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과 겸손함으로 연합함(질문, 대답, 설명) 01/2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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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6-01-16 13:15 조회124회 댓글0건본문
제4과 겸손함으로 연합함
(1월 24일 안식일 / 일몰: 오후 5시 47분)
연구 범위: 빌립보서 2:1-11, 예레미야 17:9, 빌립보서 4:8, 고린도전서 8:2, 로마서 8:3, 히브리서 2:14-18
기억절: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빌 2:2, 4).
연합은 힘이다. 하지만 진리를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르다. 연합을 위해 최선을 다함에도 우리 모두는 때로 실패를 경험한다. 하지만 그것은 의도적으로 연합을 해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계속 그들이 “합하여 한 마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놀랍지 않은 일이다.
바울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모범에 근거하여 연합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것은 신약성경 전체, 특히 서신들에서 발견되는 주제이다. 세계가 분열하게 된 기원은 완전한 환경 가운데서도(사 14:12-14 참조) 빠르게 퍼져 나갔던 하늘의 한 천사의 교만함, 지위와 권세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되었다. 이 정신은 이후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도에 대한 비슷한 불만과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보다 더 높은 영역으로 올라가려는 욕망을 통해 에덴에서 그 교두보를 찾았다(창 3:1-6).
이번 주 우리는 교회의 연합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살펴보며, 특히 예수님의 놀라운 낮아지심, 그분을 바라보면서 얻을 수 있는 교훈, 그리고 그분을 더욱 닮아갈 수 있는 방법을 살펴볼 것이다.
학습 목표
깨닫기: 교회의 연합은 필수적이며 같은 믿음과 성령의 도움을 통해 조화를 이룰 수 있다.
느끼기: 마음을 바꾸기 어렵지만 그리스도의 겸손과 성령께서 주시는 말씀을 따를 때 영적으로 변할 수 있다.
행하기: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놀라운 사랑의 모본을 따라 닮아가며 한마음으로 연합한다.
TMI 위로
1. 많은 경우에서 의견의 일치를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합니까?
*답: 자기 주장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2. 빌립보 교회에서 나타난 사람의 문제는 어떤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습니까?(빌 2:3)
*답: 허영과 다툼으로 나타났다.
3. 바울이 제시한 연합의 단계를 밟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빌 2:3, 4)
*답: 겸손과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과 태도를 나타내는 것이다.
4. 우리는 어떻게 마음을 바꾸며 예수님과 같은 겸손한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까?(빌 2:5)
*답: 예수님께 마음을 바칠 때 그렇게 될 수 있다.
5. 자신을 비우신 예수님의 겸손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났습니까?(빌 2:8)
*답: 종의 형제를 가져 죽기까지 복종하시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6. 경건의 비밀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이며, 바울은 왜 그렇게 표현했습니까?(딤전 3:16)
*답: 예수님의 낮추심을 우리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7. 비밀이라는 말 속에 담겨진 무한한 진리는 오늘 우리에게 어떤 자세를 요구합니까?
*답: 간절할 마음으로 탐구하려는 자세를 요구한다.
결론: 분열을 경험하는 교회가 연합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르며 성경에 대한 같은 믿음을 갖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기심, 다툼으로 갈라진 교회에는 분쟁을 잠잠하게 하고 조화를 이루게 하는 성령의 도움이 필요하다. 우리는 마음을 바꿀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으며 성령을 통해 제시되는 권능의 말씀이 모난 우리 마음을 영적으로 변하게 도와줄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이 되셔서 우리를 위해서 희생하신 그 사랑, 그리스도의 겸손과 희생의 모본은 영원을 통해서도 다 헤아릴 수 없는 놀라운 경건의 비밀이다.
1월 18일(일) 빌립보 교회의 분열
빌립보서 2:1-3을 읽어보라. 무엇 때문에 교회 안에 분열이 일어난 것처럼 보이는가? 바울은 해결책으로 어떤 것을 제안하는가?
