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과-모든 전쟁의 배후에 있는 전쟁-(이봉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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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5-10-20 08:18 조회84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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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과 모든 전쟁(戰爭)의 배후(背後)에 있는 전쟁(戰爭)
(10월 25일 (안) / 일몰: 오후 5시 42분)
1. 서론 (緖論)
여호수아서에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이루어진 전쟁들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가나안 정복은 단순한 인간의 군사행동이 아니라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전쟁”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이런 전쟁을 명령하실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생긴다.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이 땅의 전쟁의 배후에 존재하는 더 큰 전쟁, 곧 선악의 대쟁투”를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전쟁은 단순한 폭력이 아니라 “사랑과 공의를 회복하기 위한 악(惡)에 대한 심판(審判)”이며, 하나님은 그 싸움의 “주도자(主導者)이자 승리의 보장자(保障者)”이시다.
2. 개요 (槪要)
1. 전쟁의 배후: 선악(善惡)의 대쟁투(大爭鬪)
● (계 12:7~9) 하늘에서 이미 시작된 전쟁
● (사 37:16) 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 모든 전쟁의 주권자(主權者)
● 이 땅에서의 전쟁은 “하늘의 전쟁과 연결”되어 있음
2. 하나님이 전쟁을 명령(命令)하신 이유
● (신 32:17) 가나안의 죄악(罪惡)과 우상숭배(偶像崇拜)는 악(惡)의 세력과 연결
● 하나님의 명령은 “악(惡)을 멸(滅)하고 거룩을 세우기 위한 심판”
● (수 6:2, 8:1) 하나님이 직접 “내가 넘겨 주었다” 말씀하심
3. 이스라엘의 역할(役割)과 하나님의 주도(主導)
● (출 14:13~14) “너희는 가만히 있으라, 여호와께서 싸우신다”
● 원래 이스라엘은 “직접 싸울 필요가 없었음”
● 불신(不信)으로 인해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으나, 그것도 “충성과 의지를 훈련하기 위한 과정”
4. 하나님의 임재(臨在)와 승리의 방식(方式)
● (수 5:13~15)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앞장섬 → “전쟁의 지휘관은 하나님”
● (수 6:15~20) 여리고 성(城)은 인간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함락”
● 전쟁의 본질은 “무력(武力)보다 믿음의 순종(順從)”
5. 오늘 우리의 싸움
● 이 땅의 전쟁은 여전히 “영적전쟁(靈的戰爭)의 그림자”
● 하나님은 지금도 “사랑과 공의(公義)를 위해 싸우심”
● 우리는 “승리하신 주님을 신뢰하며 선악의 싸움을 믿음으로 싸워야 함”
○. 핵심 메시지:
<하나님의 전쟁은 파괴(破壞)가 목적이 아니라, 악(惡)을 멸(滅)하고 사랑과 공의(公義)를 회복(回復)하기 위한 선악(善惡)의 대쟁투(大爭鬪)이다.
하나님이 앞서 싸우시며, 우리는 그분을 신뢰하며 순종할 때 승리(勝利)를 경험하게 된다.>
(10월 19일) (일) <여호와의 군대(軍隊) 사령관(司令官)>
○. <여호와의 군대사령관(軍隊司令官)>
1. 가나안 정복의 배경(背景) (여호수아 5:13~15, 6:1)
● 이스라엘은 요단을 건너 곧바로 적진 한가운데에 들어감.
● 앞에는 견고한 여리고 성, 굳게 닫힌 성문.
● 이스라엘은 전략도, 강력한 무기도 없음.
● 인간의 능력으로는 정복 불가능한 상황.
2. “너는 우리의 편이냐?”에 대한 대답 “아니라”
● 낯선 방문자는 여호수아의 범주(이스라엘 vs 적) 안에 들어가기를 거부.
● 중요한 질문은 “그가 우리의 편인가?”가 아니라. “우리가 그분의 편에 서 있는가?”
3. 여호와의 군대 사령관의 정체 (여호수아 5:14~15 비교 성구)
비교 성경: 왕상 8:6–17 / 느 9:6 / 사 37:16
● “군대의 대장” = 군사적 지도자.
● “군대” = 인간의 군대, 천사, 우주적 세력 모두 포함.
