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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과 감사하며 기도하는 이유(질문, 대답, 설명) 01/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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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6-01-02 13:26 조회1,2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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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과 감사하며 기도하는 이유

(1월 10일 안식일 / 일몰: 오후 5시 32분)

   

연구 범위: 빌 1:1-18, 고전 13:1-8, 렘 17:9, 골 1:1-12, 벧전 1:4, 시 119:105, 사 30:21

 

기억절: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 1:6).

 

바울은 의도적으로 그의 옥중서신을 인사와 감사의 말로 시작한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골 1:2, 3). 

바울처럼 우리도 감사할 것이 많다. 우리는 천사들조차 이해할 수 없는 심오한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의 선물도 마찬가지다. 그 평화는 하나님과의 화목과 하나님의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소망을 포함한다. 

인간적인 차원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감사함을 표현하고, 그들도 우리가 그들을 위해 하는 일에 감사하기를 바랄 수 있다. 부모는 자녀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며,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그들을 양육하면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려고 진정으로 희생한 것에 대해 부모에게 감사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우리는 많은 실수를 저지르며, 그것을 통해 배운다. 적어도 그래야 할 것이다. 

이번 주 우리는 기도 생활을 풍성하고 굳건하게 하는 빌립보서와 골로새서에 기록된 바울의 감사와 기도의 인사말을 살펴보려고 한다. 

 

학습 목표

깨닫기: 바울이 감사하는 이유는 교회가 은혜 가운데 교제하며 소망과 평화의 선물 가운데 거하기 때문이다. 

느끼기: 역경 속에서 그에게 감사가 넘치는 것은 영적 분별력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보기 때문이다. 

행하기: 말씀은 생명이기에 열매 맺을 것이며 성령의 역사를 따를 때 기쁨의 열매를 거둘 것이다. 

 

TMI 위로 

2. 빌립보 성도들을 향한 인사에 감사와 기쁨이 가득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빌 1:3) 

*답: 빌리보 교인들이 복음을 생활하고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3. 바울의 기도에 담긴 주제들은 그의 기도가 무엇을 위한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까?(빌 1:9) 

*답: 복음을 전하는 것과 그 복음대로 사람들이 생활하는 것이다.

4. 바울은 어떻게 낙심할 만한 시련 속에서도 다른 관점을 가질 수 있었습니까?(빌 1:12) 

*답: 복음은 어떤 경우든지 증거되고 열매 맺는 것을 믿고 알기 때문이다.

5. 많은 지역에서 복음의 열매가 나타나게 된 비결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골 1:6) 

*답: 복음이 열매를 맺었기 때문이다. 복음은 진정으로 받은 사람에게 생활로 열매를 보여준다.

6. 바울은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라고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 뜻을 알 수 있겠습니까?(골 1:10)

*답: 말씀을 따라 생활하려고 할 때 성령께서 말씀으로 깨닫게 하신다.

 

결론: 바울이 감사로 인사하는 것은 천사도 살피기 원하는 깊은 은혜와 사랑에서 나오는 소망과 평화의 선물 가운데 그들이 거하기 때문이다. 빌립보 성도들은 바울의 고난에 동참하며 복음 안에서 교제하였다. 그는 고난 가운데서 감사하며 영적 분별력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보았다. 골로새에 복음의 열매가 맺히게 된 것은 주의 말씀은 생명이며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타심을 보여주며 연합된 교회를 강조한다. 교회는 성령의 역사를 따라 자라며, 그때에 주님을 기쁘게 하는 열매를 맺을 것이다.  

 

1월 4일(일) 복음 안에서 교제함

 

빌립보서 1:3-8을 읽어보라. 바울은 무엇에 감사하는가? 그는 빌립보 성도들에게 어떤 확신을 주며, 그것은 왜 중요한가? 

[빌1:3~8]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5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7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답: 빌립보 성도들이 복음에 참여하여 충성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바울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다. 이런 사실을 그들에게 말함으로 그들의 믿음을 북돋우고 있다. 격려는 힘이 된다.

