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과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질문, 대답, 설명) 06/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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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5-05-30 08:49 조회2,114회 댓글0건본문
제10과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6월 7일 안식일 / 일몰: 오후 7시 51분)
연구 범위: 계 6:12-17; 마 24:36-44; 창 6:1-8; 벧후 2:4-11; 창 18:17-32; 단 7:9, 10
기억절: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1, 12).
성경은 미래의 사건을 가리키고 현대진리를 우리가 이해하게 하는 열쇠를 담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기록으로 가득하다. 사실 이러한 기록 중 일부는 놀랍도록 자세하게 마지막 날의 사건을 예고하여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의 예언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폭넓은 토대를 제공한다.
하나님은 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선지자들이 마지막 날에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한 것과 완전히 일치하게 사건들을 이끄셨다. 이러한 중요한 이야기 중 소돔과 고모라, 홍수 같은 이야기는 신약성경이 마지막 날의 사건을 설명할 때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마지막을 말하는 것이 확실하다. 그 외의 이야기들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우리에게 주어진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서 신중한 생각과 연구가 필요하다.
앞으로 몇 주 동안 우리는 여러 중요한 이야기들을 살펴보면서 재림, 조사 심판, 최후의 위기 등과 같은 사건들에 대해 그것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그리스도는 모든 예언 연구의 기초이자 최종 목표이기에 이 모든 것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그 중심이심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학습 목표
깨닫기: 마지막 날을 말하는 예언을 연구할 때 그리스도가 예언의 중심임을 발견할 것이다.
느끼기: 하나님은 심판을 알려주시며 그것을 살펴보게 하심으로 그분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신다.
행하기: 홍수와 소돔 때의 잘못에 빠지지 않도록 주신 경고를 새기며 그리스도를 의지한다.
TMI 위로
2. 성경은 말세가 가까울수록 사람들이 재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한다고 말합니까?(벧후 3:3, 4)
*답: 그런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언제나 여전하다고 믿는다.
3. 홍수를 앞두고 노아는 어떤 일을 했습니까? 그의 준비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합니까?(히 11:7)
*답: 의를 전파했다. 우리도 그처럼 준비하고 재림을 전할 것을 지적한다.
4. 베드로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기록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벧후 2:4-11)
*답: 말세를 만난 성도들과 심판에 관한 진리를 깨닫도록 하려는 것이다.
5.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데는 어떤 뜻이 담겨 있습니까?(암 3:7)
*답: 하나님 앞에 잘 예비하는 삶을 살도록 권고한다.
6. 다니엘 7장의 심판에 인자이신 예수님이 나타나시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단 7:13)
*답: 예수님이 성도들의 신원을 주장하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7. 모든 죄인을 위해 탄원하시는 예수님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납니까?
*답: 인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감사합니다.
결론: 마지막 날을 말하는 예언을 연구할 때 그리스도가 예언의 중심이심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노아의 때 사람들이 거부하고 멸망한 것처럼 말세의 사람들도 정보가 없어서가 아니라 믿기를 거부하기에 멸망당할 것이다. 소돔에게 주어진 경고도 같은 함정에 빠질 수 있는 오늘의 우리를 위한 것이다. 주님은 아브라함에게 보여주셨던 것처럼 마지막 심판 전에도 성도에게 하나님의 뜻을 볼 기회를 주신다. 하나님의 심판의 의로움이 나타날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당신께 맡기는 인간을 대신해서 변호하심으로 참소자를 이기게 하실 것이다.
6월 1일(일) 어린 양의 진노
요한계시록 6:12-17을 읽어 보라. 마지막 날의 사건이 갑자기 펼쳐지는 것을 본 사람들의 반응을 자세히 들여다보라. 당신은 그들의 반응에서 무엇을 발견하는가?
[계6:12~17]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 13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14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 15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어 16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답: 하나님의 얼굴에서 또 어린양의 진노에서 그들을 가리라고 소리친다.
