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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과 생명의 떡과 생수(질문, 대답, 설명) 08/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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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5-08-08 08:00 조회1,62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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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과 생명의 떡과 생수

(8월 16일 안식일 / 일몰: 오후 7시 23분)

   

연구 범위: 출 15:22-16:36, 창 3:1-6, 출 17:1-7, 고전 10:4, 출 18:1-27, 고전 10:11

 

기억절: “어느 때까지 너희가 내 계명과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려느냐 볼지어다 여호와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줌으로 여섯째 날에는 이틀 양식을 너희에게 주는 것이니 너희는 각기 처소에 있고 일곱째 날에는 아무도 그의 처소에서 나오지 말지니라 그러므로 백성이 일곱째 날에 안식하니라”(출 16:28-30).

 

애굽을 떠난 후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을 향한 미지의 여정을 떠났다. 백성들은 힘들고 긴 여정을 겪으면서, 수많은 새로운 교훈을 배워야 했다. 주님께서 그들을 인도하고 돌보실 것이며, 분명 그들이 성장하기를 원하셨다. 그들은 규율, 절제, 희생, 이타심, 주님에 대한 신뢰 그리고 특히 순종을 배워야 했다.

모세는 그들에게 주신 지도자였기 때문에 백성들이 승리하려면 그의 지도력을 따라야 했다. 공동체로서 함께 지내며, 협력하고, 서로를 돕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들 앞에는 수많은 장애물과 도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영적 성장의 많은 부분은 그런 도전에 어떻게 대처하고 특히 큰 도전이 닥쳤을 때 모세의 지도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익숙한 속담이 그들의 상황에서도 사실이었으며, 그들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주님의 인도를 신뢰해야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은 그 교훈을 그렇게 쉽게 배우지 못했다. 

그러면 오늘날에는 누가 그 일을 할 것인가? 

 

학습 목표

깨닫기: 광야 길에서 물과 양식을 공급하셨던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진정한 필요를 채우는 분이시다. 

느끼기: 어려움이 닥치면 백성들은 불신 속에 원망했지만, 주님은 여전히 돌보시고 약속을 주셨다. 

행하기: 예수님이 생명을 공급해 주시는 분임을 신뢰하며 시험 속에서도 그분의 말씀과 인도를 순종한다. 

 

TMI 위로

2. 불평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의미가 담겨 있습니까?(출 15:26)

*답: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모든 것이 형통할 것이다. 순종하라는 기별이다. 

3. 떡에 관한 모세의 권면은 어떤 경험들을 통해서 주어졌다고 생각합니까?(신 8:3)

*답: 우리의 생명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4. 광야에서 물을 내신 것은 그분이 어떤 분이심을 말해주는 것입니까?(고전 10:4)

*답: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분이 생명의 샘이심을 나타낸다.

5. 모세는 이드로의 권면을 어떻게 받아들였으며 이를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출 18:23)

*답: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며 좋은 조언을 즉시 실행하라는 권면을 배운다.

6. 예수께서 만나와 물을 주신 경험을 통해서 교훈을 주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요 4:10)  

*답: 예수님이 양식과 생명수라는 것을 배우게 한다.

7. 광야를 지나온 이스라엘을 공격한 아말렉인에게 심판이 내린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답: 그들이 하나님을 알면서 반역적으로 공격했기 때문이다.

 

결론: 약속의 땅을 향한 이스라엘의 여정은 험난했으며 뜨거운 광야 길에 그들은 불평했다. 어려움이 닥칠 때면 그들은 인도하심을 잊어버리고 불평했지만, 하나님은 그런 그들을 돌보시며 약속을 주셨다. 우리는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며, 그분이 생명을 공급해 주심을 신뢰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순종이다.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인도하시고 우리의 주림과 목마름을 진정으로 채우실 수 있는 분은 바로 예수님이시다. 

