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과 나라 –1(질문, 대답, 설명) 04/2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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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5-04-18 10:31 조회2,203회 댓글0건본문
제4과 나라 –1
(4월 26일 안식일 / 일몰: 오후 7시 17분)
연구 범위: 창 10:1-12, 창 12:1-9, 삼상 8:4-18, 마 20:25-28, 계 18:1-4
기억절: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단 7:14).
요한계시록은 타락한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해결책을 보여준다. 마지막 장에서는 생명나무에 대한 접근이 회복되고 저주가 풀리며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다시 설 수 있게 된다. 요한계시록은 어떤 면에서 창세기를 반대 순서로 전개하는 책이며, 그렇기 때문에 창세기는 태초에 세상의 문제들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이다.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의 핵심 주제 중 하나는 세상의 통치, 곧 하나님께 속한 이 지구를 자신들이 차지하려는 인간의 시도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문제이다, 이 땅에서 끔찍한 죄와 반역의 시대가 영원히 끝날 때, 결국은 하나님이 의로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다.
그때가 이르기까지는 수천 년에 걸친 인간 자치에 대한 실험을 포함하는 매우 긴 과정이다. 그 어떤 시도도 성공하지 못했다. 가장 높은 이상을 표방하는 자들조차도 항상 그 이상에 미치지 못했고, 도리어 처참하게 실패하기도 했다. 수천 년에 걸친 인류의 슬픈 역사들은 대부분 이런 실패한 제도가 가져온 비극에 대한 기록에 불과하다.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단 7:27)가 마침내 세워지기 전까지 이 상황은 점차 악화될 뿐이다.
학습 목표
깨닫기: 하나님은 당신의 율법을 따르며 그 빛을 누리는 나라를 세우신다.
느끼기: 하나님의 법을 어긴 인간은 자신의 나라를 세웠지만 문제와 반역으로 이어졌다.
행하기: 무너진 세상에서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을 따르며 세상에 빛을 나누는 삶을 산다.
TMI 위로
2. 인간이 여러 나라로 나뉘고 큰 성읍을 만든 것은 어떤 과정이었습니까?(창 10:12)
*답: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하여 결합하는 과정이다.
3. 이스라엘이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창 12:3)
*답: 만민을 구원의 빛으로 인도하는 의미를 가졌는데, 그러기 그들 스스로가 빛과 복이 되어야 했다.
4. 이스라엘이 구한대로 주었을 때 그것이 낳은 결과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줍니까?(왕상 11:6)
*답: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지 않을 때의 결과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르는 것이 복이고 빛인 것을 깨달아야 한다.
5. 이방인이 집권자를 구한 것과 같은 잘못은 어떤 결과로 이어졌습니까?(마 20:25)
*답: 집권자 마음대로 하고 권세를 부렸다.
6. 온 땅이 환해질 것이라는 예언은 이스라엘과 교회의 어떤 사명을 가리킵니까?(계 18:1)
*답: 빛이 되는 사명이다.
결론: 인간이 세운 나라들은 하나님의 이상을 벗어나서 실패를 반복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당신의 율법을 따르는 나라로 부르셨다. 그러나 그들은 왕을 요구했고 악의 길로 빠져들었다. 교회도 그와 같이 이방 집권자를 들임으로 심각하게 타락했으며 하나님의 나라가 올 때까지 상황은 점차 악화될 뿐이다. 인간은 당면한 문제의 해결책을 찾고자 했으나 반역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의 빛으로 세우기 위해 부르신다.
4월 20일(일) 니므롯과 니느웨
에덴은 인류를 위한 이상적인 보금자리로 창조되었다. 하지만 죄가 들어온 후, 하나님은 사람을 에덴동산과 생명나무에서 분리할 수밖에 없었다.
에덴동산에서 나온 후 사람은 자신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일해야만 했다. 삶은 더 힘들어졌고, 고통 가운데 이마에 땀을 흘리며 살아가야 했다(창 3:16-19). 그럼에도 우리의 첫 조상은 진정한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동산으로 돌아갈 길을 마련해 주실 것을 믿었고, 세상이 타락한 직후부터 하나님께서 세상에 베푸신 구원을 신실하게 기다리며 에덴의 동쪽으로 예물을 가져왔다.