흥미로운 점은 잃어버린바 된 자들이 “이게 무슨 일인가?”라거나 “누가 이런 일을 일으켰는가?”라고 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예수님을 어린 양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그리스도에 대해서 무언가 알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들은 그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른 것을 알고 있으며, “누가 능히 서리요”(계 6:17)라는 외침은 그들이 절망적인 처지에 처한 것을 보여준다.
세상 끝이 이르기 전에 복음이 이 땅의 모든 민족에게 전해지고(마 24:14), 세 천사의 기별이 이 땅의 모든 곳에 전파된다. 그런데 소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믿고 순종하기를 거부하기 때문에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바로 그것이 마지막 날에 그러한 사람들이 잃어버린바 되는 이유가 될 것이다.
마태복음 24:36-44을 읽어 보라. 예수님은 노아의 이야기에서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가?
[마24:36~44]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40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41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43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답: 그들이 일상에 몰두하고 있을 때 홍수가 닥친 것과 같이 인자의 날도 그럴 것이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많은 사람에게 놀라운 일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시기 위해 홍수 이야기를 말씀하신다. 재림과 마찬가지로 홍수도 정보가 부족해서 세상에 놀라운 일로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노아는 믿기를 거절하는 세상을 향해 120년 동안 전파했다. 모두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들었다. 단지 믿지 않았을 뿐이다. 한편 많은 사람은 오랜 시간이 흐른 것을 이유로 예언이 틀렸다고 스스로 확신한다. 베드로는 홍수 이야기를 맥락으로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벧후 3:3, 4)할 것이라고 말한다. 해가 지나갈수록 이러한 생각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교훈> 세상 끝이 놀라운 소식이 되는 것은 정보가 없어서가 아니라 믿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말세가 가까울수록 이런 생각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부가설명> 천연계의 징조가 이루어지는 일과 역사적 징조가 이루어지는 일은 사람 각자가 어떻게 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준비가 되었든지 안 됐든지 이루어진다. 그것이 언제 이루어질는지 우리는 정확하게 모른다. 그러나 시세를 말씀에 근거해서 살피면 짐작할 수는 있다. 그래서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해지고 잎이 피는 것을 예로 말씀하셨다. 지금은 잎이 피고 있는 시대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가장 분명한 것은 사람은 죽는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 죽는 날을 알지 못한다. 건강한 상태로 아침에 집을 나갔다가 교통 사고로 죽는 사람도 있다. 이런 예는 아주 많다. 그래서 성경은 역사적 종말을 예언했지만 또 개인 종말도 말씀하셨다. 다윗은 이것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셀라)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시39:4~6). 사람은 그림자 같다. 그래서 호흡이 있는 매일이 자기의 종말일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날은 하루뿐이라는 것을 기억하고(히3:13) 매일 재림을 맞을 상태로 산다면 얼마나 복된 삶인가!
6월 2일(월) 노아의 전도
베드로는 많은 사람이 홍수 때 일어난 일을 “일부러 잊으려”(벧후 3:5)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해 준비되지 못할 것이라고 상기시킨다. 전 세계는 대홍수에 대한 집단적 기억을 가지고 있으며 고대 그리스인에서 마야인에 이르기까지 놀라울 정도로 많은 세계 문화권에 파괴적인 홍수 이야기가 존재한다, 하지만 오늘날 노아의 이야기는 아마도 성경의 기록 중 가장 조롱받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예언이 말한 대로, 구약성경이 아무리 분명하고 명확하게 묘사하고 신약성경이 이를 여러 번 거듭 언급할 지라도 세상은 고의로 그 이야기를 신화로 치부하고 있다.
마태복음 24:37-39에서 예수님은 세상의 상황이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구절을 창세기 6:1-8과 비교해 보라. 도덕적으로 어떤 상태이었기에 홍수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는가? 두 시대 사이에는 어떤 유사점이 있는가?
[마24:37~39]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창6:1~8]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4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답: 사람들이 일상에 몰두하는 것과 하나님의 경고에 무관심한 것이다. 그래도 그 긴 세월 노아는 말씀을 전했다.
