있음을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원하심과 자존하심, 창조하고 재창조하시는 그분의 능력을 포함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충만함이 정말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수단인 십자가를 통해서 죄와 죽음을 정복하는 그분의 지혜를 강조한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가장 수치스러운 대상을 모든 피조물을 향한 당신의 영원한 사랑의 증거로 바꾸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죄가 정말로 영원히 끝나고 화목할 수 있는, 모든 것이 화목하게 되는 유일한 길은 이 한 가지 영광스러운 진리 속에 요약되어 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되 온 세상을 사랑하셨고,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셨다. “세상”을 뜻하는 헬라어 ‘코스모스(kosmos)’는 온 우주를 포괄할 수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가운데 일어난 일이 이같은 우주적인 증거가 되었음을 말한다. “우리는 세계[코스모스]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고전 4:9).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하늘은 슬픔과 경탄으로 바라보았다. … 사탄과 그와 연합한 모든 자들은 반역의 생애를 통해서 하나님과 조화될 수 없는 곳에 자기 자신을 둠으로 인해 하나님의 임재는 그들에게 삼키는 불이 될 것이다. 사랑이신 그분의 영광이 그들을 멸할 것이다. 대쟁투의 초기에 천사들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대쟁투가 끝나게 될 때에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 때에는 구속의 경륜이 완성되며 하나님의 성품은 창조함을 받은 모든 지적 존재자들에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 그러므로 천사들이 구주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기뻐한 것은 당연하였다. … 그리스도 자신은 갈보리에서 이루신 희생의 결과를 충분히 이해하셨다. 그분은 이 모든 것을 내다보시고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부르짖으셨다”(시대의 소망, 760, 764).
<교훈> 하나님이 세상을 너무 사랑하셔서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셨다는 진리가 곧 만물이 화목하게 되는 유일한 길이다.
<부가설명> 예수님의 십자가가 왜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화목하게 하는가? 우주 세계도 죄를 지었는가? 이런 질문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지구 외의 우주는 죄에 빠지지 않았다. 그런데 왜 하나님과 화목해야 하는가? 그것은 루시퍼가 지구로 와서 아담 부부를 유혹하기 전에 먼저 창조된 우주 세계를 돌아다니며 하와를 미혹한 것과 같은 짓을 했기 때문이다. 성경은 루시퍼가 이렇게 하는 사실을 성경은 이렇게 계시했다.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으로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유1:13 하단). 유리하는 별들은 방랑하는 루시퍼 일당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 된다. 그들은 흑암으로 돌아갈 것이다(유1:6). 그래서 우주는 미혹되지는 않았으나 의혹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주의 이런 의혹을 말끔이 씨어버린 사건이고 루시퍼를 온 우주에서 완전히 정죄한 사건이다. 그래서 계시록은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계12:10,11)라고 계시한 것이다. 감사합니다.
2월 20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인간에 불과한 사람이 예수와 같은 주장을 했다면 그는 결코 위대한 도덕적 스승이 될 수 없습니다. 그는 정신병자 - 자신을 삶은 계란이라고 말하는 사람과 수준이 같거나 아니면 지옥의 악마일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지금도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미치광이거나 그보다 못한 인간입니다. 당신은 그를 바보로 여겨 입을 틀어막을 수도 있고 악마로 여겨 침을 뱉고 죽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의 발 앞에 엎드려 주님이요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위대한 인류의 스승이니 어쩌니 하는 선심성 헛소리에는 편승하지 맙시다. 그는 우리에게 그럴 여지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럴 여지를 줄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습니다”(C. S. 루이스, 순전한 기독교, 홍성사, 93),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신성의 모든 충만을 지니신 분이시며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아들 하나님은 신성의 모든 충만하심을 나타내신 분이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분을 ’그 본체의 형상‘이라고 선포하고 있다“(복음전도, 614).
”그리스도께서는 선재하시며 자존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선재에 관하여 말씀하시면서 우리의 마음을 영원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하신다. 주님께서는 당신이 영원하신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지 않으신 때는 결코 없었음을 우리에게 확신시켜 주신다.
주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시며 무한하고 전능하신 분이었다. … 그분은 영원 자존하시는 아들 하나님이시다“(복음전도, 615).
함께하는 토의를 위하여
1. 예수님의 영원한 신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라. 예수님이 영원하신 하나님, 곧 결코 창조되지 않으셨고 영원 전부터 항상 존재하는 분이 아니라면, 구원 계획 전체와 십자가의 희생의 의미가 어떻게 달라졌겠는가. 이 가르침은 왜 그렇게 중요한가?
*답: 만일 그렇다면 그는 부활하실 수 없다. 부활이 없으면 사망이 처리될 수 없다. 그런 사람은 그도 사망에 삼키게 될 것이다. 오직 자존하신 분만이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시고 예수님이 바로 그렇게 하셨다(요10:17,18).
2. 왜 우리는 예수께서 이루신 일에 온 우주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개념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하는가? 십자가는 경외감을 느끼게 하는 일일 수 있지만, 영원한 영광 가운데 계셨던 그분을 알고 있던 우주 거민들은 그들이 경배하던 영원하신 창조주께서 십자가에 달린 모습을 볼 때 마음에 어떤 생각이 들었겠는가?
*답: 루시퍼는 거짓말쟁이요 살인자라는 생각과 함께 하나님은 참으로 사랑이시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3. 아버지와 아들이 항상 함께 존재해 오셨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그것을 어떻게 말하겠는가? 이것은 왜 그렇게 중요한 진리인가? 십자가에서 일시적으로 “신적 권능의 분리”가 있었을 때를 제외하고는,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존재하지 않은 적이 결코 없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화잇주석, 마 27:21 참조).
*답: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은 여호와가 아니다. 여호와시라면 언제나 함께 계셨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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