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13. 오늘 선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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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광진 작성일25-12-19 13:48 조회49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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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안교소그룹의 TMI나눔 :
▣연구 범위 ∥ 수 24:; 창 12:7; 신 17:19; 신 5:6; 왕상 11:2, 4, 9; 딤후 4:7, 8.
▣기억절 ∥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수 24:15).
▣핵심 ∥ 이스라엘은 세겜에서 하나님과 조상들 사이의 언약을 갱신하는데,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든지 우상을 섬기든지 스스로 선택해야 했다. 하나님께 충성하려면 우상을 버려야 했다.
*핵심어 : 언약, 선택
▣도입 질문 : 바른 선택을 위해 필요한 요소들은 무엇이 있을까?
⇒
▣요일별 고찰
일. <너희가 거기 있었다> 1. 여호수아는 왜 지도자들을 세겜에 모이도록 했을까?(수 24:1)
⇒언약을 회상할 수 있는 장소
「세겜은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도착했을 때 제단을 쌓은 곳이며, 하나님께서 그에게 처음으로 땅의 약속을 주신 곳이다(창 12:6, 7). 이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 성취된 때에, 이스라엘은 첫 번째 약속이 주어진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과의 언약을 갱신한다. 여호수아의 호소는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라고 말한 야곱의 말을 기억나게 한다(수 24:23, 창 35:2–4 비교). 이 일이 진행되는 장소 자체가 다른 모든 “신들”을 거부하고 여호와께만 온전히 충성을 바치라는 부르심을 말해준다.」
2. 수 24:2~13에 등장하는 지도자들은 출애굽을 경험했을까?
⇒경험한 사람도 있었고 못한 사람도 있었다.
6~7에서 하나님은 “너희의 조상들”을 자신이 출애굽시켰다고 하는 동시에, 그 현장을 “너희의 눈이 보았”다고 말씀하신다. 이는 출애굽에 대해 어떤 이들은 목격하지 못하고 어떤 이들은 목격했음을 보여주는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 중에 직접 목격하지 못한 자들이라도 목격한 것이나 마찬가지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들은 조상들을 통해서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얘기를 듣고 교훈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여기에서 특히 출애굽을 강조하심은 그것이 이스라엘의 역사에 중대한 분기점이 되는 사건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출애굽을 비롯하여 가나안에 정착하기까지 모든 구원의 역사를 내가 이루었다고 반복적으로 강조하신다. 물론 그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개입하시지 않았다면 그들이 어떤 노력을 했을지라도 구원의 역사는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모든 일은 저들에게 자만심의 근거가 될 수 없고, 오히려 겸손하게 하나님을 섬겨야할 확실한 이유가 되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이러한 사실을 전제로 그들의 조상들과 맺었던 언약을 그들과 갱신하려고 한다. 출애굽이 조상들에게만 해당하는 역사가 아니고 그들에게도 살아있는 역사이듯이, 그들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도 그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고, 그것은 또한 오늘날 영적 이스라엘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월.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무엇을 요청했는가?(수 24:14~15)
⇒여호와를 경외하고 섬기라
경외하라는 단어의 원어는 “두려워하다”라는 뜻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끊임없는 불안감으로 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거룩함, 위대함에 비해 나의 죗됨, 연약함을 깨닫는 데서 오는 경탄과 존경심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하나님을 섬김이 시작된다.
여호수아는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하나님을 섬기라고 한다. 「이 말은 하나님을 섬기되 다른 생각 없이 오직 하나님만을 향하는 순수한 마음과, 또한 어떠한 유혹에도 견딜 수 있는 견고한 마음가짐으로 섬기라는 의미이다.」(만나주석)
이러한 것은 사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보여주신 품성의 특성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완악함과 끊임없는 반역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사랑과 신실함으로 그들을 인도하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신실하심을 인정한다면 우리도 그렇게 하나님을 섬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강요할 일이 아니다. 조상들이 하나님을 섬겼으니 너희도 섬겨야 한다는 논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여호수아는 그들이 스스로 우상과 하나님을 비교해 보고 더 좋은 편을 택하라고 호소한다. 택하라는 것은 이쪽저쪽 왔다갔다 하지 말고 확실한 결단을 내리라는 것이다. 양다리 신앙이 편리할 것 같지만, 결국은 모두로부터 버림받는 불행을 당하게 된다. 또한 그런 신앙에는 마음의 평안이 없다. 선택의 자유는 개인의 고유권한이지만,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기억하고 지혜롭게 선택해야 한다.
