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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과 불붙은 떨기나무(질문, 대답, 설명) 07/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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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5-07-04 08:44 조회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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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과 불붙은 떨기나무

(7월 12일 안식일 / 일몰: 오후 7시 54분)

  

연구 범위: 출 18:3, 4; 출 3:1-22; 창 22:11, 15-18; 출 6:3; 욜 2:32; 출 4:1-31; 창 17:10, 11

 

기억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에 데려가려 하노라"(출 3:7, 8).

 

하나님의 부르심은 종종 우리 삶의 방향을 바꾼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 부르심을 따른다면 하나님의 길이 언제나 우리에게 가장 좋은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다만 때로는, 특히 처음에는 그 부르심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모세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도 마찬가지였다. 그 부르심은 불붙은 떨기나무에서 주님을 만남으로 시작되었다. 모세가 자연현상을 얼마나 알았는지 관계없이 그 불은 보통 불과 달랐기에 그는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기적인 것을 알았고, 그 기적은 분명히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주님께서 그를 특별한 사명을 위해 부르고 계신 것이 분명했다. 문제는 과연 모세가 그 부르심에 응답할 것인가? 그것이 삶에 가져올 급격한 새로운 변화를 감수할 것인가 여부였다. 그는 처음에는 그 부르심을 그다지 반기지 않았다.

당신에게도 분명한 계획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그 계획의 방향을 바꾸게 하신 일이 있었는가. 우리에게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께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삶에 주어진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르고 그분이 이끄시는 길을 따라 가는 것이 가장 만족스러운 삶의 길인 것이 분명하다. 그 길이 항상 평안한 것은 아니며 모세에게도 쉬운 길이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길로 부르시는데도 우리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학습 목표

깨닫기: 하나님께서 모세를 크게 사용하실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부르심을 따라 그 길을 갔기 때문이다. 

느끼기: 그분을 따를 때 인생의 길이 바뀌기도 하지만 그분은 결국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 

행하기: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고 내게 주신 진리를 충실히 실천하며 그분을 따른다. 

 

TMI 위로

2. 조용할 것만 같던 광야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어떻게 인도하셨습니까?(출 3:6)

*답: 떨기나무 불꽃 중에 나타나셔서 조상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하시고 부르셨다.

3. 노예에 불과한 이들을 주께서 내 백성이라고 부르시는 데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출 3:7)

*답: 그들은 조상과 언약하신 그 언약의 백성이라는 의미가 있다.

4. 하나님의 이름을 묻는 모세에게 주신 대답은 어떤 의미가 담겨 있습니까?(출 3:13) 

*답: 그분의 신분을 분명히 밝히고 이름의 뜻을 깨닫게 하는 의미가 있다.

5. 모세의 변명을 대하시는 모습에서 우리는 인간을 향한 그분의 어떤 모습을 알 수 있습니까?(출 4:12)

*답: 설득하고 이해시켜서 일을 하게 하시는 사랑과 인자를 알 수 있다.

6. 사명을 가지고 애굽으로 가던 모세가 죽을 뻔 했던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출 4:24)

*답: 할례 때문인데,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분명한 지시에 충성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7. 모세가 하나님과 함께 놀라운 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었다고 생각합니까? 

*답: 자기 생각을 벗어버리고 말씀하신 대로 순복한 것이다. 

 

결론: 하나님의 부르심은 인생의 길을 바꾸지만 우리가 부르심을 따를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심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를 찾아와 내 백성을 이끌라고 부르셨지만, 그는 여러 이유로 변명했다. 하나님은 모세를 자비로 대하시며 함께하심을 약속하심으로 그를 세우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르기 전에 그에게는 온전한 순종이 필요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크게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그 길을 갔기 때문이다. 