● 이 인물은 단순한 천사가 아니라 “하나님과 동등한 분”.
●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은 명령 “신을 벗으라” → 거룩한 곳.
● 여호수아는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함 → 피조물에게 할 수 없는 행동.
● 성육신(成肉身) 이전의 “그리스도께서 친히 나타나심.”
4. 보이지 않는 더 큰 전쟁(戰爭)
● 가나안 전쟁은 눈에 보이는 전투일 뿐.
● 그리스도는 “천사들의 군대를 지휘하는 사령관”으로 등장.
● 이 싸움은 하나님이 직접 관여하시는 “영적 대쟁투의 한 부분.”
5. 여호수아의 태도(態度)
● 여호수아는 그분의 정체를 인식.
● 경배하며 명령을 받을 준비를 함.
● 전쟁의 전략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에 근거.
6. 핵심교훈
●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큰 전쟁의 사령관이시다.
● 진짜 핵심은 “하나님이 내 편인가?”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편에 서 있는가?”
●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에게 작전을 주시며, 순종할 자를 찾으신다.
※ <적용(適用)>
● 여호수아처럼 하나님의 임재를 분별하고 경배하는 태도.
● 하나님의 전쟁은 인간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전략.
● 우리의 신앙 전쟁도 보이지 않는 영적 대쟁투의 일부.
● 항상 “하나님의 편에 서는 선택”이 중요하다.
(10월 20일) (월) <하늘의 전쟁(戰爭)>
1. <하늘에서 시작된 전쟁(戰爭)>
● (계시록 12:7~9):미가엘과 그의 천사들 vs 용(사탄)과 그의 천사들 → 하늘에서 전쟁 발생.
● 이 전쟁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우주적(宇宙的) 차원(次元)의 대쟁투(大爭鬪)”의 시작.
2. 자유의지(自由意志)와 반역(叛逆)의 가능성(可能性)
● 하나님은 피조물에게 “자유 의지”를 주심 → 사랑은 강요가 아닌 선택이어야 하기 때문.
● 가장 탁월한 천사 루시퍼가 교만으로 인해 하나님께 반역 → 많은 천사들이 그를 따름.
3. (이사야 14장)과 (에스겔 28장)의 깊은 의미(意味)
● 일부 주석가들은 바벨론 왕, 두로 왕으로만 제한하지만 본문은 “초월적 존재”를 묘사.
● (이사야 14장): “하늘의 보좌에 오르겠다”는 표현 → 인간 왕에게 적용불가(適用不可).
● (에스겔 28장): “에덴에 있었고 흠 없이 완전” → 인간이 아님, 타락전(墮落前) 루시퍼를 상징.
● 두 예언은 “역사적 왕을 넘어 사탄의 본질과 교만을 드러내는 비유적 언어”
4. 비유(mashal)와 상징(象徵)의 사용
● 이사야: 바벨론 왕을 “반역과 교만의 상징”으로 비유(譬喩).
● 에스겔: 두로의 “왕자”(지상)와 “왕”(하늘의 상징)을 구분 → 하늘 차원의 존재를 지적.
5. 하늘의 전쟁이 땅에 미친 영향
● (다니엘 10:12~14) → 하늘의 악한 존재들이 “지상(地上)의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
● 여호수아의 전쟁도 단순한 군사행동이 아니라 “하늘과 연결된 영적전쟁(靈的戰爭)의 일부”.
6. 대쟁투(大爭鬪)의 목적(目的)
● 하나님 vs 사탄, 선(善) vs 악(惡)의 대쟁투는 “이 땅에서 가시적으로 나타남”.
● 최종 목적: “타락한 세상에 하나님의 정의(定義)와 사랑을 회복”.
7. 인간의 선택(選擇)
● (시대의 소망 763쪽):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전쟁은 “하늘에서 시작되어 세상 끝까지 계속됨”.
● 모든 사람은 “순종(하나님의 법)인지 불순종(사탄의 길)인지”를 선택해야 함.
● 결국 “두 부류(部類)”만 존재하게 되며 각자의 품성과 충성이 드러남.
○. <교훈(敎訓)>
“하늘에서 시작된 선악(善惡)의 대쟁투(大爭鬪)는 자유의지(自由意志)를 가진 피조물(被造物)의 반역에서 비롯되었으며, 이 전쟁은 땅 위의 역사와 연결되어 하나님의 정의(定義)와 사랑을 회복하기 위한 과정이다.
