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과 억압: 출애굽기의 배경과 모세의 탄생(질문, 대답, 설명) 07/05/25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5-06-27 12:14 조회30회 댓글0건본문
제1과 억압: 출애굽기의 배경과 모세의 탄생
(7월 5일 안식일 / 일몰: 오후 7시 56분)
연구 범위: 출 1:1-22; 창 37:26-28; 창 39:2, 21; 행 7:6; 갈 3:16, 17; 출 2:1-25
기억절: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출 2:23-25).
출애굽기는 억압받는 자, 소외된 자, 박해받는 자, 착취당하는 자, 천대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한 책이다. 따라서 오늘날 버림받고, 잊혀지고, 노예가 된 것처럼 느끼는 이들도 히브리인을 구원하셨던 바로 그 하나님께서 자신들 또한 구원하실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출애굽기는 우리의 삶에서 경험하는 실존적 투쟁, 그리고 불의와 시련에 대해 이야기한다. 고통받는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이야기는 모든 이들에게 용기를 준다. 하나님은 압제 당하는 자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이 몸부림치는 것을 보시며, 그 눈물을 기억하시고, 그들의 고통 가운데로 찾아오셔서 도와주신다.
하나님께서 먼저 당신을 신뢰하는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움직이신다. 우리는 단지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우리가 출애굽기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책이 예수께서 우리 모두를 위해 행하신 구원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출애굽기는 구속, 해방 그리고 궁극적인 구원에 관한 책이며,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이 우리를 위해 예비해 주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에 이 모든 것은 우리의 것이 된다.
비록 혼란과 어둠 가운데 있지만 우리의 눈이 하나님께 고정되어 있다면, 우리는 영원한 약속의 땅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와 돌보심, 도움을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학습 목표
깨닫기: 출애굽의 이야기는 죄 가운데 있는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은혜를 말해준다.
느끼기: 계획이 어긋나고 소망이 없어 보일 때에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우리를 이끌고 계신다.
행하기: 사탄은 시험하고 곤경을 주지만 하나님의 계획을 믿고 믿음을 선택하며 그분을 따른다.
TMI 위로
2. 이스라엘 백성은 학대를 받으면서도 어떻게 그 중에 번성할 수 있었을까요?(출 1:12)
*답: 조상의 하나님께서 돌보셨기 때문이다. 학대 받을수록 하나님의 돌보심도 더욱 컸을 것이다.
3. 주께서 이스라엘을 돌보시는 모습을 살펴볼 때 우리는 어떤 것을 알 수 있습니까?(고전 13:12)
*답: 지금 우리는 확실히 모르지만 그날 주님이 나를 아신 것같이 온전히 알 것을 깨달을 수 있다.
4. 바로의 이름은 없지만 두 산파의 이름이 기록된 것은 무엇을 말해줍니까?(출 1:15)
*답: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실을 후대의 교훈이 되게 하셨다.
5. 모세가 준수하고 특별한 아이라는 표현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습니까?(출 2:2)
*답: 부모가 볼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의미가 아닐까?
6. 애굽에서 미디안으로 떠난 모세의 모습은 인생의 계획에 대해 무엇을 말해줍니까?(출 2:15)
*답: 사람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7. 모세의 삶에서 이 세상 임금 사탄의 계획과 하나님의 인도는 어떤 다른 모습을 보입니까?(엡 2:2)
*답: 사탄은 세상 풍속을 따라 그를 주장하려고 했으나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따라 그를 인도했다. 이것은 폭력과 자비의 대조이다.
결론: 출애굽기는 우리가 경험하는 실제적인 투쟁과 시련에 대해 말한다. 이스라엘은 학대 가운데 번성했고, 소망이 없는 중에도 주님은 그들을 인도하고 계셨다. 사탄은 대적하며 시련을 주지만 믿음을 선택한 여인들을 통해 하나님은 역사하시고 또 그들에게 복을 주셨다. 애굽의 높은 자리에 있던 모세의 계획이 어그러진 것 같이 보일 때도 그를 부르신 하나님은 더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사탄은 인류를 시험하고 곤경에 처하게 하지만 하나님은 구하시며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다.