 

7월 6일(일) 불붙은 떨기나무

 

미디안으로 도망친 후, 모세는 비교적 편안한 삶을 살았다. 그는 결혼하여 게르솜과 엘리에셀이라는 두 아들을 두었고(출 18:3, 4), 장인이자 미디안의 제사장인 이드로의 대가족의 일원으로 지냈다. 그는 다윗처럼(삼하 7:8) 목자로서 40년을 평온하게 보내며 특히 천연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임재를 누렸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모세가 그저 꽃향기를 즐기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주님과 동행한 이 시간은 그를 변화시켰고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준비하게 했다. 또한 하나님은 이 조용한 광야에서 모세에게 성령의 감동 아래 성경에서 가장 오래된 책인 욥기와 창세기를 기록하게 하셨다(부조와 선지자, 251; SDA 성경 주석 3, 1140). 또 하나님은 모세에게 대쟁투, 창조, 타락, 홍수, 부조들에 대해, 특히 가장 중요한 구원의 계획에 대한 핵심적인 통찰을 갖게 하셨다. 따라서 모세는 창조주이자 유지자이신 살아 계신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과 이 지구를 황폐하게 만든 죄 문제를 하나님이 어떻게 대하시는지에 대한 지식을 모든 인류에게 전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성령의 감동으로 모세가 기록한 중요한 토대, 그중에서 창세기의 기록이 없이 성경과 구원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출애굽기 3:1-6을 읽어 보라. 주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알리신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출3:1~6]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답: 조상들에게 약속한 것을 성취하시려는 하나님이라고 알리신 것이다.

 

모세는 불붙은 떨기나무가 불에 타지 않는 것을 보고 자신이 기적을 보고 있으며, 극적이고 중요한 일이 바로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모세가 가까이 다가가자 주님은 그곳은 하나님이 임재하신 거룩한 곳이므로 깊은 경외심의 표시로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모세에게 당신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다(출 3:6). 주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그들의 후손이 가나안을 상속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고, 모세도 그 약속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앞으로의 일을 말씀하시기 이전에 모세에게 일어날 일과 그가 어떤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는 길을 이미 열어 놓으셨다. 

 

<교훈> 모세는 광야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성경을 쓰고, 지도자로 준비되고 있었다. 주님은 어느 날 타지 않는 불붙은 떨기나무로 당신의 임재를 보이셨다. 

 

<부가설명> 모세는 이스라엘이 자기 동족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어머니의 젖을 먹으면서 이 교육을 받았다. 또 언젠가 자기 이 동족을 노예에서 해방시켜야 한다고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가 공주의 아들이 되어 왕궁에 살며 왕자로 교육받고 대우받는 것은 자기 계획을 이루기에 아주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왕궁에서 배운 모든 학문과 능력을 다 발휘해서 이 일을 이루리라고 결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었다. 사람의 방법고 힘으로 이 일을 이루시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신을 벗으라고 명하신 것은 모세의 계획을 벗으라는 명령이었다. 자기의 지식과 능력과 방법을 다 벗어야 했다. 그것이 작용하는 한 이 일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인류의 구원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학문과 지식과 지혜와 방법으로 구원이 이루어질 수 없다. 구원은 흔히 생각하는 이미 존재하는 사람이 도덕적 잘못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범한 잘못을 용서받고 도덕적으로 율법적으로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구원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사망을 없애고 영생하는 생명을 얻는 것이다. 그것은 창조주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다. 모세는 이것을 배우고 깨달아야 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7월 7일(월) 여호와의 사자

 

“여호와의 사자"(주의 천사, 흠정역)는 ‘떨기나무 가운데’ 불꽃 가운데서 모세에게 나타났다(출 3:2). “떨기나무 가운데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분은 바로 주 예수님이셨다(출 3:4).

“주의 천사"라는 칭호가 항상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천사라는 용어 자체는 단순히 “사자”(히브리어, mal’akh)를 의미하며, 이 사자를 인간으로 해석할지 신적 존재로 해석할지는 항상 문맥을 따라야 한다(말 3:1). “여호와의 사자”가 신적 존재를 가리키는 경우가 성경의 여러 곳에 등장한다(창 22:11, 15-18; 창 31:3, 11, 13; 삿 2:1, 2; 삿 6:11-22; 슥 3:1, 2 참조). 이 경우에 여호와의 사자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여호와 자신이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전하는 하나님의 사자이시다. 