“에덴동산은 사람이 그 기쁨의 통로에서 추방된 후에도 오랫동안 지상에 남아 있었다(창 4:16 참조). … 아담과 그의 아들들은 이곳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나아왔다. 여기서 그들은 자신들이 범죄하여 에덴에서 추방당하게 했던 그 율법에 대한 순종의 서약을 새롭게 하였다. 그러나 죄악의 조수가 온 세상을 뒤덮고, 인간의 악함으로 그들이 홍수로 멸망하게 되었을 때, 에덴을 심으셨던 손이 그것을 이 땅에서 거두셨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계 2:7, 21:1, 22:14)이 있게 될 최후의 회복의 때에 에덴은 태초 때보다 더 영광스럽게 단장되어 회복될 것이다”(부조와 선지자, 62).
에덴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그 문제에 대해 인간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가 보는 도시 국가의 탄생, 더 편안한 삶을 만드려는 시도는 필경 에덴에서 잃어버린 것을 되찾으려는 시도였을 것이다.
창세기 10:1-12을 읽어 보라. 여기서 성경은 니느웨와 바벨론 등 이후 성경에서 볼 수 있는 여러 주요 도시들을 소개한다. 그 도시들의 이후의 역할에 비추어 볼 때, 이 구절에서 우리는 무엇을 추론할 수 있는가?
[창10:1~12]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 2 야벳의 아들은 고멜과 마곡과 마대와 야완과 두발과 메섹과 디라스요 3 고멜의 아들은 아스그나스와 리밧과 도갈마요 4 야완의 아들은 엘리사와 달시스와 깃딤과 도다님이라 5 이들로부터 여러 나라 백성으로 나뉘어서 각기 언어와 종족과 나라대로 바닷가의 땅에 머물렀더라 6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7 구스의 아들은 스바와 하윌라와 삽다와 라아마와 삽드가요 라아마의 아들은 스바와 드단이며 8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9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10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11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12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을 건설하였으니 이는 큰 성읍이라.
*답: 인간이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하여 결집하도록 사탄이 기초를 놓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이 앗수르 바벨론으로 성장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효과적으로 공격하고 하나님의 일을 무너뜨리려고 했다.
어떤 사람은 니므롯에 대해 읽고 그가 이교 신화에 등장하는 정복 영웅과 같은 고귀한 영웅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성경이 그를 “땅에서 강력한 자”(흠정역),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라고 묘사한 것은 칭찬이 아니다.
니므롯은 스스로를 위대하다고 여기며, 하나님을 거스르는 자로서 주님 '앞에' 서 있다. 이 구절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 확산되는 장면이며, 궁극적으로 모든 반역이 영원히 근절될 때까지 이 상황은 계속될 것이다.
<교훈> 범죄 후 하나님을 거절하던 인류는 당면한 문제에 대해 인간적인 “해결책”을 찾고자 했다. 그들은 반역하는 자로 섰으며 반역은 마지막 때까지 있을 것이다.
<부가설명> 성경의 이런 기록을 예언의 시각으로 볼 때 세상 역사가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하여 결집하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린다. 이들은 도시를 건설하고 세상에 흩어져 살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정신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것은 결국 바벨탑을 쌓는 결집으로 모든 사람이 연합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시작했다. 요세프스는 이 일을 주장한 사람이 니므롯이라고 기록했다. 바벨탑의 목적은 너무나 분명하다 흩어짐을 면하고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이름들 내자는 것이다(창11:4). 성경은 니므롯에 관하여 이렇게 기록했다.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창10:8,9). 여기 여호와 ‘앞에’라는 말을 70인 역 구약에는 “에난티온- εναντιον”이라고 번역했는데 뜻은 ‘앞에, 전에’라는 뜻도 있고 ‘대적한다’는 뜻도 있다. 이것은 ‘에난티’에서 파생된 말이다. 반대하다, 적대시하다라는 말이 ‘에난티오스’다. 그래서 요세프스는 이것을 여호와 앞에 영걸이라는 뜻을 여호와를 대적하는 영걸이라는 뜻으로 사용했다(요세프스 유대 고대사 김지찬 역, 60쪽, 1987년, 생명의 말씀사 간). 도시를 형성하고 사람들이 모여 사니까 연합이 쉬운 것이었던 것 같다. 홍수의 환난을 겪고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증오하는 정신을 더 깊이 새겼다. 그들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이 그랬다는 생각만 하게 만들어서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는 결집을 극대화한 것이다. 그것이 바벨탑으로 나타났다.