 

빌립보 교회를 세운 것이 바울이기에 그의 편지에는 그리스도인 교제의 따듯함이 배어 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사슬에 묶인 채 감옥에 갇혀 있지만, 바울은 교회와 구성원들을 마음에 품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으로”(빌 1:8, 우리말) 그들을 그리워했으며, 그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바울의 감사 기도는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예수님의 모습까지 생각하게 할 정도다. 

대제사장의 흉패에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열두 개의 보석이 있었다. 이는 그가 백성들을 위해 중보할 때 마음에 “자손들의 이름들을 지니”게(출 28:29) 한 것이다. 이보다 더욱 큰 의미에서 하늘 성소에서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아버지 앞에 당신의 백성의 이름을 간직하고 계신다. 

흥미롭게도 바울과 빌립보 성도들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강조하는 빌립보서 1:3의 표현은 모호하다. 이 구절은 일반적으로 바울이 기도할 때 그들을 기억한다고 번역되지만, 빌립보 성도들이 바울을 기억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이 구절은 그들이 공유하는 긴밀한 유대를 부각하며, 이는 “교제”(koinonia, 헬라어)라는 단어를 통해서도 강조된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 것처럼(빌 3:10), 빌립보 성도들도 바울의 고난에 “참여”(sunkoinōneō, 순코이노네오)했고, 바울의 사역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며 동참했다(빌 4:14, 15). 이러한 유대관계는 “첫날부터 이제까지”(빌 1:5) 지속되었기에, 바울이 그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쁨으로”(빌 1:4)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바울이 자신의 감옥에 갇힌 상황을 “복음을 변호하고 확증하는”(빌 1:7, 흠정역) 기회로 꽤나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그가 두 가지 법적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재판이 임박했음을 시사하지만, 동시에 바울이 군인들과 찾아온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음도 보여준다. 공격으로부터 복음을 변호하는 것(apologia, 헬라어)과 그 영원한 진리를 확증하는 것 모두 필수적이다. 바울은 자신의 미래보다 복음의 당위성을 입증하는 데 더 관심을 두는 듯하다. 살든지 죽든지, 바울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신뢰하는 모든 사람 안에서 시작하신 “선한 일”을 완성하실 것임을 확신한다(빌 1:6). 

 

<교훈> 바울이 예수의 고난에 참여한 것처럼 빌립보 성도들도 바울의 고난에 참여하며 지속적으로 복음 안에서 교제했기에 그의 인사에는 감사와 기쁨이 가득하다.   

<부가설명> 저자의 말대로 바울의 마음에 빌립보 교인들이 함께 있었고 빌립보 교인들의 마음에 바울이 함께 있었다. 대제사장의 흉배에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있다. 우리 주님의 마음에 모든 성도들이 있다. 진정한 성도들의 마음에는 예수님이 계신다. 이것을 예수님은 포도나무 비유로 나타내셨다. 예수님은 참 포도나요, 아버지 하나님은 그 농부이시고 우리는 그 포도나무의 가지들이다(요15:1~5). 그리스도인이 잠시라고 예수님 포도나무에서 떨어지면 곧 마르기 시작한다. 그때 다시 접붙일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포도나무에서 꺾이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바울은 빌리보 교인들에게 그들이 자기 마음에 있다는 표현으로 그들에게 용기를 주며 또한 자기도 용기를 얻은 것 같다. 다른 사람을 격려하는 것은 곧 자기를 격려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우리도 서로 격려하고 권고하며 함께 하나되어 하늘로 잘 걸어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다. 우리가 가지로 붙어있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착한 일이 형통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1월 5일(월) 바울의 기도 요청

  

내 필요, 바람, 나만을 위하는 자기중심적인 기도에 대해 어떤 목사는 그것은 “이기적인 작은 기도”라고 말했다. 매우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더 큰 것을 염두에 두시기 때문이다.

 

빌립보서 1:9-11에 기록된 바울의 기도를 읽어보라. 이 기도의 초점은 무엇이며, 바울은 어떤 중요한 요청을 드리고 있는가? 바울의 기도는 기도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빌1:9~11]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답: 예수님 안에서 사랑이 온전하여 져서 의의 열매를 풍성히 맺고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라는 것이다.

