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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과 하늘 시민권(질문, 대답, 설명) 02/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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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6-02-06 12:52 조회1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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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과 하늘 시민권 

(2월 14일 안식일 / 일몰: 오후 6시 17분)

 

연구 범위: 빌립보서 3:17–4:23, 고린도전서 15:42–44, 요한복음 14:27, 시편 119:165, 욥기 1:21, 디모데전서 6:7

 

기억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빌립보서 연구를 마무리하는 이번 주 교과는 매일의 삶에 적용할 귀중한 교훈과 지침으로 가득하다. 사도 바울의 삶을 이끈 높은 도덕적 가치들 중 상당수가 이 서신의 마지막 구절들에 담겨 있는 듯하다. 속사람에 초점을 맞춘 예수님의 가르침처럼 바울은 우리에게 기쁨이 가득한 그리스도인 삶을 사는 비결을 나눈다. 

일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라도(이런 일이 우리 생각보다 더 자주 생기곤 한다) 우리는 걱정하거나 불안해하거나 낙담할 필요가 없다. 우리에게는 삶에서 일어나는 어려움에 맞설 내면의 힘을 찾을 수 있게 돕는 원칙들이 있고, 이를 통해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변함없고 지속적인 평안을 경험할 수 있다. 현재와 미래는 그분의 손안에 있으며, 그분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실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를 계속해서 실망시키는 세상의 통치 체계에 소망을 둘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다. 그 시민권은 우리에게 엄청난 특권을 준다. 물론 책임도 함께 주어진다. 

 

학습 목표

깨닫기: 우리는 하늘나라 시민임을 기억하고 부활과 영생으로 새롭게 하실 약속에 굳게 서야 한다. 

느끼기: 세상의 어려움과 염려 속에도 주님 뜻대로 기도할 때 평안과 돌보심을 경험할 수 있다. 

행하기: 십자가 앞에서 구주가 필요한 죄인으로서 좋은 모본을 따르며 무엇에든 하늘의 덕목을 생각한다.    

 

TMI 위로

2. 바울이 악한 일을 행하는 이를 십자가의 원수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빌 3:18)

*답: 십자가로 그 악한 일에서 구원했는데 그것을 거절하기 때문이다.

3. 하늘 시민권을 기다리는 자에게는 어떤 놀라운 변화가 약속되어 있습니까?(빌 3:21)

*답: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은 상태로 부활할 약속이다.

4. 절박하고 긴급한 일도 감사함으로 구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요일 5:14) 

*답: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면 이루어주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

5. 시대를 초월하는 바울의 마지막 권면은 어떤 요소를 강조하고 있습니까?(빌 4:8, 9) 

*답: 무엇을 하든이 항상 생각할 여섯가지 사실을 강조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그래야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6.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약속은 왜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까?(약 4:2) 

*답: 믿음으로 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의 간구가 하나님 뜻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7. 기다리던 주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방법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답: 말씀에 굴복하는 방법이다.

 

결론: 실망스러운 세상의 통치 체계에 소망을 둘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며 우리에게는 엄청난 특권과 책임이 주어졌다. 우리는 부활과 영생으로 우리를 완전히 새롭게 할 하늘 시민권의 약속에 굳게 서야 한다. 세상에서 근심, 염려가 있지만 주님의 뜻대로 기도할 때 돌보심을 믿고 평안을 누릴 수 있다. 바울은 십자가 앞에서 구주가 필요한 죄인으로서 미덕과 본보기를 강조하는 가운데 좋은 모본을 따르며 무슨 일에든지 하늘의 덕목들을 생각하라고 권면한다. 

 

2월 8일(일) 본보기

 

우리 모두는 한 번쯤은 존경하고 닮고 싶은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좋은 본보기가 필요하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 역할을 하는 것이 이상적일 것이다.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자신이 선택한 직업과 관련된 사람이나 감명 깊게 읽은 전기 속 주인공을 본보기로 따르게 될 것이다. 또 다양한 성경 속 인물들이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했는지 배우며 자신의 삶과 비교해 볼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대중 매체에는 나쁜 본보기가 넘쳐난다. 유명인들의 사생활 문제와 엉망진창인 삶을 상세히 묘사한 미끼성 기사가 끝없이 쏟아져 나온다. 빌립보 교인들이 인터넷 문제를 겪지는 않았겠지만 그들도 오늘의 우리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 

실제로 바울이 살았던 세상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처럼 매우 부패하고 부도덕하며 악했다. 악은 언제나 존재하였고 세상이 끝날 때까지는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다. 이 악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질문이다.   

