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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과 애굽에 내린 재앙(질문, 대답, 설명) 07/2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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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5-07-18 09:19 조회1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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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과 애굽에 내린 재앙

(7월 26일 안식일 / 일몰: 오후 7시 45분)

 

연구 범위: 출 7:8-10:29; 민 33:4; 롬 1:24-32; 시 104:27, 28; 사 28:2, 12-17; 사 44:9, 10, 12-17

 

기억절: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내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과 같더라"(출 9:35). 

 

한 농부가 당나귀를 몰려고 했지만, 당나귀는 움직이지 않았다. 농부는 굵은 나뭇가지를 가져와 당나귀를 세게 후려쳤다. 다시 당나귀에게 말하자 그제야 당나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른 이가 농부에게 그것이 왜 효과가 있었는지 묻자, 농부는 "먼저 주의를 끌어야 하는 법이지요"라고 대답했다.

동물 학대에 관한 문제는 접어 두고, 이 이야기에는 생각할 점이 있다. 특히 히브리인들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온다는 맥락에서 그렇다. 모세는 사명을 부여받고 바로에게 나아가 저 유명한 하나님의 명령인 "샬라흐 에트 아미”(shalach et ami, 내 백성을 보내라)를 전한다. 

하지만 바로는 하나님의 백성을 놓아주고 싶어하지 않았다. 성경은 애굽인들이 히브리인들은 군사적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두려워했음에도 불구하고(출 1:10 참조) 바로가 왜 그렇게 망설였는지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가장 가능성 높은 이유는, 대부분의 노예제도가 그러했던 것처럼, 순전히 경제적인 이유였을 것이다. 히브리인들은 값싼 노동력이었고, 바로는 이 노예들에게서 얻는 경제적 이익을 잃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바로의 주의를 끌 뿐만 아니라 마음을 바꾸도록 납득시킬 필요가 있었다.

 

학습 목표

깨닫기: 애굽에 내린 재앙은 거짓 신들을 심판하고 하나님의 주권과 권고하심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느끼기: 주님은 인간을 돌이키기 위해 놀라운 역사를 행하지만 완고한 마음은 어떤 상황에도 이를 거절한다. 

행하기: 우리의 굳은 마음을 돌이키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겸손히 따르며 순종한다. 

 

TMI 위로

2. 애굽 왕이 내어놓은 뱀이 모세의 뱀에게 먹힌 것은 어떤 의미가 담겨 있습니까?(출 7:12)

*답: 하나님께서 사탄의 권세를 이기신다는 것을 드러내고 바로가 신이라는 망상에서 벗어나라는 경고였다.

3.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다는 말은 어떤 의미입니까?(출 10:1) 

*답: 바로가 자기의 선택을 고집하는 것을 그대러 버려두셨다는 뜻이다(롬1:28).

4. 애굽에 재앙을 내리신 중요한 이유는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합니까?(출 8:19)

*답: 우상 숭배에 깊이 빠져있는 애굽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깨닫도록 하신 방법이다.

5. 바로가 양보해서 먼저 협상을 낼 때 어떻게 대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합니까?(출 8:25) 

*답: 하나님의 원칙에 굳게 서서 대화해야 한다.

6. 애굽에 재앙이 더해질수록 점점 더 어떤 양상을 보인다고 생각합니까?(출 9:20, 21)

*답: 두 무리로 여론이 갈라졌다. 

7. 애굽을 향한 하나님의 재앙이 무서웠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답: 심판이었기 때문이다. 기회를 무산시키는 반응을 했기 때문이다.

 

결론: 바로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도 명령 듣기를 계속해서 거절했다. 애굽에 내린 재앙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신들을 벌하시며 신들이 아무 것도 아님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주님은 사람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않으시며 사람이 강퍅한 상태에 있는 것을 돌이키기 위해 역사하신다. 하지만 인간의 완악한 마음은 어떤 상황에도 그 뜻을 거절한다. 애굽에 내린 재앙이 분명하고 강했던 것은 그들이 돌이키기를 원하는 그분의 뜻이 어떠한지를 보여준다. 