 

이 기도는 헬라어로 43단어에 불과하지만, 서신의 나머지 부분에서 자세히 펼쳐나갈 사랑, 지식, 분별, 진실함, 흠 없는 삶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의 등 바울의 모든 관심 주제를 담고 있다. 이 기도와 이전의 바울의 감사의 표현들의 바탕에는 전체로서의 교회에 대한 강조가 깔려 있다. 바울의 기도는 전적으로 타인을 향한 것으로, 교회 전체, 그리고 교회의 안녕을 위해 기도한다. 기도의 구성 요소들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사랑을 더 …풍성하게 하사” - 바울은 단지 더 많은 사랑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지식과 모든 판단”(빌 1:9, 흠정역)을 따라 풍성하기를 간구한다. 여기서 지식은 단순한 이지적인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과의 교제와 그분의 말씀 연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영적 통찰(엡 1:17, 엡 4:13, 딤전 2:4 참조)을 말한다. 

“분별하며” - 바울은 이를 “선한 것을 분별하며”(도덕적으로 해로운 것을 구별)  “진실하여 허물 없”게 할 수 있는 능력으로 설명한다(빌 1:10). 

“진실하여” - 이 헬라어 단어는 햇빛 아래서 판단 받는 것을 의미하며, 행동이 흠 없고 순수한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인이 하는 모든 일은 햇빛처럼 투명해야 한다"(엘렌 화잇, Reflecting Christ, 71). 

“흠이 없이” - 이는 걸림돌이 되지 않는 것, 곧 다른 사람의 믿음을 방해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의” - 바울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이 주제를 깊이 다루며, 빌립보서 3장에서도 더 자세히 설명한다. 우리 자신에게는 전혀 의로운 것이 없다.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 받은 의만 있을 뿐이다. 

 

<교훈> 바울의 기도와 감사는 전체로서의 교회를 강조한다. 바울의 기도는 전적으로 타인을 향한 것으로, 교회 전체를 위해 그리고 교회의 안녕을 위해 기도한다. 

 

<부가설명> 우리는 성경이 계시한 사랑의 실상을 깨달아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계시한다(요일4:8,16).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삶이 사랑으로 풍성해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는 삶을 살고 있다는 표가 된다. 고전13장은 사랑을 여러 표현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나타내고 있지만, 요한일서에는 사랑과 생명을 동일한 것이라고 계시했다.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요일3:14). 이 말씀을 주의 깊게 읽어보라. 사랑은 생명을 얻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자이지만,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는 자라고 했다. 다른 사람에게 생명의 위해를 끼치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상대에게 생명을 주고 풍성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진정으로 예수님의 생명을 얻었으면 그는 사랑을 나타낼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은 생명이시기 때문에 사랑이신 것이다. 

 

1월 6일(화)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빌립보 성도들이 바울의 투옥 소식을 들었을 때 낙담한 것은 당연했다. 그의 사역은 이제 크게 제한되어서 여행할 수 없고, 전도할 수 없으며, 회당을 찾아 예수가 메시아이심을 가르칠 수도 없게 되었다. 더 이상 교회를 세우는 것도 불가능했다. 빌립보 성도들은 에바브로디도를 보내 바울의 형편을 살피며, 그를 격려하고, 그의 육체적 필요를 돌보도록 했다. 

 

빌립보서 1:12-18을 읽어보라. 바울은 자신의 투옥을 어떻게 보았는가? 주어진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졌던 태도에서 어떤 교훈을 배울 수 있는가? 

[빌1:12~18]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13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14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15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16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17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18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답: 투옥이 복음 전파의 촉진제가 되었다고 기뻐했다.

 

바울이 보낸 회신은 빌립보의 신자들을 놀라게 했을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상황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영적 분별력은 자신의 투옥을 좋은 일로 볼 수 있게 했다. 투옥은 그의 사역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복음을 진전시키는 기회가”(빌 1:12, 흠정역) 되었다. 다른 사람은 사슬과 쇠창살만 보는 곳에서, 바울은 감옥을 지키는 로마 경비들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가능성 있는 영혼들로 보았다. 그는 또한 자신의 투옥이 다른 이들을 크게 고무시켜서 더 적극적이며, 복음을 전하려는 결심을 굳게 하고 결과에 대한 두려움 없이 그리스도를 위해 담대하게 말하게 하는 것을 알았다. 