모든 인간은 이 전쟁 가운데 ”하나님의 편(便)인지 아니면 반역(叛逆)의 편(便)인지 선택해야 한다.”
(10월 21일) (화) <여호와는 용사(勇士)시니>
성경에서 “여호와는 용사(勇士)”라는 표현은 단순히 힘이 세다는 의미를 넘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해 직접 싸우시고, 구원하시며, 악과 억압을 꺾으시는 분”이라는 깊은 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1. (출애굽기 2:23~25) –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을 들으셨다’
●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의 노예로 심한 고통 중에 부르짖었습니다.
● 하나님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기억하시고… 살피시고… 아셨다.”
하나님은 “억압 속에 있는 백성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용사는 “백성의 고통을 듣고 움직이시는 분”입니다.
2. (출애굽기 12:12~13) – 어린양의 피와 심판
● 하나님은 애굽의 모든 처음 난 것을 치시는 “심판의 전투”를 수행하십니다.
● 그러나 문설주의 “어린양의 피”가 있는 집은 넘어가십니다.
하나님은 “원수를 심판하는 전사(戰士)”이면서도
“자기 백성을 보호하고 구원하시는 구원자”입니다.
3. (출애굽기 15:3~11) – 홍해에서의 승리
●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15:3)
● 하나님이 직접 애굽의 군대를 홍해에 던져 멸하셨습니다.
● 이스라엘은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셨나이다”라고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전쟁의 기술보다 권능으로 싸우시는 전능한 전사”입니다.
.인간의 힘이 아닌 “하나님이 친히 싸우심으로 승리를 주시는 분”입니다.
○. “여호와는 용사”의 핵심 의미 요약
1. “백성의 고통을 듣고 외면하지 않으시는 분”
2. “억압과 죄, 사탄의 세력을 향해 싸우시는 분”
3. “원수를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
4. “자기 백성을 구원하고 보호하시는 구원자”
5. “인간 대신 앞서 싸우시는 전능한 전사”
6. “홍해 사건처럼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승리의 하나님”
○. 신약적(新約的) 적용(適用)
예수 그리스도도 “죄와 사망, 사탄을 십자가에서 이기신 “영적용사(靈的勇士)”입니다.
●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魔鬼)의 일을 멸(滅)하려 하심이라” (요일 3:8)
➡ ️ “출애굽의 용사 여호와 = 십자가의 승리자 예수 그리스도”
○. 결론(結論)
“여호와는 용사”란,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위해 직접 싸우시며, 악을 심판하고, 구원을 이루시는 전능의 전사이자 구원자(救援者)라는 뜻”입니다.
1. “<여호와는 용사시니>”라는 제목의 고찰(考察)
① 단순한 “전투의 신”이 아니라 “구원하시는 투사”
●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오랜 시간 지내며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을 잃었습니다.
● 그러나 그들이 고통 중에 부르짖자, 하나님은 “직접 싸우며 개입하는 분”으로 나타나셨습니다.
● “여호와는 용사시니”라는 표현(출 15:3)은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을 위해 싸우시는 구원자(救援者)”라는 선언입니다.
② 단순한 인간 전쟁이 아니라 “영적대쟁투(靈的大爭鬪)”
● 출애굽기의 갈등은 “모세 vs 바로의 개인 갈등”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세 vs 애굽의 신들과 사탄의 세력”의 충돌입니다.
● 하나님은 “애굽의 신들(사탄의 세력)을 심판”하시며 참 하나님이 누구인지 드러내셨습니다(출 12:12).
③ 하나님은 공의(公義)의 전사(戰士)
● 하나님은 죄와 영원히 싸우시며, 악을 그대로 두지 않으십니다.
● 최종적으로 “모든 악(惡)한 천사들과 죄에 빠진 인간을 심판”하십니다(계 19:11, 20:1–4,14).
● 이 싸움의 목적은 단순 벌(罰)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公義)의 성품을 온 우주(宇宙) 앞에 입증(立證)”하는 것입니다.
