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과 -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이봉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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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5-12-14 21:05 조회221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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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과 하나님은 신실(信實)하시다.
(12월 20일 (안) / 일몰: 오후 5:16분)
<개요(槪要)> : <하나님은 신실(信實)하시다>
1. 여호수아의 마지막 연설(여호수아 23–24장)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분명히 증언하고,
○.그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결정하도록 촉구한다.
그 중심 메시지는 한 가지이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하신 분>”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다>의 영적교훈(靈的敎訓)
① 하나님은 약속을 하나도 남김없이 이루시는 분이시다
∘. 가나안 정복과 기업 분배는 하나님의 약속 성취이다(수 21:43~45, 23:14).
∘. 이스라엘의 승리는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의 결과이다.
∘. 선한 말씀뿐 아니라 경고의 말씀도 동일하게 이루신다.
☞. <신실하심> = 반드시 성취(成就)하심
② <하나님은 과거·현재·미래에 동일하게 신실하시다.>
∘. 여호수아 24장은 아브라함부터 현재까지의 하나님의 역사를 되돌아본다.
∘. 하나님은 택하시고, 인도하시고, 싸우시고, 공급하신다.
∘.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며, 언약을 잊지 않으신다(딤후 2:13).
☞. <신실하심> = 변(變)하지 않으심
③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인간의 선택을 요구한다.>
∘. “오늘날 너희가 섬길 자를 택하라”(수 24:15).
∘. 하나님만이 경배받기에 합당하시기에 타협 없는 선택이 필요하다.
∘. 신실하신 하나님 앞에서 중립은 없다.
☞. <신실하심>은 결단(決斷)을 요구한다..
④ <하나님은 사랑으로 언약을 주시지만, 공의로 심판하신다.>
∘. 순종에는 복이, 배반에는 진노가 따른다. (수 23:15–16).
∘. 이는 변덕이 아니라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신 공의이다.
∘. 죄를 묵과하지 않으시는 것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다(계 14:10, 19).
○. 신실하심 = 사랑과 공의(公義)의 일관성(一貫性)
⑤ <하나님과의 관계는 무거운 짐이 아니라 사랑의 관계이다.>
∘. “여호와를 사랑하라”(수 23:11, 신 6:5).
∘. 하나님께 붙어사는 삶은 강요가 아니라 사랑의 응답이다.
∘. 신실하신 하나님은 백성이 자발적으로 그분께 돌아오기를 원하신다.
☞. <신실하심>은 사랑의 관계(關係)로 우리를 부르신다..
※. <핵심 한 문장>
하나님은 약속(約束)하신 말씀을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하신 분이시며, 그 신실하심 앞에서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선택(選擇)하고 사랑으로 순종해야 한다.
(12월 14일) (일) <모두 이루어졌다>
◉. <영적교훈(靈的敎訓)>
1. 하나님은 약속(約束)을 하나도 남김없이 이루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조상(祖上)들에게 맹세하신 땅을 “온전히” 주셨다. (수 21:43).
∘.원수(怨讐)들을 모두 이기게 하시고 안식(安息)을 주셨다. (수 21:44).
∘.여호와의 선(善)한 말씀이 하나도 남음 없이 다 응하였다. (수 21:45).
☞. <하나님의 말씀은 부분적이 아니라 완전하게 성취(成就)된다.>
2. 모든 성취(成就)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며 인간의 공로(功勞)는 없다.
∘.“주셨다”, “넘겨주셨다”, “이루셨다”라는 표현이 반복(反復)된다.
∘.이스라엘은 승리와 기업을 자기 힘이나 전략(戰略)으로 얻지 않았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자랑할 수 없다.
☞. <구원(救援)과 승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恩惠)이다.>
3.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이스라엘 역사(歷史)뿐 아니라 우리의 구원(救援)에 적용된다.
∘.가나안 정복(征服)은 구원(救援)의 모형이다.
∘.우리가 구원(救援)받은 것도 행위가 아니라 은혜로 받은 선물이다. (엡 2:8~9).
∘.하나님은 구원(救援)의 약속(約束)도 반드시 성취(成就)하신다.
☞. <하나님은 구원(救援)에 있어서도 “모두 이루시는” 분이시다.>
4. 인간이 신실(信實)하지 못해도 하나님은 항상 신실하시다.
∘.우리는 연약하고 실패(失敗)할 수 있으나 하나님은 변(變)하지 않으신다. (딤후 2:13).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과 성품을 부인(否認)하실 수 없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우리의 구원(救援)의 기초(基礎)이다.