 

빌립보서 3:17-19을 읽어보라. 이 구절은 선한 본보기와 악한 본보기를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그 둘을 구별하는 핵심은 무엇인가? 

[빌3:17~19]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답: 그리스도를 본받는 바울 일행과 십자가의 원수로 배만 위하고 부끄러운 영광을 구하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을 묘사하고 있다.

 

바울이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향해 가진 사랑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는 그들을 위해 눈물 흘렸다! 또 바울이 그들을 자신의 원수라 부르지 않고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빌 3:18)라고 부르는 것을 주목하라. 바울은 여기에 훨씬 더 큰 문제, 곧 십자가가 어떻게 장벽을 허물고 우리 모두를 구주가 필요한 죄인으로서 같은 자리에 서게 하는(엡 2:11-14 참조) 그 문제가 걸려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다. 

또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나쁜 본보기가 아닌 좋은 본보기에 집중하라고 권면한다는 점이다. 

삶의 방식이 바울과 비슷한 사람들을 주의 깊게 살피라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바울은 로마 성도들에게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롬 16:17)라고 경고할 때 비슷한 표현을 사용한다. 바울은 로마의 훼방하는 자들을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는 자라고 말한다(롬 16:18). 

 

<교훈> 육체의 일을 따르게 하는 악에 대응하기 위해 바울은 십자가 앞에서 구주가 필요한 죄인으로서, 같은 자리에 서며 좋은 모본을 따르라고 권면한다.    

 

<부가설명> 지금 사람들은 선한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세상은 선악을 도덕적으로   구분한다. 당연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선악 구분을 사람이 생각하는 도덕적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성도들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성경이 구분하는 선악은 그리스도께 속한 것과 사탄에게 속한 것으로 구분한다. 사탄은 광명한 천사로 가장해서(고후11:14) 도덕적으로 선한 행실과 사업으로 사람들을 선악 구분에 혼란을 만든다. 도덕적으로 아무리 선한 특성을 보이고 선한 일을 해도 그 소속이 사탄이면 성경은 그것을 악과 사망의 세력으로 단정한다. 그것은 사망의 썩는 모습에 방부제 방취제 향수를 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여전히 사망에 속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생명이신 예수님께 속해 있으면 그는 선한 존재다. 자기가 선해서가 아니다. 예수님이 그의 생명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악한 세력의 공격 대상이다. 예수님을 공격한 것처럼 그분에게 속한 생명의 사람들을 공격한다. 예수님이 우리와 한결같은 시험을 받았다는 말씀은(히4:15) 성도들이 사탄의 세력에게 공격받은 것처럼 공격을 받았다는 뜻이다. 성도들보다 훨씬 강하게 공격받으셨다. 그러나 사망이 생명을 이기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비록 생명을 얻었으나 죽음에 속한 낮은 몸을(빌3:21) 가지고 있어서 상처를 입는다. 이것이 진정한 성도들이 죄를 짓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들은 곧 예수님께 나와서 상처를 치료받고 다시 생명으로 살아간다. 바울은 이런 삶을 성도들의 삶으로 제시한다. 그들은 배를 신으로삼지 않는다. 이해했으면 좋겠다. 

 

2월 9일(월) “주 안에 굳게 서라”

 

빌립보서 3:20, 21을 읽어보라.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시민권”이 어떤 모습인지 어떻게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가?

[빌3:20,21]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답: 예수님께 속한 자는 하늘 시민권자이며 예수님 재림하실 때 우리의 죽을 수밖에 없었던 몸이 그분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할 것이다.

 

“땅의 일을 생각하”며 배를 자기 신으로 삼는 십자가의 원수들(빌 3:19)과 달리, 그리스도인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며 우리의 통치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해 바울은 병들고 쇠퇴하며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낮은 몸”(빌 3:21)이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과 같이 변화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다음 구절은 영광스러운 상태를 어떻게 묘사하는가?

• 욥기 19:25–27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26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27 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마음이 초조하구나

* 이 육체(낮은 몸) 밖에서(변화된 몸으로) 예수님을 볼 것이다.  