 

7월 20일(일) 하나님 대 애굽의 신들

 

출애굽기 7:8-15을 읽어 보라. 히브리인의 하나님과 애굽의 신들 사이의 첫 번째 대결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출7:8~15]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9 바로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이적을 보이라 하거든 너는 아론에게 말하기를 너의 지팡이를 들어서 바로 앞에 던지라 하라 그것이 뱀이 되리라 10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여 아론이 바로와 그의 신하 앞에 지팡이를 던지니 뱀이 된지라 11 바로도 현인들과 마술사들을 부르매 그 애굽 요술사들도 그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되 12 각 사람이 지팡이를 던지매 뱀이 되었으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키니라 13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는도다 15 아침에 너는 바로에게로 가라 보라 그가 물 있는 곳으로 나오리니 너는 나일 강 가에 서서 그를 맞으며 그 뱀 되었던 지팡이를 손에 잡고,

*답: 바로의 신적 권위를 상징하는 뱀이 모세의 손에서 제어 당하고 모세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키는 것으로 하나님의 신적 권능이 크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도록 기별을 주셨다.

 

다가올 싸움은 살아계신 하나님과 애굽의 "신들" 사이의 대결이었다. 상황을 더 악화시킨 것은 바로가 자신을 그러한 신들 중 하나로 여겼다는 것이다. 주님은 애굽인이나 애굽 나라와 싸우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신들과 싸우셨다. 이집트인들은 1,500개가 넘는 신과 여신을 숭배했다. 성경 본문은 이를 명확하게 말한다. "애굽의 모든 신을 내가 심판하리라 나는 여호와라"(출 12:12). 이후에,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난 여정을 이야기할 때 이 사실은 다시 한 번 강조된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신들에게도 벌을 주셨더라"(민 33:4).

애굽의 신들에 대한 이러한 심판은 지팡이가 뱀으로 변하는 기적에서도 잘 증명되었다(출 7:9-12). 이집트에서 뱀의 모습(Uraeus, 우라에우스)의 여신 와제트(Wadjet)는 코브라로 의인화되었으며 하(下)이집트에 대한 주권을 상징했다. 코브라의 상징은 바로의 왕관에서 볼 수 있는데, 이는 그의 권능, 신성, 왕권, 그리고 신적 권위의 표시였으며, 이 여신이 바로의 적들에게 독을 뿜어낼 것이라는 믿음을 담은 것이었다. 애굽인은 또한 신성한 뱀이 바로를 사후세계로 인도할 것이라고 믿었다.

아론의 지팡이가 뱀이 되어 왕 앞에서 다른 모든 뱀들을 삼켰을 때, 애굽의 마법이나 주술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높으심이 드러났다. 바로의 권능의 상징이 정복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은 아론과 모세의 손에 들어왔다(출 7:12, 15). 첫 번째 대결은 애굽에 대한 하나님의 권능과 주권을 보여주었다. 하나님의 대리자인 모세는 "신" 바로보다 더 큰 권위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고대 이집트인들이 뱀 신 네헤브카우(Nehebkau, "영혼들을 지배하는 자")를 신성하게 여기고, 숭배하고, 경배했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집트 신화는 이 뱀 신이 일곱 마리의 코브라를 삼켰기 때문에 큰 힘을 가졌다고 말한다. 따라서 하나님은 애굽인들에게 뱀 신이 아닌 당신에게 주관하는 능력과 권능이 있음을 전달하셨다. 이토록 강력한 대결이 있었기에, 애굽인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기별을 즉각적이고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교훈> 주님은 애굽이 아닌 그들의 신들과 싸우셨으며 이 사실은 말씀과 모세의 지팡이가 그들의 신의 상징인 뱀을 먹어 삼킨 이야기 가운데 분명하게 전달되었다. 