☞. <우리의 소망(所望)은 우리의 신실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있다.>
※. <한 문장 정리(定理)>
“모두 이루어졌다”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救援)과 은혜를 인간의 공로 없이 완전히 성취하신 신실하신 분이심을 선포하는 고백이다.
(12월 15일) (월) <끊임없이 의지(依支)하는 삶>
※. <영적교훈(靈的敎訓) 요약>
1. 승리의 근원은 항상 하나님이시다.
∘.가나안 정복은 이스라엘의 군사력(軍事力)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셨기 때문이다. (수 23:3, 10).
∘.여호수아는 자신의 노쇠(老衰)함을 강조하며,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시선(視線)을 두게 한다.
이미 얻은 땅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
☞. 승리의 주체는 언제나 하나님이시다.
2.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계속적인 의지’를 요구한다..
∘.땅은 이미 주어졌지만, 아직 정복해야 할 민족들이 남아 있다. (수 23:4~5).
∘.승리는 자동적으로 유지되지 않으며, 말씀에 대한 지속적인 순종과 의지 속에서 누려진다.
∘.과거의 승리는 미래의 순종을 대신에 할 수 없다.
☞. 믿음은 과거의 경험이 아니라 현재의 의지이다.
3. 이스라엘의 전쟁(戰爭)은 오늘날 성도(聖徒)의 영적전쟁(靈的戰爭)을 예표(豫表) 한다..
∘.한 사람이 천 명을 쫓는 승리는 하나님의 개입 결과이다. (수 23:10).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이미 권세를 이기셨다. (골 2:15).
∘.그러나 성도는 여전히 영적 싸움 속에서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고후 10:3~5, 엡 6:11~18).
☞. 승리는 이미 이루어졌으나, 싸움은 계속된다.
4. 영적승리(靈的勝利)는 육신(肉身)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니라 영적인 권세와의 싸움이다.
∘.하나님은 성령, 말씀, 기도라는 영적 무기를 주셨다.
∘.승리하는 삶은 자기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 의존의 삶이다.
☞. 끊임없이 의지할 때 승리가 가능하다.
(Q)~1. (여호수아 23:1~5). 여호수아의 고별사(告別辭) 서론(緖論)의 주요 초점(焦點)은 무엇인가?
(A)~1. <(여호수아 23:1~5)> 여호수아의 고별사 서론의 주요 초점은 무엇인가?
(초점(焦點)은 ‘이스라엘의 승리는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싸우시고 이루신 결과’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는 데 있다.
∘.여호수아는 자신이 늙고 쇠하였음을 두 번 강조하며, 지도자의 초점을 자기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돌린다.
∘.가나안 정복은 이스라엘의 능력이나 군사 전략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싸우셨기 때문에 가능했다(23:3).
∘.이미 멸한 나라들과 아직 남아 있는 나라들 모두에 대해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일하실 분임을 분명히 한다(23:4~5).
☞. <결론(結論)>
여호수아의 고별사 서론은 과거의 승리를 회고하며, 앞으로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계속 의지해야 함을 강조하는 데 초점이 있다.
※. <여호수아의 고별사 서론의 주요 초점은 무엇인가?>
∘.(초점(焦點)은 ‘이스라엘의 승리는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싸우시고 이루신 결과’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는 데 있다.
∘.여호수아는 자신이 늙고 쇠하였음을 두 번 강조하며, 지도자의 초점을 자기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돌린다.
∘.가나안 정복은 이스라엘의 능력이나 군사 전략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싸우셨기 때문에 가능했다(23:3).
∘.이미 멸한 나라들과 아직 남아 있는 나라들 모두에 대해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일하실 분임을 분명히 한다(23:4~5).
☞. <결론(結論)>
여호수아의 고별사 서론은 과거의 승리를 회고하며, 앞으로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계속 의지해야 함을 강조하는 데 초점이 있다.
(Q)~ 여호수아의 지도하에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정복한 방식과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승리하는 영적 삶을 사는 방식 사이에 어떤 유사점이 있는가? (여호수아 23:10, 골로새서 2:15, 고린도후서 10:3~5, 에베소서 6:11~18 참조)
(A)~2. 가나안 정복과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영적 승리의 삶의 유사점은 무엇인가?
∘.유사점의 핵심은 ‘승리는 이미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졌으나, 그것을 누리는 삶은 계속적인 믿음과 의지 속에서 이루어진다.’라는 점이다.
① 승리는 하나님이 이미 이루셨다.
이스라엘 :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싸우셨기 때문이다(수 23:10).