④ 가나안 정복(征服)도 이 영적전쟁(靈的戰爭)의 일부
● 가나안 멸망은 잔인(殘忍)한 민족 전쟁이 아니라, “사탄의 세력에 속한 악(惡)의 체제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審判)”의 예고(豫告)이다.
● 하나님의 명예와 성품이 공격(攻擊)받는 상황에서 “중립(中立)은 없으며”, 하나님 편과 악의 편으로 나뉩니다.
● 가나안 멸망은 “최종 심판의 예표(미리보기)”이다.
따라서 <“여호와는 용사(勇士)시니”>라는 제목은”
“하나님이 단순히 힘센 전사(戰士)가 아니라, 죄(罪)와 악(惡)의 세력에 맞서 싸우며, 백성을 구원(救援)하고, 공의(公義)를 세우시는 우주의 참된 왕이라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2. 요약(要約)
① 이스라엘의 상태
● 애굽에서 오래 살며 하나님을 잊고 이교사상(異敎思想)이 섞였음.
● 고통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음 → 하나님이 응답하심(출 2:23–25).
② 출애굽의 갈등본질(葛藤本質)
● 모세 vs 바로의 싸움이 아님.
● “하나님 vs 애굽의 신(神)(사탄의 세력)” 의 영적전쟁(靈的戰爭).
● 하나님은 “애굽의 신(神)들을 심판”하심(출 12:12).
③ 하나님은 “용사(勇士)”
● 백성을 위해 직접 싸우시는 “구원자 전사(救援者戰士)”(출 15:3).
● 죄와 악(惡)과 계속 싸우심.
● 최종적으로 완전히 멸(滅)하심(시 24:8, 계 19:11).
④ 가나안 정복(征服)의 의미(意味)
● 단순 민족 전쟁(民族戰爭)이 아님.
● “우주적 대쟁투(大爭鬪)의 일부”.
● 최후 심판을 “미리 보여주는 사건”.
⑤ 하나님 성품(性稟)의 드러남
● 하나님은 사랑과 공의(公義)가 충만하심.
● 우주는 결국 하나님의 공의를 인정함(롬 3:4, 계 15:3).
● 심판조차 “온 우주의 찬동(贊同) 속에” 이루어짐(부조와 선지자 79).
○. <핵심 교훈>
“여호와는 용사시니”는 하나님이 백성을 위해 악(惡)의 세력과 싸우시며, 최종적으로 죄를 멸(滅)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公義)를 우주 앞에 드러내시는 구원자(救援者)이자 공의(公義)로운 전사(戰士)이심을 선언하는 표현이다.“
(10월 22일) (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해 싸우시리니>
○.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해 싸우시리니>”라는 제목
이 제목은 “전쟁의 주도권(主導權)은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는 성경적 진리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이상적인 계획”은 그들이 “직접 싸우는 민족이 아니라,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여 하나님께서 대신 싸우시는 것을 경험하는 민족”이 되는 것이었다.
1. “하나님은 전사(戰士)의 하나님이시며 진정한 지휘관이시다.”
2. “이스라엘은 칼을 들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었다. 조건은 ‘신뢰와 순종’이다.”
3. “출애굽은 그 대표적인 전형(모범)이다 – 하나님이 싸우시고 이스라엘은 가만히 있었다.”
4. “가나안 정복도 원래는 같은 방식이어야 했으나, 그들의 불신 때문에 전쟁에 직접 참여하게 된 것이다.”
5. “그러므로 진정한 승리는 인간의 힘이 아니라 ‘여호와의 능력’으로 온다.”
○. 요약(要約)
1. 하나님의 원래 계획
● 이스라엘은 “전쟁을 직접 하지 않아도 되는 민족”이었다.
● 하나님이 “앞서 싸우시고”, 이스라엘은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구원을 보기만 하면 되었다.” (출 14:13~14, 25).
○. 실제역사(實際歷史)속 예시(豫示)
● 출애굽 때 “칼 한 자루 들지 않고” 애굽을 떠남.
● 히스기야 시대,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 앗수르 군대를 격파(擊破)” (왕하 19장, 사 37장).
●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신뢰할 때는 싸울 필요가 없었다.”
○. 왜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는가?
● 출애굽 후 “불신(不信)과 두려움” 때문에 가나안 정복시(征服時) 하나님은 “그들이 전쟁을 경험하도록 ‘허락(許諾)’ 하셨다 (신 7:17~19).
