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과 언약의 상속자, 갇혔으나 소망을 품은 자(질문, 대답, 설명) 11/2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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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5-11-20 21:05 조회82회 댓글0건본문
제9과 언약의 상속자, 갇혔으나 소망을 품은 자
(11월 29일 안식일 / 일몰: 오후 5시 14분)
연구 범위: 창 3:17–24; 신 6:3; 수 13:1–7; 히 12:28; 레 25:1–5, 8–13; 겔 37:14, 25
기억절: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들아 너희는 요새로 돌아올지니라 내가 오늘도 이르노라 내가 네게 갑절이나 갚을 것이라”(슥 9:12).
여호수아 13–21장에는 이스라엘의 지파들에게 할당된 땅의 경계를 나타내는 지리적 경계가 길게 나열되어 있다. 현대의 독자에게 이 목록은 무의미해 보일 수 있지만,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의미 있는 약속의 땅에 대한 신학적 이해에 기초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확실한 목록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 땅이 헛된 꿈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치고자 하셨다. 그 땅은 그들에게 매우 명백하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약속되었다. 하지만 그 약속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그들의 행동에 달려 있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땅을 기업으로 주실 것이었다. 그것은 선물이었고, 그들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것을 성취하는 것이었다. “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할지니라”(신 1:8). 약속은 분명했지만 그들 역시 자신의 역할을 다해야 했다.
이번 주는 약속의 땅과 관련된 몇 가지 신학적 개념과 그것이 예수 안에서 발견한 모든 약속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미치는 영적인 의미를 살펴볼 것이다.
학습 목표
깨닫기: 약속의 땅을 주시는 것은 풍요로운 에덴을 다시 회복하게 하시는 은혜의 약속을 상징한다.
느끼기: 약속의 땅을 잃고 멀리 떠났을지라도 주님은 함께하시며 영원한 약속의 땅으로 이끄신다.
행하기: 하나님 약속은 분명히 이루어질 것이지만 이것을 이루어지게 하는 것은 믿음의 행동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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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에덴과 가나안 땅의 약속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까?(창 13:14, 15)
*답: 약속의 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3. 하나님께서 땅을 선물로 주신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까?(출 3:8)
*답: 따은 하나님의 소유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4. 이스라엘에게 여전히 정복해야 할 땅이 주어진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까?(수 13:7)
*답: 하나님의 약속은 분명하지만 그것을 획득하는데는 사람의 몫이 있는 것을 깨닫게 한다.
5. 희년 제도를 통해 하나님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까?(레 25:10)
*답: 땅의 소유주는 여호와이시며 모든 사람이 평등한 존재라는 것을 드러낸다.
6. 결국에는 땅을 잃어버린 자들에게, 선지자가 예언하는 땅의 회복은 무엇을 의미합니까?(사 9:7)
*답: 지구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회복되어 하나님이 통치하셔서 그분 백성의 영원한 삶의 터전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결론: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은 잃어버린 에덴의 풍요를 회복하게 하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는 그 땅을 얻을 힘과 권리가 없지만 주님은 은혜로 그 땅을 주시며 언약을 지키신다. 구원도 오직 은혜로 얻을 수 있으며 그 땅에 거할 때 성화도 이루게 하시고 마침내 영원한 땅으로 맞아들이실 것이다. 희년은 회복과 은혜를 알게 하며 땅을 잃었을 지라도 주님이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시며 영원한 약속의 땅으로 이끄실 것을 소망하게 한다. 하나님 약속은 분명히 이루어지며 이를 현실로 만드는 것은 그들의 행동에 달려 있다.
11월 23일(일) 에덴과 가나안
창세기 2:15과 창세기 3:17-24을 읽어 보라. 타락의 결과는 첫 번째 인류 부부의 삶의 공간에서 어떻게 나타났는가?
[창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창3:17~24]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20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답: 아담 부부는 에덴동산에서 내어보내져서 저주받은 땅을 갈게 하였다.