주의 깊은 연구를 통해서 찾을 수 있는 하나님의 마지막 때 남은 백성을 위한 또 다른 중요한 교훈이 있다. 방주에 오른 자신의 가족 외에는 아무런 결과도 없이 한 세기가 넘도록 전도했다고 생각해 보라. 만약 노아가 현대의 전도자였다면, 우리는 수십 년 동안 설교를 하고도 아무런 성과가 없는 그를 실패한 사람으로 여겼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히브리서 11:7은 노아가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다행히도 현재 세계 여러 지역에서 세 천사의 기별에 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우리에게 위탁된 독특한 남은 무리의 기별을 전하는 전도 활동은 많은 곳에서 놀라운 열매를 거두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주님을 발견하고 있다.
아직 아무런 결과가 없는 지경에 이르지 않았지만 그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말을 들어왔다. “은혜의 시기가 끝나고, 자비의 문은 닫혀질 것이다.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마 25:10)고 한 짧은 구절은 인류를 위한 구원의 큰 사업이 완성되는 구주의 마지막 사역의 때까지의 모든 사실이 다 포함되어 있다”(각 시대의 대쟁투, 428). 그때까지 우리는 교회로서 해야 할 일이 있다.
<교훈> 노아는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다. 복음의 문이 닫힐 때가 있겠지만 그 전에 할 수 있는 일에 충실해야 한다.
<부가설명> 바울은 딤후3:1~5에서 말세 사회상과 사람들의 마음 상태를 현장을 보고 묘사하듯이 기록했다. 자기 중심 사고방식이 사람을 지배하고 객관적 표준을 비웃는 세상의 상태를 실감나게 예언했다. 지금이 바로 그런 시대다. 교과에 그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나 노아 시대 사회상은 폭력이 특징이었다. 오늘날 사회상이 그렇지 않은가? 성경에 기록된 당시 사람들의 이름의 뜻을 살피면 그 시대 사정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셋은 에노스를 낳았는데, 뜻은 ‘연약한 사람’이다. 셋은 아담이 사망의 존재가 된 후에 그들에게 하나님의 생명이 전해지지 않고 육체가 된 아담의 육체의 생명만 전수되는 것을 보면서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탄식하고 뉘우치는 이름으로 지은 것 같다. 게난은 ‘창을 만드는 사람, 또는 정주(定住, 定着)’라는 뜻이다. 이때쯤 가인의 후손 두발가인이 철기로 무기를 만들던 시대일는지 모른다. 이미 폭력이 생활을 두렵게 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이름으로 게난이라고 지었는지 모른다. 마할랄렐은 ‘하나님께 찬양’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폭력의 위험에도 하나님의 보호를 믿고 살았다는 것을 나타내는 이름이다. 야렛은 ‘내려오다’라는 뜻이다. 의미에 어떤 사실을 담았는지 잘 알 수 없지만, 그들을 보호하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내려와서 지켜주시기를 간구하는 이름일 수 있다. 에녹은 ‘전해주는 자, 봉헌된 자’라는 뜻이다. 야렛은 에녹을 하나님께 봉헌하고 그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기를 원했던 것 같다. ‘시작’이라는 뜻도 있다. 이미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므두셀라는 ‘창을 던지는 자, 싸우는 자’라는 뜻이다. 아마도 그가 세상에 살았을 때 세상은 폭력이 난무하는 상태로 빠져든 것 같다. 게난이 창을 가지고 있었는데, 게난의 오대 손인 므두셀라는 창을 던지는 자로 싸움을 주장하는 장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라멕은 ‘강한자, 정복자’라는 뜻이다. 가인의 후손들이 악한 짓을 하고 사회를 폭력으로 어지럽힐 때 아버지 므두셀라와 함께 그들을 제압하는 일을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래서 강하고 정복하는 자가 되었을 것이다. 노아는 ‘위로, 안식하다, 쉬다’라는 뜻이다. 아마도 폭력과 대항하는 삶에 지친 상태의 세상을 끝내고 쉬는 세상이 되기를 열망하는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이름들에는 그 시대의 인심을 짐작할 수 있는 단서들이 있지 않는가? 이런 시대에 세상을 향해서 회개의 기별을 외쳤던 노아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6월 3일(화) 소돔과 고모라
베드로가 마지막 때의 사건을 설명하면서 직접 언급하는 또 다른 중요한 구약성경 이야기는 바로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이야기이다. 이 평야 도시는 사악함으로 널리 알려졌고 하늘에서 내린 불로 파괴된 첫 번째 도시의 사례가 되었다.