6월 29일(일) 애굽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
출애굽기는 히브리어로 쉐모트(shemot)라 불리며, “이름들”이라는 뜻이다. 이는 성경의 처음 기록된 단어로 이름을 부르는 히브리인들의 방식을 따른 것이다. 출애굽기는 “이름들은 이러하니”(히브리어 어순, 역자 주)로 야곱의 가족 이름들을 열거하며 시작한다.
출애굽기 1:1-7을 읽어 보라. 이 구절에서 찾을 수 있는 중요한 진리는 무엇인가?
[출1:1~17] 야곱과 함께 각각 자기 가족을 데리고 애굽에 이른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2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3 잇사갈과 스불론과 베냐민과 4 단과 납달리와 갓과 아셀이요 5 야곱의 허리에서 나온 사람이 모두 칠십이요 요셉은 애굽에 있었더라 6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의 사람은 다 죽었고 7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9 그가 그 백성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10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하고 11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 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12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13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을 엄하게 시켜 14 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일이 모두 엄하였더라 15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사람과 부아라 하는 사람에게 말하여 16 이르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17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답: 핍박과 압제 속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이 번성하여 본토 애굽인보다 많은 인구가 되었다는 것과 히브리 산파들이 인구 증가를 하나님을 힘입어 도왔다는 것이다.
출애굽기는 하나님의 축복을 기억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족장 야곱과 그의 가족이 이집트에 정착했을 때 그들은 70명에 불과했지만(창 46:27, 출 1:5),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출 1:7)다. 시간이 지나 출애굽 당시에는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출 12:37)에 달했다.
출애굽기 1:8-11을 읽어 보라.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은 어떠했는가?
[출1:8~11]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9 그가 그 백성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10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하고 11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 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답: 무겁게 짐을 지워 국고성을 건축하는 일에 동원하였다.
성경 본문은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이야기를 어두운 색조로 그린다. 출애굽기는 이집트 감독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노예 생활과 그들에게 강요된 고압적인 노동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화평하고 안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가 이스라엘 진영의 중심인 성막에 함께하는 것으로 출애굽기는 마쳐진다(출 40: 참조). 이렇게 극단적으로 대조되는 시작과 끝 사이에 하나님의 승리가 나타난다. 주께서 당신의 백성을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키시고, 홍해를 가르시며, 당대 세계 최강의 군대를 물리치시는 모습은 악의 세력을 꺾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승리를 보여준다.
이 이야기는 압제자들이 “그들을 괴롭게 할수록 그들이 더욱 번성하고 증가하”(출 1:12, 흠정역)였다는 역설을 강조한다. 인간의 온갖 계략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세상을 주관하시며,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상황이 아무리 절망적이라 할지라도 그분은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다.
<교훈> 소수에 불과했던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번성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다. 이들에게 노동이 강요되었으며 상황은 절망적이지만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신다.
<부가설명>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서가 아니라 애굽에서 생육하고 번성한 사실은 아담 후손이 에덴동산 같은 지구가 아니라 사망의 세상에서 생육하고 번성한 사실을 상징한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다는 왕은 아담이 왕이었던 세상에 사탄이 새로운 왕이 된 사실을 나타낸다.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압박하고 죽이려고 하는 것은 사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의 생명을 빼앗고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는 것을 나타낸다. 인류는 원래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된 아담의 후손이었다. 그러나 아담이 사탄에게 굴복하자마자 그와 그의 모든 후손은 사망의 존재가 되었다. 그래도 하나님은 수명을 주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한 처음 약속을 이행하셔서 구주를 보내어 다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하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깨닫게 하신다. 오늘날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에 있는 교회는(행7:38) 옛 이스라엘처럼 불순종에 빠지지 않아야 할 것이다.
6월 30일(월) 역사적 배경
야곱의 가족이 가나안에서 기근을 겪은 후 애굽에 도착했을 때(창 46:), 애굽 왕은 요셉과 그가 애굽인을 위해 한 모든 일 때문에 히브리인들에게 우호적이었다.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 하고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의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바로가 그에게 애굽 전국을 총리로 다스리게 하였더라"(창 41:41-43).