[빌2:1~3]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답: 자아가 살아서 남을 우습게 여기는 풍조와 허영이 있었던 것 같다. 남은 나보다 낫게 여길 줄 아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세우고 그토록 사랑했던 교회가 대립하며 서로 갈라지고 다툼에 빠진 모습을 보며 큰 실망을 느꼈을 것이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 매우 강한 언어를 사용한다. “이기적인 야심으로”(eritheia, 헬라어, 현대인)라는 표현은 앞서 빌립보서 1:17에서 그리스도의 대의를 진전시키는 바울과 달리 자기 이익을 앞세우는 로마 대적들의 행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허영”은 육체의 일(갈 5:20) 가운데 하나이며, 야고보서가 밝힌대로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약 3:16)을 뿐이다. “허영”에 해당되는 헬라어 단어는 신약에서 오직 여기에만 사용되지만, 성경 이외의 문헌에서는 오만함, 공허한 자부심, 자신에 대한 과장된 인식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을 향한 권면에서 이와 밀접하게 관련된 표현을 사용한다.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갈 5:26)라.
바울이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제시한 해결책을 주목하라.
1. 그리스도 안에서 위안.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본을 강력한 동기로 계속해서 제시한다.
2. 사랑의 위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시고 우리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셨다(요 15:12).
3. 성령의 교제. 성령의 임재는 초기 교회에 충만했던 것과 같은 친밀한 그리스도인 관계를 만든다(행 2:42; 고후 13:14 참조).
4. 긍휼. 하나님의 이러한 속성은 그리스도의 삶에서 자주 나타났고(마 9:36, 20:34, 막 1:41 참조),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눅 10:33)와 탕자의 비유(눅 15:20)에서도 묘사되었다.
5. 자비. 예수님께서 본을 보이신 이 특성은 그분을 따르는 자들의 삶에서도 나타나야 한다(눅 6:36).
6.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어.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다. 연합의 중요성을 이보다 더 분명하게 강조할 수 있겠는가. 바울은 말한다. 우리가 품어야 할 마음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빌 2:5)이다.
<교훈> 바울은 자기 이익, 다툼으로 갈라진 빌립보 교회를 향해 성령의 도움으로 하나님 사랑과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르는 모습이 그들 중에 나타나기를 권면한다.
<부가설명>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고 교인들은 그 몸의 지체들인데, 사람의 몸은 지체들끼지 다투지 않는다. 이 세상에는 많은 조직들이다. 국가나 기업들이나 다 조직이다. 그런 조직들이 사람의 몸으로 비유된 이야기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성경은 교회를 사람의 몸으로 비유했다.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12:14~27). 오늘날 교회가 이 원칙과 지시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 빌립보교회도 이런 상태가 일어난 모양이다. 이유는 교만과 허영과 우월한 위치를 찾이하려는 욕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늘 한국 재림교회 현상은 어떤가? 거의 모든 교회가 몸과 지체의 관계를 제대러 이행하지 않고 있지 않은가?
1월 19일(월) 연합의 근원
본질적으로 같은 내용을 네 가지 다른 방식으로 말하는 빌립보서 2:2에 나타난 바울의 연합에 대한 강조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보라. 그가 마음과 생각과 감정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에도 주목하라.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외적인 행동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주목하셨다. 젊은 부자 관원이 예수님께 나왔을 때 그는 자신이 항상 율법을 지켰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자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세상의 것에 대한 그의 애착을 시험하셨다. 또 예수님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마 15:19),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마 12:34)한다고 하시며,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마음(혹은 생각)에서 나온다고 말씀하셨다.
빌립보서 2:3, 4을 읽어보라. 바울은 교회 안에서 연합을 위해 어떤 실질적인 조치를 권고하는가?
[빌2:3,4]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답: 무슨 일에든지 다툼과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하 마음으로 남을 나보다 낫게어기고 자기 일도 돌볼고 넘의 일도 돌보라.