창조 당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풍요와 아름다움이 가득한 완벽한 환경에 두셨다. 인류의 첫 번째 부부는 모든 신체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아름다운 삶의 공간에서 창조주와 만났다. 하나님의 말씀만 아니라 에덴동산도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이 그들을 위해 계획하신 삶에 대한 중요한 깨달음을 얻는 학습의 장이었다.
그들이 창조주와의 신뢰 관계를 깨뜨렸을 때, 에덴동산과의 관계도 달라졌다. 그 관계가 깨졌다는 표징으로 그들은 동산을 떠나야만 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영토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에덴동산은 잃어버린 풍요로운 삶의 상징이 되었으며, 우리는 그 사상을 약속의 땅이라는 주제 가운데 다시 발견하게 된다.
부조들은 땅을 주신다는 약속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창 13:14, 15; 창 26:3, 24; 창 28:13 참조) 기업을 받을 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재림교인인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히 6:11–15 참조)
[창13:14,15]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창26:3,24]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창28: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답: 확실한 약속으로 받아들였다. 재림교인들에게 영원한 기업을 받을 자라는 역사적 현실적 사실로 확신하는 은혜의 경험이 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보여주신 땅에 들어갔을 때, 그 땅은 믿음을 통해 그와 후손들에게 약속의 땅이 되었다. 그 땅은 400년 동안 약속의 땅으로 남아 있었다. 부조들은 그 땅을 실제로 소유하지 않았기에 자녀들에게 유산으로 줄 수도 없었다. 그보다 에덴동산이 하나님께 속한 것과 같이 그 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었다. 아담과 하와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에덴동산을 받았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도 어떤 것을 하였기에 그 땅을 받은 것이 아니다. 약속의 땅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이스라엘에게는 그 땅을 소유할 당연한 권리나 자격이 없었으며(신 9:4–6) 그들이 그 땅을 소유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다.
약속이 성취될 때까지는 족장들은 약속을 받은 자였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는 더 좋은 약속(히 8:6)을 받은 자이다. 우리가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가 될 때 그 약속은 우리에게도 성취될 것이다(히 6:12).
<교훈> 인류의 범죄로 에덴동산은 잃어버린 풍요로운 삶의 상징이 되었으며, 우리는 약속의 땅 주제 가운데 풍요로운 땅을 약속하시는 주님을 다시 발견한다.
<묵상> 아무런 기여도 없이 주신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은 자녀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상속이라 하고 유업이라고 한다. 자녀가 기여하기는커녕 말썽맘 부렸어도 자식이기 때문에 유업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자식에 너무 불효하면 호적에서 삭제할 수 있다. 아마도 그것은 부모의 권리일 것이다. 아담이 에덴을 받고,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받은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자녀로 삼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아들이라고 하셨다(렘31:9). 그래서 기여가 아니라 그렇게 애를 먹였어도 가나안을 유업으로 주셨다. 거기서 그들은 그 유업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앗수르와 바벨론으로 잡혀갔다. 아담이 에덴동산을 지키지 못한 것과 같다. 오늘날 영적 이스라엘로 자처하는 교회가 진리를 잃어버려서 이 유업을 받을 자격을 잃었다고 보셨을 때 하나님은 남은 자손을 일으키셨다. 유업을 받을 분명한 조건을 제시하셨다. 아담에게 언약의 나무들을 제시한 것처럼, 이스라엘에게 언약의 열 말씀을 제시한 것처럼, 남은 자손에게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제시하셨다. 그것에 충실할 때 언약 안에 머물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언약 안에 머물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돌아볼 수가 없으시다. “또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열조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저희와 세운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저희는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저희를 돌아보지 아니하였노라”(히8:9).
11월 24일(월)
선물로 주신 땅
출애굽기 3:8; 레위기 20:22; 레위기 25:23; 민수기 13:27; 신명기 4:1, 25, 26; 신명기 6:3; 시편 24:1을 읽어 보라. 하나님과 이스라엘 그리고 약속의 땅 사이에는 어떤 특별한 관계가 있었는가?