그리스도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이미 이기셨다(골 2:15).
☞. 승리의 기초는 인간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결정적 개입이다.
② 싸움은 육적(肉的)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能力)으로 치러진다..
이스라엘의 승리는 군사력의 우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개입 결과였다.
그리스도인의 싸움도 혈과 육이 아니라 영적 권세와의 싸움이다(고후 10:3~5, 엡 6:12).
☞. 승리는 영적인 방식으로만 가능하다.
③ 지속적(持續的)인 의지(依支)와 순종이 필요하다
가나안은 이미 주어졌지만, 아직 정복해야 할 땅이 남아 있었다.
그리스도인은 이미 구원받았지만 매일 영적 전투 속에서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 이미 얻은 승리를 끊임없이 의지하며 살아가야 한다.
※. <요약(要約)>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과 그리스도인의 영적 승리는 모두 하나님이 이미 이루신 승리를 날마다 믿음으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삶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 <한 문장 정리(文章定理)>
‘끊임없이 의지하는 삶’이란, 이미 승리를 주신 하나님을 날마다 신뢰하며 성령의 능력으로 영적 싸움을 감당하는 삶이다.
(12월 16일) (화) <명확(明確)한 경계(警戒)>
※. <영적교훈(靈的敎訓) 요약>
1. 이스라엘의 싸움은 군사적전쟁(軍事的戰爭)이 아니라 영적전쟁(靈的戰爭)이었다
∘.여호수아는 모세에게 주신 말씀을 반복하며(여호수아 1:7~8), 율법에 대한 순종이 승패를 결정한다고 강조한다.
∘.진짜 위험은 남은 민족들의 무력이 아니라 그들의 사상·가치관·신앙이었다.
∘.하나님께 대한 충성은 전쟁의 핵심이었다.
☞. 영적 싸움에는 영적 경계가 필요하다.
2. 여호수아가 강경(強硬)한 태도를 취한 이유는 우상 숭배의 위험 때문이었다
∘.이방 신들의 이름을 부르거나 맹세하는 행위는 그 신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작은 타협은 결국 우상 숭배와 배교로 이어진다. (삿 2:11~13).
∘.친근함은 신앙을 잠식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 타협은 신앙을 무너뜨리는 시작점이다.
3. 통혼금지(通婚禁止)는 민족 문제가 아니라 영적순결(靈的純潔)의 문제였다
∘.목적은 인종적 순수성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 보존이었다.
∘.통혼은 우상 숭배를 가정 안으로 들이는 결과를 낳았다.
∘.솔로몬의 실패는 그 위험을 분명히 보여준다. (왕상 11:1~8).
☞. 신앙의 경계가 무너지면 삶 전체가 무너진다.
4. 하나님의 백성은 분명한 정체성과 선택을 가져야 한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수 23:6)는 명령은 분명한 방향성을 요구한다.
∘.하나님께 가까이함은 중립이 아니라 배타적 헌신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도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고후 6:14).
☞. 명확한 경계는 배제가 아니라 믿음을 지키는 울타리이다.
(Q)~1. 여호수아가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에 대해 그토록 강경한 입장을 취한 이유는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여호수아 23:6~8, 12~13절)
(A)~1. <여호수아가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에 대해 그토록 강경한 입장을 취한 이유는,)
○. 이스라엘이 직면한 가장 큰 위험이 군사적 위협이 아니라 영적 타협과 우상 숭배였기 때문이다.
※.<핵심정리(核心定理)> (여호수아 23:6~8, 12~13)
⑴..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명령은(23:6)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 순종을 요구한다.
∘.주변 민족과의 친밀한 관계는 말씀에서 점점 멀어지게 만든다.
⑵..우상 숭배(偶像崇拜)로 빠질 위험이 매우 크기 때문에
∘.이방 신(異邦 神)들의 이름을 부르거나, 맹세하거나, 섬기는 행위는 그 신(神)들의 권위와 능력을 인정하는 배교의 시작이다. (수 23:7).
∘.작은 종교적 타협이 결국 하나님을 떠나게 한다.
⑶..영적정체성(靈的正體性)이 무너질 것을 경고(警告)하기 위해
∘.남은 민족들과의 통혼과 교류는(수 23:12)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답지 못하게 만든다.
∘.이는 결국 올무와 덫이 되어 멸망으로 이어진다. (수 23:13).