상상하기 어려운 일인지 모르지만, 어떤 이는 바울의 투옥으로 이익을 얻으려 생각했다. 그들은 바울의 존재감이 약화되면 그들이 복음을 전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이 쏠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교회 안에서조차 드러나는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얼마나 강력하면서도 슬픈 예인가. 바울보다 훨씬 오래전에 예레미야가 말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렘 17:9). 

이들과 달리, 어떤 충실한 일꾼들은 다행히도 복음 전파에 더욱 열심을 냈다. 

그들은 바울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그가 믿음 때문에 겪는 고난을 보면서 그리스도를 더욱 신뢰하게 되었고, 주님을 위해 더욱 담대하게 일할 용기를 얻었다. 그것은 그들이 이전에는 두려워서 가지 못했던 곳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을 주었고, 전에는 침묵하던 상황에서 말하게 했으며, 더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게 만들었다. 

 

<교훈> 투옥은 위기였지만 영적 분별력은 감옥에서도 복음을 전할 기회를 보게 했고, 형제들이 두려움 없이 주를 위해 담대히 복음을 전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부가설명> 복음 전파 사업은 이 세상의 논리와 질서를 따르지 않는다. 복음은 그 자체로서 논리와 질서를 가지고 있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많은 핍박과 환난과 고통에서도 전파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어떤 저자는 순교자의 피는 복음의 씨앗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바울은 이런 믿음과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복음을 위하여 받는 고난을 고통으로 여기지 않고 기쁨으로 여겼다. 그렇지 않다면 감옥에서 편지를 쓰면서 기뻐하고 기뻐하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인은 현재의 이 세상이 살 곳이 아닌 것을 안다. 이 세상을 나그네로 살아가는데 단순한 나그네가 아니고 복음을 전하는 나그네다. 그들은 본향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인데 그 본향은 생명과 행복의 나라다. 나그네로 지나가는 이 세상은 사망과 고통의 나라다. 그런 나라에서 생명의 나라를 전파하는 것은 굉장한 특권이고 즐거움이고 사명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 스스로 그렇지 못해서 이 글을 쓰면서 두렵고 떨린다. 주님 도와주소서. 

 

1월 7일(수) 복음의 열매

 

바울이 골로새 성도들과 맺은 관계는 빌립보 성도들과의 관계와 달랐다. 그들은 바울이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이라고 말한 이들 중 하나였다(골 2:1).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했던 것처럼 그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항상”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확신을 준다. 

 

골로새서 1:3-8을 읽어보라.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세 가지는 어떤 것인가?

[골1:3~8]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2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3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5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6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7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8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알린 자니라.

*답: 1. 골로새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을 들었고, 2. 전에 진리의 말씀을 듣고 하늘에 소망을 쌓아뒀고, 3.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열매를 맺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다른 서신에서 언급한 세 가지 덕목, 곧 믿음, 소망, 사랑(고전 13:13, 살전 1:3, 살전 5:8 참조)을 함께 말한다. 바울이 이 덕목들을 골로새 교인들의 공로로 돌리지 않았음을 주목하라. 그가 이에 대해 아버지께 감사드리는 것은 야고보가 말한 대로 이것들은 우리가 아버지께로부터 받는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기 때문이다(약 1:17).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볼 때, 그 사랑은 우리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이끌고(엡 2:4–8),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게 한다. 베드로는 이것이 우리를 위해 “하늘에 쌓아 둔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쇠하지 않는 유업을 얻게 하”신 것이라고 설명한다(벧전 1:4, 우리말). 

바울은 또 이 복음이 “진리의 말씀”에 기초하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표현은 바울이 다른 곳에서 하나님의 영감 받은 그분의 말씀을 가리킬 때 사용한 것이다(고후 6:7, 딤후 2:15 참조). “사람의 말”과는 달리, 복음은 믿는 자들에게 “효력 있게” 역사하며(살전 2:13)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사 55:11). 그러므로 복음이 선포될 때, 하나님의 능력이 성령의 역사를 통해 듣는 자들의 마음에 나타나고 사람들은 그 역사에 응답한다. 복음은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에(빌 2:16) 열매를 맺는다.  

