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과 예언을 위한 기초(질문, 대답, 설명) 05/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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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5-05-09 09:02 조회450회 댓글0건본문
제7과 예언을 위한 기초
(5월 17일 안식일 / 일몰: 오후 7시 36분)
연구 범위: 사 6:6-8, 창 3:21-24, 겔 1:4-14, 계 4:1-11, 민 2:3-25, 사 14:12-14
기억절: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사 6:8).
하나님이 우주를 다스리는 권리는 만물의 창조주로서의 그분의 지위(계 4:11)와 그분의 성품에 근거를 두고 있다. 하나님의 의로우신 성품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죄 많은 인간이 왜 그리고 얼마나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지를 이해하기 시작한다(롬 3:23).
이번 주에는 보좌실의 이상을 더 깊이 살펴보면서 인류가 거룩하신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그리스도의 희생이 어떻게 우리를 회복시키고 보좌에 가까이 나아가게 하는지 생각해 볼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개인으로서만 아니라 인류로서도 회복시키셔서 우리를 통해 나머지 피조 세계에 그분의 영광을 다시 한번 나타내고자 하신다. 성경 전체를 살펴보면 하나님이 용서받고, 구속받은 죄인인 우리에게 주신 높은 부르심을 이해하고, 감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인류의 반역은 최종적으로 그리고 영원히 끝날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 자기부인과 자기희생의 성품이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원래의 계획보다 더 환하게 빛나리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류의 타락을 결코 의도하지 않으셨지만,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을 놀라운 방식으로 공개한다.
학습 목표
깨닫기: 하나님의 지위와 성품에 대한 논쟁인 대쟁투가 마칠 때 그분의 사랑의 성품이 밝게 드러날 것이다.
느끼기: 결점 많은 우리를 회복시키고 보좌에 나아가게 하기 위해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셨다.
행하기: 사탄은 하나님 영광을 가리지만 우리는 세상에 빛을 나누며 창조주께 영광을 돌린다.
TMI 위로
2. 스랍이 숯을 가져다 이사야에게서 죄를 제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사 6:7)
*답: 하나님의 기별을 전하기 합당한 상태를 보여준다.
3. 에덴동산에 그룹을 두어 지키게 하신 것은 어떤 의미가 담겨 있습니까?(창 3:24)
*답: 성소의 원시형이고 생명나무를 그날까지 잘 지키는 것이다.
4. 성경에서 그룹은 무엇을 위해서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까?(계 4:8)
*답: 하나님을 찬양하고 성도들이 재림 맞을 준비를 위한 봉사를 위하여.
5. 성경에 나타난 지파들의 배치된 모습 속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까?(계 21:22)
*답: 그들은 오직 성소 중심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만 따라갈 것을 보인다.
6. 세 천사의 기별은 루시퍼의 죄와 우리 죄의 속성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합니까?(계 14:7)
*답: 바벨론은 무너지고 우리 죄의 속성도 무너져야 한다.
결론: 하나님의 통치의 권리는 그분의 지위와 성품에 근거한다. 하나님의 보좌에 있는 그룹은 그분의 영광과 거룩함을 나타낸다. 보좌 앞에 설 때 우리는 자신의 결점을 깨닫고 그분의 영광에 이를 수 없음을 느낀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그리스도는 우리를 회복시켜 보좌에 가까이 나아가게 하신다. 사탄은 창조주의 영광을 가리지만 우리는 창조주께 영광을 돌리도록 부름 받았다. 대쟁투가 마칠 때 십자가를 지신 하나님 사랑의 성품은 원래 계획보다 더 밝게 빛날 것이다.
5월 11일(일)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수년 전, 어느 교회가 낡은 지하층을 개조해서 새로운 친교실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그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새로운 조명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조명이 이 공간을 더 아름답게 보이게 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조명을 설치한 이후로 공간이 더 나빠 보였다. 밝은 빛이 안보이던 결함을 보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보좌에 대한 놀라운 환상을 보았을 때 그는 자신의 결점을 고통스럽게 깨달았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 6:5). 우리도 갑자기 주님의 임재 앞으로 이끌려 나간다면 그와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 빛은 우리의 모든 변명이 무의미할 만큼 밝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을 경험한다. 이사야는 일생일대의 놀라움을 직면했다.