 

<부가설명> 사람들은 자기가 죽을 존재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산 자는 죽을 줄을 안다고 했다(전9:5). 여기 산 자는 육체의 생명으로 죽을 때까지 사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사탄의 속임수와 맞아떨어져서 영혼불멸을 믿게 되고 그 세계는 신의 세계와 연결되었다고 상상한 것이다. 그래서 신화를 만들었다. 신화는 영혼불멸과 연결된 인간의 몽상(夢想)이다. 권력을 잡은 왕들은 이런 몽상을 권력과 연결시켜서 자신을 신격화하고 그것을 표상하기 위하여 동물들을 신격화해서 인간을 동물보다 못한 존재로 인식하게 하고 신격화한 동물을 숭배하게 되었다. 성경은 이것을 지적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1:21~23). 애굽의 바로를 위시하여 모든 국민이 이렇게 동물들을 신으로 만들어 숭배했다. 그중에 왕권을 상징하는 것으로 뱀 코부라를 택했다. 태초에 사탄은 뱀을 통하여 인간을 속였다. 그 후로 사탄은 뱀과 용으로 상징되었다. 바로는 뱀을 권력의 상징으로 선택하여 자신도 모르게 그가 사탄의 대리자라는 것을 드러냈다. 그러나 사탄은 여호와 하나님께 종종당하는 피조물일 뿐인 것을 모세를 통하여 드러낸 것이다. 

 

7월 21일(월) 누가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들었는가

 

출애굽기 7:3, 13, 14, 22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출7:3,13,14,22]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내 표징과 내 이적을 애굽 땅에서 많이 행할 것이나/ 13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는도다/ 22 애굽 요술사들도 자기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므로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답: 기록대로는 여호와께서 바로으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다.

 

출애굽기는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다고 9번 기록하고 있다(출 4:21; 출 7:3; 출 9:12; 출 10:1, 20, 27; 출 11:10; 출 14:4, 8; 롬 9:17, 18 참조). 또 다른 9번은 바로가 자신의 마음을 강퍅하게 했다고 말한다(출 7:13, 14, 22; 출 8:15, 19, 32; 출 9:7, 34, 35).

왕의 마음을 강퍅하게 한 것은 누구였는가? 하나님인가, 아니면 바로 자신인가?

출애굽기의 열 재앙 이야기 가운데 처음 다섯 재앙에서 바로 자신이 스스로 마음을 강퍅하게 했다는 것은 중요한 사실이다. 곧 바로가 자신의 마음을 굳게 만들었다. 

그런데 여섯 번째 재앙부터 성경은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말한다(출 9:12). 이 모든 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께서 이미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바로 자신이 한 선택, 곧 그의 고의적인 행동이 강화되거나 심화되었다는 것이다(출 4:21).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은 바로가 회개하고 마음 속 어둠과 오류에서 벗어나도록 돕기 위해 재앙을 보내셨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에 새로운 악을 만드신 것이 아니다. 다만 하나님은 바로를 그 자신의 악한 충동에 그대로 두셨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제지하는 은혜가 소용이 없었기에, 그의 악함에 그대로 두신 것이다(롬 1:24-32 참조). 

바로에게는 자유 의지가 있었기에 하나님을 선택할 수도, 거역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거역하기로 결정했다. 

교훈은 분명하다. 우리에게는 옳고 그름, 선과 악, 순종과 불순종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졌다. 

하늘의 루시퍼, 에덴의 아담과 하와, 애굽의 바로, 그리고 오늘의 우리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어느 편에 서든지 우리는 생명과 죽음 중 하나를 선택한다(신 30:19). 

햇빛이 버터와 진흙에 내리쬐는 것을 상상해 보라. 버터는 녹지만 진흙은 굳는다. 같은 태양열이 내리쬐지만 열에 대한 반응도 다르고 결과 또한 다르다. 그 결과는 태양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주체의 반응에 따라 다르다. 바로의 경우도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을 향한 그의 마음의 태도에 따른 결과가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교훈> 하나님은 바로가 회개하도록 돕기 위해 재앙을 보내셨지만, 그에게는 하나님의 제지하는 은혜가 소용이 없었기에, 그의 악함 가운데 그대로 두신 것이다. 

