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과 나라 - 2(질문, 대답, 설명) 05/03/25 > 교과토의 자료

본문 바로가기

운영진
x


교과토의 자료 보기

교과토의 자료

제5과 나라 - 2(질문, 대답, 설명) 05/03/25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5-04-25 09:35 조회442회 댓글0건

본문

제5과 나라 - 2

(5월 3일 안식일 / 일몰: 오후 7시 23분)

  

연구 범위: 창 2:9-17; 단 2:31-35; 사 17:12, 13; 단 7:1-3; 롬 3:10-19; 계 12:15, 16; 계 10:1-11

 

기억절: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시 46:10).

 

오랫동안,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는 타락이 필요했고, 인간이 죄와 죽음에 빠진 것은 그분이 의도하신 것이며,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결국,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것 보다 그들을 향한 당신의 사랑의 깊이를 그토록 강력하고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요컨대, 이 주장은 하나님께는 인류의 타락이 필요했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끔찍하고 형편없는 주장이다. 인류는 물론, 사탄의 타락조차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 사탄의 반역과 그에 따른 인류의 반역은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 비극이었으며, 만약 첫 조상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여전히 온전한 기쁨 가운데 있었을 것이다. 

이번 주에는 타락으로 인한 문제와 하나님의 통치가 아닌 인간 정부에 대한 욕망에 대해 계속해서 살펴볼 것이다. 이러한 진리는 다니엘서에 강력하게 드러나는데, 다니엘서는 당신의 백성이 그분에게서 돌아서고 그 대신 이 땅의 왕을 선택했을 때 일어날 일에 대해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것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땅의 왕과 죄인들이 죄인인 인간 위에 군림하는 것은 결코 좋은 조합이 아니지만 그것이 바로 그들에게 일어난 일이다. 

 

학습 목표

깨닫기: 나라들은 무너지지만 하나님은 남은 백성을 세우시고 당신의 나라의 역사를 이루신다. 

느끼기: 하나님 명령을 떠나 세상 나라를 따를 때 인간의 가치는 훼손되고 고난이 따른다. 

행하기: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며 사명을 가지고 세상에 하늘나라의 영광과 복음을 나눈다. 

 

TMI 위로

2.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왜 금지하십니까? 그것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창 2:16-17) 

*답: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실과 먹는 것, 하나님이 나타내지 않은 것을 알려고 하지 말라.

3. 다니엘서 2장의 신상은 어떤 특성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까?(단 2:31-35)

*답: 역사의 진행과 역사의 성질, 좋은 것에서 나쁜 것으로 진행된다.

4. 다니엘서 7장의 환상은 어떤 일이 우리 시대까지 이어질 것을 말하고 있습니까?

*답: 맹수들 정신이 나라들을 통하여 세상 끝까지 나타날 것이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대적하는 정신이 핵심이다. 

5. 요한계시록 12장의 땅과 물은 다니엘 7장의 땅과 바다와 어떤 연관성을 보입니까?

*답: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들과 하나님을 믿고 옹호하는 세력이 역사를 이어간다는 것을 보이는 연관성이 있다. 

6.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습니까?(계 10:11)

*답: 마지막 때가 되어 봉한 책이 열릴 때 세상을 준비시키는 기별을 전해야 한다는 의미가 있다. 

7. 세상 나라들의 흔적이 사라진 뒤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답: 하나님의 나라와 그리스도의 구원하시는 수고의 흔적이 남아있다.

 

결론: 하나님의 경고는 옳았다. 죄인인 인간이 다스리는 정부는 계속해서 문제를 낳았고 이스라엘은 금령을 어긴 대가를 고통 속에서 배워야 했다. 그들은 이방처럼 살기로 선택했기에 이방의 압제 아래 살게 되었으며 이 현실은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다니엘서 2장의 신상은 이 나라들의 가치가 점점 더 떨어지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 때에 하나님은 사명을 가진 교회를 신대륙에서 세우시고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향해 역사가 움직이게 하신다.    