 

8월 10일(일) 쓴 물

 

성경 이야기에는 선하든 악하든 다양한 인물이 등장해 저마다 역할을 맡고 있기에 우리는 줄거리, 장소, 시기, 각 역할들을 살피는데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어떤 이야기건 가장 중요한 핵심은 대부분 문제 해결의 과정과 그로부터 얻는 교훈이다. 이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문제 해결자이시며 화평케 하시는 분이시지만 그분의 일은 사람들의 불신으로 복잡해진다. 끊임없는 원망과 불순종의 결과로 히브리인들은 심각한 곤경, 심지어 참혹한 비극까지 경험했다. 그들은 불신과 회개하지 않음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자초했다. 

 

출애굽기 15:22-27을 읽어 보라. 홍해를 건넌 후 첫 번째 기적이 일어난 이유는 무엇인가?

[출15:22~27]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4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26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27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답: 물을 구하여 샘을 찾았으나 쓴물 샘이었다. 

 

이스라엘이 마주한 첫 번째 믿음의 시험은 물이었다. 뜨겁고 건조한 사막의 혹독한 환경을 고려할 때 그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사흘 길을 이동한 끝에 마침내 발견한 물은 마실 수 없는 물이었다. “마라”는 ‘쓴맛’을 뜻하는데, 쓴 물을 마시다 보니 돌보시는 주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믿음은 금세 흔들렸다. 그러나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시고 나무 한 조각으로 첫 번째 기적을 행하셨다. 물론 물을 달게, 마실 수 있게 만든 것은 나무가 아니라 주님이었다. 백성들은 이를 통해 (1) 주님의 때를 기다리는 인내심, (2) 하나님은 인간과 협력하여 일하신다는 중요한 교훈을 배워야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너무 많은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행하신 위대한 기적들, 곧 그들이 그토록 열정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출 15:11)라고 선포했던 기적들을 금방 잊었다.  

하지만 그들의 불평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애굽인을 괴롭혔던 “모든 질병 중 하나도”(출 15:26) 그들에게 내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은 그들을 보호해 주실 것이며,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충실히 따를 때만 이 약속을 경험하게 될 것이었다. 

 

<교훈> 광야 사흘 길을 이동한 뒤 쓴 물을 마시자 이스라엘의 믿음은 금세 흔들렸다. 찬양과 감사가 사라지는 시험 앞에 우리는 길을 인도하시는 이를 기억해야 한다. 

 

<부가설명>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내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지 모세가 아니다. 그런데도 군중은 모세를 원망하고 공격했다. 저자의 말대로 백성들의 불신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복잡하게 된다. 오늘날도 신자들의 생활과 교회의 사업이 이와 같은 상태를 자주 직면하지 않는가?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일하면 단순하게 빨리 이루어질 일을 사람의 계획과 방법으로 일하다가 문제가 생기고 복잡하게 된다. 가나안 정복에도 하나님께서 하라고 한 대로만 하면 쉬울 것을 ‘아간’ 같은 불신자가 일을 저질러서 막대한 손해를 보고 정복은 지연되었다. 오늘날도 교회가 기록한 말씀대로 하지 않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에서 질병으로 고통당한 기록은 없는 것 같다. 환경이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 땅, 건조하고 사망의 음침한 땅, 사람이 다니지 아니하고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렘2:6)이었다. 이 땅을 질병 없이 지낸 것은 애굽인의 질병을 하나도 내리지 않겠다고 하신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자비의 손길 덕분이었다. 여호와 하나님은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조건은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출15:26)이다. 여기에는 생활의 모든 면에 순종하는 것이 포함된 말씀이지만 특히 건강 법칙이 중심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애굽의 질병의 하나도 내리지 않겠다고 하신 말씀에 의해서다. 오늘날 재림 교인들이 이 건강 법도를 무시한지 오래 되지 않았는가? 