이사야 6:6-8을 읽어 보라. 이사야는 죄로 인해 “망하게 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를 죄의 결과대로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우리를 더 가까이 이끄신다. 이 만남의 결과는 무엇이었으며 이것은 왜 중요한가?
[사6:6~8]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답: 제단 숯불로 이사야의 입술에 대는 것으로 속죄받은 것을 선언하셨다. 그리고 사명을 주셨다. 또 이사야는 사명을 기쁘게 수행하겠다고 순종했다.
스랍이 제단에서 숯을 가져다가 그의 입에 대었을 때 이사야의 죄는 제해졌다. 이 제단은 하나님의 백성이 자신들을 위해서 중보기도를 드리는 분향 제단이었을 것이다(계 8:3, 4 참조). 그의 죄는 용서받았고, 그는 이제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설 수 있다고 여겨졌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세상에 하나님을 대표하도록 사명을 받았다는 것이다.
매우 흥미롭게도 “스랍”이라는 단어는 “불타는 자”라는 뜻이다.
요한복음 5:35에서 예수께서 침례 요한의 사역을 설명하신 것을 살펴 보라. “그는 타오르며 빛나는 등불이었노라. 너희가 한동안 그의 빛을 기뻐하기 원하였느니라”(흠정역). 물론 요한 자신도 은혜와 구원이 필요한 죄인이었지만, 그의 사역은 은혜와 구원을 가져다줄 수 있는 유일한 분을 가리켰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영광을 온전히 나타내시는 분으로 오셨고, 하나님은 하늘의 스랍이 할 일과 비슷한 임무를 수행하도록 죄인인 선지자를 보내셨다.
<교훈> 보좌의 환상을 보았을 때 이사야는 자신의 결점을 깨달았다. 은혜와 구원이 필요함을 깨달은 후 그는 그것을 주시는 유일한 분을 가리키는 사명에 동참했다.
<부가설명> 아담의 씨로 출생한 사람은 누구가 입술만이 아니고 존재 자체가 부정하다. 이사야 6장에는 제단의 숯불을 입술에 대는 것으로 속죄받은 것을 나타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서 그분의 보혈의 은혜로 속죄를 받는다. 상징적으로 모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분의 피 뿌림을 경험해야 한다(벧전1:2). 그렇게 하여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의롭다고 선언하신다(롬8:32,33). 이사야 6장의 스랍은 이 일에 봉사하는 모습으로 보여졌다. 성경에 스랍이라는 말은 오직 여기에만 나타난다. 교과에서 말했듯이 이것은 제단의 숯불과 관련되어 천사의 봉사 기능을 이름으로 나타내지 않았나 생각된다. 에스겔 1장, 10장과 계시록 4장을 함께 읽어보면 여섯 날개를 가진 천사가 그룹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룹은 언약궤를 덮고 있는 천사다. 루시퍼가 자기 지위를 버리고 그의 처소를 떠나기 전에는 덮는 그룹의 봉사를 했다(유6, 겔28:14). 아무튼, 이사야 6장의 스랍과 계시록 4장의 생물은 동일한 존재로 보인다. 모든 천사는 구원받은 후사를 섬기는 일을 하지만(히1:14). 특히 보좌 주위에서 봉사하는 천사들이 그 일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오늘도 주님의 천사는 우리를 위하여 정결하도록 이끄는 봉사를 할 것이다. 말씀 안에서 순복해야 할 것이다.
5월 12일(월) 두 그룹
우리의 첫 조상이 동산에서 쫓겨났을 때, 하나님은 즉시 메시아에 대한 소망을 주셨다(창 3:15). 그리고 에덴의 문에 강력한 상징물인 두 그룹과 그들 사이에 찬란하게 번쩍이는 불 칼을 두셨다. 우리는 이 장면이 하나님의 보좌를 상징하는 언약궤와 매우 흡사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출 25:18).