 

4월 27일(일) 첫 번째 명령

 

에덴동산은 하나님의 첫 인류를 위한 학교였으며, 창조세계와 교제를 통해 그들과 그 자손들이 창조주에 대해 끊임없이 배우고 생각하게 하는 장소였다. 엘렌 화잇은 “그 순결한 부부는 하나님의 아버지와 같은 돌보심 아래 있는 자녀였을 뿐 아니라 전지하신 창조주에게서 교훈을 받는 학생이었다. … 보이는 우주의 신비 곧 ‘지혜가 온전하신 자의 기묘한 일’(욥 37:16)이 저들에게 교훈과 기쁨을 주는 다함 없는 원천이 되었다"(부조와 선지자, 50). 

 

창세기 2:9-17을 읽어 보라.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첫 번째 명령이자 금지사항은 무엇이었으며 그것은 왜 그렇게 중요했는가?

[창2:9~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10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11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13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14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답: 선악을 아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말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는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명령에 사용된 “명령하다”라는 히브리어 동사의 어근 ‘tswh’(차와)는 창세기 2:16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명령에서 처음 나타난다. 어떻게 특정한 지식을 금지할 수 있는가? 많이 경험하고 아는 것은 항상 유용한 것이 아닌가?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사람들이 주님의 직접적인 통치를 받기보다는 인간이 스스로 통치하기로 선택했을 때 이후에 일어나게 된 일처럼, 특정 지식이 가져오게 될 기나긴 고통으로부터 당신의 백성을 구하기 위해 사람을 철저하게 교육하기 원하셨다. 

지난주에 살펴본 것처럼 수천 년 후 이스라엘이 왕을 요청했을 때 주께서는 그 결과를 보이시며,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를 거절하기로 선택한 결정이 세상 끝날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백성들에게 알려 주셨다. 

이스라엘의 왕들이 점점 더 악해짐에 따라 당신의 언약 백성은 너무 세속화되고 그들의 목적에서 멀어졌기에, 하나님은 그들이 원하던 인간의 통치를 더 많이 겪도록 두셨다. 

이러한 배경을 염두에 두고 다니엘서를 살펴보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다니엘서의 환상에 묘사된 제국들의 연이은 등장은 이방인인 '열방'에 대한 고발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이스라엘의 실패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에덴에서 처음에 주셨던 자유 대신 겪는 수 세기 동안 속박의 생활이 이어졌다. 이는 배우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세상 왕국과 하나님의 나라 사이의 현저한 대조를 증거 할 수 있는 또 다른 학교가 될 것이다. 

 

<교훈> 이후의 고통을 막기 위해 금지하신 것을 어김으로 이스라엘은 이방의 통치 아래 자유 대신 속박을 겪으면서 세상과 하나님 나라와의 차이를 배워야 했다. 

 