 

출애굽기 3:7-12을 읽어 보라. 하나님은 모세에게 애굽에서 노예가 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개입하시려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하셨는가?

[출3:7~1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9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답: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알고 그들이 받는 학대도 보았기에 약속의 땅으로 이끌어내려고 한다고 하셨다. 

 

애굽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겪는 고통은 탄식과 도움을 구하는 부르짖음으로 생생하게 묘사된다. 하나님은 그들의 외침을 들으시고 그들을 기억하셨다(출 2:23-25). 그분은 그들을 “내 백성”이라고 부르셨다(출 3:7). 시내산에서 언약이 비준되기 전부터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순종하기만 한다면 그들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가나안 땅에서 거하며 번성하게 해 주실 것이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특정한 일을 위해 그를 바로에게 보내겠다고 말씀하셨다. “이제 가라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 3:9, 10). 여기서도 하나님은 그들을 “내 백성”이라고 부르신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에게 맡기신 사명은 얼마나 막중했던가! 이에 모세는 “내가 누구이기에”라며 되묻는다. 앞으로 일어날 일의 중요성과 그 모든 가운데 자신이 감당해야 할 일을 파악한 모세는 왜 자신과 같은 사람이 선택되었는지 의아해한다. 여기서 우리는 일찍이 그의 성품과 겸손, 그리고 자신이 부름을 받은 일에 부족함을 느끼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교훈> 시내산에서 언약이 비준되기 이전부터 주님은 그들을 내 백성이라고 부르신다. 그분은 내 백성을 고통에서 건지기 위해 모세를 부르시고 애굽으로 보내신다. 

 

<부가설명>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셨다. 그 자손을 통하여 만민이 복을 받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민족은 이 약속에 의하여 애굽에 있었어도 하나님의 백성이었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이유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었다. 백성들은 그들이 왜 여호와 하나님 백성이 되었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어야 했다. 지극히 적은 숫자 외에는 몰랐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들은 요셉 이야기가 전설처럼 들렸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조상들의 약속을 기억하는 소수는 충성하고 그날을 기다렸을 것이다. 모세도 부모님의 교육으로 그가 히브리인이라는 것을 가슴 깊이 간직한 것을 보면 그 약속을 이루는데 기여하겠다는 사상을 키운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광야에서 기껏해야 양치기가 되었으니 자기 모습은 이제 땔감 밖에 안되는 가시나무밖에 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가시떨기 나무에 불어붙어서 타는데 나무가 타지 않는 기이한 모습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다. 모세는 이 큰 구경을 했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신발을 벗으라는 명령으로 앞으로 모든 일에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일을 해야 한다는 교훈을 인상깊게 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부족하다고 떼를 쓰는 모세에게 네가 누군지는 상관없다. 내가 누군지를 알고 순종만 하면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7월 8일(화) 여호와의 이름 

 

출애굽기 3:13-22을 읽어 보라.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싶어 한 이유는 무엇이며, 그 이름의 의미는 무엇인가?

[출3:13~22]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15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16 너는 가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돌보아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확실히 보았노라 17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면 18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도록 허락하소서 하라 19 내가 아노니 강한 손으로 치기 전에는 애굽 왕이 너희가 가도록 허락하지 아니하다가 20 내가 내 손을 들어 애굽 중에 여러 가지 이적으로 그 나라를 친 후에야 그가 너희를 보내리라 21 내가 애굽 사람으로 이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할지라 너희가 나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아니하리니 22 여인들은 모두 그 이웃 사람과 및 자기 집에 거류하는 여인에게 은 패물과 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여 너희의 자녀를 꾸미라 너희는 애굽 사람들의 물품을 취하리라.