창세기 3:21-24을 읽어 보라. 그룹들에게는 어떤 일이 주어졌으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창3:21~24]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답: 생명나무에 나가는 길을 지키게 하셨다. 사망의 존재가 된 아담 부부가 영생생명과를 먹으면 영생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차단한 것이며, 나중에 생명나무에 나가는 권세를 회복해 주시기 위한 조치다.
그룹들에게 죄인들이 생명나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 책임이 주어진 것은 분명하지만(창 3:22), 그들은 또한 언젠가 인간이 낙원으로 회복될 것이라는 소망과 약속의 상징이기도 했다. “에덴동산은 사람이 그 기쁨의 통로에서 추방된 후에도 오랫동안 지상에 남아 있었다(창 4:16 참조). 타락한 인류는 오랫동안 그 죄가 없는 고향을 바라볼 수 있었지만 그들의 출입은 지키는 천사들에 의해 차단당했다. 그룹 천사들이 지키는 낙원의 문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다. 아담과 그의 아들들은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그곳에 나아왔다. 여기서 그들은 에덴에서 그들을 쫓겨나게 했던 율법에 순종하겠다는 맹세를 새롭게 하였다. …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계 2:7, 21:1, 22:14)이 있게 될 마지막 회복의 때에 에덴은 처음보다 더 영광스럽게 단장된 모습으로 회복될 것이다“(부조와 선지자, 62).
창세기 3:24의 표현도 흥미롭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에덴의 동쪽에 그룹들을 “두어”라고 했고, 이에 사용된 히브리어 단어는 하나님의 임재가 그분의 백성 가운데 거하는 거룩한 “장막”(출 25:9, 민 3:26 참조)의 어근인 shakan(샤칸)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뜻하는 일반 용어 Shekinah(쉐키나)는 성경에 나타나지 않지만 쉐키나도 종종 “장막”으로 번역되는 샤칸에 뿌리를 두고 있다. 샤칸을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하나님이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을 거하게(장막 짓게) 하셨다”라고 읽을 수 있다.
성경에서 그룹들은 하나님의 임재와 관련되며(대상 13:6, 시 80:1, 사 37:16 참조), 특히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하는 장소인 하나님의 보좌와 연관되어 있다. 요한계시록 4장과 5장에서 하나님의 보좌에 모인 24장로들이 그분을 찬양하고 만물을 창조하신 분으로서 그분의 통치권을 선포하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계 4:11). 이는 보좌실의 장면과 창조주와의 관계에서 용서받은 죄인으로서 우리의 역할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교훈> 인간의 타락 후에 주님은 그룹을 두어 에덴의 출입을 막았다. 하지만 하나님의 임재와 연결된 그룹을 두어 거하게 하신 것은 회복과 소망의 약속이기도 했다.
<부가설명> 아담 부부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어김으로(호6:7)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요일2:25) 이행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생명을 나타내는 생명나무에 접근할 권세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영생하는 사람이라야 살아 갈 수 있는 에덴동산에도 살 수 없게 되었다. 민물 고기는 바다에서 살 수 없다. 민물 고기였다가 바닷물 고기가 된 것과 같은 상태로 아담 부부는 변질했다. 그래서 민물 에덴동산에서 그들의 존재를 생명으로 유지될 수 없었다. 하나님은 그들이 육체 상태로(창6:3) 수명이 다할 때까지 생존할 수 있도록 지구 환경을 변질시키셨다. 그것이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낼 것이라는 말씀의 의미다. 그들은 육체가 된 상태로 한 번 죽는 것이 정해진(히9:27) 수명이 다할 때까지 저주로 변질된 지구에서 생존하다가 흙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여자의 후손의 약속으로 생존하는 동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길 수 있는 은혜와 구원의 기회를 주셨다(고후6:1,2). 이런 구원받은 사람들은 마침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생명나무에 나아가는 권세를 회복한다(계22:14). 남은 자손으로서 우리는 반드시 그곳에 가도록 정결한 존재로 생활해야 하지 않겠는가?