<부가설명> 아담이 창조되었을 때 그렇게 짧은 시간에 동물들의 이름을 다 짓도록 탁월한 지혜가 있었다. 하나님께서 당신 형상대로 창조했을 때 지혜도 충분히 주셨을 것이다.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지음을 받은 것이다(시8:5). 그런데 무엇을 더 알기를 바랐을까? 아마도 아담의 지식과 지혜는 사는 날을 따라 발전하도록 창조하셨을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그리스도의 온전한 분량에 이르도록 하신 것 같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영어로는 선악 지식의 나무라고(the tree of knowledge of good and evil.) 번역한 것 같다. 선악이라는 말을 빼면 그냥 지식의 나무가 된다. 원문도 그렇다. 선과 악이 무엇일까? 우리는 선악이라고 하면 의식이 바로 도덕적 이해로 달려간다. 악한 자도 도덕적으로 선을 행할 수 있다. 그런데 가인은 악한 자에게 속해서 아우를 죽였다(요일3:12). 아우를 죽였기 때문에 악한 자가 된 것이 아니다. 성경은 사탄에게 속할 때 악한 자라고 한다. 사탄은 사망의 세력이다(히2:14). 이런 성경 말씀을 볼 때 선악은 생명과 사망을 가리는 나무이지 도덕적 상태를 뜻하는 나무로만 이해하면 바른 이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주어서 창조한 아담이(요일2:25, 창5:1~3) 그 생명을 잃게 되는 경험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창세기 1~3장에 나무 이름으로 기록된 것은 생명나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무화과나무가 전부다. 이것이 기록된 때는 기원전 1500년 경이다. 여자는 뱀의 질문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실과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창3:3)라고 했는데 원어네는 ‘그’라는 정관사가 있다. 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고 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때는 그 두 나무의 이름이 과연 있었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랬다면 여자가 나무 이름을 말했을 것인데 동산 중앙에 있는 그 나무라고 한 것을 보면 나무 이름이 과연 있었을까 아니면 모세가 기록할 때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셨을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모세가 기록할 당시는 생명과 사망이 분명하게 드러난 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님께서 나타내주시지 않은 것을 알려고 애쓰는 것은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신29:29).

 

4월 28일(월) 다니엘 2장

 

하나님은 바벨론 포로기 동안 다니엘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과 이 세상 왕국 사이에서 있을 일에 대해 가장 분명한 설명을 보이셨다. 하나님의 백성은 주권을 잃어버렸다. 그들은 선택에 따른 결과를 거둘 것이었고 아마도 그 결과를 통해 배우게 될 것이었다. 

 

세상 끝까지의 세계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다니엘 2:31-35을 읽어 보라. 이 놀라운 예언에서 우리는 어떤 중요한 진리를 알 수 있는가? 

[단2:31~35] 왕이여 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 그 신상이 왕의 앞에 섰는데 크고 광채가 매우 찬란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 32 그 우상의 머리는 순금이요 가슴과 두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33 그 종아리는 쇠요 그 발은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34 또 왕이 보신즉 손대지 아니한 돌이 나와서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매 35 그 때에 쇠와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서져 여름 타작 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나이다.

*답: 역사의 종말에 역사적 사건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진다는 것이다.

 

19세기 말의 많은 사람은 인류의 진보에 대한 새로운 확신으로 가득했다. 예를 들어, 1900년 파리 세계박람회에는 미래에 대한 낙관주의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기술과 과학의 발전으로 많은 인류의 가장 심각한 난제들이 해결될 것 같았다. 인류가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많은 사상가 사이에서 인간의 완전성과 이성의 힘과 같은 계몽주의 이상이 인류에게 멋진 새 시대를 열어줄 것이라는 낙관론이 팽배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은 이러한 꿈을 순식간에 깨트려 버렸고, 20세기 말까지 2억 명 이상의 사람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었다. 인류는 기술적인 면에서는 발전했을지 모르지만 도덕적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목사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유도 미사일을 만들었지만, 사람을 옳은 길로 유도하지는 못했다. 이것은 매우 무서운 조합이 아닌가. 

많은 예언 연구자들은 다니엘서 2장에 등장하는 신상에 사용된 금속이 가장 가치 있는 것에서 제일 가치 없는 것으로, 즉 금이 은으로 떨어지고, 은이 놋으로, 놋이 철로 절하되어 결국에는 철과 흙만 남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찰스 다윈, 카를 마르크스, 그리고 다른 19세기 사상가들은 인류가 어떻게든 발전하고 있다는 즉, 생물학적, 사회적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어떤 면에서 인간의 삶은(적어도 물리적 수준에서는) 개선되었지만, 사실 어느 누가 지금처럼 통치되고 다스려지는 이 지구의 미래를 평화, 안전, 번영으로 가득한 낙관론으로 내다볼 수 있겠는가?