베드로후서 2:4-11, 유다서 5-8, 에스겔서 16:46-50을 읽고 모든 세부 사항을 주목해 보라. 이 도시들이 멸망하게 된 도덕적 상황은 어떤 것이었으며 오늘날과는 어떤 유사점이 있는가?
[벧후2:4~11]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5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6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7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8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9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10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 11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도 주 앞에서 그들을 거슬러 비방하는 고발을 하지 아니하느니라.
[유5~8] 너희가 본래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7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8 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비방하는도다.
[겔16:46~50] 네 형은 그 딸들과 함께 네 왼쪽에 거주하는 사마리아요 네 아우는 그 딸들과 함께 네 오른쪽에 거주하는 소돔이라 47 네가 그들의 행위대로만 행하지 아니하며 그 가증한 대로만 행하지 아니하고 그것을 적게 여겨서 네 모든 행위가 그보다 더욱 부패하였도다 48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 아우 소돔 곧 그와 그의 딸들은 너와 네 딸들의 행위 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9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의 딸들에게 교만함과 음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 주지 아니하며 50 거만하여 가증한 일을 내 앞에서 행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보고 곧 그들을 없이 하였느니라.
*답: 사람들이 쾌락을 따르며 일상에 몰두하는 것이 오늘과 다를 것이 없다.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를 통해 지구의 마지막 때 사람들에게 주어진 경고는 분명하다. 요한계시록 20장에 분명하게 기록된 대로 악인들은 결국 불로 멸망할 것이다. 죄는 자신의 죄악은 자기 확신의 덮개 아래 감추어 자기 마음의 상태를 보지 못하게 하지만 다른 사람이 저지른 악행은 선명하게 기억한다는 점에서 놀랍도록 기만적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나라에 얼마나 많은 사랑을 쏟았는지에 대해 말씀하신 바로 그 장에서, 하나님은 그 나라가 소돔과 똑같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겔 16:47) 실제로는 소돔보다 더 타락했다고 경고하셔야만 했다.
이스라엘은 영적 간음을 일삼으며 “음행”(겔 16:41)을 저질렀다. 악하기로 널리 알려진 사람들보다 더욱 악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하나님의 백성이 얼마나 경악했을지 생각해 보라.
이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며 이스라엘만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해당되는 일이다. 로마서 1:18-32에서 바울은 마치 오늘 조간신문을 보고 작성한 것 같은 인간의 악의 긴 목록을 나열한다. 바울이 이방인의 죄를 묘사한 것은 결국 유대인에게 우월감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자기 죄의 심각성을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나단도 가난한 자에게서 양을 훔친 부자 이야기를 다윗에게 들려줌으로 그와 같은 일을 했다. 이 이야기는 불의함이 명백해 보였기에 다윗은 크게 분노했다(삼하 12:5). 그 때 나단은 “당신이 그 사람이라”(삼하 12:7)라고 선언하여 다윗으로 하여금 자신의 모습을 이야기를 통해서 보게 했다.
성경은 주로 이방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을 대상으로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보는 요한계시록 13장이나 17장에 묘사된 다른 이들의 가증스러운 죄는, 다름 아닌 우리도 그와 같은 함정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다.
<교훈> 악한 소돔 사람보다 더 악하다는 경고는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오늘날의 모든 인류에게 해당되며, 우리도 그와 같은 함정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다.