5월 13일(화) 불타는 숯불 같은
그룹은 살아있는 존재(겔 10:8)이거나 금으로 만든 그룹으로(출 25:18)으로 구약 성경 전반에 나타난다. 그들은 종종 하나님의 보좌 바로 옆에 서서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비추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룹은 지성소 앞 휘장에도 수놓여 있다(출 26:1). 시편에서는 창조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최상의 권능을 그분이 그룹을 타고 공중을 날아다니는 모습으로 시적으로 표현한다(시 18:10). 하나님께서는 언약궤 위에 서로를 향해 날개를 펼치는 두 개의 순금으로 만든 그룹을 두도록 명령하셨다(출 25:18-20).
에스겔 1:4-14을 읽어 보라. 이 구절과 이사야 6:1-6, 요한계시록 4:1-11에 묘사된 장면 사이에 어떤 유사점을 볼 수 있는가?
[겔1:4~14] 내가 보니 북쪽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 그 속에서 불이 번쩍번쩍하여 빛이 그 사방에 비치며 그 불 가운데 단 쇠 같은 것이 나타나 보이고 5 그 속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 그들에게 사람의 형상이 있더라 6 그들에게 각각 네 얼굴과 네 날개가 있고 7 그들의 다리는 곧은 다리요 그들의 발바닥은 송아지 발바닥 같고 광낸 구리 같이 빛나며 8 그 사방 날개 밑에는 각각 사람의 손이 있더라 그 네 생물의 얼굴과 날개가 이러하니 9 날개는 다 서로 연하였으며 갈 때에는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 10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오른쪽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왼쪽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 11 그 얼굴은 그러하며 그 날개는 들어 펴서 각기 둘씩 서로 연하였고 또 둘은 몸을 가렸으며 12 영이 어떤 쪽으로 가면 그 생물들도 그대로 가되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 13 또 생물들의 모양은 타는 숯불과 횃불 모양 같은데 그 불이 그 생물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며 그 불은 광채가 있고 그 가운데에서는 번개가 나며 14 그 생물들은 번개 모양 같이 왕래하더라.
<[사6:1~6] 반생들이 이 구절과 아래 구절을 직접 찾아 읽기 바란다.
[계4:1~11] 다 올리면 지면을 너무 많이 차지하기 때무이다.>
*답: 눈이 가득하고 생물들이 모양과 움직이는 것이 계시록과 같다. 이사야서는 계시록과 날개 수가 같고 찬양하는 거룩하다는 노랫말이 같다. 이사야와 에스겔에는 숯불이 같다. 결국 같은 상태인데 다르게 보여서 그렇게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에스겔은 인상 깊게 그려지는 하나님의 능력을 본다. 그 시작은 혼란스러운데 이는 택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약속의 땅이 아닌 바벨론의 포로생활을 하는, 그들이 현재 겪고 있는 곤경과 일치한다. 에스겔은 자기 앞에 놓인 장면을 살피다가 고개를 들어 이 모든 것 위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본다.
다른 “보좌” 환상들과의 중요한 유사점을 주목하라. 에스겔이 목격한 생물은 요한이 본 환상에 나타나는 생물들과 같은 사자, 독수리, 소, 사람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에스겔의 앞선 기록에는 네 얼굴을 가진 신비한 생물의 구체적인 이름이 없지만, 이후의 다른 보좌실 장면(겔 10:1-21 참조)에서 그들은 '그룹'이라고 불리며, 이사야의 스랍 환상에 나타난 불타는 숯도 볼 수 있다. 그들은 요한의 환상에 언급된 생명체들의 얼굴과 동일하다.
모세와 하나님의 전형적인 만남의 장소였던 언약궤(출 25:22)이든, 선지자들의 숨막히는 환상 가운데서든 우리가 하나님의 보좌를 볼 때마다 그룹들은 항상 그곳에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보좌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을 보거나,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보좌 바로 옆에 배치된 천사를 살펴보던지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도록 설계되었다.