결코 순조롭지 않았던 시작에도 요셉이 애굽에서 놀라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는가?(창 37:26-28, 창 39:2, 21)
[창37:26~28]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27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28 그 때에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는지라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창39:2,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답: 여호와 하나님께서 요셉과 항상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요셉 이야기의 역사적 배경은 다음과 같이 추정된다. 출애굽기 1:8에서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은 아흐모세(Ahmose, 1580-1546 BC)였다. 그 다음에는 이스라엘 백성을 두려워하고 압제했던 통치자 아멘호텝 1세(Amenhotep I, 1546-1532 BC)가 다스렸다. 이후 투트모세 1세(Thutmose I, 1532–1514 BC)는 히브리 남자 아기를 모두 죽이라는 칙령을 내렸다. 그의 딸 핫셉수트(Hatshepsut, 1504–1482 BC)는 모세를 아들로 입양한 공주였다. 핫셉수트와 얼마 동안 공동 통치를 했던 파라오 투트모세 3세(Thutmose III, 1504–1450 BC)가 출애굽 당시의 파라오였다.
가장 신뢰할 만하다고 여겨지는 연대기에 따르면 출애굽은 기원전 1450년 3월에 있었다(윌리엄. 셰이, William H. Shea, “출애굽 시기”, The International Standard Bible Encyclopedia 2권, 미시간, 1982, p230). (출애굽 시기를 살펴보려면 다음 성경 구절을 살펴보라. 창 15:13-16; 출 12:40, 41; 삿 11:26; 왕상 6:1, 행 7:6; 갈 3:16, 17 참조).
출애굽기의 첫 장은 아버지 야곱과 온 가족이 함께 애굽으로 들어간 요셉의 때부터 바로가 사형령을 내린 때까지의 긴 기간을 다룬다.
정확한 시기에 대해서는 약간의 논란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이국땅에서 노예가 되었음에도 주께서 그들을 잊지 않으셨다는 사실이다.
즉, 당시 애굽에 있던 히브리인들에 대한 많은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 지금은 다 알 수 없지만(고전 13:12 참조),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계시는 성경 전체에서 그런 것처럼 이 책의 각 장들을 통해서 여전히 빛나고 있다. 상황이 아무리 나빠 보일지라도 하나님은 항상 거기 계시며, 우리가 어떤 어려운 상황에 처할지라도 그분을 신뢰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교훈> 애굽에 있던 히브리인에게 있었던 구체적 내용을 다 알 수 없지만 성경에 나타난 모습을 통해서 그분이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를 도우실 것을 신뢰할 수 있다.
<부가설명> 아마도 아담 부부가 뱀에게 속아서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어 에덴동산 밖으로 나와서 시작한 생활은 요셉이 애굽에 들어가서 생활한 것보다 어 어렵고 힘들지 않았을까? 옥토가 변질하여 가시와 엉겅퀴가 나는 땅이 되었다. 그것을 경작하는데 이마에 땅이 흐르도록 수고를 겪에 되었다. 아마도 천사가 그에게 교육하지 않았을까? 성령께서 그가 그런 변질된 세상에서 어떻게 적응하는지 가르치지 않았을까? 요셉은 그의 아버지에게 여호와 하나님 경외하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 전적으로 의지했고 하나님은 그를 어디 있든지 함께 하시고 복으로 인도하셨다. 아담 부부도 비록 속임에 빠져 언약을 배반했지만, 창조주께서는 영원 전에 삼위일명 여호와 사이에 있었던 회의의 결정대로(렘23:18, 슥13:6) 그들을 사망에서 구원하시는 일을 하셨다. 그래서 오늘 교회가 있고 우리가 구원 대열에 설 수 있게 되었다. 요셉 사건은 이렇게 우리의 구원사건과 연결되며 그래서 더욱 깨달아야 할 것이다.
7월 1일(화) 히브리 산파들
창세기를 모르고는 출애굽기를 이해할 수 없다. 유대인들은 이집트로 이주했고 큰 번영과 평화의 시기를 보낸 후 노예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때때로 당신의 백성이 문제 가운데 버려진 것처럼 보였을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다. 분명 많은 히브리인이 자신들의 처지에 낙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고통의 때에 하나님은 당신의 능하신 손으로 도우러 오신다. 우리 주님은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용기를 주신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5).