[출3: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레20:22] 너희는 나의 모든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라 그리하여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거주하게 하는 땅이 너희를 토하지 아니하리라.
[레25:23]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민13:27]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
[신4:1,25,26]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되리라/ 25 네가 그 땅에서 아들을 낳고 손자를 얻으며 오래 살 때에 만일 스스로 부패하여 무슨 형상의 우상이든지 조각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악을 행함으로 그의 노를 일으키면 26 내가 오늘 천지를 불러 증거를 삼노니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는 땅에서 속히 망할 것이라 너희가 거기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하고 전멸될 것이니라.
[신6:3]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
[시24:1]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답: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이스라엘을 거기 이끌어 들이실 것이다. 그 땅에 살 때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전적으로 순복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 땅은 나라의 물리적 정체성을 결정한다. 나라의 위치에 따라 그들의 생업과 삶의 방식도 결정된다. 노예들은 기반이 없고 정체성도 없으며 그들이 일군 열매는 다른 이가 차지했다. 땅을 갖는 것은 자유를 의미했다. 선택된 백성의 정체성은 그 땅에 거하는 것과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그리고 약속의 땅 사이에는 특별한 관계가 있었다. 이스라엘은 이 땅에 대한 어떠한 본연의 권리도 없었으며 하나님에게서 선물로 받은 것이었다. 택한 백성은 여호와와의 언약 관계를 지키며 언약의 법도를 준수하는 한 그 땅을 소유할 수 있었다. 바꿔 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은총 없이는 땅과 그에 따른 축복을 가질 수 없었다.
동시에, 그 땅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땅에서의 삶은 그들에게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언약을 지키시며 신뢰할 수 있는 분임을 항상 생각하게 해주었다. 그들의 존재의 근원이며 반석이 되신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았다면, 그 땅도 이스라엘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나일강과 관개 시설, 고된 노동을 통해 생존에 필요한 식물을 얻을 수 있었다. 가나안은 그와 달랐다. 그들이 풍성한 수확을 거두는 것은 비에 달려 있었으며, 일기를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었다. 따라서 그 땅은 백성들에게 끊임없이 하나님께 의존하고 있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에게서부터 그 땅을 선물로 받았다 하더라도, 궁극적인 의미에서 그 땅의 주인은 여전히 하나님이셨다. 온 땅의 참된 주인(시 24:1)인 여호와께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시거나 거두실 권리가 있었다. 하나님께서 그 땅의 주인이시라면, 이스라엘 백성과 나아가 모든 인류는 이방인과 거류민, 혹은 현대적 표현으로 말하면 그분의 땅 지구에 장기 체류하는 손님인 셈이다.
<교훈> 땅을 주거나 거두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기에 땅은 은총으로 주신 것이다. 그 땅에 기초한 삶은 신실하시고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이해하게 하였다.
<부가설명> 우리가 잊어버리지 말 중요한 내용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이다. 아버지의 땅은 자녀들의 땅이 아닌가? 자녀들이 아버지와 함께 살 때에는 그 땅의 주인은 아버지이지만 동시에 자녀들도 그 땅을 다스리는 권리가 있다. 어떤 공로나 기여 때문이 아니다. 자녀이기 때문이다. 아담은 원래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되었다(눅3:38). 그러나 언약을 어겨서 마귀 아들이 되어버렸다(요8:44). 그래서 말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으로 오셔서 십자가와 부활로 아담의 사망을 처리하시고 생명과 썩지 않는 것을 드러내셔서 누구든지 그분을 믿으면 다 하나님 아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전15:22, 45, 딤후1:10, 요3:16, 요1:12,13). 그래서 하나님의 주인이신 이 땅을 유업으로 상속받는 것이다. 예수님 재림으로 이 상속이 실현된다. 지금은 그때를 기다리는 때다. 아들이기 때문에 아들답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삶이다. 구원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해야 했던 옛날 이스라엘의 처지와 같은 것이다.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순종하는 이유는 순종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고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순존하는 것인데 이 순종을 저버리면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고 아들의 신분을 거두신다. 이 이치를 바르게 깨닫고 바르게 생활하자.