• 누가복음 24: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 부활하신 예수님도 육(살-사르크스)이 있었다. 영광의 몸의 형체이다. 

• 고린도전서 15:42–44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 부활한 몸은 영의 몸이다.

• 고린도전서 15:50–54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 썩지 않고 죽지 않는 몸이다.

• 골로새서 3: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 그것은 영광의 몸이다.

 

결국 예수님을 통해 “마지막 원수”인 죽음이 멸망받을 것이다(고전 15:26). 이것이 바로 우리의 가장 큰 소망이며,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궁극적인 약속이다. 예수님은 단지 사망이 끝나는 것만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몸, 곧 “영광의 몸”(빌 3:21)을 약속하신다. 

주목받는 프랑스 철학자 뤽 페리(Luc Ferry)는 하나님 없이 '구원'을 찾는 방법에 대한 그의 책에서, 다소 어이없게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구원'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기독교에 대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초월할 뿐만 아니라 죽음 자체를 이기게 한다. 익명성이나 추상성이 아닌 개인의 정체성 측면에서 그렇게 함으로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조건에 대항해 개인적 불멸이라는 진정한 결정적 승리를 제시하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인정했다(페리, Ferry, Brief History of Thought, 뉴욕, 2011, 90). 역설적이지만 무신론자가 제시한 의외의 증언이다. 

바울이 생각하는 하늘 시민권에는 우리가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서의 부활과 영생의 약속이 포함된다. 

 

<교훈> 하늘 시민권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서의 부활과 영생의 약속이 포함된다. 바울은 우리에게 이 궁극적인 약속에 굳게 서라고 말한다. 

 

<부가설명>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그 사람이 영생하도록 창조하신 것이다. 요일2:25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이 영생이라고 했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과 언약을 어기면서(호6:7) 영생에서 종신으로 떨어졌다. 창조주께서는 이것을 그냥 두실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을 다시 영생하는 상태로 복원하기로 하셨다. 그것을 구원이라고 하고 구원의 섭리, 구원의 경륜이라고 한다. 창조주께서는 자신의 창조를 온전하게 하실 능력이 있고 또 반드시 그래야 한다. 그래야 창조주의 처음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영생하는 것이다. 그것이 창조주 하나님의 목적이다. 그러므로 영생은 구원의 전부다. 영생하지 않으면 그는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다. 그것은 사망의 형상이다. 그것은 바로 영생을 반역한 루시퍼의 형상을 가지는 것이고 존재를 영원히 상실해서 창조주의 창조를 이지러지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영생하는 것은 구원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2월 10일(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빌립보서 4:4-7을 읽어보라.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평안”을 경험할 수 있는가?

[빌4:4~7]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답: 항상 기뻐하고 관용을 나타내고 염려하지 않고 기도와 간구로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는 삶을 살며 구한 것을 이루어주신다는 확신을 가지면 하나님의 평안이 이른다고 했다.

 

연합이 필요함(빌 4:1-3)을 다시 한 번 언급한 후 바울은 주 안에서 기뻐하라(빌 4:4-7)는 주제로 넘어간다. 

갑자기 나타났던 것처럼 결국 어느 순간 사라지고 마는 그런 일들로 우리는 얼마나 자주 스트레스를 받아왔는가? 예수께서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반복해서 강조하신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마 6:25-34, 마 10:19 참조). 베드로 역시 우리에게 모든 염려와 근심을 주님께 맡길 수 있다고 상기시키는 것은 “그분께서 너희를 돌보시”기 때문이다(벧전 5:7, 흠정역). 사실,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문제들은 우리에게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다는 소망을 일깨워주는 것이어야 한다(마 24:33, 눅 21:28, 약 5:8 참조). 

그 어떤 상황에서도,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믿음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빌 4:6, 7). 분명히 우리는 기도가 이루어지기 전에 응답받았다고 믿고 행동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감사함으로” 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간구”(deēsis, 데시스, 헬라어)라는 단어가 추가된 것은 상황이 극도로 절박하고 긴급함을 나타낸다(눅 1:13, 빌 1:19, 딤전 5:5, 약 5:16 참조). 우리의 기도는 여전히 “요청”이지만, “그의 뜻대로”(요일 5:14) 구하는 한 우리의 간구가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모든 요청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확신하며 쉼과 평안을 누릴 수 있다. 