출애굽기 1:9-21을 읽어 보라. 신실한 산파들은 어떤 중요한 역할을 했는가, 왜 그들은 역사에 기록된 사람이 되었는가?
[출1:9~21] 그가 그 백성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10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하고 11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12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13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을 엄하게 시켜 14 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일이 모두 엄하였더라 15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사람과 부아라 하는 사람에게 말하여 16 이르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17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18 애굽 왕이 산파를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같이 남자 아기들을 살렸느냐 19 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하매 20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니라 21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신지라.
*답: 히브리 사람 아들들이 출생해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그들을 강에 던지지 않았다. 그들도 바로의 명령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었다.
출애굽기는 바로(파라오)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는다. 그들은 “왕"을 뜻하는 “바로”라는 칭호로 기록될 뿐이다. 이집트인들은 파라오를 이 땅에 내려온 신, 즉 라(Ra)신 혹은 오시리스(Osiris)나 호루스(Horus)의 아들이라고 믿었다. 라신은 이집트 최고의 신인 태양신이었다. 그러나 그의 모든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이 '신'은 산파들이 자신의 믿음을 배반하도록 강제할 수 없었다. 실제로 이름을 밝히지 않은 바로와 달리 두 산파 십브라와 부아(출 1:15)의 이름이 기록된 것은 그들이 여호와를 경외했기 때문에 크게 높임 받은 것이다. 바로의 악한 명령이 산파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이는 산파들이 이 땅의 통치자의 명령보다 하나님을 더 존중했기 때문이다(행 5:29 참조).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가족이 크고 번성하게 하셨다. 이 여인들은 자신의 신실함을 행동으로 증언했다. 이 여인들은 신학이 무엇인지 잘 몰랐을지라도 그와 관계없이 무엇이 옳은지 알았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행하기로 선택했다.
바로는 자신의 계략이 실패한 것을 알고는 히브리인에게서 태어난 모든 남자 아기를 죽이라고 명령했다.
그 아기들을 나일강에 던지라고 했는데 이는 나일강의 신이자 다산의 신인 하피(Hapi)에게 제물로 드리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이것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한 첫 번째 기록이다. 사형령의 목적은 히브리인을 복속시키며 모든 남자 후손을 몰살시키고 여성은 이집트 국가에 동화시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바로는 히브리인들이 자기 나라에 가하는 위협을 끝내고자 했다.
<교훈> 이름을 밝히지 않은 바로와 달리 두 산파의 이름이 기록된 것은 그들이 이 땅의 통치자의 명령보다 하나님을 더 존중했기에 크게 높임을 받은 것이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의 자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라고 했을 때 사탄은 자기 머리를 상하게 할 구주가 아브라함의 자손을 통하여 올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아브라함을 집중 공격하여 아브라함 하나님과 언약할 때 실수하게 하고 그의 자손이 애굽에 내려갈 수밖에 없도록 꾸몄지만 애굽에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애굽인보다 더 번성하여 인구가 애굽인을 능가했들 때(출1:9) 바로를 충동하여 출생하는 아들들을 다 죽이라고 했다. 이것은 그들 중에 혹시라도 구주가 있을까 염려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핍박하는 배후에는 사탄의 이런 계략이 있다. 여자의 후손은 남자로 올 것이기 때문이다. 창세기에 여자의 후손이라는 단어 ‘제라’가 남성명사다. 남자 즉 아들이 온다는 말이다. 그러나 산파들은 바로의 이 명령을 무시했다. 그들은 바로보다 크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했다. 어쩌면 그들도 죽이면 죽을 것이라는 믿음의 각오가 있지 않았을까? 우리도 이 시대에 이런 믿음으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7월 2일(수) 모세가 태어나다
출애굽기 2:1-10을 읽어 보라. 모세의 출생에서 하나님의 섭리와 보호하심은 어떤 역할을 했는가?