11월 25일(화) 그 땅의 어려움
여호수아 13:1-7을 읽어 보라.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었지만, 그 땅을 차지하는 데는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가?
[수13:1~7] 여호수아가 나이가 많아 늙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이 매우 많이 남아 있도다 2 이 남은 땅은 이러하니 블레셋 사람의 모든 지역과 그술 족속의 모든 지역 3 곧 애굽 앞 시홀 시내에서부터 가나안 사람에게 속한 북쪽 에그론 경계까지와 블레셋 사람의 다섯 통치자들의 땅 곧 가사 족속과 아스돗 족속과 아스글론 족속과 가드 족속과 에그론 족속과 또 남쪽 아위 족속의 땅과 4 또 가나안 족속의 모든 땅과 시돈 사람에게 속한 므아라와 아모리 족속의 경계 아벡까지와 5 또 그발 족속의 땅과 해 뜨는 곳의 온 레바논 곧 헤르몬 산 아래 바알갓에서부터 하맛에 들어가는 곳까지와 6 또 레바논에서부터 미스르봇마임까지 산지의 모든 주민 곧 모든 시돈 사람의 땅이라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리니 너는 내가 명령한 대로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분배하여 기업이 되게 하되 7 너는 이 땅을 아홉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나누어 기업이 되게 하라 하셨더라.
*답: 먼저 그땅을 차지하고 사는 백성들이 많과 강한 것이 어려움의 이유다.
이스라엘 백성은 수 세기 동안 노예로 살았기에, 그들에게는 그 땅을 정복할 만한 군사적 능력이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을 지배했던 숙련되고 잘 무장한 군대를 가졌던 이집트인들조차 그 땅을 영구히 점령할 수 없었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들은 난공불락이었기 때문에 이집트인들은 가나안을 완전히 정복하지 못했다. 그런데 한낱 노예에 불과한 민족에게 그들의 주인들도 점령하지 못했던 땅을 정복하라는 명령이 주어진 것이다. 그들이 정말 그 땅을 차지하게 된다면 그들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일이다.
여호수아 13-21장은 이스라엘의 각 지파에게 땅을 분배하는 내용을 다룬다. 이 분배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엇을 분배받았는지 뿐만 아니라 그 영토 내에서 여전히 점령해 나가야 할 부분이 어디인지 알려준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유업으로 주신 땅에서 안전하게 거할 수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소유인 그 땅의 정당하고 합법적인 거주자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에는 인간의 응답이 따라야 한다. 여호수아서의 전반부는 하나님께서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내시며 땅을 주신 과정을 보여주고, 후반부는 이스라엘이 정착하면서 그 땅을 어떻게 차지했는지를 말해준다.
가나안 정복에 따르는 복잡다단한 일들은 우리의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역동적으로 보여준다.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구원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엡 2:8, 9).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 근거해서 땅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구원은 선물이다. 그것은 분명 그들의 공로로 얻은 것이 아니다(신 9:5 참조).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선물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 땅에서 사는 데 필요한 모든 의무를 이행해야 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 필요한 요구에 사랑으로 순종하며 성화의 과정을 거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완전히 동일한 과정은 아니지만, 그들이 은혜로 땅을 받은 것과 우리가 은혜로 구원을 받는 일은 매우 유사하다. 놀라운 선물을 우리에게 주셨지만, 주의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잃을 수도 있다.
<교훈> 이스라엘이 자력으로 얻을 수 없는 땅을 주께서 은혜로 주셨다. 이는 우리 구원이 어떻게 은혜로만 가능한지 보여주며 성화의 과정도 이끄실 것을 말한다.