바울의 말은 겸손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음을 낮춰 다른 사람을 자신보다 더 낫게 여기며, 단순히 자신의 이익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돌보는 것이다. 물론 말하는 것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 원칙은 우리가 모든 상호관계에서 명심해야 할 중요한 원칙이다. 우리는 대화하는 중에 흔히, 상대의 말을 이해하고 그들의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기 위해 경청하는 것보다는 상대가 하는 말에 자신이 어떻게 대답할지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갈등은 종종 그저 적극적으로 경청하는 것만으로도 피할 수 있는 단순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다른 이의 관점을 경청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건강한 소통과 신뢰를 세우는 첫걸음이다.
바울은 우리를 “평화의 띠로 묶”(새번역)는, “성령이 하나 되게 하”(엡 4:3)는 연합을 말한다. 교회에 분쟁이 요동칠 때 성령께서 물결을 잠잠하게 하시고 우리를 연합으로 이끄시며 조화를 이루게 하신다. 같은 장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엡 4:13)라고 말한다. 이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가르침을 아는 데서 비롯되는 동일한 믿음, 곧 성경에 대한 동일한 이해를 갖는 것은 우리 가운데 연합이 충만히 이루어지는 데 필수적이다.
<교훈> 분쟁의 물결을 잠잠케 하고 조화를 이루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며 그분의 가르침, 성경에 대한 같은 믿음, 이해를 갖는 것이 연합이 이루어지는 데 필수적이다.
<부가설명> 예수님은 사람들의 이런 상태를 잘 아시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제자들도 누가 크냐고 다투었다. 바로 선생님인 예수님 앞에서 그랬다. 그때 예수님은 자기를 낮출줄 아는 사람이 큰 자라고 가르쳐주셨고, 베드로에게 특별 경고까지 하셨다(마16:23~25). 그리고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22:31,32)고 권고하셨다. 이것은 그때 그들에게만 해당되는 권고가 아니다. 지금 교회에도 하시는 권고다. 예수님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오, 영존하시는 아버지시다”(사9:6). 그런대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사람과 같이 되셔서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이런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고 빌리보 2:5에서 권고한다. 재림교회가 이 권고를 즐겨 따른다면 아마도 주님의 오심을 촉진시키는 사명을 능력으로 이룰 것이다.
1월 20일(화) 마음을 바꾸는 방법
전 세계적으로 점점 더 많은 기업이 컴퓨터의 처리 능력을 인간의 뇌에 결합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다시 말해, 과학자들은 사람의 마음을 컴퓨터에 연결함으로 컴퓨터를 통해 우리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고자 한다. 인간의 뇌에 이런 이식을 활용하는 것이 간질, 우울증, 파킨슨병 관리에 도움을 주는 것 같은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더 사악한 용도로 사용할 수도 있음을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다. 마음을 통제하는 일은 그리 멀지 않다.
어떤 면에서 이미 실현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마음은 컴퓨터와 같지만 단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탁월하다. 그러나 우리가 매일 보고 듣는 끊임없는 정보의 물결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생각을 꼴 지으며, 행동의 방향을 유도한다. 우리가 미디어에 몰입할수록, 세속적인 사고방식이 마음에 각인되어 우리도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마치 다른 사람의 마음이 우리 마음에 이식되거나 융합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영적으로 생각”(롬 8:6, 흠정역)해야 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영이 아니면 아무도 하나님의 생각을 알 수 없”다고 말하며, 이를 “세상의 영”(고전 2:11, 12, 우리말)과 대조한다. 누가 당신의 선생이며,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빌립보서 2:5을 읽어보라.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가?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답: 예수님과 같은 생각과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생각을 바꿀 수 있겠지만, 마음을 바꿀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만이 그렇게 하실 수 있다. 성령께서 “성령의 검”(엡 6:17), 곧 “살아 있고 권능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마음을 수술 하셔야 한다. 그분이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히 4:12)신다. 본성상 우리 마음은 자신을 속이기 때문에(렘 17:9)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우리는 진정으로 자신을 알 수 있다.