<부가설명> 에스겔 16장의 지적은 놀랍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 현상이 오늘날 기독교 현상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더 놀라게 된다. 나아가서 그것이 남은 자로 자처하는 재림교회 현상이라면 어떨까? 까무러칠 사실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 그렇지 않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다는 말인가? 오늘날 남은 자로 자처하는 이 교회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따르지 않는 것을 떳떳하게 여기고 있지 않는가? 재림교회는 적어도 4대개혁을 위해 남은 자손으로 부름을 받지 않았는가? 곧 진리 개혁, 신앙 개혁, 건강 개혁, 생활 개혁이다. 나는 재림교회 기별을 받은 다음 해에 이것이 재림교회 개혁의 사명이라고 배웠다. 그때 내게 말한 분은 진리 개혁이라고 하지 않고 종교개혁이라고 했다. 오늘 재림교회는 스스로 하나님으 계명과 예수의 증거에 의하여 개혁의 횃물을 들고 철저히 살펴서 개혁해야 할 때가 벌써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미지근하여 주님의 입에서 토해낼지 모른다. 정신차리고 진리에 굴복하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도록 성령께서 능력으로 역사하시기 기도한다.
6월 4일(수) 온 땅의 심판자
소돔이 멸망하기 직전, 마므레 평야에서 기이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하나님께서 두 천사와 함께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 아브라함은 그들을 보고 하늘에서 온 이 방문객들을 식사에 초대했다. 이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이후 메시아의 조상이 될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실제로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혈통에서 태어나셨다(갈 3:16 비교). 그리고 이야기는 갑자기 평야의 악한 도시 소돔의 문제로 바뀐다.
창세기 18:17-32을 읽어 보라. 이 구절에서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이 궁극적으로 이 땅의 악을 다루실 계획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창18:17~3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18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20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21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 22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23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24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 25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2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만일 소돔 성읍 가운데에서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 27 아브라함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 28 오십 의인 중에 오 명이 부족하다면 그 오 명이 부족함으로 말미암아 온 성읍을 멸하시리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사십오 명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29 아브라함이 또 아뢰어 이르되 거기서 사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사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30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주여 노하지 마시옵고 말씀하게 하옵소서 거기서 삼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삼십 명을 찾으면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31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내가 감히 내 주께 아뢰나이다 거기서 이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이십 명으로 말미암아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32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답: 하나님께서는 궁극적으로 세상의 악을 불로 소멸하실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이것을 알려 주셨고 두 천사는 소돔을 살피러 갔다. 그것은 조사심판의 과정이다. 그리고 롯은 생명을 구했고 소돔은 소멸됐다. 조사심판의 결과를 나타낸다. 모든 것이 의인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설명하셔야 할 의무가 없으시지만, 인류에게 당신의 동기와 계획을 숨기지 않기로 하셨다. 아모스 선지자는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암 3:7)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기 전에 아브라함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 곧 목격하게 될 일에 대해 숨기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두 천사가 그들의 경고에 귀 기울일 사람을 부르기 위해 악한 도시로 가는 동안 하나님은 아브라함 곁에 머물러 계신다. 이는 마지막 날에 같은 임무를 수행할 예언된 천사들이 바벨론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바벨론에서 나오라고 부르는 장면을 생각하게 한다(계 14:6-12, 계 18:1-4). 마지막 경고가 주어지는 가운데,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일어날 일을 논의하시며, 이 족장의 질문에 기꺼이 답하신다.
아브라함은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시다고 말한 후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라고 호소한다(창 18:25). 아브라함은 소돔의 사건만 살펴보는 것만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도 질문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종말이 오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책들을 펴시고(계 20:4, 11-15) 최종적으로 이 땅에 불을 쏟으시기 전에 우리가 증거를 조사할 수 있게 하신다. 즉 우리는 지금으로서는 답을 찾을 수 없는 많은 의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는 천 년의 시간을 가지게 될 것이다.