[출2:1~10]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어 2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3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 4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섰더니 5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나일 강 가를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6 열고 그 아기를 보니 아기가 우는지라 그가 그를 불쌍히 여겨 이르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 7 그의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당신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게 하리이까 8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하매 그 소녀가 가서 그 아기의 어머니를 불러오니 9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기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기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10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답: 모세가 출생하는 모든 과정에서 위험의 순간들을 면하게하셨고 드디어 집에서 숨길 수 없게 되었을 때 갈대 상자를 엮어 강가 갈대 숲에 숨겼으나 하나님께서 공주가 그들 데려가도록 섭리하셨다.
모세의 출생과 생애에 대한 역사적 배경은 흥미진진하다. 그것은 그가 유명한 이집트 제18왕조 시대에 살았기 때문이다. 이 왕조의 투트모세 3세는 '이집트의 나폴레옹'이라 불릴 정도로 고대 이집트에서 가장 유명한 파라오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비록 태어날 때 이미 사형령이 내려져 있었지만(출 1:22 참조), 모세는 “특별한”(tob) 아들로(출 2:2, NLT) 태어났다. 이 구절에서 히브리어 토브는 외형적 아름다움 그 이상을 표현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 이 단어는 창조 주간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좋았더라”, 그리고 “심히 좋았더라”(창 1:4, 10, 31)라고 선언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표현하는 데 사용되었다.
새로 탄생한 피조물, 이 “특별한” 아이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히브리인들을 속박에서 벗어나게 할 사람으로 자랄 것이다. 이 아기가 태어난 때, 특별히 그처럼 끔찍한 상황에서 누가 그의 미래를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하신 언약을 이루실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의 후손에게 약속된 땅을 주시겠다고 언약하셨다(출 2:24, 25). 그리고 하나님은 수십 년 후에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 이 특별한 아이를 사용하실 것이다.
그때가 이르기까지 모세는 이집트의 공주 핫셉수트에게 아들로 입양되었다. 그에게 주어진 이름은 이집트에서 유래된 것으로 그 이름은 “~의 아들” 또는 “~에서 태어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아-모세(Ah-mose, Akh의 아들) 혹은 투트-모세(Thut-mose, Thoth의 아들)같은 이름에서도 같은 용법이 나타난다. 히브리어 모세(Mosheh)로 번역되는 그의 이름은 “건져내었”다는 뜻이다. 그는 강에서 “건져 내어”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우리는 모세의 어린 시절에 대해 몇 가지 사실만 알고 있다. 기적적으로 구원을 받고 핫셉수트에게 입양된 후, 모세는 초기 12년 동안 자신의 가족과 함께 지냈다(출 2:7-9, 부조와 선지자, 244). 이후 모세는 이집트의 다음 파라오가 되도록 준비하기 위해 이집트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부조와 선지자, 245). 궁극적으로 이러한 교육의 대부분이 정말 중요한 것, 곧 하나님과 그분의 진리에 대한 지식을 얻는 데 필요 없거나 심지어 반대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교훈> 이 아기가 태어난 그처럼 끔찍한 상황에도 하나님은 조상들에게 하신 언약을 이루실 것이었다. 하나님은 이 특별한 아이를 사용하여 약속된 땅을 주실 것이다.