 

시편 29:11, 이사야 9:6, 누가복음 2:14, 요한복음 14:27, 고린도전서 14:33은 하나님의 평안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어떻게 넓혀 주는가? 

[시29:11]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사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눅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고전14:33]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답: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평강을 우리에게 주신다. 세상 평안이 아니다.

 

하나님의 평안은 세상이 결코 줄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평안은 구주 예수님을(롬 5:1, 롬 6:23) 통해 영생의 선물을 받았다는 확신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이 평안은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며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빌 4:7, 흠정역)다. 여기서 헬라어 ‘누스’(nous, 생각)의 사용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 평안은 이성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교훈> 염려와 근심을 주께 맡기고 기뻐할 수 있는 것은 그분이 돌보시기 때문이다. 주의 뜻대로 구할 때 그 일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고 평안을 누릴 수 있다.  

 

<부가설명> 아마도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비 나사로는 수명을 다하고 다시 죽었어도 그는 틀림없이 부활한다는 소망을 기쁨으로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그에게 어떤 위기와 위험이 닥친다고 해도 죽어서 나흘동안 썩어 냄새가 나는 지경까지 갔다가 예수님이 살려주셔서 다시 생명을 얻은 그 기쁨을 없애지 못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나사로의 기쁨은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인한 기쁨이지 이 세상의 희노애락과 상관없는 기쁨이고 평강이 아니었겠는가? 바울이 감옥에서도 기뻐하라고 한 것이나 하나님의 평강이 주장하라고 한 것은 세상적인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고 하신 것이다. 세상의 평안은 죽음 앞에서 맥을 못쓰는 평안이다. 그래서 신앙생활에서 영생은 그렇게 중요한 핵신 사안이고 부활은 평강의 소망이 되는 것이다. 아멘. 

 

2월 11일(수) 이것들을 생각하라 

 

우리의 이해를 뛰어넘는 평강은 또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빌 4:7)킬 것이다. 우리 내면의 삶은 보호가 필요하다. 흥미롭게도 빌립보서 4:7은 하나님의 평안과 관련해 군사적 비유를 사용한다. 헬라어 동사 프루레오(phroureō)는 침략으로부터 도시를 지키는 방어군 부대를 의미한다(고후 11:32; 행 9:24 참조). 

내적 평강의 또 다른 매우 중요한 측면은 하나님의 뜻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이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시 119:165). 

 

빌립보서 4:8, 9을 읽어보라. 이 구절은 어떤 구체적인 행동을 권고하는가?

[빌4:8,9]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답: 그리스도인의 삶에서는 무엇에든지 참되며 경건하며 옮으며 정결하며 사랑받을 만하고 덕과 기림(칭찬)이 있어야한닥라고 가르치며 바울이 그렇게 살았다는 것을 암시하며 본받으라고 했다.

 

바울은 빌립보서 4:8, 9을 “무엇에든지”라는 표현과 여섯 가지 덕목으로 시작하며, 각 덕목을 간단히 요약한 뒤 자신을 본받으라고 격려한다. 문화적 경계를 초월하는 바울의 마지막 권면은 미덕과 본보기를 동시에 강조하는 빌립보의 그리스-로마적 바탕에 잘 들어맞는다. 흥미로운 점은, 초점이 성경의 미덕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이는 바울이 그리스의 네 가지 기본 덕목(지혜, 정의, 절제, 용기)을 언급하지 않은 것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다.

1. 참되며 – 예수님(“내가 진실로 이르노니”)과 신약 전체가 자주 강조하는 성경의 기본 미덕인 진리가 제일 먼저 등장하는 것은 분명 바울이 의도한 것이다(행 26:25, 롬 1:18, 고전 13:6, 고후 4:2, 엡 4:15, 딤전 3:15, 약 1:18, 벧전 1:22, 요일 2:21 참조). 

2. 경건하며 – 여기 사용된 헬라어 단어는 개인적인 미덕을 가리킨다(딤전 3:8, 11; 딛 2:2에서 경건함으로 사용한 용례와 비교).

3. 옳으며 - 이 덕목은 하나님의 의로우신 성품으로 정의된다(빌 1:7의 용례 참조).

4. 정결하며 - 하나님의 의롭게 하시는 믿음으로 받은 의에서 흘러나오는 생각과 행동(요일 3:3 참조). 