*답: 여호와(야훼)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뜻이다. 원문을 직역하면 ‘나는 나다’라는 뜻이다. ‘스스로 있는 자’라는 번역이 참 좋은 것 같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을 “에헤예’ 아셀 '에헤예”(출 3:14, 히브리어 발음)로 나타내셨는데, 이것의 문자적 의미는 “나는 나다(I am)” 또는 “내가 될 자는 내가 될 자이다”라는 뜻이다. 출애굽기 3:12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실 때 14절과 같은 동사 '에헤예'를 사용하신다. 이는 하나님이 영원히 함께하심을 의미한다. 그분은 초월적인 하나님이자 내재하시는 하나님이시며,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사 57:15) 거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이름인 “야훼”(주로 “주님”으로 번역됨)는 하나님의 백성이 그 깊은 의미를 알지 못했을지라도 태초부터 그들에게 알려진 이름이었다. 모세도 야훼라는 이름을 알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실제의 의미는 알지 못했다.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모세의 질문은 그 깊은 의미에 대한 것이었다.

출애굽기 6:3절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유용한 단서가 될 수 있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출 6:3). 이것은 아담, 노아, 아브라함 같은 족장들이 “야훼”라는 이름을 몰랐다는 의미가 아니다(창 2:4, 9; 창 4:1, 26; 창 7:5; 창 15:6-8 참조). 이 말은 그들이 그 이름의 깊은 의미를 몰랐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이름 ‘야훼’는 그분이 인격적인 하나님, 백성의 하나님, 언약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가리킨다. 그분은 인간의 일에 개입하시는 가깝고 친밀한 하나님이다. “전능한 하나님”(창 17:1)이 그분의 능력으로 기적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라면 야훼는 사랑과 보살핌으로 도덕적 능력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이다. 

그분은 엘로힘(“능력있고 강하며 초월적인 하나님”, “만민의 하나님”, “우주의 통치자”, “만물의 창조자”)으로도 나타나지만 “야훼”라는 이름은 인류와의 관계라는 다른 측면을 드러낸다.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것,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마법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분의 이름, 곧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가르치며 믿음으로 나오는 모든 사람에게 그분이 주시는 구원을 선포하는 것이다. 요엘이 말한 것처럼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욜 2:32)을 것이다. 

 

<교훈> 하나님을 알면서도 그 이름의 의미를 모르던 모세에게 주님은 인류와 관계를 나타내는 이름 야훼 곧 개입하시고 가까이 하시는 친밀하신 하나님을 알려주신다. 

 

<부가설명> 출애굽기 3장은 나는 여호와라고 말씀하신 분이 1절2절에서 ‘여호와의 사자’로 나타나셨다는 사실은 유의해서 깨달아야 할 중요한 말씀이다. 구약에는 여호와께서 여호와, 여호와의 사자, 여호와의 신으로 계시된다. 신약에서 이 칭호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계시되었다. 이 삼위는 다 한 이름 여호와라는 이름을 가지셨다. 삼위가 다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마28:19에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삼위가 기록되었으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고 할 때, ‘이름’은 단수다. 그것은 아버지 아들 성령이 같은 한 이름 여호와라는 것을 계시한 것이다. 그래서 삼위는 다 여호와시다. 그래서 삼위일체가 아니라 삼위일명이다. 삼위라는 말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각각 개체를 가지신 분이라는 것을 뜻하는 말인데 각각 개체를 가졌다고 하려니까 다신론적 표현으로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굳이 삼위라는 표현을 썼다. 그 삼위가 각각 개체를 가지셨다면 삼체라고 해서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 표현이 아니다. 그래서 더 분명히 말하려면 삼위일명 보다는 삼체일명이라고 하는 것이 확실하다. 세분은 각각 개체를 가지신 여호와이시다. 스가랴서는 이것을 잘 표현했다.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9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한 분이실 것이요 그의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라”(슥14:8,9). 여호와께서 홀로 하나라는 의미는 그 이름이 홀로 하나라는 것을 분명히 계시했다. 여호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은 그 이름이 언약적 이름이기 때문이기보다는 그분이 자존하시는 생명 자체이시기 때문이다. 오직 그분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다. 죽음과 상관없는 생명 자체 그것이 여호와께서 하나님 되심의 본질이요 하나님의 본질적 형상이라고 나는 믿는다. 나는 내가 믿고 경배하는 그분의 이름이 여호와이신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자랑스러운지 모르겠다.

 

7월 9일(수) 네 개의 변명

 

출애굽기 4:1-17을 읽어 보라. 하나님은 모세에게 하나님의 사자로서의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어떤 표적들을 주셨는가?