 

8월 11일(월) 메추라기와 만나

  

안타깝게도 이 순례 이야기에는 반복해서 나타나는 반역의 유형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거에 하나님의 강력한 손길이 그들을 도우셨고, 그분께서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는 사실을 그토록 어리석게 쉬이 잊었다. 그들은 현실의 문제에 부딪히면 최종 목적지와 약속하신 놀라운 미래를 보지 못했다. 이것은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서도 흔한 문제이다. 

 

출애굽기 16:1-36을 읽어 보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평한 이유는 무엇이었으며, 그 뒤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출16:1~36] 내용을 양식 때문에 불평할 때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신 기록이다. 각각 찾아서 읽기 바란다. 내용이 길어서 옮기지 않는다.

 

성경에 등장하는 유혹은 종종 먹는 것과 관련이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에덴동산에서, 타락은 금지된 선악과 열매를 따먹는 것과 관련되어 있었다(창 2:16, 17; 창 3:1-6). 예수께서 겼었던 광야 시험에서도 사탄의 첫 번째 공격은 음식에 관한 것이었다(마 4:3). 에서는 통제되지 않은 식욕 때문에 장자의 권리를 잃었다(창 25:29-34). 이스라엘의 불순종은 얼마나 자주 음식과 마시는 것에 연관되었던가! 그러니 모세가 후대에게 이것을 상기시킨 것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신 8:3) 사는 것이다. 

만나는 분명히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40년간 머무는 동안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신 하늘의 양식이었다. 이 선물을 통해 하나님은 당신께서 창조주이시며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분이심을 가르쳐 주셨다. 또한 하나님은 만나를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공급하시는 것을 통해 제칠일 안식일을 지키는 방법을 보이셨다.

매 주, 네 가지의 기적이 일어났다. (1) 5일 동안 일용할 만나를 주셨다. (2) 금요일에는 만나를 두 배로 주셨고, (3) 금요일부터 안식일까지는 남겨둔 만나가 상하지 않았으며, (4) 안식일에는 만나가 내리지 않았다. 

하나님은 이러한 기적을 끊임없이 행하심으로 백성들이 안식일을 기억하고 그 날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념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 “여호와가 너희에게 안식일을"(출 16:29) 주었다. 

 

<교훈> 불순종은 자주 음식과 마시는 것에 연결되어 있었다. 하나님은 사람이 떡이 아닌 말씀으로 사는 것을 강조하고, 만나를 주심으로 안식일을 기억하게 하셨다. 

 

<부가설명> 저자의 말대로 사람은 음식과 관련하여 시험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태초 에덴에서 사탄은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명한 나무 실과를 먹도록 유혹하여 아담 부부가 생명에서 사망으로 떨어졌다. 결코 죽지 않으리라는 말을 듣고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고 결코 죽지 않을 생명을 잃어버리고 사망이 되었다. 참 묘한 일이 아닌가? 그 후로 사람들은 종신할 때까지 먹어야 생명을 유지하게 되지만(창3:17~19) 그것도 종신하는 생명일 뿐이다. 영생이 종신하는 생명이 된 것이다. 아담의 자손들은 음식을 먹지 않으면 힘도 잃고 생명도 잃는다. 그러나 원래는 음식을 먹는 것은 생명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삶의 즐거움을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어떻게 아는가? 생명의 부활을 한 사람들은 불멸의 몸으로 부활한다. 다시 죽을 수 없는 몸이다(고전15:53,54, 눅20:35,36). 그래도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 실가를 먹으라고 주신다(계2:7). 생명나무 실과는 영생의 생명을 가진자라야 먹을 수 있는 실과다. 죽지 않을 몸으로 부활했기에 하나님은 이 실과를 먹을 권세를 회복해 주신 것이다. 생명나무 실과를 먹는 것은 영생의 생명을 소유한 권세를 누리는 것이다(계22:14). 이 땅에서도 건강하게 애굽의 질병과 상관없이 살기 위해서 재림성도에게 건강법칙을 특별히 주셨다. 감사하게 받아 실행해야 하지 않겠는가?