<교훈> 선지자들에게 나타난 그룹은 하나님 보좌 옆에 서 있는 동일한 존재이다. 사람이든, 보좌의 천사이든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도록 만들어졌다.
<부가설명> 스랍도 그룹 중에 한 무리로 보인다. 그들은 숯불과 함께 나타났으나 에스겔에는 숯불과 함께 그룹이 나타났다. 에스겔의 그룹은 날개가 넷인데 같은 형상의 계시록 4장의 생물은 날개가 여섯으로 스랍과 같다. 에스겔 10장의 생물이 그룹인데, 계시록 4장의 생물과 같다. 그러니 계시록의 생물도 그룹이다. 날개 수가 왜 다를까? 에스겔에게 날개 수가 넷이라고 말씀해준 것이 아니다. 에스겔이 볼 때 날재 둘을 보지 못했을 수 있다. 그러나 요한은 날개 여섯을 다 본 것이다. 그러므로 스르바고 그룹은 그 기능을 수행할 때 다른 이름으로 나타났으나 결국은 같은 존재의 천사라는 생각은 합리적이다. 시편 104편에 천사 창조로 볼 수 있는 구절이 있다.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 바람으로 자기 사자를 삼으시며 화염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시며”(시104:3,4). 시편 18:10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룹을 타고 나른다고 기록했다. 여기는 바람 날개로 다니신다고 했고 바람을 자기 사자를 삼으시며 불꽃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신다고 했다. 여기 삼으신다는 말이 ‘아사’인데 만든다는 뜻이다. 영어는 “He makes winds his messenge” 즉 바람으로 그룹을 불꽃으로 스랍을 만드셨다고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이다. 그 자세한 것을 몰라도 천사들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며 우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수종하는 것이다. 당연히 구원받은 사람들을 도운다(히1:24, 시103:21,22, 34:7). 성도는 영원한 나라를 위하여 안전한 보호 속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예언을 위한 기초라는 제목에 천사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들이 성도들이 예언을 연구할 때 돕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저자에게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벧전1:11,12).
5월 14일(수) 당신의 백성 가운데 계신 하나님
구름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의 인도를 따라 약속의 땅으로 향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여정을 멈추면 장막을 세우고, 각 지파는 장막 사면의 한 면마다 세 지파씩 장막을 중심으로 진을 쳤다. 하나님의 임재는 지성소로 내려오고 하나님은 그의 백성 가운데 거하셨다.
성막의 네 면에는 각각 한 지파씩 지배적인 지파가 있었다. 그들은 어떤 지파였는가?
민 2:3(동쪽): 유다지파
민 2:10 (남쪽): 르우벤지파
민 2:18 (서쪽): 에브라임지파
민 2:25 (북쪽): 단지파
각각의 지배적인 지파는 그들이 누구인지를 나타내기 위해 그들만의 특별한 깃발을 게양했던 것을 유념하라. 성경은 각 깃발에 무엇이 그려져 있었는지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지만, 창세기 49장과 신명기 33장에 묘사된 지파의 특징을 바탕으로 네 가지 얼굴을 동서남북 네 지점에 각각 할당하는 흥미로운 전통이 있었다.
“랍비 전통에 따르면 유다의 깃발은 사자, 르우벤의 깃발은 사람 또는 사람의 머리 모양, 에브라임의 깃발은 소, 단의 깃발은 독수리의 형상을 지니고 있었다. 에스겔이 묘사한 그룹에 나타난 네 생물이 이 네 깃발에 표현되었다"(Carl Friedrich Keil, 칼 F 카일, 구약성경 주석, 2011, 1권, p660).
전통에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 고대 전통을 성경이 묘사하는 새 예루살렘과 비교해 보면, 새 예루살렘의 사방에 각각 세 지파를 나타내는 문들이 등장하는 흥미로운 형태가 나타난다(계 21:12, 13).