[출4:1~17]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2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지팡이니이다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것을 땅에 던지라 하시매 곧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된지라 모세가 뱀 앞에서 피하매 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그가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으니 그의 손에서 지팡이가 된지라 5 이는 그들에게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나타난 줄을 믿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6 여호와께서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품에 넣으라 하시매 그가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그의 손에 나병이 생겨 눈 같이 된지라 7 이르시되 네 손을 다시 품에 넣으라 하시매 그가 다시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그의 손이 본래의 살로 되돌아왔더라 8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만일 그들이 너를 믿지 아니하며 그 처음 표적의 표징을 받지 아니하여도 나중 표적의 표징은 믿으리라 9 그들이 이 두 이적을 믿지 아니하며 네 말을 듣지 아니하거든 너는 나일 강 물을 조금 떠다가 땅에 부으라 네가 떠온 나일 강 물이 땅에서 피가 되리라 10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11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12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13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14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하여 이르시되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그가 말 잘 하는 것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그의 마음에 기쁨이 있을 것이라 15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의 입에 할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희들이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16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17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답: 지팡이가 뱀이 되는 것, 손이 나병이 걸렸다가 다시 낫게 되는 것, 물이 피가 되는 것, 그 입에 함께 계시는 것 등이다.

 

모세는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회피하려고 했다(출 3:11 참조). 그는 애굽으로 가고 싶지 않았고 바로를 대면하고 싶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그는 이전에 히브리인들을 돕기 위해 스스로 시도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었고, 그의 민족은 모세를 지도자로 믿지 않거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세 번째 항변을 제기했다.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출 4:1). 이 질문은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으라고 하신 책임을 거절하려는 시도였다. 

모세는 이스라엘 장로들 앞에서, 그리고 나중에 바로 앞에서 행할 두 가지 놀라운 표적을 받았다. (1) 그의 지팡이가 뱀으로 변했다가 다시 지팡이로 변하는 것, (2) 손에 나병에 걸렸다가 즉시 다시 낫는 것이다. 두 기적은 모두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일하신다는 것을 장로들에게 확신시킬 것이었다. 만약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면 물이 피로 변하는 또 다른 기적이 더해질 것이었다(출 4:8, 9).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 놀라운 기적을 주셨음에도, 그는 여전히 또 다른 변명, 즉 그가 말을 잘 하지 못한다는 네 번째 변명을 늘어놓는다. 

 

출애굽기 4:10-18을 읽어 보라. 주님은 모세에게 어떻게 응답하셨으며, 주님이 우리를 부르셨다고 믿는 어떠한 상황에 있던지 여기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출4:10~18]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11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12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13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14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하여 이르시되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그가 말 잘 하는 것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그의 마음에 기쁨이 있을 것이라 15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의 입에 할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희들이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16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17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18 모세가 그의 장인 이드로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형제들에게로 돌아가서 그들이 아직 살아 있는지 알아보려 하오니 나로 가게 하소서 이드로가 모세에게 평안히 가라 하니라.

*답: 가라하시고 조력자를 지명하여 보내셨다. 

 

이 네 가지 변명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르기를 주저하는 모세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그럴듯한 이유를 내세우며 실제로는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을 감추고 있다. 

처음 세 가지 변명은 질문의 형태로 나타난다. (1) 내가 누구이기에? (2)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3) 그들이 내 말을 믿지 아니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리고 네 번째 거부의 이유는 “저는 말을 잘 할 줄 모른”다는 주장이었다. 하나님은 이 모든 변명에 응답하시고 강력한 해결책을 제시하신다. 이러한 변명들에 대해 하나님은 여러 격려하는 약속들로 응답하신다.

그러자 모세는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간청을 전하면서 직설적으로 요청한다. “내 주여, 다른 사람을 보내십시오"(출 4:13, NRSV). 이에 대해 하나님은 이미 그의 형 아론을 보냈으며 당신께서 도와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마침내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들이고 애굽으로 떠나기 전 이드로에게 축복을 구한다. 