5. 사랑할 만하며 - 하나님의 창조 세계 많은 곳에서 볼 수 있는 심미적 아름다움.

6. 칭찬할 만하며 - “친절하고 사랑스럽고 은혜로운”

바울은 이 덕목들 중 어떤 것에도 이교적 의미가 부여되지 않도록 두 가지 추가 조건을 제시한다.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빌 4:8) 우리는 이러한 하늘의 덕목들을 생각해야 한다. 그런 다음, 모든 의심과 잠재적 오해를 없애기 위해, 바울은 우리에게 자신의 본을 통해 배우고, 받고, 듣고, 본 것을 실천할(빌 4:9) 것을 요청한다. 

 

<교훈> 빌립보에 적합하면서 문화적 경계를 초월하는 바울의 마지막 권면은 미덕과 본보기를 동시에 강조하며 무슨 일에든지 하늘의 덕목들을 생각하라고 말한다.  

 

<부가설명> 그리스도인은 일상생활에서 항상 생각할 것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열거했다. 어떤 경우든지 그리스도인의 사상과 삶에는 위에 열거한 내용을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가르친다. 예수님은 상대방의 태도나 도전에 상관없이 자신의 사상과 생명력으로 생활했다. 주위 환경에 휘둘리지 않았다. 주위와 상대가 자기를 대적해도 그 대적하는데 대한 반응이 아니라 예수께서 하셔야 할 태도로 일관하셨다. 이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자세라고 본을 보이신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의 감성을 상대방이 지배한다. 상대방이 나에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내 반응이 나타난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을 당신의 방법대로 하셨다. 우리도 예수님 안에서 그렇게 살아야 할 것이 아닐까? 그것이 예수니의 생명을 받은 그리스도인의 생활 모습이어야 한다고 바울이 가르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평안이 우리를 주장하는 모습이다. 

 

2월 12일(목) 자족의 비결

  

빌립보서 4:10-13, 19을 읽어보라. 바울은 만족하고 행복한 삶을 위한 어떤 비결을 알려주고 있는가?

[빌4:10~13,19]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답: 바울은 자기에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빈천에도, 풍부함에도 적응하는 삶을 터득했다. 그 배후에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쓸 것을 채우신다는 믿음이 확고했기 때문이다.

 

극한 상황(굶주림, 질병, 부상, 상실)이 닥치면, 사람은 정말 중요한 것들을 되돌아보고 평소에 당연하게 여기던 축복을 다시 살펴보기 시작한다. 우리가 “비천에 처할”(빌 4:12) 때, “궁핍”할 때, 또는 가난한 가운데 있을 때, 바로 그때 믿음이 자라난다. 반대로 우리가 “풍족”(새번역)할 때 그것이 한 순간에 사라질 수 있음을 항상 인식해야 한다(잠 23:5 참조). 욥과 바울이 상기시켜 주듯이, 우리는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왔으며, 무덤으로 갈 때도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을 것이다(욥 1:21, 딤전 6:7). 

다음 성경의 약속들을 주목하라. 

• 시편 23:1 -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 마태복음 6:32 -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 베드로전서 5:7 - “너희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그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 빌립보서 4:19 -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그중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는 말씀은 정말 놀랍다. 아마도 우리 중 누구도 ‘모든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도움과 힘을 구하는 어떤 요청일지라도 우리는 그분의 뜻을 따라 구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우리는 그분의 뜻에 맞는 것조차 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야고보서 4:2은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것임을 알기 때문에 우리가 확신을 가지고 구할 수 있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 사랑하는 사람이나 친구의 구원(딤전 2:3, 4) 

• 우리의 믿음을 나누는 용기(계 22:17) 

• 잘못을 고백하고 버릴 때의 용서(요일 1:9) 

•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할 힘(히 13:20, 21) 

• 우리를 미워하고 학대하는 자들에 대한 사랑(마 5:44) 

• 어려운 상황에 대처할 지혜(약 1:5) 

• 하나님 말씀의 진리에 대한 이해(요 8:32)

 

<교훈> 어려운 때 당연히 여겼던 축복과 믿음의 중요함을 기억하고 풍요할 때 그것이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음을 생각하며 우리를 도우시는 주님을 신뢰해야 한다. 