이스라엘 진영과 새 예루살렘에 대한 묘사는 하나님께서 인류를 당신의 보좌 가까이로 이끌려고 하신다는 중요한 사실을 강조한다. 요한계시록은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라고 가르친다(계 21:22).
<교훈> 이스라엘 진영과 새 예루살렘에 대한 묘사는 하나님께서 그들 중에 거하시며 인류를 당신의 보좌 가까이 이끌려고 하신다는 중요한 사실을 강조한다.
<부가설명>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군대였다. 그것은 사 군단으로 편성되어 있었다. 성소 바로 앞에는 모세와 제사장들의 진이 있었다(민3:1~7). 뒤편인 서쪽에는 게르손 족속(민3:23), 남쪽에는 고핫 족속(민3:29), 북쪽에는 므라리족속(민3:35)이었다. 그들과 거리를 두고 동쪽에는 유다 군단, 서쪽에는 에브라임 군단, 남쪽에는 르우벤 군단, 북쪽에는 단 군단이었다. 이 사개 군단은 군기를 세웠다. 교과에 있는 대로다. 각 군잔들은 군기가 가는 대로 움직였다. 네 군기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상징한다. 네 생물이 이 군기들에 그린 동물들의 모습으로 계시되었다. 그들에게는 눈이 가득했다. 이 생물들은 세상이라는 광야를 지나가는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을 살피며 돌보는 천사들과 하나님의 관심을 나타낸다. 또 예수께서 그들을 위하여 봉사하시고 구원하신다는 것도 암시한다. 사 복음서는 각각 이 동물들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전통적이 해석이 있다. 마태는 유대인의 왕 예수님을 나타내기 때문에 사자, 마가복음을 인류의 종 예수님을 나타내기 때문에 송아지 누가복음은 인자되시는 예수님을 표상해서 사람, 요한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나타내기 때문에 독수리 깃발과 연관해서 말한다. 결국 사 복음서는 모든 인류를 위하여 구속을 이루시고 그리스도의 정병(精兵)을 삼으신다는 것을 표상한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은혜로운 설명으로 느껴진다. 우리도 참된 성소이신 예수님을 따라 어디든지 가는 그리스도인 정병이 되어야 할 것이다.
5월 15일(목) 루시퍼의 타락
루시퍼가 한때 하나님의 보좌 옆에 있는 고귀한 지위의 덮는 그룹이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처럼 보인다. 그의 존재는 분명 우주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창조주의 영광이 아니라 자신의 영광을 생각하기 시작했고, 더 정확히 말해서 자기 자신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경의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에스겔 28:11-17, 이사야 14:12-14을 읽어 보라. 무엇이 루시퍼를 타락으로 이끌었는가? 이 구절을 요한계시록 14:1-12과 비교해 보라. 루시퍼의 타락과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의 높은 지위 사이의 대조는 요한계시록 14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 이해하게 하는가?
[겔28:11~17]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12 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인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13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었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예비되었었도다 14 너는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하였었도다 15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 16 네 무역이 풍성하므로 네 가운데 강포가 가득하여 네가 범죄하였도다 너 덮는 그룹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내었고 화광석 사이에서 멸하였도다 17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열왕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도다.