<부가설명> 그는 왕자가 되어 왕궁에서 왕자의 교육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애굽의 학문과 말에 능한 사람이 되었다(행7:22). 그는 어머니 요게벳의 양육을 받을 때 그가 근본이 히브리인이며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백성이라는 교육을 단단히 받았다. 부조와 선지자에는 그가 어머니에게 12년동안 양육되었다고 했다. 그가 공주에게 양도될 때 열두 살이라고 했다. 그 교육이 애굽의 왕자로서 받은 모든 교육보다 그의 인격과 신분을 지켰다. 그렇기 때문에 40세가 되어 히브리인의 노동 현장에 나갔다가 자기 형제 곧 히브리인의(출2:11) 고통 당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기록하지 않았는가? 그가 자랄 때 받은 교육이 아니었으면 그 노예 백성을 어떻게 형제 이브리인이라고 했겠는가? 우리는 자녀 신앙교육에 진심을 기울여야 한다. 어릴 때 받은 깊은 감화는 평생에 영향을 미친다. 어린 것이 뭣을 알겠는가라는 말로 부모가 스스로 속이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다. 진정한 신앙교육 성경 진리를 어릴 때 분명히 전달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재림신앙 이어가기가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 부모는 진리의 바른 교사가 되도록 자기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세상 교육에 몰두하면 배설물로 버려야 할 것만 쌓아주는 꼴이 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7월 3일(목) 변경된 계획
출애굽기 2:11-25을 읽어 보라. 어떤 사건이 모세의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는가?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출2:11~25]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12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 속에 감추니라 13 이튿날 다시 나가니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그 잘못한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 14 그가 이르되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이르되 일이 탄로되었도다 15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는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 16 미디안 제사장에게 일곱 딸이 있었더니 그들이 와서 물을 길어 구유에 채우고 그들의 아버지의 양 떼에게 먹이려 하는데 17 목자들이 와서 그들을 쫓는지라 모세가 일어나 그들을 도와 그 양 떼에게 먹이니라 18 그들이 그들의 아버지 르우엘에게 이를 때에 아버지가 이르되 너희가 오늘은 어찌하여 이같이 속히 돌아오느냐 19 그들이 이르되 한 애굽 사람이 우리를 목자들의 손에서 건져내고 우리를 위하여 물을 길어 양 떼에게 먹였나이다 20 아버지가 딸들에게 이르되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그 사람을 버려두고 왔느냐 그를 청하여 음식을 대접하라 하였더라 21 모세가 그와 동거하기를 기뻐하매 그가 그의 딸 십보라를 모세에게 주었더니 22 그가 아들을 낳으매 모세가 그의 이름을 게르솜이라 하여 이르되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음이라 하였더라 23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24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25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답: 모세는 자기 힘으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려고 했으나 하나님은 그를 미디안으로 보냈고 거기서 목자가 되오 40년을 훈련시키셨다.
모세는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이집트의 유혹과 왕궁의 쾌락에 굴복할 것인가, 아니면 고통받는 백성들과 함께 고난을 견딜 것인가? 이내 그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는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출 2:15).
애굽 사람을 죽인 후 모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적어도 애굽에 남아있는 것은 불가능했다. 따라서 애굽의 왕좌에 오르고 '신'으로 추앙받는 그를 위한 어떤 계획이 있었을 지라도 그 계획은 다 틀어지고 말았다. 모세는 거짓 신이 되는 대신 참 하나님을 섬기기를 선택했다. 모세는 분명 도망칠 당시 자신의 앞날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전혀 알지 못했을 것이다.
모세가 애굽 사람을 죽인 “사건의 전말이 신속하게 애굽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크게 과장되어 곧바로 바로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이 같은 행위는 모세가 자기 민족을 이끌고 애굽 사람들을 대항하여 그 정부를 전복하고 스스로 왕위에 오르려는 의도를 가졌으며, 모세가 살아 있는 한 왕국의 안위는 보장될 수 없다는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가진 것으로 왕에게 보고되었다. 왕은 당장 모세를 죽이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신변의 위험을 느낀 모세는 아라비아로 도망쳤다"(부조와 선지자, 247).
모세는 120년을 살았다(신 34:7). 그의 생애는 각각 40년씩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처음 40년은 이집트, 그중에서도 대부분은 왕궁에서 지냈다. 그다음 40년은 미디안 땅에 있는 이드로의 집에서 지냈다.
성경의 첫 다섯 권인 모세오경과 이번 교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내용은 모세의 생애의 마지막 40년간의 일이며, 우상 숭배로 가득한 세상을 향해 참 하나님의 본질과 성품을 드러내며 증거하라는 이스라엘의 초기의 부르심에 관한 이야기이다(신 4:6-8 참조).
<교훈> 모세는 결정의 순간에 거짓 신이 되는 대신 참 하나님을 믿기로 선택했다. 당시 앞날에 어떤 일이 있을지 몰랐지만 하나님은 그를 위한 계획을 이루고 계셨다.