 

8월 12일(화) 반석에서 나는 물

  

뜨거운 광야에서는 많은 물이 필요하다. 백성들은 다투었고 그분을 믿지 않았으며 심지어 물을 주시려는 그분의 능력과 의지를 시험하기까지 했지만, 하나님은 물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그들은 불신 가운데 애굽을 그리워했다. 

 

출애굽기 17:1-7을 읽어 보라. 백성들은 이 사건에서 어떤 교훈을 얻었어야 했는가?

[출17:1~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2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이르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3 거기서 백성이 목이 말라 물을 찾으매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 4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조금 있으면 내게 돌을 던지겠나이다 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 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6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7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답: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고 다투지 않는 교훈을 받아야 했다.

 

모세는 그곳을 시험이라는 뜻의 “맛사,” 또 다툼이라는 뜻의 “므리바”라고 불렀다.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에도 불구하고 물을 주셨다. 이 두 이름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고 그분과 다투지 말 것을 상기시키는 이름이 되어야 했다(히 3:7, 8, 15).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임재뿐만 아니라 그분의 능력과 권위에 대한 많은 뚜렷한 증거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가운데 하나님이 계신지 심각하게 의문을 제기했다. 

“반석은 모세가 쳤으나 생명수가 흘러나오게 하신 분은 구름 기둥 속에 가리워져 모세 곁에 서 계셨던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모세와 장로들뿐 아니라 멀찌감치 서 있던 온 회중도 여호와의 영광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만약 구름이 없었다면 그들은 그 속에 계셨던 그분의 무서운 광채로 인하여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부조와 선지자, 298). 

물이 없으면 생명도 없기에 물은 생명의 상징이다. 우리 몸의 모든 세포에 물이 필요하다. 우리 몸은 70%가 물로 이루어져 있다. 심지어 우리의 뼈도 부분적으로 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광야에서 그들에게 물을 공급해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필요를 돌보시며 그들이 그분을 신뢰할 수 있다는 표징이었다. 물론 이번에도 돌보심의 유일한 조건은 순종이다. 

오랜 시간 이후 바울은 고린도전서 10:4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겪은 경험이 독특했다고 신자들에게 상기시킨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들을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물을 공급하셨고(시 78:15, 16) 다른 영적, 육체적 필요를 채워주셨다. 바울은 “그 반석은 그리스도시라”라고 선포했다. 그들에게 그리스도는 생명의 근원이자 영생을 주시는 분이셨다. 반석이 견고한 것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굳건하게 인도하셨다. 그분은 당신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의지할 수 있다. 

 

<교훈> 심각한 불신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에게 필요를 돌보시는 이로서 물을 공급하신 것은 그분을 신뢰할 수 있다는 표징이다. 돌보심의 유일한 조건은 순종이다. 

 

<부가설명> 사망의 세상에서 음식과 물은 죽을 생명을 죽을 때까지 유지하는 필수 필요다. 사랑이신 창조주께서는 비록 사망의 존재가 되었지만, 여자의 씨를 통하여 다시 생명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셨기에 목숨이 유지되는 동안 이 생명의 길로 돌아올 수 있도록 수명을 주시고 건강하게 유지하도록 음식물에 관하여 자세한 지침을 주셨다. 그 지침을 따라 건강관리를 바르게 하면 애굽인의 질병을 최대한 멀리할 수 있을 것이다. 때때로 불가항력적인 일이 있겠으나 그래도 이 지침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보다는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다. 뜨거운 광야에서도 그들의 건강을 최대한으로 유지할 수 있는 음식을 제공하시고 생수를 제공하신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예수께서 신령한 음식을 주시고 성령님의 생수를 마시게 하는 것을 상징하기도 한다. 오늘날 진리를 따라 바르게 생활하려고 하는 성도는 생명의 양식인 말씀과 성령님 역사를 위한 기도와 순종으로 생활할 때 병 많은 세상에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고 진리를 증거하는 귀한 증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8월 13일(수) 이드로 

 

르우엘이라고도 불리는(출 2:18)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모세의 아내 십보라와 두 아들 게르솜과 엘리에셀을 데리고 모세를 찾아왔다. 모세는 그들이 온다는 소식을 듣자, 그들을 맞으러 나갔다. 