[사14:1~12] 여호와께서 야곱을 긍휼히 여기시며 이스라엘을 다시 택하여 자기 고토에 두시리니 나그네 된 자가 야곱 족속에게 가입되어 그들과 연합할 것이며 2 민족들이 그들을 데리고 그들의 본토에 돌아오리니 이스라엘 족속이 여호와의 땅에서 그들을 얻어 노비를 삼겠고 전에 자기를 사로잡던 자를 사로잡고 자기를 압제하던 자를 주관하리라 3 여호와께서 너를 슬픔과 곤고와 및 너의 수고하는 고역에서 놓으시고 안식을 주시는 날에 4 너는 바벨론 왕에 대하여 이 노래를 지어 이르기를 학대하던 자가 어찌 그리 그쳤으며 강포한 성이 어찌 그리 폐하였는고 5 여호와께서 악인의 몽둥이와 패권자의 홀을 꺾으셨도다 6 그들이 분내어 여러 민족을 치되 치기를 마지 아니하였고 노하여 열방을 억압하여도 그 억압을 막을 자 없었더니 7 이제는 온 땅이 평안하고 정온하니 무리가 소리질러 노래하는도다 8 향나무와 레바논 백향목도 너로 인하여 기뻐하여 이르기를 네가 넘어뜨리웠은즉 올라와서 우리를 작벌할 자 없다 하는도다 9 아래의 음부가 너로 인하여 소동하여 너의 옴을 영접하되 그것이 세상에서의 모든 영웅을 너로 인하여 동하게 하며 열방의 모든 왕으로 그 보좌에서 일어서게 하므로 10 그들은 다 네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도 우리같이 연약하게 되었느냐 너도 우리같이 되었느냐 하리로다 11 네 영화가 음부에 떨어졌음이여 너의 비파 소리까지로다 구더기가 네 아래 깔림이여 지렁이가 너를 덮었도다 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답: 교만과 영화로움과 그의 지혜가 그를 반역으로 이끌었고 그것이 바벨론과 두로 왕으로 상징되었다. 계시록 14장에 왜 바벨론이 온천하를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게 하고 무너지게 되는 것을 상징한다.
루시퍼가 거룩한 산에서 쫓겨난 반면, 구속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어린 양과 함께 시온산에 서 있는 것을 주목하라. 인류는 에덴에 있었고, 루시퍼도 그곳에 있었지만 사탄의 운명과 달리 인류는 그리스도를 통해 낙원으로 회복될 것이다(계 22:1-3 참조).
이러한 맥락에서 엘렌 화잇의 다음 글은 매우 유익하다. “사탄과 그의 천사들의 타락으로 하늘에 생긴 공백은 주님의 구속받은 자들로 채워질 것이기에 하늘은 승리할 것이다”(리뷰 앤 헤럴드, 1900. 5. 29).
그들은 오직 복음 때문에 천국에 있게 될 것이다. 실제로 복음의 주제인 구원은 요한계시록 4장과 5장의 보좌실에서 눈앞에 그려지듯이 드러난다. 천사들이 이렇게 외친다.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계 5:9). 인류의 구속을 위한 예수님의 죽음, 그 복음을 이보다 더 생생하게 그릴 수 있겠는가!
또한 그들의 외침이 첫째 천사의 기별, 곧 우리가 전하라고 부름 받은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어떻게 반영하는지 살펴보라.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위해 행하신 일의 충만함을 얼마나 강력하게 표현하고 있는가.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한 구원의 사역에서 제외된 사람은 지구 역사상 단 한 사람도 없다. 각 사람은 단지 그것을 배우고, 받아들이기로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교훈> 루시퍼는 창조주의 영광이 아니라 자기 영광을 생각하며 타락했다. 우리는 복음으로 회복되었고 창조주께 영광을 돌리라는 세 천사의 기별이 주어졌다.