 

<교훈> 20세기에 가득했던 인류와 미래에 대한 낙관론은 인간의 이기심, 전쟁, 무질서 등으로 깨어졌다. 이것은 다니엘 2장의 신상에서 보는 가치의 절하와 유사하다. 

 

<부가설명> 사람은 스스로 미래를 보는 안목이 없다. 점을 치는 사람들은 다른 영의 힘을 빌린다. 그들은 인간 개인의 길흉을 중심으로 점을 친다. 그것이 정확하지 않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의 안위를 미리 알기 원하는 마음이 있다. 세상의 미래를 개인이 어떻게 알겠는가? 역사의 과거를 추리해서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대로 될는지는 모른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후세 사람들이 그럴듯하게 해석할 뿐이다. 정감록도 그렇다. 그러나 종말을 처음부터 아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사46:10)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계시로 가르쳐주신 역사 예언은 정확하게 성취되었고 성취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다니엘서 2장이다. 인간 모양의 우상으로 보여주신 예언은 얼마나 정확하게 이루어졌고 이루어지고 있는가? 요즘은 역사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과연 몇 사람이나 있을까? 다니엘 2장에 나타난 이 상징은 여러 가지 사실을 암시 표상한다. 이 예언의 목적은 역사의 궁극적 목적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나타내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나라 곧 천국의 실현 과정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다.  천국의 성립. 천국은 역사적으로 성립된다.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 나누어진 나라들이 역사적으로 성립된 것처럼 이 역사의 종말에 이 역사의 현장에 하나님의 나라가 역사적으로 성립된다.  천국의 위치. 천국의 위치는 서있던 자리 곧 역사의 현장인 이 지구이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하실 것이다.(계 11:15)  천국의 주권. 천국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이다.  천국의 시한. 천국은 망하지 않고 주권이 다른 데로 돌아가지도 않는다.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영원토록 다스리실 것이다.  천국의 성질. 천국은 뜨인 돌로 표상되었다.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않고 뜨인 돌은 산 돌이신 그리스도를 표상한다.(벧전 2:4) 천국은 돌 나라이다. 이 우상을 구성하는 재료는 세상 역사의 정신적, 사상적 퇴화와 기초가 약한 불안한 역사의 모습도 지적한다. 또한 역사의 진행이 불안정하다는 것도 가르친다.

 

4월 29일(화) 다니엘 7장

 

다니엘 2장의 꿈은 바벨론의 왕에게 처음 계시되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다니엘 7장의 환상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히브리 선지자에게 주어졌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에게 주신 것과 동일한 주제를 보았지만 그것을 다른 관점에서 보았다. 다니엘은 동상 대신 바람이 물결을 일으킨 후에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일련의 나라들을 본다. 이 나라들의 싸움이 이어지는 중에 그들 사이에서 권력의 판도가 계속해서 바뀌고 있었다. 시편 65:5-8, 이사야 17:12, 13, 예레미야 46:7, 8과 같은 구절은 홍수와 파도의 비유를 사용하여 열국 사이의 격동을 묘사하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약속의 땅은 적어도 일정 기간 이방 왕국들의 바다 가운데 평화와 안전의 섬, 즉 주변 나라들의 혼란과는 달리 하나님의 정부의 견고한 토대 위에 세워진 구별된 나라로 존재했다. 

 

다니엘 7:1-3을 읽어 보라. 이 장면에는 많은 움직임이 있다. 바다에서 처음 나타나는 짐승과 같은 이런 장면들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단7:1~3] 바벨론 벨사살 왕 원년에 다니엘이 그의 침상에서 꿈을 꾸며 머리 속으로 환상을 받고 그 꿈을 기록하며 그 일의 대략을 진술하니라 2 다니엘이 진술하여 이르되 내가 밤에 환상을 보았는데 하늘의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몰려 불더니 3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더라.

*답: 세상 나라들은 맹수와 같은 성질을 가졌다는 것을 나타낸다. 압제와 전쟁과 유혈과 멸망이다.