 

<부가설명> 사람들은 자유의지라는 말을 아주 잘 사용하고 있다. 성경에는 사람에게 선택할 수 있는 여건을 먼저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사람에게 주셨다. 그런데 사탄이 사람에게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잃게 하였다. 사람은 이제 생명 없는 사망의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아담 후손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아담 안에서 다 사망이 되었다(고전15:22). 아담의 후손은 생명 있는 사람이 없다. 다 종신형을 받은 사형수 들이다. 사형이 아니고 종신형인데, 감옥에서 종신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형의 다른 형태다. 무기징역과도 다르다. 그가 감옥에서 몇 년을 생존하든지 관계없다. 30세에 종신형을 선고 받았는데 31세 죽음으로 종신하면 그는 감옥에서 나와서 매장되거나 화장된다. 즉 존재가 없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먹어서 죽게 된 아담에게 당장 존재를 상실하게 하지 않고 종신형을 선고하셨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3:17). 이세상 모든 사람들은 다 종신형을 받은 사형수들이다. 이런 사람에게 생명이시며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종신이 아닌 영생을 회복하도록 기회를 주셨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신30:19). 이미 사람은 사망의 존재요 그것은 저주의 모습이다. 거기에 하나님께서 생명과 복을 갖다놓고 사망에 그냥 머물것이냐 아니면 생명과 복으로 나올 것이냐를 선택하게 하신 것이다. 이것을 마치 사람이 사망을 선택하면 사망이 되고 생명을 선택하면 생명을 얻는다는 오해를 할 수 있는 표현을 자유의지라는 말로 사용한다. 사망은 선택하기 전에 이미 사람이 처한 상태라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사람이 사망도 생명도 선택하지 않으면 죽지도 살지도 않는 상태에 머물게 된다는 말인가? 잘 생각해보자.

 

7월 22일(화) 처음 세 개의 재앙

 

이집트에서 발생한 열 가지 재앙은 이집트 사람이 아니라 그들의 신을 겨냥한 것이었다. 각 재앙은 적어도 하나 이상의 신에게 영향을 미쳤다.

 

출애굽기 7:14-8:19을 읽어 보라. 이 재앙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출7:14~8:19] 본문이 너무 길어서 옮기지 않는다. 각각 찾아 읽어보기 바란다. 내용은 피, 개구리, 이 재앙에 관한 내용이다. 그런데 이 재앙은 술객들이 흉내내지 못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바로와의 대화가 어렵고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고 알려주셨다(출 7:14).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와 애굽 사람들에게 당신을 보여주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그분은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들과 소통하기로 하셨다. 또한 히브리인들도 이 대면을 통해 그들의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이를 통해 유익을 얻게 될 것이었다. 

첫 번째 재앙은 나일강의 신 하피(Hapi)를 향한 것이었다(출 7:17-25). 애굽 사람들의 삶은 전적으로 나일강의 물에 의존하고 있었다. 물이 있는 곳에는 생명이 있었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하피 신을 생각해내고 생명의 공급자로 숭배했다. 

물론 살아계신 하나님만이 생명의 근원이시며 물과 음식을 포함한 만물의 창조주이시다(창 1:1, 2, 20-22, 시 104:27, 28, 시 136:25, 요 11:25, 요 14:6). 물이 피로 변하는 것은 생명이 죽음으로 바뀌는 것을 상징한다. 하피는 생명을 공급할 수도 보호할 수도 없었다. 이것은 오직 주님의 능력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그런 다음 하나님은 바로에게 다른 기회를 주신다. 이번에는 개구리 여신 헤켓(Heqet)이 그 대상이었다(출 8:1-15). 나일강은 생명을 주는 대신 이집트인들이 두려워하고 혐오하며 꺼리는 개구리를 쏟아 놓았다. 그들은 개구리들을 없애고 싶어한다. 온 땅을 덮은 개구리가 정해진 때에 사라진 것은 이 재앙의 뒤에도 하나님의 능력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세 번째 재앙은 가장 짧게 묘사되어 있다(출 8:16-19). 이 구절이 말하는 벌레의 종류(kinnim, 히브리어)는 명확하지 않다(파리, 모기, 진드기, 이 등으로 추정). 

이 재앙은 애굽의 신인 게브(Geb)를 향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땅의 먼지에서 이 벌레가 나오게 하셨고(창조의 이야기를 연상하게 한다), 이들은 온 땅에 퍼졌다. 오직 하나님만이 생명을 창조할 수 있기에 이 기적을 흉내 낼 수 없었던 마술사들은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출 8:19)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바로는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  

 

<교훈> 바로와 대화가 어려움에도 주님은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당신을 보이셨다. 그들과 히브리인은 이 대면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유익을 얻을 것이었다. 