속인다는 뜻의 히브리어 ‘거짓된’('aqov, 아코브)은 사람을 넘어뜨리는 울퉁불퉁한 땅을 가리키며, 더 나아가 뒤틀리고 왜곡되고 굽은 생각을 의미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롬 12:2)기 위해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교훈> 우리는 마음을 바꿀 수 없으며 하나님만이 그렇게 하실 수 있다. 성령을 통해 “살아 있고 권능이 있”는 당신의 말씀으로 우리 마음은 영적으로 변할 수 있다.
<부가설명> 우리는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심장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지? 구글에 물었더니 “마음은 특정 한 곳에 있지 않고 뇌 전체의 복잡한 신경망과 신체 각 기관, 특히 심장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며, 과학적으로는 뇌의 작용으로 보지만, 심리적으로는 심장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마음이 머무는 곳'은 뇌와 심장, 그리고 전신으로 확장됩니다. 현대 과학은 마음의 기능을 뇌의 신경세포 연결망으로 설명하고, 스트레스나 감정은 심장 박동, 혈압 등 신체 반응으로 나타나며, 이는 다시 뇌에 영향을 주어 감정을 유발하는 순환 구조를 밝히고 있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다. 좋은 설명인 것 같다. 그런데 성경은 생각이 일어나는 곳을 마음이라고 한 것 같다. 왜냐하면, 성경은 “마음의 생각”이라고 기록했기 때문이다(창6:5, 잠23:7, 사7:10, 눅1:51, 2:31, 히4:12). 생각이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라는 뜻이 아닌가? 결국 마음은 생각이 일어나는 뇌에 있는 것이고 그것이 전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래서 지킬만한 것 중에 마음을 지키라고 하신다. 생명의 근원이 거기서 나온다고 했다. 우리는 예수님 마음을 지녀야 한다. 그래야 그리스도인이다.
1월 21일(수) 그리스도의 마음
무하마드 알리는 “내가 최고다”라고 말했다. 세계 헤비급 복싱 챔피언에 오르기 6개월 전, 1963년 8월에는 ‘I Am the Greatest’(내가 최고다)라는 제목의 음반까지 발매했다. 알리는 의심할 여지없는 위대한 운동선수였지만, 그리스도의 마음을 원하는 이가 따라야 할 본보기는 아니다.
예수님은 전혀 죄가 없으셨다. 그분은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히 4:15)으셨으나 결코 죄를 짓지 않으셨고, 죄된 생각도 하지 않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서 5:8은 “하나님의 아들이었지만, 몸소 고난을 겪음으로써 아버지 하나님께 순종하는 법을 배우셨”(쉬운말)다고 말한다. 아버지 뜻에 대한 예수님의 순종은 항상 완전했다. 순종하기 어려웠던 순간이 분명 많았을 것이지만, 단 한 순간도 순종하기를 거부하신 적이 없으셨다.
많은 이들이 성경에서 가장 강력하고 아름다운 말씀으로 여기는 빌립보서 2:5-8을 읽어보라. 바울은 여기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무엇보다 이 구절에 나타난 원리를 우리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빌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답: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처럼 자아 희생적으로 섬기는 삶을 살도록 권고한다. 그분은 하나님이신데 사람이 되셨고 종으로 봉사하면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하나님이시며 그분과 동등이신 예수님은 단지 인간의 육신을 취하셨을 뿐만 아니라 “종”(doulou, 노예)이 되셔서, 우리 죄를 위한 희생 제물로 자신을 드리셨다! 바울은 다른 곳에서 그분이 “우리를 위해 저주가 되”(갈 3:13)셨다고 말한다. 우리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속주가 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그렇게 하기 위해 그분은 우리를 위한 저주가 되셔야 했다.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본문에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 곧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낮추고 희생하고자 하는 예수의 마음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겠는가?
예수께서는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11, 12)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여러 면에서 빌립보서 2:5-8에서 바울이 우리에게 전하는 말씀과도 일치한다.