⑷. 싸움의 본질이 영적전쟁(靈的戰爭)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과제는 민족 보존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는 영적 싸움이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물리적 평화보다 영적 순결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 <한 문장요약>
∘.여호수아가 강경한 태도를 취한 이유는, 주변 민족과의 타협이 이스라엘을 우상 숭배(偶像崇拜)로 이끌어 영적정체성(靈的正體性)과 언약을 무너뜨릴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 <한 문장 정리(文章定理)>
‘명확한 경계’란,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영적 정체성과 순결을 지키는 삶이다.
(12월 17일) (수) <여호와의 진노(震怒)>
※. <영적교훈(靈的敎訓) 요약>
1.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복의 약속뿐 아니라 경고의 말씀에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하나님은 선한 말씀을 모두 이루신 것처럼(수 21:45),
∘.불길한 말씀(경고)도 반드시 이루신다. (수 23:15).
∘.언약의 복과 언약의 저주는 모두 하나님의 신실하심의 결과이다.
☞.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심판에서도 변하지 않는다.
2. 여호와의 진노는 언약을 깨뜨린 데 대한 공의로운 반응이다
∘.우상 숭배와 언약 파기는 여호와의 진노를 불러온다. (수 23:16).
∘.이스라엘은 이미 광야와 가나안에서 그 결과를 경험했다. (민 11:33).
∘.선택받은 백성이라도 죄 앞에서는 예외가 없다.
☞. 특권은 심판을 면제해 주지 않는다.
3. 하나님은 온 땅의 의로우신 심판자이시다
∘.가나안 족속을 심판하신 하나님은 동일하게 불순종한 이스라엘도 심판하실 수 있다.
∘.하나님은 죄가 발견되는 곳마다 공의로 심판하신다. (대하 36:16).
∘.요한 계시는 최종적인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보여준다. (계14–15장).
☞.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동시에 의로우신 재판장이시다.
4. 하나님의 진노는 사랑과 모순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진노는 감정적 분노가 아니라 거룩함과 정의에서 나오는 의로운 반응이다.
∘.죄를 미워하시기에 하나님은 진노하시며 그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에서 건짐을 받는다. (롬 5:10).
☞. 십자가는 하나님의 진노와 사랑이 만나는 자리이다.
5. 미래는 과거의 은혜가 아니라 현재의 선택에 달려있다
∘.과거의 승리와 축복은 미래의 순종을 보장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백성은 날마다 언약에 신실한 선택을 해야 한다.
☞. 오늘의 순종이 내일의 운명을 결정한다.
※. <한 문장 정리(文章定理)>
여호와의 진노는 변덕스러운 분노가 아니라, 죄를 반드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공의를 드러내는 신실한 언약의 경고이다.
(Q)~1. (여호수아 23:15~16)과 성경의 다른 곳에서 묘사된 하나님의 진노와 응보적 정의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민수기 11:33; 역대하 36:16; 요한계시록 14:10, 19; 요한계시록 15:1 참조)
(A)~1.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진노(震怒)는 감정적(感情的) 분노(憤怒)가 아니라, 언약을 거부한 죄에 대해 거룩하고 공의(公義)롭게 대응하시는 하나님의 의(義)로운 심판(審判)이다.>
1.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서 나온다..
∘.하나님은 선한 약속을 이루신 것처럼 경고의 말씀도 반드시 이루신다(수 23:15).
∘.복과 심판은 모두 언약에 기초한 하나님의 일관된 신실하심이다.
∘.하나님은 말씀을 상황에 따라 바꾸지 않으신다.
☞. 진노는 변덕이 아니라 신실함의 표현이다.
2. 하나님의 진노는 죄에 대한 공의로운 반응이다
∘.민수기 11:33에서 보듯, 진노는 반복적인 불순종과 탐욕에 대한 응답이었다.
∘.역대하 36:16은 진노가 오랜 인내 끝에 임한 최종적 심판임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죄를 무시하거나 묵과하지 않으신다.
☞. 응보적 정의는 죄의 심각성을 드러낸다.
3. 하나님의 진노는 개인과 민족, 그리고 역사 전체를 향한다..
∘.이스라엘뿐 아니라 가나안 족속도 동일한 기준 아래 심판받았다.
∘.요한 계시는 하나님의 진노가 역사 마지막에 보편적으로 완성될 심판임을 선포한다. (계 14:10, 19; 15:1).
∘.하나님은 온 땅의 심판자이시다.
☞. 하나님의 정의는 부분적이 아니라 우주적이다.
4. 하나님의 진노는 사랑과 모순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죄를 미워하시며 죄를 방치하지 않으신다.
∘.진노가 없다면, 하나님의 사랑은 정의를 잃게 된다.