 

<부가설명> 흔히 우리는 백년대계를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말을 많이 들었다. 좋은 말이고 그럴듯한 생각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 것 같다. 백년대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워져 있다. 우리가 그분 안에 있다면 백년대계가 아니라 영원한 대계가 우리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는 하루씩만 산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오늘만 사는 것이다. 밤이 오면 우리는 죽음 훈련을 받는다. 아침에 깨어 일어난다면 부활 훈련을 받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오늘이라는 하루를 산다. 저녁이면 죽고 아침에는 부활한다. 그래서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히3:13)라고 권하고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 하시고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 한날에 족한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오늘 하루만 사는 존재라는 것을 명심하는 것은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할 것이다.

시)

오늘 하루

 

         김명호

 

끝이 있는 것은

세월을 센다

종신하는 사람도

세월을 센다

 

끝이 오면

세월이 멈춘다

떠밀려 끝으로 달리는

이 숙명

 

그래도

세월은 오늘뿐이다

사람은 결국

 

 

 

 

 

 

 

오늘 종신한다

 

새해를 맞을 전날

이것도 오늘이다

새해 첫날도 

오늘이다

 

끝이 있는 모든 것은

오늘만 산다

오늘이라는

하루만 산다

 

이 하루를

끝이 없는 생명 얻는 

하루 되기를

손을 모은다

 

        2025년 12월 31일(수)

 

2월 13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은혜의 공급을 받는 사람만이 매일의 필요에 알맞는 권능과 그 권능을 사용할 능력을 받을 것이다. 그들은 특별한 영적 권능을 부어 주심으로 영혼 구원 사업에 기적적으로 적합하게 될 미래의 어떤 때를 고대하는 대신, 날마다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 그분께서 자신을 당신이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으로 만드시게 할 것이다. 그들은 날마다 손이 닿는 곳에 있는 봉사의 기회를 발전시킨다. 날마다 그들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가정에서 일할 때나 공적인 유익을 위해 일할 때나 어디에 있던지 주님을 증거한다.

그리스도께서도 지상 생애 동안 날마다 필요되는 은혜를 새롭게 공급받기 위하여 하늘 아버지께 간구하셨다는 사실과 또 하나님과의 이 교제를 통해 그분이 나아가 다른 사람들을 굳세게 하고 축복하셨음을 아는 것은 헌신한 일꾼에게 귀중한 위안이 된다.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르는 모든 일꾼은 하나님께서 무르익은 땅의 추수를 위해 당신의 교회에 약속하신 능력을 받아 사용할 준비가 될 것이다”(사도행적, 55).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그것을 위해 준비해 두셨다. 주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위한 모든 것을 공급할 수 있는 보물 창고를 가지고 계시며 어떤 상황에서도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주실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분을 신뢰하지 않는가? 그분은 당신의 계명을 충실하게 순종하는 조건으로 자녀들에게 귀한 약속을 주셨다. 그가 제거할 수 없는 짐은 없고, 그가 흩지 못할 어둠은 없으며, 그가 능력으로 바꾸지 못할 연약함은 없고 그가 잠잠하게 할 수 없는 두려움이 없으며, 그가 인도하고 인정하지 못할 고귀한 소망은 없다. 우리는 자신을 바라보지 말 것이다. 우리 자신의 불완전함에 대하여 생각하면 할수록 그것들을 정복할 수 있는 힘을 잃게 될 것이다”(그리스도를 알려 하여, 224). 

 

함께하는 토의를 위하여 

1. 기도가 응답된 가장 영광스러운 사례를 생각해 보라. 그 경험은 당신이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안을 경험하게 하는데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가? 여전히 응답받지 못한 기도들이 있는가? 그럼에도 어떻게 약속된 평안을 경험할 수 있겠는가? 

*답: 각 사람이 대답해 보자.

2. 빌립보서 4:8에 비추어 생각해 보라. 당신은 무엇을 생각하는 데 시간을 쏟고 있는가? 그것은 당신의 믿음을 강화하고 주님과 동행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답: 이것도 각 사람이 생각해서 대답해 보자.

3. “우리 자신의 불완전함에 대하여 생각하면 할수록 그것을 정복할 수 있는 힘을 잃게 될 것이다”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렇다면 그 상황을 극복하게 하는 열쇠는 무엇인가?  

*답: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약속에 든든히 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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