4월 21일(월) 아브라함의 부름
창세기 10장에서 우리는 다양한 민족의 탄생을 본다. 일반적으로 “나라”로 번역되는 히브리어는 고임(goyim)으로 이방인을 일컫기도 한다. 창세기 10장은 인류가 땅, 방언, 종족, “나라”로 나누어졌다고 말한다(창 10:5, 계 14:6 참조).
많은 종족과 나라의 등장을 말한 후, 하나님은 그 민족들 가운데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어 다른 종족, 그리고 그들이 대표하는 것과 다른 존재가 되게 하신다.
창세기 12:1-9을 읽어 보라. 하나님은 왜 아브람을 그의 고향에서 불러내셨는가?
[창12:1~9]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6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8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9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답: 인간이 주권을 가진 나라와 다른 성격의 나라를 세워서 이 세상에서 복이 되게 하기 위하여 불러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사용하여 인간 왕국과 대조되는 나라를 세우려고 하셨다. 그 나라는 하나님 외에 다른 왕을 두지 않으며, 인류가 창조주께로 돌아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보여주는 나라가 될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땅의 모든 족속”(창 12:3)에게 복이 되기 위해 세워졌다. 하나님께서는 홍수 이전의 세상에서 볼 수 없게 되었던 빛과 특권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부어주셨다.
신명기 4:5-9을 읽어 보라. 주님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성취한 나라인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무엇이라 말씀하고 계시는가?
[신4:5~9]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규례와 법도를 너희에게 가르쳤나니 이는 너희가 들어가서 기업으로 차지할 땅에서 그대로 행하게 하려 함인즉 6 너희는 지켜 행하라 이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7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8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9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그리하여 네가 눈으로 본 그 일을 잊어버리지 말라 네가 생존하는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조심하라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
*답: 하나님의 계명과 규례와 법도를 잘 지켜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을 온 세상에 드러내고 지혜와 지식을 가르치고 복이 되라고 하셨다.
이것은 어떤 공동체의 한 개인의 증거가 아니라, 당신과 협력하고 함께 일함으로써 하나님의 성품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는 한 나라를 말씀한다. 또한 그들에게 주신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규례와 법도”를 주신 것만으로 그들이 특별하게 된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것을 준수할 때에 다른 나라들이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점을 유의하라(신 4:6). 그 백성에게 주어진 진리가 아무리 훌륭해도, 그 진리를 따라 살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다면 축복이 아닌 저주를, 생명이 아닌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교훈: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인간 왕국과 대조되고 세상 나라가 그 규례와 법도를 보며 세상에서 볼 수 없었던 빛과 특권을 발견하는 나라를 세우기 원하셨다.
<부가설명> 수많은 사람들 중에 아브람을 택하셨다. 어찌 그렇게 하셨을까? 느헤미야서에 그 이유가 설명되어 있다. “주는 하나님 여호와시라 옛적에 아브람을 택하시고 갈대아 우르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주시고 그 마음이 주 앞에서 충성됨을 보시고 더불어 언약을 세우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의 땅을 그 씨에게 주리라 하시더니 그 말씀대로 이루셨사오니 주는 의로우심이로소이다”(느9:7, 8). 아브람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충성된 것이 어떻게 드러났는지는 탈무드에 재미있는 이야기로 설명되어 있다. 그 아버지 데라가 우르에서 우상 장사를 했는데(수24:2,3 참고). 여행을 가면서 아브람에 우상 전을 지키고 장사하라고 시켰다. 아브람은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믿음의 조상들에게 배워서 알았기에 그 우상을 다 때려부수고 가장 크고 힘세보이는 우상 앞에 상을 차리고 한 손에는 숟가락, 한 손에는 모둥이를 들려 놓았다고 한다. 아버지가 돌아와 야단을 치면서 아들의 설명을 듣고 ‘우상이 무슨 음식을 먹고 몽둥이질을 한다는 말이냐?’라고 하자,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을 아버지 귀로 잘 들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조상이 믿음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인식시키기 위하여 잘 사용하는 이야기라고 했다. 사실 여부는 모르지만, 그 마음이 주님 앞에 충성되었다는 것을 설명하는 이야기다. 우리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하는 말을 자기 귀로 들어서 하나님의 뜻을 올바르게 깨닫고 순종했으면 하나님이 크게 기뻐하실 것이며 세상이 복음을 배울 것이다.