<부가설명> 아담 부부는 언약을 어김으로 에덴동산에 살 자격을 잃었고 생명나무에 나갈 권세를 잃었다. 그 일을 만든 자가 루시퍼다. 루시퍼는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자기 처소를 떠났다(유 6). 그의 정죄는 교만이다(딤전3:6), 그것이 그가 범죄하게 했다(벧후2:4). 그는 하늘에서 쫓겨나서(계12:8,9) 땅으로 내려왔다. 그들이 땅으로 내려오기 전에 우주를 떠도는 유리하는 별들이 되었다(유13). 그러다가 지구가 창조되었을 때 재빨리 지구로 내려와서 막 창조된 사람을 속였다. 그는 사람에게 자기와 같은 생각을 품도록 유혹했다. 그것은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것이다. 루시퍼는 자기의 보좌를 집회의 산에 두고 지극히 높으신 분과 같아지겠다고 했다. 즉 자기가 하나님이 되겠다고 한 것이다. 이것을 에스겔 28장에는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하였으니 그런즉 내가 외인 곧 열국의 강포한 자를 거느리고 와서 너를 치리니 그들이 칼을 빼어 네 지혜의 아름다운 것을 치며 네 영화를 더럽히며 또 너를 구덩이에 빠뜨려서 너로 바다 가운데서 살륙을 당한 자의 죽음같이 바다 중심에서 죽게 할지라 너를 살륙하는 자 앞에서 네가 그래도 말하기를 내가 하나님이라 하겠느냐 너를 치는 자의 수중에서 사람뿐이요 신이 아니라”(겔28:6~9). 두로왕을 상징으로 사탄이 하나님 마음 같은 체했다고 표현하고 하나님이라 하겠느냐고 물으셨다. 그것이 그의 교만이다. 그렇게 그는 정죄되었는데, 그것이 두로 왕과 바벨론 왕으로 표상되었고 계시록에는 역사의 종말에 루시퍼의 정신을 따르는 자가 성전에 앉아서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하는 일이 있을 것에 표상이라고 계시했다. 계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잠29:18). 우리는 계시를 가진 백성으로 말씀대로 하나님께 충성하자. 그래서 생명나무에 나가는 권세를 누리도록 하자. 이렇게 되도록 주님이 희생하신 것이다. 그분 앞에서 찬양을 하는 무리 중에 내가 있는 것을 상상해보자.
5월 16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각 시대의 대쟁투 42장 “대쟁투의 종막”을 읽어 보라.
하나님의 보좌를 덮는 그룹이었던 사탄은 하나님의 보좌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려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천사들의 반역을 계속 허락하셔서 자신을 높이는 데서 오는 사악함의 깊이를 우주에 보여 주셨다. 사탄이 인류를 속여 하나님과의 전쟁에 가담하게 했지만,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그를 완전히 물리치고 타락한 천사들이 서 있던 자리에 인류의 자리를 마련하셨다. 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공개적으로 루시퍼의 주장을 반대한다. 루시퍼의 타락 이전보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이 더 확실히 드러나는 것이 이 전쟁의 결말이다. 하나님은 악이 존재하도록 결코 정하지 않으셨으며, 영원한 대가를 치르게 될 비극이지만, 모든 것이 끝날 때에 그렇지 않았다면 결코 알 수 없었을 방식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이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분은 구원받은 자들이 당신의 형상을 회복하고, 모든 마음에 하나님의 완전한 모습을 간직하고, 모든 얼굴에 그들의 왕의 형상을 반영하고 있음을 보신다. 그분은 당신의 수고의 결과가 그들 가운데 나타나 있는 것을 보시고 심히 만족해 하신다. 그때 그분께서는 의인의 무리와 악인의 무리가 다 같이 들을 수 있는 음성으로 외치신다. ‘나의 피로 산 자들을 보라! 나는 그들을 위하여 고난을 받았다. 나는 그들을 위하여 죽었다. 나는 그들이 영원토록 내 앞에서 살아가게 하고자 그런 일을 당하였다.’ 그때 보좌를 둘러 있는 흰옷을 입은 무리들이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계 5:12)라고 찬양의 노래를 부른다"(각 시대의 대쟁투, 671).
함께하는 토의를 위해
1. 모든 결점, 모든 성품의 결함, 모든 잘못된 행동, 모든 잘못된 생각, 모든 잘못된 동기가 완전히 드러난 채로 하나님 앞에 서 있다고 생각해 보라. 정당하고 공평한 판결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당신의 유일한 희망은 무엇인가? 왜 지금, 그리고 심판의 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롬 3:22)가 우리를 덮어야 하는가? 우리에게 복음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답: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니면 우리는 잠시라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2. 앞서 보았듯이 침례 요한은 밝게 타오르는 등불인 스랍의 역할을 했다(요 5:35 참조). 또 그는 메시아의 첫 번째 나타나심을 예고하는 그리스도의 선구자였다. 하나님의 마지막 때의 백성은 어떻게 이와 비슷한 예언자적 역할을 수행하는가?
*답: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가지고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킴으로 이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계22:8,9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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