 

<교훈> 모세는 부르심 앞에 그럴듯한 변명을 대지만 하나님은 여러 격려하는 약속으로 응답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겠다고 약속하시며 해결책을 주신다. 

 

<부가설명> 모세의 변명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모두 합리적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는 이유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모세는 자기를 불러 보내시는 분이 누구인 것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런 모세에게 확신을 주시기 위하여 인내로 그를 설득하신다. 그리고 마침내 모세가 요청한 다른 이를 함께 하게 하셨다. 그의 형 아론이었다. 모세는 40년을 미디안에서 살았다. 그래서 애굽의 말이 서툴어졌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인정하셨다. 그래서 계속 애굽에 살았던 아론을 그의 대변자로 지명하신 것이다. 그래서 형제가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는 일을 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아론 앞에 하나님처럼 될 것이고(출4:16) 아론은 그의 대언자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출7:1). 과연 그렇게 출애굽하는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하나님의 사자들이 되었다. 책임은 하나님께서 지신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주님의 일을 주님이 시키는대로 하면 책임은 주님이 지실 것은 확실하지 않은가?

 

7월 10일(목) 할례

 

출애굽기 4:18-31을 읽어 보라. 이 이상한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며, 여기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출4:18~31] 모세가 그의 장인 이드로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형제들에게로 돌아가서 그들이 아직 살아 있는지 알아보려 하오니 나로 가게 하소서 이드로가 모세에게 평안히 가라 하니라 19 여호와께서 미디안에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애굽으로 돌아가라 네 목숨을 노리던 자가 다 죽었느니라 20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네 손에 준 이적을 바로 앞에서 다 행하라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그가 백성을 보내 주지 아니하리니 22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23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보내 주어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보내 주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 24 모세가 길을 가다가 숙소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신지라 25 십보라가 돌칼을 가져다가 그의 아들의 포피를 베어 그의 발에 갖다 대며 이르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26 여호와께서 그를 놓아 주시니라 그 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 때문이었더라 27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이르시되 광야에 가서 모세를 맞으라 하시매 그가 가서 하나님의 산에서 모세를 만나 그에게 입맞추니 28 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분부하여 보내신 모든 말씀과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이적을 아론에게 알리니라 29 모세와 아론이 가서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장로를 모으고 30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전하고 그 백성 앞에서 이적을 행하니 31 백성이 믿으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찾으시고 그들의 고난을 살피셨다 함을 듣고 머리 숙여 경배하였더라.

*답: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먼저 자기와 가족이 헌신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할례는 남자 생식기의 포피를 베어서 피를 흘리게 하는 것인데, 이것은 생명이 예수님의 보혈에 의하여서 진정한 생명이 되고 그래서 참으로 이스라엘이 된다는 것을 가르친다.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모세가 주님께 순종하고 이집트로 돌아가는 여정을 시작했는데, 주께서 “그를 죽이려고 하”(출 4:24)신다는 내용에 크게 놀란다. 이야기의 문맥을 보면 할례가 문제였음이 분명하다. 모세의 막내아들은 아브라함 언약이 요구한 할례를 받지 않았다(창 17:10, 11). 

하나님의 백성의 지도자로서 모세는 다른 사람들을 순종하도록 이끌기 위해서 자신이 먼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그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따르는 본보기가 되어야 했다. 그의 아내 십보라는 행동하는 여인이었고 남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아들에게 할례를 행했다. 그녀는 피 묻은 “포피”를 모세에 대었고, 이 피는 속죄와 생명, 언약의 확증을 상징한다. 매우 빠른 진행은 상황의 긴박함과 극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이 이야기에서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은, 절대 옳다고 알고 있는 일을 실천하는 데 실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디안에서 나오는 길에 모세는 하나님의 진노를 암시하는 충격적이고 두려운 경고를 받는다. 한 천사가 그에게 위협적인 모습으로 나타났고, 곧 그를 멸하려는 듯했다. 아무런 설명도 없었지만, 모세는 자신이 하나님의 요구 중 하나를 무시한 것을 기억하였다. 아내의 권유에 못이겨 그는 막내 아들에게 할례식을 거행하는 일을 등한히 하였다. 모세는 그의 아들이 이스라엘로 더불어 세우신 하나님의 언약의 축복을 받을 자격을 얻게 해주는 조건을 이행하지 않았다. 선택받은 지도자에게 있는 이런 태만이 백성들 사이에 하나님의 명령의 권위를 감소시킬 수 있었다. 십보라는 남편이 죽임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손수 의식을 거행하였고, 그제야 천사는 모세가 여정을 계속하도록 허락해 주었다. 