 

출애굽기 18:1-27을 읽어 보라. 이스라엘 역사에서 어떤 중요한 변화가 이곳에서 이루어졌는가? 

[출18:1~27] 이드로가 이스라엘을 조직하도록 제안하고 그대로 실천한 내용이다. 각각 읽어서 확인하기 바란다.

*답: 모세가 혼자서 재판하는 광경을 보고 이드로는 신실한 자들을 택하여 지도자로 삼는 조직을 제안했고 모세는 그대로 했다. 

 

이스라엘을 위해 하나님이 행하신 놀라운 구원의 소식을 듣고서 이드로는 모세를 찾아왔다. 모세는 이드로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바로와 애굽 사람에게 행하신 모든 일과 길에서 그들이 당한 모든 고난과 여호와께서 그들을 구원하신 일을”(출 18:8)를 자세히 이야기했다. 

이드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하여 베푸신 자비와 특별한 개입하심을 찬양하며 선포하였다. “너희를 애굽 사람의 손에서와 바로의 손에서 건져내시고 백성을 애굽 사람의 손아래에서 건지셨도다 이제 내가 알았도다 여호와는 모든 신보다 크시므로 이스라엘에게 교만하게 행하는 그들을 이기셨도다"(출 18:10, 11). 

우리는 당신의 백성 가운데서 행하신 하나님의 역사가, 참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그분이 당신의 백성을 위해 무엇을 하실 수 있는지를 세상에 증거하는 일이었음을 이 일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드로는 참 하나님에 대해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에게 제안할 지혜롭고 유익한 조언도 가지고 있었다. 모세는 정의롭고 공정한 원칙에 따라 법체계를 조직해야 했다. 또한 정직하면서 헌신적이고 신실한 재판관이 필요했다. 이드로는 지혜 가운데 (1)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2) 신뢰할 수 있는 사람, (3) 부정한 이득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재판관의 자격을 열거했다.  

그는 유능하고 인품이 훌륭한 사람을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으로 임명하라고 했다. 이렇게 할 때에 모세의 행정 업무 부담이 줄어들 것이고 그는 중요한 문제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 결과 백성들을 더 잘 섬길 수 있을 것이었다. 

모세는 이드로의 현명한 조언을 받아들였고(출 18:24) 여러 가지 행정을 분담할 지도자들을 임명했다(신 1:9-18 참조). 

 

<교훈> 이드로는 참 하나님에 대해 알게 되었고 하나님 백성에게 제안할 지혜롭고 유익한 조언도 가지고 있었다. 그를 통해 이스라엘은 새로운 조직으로 구성되었다. 

 

<부가설명>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고전14:33,40). 노예 생활하던 사람들이라 삶에 질서가 없었다. 행진하는데로 상당히 무질서했을 것이다. 그러나 애굽에서 나올 때 항오를 따라 행진했다는 기록을(출13:18, 민33:1). 볼 때 행진하는 질서는 그때 훈련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행정 질서는 정비되지 않았던 것 같다. 이드로는 이 사실을 지적했고 모세는 어른의 조언을 따라 조직을 정비했다. 이드로는 아브라함과 그두라의 아들인 미디안의 후손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의 제안은 행정 조직이었다. 그래서 광야에서 행정 조직도 정비되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교회의 조직을 사람의 몸으로 비유했다. 머리를 중심해서 모든 지체들이 각각 있어야 할 자리에서 머리의 지시를 따라 질서 정연하게 움직인다. 몸은 자리다툼을 하지 않는다. 지체들이 전혀 불평하지 않는다. 한 지체가 상하면 온 몸이 아프다. 그것이 몸인데 교회가 그래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몸은 삶을 유지하기 위하여 음식과 물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자기 살을 먹고 피를 마시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성만찬 이야만이 아니다. 말씀이신 예수님을 기록된 말씀을 올바르게 잘 먹어야 한다. 생명수이신 성령님의 역사를 잘 따라야 한다. 그래서 성령을 마신다고 표현했다(고전12:13). 몸의 조직으로 몸과 같이 움직인다면 교회는 부흥하고 생명력이 세상을 덮을 수 있을 것이 아닐까?