<부가설명> 생명과 존재에 관한 것은 사람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담 자손 중에 스스로 출생한 사람이 있는가? 결코 없다. 누군가가 낳아줘야 존재하고 낳아주는 사람으로부터 생명을 얻어야 출생하고 존재하게 된다. 이것을 누가 부인할 것인가? 우리가 구원받는 것도 같은 이치다. 구원받는 것을 중생이라고 하셨다.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으니(요3:3~5), 중생은 하나님 나라에 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나라에 존재하는 하늘 백성이 되었다. 사람이 존재하는 것은 자기 힘으로 되지 않는다. 창조주께서 창조해 주실 때 비로소 존재한다. 그래서 거듭나는 것을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했다(고후5:17).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들, 곧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된 사람들(요1:13)은 이 세상이 자기 집도 아니고 자기 세상도 아니다. 본향을 하모하면 하늘 사람들로서 생활하게 된다. 그러나 세상이 만만치 않다. 마치 가나안 땅에 먼저 살던 사람이 이스러엘에게 만만치 않은 것과 같다. 그래서 하늘 백성인 거듭나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들은 세상에서 핍박을 받으면서 세상과 싸우게 된다. 그 싸움은 성령의 개입을 이기게 된다(롬8:2).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벧전2:9~12).
11월 26일(수) 희년
땅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존재하는 데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전체 단위로 줄 수 없었고 지파, 족속, 가족 단위로 나누어서 분배해야 했다(민 34:13–18). 이것은 소수의 뛰어난 지도층에게 땅이 편중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레위기 25:1–5, 8–13을 읽어 보라. 안식년과 희년의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레25:1~5, 8~13]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간 후에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안식하게 하라 3 너는 육 년 동안 그 밭에 파종하며 육 년 동안 그 포도원을 가꾸어 그 소출을 거둘 것이나 4 일곱째 해에는 그 땅이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가꾸지 말며 5 네가 거둔 후에 자라난 것을 거두지 말고 가꾸지 아니한 포도나무가 맺은 열매를 거두지 말라 이는 땅의 안식년임이니라.
*답: 이스라엘이 그들이 관리하는 땅을 영구히 빼앗기지 않도록 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배려다.
백성이 땅을 잃고 바로의 노예가 되는 경우가 흔했던 애굽과 달리,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결코 영구히 그들의 땅을 빼앗기지 않도록 만들기 원하셨다. 원래 땅을 분배받은 족속과 가족 외에는 아무도 그 땅을 소유할 수 없었다. 실제로, 하나님의 계획에 의하면 땅은 결코 사고 팔 수 없었고, 다음 희년까지 남은 연수를 기준으로 정해진 가치에 따라 임대하는 것만 허용되었다. 따라서 유업으로 받은 땅을 팔 수 밖에 없었던 사람의 친척들은 희년이 되기 전이라도 그 땅을 되찾을 의무가 있었다(레 25:25).
이러한 땅의 분배 방식은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는 창(窓)과 같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당신의 자녀들이 불우한 이들을 관대하게 대하며, 매 7년마다 자신의 땅을 쉬게 하고 그 소산을 그들이 먹도록 허용하기를 원하신다. 안식년은 안식일 계명의 원리를 더 큰 규모로 적용한 것이다. 땅의 소유는 성실히 일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장려할 뿐 아니라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생각하고 호의를 베풀 것을 요구한다.
토지 소유법은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물려받았거나 스스로 자초한 괴로운 형편에서 벗어나 새롭게 삶을 시작할 기회를 제공했다.
본질적으로, 이것이 복음의 주된 목적이다. 부자와 가난한 자, 고용주와 노동자, 특권층과 소외된 계층 사이의 구분을 없애고,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를 전적으로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인정함으로써 동등한 위치에 서게 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정하신 표준을 지키지 않았기에 경고하셨던 몰수가 수세기 후에 이루어졌다(대하 36:20, 21).
<교훈>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영구히 땅을 빼앗기지 않게 희년을 주셔서 복음과 안식일, 평등과 은혜와 같은 하나님 나라의 원칙을 배우고 실천하게 하셨다.