바로에게 나아가는 사명을 수행하는 가운데 모세는 큰 위험에 놓였으며 그의 생명은 거룩한 천사들의 보호를 통하여서만 보존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알고 있는 의무를 등한히 하는 한 천사들의 보호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결코 안전하지 못할 것이었다"(부조와 선지자, 255). 

 

<교훈> 모세는 알고 있는 의무를 등한히 하여 천사들의 보호가 아닌 위협을 받았다. 절대 옳다고 알고 있는 일을 실천하는 데 실패하지 않는 것이 합당한 길이다. 

 

<부가설명> 반드시 해야할 말씀은 꼭 실천해야 할 것이다. 실천하는 과정에서 실수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주님이 잘 처리하실 것이다. 그런데 실천도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것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데서 세상에 사망이 들어오게 되었다. 아담의 아내는 하나님께서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분명히 지시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다(창3:2,3). 그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다. 우리가 분명히 알고 있는 말씀을 고의로 무시하는 것은 자기를 하나니보다 높은 자리에 두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사탄이 그렇게 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행하신 일은 하나님의 일꾼 된 사람이나, 하나님의 백성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순복해야 한다는 것을 엄중하게 가르쳐주시는 사례가 되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면 주님의 말씀에 분명히 굴복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7월 11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부조와 선지자 22장 “모세” 251-256쪽을 읽어 보라.

불붙은 떨기나무에서의 극적인 부름은 아마도 모세의 삶에서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의 삶의 다른 모든 중요한 순간은 히브리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약속의 땅으로 이끌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들이고 순종했던 그 날에 달려 있었다. 

지금의 우리는 물론 그 모든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불붙은 떨기나무 앞에 서 있던 당시 모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라. 그는 목숨을 구하기 위해 애굽에서 도망쳐 나왔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히브리인들 사이에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 그중 상당수는 그를 거의 알지 못하거나 심지어 시간이 지나면서 왜곡된 이야기를 통해 잘못 알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이제 그런 백성을 강대한 나라로부터 이끌고 나오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라고 하니, 그가 주저했던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물론 그것은 매우 부담이 큰일이었지만, 만약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끝내 거절했다면 그가 무엇을 놓쳤을지 상상해 보라. 그는 그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 그대로 역사를 만들고 성경만 아니라 세계사에서 가장 위대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는 대신 그냥 역사 속으로 소리 없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함께하는 토의를 위하여 

1. 하나님의 백성의 위대한 지도자로 부름을 받기 전에 광야에서 보낸 조용한 세월 동안 모세는 그분의 부름을 따라 한 가장으로 가정을 부양하고 양을 돌보며,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두 권의 성경을 기록했다. 모세의 경험은 우리에게 인생의 의무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답: 해야할 일을 조용히 순종하는 것이 가장 바른 길이라는 것을 가르쳐준다.

2. 표면적으로 모세의 변명이 꽤 합리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지 않는가? “사람들이 어떻게 나를 믿겠는가? 내가 누구이기에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말을 할 줄 모른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도 주심을 신뢰해야 하는 것을 이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배울 수 있겠는가? 

*답: 하나님께서 일을 맡기셨다면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방법과 능력도 주신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3. 일요일 교과를 살펴보고 모세가 창세기를 저술했다는 점과 그 일이 구속사와 구원의 계획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보라. 특히 우리가 창세기 앞부분의 열한장의 역사성을 부인함으로 창세기의 권위를 약화시키려는 모든 시도에 대항하여 싸워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답: 창세기를 설화나 신화로 보면 예수님도 구원 사업도 다 설화가 된다. 창세기는 결코 설화가 아니고 실화이며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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