바울은 여기서 “무엇을 하든지 이기심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빌 2:3, 우리말)라는 이전의 권면을 더욱 강력하고 생생한 표현으로 반복한다.
<교훈>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 구속주가 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우리를 위한 저주가 되심으로 다른 이를 위해 자신을 낮추고 희생하는 마음을 보여주셨다.
<부가설명> 빌립보 2:5~8의 내용은 기록된 사실 외에 다른 해석이 과연 필요한 것인지 모르겠다. 예수님이 하신 이런 일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라서 우리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이런 자아 희생적인 사랑과 봉사를 배우려는 간절한 마음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시는 봉사의 결과를 보시면서 희생하셨다. 그 봉사와 희생의 끝에 그는 인류를 구원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을 아셨다. 사람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길이 열릴 것이고 사람을 사망으로 이끈 흑암의 세력이 망하는 것을 보셨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 마음을 조금이라도 실천하는 것은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이끌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도록 헌신하는 것이다. 참된 사랑은 상대방에게 생명을 얻고 풍성하게 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 내에서 다른 사람을 상하게 하는 것은 전혀 예수님의 마음이 아니다. 우리는 생명을 얻고 더 풍성하게 얻도록 피차 봉사할 때 예수님 마음의 한 조각이라도 실천하는 것이 될 것이다.
1월 22일(목) 경건의 비밀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고전 8:2)라는 잘 알려진 말씀과 같이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아는 주제는 없다. 어떤 분야, 어떤 주제이든 우리는 항상 더 배워야 할 무언가가 있다. 하물며 신성과 성육신에 연관된 영원한 실체에 대해서는 얼마나 더 그러하겠는가?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신 놀라운 낮아지심을 자주 언급한다. 그것은 영원토록 살펴보아도 다 헤아릴 수 없는 주제이다.
로마서 8:3, 히브리서 2:14-18, 히브리서 4:15을 읽어보라. 예수님의 낮아지심과 인성을 취하신 일에는 어떤 특징이 있는가?
[롬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히2:14~18]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16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17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히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답: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셨으나, 우주에서, 지구에서 죄와 사망을 영원히 없애기 위하여 사람의 몸을 취하시고 그 몸에 죄와 사망을 정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사망이 되시고 부활하셔서 사망을 폐하시고 생명과 썩지 않을 것을 드러내셨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경건의 비밀이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성령의 역사(눅 1:35)를 통해 마리아의 태중에 있는 신인(divine-human being)이 되실 수 있었는가? 무한하고 영원하신 분이 어떻게 갑자기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인간이 되셨는지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경건의 비밀”(딤전 3:16)이라 부른 것의 핵심이다.
빌립보서 2장의 아름다운 찬송시에서 바울은 이같은 낮아지심을 어떤 측면에서 성경 어느 곳보다 더 자세히 설명한다.
•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빌 2:6). morphē(모르페, 모양, 형상)라는 단어는 예수님이 아버지와 동등하신 신성을 지니셨음을 가리킨다(요 1:1 참조).
• “자기를 비어”(빌 2:7). 예수님께서 진정한 인간이 되셔서 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으실 수 있도록 당신의 신적 특권을 비우신 신비는 참으로 놀랍다.
• “자기를 낮추시고”(빌 2:8). 인간의 본성을 취하심으로 예수님은 만물의 주권자에서 루시퍼가 추구하는 것과 정반대인 완전한 종의 신분으로 내려오셨다.
• “죽음, 곧 십자가에 죽으심”(빌 2:8). 예수님이 선택하신 것보다 더 치욕스러운 죽음의 길은 없었다.
아버지와의 “평화의 의논”(슥 6:13) 가운데 그분은 이것을 계획하셨고, 모세가 뱀을 들어 올리는 것(민 21:9, 요 3:14)을 통해 미리 예표 하셨으며, 그리하심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고후 5:21)이었다.
<교훈> 바울은 상상할 수 없는 낮아지심, 곧 무한하고 영원하신 존재가 어떻게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인간이 되셨는지를 “경건의 비밀”로 부르며 자세히 설명한다.