<교훈>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성품과 소돔의 악을 다루는 계획에 대해 질문한 것처럼 마지막 심판의 집행 전에도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살펴볼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부가설명>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벗(친구)이라고(대하20:7, 사41:8, 약2:23) 하셨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요15:15). 하나님은 하실 일을 그의 친구 아브라함에게 알려주셨고, 같이 온 천사들은 소돔 상태를 조사하기 위하여 소돔으로 보내셨다.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하노라”(창18:20,21). 하나님이 몰라서 조사하는 것이 아니다. 소돔 사람들과 롯과 아브라함이 알아야 하고 우주가 알도록 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천하를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의 절차다(창18:25). 결과로 롯은 의인으로 판결되고 구원받았다(벧후2:7,8). 소돔에 관한 이런 기록은 예수님의 친구가 된 그분의 제자들인 성도들에게 조사심판의 상태가 어떤 것인지 잘 보여주는 사례로 기록했다. 우리가 참으로 예수님 안에서 성령으로 거듭나면 예수님의 형제요 친구다. 모든 것을 깨닫도록 복을 주실 것이다.
6월 5일(목) 재림 전 심판
다니엘서 7장에 기록된 심판에 대한 묘사는 하나님께서 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시며, 동시에 그분과 언약 관계 안에서 살고자 하는 자들을 어떻게 구원하시는지를 경외심을 가지고 잠시 엿볼 수 있게 한다.
다니엘 7:9, 10, 13, 14, 22, 26, 27에 나타나는 조사 심판에 대한 설명을 읽어 보라. 심판의 가장 중요한 초점은 무엇인가? 조사가 끝날 때 어떤 판결이 내려지며 이것은 구원의 계획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단7:9,10,13,22,26,27] 내가 보니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의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의 보좌는 불꽃이요 그의 바퀴는 타오르는 불이며 10 불이 강처럼 흘러 그의 앞에서 나오며 그를 섬기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서 모셔 선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13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22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을 위하여 원한을 풀어 주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들이 나라를 얻었더라/ 26 그러나 심판이 시작되면 그는 권세를 빼앗기고 완전히 멸망할 것이요 27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나라들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거룩한 백성에게 붙인 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들이 다 그를 섬기며 복종하리라.
*답: 성도가 신원 되고 나라를 얻게 하는 것이다.
인류가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전도서는 분명히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전 12:14)실 것이라고 말하며,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롬 14:10)설 것이기 때문에 바울은 우리가 서로를 판단할 필요가 없음을 일깨워 준다. 물론 하나님은 누가 구원받았고 누가 잃어버린 바 되었는지 알기 위한 기록이 필요하지 않으시지만, 구원의 계획을 계속해서 살펴보아 온 천사들(벧전 1:12)은 당연히 궁금한 점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사탄의 반역을 목격했고, 하늘 천사의 삼분의 일이 하늘에서 쫓겨나는 것을 보았는데(계 12:4)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임재 앞으로 이끄신다. 하나님은 책을 펼쳐서 선한 존재들이 이 모든 것을 볼 수 있도록 허락하신다.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서 간청한 이야기는 심판의 한 표상으로, 우리에게 심판에 대한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소돔의 죄는 분명히 조사 중이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 소돔의 죄악이 널리 알려졌고 그 도시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다고 말씀하셨다(창 18:20).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만 멸망받기 전에 조사받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도 하나님이 그 악인들을 멸망시키기로 하신 결정이 의로운지를 살펴볼 수 있게 해주셨다.
한편, 다니엘 7장의 하늘 심판에 “인자”이신 예수님(단 7:13, 마 20:28 참조)이 나타나시고, 이 심판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백성 편을 들어 심판”(단 7:22)이 이루어진다. 그렇게 되는 유일한 이유는 그분이 거기에 서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완전한 의만이 그분의 백성으로 심판을 통과하게 한다.
<교훈> 조사심판은 하나님 심판의 의로움을 모두가 보게 하기 위함이다. 죄인인 하나님의 백성의 편을 들어 심판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인자가 계시기 때문이다.