 

다니엘이 해안에서 이방인들의 전쟁의 혼란을 지켜보는데, 갑자기 짐승들이 육지, 즉 그가 있는 땅으로 올라오기 시작한다. 이방인의 문제는 이제 다니엘의 민족의 문제가 되었다. 이스라엘은 이방인처럼 살기로 선택했기 때문에 이제 이방인들과 같이, 그들의 지배 아래 살게 될 것이었다. 바벨론의 지배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의 언약 백성은 다시는 완전하고 오래 지속되는 자치를 이룰 수 없었다. 

이와 같이 오늘날의 하나님의 백성의 자주권 상실도 그리스도께서 마침내 우리의 왕으로서의 정당한 자리를 회복하실 마지막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신약 시대에도 하나님의 백성은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서, 그리고 이교 로마의 후계자인 작은 뿔의 박해 아래서 계속해서 고난을 겪었다. 

역사적으로 어떤 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풍요로웠고 어떤 시대는 다른 시대보다 더 평화로웠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국가, 민족, 제국의 역사는 한 비극에서 다른 비극으로, 한 압제자에서 다른 압제자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종종 이 모든 것이 자기 민족의 유익을 최우선시하는 통치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만약 그들이 따르기로 선택하기만 했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해 행사하시려 했던 통치와는 얼마나 대조적인 모습인가? 

 

<교훈> 이스라엘은 이방인처럼 살기로 선택했기에 이방인의 압제 아래 살게 되었다. 이같은 신자들의 자주권 상실은 예수께서 회복하실 마지막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부가설명> 아담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어겨서(호6:7) 영생은 없어지고 사망의 존재가 된 후 그의 자손들은 사망의 지배 아래서 연합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도덕적으로 악하고 마침내 사망으로 끝나는데 그 기간에 이기심과 시기와 질투와 탐욕이 지배하게 되어 범죄하고 전쟁해서 이미 사망이 된 사람들을 일찍 죽게 하여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의 기간에(고후6:1,2) 구원받을 기회를 빼앗는 일을 계속한다. 세상은 사망의 역사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수명을 주셔서 종신할 때까지 여자의 후손으로 오셔서 뱀의 머리를 깨뜨릴 구주를 믿고 잃어버린 영생을 회복할 기회를 주셨는데, 사탄은 질병과 전쟁과 재난으로 모든 사람이 이 은혜의 기간을 누리지 못하게 한다. 세상의 제국들은 사나운 맹수와 같아서 파괴하고 삼키고 죽인다. 그러다가 자신도 나라도 마침내 사망에게 삼켜진다. 인간 역사는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될 때까지 이렇게 계속될 것이다. 지금도 이런 현상은 곳곳에 일어난다.

 

4월 30일(수) 땅과 바다 사이에서

  

성경에 등장하는 땅과 바다의 장면, 특히 예언에 있어서 이 장면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성경 예언에 등장하는 땅과 바다가 상징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이들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땅과 바다가 병기될 때, 상징적으로 땅은 종종 질서 있는 세계나 심지어 이스라엘 땅을 상징하는 한편 바다는 바다가 땅을 위협하는 것처럼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이방 국가를 가리킨다"(Beatrice S. Neail, 베아트리체 닐, 요한계시록 심포지엄 1권, 성경 연구소, 1992, p260), 

이런 견해에서 땅은 하나님의 통치 위에 세워진 안정된 장소이며, 바다는 인간의 교만 위에 세워진 나라들의 불안정한 혼란을 나타낸다.

 

위의 생각을 참고하여 요한계시록 12:15, 16과 요한계시록 13:1, 11을 읽어 보라. 땅과 물이 함께 언급되는 것에 주목하라. 이 두 단어는 어떻게 사용되며, 예언을 이해하는 방법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 줄 수 있는가?

[계12:15,16]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되 16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계13:1,1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11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어린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하더라.