4월 22일(화) 너희가 구한 대로 주었으니
원래 이스라엘은 다른 나라들처럼 인간 군주를 두지 않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믿음은 흔들렸고, 그들은 '열방'인 이방인이 가진 것들을 갈망하게 되었다.
사무엘상 8:4-18을 읽어 보라.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왜 왕이라는 존재를 매력적으로 느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비슷한 유혹에 빠지게 되는가?
[삼상8:4~18]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5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6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했을 때에 사무엘이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8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
*답: 주위 나라들의 상태를 보면서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그것의 밑바닥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스리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통치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우상 숭배와 같은 정신이다.
왕을 요구한 것은 당신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거부한 것이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나라가 세워질 때부터 이스라엘 민족은 창조주와 직접 교통하는 나라였고, 그분과의 관계는 다른 무엇보다도 성소와 그 제사를 통해 나타났다. 왕을 요청함으로써 그들은 이방 왕국이 겪는 것과 같은 고통, 즉 왕의 전쟁에 징집당하고, 몰수, 과세와 다른 악행에 시달릴 것이었다. 자비로 다스리시는 하나님과 달리, 인간 주권자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통치하려 한다는 것을 그들은 알게 될 것이다.
또한 새로운 조치는 영구적인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그들이 요구한 대로 받게 되겠지만, 그것이 하향 조정이라는 것을 깨달을지라도, 바꾼 상태 그대로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날에 너희는 너희가 택한 왕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되 그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지 아니하시리라"(삼상 8:18).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의 연약함을 아셨고, 이스라엘이 인간 왕을 요청할 것을 일찍이 예언하셨다. 그들은 그렇게 했고, 택한 백성의 역사의 많은 부분은 그 선택의 결과로 말미암은 것이다.
신명기 17:14-20을 읽어 보라. 하나님께서 내가 “네 위에 왕을 세우”겠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신의 백성이 왕을 원한다고 결정한 것을 유념해 보라. 하나님께서 인간 정부의 악으로부터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안전장치를 마련하셨음에도, 이스라엘과 그 왕들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안전장치는 자주 무시되었다. 이 왕들의 통치가 상황을 얼마나 악화시켰는지는 이스라엘이 왕을 세우기로 한 결정 이후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어떤 왕은 다른 왕들보다 좀 나았지만, '선한' 왕들조차 잘못을 저질렀다(다윗과 밧세바를 생각해 보라). 많은 경우,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는 왕들의 통치가 이어졌다(왕상 11:6, 왕상 15:26, 왕상 16:30, 왕하 3:2 등 참조).
그때나 지금이나 모든 인간 정부는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죄인이 다른 죄인을 다스린다는 것이다. 어떤 잘못이 이어질 수 있겠는가?