가장 놀라운 일은 아마 그토록 짧은 기간에 복음이 퍼져 나갔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지 30년이 지나지 않아 바울은 이미 복음이 “온 천하에” 퍼졌다고 말할 수 있었다(골 1:6). 

같은 장의 뒷부분에서 그는 복음이 “천하 만민에게 전파”되었다고 말한다(골 1:23). 로마 제국 전역에 연결된 도로망은 신속한 통신과 이동을 가능케 했으며, 이것이 바울의 서신들이 그토록 널리, 또 신속히 전파될 수 있었던 이유이다. 그러나 사람이 영적으로 거듭나고(약 1:18, 벧전 1:23)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는 것(고후 5:17)은 오직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교훈> 복음이 선포될 때, 하나님의 능력이 성령의 역사를 통해 듣는 자의 마음에 나타나고 사람은 그에 응답한다. 복음은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에 열매를 맺는다. 

 

<부가설명> 복음은 하나님의 생명을 사람들이 받을 수 있다는 것과 그 생명이 예수님을 통하여 세상에 주어졌다는 것이다. 이것을 전하는 것이 복음 전도다. 바울은 이 기별을 목숨이 다 하도록 전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11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12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딤후1:9~12).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사망을 폐하시고 부활하셔서 생명과 썩지 않는 것을 드러내셨다. 복음을 전함에 이 기별이 빠지면 복음을 제대로 전한 것이 아니다. 이 기별을 받아들이고 믿을 때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이 나의 것이 된다. 우리도 복음을 바르게 알고 믿고 전하기를 기대한다.

 

1월 8일(목) 기도의 능력

 

골로새서 1:9-12을 읽어보라. 바울은 기도 가운데 어떤 것을 구체적으로 간구하고 있는가?

[골1:9~12]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10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11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답: 9~12의 내용은 아주 구체적이다.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10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11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기도했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하게”(우리말) 되기를 기도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을 “지혜와 영적 깨달음”(골 1:9, 흠정역)이라고 설명한다. 지혜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그분의 뜻을 기꺼이 행하며(요 7:17), 자기의 명철을 의지하지 않을 때(잠 3:5)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종종 삶 속에서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마주한다. 우리가 기도하면서 찾을 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네 가지 주요 원천이 있다. 

1. 가장 중요한 지혜의 원천은 성경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2. 하나님께서는 대언의 영(계 12:17, 계 19:10)을 통해 마지막 때를 위한 특별한 지혜를 우리에게 주셨고 이는 엘렌 화잇의 저술을 통해 나타났다. 성경은 우리에게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라고 권면한다(대하 20:20). 

3.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은 그분께 문을 열어주시고 또, 닫아주시기를 요청함으로써(골 4:3 참조) 섭리적인 정황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4. 성령의 음성을 분별하는 법을 알게 될 때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신다. “너희가 우편으로 치우치든지 좌편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정로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 할 것이며”(사 30:21).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이 “주께 합당히 행”하기를 기도한다(골 1:10). 물론 누구도 그 본성이 주께 “합당”한 이는 없으나, 하나님은 그 은혜로 우리를 합당하게 여기시고 그분의 높은 부르심을 따라 행하도록 요청하신다(엡 4:1, 살전 2:12). 바울은 이 서신에서만 동사 “행하다” 또는 “행하였다”를 세 번 더 사용한다(골 2:6, 골 3:7, 골 4:5). 이는 하나님의 율법(출 18:20)에 따라 살고 행동함을 의미하며, 이는 오직 성령의 역사(겔 36:27)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바울은 또한 그들 그리고 오늘날 우리의 삶이 “모든 일에 주를 기쁘시게” 하기를 기도하면서 그렇게 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나열한다.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으며”(골 1:9, 10),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고”(골 1:10) 마지막으로 “감사”(골 1:12, 우리말)하는 것이 그 방법이다.  

 

<교훈> 바울은 우리가 주님의 뜻을 알고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주의 법에 따라 살고 행동하여 모든 일에 선한 열매를 맺고 자라며 주님을 기쁘게 하기를 기도한다. 