*답: 바다는 교회를 위협하는 세력이고 땅은 일단은 교회를 보호하는 세력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여자로 상징된 교회를 물의 세력이 핍박한다.

 

용이 여자(교회)를 핍박하는 데 물을 사용하는 것을 살펴보라. 앞서 본 것처럼, 예언에서 물은 종종 세상 정부와 그에 따르는 혼란과 혼돈을 상징한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 역사의 대부분을 통해 사탄이 어떻게 지도자들의 선동을 받은 대중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박해했는지 알 수 있다.

재림교회는 요한계시록 12:16을 박해받는 신자들이 신대륙으로 이주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해 왔다. 땅과 바다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옳다면 이것은 미국의 건국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약속의 땅"을 따로 준비하셨던 것같이 이 땅 또한 준비하셨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미국은 초기 건국자들이 바랐던 것과 같은 '새 이스라엘'은 결코 아니었지만, 이 땅은 오랫동안 종교적 박해를 받는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종교 자유의 땅이었다. 

안타깝게도 이 양 같은 두 뿔을 가진 짐승은 언젠가 “용처럼”(계 13:11) 말할 것이다. 오랫동안 박해받는 이들을 위한 종교 자유의 등대 역할을 해온 미국이 종교 박해의 주도자가 될 것이다. 이것은 인류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대신 스스로 통치하기로 선택했을 때 일어난 일의 또 다른 예이다. 

 

<교훈> 예언에서 땅은 하나님이 통치하는 안정된 장소, 바다는 세상 정부와 불안정한 혼란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박해 받은 신자들을 위한 새 땅을 준비하셨다. 

 

<부가설명> 창세기는 창조의 행복을 기록하고 유혹으로 생명이 사망이 되는 사건을 기록했다. 그리고 아담의 모든 후손은 사망의 존재가 되고(고전15:22) 피조물은 다 썩어짐의 종노릇을 하게 되었다(롬8:21). 사람도 썩어가는 옛사람이 되어(엡4:22) 마음의 모든 생각이 항상 악하게 되었다(창6:5). 그런 결과로 나온 대표적인 것이 전쟁을 위한 도시 건설이다. 가인이 하나님 앞을 떠나 맨 먼저 한 것은 도시 건설이었다(창4:16,17). 그들은 가인의 성질을 이어받아 5대째인 라멕은 무기를 만드는 아들을 힘입어서 살인하고 자기는 절대로 죽임을 당하지 않는다고 큰 소리를 쳤다. 그러나 그의 후손들과 셋의 후손들이 연합해서 네피림이 되고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마침내 홍수로 멸망했다. 노아의 세 아들 중에 함의 자손들은 또 도시를 건설하고 사람을 결집시켜 하나님을 대적하였다. 그 절정이 바벨탑이다. 도시는 가인에게서 시작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정신의 집합지가 되었다. 소돔은 도시가 어떤 소굴로 변하는지 잘 보여주는 셈플이 되었다. 살인과 음란과 교만이 충마나했다(겔16:49,50). 그들은 창조주의 솜씨인 천연계의 아름다움과 생명을 보고 감사하기보다는 인간의 생각과 고안을 만들어놓은 도시의 장엄함과 아르다움을 찬양한다. 도시에서는 천연계를 대한 기회가 거의 없다. 도시의 야경은 하늘을 보고 창조주를 생각하라고(사40:26) 하신 시선을 빼앗아 인간 찬양으로 변질시켰다. 모든 것이 사람의 솜씨다. 그것을 바라보고 찬탄하는 것은 그 자체가 가인의 정신이다. 죄의 온상이 되어 도덕성도 훼손되고 범죄 홍수의 근원지가 되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의 성공한 작품이다. 미국이 문명국이 되면서 용처럼 변하는 것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5월 1일(목) 다시 예언하라

  