● 이것은 ”하나님의 이상적(理想的)인 계획이 변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신뢰부족(信賴不足) 때문이었다.
○. 교훈(敎訓)
1. “전쟁의 진정한 승리자는 하나님이시다.”
2. “우리는 도구이며, 영광은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
3. “신뢰와 순종이 있을 때, 하나님이 대신 싸우신다.”
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해 싸우시리니”는 믿음의 원리이다.”
◎ “하나님은 전쟁터에서도 우리의 진정한 싸움의 주인이시다.
우리가 할 일은 두려움 속에서 허둥대며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순종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신다.”
(10월 23일) (목) <차선책(次善策)>
1. "<차선책(次善策)>"이라는 제목(題目)의 고찰(考察)
“하나님의 이상적(理想的)인 계획은 전쟁이 아니라 백성을 온전히 신뢰하게 하는 것이지만, 현실에서는 백성의 불신(不信)으로 인해 전쟁(戰爭)이라는 ‘차선책(次善策)’이 필요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즉,
● 이상적인 계획: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하고 모든 것을 맡기는 삶
● 현실적 대응(차선책(次善策)): 백성의 불신(不信)으로 인한 전쟁참여(戰爭參與)
● 결론(結論): 그 과정에서도 하나님은 백성에게 능력을 경험하게 하셨고, 승리와 영광은 결국 하나님께 속했다.
2. 요약(要約)
1.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나오자마자 아말렉과 싸우게 되었는데, 이는 하나님의 신뢰 훈련이었다. (출애굽기 17:1~16)
2. 하나님은 백성의 불신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포기하지 않고, 전쟁을 통해 그들이 능력을 경험하게 하셨다.
3. 가나안 정복에서도 여호수아와 백성들은 전투에 참여했지만, 승리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었고 영광은 하나님께 속했다. (여호수아 6:15~20)
● 현실은 하나님의 이상적 계획과 다를 수 있으나, 그 안에서도 하나님은 신뢰와 충성을 시험하고 훈련하신다.
● 전쟁의 승패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태도이며, 모든 승리는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에서 나온다.
3. (출애굽기 17:7~13)과 (여호수아 6:15~20) 전쟁 비교
항목 /출애굽기 17:7~13 / 여호수아 6:15~20
적(敵)/ 아말렉 / 여리고
전투 방식 / 손 들고 기도하는 모세가 하나님께 의지, 이스라엘 군사 직접 전투 / 여호수아의 지시대로 성(城)을 돌며 하나님께 순종, 전투 참여
승리의 주체 / 하나님 (모세의 손이 들린 동안 승리) /하나님 (성벽 붕괴와 전리품)
백성의 역할 /직접 싸움 참여, 모세와 기도의 도움 /참여는 했으나 승리는 전적으로 하나님
공통점 /승리는 인간의 힘이 아닌 하나님께 달림, 신뢰와 순종 필요
○. <차이점(差異點)>
● 출애굽기 전투는 즉각적(卽刻的)인 생존과 신뢰회복(信賴回復)의 목적이 강함
● 여호수아 전투는 가나안 정복과 하나님의 약속성취(約束成就), 전쟁훈련(戰爭訓練)의 성격이 강함
○.<하나님을 신뢰하는 훈련(訓練)>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나오자마자 아말렉과 싸워야 했습니다.
당시 하나님은 그들에게 전쟁을 명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도록 훈련시키시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백성은 불평하고 의심했기에, 전쟁이라는 현실적 상황이 필요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차선책”입니다.
가나안 정복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호수아와 백성들은 여리고 성을 공격했지만, 승리는 인간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벽을 무너뜨리시고 전쟁을 이끄신 결과”였습니다.
백성들은 참여했지만, 전투의 결과와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 속했습니다.”
즉, 전쟁은 이상적 계획이 아닌 현실적 상황에서 생긴 일이지만, “하나님께 순종하고 신뢰하는 과정에서 능력과 영광을 경험하는 훈련의 장”이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여러분이 마주하는 현실 속 어려움도 하나님의 이상(理想)과 다를 수 있지만,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순종할 때 승리와 영광은 하나님께 속한다”는 교훈을 기억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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