<교훈> 인간 군주를 두지 않기로 했던 이스라엘은 왕을 요구했고 결국 점점 더 악한 길로 빠지게 되었다. 택한 백성의 악의 역사는 그들의 선택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부가설명> 아브라함을 택하셨을 때 그를 복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그의 후손들이 세울 나라는 하나님께서 친히 통치하실 것이다. 그곳에는 국가 예산을 위한 세금도 필요 없고 전쟁을 위한 군대도 필요 없다. 엘리사를 지킨 천국들이 나라를 지킬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환경과 주위의 문화 풍습을 보게 되고 그것에 물들기 쉬운 죄인이다. 왕은 같은 죄인이 죄인을 통치하게 되는 것인데, 죄인은 자아가 먼저 있는 존재다. 권력을 잡으면 자기를 먼저 챙기게 마련이다. 다음으로 국방을 챙긴다. 그래서 세금이 필요하고 군대가 필요하다. 죄인이 다스리는 세상 나라들의 기본적 상태다. 죄인들은 이것이 좋아 보이는 모양이다. 그들은 자기 좋은 대로 생활하기를 원한다. 그것이 죄의 성질이다. 결과는 망하는 것과 죽는 것이다. 아담 범죄 후로 세상은 바로 그렇다. 그것은 사망의 역사요, 전쟁의 역사다. 아브라함의 후손의 나라를 이런 상태에 두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죄의 성질대로 그런 나라가 되었고 전쟁과 사망과 멸망의 역사로 이어졌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다윗이라는 왕을 통하여 그가 엄청난 범죄를 했으나 메시아의 나라가 올 것이고 그가 왕이 되어 세상을 통치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는 것이다. 이것을 복된 좋은 소식이라고 했다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사52:7).
4월 23일(수) 이방인의 집권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대하신 일은 그분이 신약시대의 교회를 대하시는 것에 대한 풍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사실 여러 면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교회의 잘못을 예고하는 역할을 했다. 그리스도인들도 고대 이스라엘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과거에 그러했던 것처럼 지금도 여전히 같은 유혹에 매우 취약하다.
마태복음 20:25-28을 읽어 보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교회의 사역을 세울 때 어떤 오류를 피하라고 경고하셨는가?
[마20:25~28]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답: 지도자는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셨다.
이스라엘은 그 국가의 도덕적 타락으로 이어지는 인간 왕을 요구했다. 인간 왕들은 점점 더 사악해졌고,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통해 당신의 백성을 포로로 잡아가도록 허락하시는 지경에 이르렀다.
교회사에서도 그와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그들은 이방 나라와 같은 모습이어서는 안 되는데도 불구하고 콘스탄틴이 집권하고 개종을 공언하자 신자들은 박해가 이제 끝났다고 안도했다. 그 자체는 축복이었지만, 교회는 황제의 권력을 이용해 자신들의 유익을 도모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4세기에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몇 가지 주요 분쟁이 일어났고, 교회가 그것을 해결할 수 없다고 느끼자 그들은 황제에게 그 문제에 개입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때 이후로부터 그동안 주교들 사이에서 한 명의 고위 주교에 불과했던 로마의 주교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교회는 종교 문제에 국가가 개입해 줄 것을 요청했고, 국가가 개입하면서부터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었다.
옛날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장면들은 바로 교회가 세상과 타협한 직접적인 결과였다.
이스라엘 왕들이 우상 숭배에 빠지고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아이들을 우상에게 바칠 정도로 타락한 것처럼, 교회는 점점 더 많은 이교 제국의 수단과 방법을 채택함으로 신실한 신자들이 교회-국가 연합체에 대한 위협으로 여겨져 순교 당할 정도로 타락했다.
<교훈> 인간 왕을 요구함으로 걷잡을 수 없이 타락한 이스라엘과 같이 교회도 이방 집권자를 교회에 들이고 세상과 타협함으로 심각하게 타락했다.
<부가설명> 이스라엘의 역사는 역사적 교회 역사의 예언적 표상이 되었다. 진정한 교인들은 일찍 이것을 알아차려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예수께서 친히 교회의 지도자 되는 사람들은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시고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씨기셔서 섬기는 것이 어떤 자세인지 본을 보여주셨다. 그때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요13:14~17)라고 삶으로 본을 주셔서 마태 20:25~28의 교훈을 몸소 실행해 보였는데도 제자들은 누가 큰가 하는 다툼을 일으켰다. 그것이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이다. 우리 재림교회는 어떤가? 장 자리를 얻으려고 암투한다면 그런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악한 왕들의 길을 걷는 것이고 교황권의 길을 따르는 것과 같지 않을까? 그래서 베드로를 통하여 사도 자리를 메울 때 제비뽑게 하셨다.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잠16:33).