남은 교회는 신대륙에서 탄생했다. 정확히는 17세기와 18세기에 종교적 자유를 찾아 떠났던 사람들이 정착한 신대륙에서 탄생했다. 다른 곳에 오랫동안 남아 있던 종교적, 정치적 장애물을 생각할 때, 재림운동의 시작이 미국이 된 신대륙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이렇게 빠르고 강력하게 일어났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 운동의 시작을 설명하는 요한계시록 10:1-11을 읽어 보라. ‘나라,’ ‘땅,’ ‘바다’와 같은 우리가 공부한 몇 가지 요소를 찾아보라. 본문을 너무 확대해석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읽을 때 이 기록에서 어떤 가능성 있는 견해를 발견할 수 있는가?

[계10:1~11]1 내가 또 보니 힘 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으며 2 그 손에는 펴 놓인 작은 두루마리를 들고 그 오른 발은 바다를 밟고 왼 발은 땅을 밟고 3 사자가 부르짖는 것 같이 큰 소리로 외치니 그가 외칠 때에 일곱 우레가 그 소리를 내어 말하더라 4 일곱 우레가 말을 할 때에 내가 기록하려고 하다가 곧 들으니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말하기를 일곱 우레가 말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 하더라 5 내가 본 바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가 하늘을 향하여 오른손을 들고 6 세세토록 살아 계신 이 곧 하늘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7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의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8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두루마리를 가지라 하기로 9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10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11 그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답: 힘센 천사는 따, 바다를 밟고 외치는데 그것은 온 세상에 대적하는 세력과 옹호하는 세력에 다 같은 기별을 전하는 것을 나타낸다. 

 

이 천사는 요한계시록 14장의 세 천사와 요한계시록 18장의 천사가 한 것처럼 큰소리로 외친다. 이것은 역사 가운데 남은 교회의 사역이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계 10:11)을 위해 전파되는 긴박한 순간이다. 

천사는 아마도 다니엘서(단 12:4)로 보이는 “작은 책”을 들고 있는데, 닫혀있던 이 책이 여러 세대 만에 처음으로 열린다. 천사는 한 발은 바다에, 다른 한 발은 땅에 딛고 있다. 이는 그 기별이 구대륙과 신대륙을 아우르는 전 세계를 포괄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또한 이 기별이 땅에 사는 사람들과 바다에 사는 “이방인” 모든 민족을 위한 것이라는 뜻일 수도 있다. 

오랜 시간 뒤 마침내 세상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환하여질 것이며, 요한계시록 14장의 마지막 기별은 “모든 사람”에게 전해질 것이다.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교회로서 우리의 사명은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는 말씀대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 나라의 종말과 그리스도의 영원한 즉위라는 위대한 결론을 향해 인류 역사가 움직이게 하신다. 

다니엘 2:34, 35, 44, 45을 읽어 보라. 성경은 이 모든 세상 왕국이 흔적 없이 사라지고 그 추악한 유산도 남김없이 소멸될 것을 모호함 없이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그 자리는 죄, 고통, 질병, 악, 죽음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을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이 대신할 것이다. 

 

<교훈> 주님은 신대륙에 온 세상을 환하게 할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가진 교회를 세우시고 인간 나라의 종말과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향해 역사가 움직이게 하신다. 

 

<부가설명> 다니엘서 2장은 사람 형상의 우상으로 세상 역사를 한눈에 깨닫도록 계시를 주셨다. 역사는 사람이 진행한다는 암시가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 그런데 다니엘서 7장은 사람이 이끌어가는 세상 역사는 맹수와 같다는 역사의 내면 성질을 나타내셨다. 이 짐승들은 싸우고 찢고 죽이는 것이 본성이다. 세상 역사의 성질을 이처럼 극명하게 상징하는 다른 기록을 보기 힘들 것이다. 이 예언은 역사에서 그대로 성취된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었을 때 땅에 한 나라를 일으키시고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가진 한 교회를 일으킬 것이라고 계시하셨다. 그들은 바다와 땅에 다시 예언해야 할 사명을 가졌다. 그들이 지체하고 있는 동안 땅에서 어린양처럼 올라온 나라는 용처럼 말하는 존재로 변할 것을 경고하셨다. 용처럼 변한 그 나라는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과 용을 경배하라고 할 것이다. 짐승과 용을 경배하는 우상을 만들고 경배하도록 표를 줄 것이다. 재림성도들은 이것을 잘 알고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창조주께 더 가까이 가서 그분의 능력의 품에 깊이 안겨야 하지 않을까?