<부가설명> 희년 제도는 참으로 사랑을 보여주는 제도다. 분배받은 땅은 영원히 받은 사람의 땅이다. 이것은 온유한 자가 기업으로 받은 땅은(마5:5) 결코 다른 이에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하게 하는 하나님의 교육이다.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에게 유업으로 주신 새 하늘과 새 땅은 결코 다른 이에게 돌아갈 수 없는 영원한 기업이라는 것을 가르쳐준다. 땅을 관리하는 권리는 절대로 평등하고 사고팔게 하지 못하게 한 것도 평등을 나타낸다. 권력있고 돈이 많다고 땅을 많이 가질 수 없다. 분배받은 것만 관리하는 권리를 가질 뿐이다. 정말 평등하지 않은가? 기업 받은 땅의 관리권을 불가불 팔았을 경우에는 근족이 그것을 물어줄 수 있다. 이렇게 기업 물어주는 근족을 고엘이라고 한다. 고엘 제도를 잘 설명해주는 책에 룻기다. 보아스는 룻을 아내로 맞아서 그의 친척 엘리멜렉의 기업을 물어줄뿐만 아니라 그들의 귾어진 생명의 대를 이어주는 고엘의 임무를 다했다. 이것은 사탄에게 관리권을 빼앗긴 아담에게 이 관리권을 되찾아 주는 일을 하시는 예수님의 속량의 봉사를 잘 표상하는 제도다. 그리고 그 땅은 기업을 받은 그들의 영원한 터전이다. 소유주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진정으로 거듭나면 이 기업을 상속받을 권리를 받은 자이다. 이것을 잃지 않도록 잘 보존해야 할 것이다.
11월 27일(목) 회복된 땅
예레미야 24:6; 예레미야 31:16; 에스겔 11:17; 에스겔 28:25; 에스겔 37:14, 25을 읽어 보라.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이었으며, 어떻게 성취되었는가?
[렘24:6] 내가 그들을 돌아보아 좋게 하여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여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겠고,
[렘31:16]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 울음 소리와 네 눈물을 멈추어라 네 일에 삯을 받을 것인즉 그들이 그의 대적의 땅에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겔11:17] 너는 또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만민 가운데에서 모으며 너희를 흩은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모아 내고 이스라엘 땅을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다 하라.
[겔28:25]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여러 민족 가운데에 흩어져 있는 이스라엘 족속을 모으고 그들로 말미암아 여러 나라의 눈 앞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낼 때에 그들이 고국 땅 곧 내 종 야곱에게 준 땅에 거주할지라.
[겔37:14,25]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5 내가 내 종 야곱에게 준 땅 곧 그의 조상들이 거주하던 땅에 그들이 거주하되 그들과 그들의 자자 손손이 영원히 거기에 거주할 것이요 내 종 다윗이 영원히 그들의 왕이 되리라.
*답: 바사왕 고레스의 조서로 그들이 돌아가게 되었다.
바벨론 포로 기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연고 없이 유랑하는 슬픈 현실만이 아니라 땅에 대한 약속을 통해 분명하게 이루어진 그들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약속이 땅을 점유하는 여부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제한되지 않는다는 놀라운 사실을 경험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며 전심으로 주님을 찾았을 때, 하나님은 다시 한번 약속을 이루셨고, 회복의 표징으로 그들을 그 땅으로 돌아오게 하셨다. 그들이 약속의 땅에서 멀리 떠나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의 하나님이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그 땅을 영원히 차지할 것이라는 약속이 조건적이었듯이(신 28:63, 64; 수 23:13, 15; 왕상 9:7; 왕하 17:23; 렘 12:10–12), 포로기 이후 그 땅에 다시 정착하게 하고 이스라엘을 번영하게 하겠다는 약속에도 조건이 있었다. 동시에 구약의 선지자들은 미래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왕이 가져올 회복을 예언했다(사 9:6, 7; 슥 9:9, 16). 이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부활을 통해 성취되었으며, 고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모든 약속이 그분 안에서 성취되었다.
신약성경이 약속의 땅을 직접 언급하지 않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통해 성취된 것을 안다(고후 1:20, 롬 15:8). 따라서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 그 땅은 새롭게 해석되며, 하나님께서 당신의 신실한 백성에게 지금 이 순간(엡 2:6)과 이후 세상에서 주시고자 하는 영적 축복의 상징이 된다.