 

<부가설명> 애굽의 술사들은 피가 된 물을 도로 물이 되게 하는 능력이 없었다. 그들이 한다는 것은 기껏 물이 피가 되도록 했다. 그들에게 임한 고통을 모방하여 그들도 그런 능력이 있다고 주장했는데 결과는 물이 피가 되어 그들이 고통을 가중하는 것 뿐이었다. 개구리도 똑 같은 경우다. 그들이 능력이 있었으면 개구리를 강으로 들어가도록 요술을 했어야 되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티끌이 이가 되었을 때, 그들은 그것을 모방할 수 없었다. 교과 저자의 말대로 이것을 생명과 관련된 재앙이다. 요술사들이 이미 있는 것을 이용하는 흉내는 내었으나 티끌이 생명의 존재가 되게 하는 것을 할 수 없었다. 뱀이 되게 한 것은 착시현상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사람은 마른 나무를 생명이 되어 움직이는 뱀이 되게 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고 이(虱)를 만들지 못한 것은 이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虱)는 태초에 어떤 역할을 한 곤충인지 우리는 모르지만, 아담이 범죄한 후에 땅이 저주를 받고 어떤 식물이 가시와 엉겅퀴로 변질되는 것으로 통하여 하나님께서 심히 선하게 창조한 피조물이 변질 된다는 것을 나타내셨다. 모든 해충이 그렇고 모든 해로운 초목도 그렇다. 이는 무엇이 변질 되어서 해충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티끌은 이 해충으로 변질된 이가 되어 애굽인을 괴롭혔다. 그것도 그들은 신으로 섬긴 곤충이다. 사람이 곤충을 신으로 숭배했으니 사람은 곤충보다 저열한 존재가 된 것을 드러내었다. 

 

7월 23일(수) 파리, 가축, 종기

  

출애굽기 8:20-9:12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은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 아무리 크게 나타나더라도 인간은 여전히 그분을 거부할 자유가 있음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출8:20~9:12] 이 내용은 파리, 가죽 종기, 사람 종기에 관한 재앙이다. 찾아 읽어보기 바란다.

 

애굽의 신 우아치트(Uatchit)는 파리의 신, 늪과 습지의 신이었다. 케프리(Khepri, 떠오르는 태양, 창조, 재생의 신)는 딱정벌레 머리로 묘사되었다. 이 “신들”은 주님 앞에 패배했다. 이 기록(출 8:20-24)에서 애굽인들이 고통을 받는 동안 히브리인들은 보호받았다. 실제로 더 이상의 재앙이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이 땅에서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네가 알게”(출 8:22)하기 위한 일이었다. 마침내 바로는 협상을 시작했다. 압력이 커지고 있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분께 제사를 드리는 것에 동의했지만, 오직 애굽 땅 안에서 그렇게 하기를 원했다(출 8:25). 하지만 그의 요구대로 할 수 없었다. 애굽에서는 일부 동물이 신성하게 여겨졌기 때문에 그 동물들을 제사하면 애굽인들이 히브리인들에게 폭력을 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이것은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었다. 

한편, 다음 재앙(출 9:1-7)은 가축에게 내린다. 애굽의 사랑과 보호의 여신인 하토르(Hathor)는 소의 머리를 가진 신으로 묘사되었다. 황소 신 아피스(Apis)도 고대 애굽에서 매우 인기 있고 높이 여겨지는 신이었다. 따라서 다섯 번째 재앙으로 애굽인의 가축이 죽은 것은 또 다른 중요한 신이 패배한 것을 의미했다. 

여섯 번째 재앙(출 9:8-12)은 의술, 마법, 지혜의 여신인 이시스(Isis)의 완전한 패배를 보여주었다. 이 재앙을 통해 전쟁과 전염병의 여신인 세크메트(Sekhmet)와 의술과 치유의 신인 임호텝(Imhotep) 역시 패배했다. 이 신들은 그들을 숭배하는 자들을 보호하지 못했다. 