<부가설명> 성경에는 심판에 관한 말씀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사실 우리는 스스로 매일 심판하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고(롬14:10)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선다(고후5:10). 여기 기록된 심판대는 헬라어로 ‘베마’다. 이 말은 운동경기에서 선수들이 경기 규칙을 준수하는 여부를 구별하는 심판이 서는 자리를 뜻한다. 이것은 즉각 지적되고 벌칙이 부과된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시7:11). “아침마다 내가 이 땅의 모든 악인을 멸하리니 죄악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에서 다 끊어지리로다”(시 101:8).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매일 분노하시고 아침마다 악인을 멸하신다. 이 심판대(베마)가 사람들의 생활의 문 앞이라는 것을 성경은 가르친다.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니라”(약 5:9). 매일 심판한 사실을 그날 종합해서 발표하고 선고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매일 심판대 앞에서 직고하는 생활로 주님의 영광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성도들은 예수께서 속죄의 피를 뿌려주시는(벧전1:2, 히12:24) 분으로 서 계시기 때문에 롯을 의롭게 보신 그 눈으로 의롭다고 선고하실 것이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8:32,34). 감사 만만입니다. 아멘.
6월 6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부조와 선지자 7장 “홍수” 101, 102쪽을 읽어 보라.
“대제사장은 사탄의 참소에서 자기 자신이나 그 백성을 방어할 수 없었다. 그는 이스라엘이 죄가 없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가 그들의 대표자로 백성의 죄악들을 상징하는 더러운 옷을 입고 그 천사 앞에 서서 그들의 죄를 자복한다. 그리고 그는 그들의 회개와 겸비를 지적하면서 죄를 용서하시는 구주의 자비에 의지한다. 믿음으로 그는 하나님의 약속들을 주장한다. …여호와를 찾는 자들에 대한 사탄의 참소는 그들의 죄에 대해 분노하는 것이 아니다. 사탄은 그들의 결함있는 성품을 크게 기뻐하는데, 사탄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 범죄할 때에 자신이 그들을 지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탄의 참소는 다만 그리스도께 대한 그의 적의에서 일어난다. 구속의 경륜을 통하여 예수께서는 인간 가족에 대한 사탄의 지배력을 깨뜨리시고 그의 권세로부터 영혼들을 구원하신다.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는 원수의 비난을 감당할 수 없다. 인간은 죄로 물든 옷을 입은 채 자기의 죄를 자복하며 하나님 앞에 선다. 그러나 우리의 대변자 예수께서는 회개와 믿음으로 자기의 영혼을 지켜 주시도록 당신께 맡기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열렬히 탄원하신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변호하시고 갈보리의 권세 있는 논증으로 그들의 참소자를 이기신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순종하심으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를 받으셨고 범죄한 인간을 위하여 당신의 아버지께 자비와 화해를 구하신다"(선지자와 왕, 583-586).
함께하는 토의를 위해
1.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이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다(요 15:19, 요 17:14-16 참조). 세상에 거하며 세상을 이겨야 하는 책임과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약 1:27) 않아야 하는 필요 사이에서 우리는 어떻게 균형을 잡을 수 있겠는가?
*답: 생명의 성령님의 법이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시는 은혜로 균형을 이룰 수 있다(롬8:2).
2. 홍수 이전의 노아의 공중 사역은 대쟁투가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오늘날 우리는 어떤 면에서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가?
*답: 120년 동안 의를 전했으나(벧후2:5) 겨우 자기 가족만 방주에 들어갔다. 사탄의 방해가 그렇게 강한 것이다.
3. 하나님은 소돔을 불로 심판하셨듯이 하늘의 불로 악인을 삼키시기 전에 그들을 죽음에서 일으키시고 사탄이 잠시 동안 그들과 함께 일하도록 허락하신다(계 20:7-9). 이 과정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바로잡으시기 전에 필요한 마지막 단계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답: 우주가 또 악인들 스스로가 하나님의 공의를 알도록 하는 단계이다. 그래서 그들이 소멸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고백하고 재가 될 것이다.
4. 나는 자신을 향한 어떤 경고를 받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어떤 소망을 발견하였는가?
*답: 각각 대답을 찾아보자. 회개하라는 경고를 받았고 주님의 용서하시는 은혜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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