그 땅에서 안식과 풍요와 평안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최종적 성취는 죄와 그 결과로부터 해방된 새 땅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이 점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희망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하늘에서 천년의 기간을 마친 후 새롭게 될 이 땅에 영원한 왕국을 세우실 것이라는 약속에 기초한다. 이것이 땅에 대한 모든 약속의 궁극적 성취가 될 것이다.
<교훈> 약속의 땅을 잃었을 때도 주님은 변함없으며 언약은 회복된 땅을 통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의 신실한 백성에게 주고자 하는 영적 축복의 상징이 된다.
<부가설명> 민족적 이스라엘 백성이 경험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참 이스라엘이 된 성도들이 영원한 나라를 얻는 진리에 대한 상징적 예표가 된다. 하나님은 지구를 창조하셔서 아담 부부에게 주셨다. 그러나 그들이 범죄하여 이 지구는 사탄에게 넘어갔다(눅4:5,6). 그러나 기업무를 자로 오신 마지막 아담 예수께서 이것을 사탄에게서 회수하셔서 그의 백성 곧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 영적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셨다. 고대 이스라엘에게 하신 약속은 영적 이스라엘에게 하시는 약속의 상징적 예표이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마침내 새 하늘 새 땅은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다. 우리는 이땅 광야 같은 세상에 있는 교회(행7:38)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면 이 귀한 약속을 누릴 권리를 결단코 잃지 않을 것이다. 아멘. 교과 묵상에 제시한 성구들은 예수께서 재림하셔서 이 약속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씀한 것이다. 그래서 재림이 우리의 소망이 된다.
11월 28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각 시대의 대쟁투 42장 “대쟁투의 종막” 672–678을 읽어 보라.
“우리가 문들을 통하여 성으로 들어갈 때에 영원히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는 구원을 받되 영원히 구원받은 것을 기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때까지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히 4:1)는 사도의 교훈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대한 지식을 가졌고, 가나안의 노래들을 불렀으며, 가나안에 들어갈 것을 생각하고 기뻐하였으나, 그것만으로는 허락된 땅의 포도원과 감람나무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들은 땅을 차지하고 그 모든 조건을 준수하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행사하고 그의 허락들을 자신의 것으로 취함으로써만 그 땅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청년지도자, 1898. 2. 17).
“성경은 구원받은 자의 유업을 본향이라고 부른다(히 11:14-16 참조). 그곳에서 하늘의 목자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양 무리를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신다. 생명나무는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잎사귀는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다. 수정같이 맑은 물은 끊임없이 흐르고, 물가에 있는 나무들은 구속받은 주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준비된 길 위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넓은 평원이 아름다운 언덕과 연결되고, 하나님의 산들은 높은 봉우리들을 뻗고 있다. 이 평화로운 평원에서, 이 생명 강가에서, 오랫동안 순례자요 방랑자였던 하나님의 백성은 안식처를 찾을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675).
함께하는 토의를 위하여
1. 약속의 땅을 요한복음 10:10에서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풍성한 삶과 연결해서 생각해 보라. 풍성한 땅에서 사는 유익은 구원의 축복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답: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는다.
2. 어떤 땅의 거민이 되는 것과 특정한 생활 방식으로 사는 것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둘 중 한 요소는 다른 요소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답: 그 지역의 풍속과 방식을 따르게 된다. 하나님 나라에서 사는 방식으로 생활하게 된다.
3. 우리는 다른 사람의 약속 때문에, 때로는 자기 자신에게 한 약속 때문에 끊임없이 실망하곤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약속은 왜 신뢰할 수 있는가?*답: 역사에서 약속을 이루신 것을 말씀으로 확인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그것을 보증하셨다.
4. 우리는 새 땅에 대한 약속을 어떻게 지금 여기에서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게 만들 수 있겠는가?
*답: 기록된 말씀을 따라 순복하는 삶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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