 

5월 2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부조와 선지자 10장 “바벨탑”을 읽어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계 21:1). 악인을 태우는 불이 땅을 정결케 한다. 모든 저주의 흔적은 자취를 감춘다. 죄의 무서운 결과를 생각하게 하는 영원히 불타는 지옥은 구속받은 자들 앞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하나의 기념물만 남게 된다. 우리 구주께서는 십자가의 흔적을 영원히 지니실 것이다. 그분의 상하신 머리와 옆구리, 손발에는 죄가 빚어놓은 잔혹한 일의 유일의 흔적이 남게 된다. 영광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선지자 하박국은 이렇게 말했다. ‘광선이 그 옆구리(한글 성경은 ‘손’으로 되어 있음)에서 나오니 그 권능이 그 속에 감취었도다’(합 3:4). 그의 찔린 옆구리에서 인류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붉은 피가 흘러 나왔다. 그곳에 구주의 영광이 있고, 그의 “권능이 그 속에 감”추어져 있다. 속죄의 희생을 통해 ‘구원하시기에 능하신’ 그분은 하나님의 자비를 멸시한 자들에게 공의를 집행하는 일에도 능하시다. 그분의 굴욕의 표는 그분의 가장 큰 영광이며, 영원한 시대를 통하여 갈보리의 상처들은 주님께 찬양드리게 하고 그분의 능력을 선포할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674). 

 

함께하는 토의를 위해 

1. 이 땅의 성취가 아무리 크고, 위대하며,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고, 영광스러울지라도 결국 먼지와 재가 되어 영원히 사라져 버릴 것이다. 이것에는 당신이 이 땅에서 성취했거나 지금 이루고 있는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일이 모두 포함된다. 이 관점을 항상 기억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관점은 당신의 우선순위를 바로 잡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겠는가?

*답: 구원하신 은혜와 영원을 위하여 준비하는 일의 격려가 된다.

2. 요한계시록 13:1-10의 바다 짐승을 주의 깊게 살펴보라. 이 짐승은 어떤 면에서 바벨의 사고방식의 당연한 결과물인가? 이것은 바벨론부터 작은 뿔 세력까지의 모든 인간 '나라'들을 모아 놓은 결정체인 것이 분명하다. 각 제국의 어떤 특징이 시간이 지나도 지속되어 온 것을 볼 수 있는가? 예를 들어, 세상은 어떤 면에서 여전히 바벨론이나 로마가 가졌던 가치를 나타내고 있는가?

*답: 물질 문명이 그렇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정신이 그렇고 전쟁과 약육강식의 사회가 그렇다.

3. 재림교인으로서 우리는 주님께 순종하는 것과 우리가 살고 있는 국가나 정부의 법을 따르는 것 사이에서 어떻게 올바른 균형을 잡을 수 있는가? 그중 하나에 대한 순종이 다른 하나에 대한 불복종을 의미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답: 에녹으 본을 따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가이사의 것을 가이사에게 바치되 이 둘이 필수 불가결로 충돌하면 하나님 편에 굳게 서도록 기도하며 준비할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대총회 북아태지회 한국연합회 성경통신학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한국연합회 선교부 | 고유번호증번호: 204-82-62040 | 대표자: 강순기 | 부서장: 신광철
Copyright © 2014 안식일학교·선교부 All rights reserved.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