 

8월 14일(목) 생명의 떡과 생수

 

고린도전서 10:11을 읽어 보라. 바울이 이 사건을 기록한 이유는 무엇인가?

[고전10:11]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답: 말세에 사는 신자들을 위하여 본보기로 기록했다.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의 경험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본보기이자 경고이며, 같은 문제를 피하게 도와줄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리스도인은 이들의 경험을 통해서 배우게 될 것이다. 이것은 “말세를” 사는 우리에게도 적절한 가르침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에게 성령을 보내셔서 “능력과 사랑과 절제”(딤후 1:7)로 신자들을 강하게 하셔서 그들이 올바른 결정을 내리고 당신의 가르침을 따를 수 있게 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새 생명의 근원이시며(요 14:6), 오직 그분만이 우리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며)…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롬 12:1, 2)게 하실 수 있다.

이후에 예수님은 사역 중에 이러한 구약의 기록, 특히 만나와 물을 통해 교훈을 주심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인도하신 분이신 당신에 대한 진리를 가르치시는 데 이러한 모습들을 활용하셨다. 

 

요한복음 4:7-15과 요한복음 6:31-51을 읽어 보라. 여기에는 그리스도인인 우리를 위한 어떤 진리가 나타나는가?

[요4:7~15]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8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9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1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11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15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요6:31~51]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34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36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41 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에 대하여 수군거려 42 이르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자기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느냐 4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45 선지자의 글에 그들이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46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47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50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답: 예수님이 생명수를 주시는 분이시고 예수님이 생명의 양식을 주시는 분이심을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에서 실물교훈 하셨다.

 

사마리아 여인은 다른 곳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을 그리스도께서 주심을 발견했다. 평화, 기쁨, 행복에 대한 내면의 목마름은 하나님께서 심으신 것이기에, 하나님만이 그것을 채워주실 수 있다(시 42:1, 2). 

나중에 예수님은 만나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백성에게 만나를 주신 것은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고 설명하셨다. 그다음 예수님은 이렇게 선언하셨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요 6:35). 

예수님은 자신이 생명의 떡이라고 두 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셨다(요 6:35, 41, 48). 

광야의 만나가 “하늘에서 내려온 떡”(요 6:31, 32)이었던 것처럼, 반석에서 나온 물도 그들의 갈증을 채워주는 그리스도의 선물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떡”(요 6:35, 48)이고 “생수”(요 4:10, 11, 14, 요 7:37, 38)이기 때문에 떡과 물은 이러한 물리적 측면 외에도 영적인 의미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적 갈증과 배고픔은 그분 안에서만 진정으로 채워질 수 있다.