 

<부가설명> 성경에는 기도하는 공식이 기록되어 있다. 언젠가 이것을 말한 적이 있다. 그것은 1, 하늘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께(마6:9), 2, 예수님의 이름으로(요14:13,14), 3, 성령 안에서(엡6:18). 우리는 이 공식에 맞게 기도하는 것이 가장 성경적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 또는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방법대로 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마6:9)라고 하셨다. 그리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가르치셨다. 기록되 말씀대로 하는 것이 성경적이 아닌가? 그리고 무엇이든지 내 이르(예수님 이름)으로 구하라고 하셨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친히 간구하시는 것과 같다는 권위를 더하시는 것이다. 또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하셨다. 그것이 무슨 뜻인가? 요한은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5:14)라고 하여 성령 안에서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하나님의 뜻은 기록된 말씀에 있다. 그러므로 성령 안에서 구하는 것은 말씀의 뜻대로 구하는 것이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요6:63). 이 말씀으로 성경 말씀과 성령님의 일은 같은 것임을 계시하셨다. 바울은 이렇게 기도했을 것이다.

 

1월 9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분명한 계획을 세우지 못한다. 그들의 삶은 불안정하다. 그들은 일의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 알지 못하며 그것이 종종 그들을 불안과 초초함에 사로잡히게 한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은 순례자의 삶임을 기억하자. 우리에게는 자신의 생애를 위하여 계획을 세울 지혜가 없다. 우리의 미래를 설계하는 것은 우리의 일이 아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히 11:8).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사시는 동안 자신을 위한 계획을 세우지 않으셨다. 그분은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받아들이셨고, 아버지께서는 날마다 당신의 계획을 펼쳐 보이셨다. 그와 같이 우리도 우리의 삶이 그분의 뜻을 그대로 이룰 수 있도록 하나님을 의지하여야 한다. 우리가 그분께 우리의 길을 맡길 때, 그분은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해 주실 것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빛나는 미래를 계획하다가 완전히 실패한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계획하시도록 하라. 어린아이처럼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그분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라(삼상 2:9). 하나님은 만일 당신의 자녀들이 처음부터 끝까지를 볼 수 있고, 하나님과 함께 동역자로서 성취하고 있는 목적의 영광을 분별할 수 있다면, 그들이 인도해 달라고 선택하였을 길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그들을 인도하지 않으신다”(치료봉사, 478).

 

함께하는 토의를 위하여 

2. 치료봉사 인용문의 마지막 문장을 깊이 생각해 보라. 이것은 매우 강력한 믿음의 고백이다. 어떻게 하면 그토록 깊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울 수 있겠는가?

*답: 우리는 우리의 길을 기록한 말씀을 따라 성령님께 맡기는 믿음의 필요하다.

3. 골로새서 1:6, 23을 바탕으로 다음 인용문에 대해 논의해 보라. “불신과 불평과 반역의 정신이 40년 동안 고대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그와 똑같은 죄들이 현대 이스라엘을 하늘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지체시키고 있다. 두 경우 모두 하나님의 약속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를 죄악과 슬픔의 세상에 이처럼 오랫동안 머물게 하고 있는 것은 주님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백성들 사이에 존재하는 불신과 세속주의와 미지근한 상태와 분쟁이다”(복음전도, 677).

만일 그리스도의 교회가 주께서 명하신 바와 같이 맡겨진 사명을 이루었다면 온 세계는 벌써 경고를 받았을 것이며 우리 주 예수께서는 능력과 큰 영광으로 이 세상에 오셨을 것이다”(시대의 소망, 633). 오늘날 우리는 어떤 면에서 같은 잘못을 범할 수 있는가? 

*답: 교회 내에 직무에 대한 선망과 권위주의가 자리를 잡고 있고 세속적 지식과 학위가 자리잡고 있다. 말씀은 뒤로 밀려나고 세상 철학과 학문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바울이 배설물로 버린 것을 교회 다시 주워담으려고 애쓰고 있다. 이 정신이 사라지지 않으면 이 교회 장래는 희망이 없다(골2:8,19~22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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