이제는 마술사와 주술사조차도 너무 괴로워서 왕궁에 출두할 수 없는 역설적인 모습은 그들이 하늘과 땅의 창조주 앞에서 무력하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낸다. 

열 가지 재앙의 이야기 가운데서 처음으로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출 9:12)다는 구절이 등장한다. 이 구절이 다소 혼란스럽게 보일 수 있지만 전체 맥락을 보면서 이해한다면, 주께서는 우리가 당신을 거듭 거부할 때 그 결과를 스스로 거두게 하신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교훈> 주께서 하시는 일을 깨달은 바로는 협상을 시작했다. 오직 애굽 땅에서 그렇게 하기를 허락했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를 거절했기에 재앙은 계속되었다. 

 

<부가설명>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시고 완악하게 하셨는가?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롬9:17). 이것은 출9:16의 말씀을 바울이 인용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바로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온 세상에 전파도게 하시려는 것이 의도였다. 바로가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긍정적인 반응을 했으면 자기도 살고 애굽도 구원의 길에 들어섰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절호의 기회를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에 몰두했기에 자기도 망하고 애굽도 망했다. 그랬어도 하나님의 이름은 온 세상에 드러났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요3:17~19). 우리는 은혜의 기회를 헛되게 하지 않아야 한다(고후6:1,2).

 

7월 24일(목) 우박, 메뚜기, 흑암

 

출애굽기 9:13-10:29을 읽어 보라. 이 재앙들은 바로의 마음을 바꾸는 데 얼마만큼 성공적이었는가? 

[출9:13~10:29] 이것도 각각 읽어보기 바란다. 우박, 메뚜기 흑암 재앙 사건이다.

*답: 조금 바뀌었으나 온전히 굴복하지 않았다.

 

누트(Nut)는 애굽의 하늘과 천상의 여신으로 하늘 아래와 땅 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스리는 신으로 묘사되었다. 오시리스(Osiris)는 농작물과 다산의 신이었다. 우박은 성경에서 종종 하나님의 심판과 연관되어 나타난다(사 28:2, 17; 겔 13:11-13). 

이 재앙 동안 안전한 피난처에 소유물을 숨긴 사람은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출 9:20, 21). 이제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에 따라 행동할 것인지, 아닌지의 시험이 주어졌다. 

하나님은 바로를 살려두신 목적이 온 땅이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선언하신다(출 9:16). 애굽 왕은 이제 자신이 죄를 지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 마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세트(Seth)는 애굽의 폭풍, 전쟁, 무질서의 신이었다. 세트는 이시스와 함께 농경의 신으로 여겨졌다. 슈(Shu)는 대기의 신이었다. 세라피스(Serapis)는 신성한 위엄, 다산, 치유, 사후 세계의 화신이었다. 그러나 애굽의 많은 신들 중 어느 신도 하나님의 심판을 막을 수 없었다(출 10:4-20).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사 44:9, 10, 12-17). 

바로의 신하들은 이스라엘을 놓아주라고 간청했다. 하지만 바로는 다시 거부했다. 바로가 타협안을 제시했지만 모세는 거절했다. 여성과 어린이는 예배와 신앙 공동체의 필수적이고 분리할 수 없는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라(Ra)는 이집트의 주신이자 태양신이었다. 토트(Thoth)는 달의 신이었다. 이 두 신 모두 빛을 줄 수 없었다. 바로는 다시 협상을 시도하지만 헛수고였다. 애굽에는 3일 동안 어둠이 덮쳤고 이스라엘 백성이 사는 곳에는 빛이 있었다. 이러한 차이는 무엇보다 극적인 장면이었다.

하지만 바로는 나라가 큰 타격을 입었음에도 굴복하지 않고 맞서 싸우기로 결심했다. 그의 더 깊은 동기는 알 수 없지만, 어느 순간 그것은 순전히 자존심의 문제가 되었을 수도 있다. 증거가 아무리 강력하고,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리 명백하며 심지어 그의 신하들조차 “어느 때까지 이 사람이 우리의 함정이 되리이까 그 사람들을 보내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소서 왕은 아직도 애굽이 망한 줄을 알지 못하시나이까”(출 10:7)라고 말한다. 올바른 선택이 바로 눈앞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는 잠시 흔들리는 듯 하다가도 결국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지 않았고 백성들을 보내기를 거부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라는 말씀이 이보다 극적으로 드러날 수 있겠는가?