∘.하나님은 진노를 피할 길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비하셨다.
☞. 십자가는 진노를 없앤 것이 아니라 대신 감당하신 사건이다.
5. 하나님의 진노는 경고이자 회개의 기회이다..
∘.심판의 목적은 멸망 자체가 아니라 회복과 돌이킴이다.
∘.그러나 회개를 끝까지 거부할 때 진노는 최종적으로 임한다(대하 36:16).
☞. 진노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의 마지막 호소이다.
※. <한 문장요약(文章要約)>
∘.하나님의 진노와 응보적정의(應報的定義)는 감정적(感情的) 분노(憤怒)가 아니라, 죄를 반드시 심판하시되 회개(悔改)의 길을 끝까지 열어 두시는 하나님의 거룩하고 신실한 공의(公義)이다.
(12월 18일) (목) <하나님께 붙어라>
※. <영적교훈(靈的敎訓) 요점>
1. 하나님께 붙는 삶의 의미
∘.‘붙다’(다바크, dabaq)는 결혼, 충성, 친밀함을 나타내는 단어로, 하나님께 대한 지속적이고 의식적인 충성과 헌신적 사랑을 의미한다.
∘.단순히 ‘하지 말라’는 금지 명령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속에서 능동적으로 사랑하고 순종하는 삶을 요구한다.
2. 충성(忠誠)과 순종의 중요성
∘.언약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지속적으로 충성하고, 주님과 관계를 밀착시켜야 한다.
∘.사랑(아하바, ahabah)은 의식적 선택과 헌신을 포함하며, 순종과 충성으로 표현된다.
3. 관계적(關係的), 상호적(相互的) 사랑
∘.하나님 사랑은 상호적이지만 대칭적이지 않은 사랑이다.
∘.하나님은 먼저 사랑하시고 인도하시며, 우리가 화답하는 사랑을 통해 친밀하고 인격적인 관계를 맺기를 원하신다.
※. <한 문장요약(文章要約)>
하나님께 붙으라는 것은 단순한 금지 명령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친밀하게 관계를 맺고 의식적이고 지속적인 충성과 사랑으로 순종하는 삶을 의미한다.
(Q)~1.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에게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라고 권고한다. (여호수아 23:11; 신명기 6:5 비교). 사랑은 강요될 수 없으며, 강요한다면 본질적으로 사랑이 아니게 된다. 그렇다면 어떤 의미에서 사랑을 명령할 수 있는 것인가?
(A)~1. 성경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은 감정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언약 적 관계 안에서의 전인적 헌신과 선택을 요구하는 명령이다.
1.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성경의 사랑(히브리어 아하브)은 <느낌보다 ‘관계적 충성’과 ‘의지적 선택>을 포함한다.
∘.하나님 사랑은 감정의 고조가 아니라 삶의 방향과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두는 것이다.
☞. 사랑은 느끼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고 살아내는 것이다.
2. 사랑의 명령은 관계 안에서 주어진다..
∘.하나님은 낯선 존재가 아니라 이미 구원하시고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이시다.
∘.“사랑하라”라는 명령은 은혜에 대한 응답을 요구하는 언약 적 요청이다.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 이후에 사랑을 요구하신다.
☞. 사랑은 강요가 아니라 은혜에 대한 책임 있는 응답이다.
3. 사랑의 명령은 행동을 요구하는 명령이다
∘.하나님 사랑은 곧 말씀을 지키는 삶으로 나타난다.
∘.여호수아 23장의 문맥에서 사랑은 우상과의 단절, 하나님께 가까이함, 순종으로 드러난다.
∘.예수님도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라”라고 하셨다(요 14:15).
☞. 사랑은 순종으로 증명된다.
4. 사랑의 명령은 자유를 파괴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억지로 사랑을 강요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언약 백성에게는
∘.사랑하지 않을 자유의 결과도 분명히 제시하신다.
선택은 자유지만, 결과는 책임이다.
☞. 사랑은 강요되지 않지만, 선택은 요구된다.
5. 사랑을 명령하실 수 있는 이유
∘.하나님은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분이시다.
∘.그분은 먼저 사랑하셨고, 끝까지 신실하셨다.
∘.그러므로 사랑의 명령은 부당한 요구가 아니라 가장 합당한 요청이다.
☞. 하나님은 사랑을 요구할 권리가 있으시다.
※. <한 문장요약(文章要約)>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은 감정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맺어진 언약 관계 안에서 하나님께 전인적으로 헌신하라는 요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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