<부가설명> 예수님은 사람이 되셨다. 그러나 그분은 사람이 되시기 전에 이미 존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셨다. 그래서 그분은 지구와 지구의 인류와 우주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죄와 사망이 왕 노릇하는 세상에 죽으실 수 있는 사람의 몸을 취하여 오셨다. 그분이 사람의 몸을 가지지 않으면 죽으실 수 없다.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고전15:45) 예수님은 첫 아담에게 선고된 그 죽음을 대신 죽으셔야 하기 때문에 사람의 몸으로 오신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으셔서 아담에게 선고된 그 사망을 처리하셨다. 만일 사망하고 끝났다면 사망에게 삼킨 것이 되지 사망을 이긴 것이 안 된다. 사망을 확실히 처리하셨다는 증명이 부활이다(고전15:17~19). 그래서 사망이 이김에게 삼켜진 것이다(고전15:54, 고후5:4). 성경은 예수께서 사망을 폐하시고 생명과 썩지 않을 것을 드러내셨다고 선언했다(딤후1:10). 그래서 영세 전에 여호와 회의에서(렘23:18) 의논한(슥6:13) 그것을 성취하셨다. 이제 아담 자손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다(요5:24). 이렇게 하여 구원을 이루셨다. 십자가에서 구원이 완성된 것이 아니다. 부활하셔서 비로소 구원 사업이 이루어졌고 재림하셔서 새하늘 새땅이 이루어져서 구원은 완결이 된다.
1월 23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대대로 인간의 마음이라는 통로를 거쳐 내려온 모든 부성애, 사람들의 심령 속에 솟아난 모든 온정의 샘들은 하나님의 무한하고 다함없는 사랑과 비교하면 끝없는 대양에 대한 작은 시냇물에 불과하다. 그것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고, 붓으로도 묘사할 수 없다. 그대는 매일의 생애에서 그 사랑을 묵상할 수 있고, 그것을 이해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성경을 연구할 수 있다. 하늘 아버지의 사랑과 긍휼을 깨닫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주신 모든 능력과 재능을 동원하여 노력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것은 여전히 그 너머에 있는 무한한 사랑이다. 그대는 오랜 세월 동안 그 사랑을 연구할 수 있지만 세상을 위하여 아들을 내어주시고 죽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길이와 넓이와 깊이와 높이를 결코 완전히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영원조차도 그것을 결코 완전히 드러낼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연구하고 그리스도의 생애와 구속의 계획을 묵상할 때 우리는 이 위대한 주제들을 차츰 이해하게 될 것이다”(교회증언 5권, 740).
“우리가 모세처럼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훈련을 받을 때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교만해지거나, 자신을 높게 평가하는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이 학교에서 더 많이 배울수록 우리는 온유함과 겸손한 마음으로 더 자라게 될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배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최대한 활용하여, 우리가 썩을 몸에서 불멸의 삶으로 변화될 때, 우리가 얻은 것을 버려두지 않고 저편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구속 사업은 끝없는 영원의 시대를 통해, 우리의 연구 주제가 될 것이다”(원고 36, 1885).
함께하는 토의를 위하여
1. 당신은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 사랑의 실체를 경험해 보았는가? 그분의 사랑을 알고 경험하게 된 다양한 방법에 대해 교과 시간에 이야기해 보라.
*답: 각자 이야기해보자.
2. 예수께서 “사람들과 같이 되었”(빌 2:7)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로마서 8:3을 읽고 이 구절들을 서로 비교하며 토의해 보라.
*답: 당신께서 원하실 때(요10:17,18) 죽으실 수 있는 몸으로 오셨다는 뜻이다.
3. 당신의 교회는 연합하는 데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가? 문제가 어떤 것이든, “이기심이나 허영으로”(빌 2:3, 우리말) 하지 않으려는 겸손한 태도를 갖는 것이, 적어도 문제 해결을 시작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답: 자기를 낯주는 섬김의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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