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교과토의】ㅣ2026ㅣ1기ㅣ2과 감사하며 기도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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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넓은마음 작성일25-12-31 22:06 조회27회 댓글1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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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진님의 댓글
이광진 작성일
영감적인 교과해설에 늘 도움을 받고 있는 목사입니다.
그런데 목회윤리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구분해서 생각할 것이 있다고 봅니다. 먼저 전제해야 할 것은 바울과 그의 교회들과 오늘날 목회자들과 그의 교회는 그 관계가 다르다는 점입니다. 바울이 계속 교제하고 있는 교회들은 바울이 직접 개척했거나 그의 제자들이 개척했기에 바울은 지속적인 목회적 관심과 돌봄의 필요성을 느낀 것입니다. 각 교회의 성도들도 바울을 자기들의 영적인 지도자로 생각했을 테고요.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이미 존재해왔고 다른 지도자가 상주했던 교회로 인사이동을 하는 상황입니다. 그런 경우 이미 떠난 교회에 새로 부임한 후임이 그 교회의 새로운 영적 지도자로 세움을 입었기에 전임 목회자는 그 교회에 대한 목회적 관심과 돌봄은 중단하는 게 교회간 질서를 유지하는 길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전임 목회자와 성도들간에 교제를 중단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다만 교제에도 목회적인 관계로까지 선을 넘지는 않도록 하고 후임과 그 교회 성도들간의 관계를 약화시키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는 게 윤리적인 태도이겠지요.
이것은 개 교회 안의 부서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각 부서는 그 부서장의 책임하에 움직여야지 다른 부서장이 간섭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그것이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것과 상충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런 선을 지키지 않는다면 각 교회나 교회들 간의 질서는 무너지고 선교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바울은 나름대로 목회윤리를 정하였고 그 선을 지키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롬 15:20)
또한, 교회에 문서화되지 않은 것은 성서적이라고 볼 수 없다거나 장로들의 유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것은 성문화를 할 수 없을 만큼 당연시되는 문제이거나 아직 성문화하기에는 좀 애매하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문법이 아니가고 해서 무시해버리는 것 또한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봅니다. 소위 불문법이라는 것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