 

<교훈> 말씀을 듣고 대비한 사람은 재앙에서 보호 받을 수 있었다. 재앙은 거부하는 애굽에 집중되었지만 온 나라가 멸망하는 위기에도 바로는 뜻을 꺾지 않았다.  

 

<부가설명> 먼저 있었던 여섯 재앙은 애굽인들이 숭배하던 동물들에 대한 것이 중심이었다. 오늘 교과에 나오는 세 재앙은 천연계 순환과 관련되었다. 우박 재앙이 그렇고 흑암 재앙이 그렇다. 중간에 있는 메뚜기 재앙도 농사와 관련된 재앙이다. 이런 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천연계 순환과 농사를 주관하신다는 것을 드러낸다. 창조하시고 피조물을 섭리하시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비와 이슬은 그것을 주장하는 신이 따로 있고 농사를 주관하는 신이 따로 있고, 이렇게 많은 신들을 상상으로 만들고 그 신들을 숭배한다. 이렇게 많은 신을 숭배하는 애굽인과 바로에게 오직 유일하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친히 주관하신다는 것을 드러내시고 그들이 숭배하는 것들은 인간의 무지가 스스로 만들어낸 상상의 산물이라는 것을 증명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어떤 분인지 깨달아 그분을 경배하도록 깨닫게 하고 이스라엘을 해방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배려였다. 출9:15,16이 이 사실을 계시한다. 그러나 바로는 이 기회도 버렸다. 

 

7월 25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부조와 선지자 23장 “애굽의 재앙,” 265-272를 읽어 보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애굽인들의 포악과 잔혹함을 직접 경험하도록 허락하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우상숭배의 부패한 감화에 속지 않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바로를 대하시는 과정에서 여호와는 당신이 우상숭배를 미워하시고 잔인한 행위와 압제를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의지를 나타내셨다. …왕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는 초자연적 능력이 행사되었던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에게 당신의 능력에 대한 아주 분명하고 놀라운 증거를 주셨지만, 왕은 그 빛에 유의하기를 완고하게 거절했다. 무한한 능력이 나타난 것을 그가 거절할 때마다 그의 반역은 더욱 굳게 결정되었다. 처음 표적을 거부하면서 그가 뿌렸던 반역의 씨앗이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부조와 선지자, 268).

“해와 달은 애굽 사람들의 숭배의 대상이었다. 이 신비로운 암흑으로 애굽 사람과 그들의 신들은 모두 노예들을 위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이 심판이 아무리 두려운 것이었을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자비와 그들의 멸망을 원치 않으심을 나타내는 증거였다. 가장 무서운 마지막 재앙을 내리시기 전에 그분은 사람들에게 돌이키고 회개할 기회를 주고자 하셨다"(부조와 선지자, 272).

 

함께하는 토의를 위하여 

1. 백성들을 보내주는 것이 명백하고 올바른 선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여전히 거부할 만큼 바로는 왜 그렇게 스스로 완악하게 행동하게 했는지 더 깊이 생각해 보라. 사람이 어떻게 하면 그토록 자기기만에 빠질 수 있는가?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우리 자신을 위한 어떤 경고를 얻을 수 있겠는가? 항상 올바른 결정과 올바른 길이 자신의 앞에 있는데도 우리는 얼마나 죄 가운데 완악해져서 완전히 비참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가? 성경의 어떤 인물들도 이와 같은 잘못을 저질렀는가? 유다를 생각해 보라.

*답: 마음을 사탄에게 빼앗기면 스스로 돌이킬 수 없는 힘에 굴복하게 된다. 가룟 유다가 그랬다(요13:2).

2. 바로는 한때 자신이 애굽 땅과 백성에게 가져온 황폐함 가운데 “이번은 내가 범죄하였노라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나와 나의 백성은 악하도다”(출 9:27)라고 선언했다. 당시에는 놀라운 죄의 고백이었지만, 그것이 진심이 아니었음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답: 그가 고백한 말대로 행하지 않은 것으로 그의 고백이 진심이 아닌 것을 드러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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