<부가설명> 사람들은 신은 권력을 휘두르는 능력 있는 폭군적 존재로 인식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 신이 자신을 해롭게 하지 않게 하려고 제사하고 굴복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으로서 그런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존재는 왕이다. 권력을 잡은 사람이다. 그래서 왕은 자기를 신으로 생각하며 백성들에게 군림하고 복종하지 않는 자에게 형벌을 가하는 것이다. 모세의 부모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을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며 번성하게 하는 하나님이시다. 모세의 의식에 이런 것이 깔려 있었다해도 30년을 왕궁에서 왕자의 교육을 받았기에 바로의 권력이 어떻게 행사되는 것을 보고 듣고 배우고 몸에 익혔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왕의 폭력적 방법으로 동족을 해방시키려고 하다가 도망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는 미디안 광야에서 양떼를 돌보며 폭력이 아니라 돌봄의 지도상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때쯤에 여호와 하나님 그의 조상의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신발을 벗으라고 하시면서 그의 백성을 이끌어내는데 모세의 사상과 계획을 철저히 배제하도록 가르치셨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가는데는 인간의 계획과 노력과 학문과 해석이 절대로 필요하지 않다. 신발 벗어버리고 오직 성령님의 인도로 걸어가야 할 것이다.
7월 4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부조와 선지자 22장 “모세” 241-251쪽을 읽어 보라. 이번 주에 공부한 성경 본문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은 말한다.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출 1:17). 엘렌 화잇은 산파들의 신실함과 메시아에 대한 소망에 대해 적절하게 언급했다. “히브리 남자 아이를 출생 즉시 죽이라는 명령이 산파들에게 내려졌다. 이 일의 배후는 사탄이었다. 사탄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구원자가 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왕을 선동하여 그들의 자녀들을 죽이게 하여 하나님의 계획을 무너뜨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기에 감히 그 잔인한 명령을 수행할 수 없었다. 여호와께서 산파들의 이 같은 행동을 인정하시고 그들을 번영하게 하셨다"(부조와 선지자, 242).
이 모든 일들 중에 좋은 소식은 사탄의 계획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며 신실한 사람들을 사용하여 대적의 계획을 막으셨다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이 “이 세상의 임금” 또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엡 2:2; 요 14:30)라고 불렀던 대적의 땅에 살고 있다. 사탄은 아담에게서 이 자리를 빼앗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삶과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통해 그를 물리치셨다(마 4:1-11, 요 19:30, 히 2:14). 아이들을 죽이려는 시도에서 나타났듯 사탄은 여전히 살아 있고, 활동하고 있지만 그가 당할 형벌은 확실하다(요 12:31, 요 16:11, 계 20:9, 10, 14). 좋은 소식은 인생의 어려움들을 하나님의 은혜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빌 4:13). 그 은혜가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다.
함께하는 토의를 위하여
1. 하나님은 왜 히브리인들을 이집트에 살게 하고, 억압받도록 허락하셨는가?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개입하시는 데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는가? 각 사람은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에만 고통을 받았다는 사실도 기억하라. 즉, 민족이 겪었던 고통의 시간은 길었지만 각 사람은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만 고통을 겪었다. 인간의 고통을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데 있어 이러한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답: 국가나 민족이 고통받는 기간이 길어도 개인적으로는 자기가 생존하는 만큼만 고통을 겪는다. 그러므로 고통을 개인에서 확대하여 이해할 때 자기 할 일을 놓칠 수가 있다. 개인이 살아있는 기간만큼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중요하다. 이것을 인식하고 은혜와 구원의 때를 헛되게 하지 말자(고후6:1,2)
2. 하나님께서 애굽인을 죽인 모세의 성급한 행동을 어떻게 사용하실 수 있었는지에 관해서 더 깊이 생각해 보라. 그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 그렇다면 히브리인들이 결국 이집트에서 탈출하지 못했을 것인가? 당신의 생각을 함께 토의해 보라.
*답: 하나님은 모세의 성급한 행동을 오히려 그를 훈련하는 도구로 사용하셨다. 결과 지어진 일을 그렇지 않았다면 하고 상상하는 것을 사실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그런 결과에 이른 과정을 살피며서 주님 앞에서 우리의 길을 배우는 것이 더 합당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시고 자시면 모세가 아니라도 구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었기데 모세를 끝까지 사용하신 것이 아니겠는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