 

<교훈> 예수님은 만나와 물을 주신 기록을 통해 광야에서 인도하신 당신에 대한 진리를 가르치셨다. 우리의 주림과 목마름은 그분만이 진정으로 채우실 수 있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요일2:25). 그러나 아담 부부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배반해서(호6:7) 이 생명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이 생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잃어버린 후에 그 생명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이 언제나 마음에 도사리고 있다. 그것이 인류의 목마름이고 배고픔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말한다(전3:11). 목마름과 배고픔을 진실로 느끼는 사람은 생명의 주인이시고 넉넉히 채우주시는 예수님을 찾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학문을 찾고 특히 철학을 찾는다. 기타 종교를 찾는다. 그러나 그것들은 다 터진 웅덩이다. 터진 웅덩이를 찾는 것은 엄연한 죄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렘2:13). 오늘날은 교회 안에도 이 터진 웅덩이를 찾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우리는 생명의 샘이요 양식인 진리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오직 말씀이다. 그리고 말씀을 순종하면 목마름과 배고픔이 넉넉히 채워질 것이다.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벧전2:8).

 

8월 15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부조와 선지자 26장 “홍해에서 시내산까지”를 읽어 보라. 

물과 관련된 사건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나라는 새로운 위기를 직면했다(출 17:8-16 참조). 사나운 호전적인 부족인 아말렉 사람들이 그들을 공격했다. “아말렉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의 주권에 대하여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분 앞에서 두려워하는 대신에 그분의 능력에 도전하였다. 모세가 애굽 사람들 앞에서 행한 이적들은 아말렉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었고 그들은 부근에 있는 민족들이 공포에 사로잡히는 것도 조소하였다. 그들은 히브리 사람들을 멸망시켜서 한 명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그들의 신들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들을 대항할 능력이 없을 것이라고 자만하였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해를 입거나 위협을 당한 일이 없었으므로 그들이 공격할 정당한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멸하려 한 것은 그분께 대한 그들의 증오와 도전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다. 아말렉 사람들은 오랫동안 횡포를 자행해 온 죄인들이었으며, 그들의 범죄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응하시도록 부르짖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긍휼하심이 지금까지 계속 그들에게 회개하도록 요청해 왔다. 그러나 아말렉인들이 지치고 무방비 상태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습격하였을 때에 그들은 자기 민족의 파멸을 결정지었다”(부조와 선지자, 300).

 

함께하는 토의를 위하여 

1.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위해 행하신 일을 통해 이드로가 참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배웠는지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보라(출 18:8-10). 그 원리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실인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교회는 세상에 어떤 종류의 증거를 제시하고 있는가? 우리는 세상에 하나님의 본성과 특성을 어떻게 나타내고 있는가? 반원들과 함께 이야기해 보라. 

*답: “10 가로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너희를 애굽 사람의 손에서와 바로의 손에서 건져내시고 백성을 애굽 사람의 손 밑에서 건지셨도다 11 이제 내가 알았도다 여호와는 모든 신보다 크시므로 이스라엘에게 교만히 행하는 그들을 이기셨도다 하고”하고 찬양했다. 오늘날 남은 자손도 이런 간증으로 세상에 증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2. 고린도전서 10:4을 다시 읽어 보라. 이것은 오늘날도 어떤 사람들이 여전히 믿고 있는 고대의 이단, 즉 구약의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에게서 본 것과 달리 복수심이 강하고 증오심이 많으며 용서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이 구절은 그 생각이 왜 틀렸는지를 어떻게 보여주는가?

*답: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고대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분도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이셨음을 확인시키자. 

3. 아말렉 사람들이 참 하나님에 대해 배울 기회를 가졌다고 기록한 위의 내용을 다시 읽어 보라. 그들의 태도를 이드로의 것과 대조해 보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말렉 사람들, 또 이스라엘이 접촉했던 고대 세계의 많은 부족들에게도 심판을 내리신 이유에 대해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가?  

*답: 아말렉은 에서의 후손이다. 아말렉은 에서의 손자다.“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의 첩 딤나는 아말렉을 엘리바스에게 낳았으니 이들은 에서의 아내 아다의 자손이며”(창36:12) 그들은 야곱의 하나님을 잘 알았다. 그러나 배반하고 공격했다. 아말렉을 위시하여 가나안 일곱 족속들이 하나님에 관한 기별을 충분히 들었고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으로 보기도 했다. 그런데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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