화. <섬김의 자유> 여호수아의 호소에 대한 백성들의 대답, 그에 따른 여호수의 반응은?(수 24:16~21)
⇒백성들은 여호와만 섬기겠다고 했으나 여호수아는 부정적 반응을 보임.
백성들은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회상시켜주는 여호수아의 고별 설교에 매우 감격하고 한껏 고양되었을 것이다. 그러한 분위기에서 대개는 하나님께 충성 맹세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들은 여호수아의 칭찬을 기대하며 자랑스럽게 충성을 맹세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너희가 하나님을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이라며 찬물을 끼얹는 듯한 반응을 보인다. 이것은 그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거나 미덥지 못하다는 뜻일까? 오히려 그것은 그들의 연약성을 인식함에서 오는 그들에 대한 연민의 표현이다. 지금 하나님께 충성하겠다는 그들의 말이 진심일지라도 그들은 자신들의 죗된 본성과 연약함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고 순종하는 것은 나의 의지와 결심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믿음은 자신을 부인하고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이다. 그것을 잊어버릴 때 베드로처럼 주님을 부인하는 지경에까지 이를 수 있다.
「이스라엘은 사람이 자신의 힘만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언약의 조항을 기계적으로 준수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시는 주님과 맺는 인격적인 관계를 통해 이루어진다(출 20:1, 2; 신 5:6, 7 참조).」
수. <우상 숭배의 위험>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상을 버리라고 거듭 호소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수 24:22–24)
⇒인간은 본성적으로 하나님 보다 다른 것을 사랑하기에
우상은 본질적으로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무엇이며, 그 기저에는 이기적 욕망, 자기애가 깔려있다. 인간의 죗된 본성은 자기 중심적이이서 이타적인 하나님을 싫어한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본 후에도 본성은 자꾸 자기만족을 추구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는 지속적이고 의식적인 결단이 필요하다. 여호수아는 “너희의 마음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향하라”고 했는데, 향하라는 말은 “뻗다, 기울이다, 굽히다”라는 뜻으로, 하나님이 몸을 굽혀 우리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는 데에도 사용되었다.(왕하 19:16, 시 31:2~3, 단 9:18) 우리가 안전한 길은 하나님께 마음을 뻗어 연결되고 그분의 말씀에 늘 귀를 기울이는 데 있다.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신 것은 생명 없는 규칙을 기계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다. 언약은 주님과 맺는 살아있는 관계에 관한 것이며, 규정만으로 그것을 온전히 나타낼 수 없다. 이스라엘의 종교는 결코 율법주의적인 것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믿음과 사랑 안에서 거룩하고 자비로우신 구주와 나누는 끊임없는 교류였다.」
목. <성공적인 마지막> 여호수아서는 어떻게 종결되는가?(수 24:29~33)
⇒세 인물의 장례와 여호수아를 아는 자들의 충성
여호수아는 전사와 지도자로서의 파란만장한 삶을 마치고 약속의 땅에 장사되었다. 대제사장 엘르아살도 그 때에 죽어 그곳에 장사되었고, 그들의 조상 요셉의 뼈도 그의 소원대로 그곳에 묻혔다. 이는 이스라엘이 더 이상 유랑민이나 노예로서가 아니라 자유인으로서 그토록 갈망하던 약속의 땅에 영구 정착하여 안식을 누리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위대한 역사를 경험한 여호수아와 가까운 세대들은 여호와를 잘 섬겼다. 여호수아서의 끝은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해피엔딩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 이후 세대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선택에 따라 세드엔딩이 될 수도 있고 해피엔딩이 될 수도 있다.
▣적용 : 나의 삶이나 사역이 해피엔딩이 되려면 어떤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