4월 24일(목) 이방인의 빛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별하여 세우신 주된 목적은 나머지 세상을 정죄하려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우리 대부분은 다른 사람의 의로운 행실을 직면할 때 그렇지 못한 자신의 모습이 정죄받는 것처럼 느낀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존재는 주변 국가의 죄와 이기심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신자들은 하나님의 의로운 성품을 높이며 자연스럽게 다른 이를 회심으로 이끈다. “하나님의 계명을”(계 14:12) 지키는 사람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을 행하고 당부하신 말씀을 따랐다면, 열방은 이스라엘과 그들의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알고자 평화 가운데 그들에게 다가왔을 것이다. 그러나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알 수 있듯이 비극적이게도 이 나라들은 그 대신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다가왔다.
하나님의 성품을 가장 완전하게 보여주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성품을 온전히 드러내신 유일한 인간이셨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성품을 확신하게 한 그분의 완전한 모범은 그들을 하나님께로 이끌기 위한 것이었다(요 3:16-21 참조).
다음 구절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의도하신 역할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우리는 이 원리를 어떻게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겠는가?
1) 민14:17-21 이제 구하옵나니 이미 말씀하신 대로 주의 큰 권능을 나타내옵소서 이르시기를 18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허물을 사하시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시고 아버지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19 구하옵나니 주의 인자의 광대하심을 따라 이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되 애굽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백성을 사하신 것 같이 사하시옵소서 2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네 말대로 사하노라 21 그러나 진실로 내가 살아 있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온 세계에 충만할 것을 두고 맹세하노니,
*답: 하나님은 사람들의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시려는 자비의 하나님이시다.
2) 사42:6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사49:6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60:3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답: 나라들의 빛이 될 것이다.
3) 계18:1-4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 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2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3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답: 온 세상을 환하게 하여 바벨론에서 사람들을 불러내어야 한다.
이스라엘 민족을 세우신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목적과 동일하다. 그분은 당신의 백성들을 사용하여 죄인들을 그리스도께로 이끌기를 갈망하신다. 하나님의 교회를 통해 전파되는 세 천사의 기별은 선택된 소수에게가 아니라 “모든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계 14:6)에게 전해야 할 기별이다. 요한계시록 18:1은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온 땅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환하여질 것을 예언한다.
<교훈> 이스라엘은 이방에 빛을 비추기 위하여 세웠으며 교회도 세상에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부르셨다. 택한 백성은 삶을 통해 그분의 성품을 나타내야 한다.
<부가설명>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에 복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사명이고 또 복이요 특권이다. 이것은 오늘날 남은 자손들에게 부과된 사명이다. 재림교회가 남은 자손이라면 온 세성에 빛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교회가 조직이 되고 직책이 주어지자, 지도자가 된 사람들은 옛날 왕권처럼 처신하는 경향이 강하다. 지도자를 선출할 때가 되면 지도자가 되겠다고 운동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된 현실이 아닌가? 그렇게 지도자 된 사람들은 참으로 회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섬겨야 할 것이다. 교회가 그렇게 정화되어야 한다. 복음이 밝고 크게 드러나야 한다. 신학교에서는 종이 되는 교육을 해야 할 것이다. 종은 멀리가고 지도자가 되는 사상이 머리끝까지 차서 졸업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사명보다 취직이 염두에 있는 것은 아닌가? 교회 직분도 같은 것 같다. 장로 집사 목사가 계급이 아닌데 계급처럼 인식하는 경향이 아닌가? 자아가 죽어야 한다. 그래서 예수께서 보이신 모범을 충성스럽게 따라야 한다. 교회가 올바르게 정화 되면 빛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중세 교황권처럼 교회 전체를 어둠으로 덮을 것이다.
4월 25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이사야 44:24-45:13을 읽어 보라.
“‘불법의 비밀’은 처음에는 조금씩, 조금씩 비밀리에 조용히, 그리고 나중에 세력이 커지고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게 되자 더욱 공공연하게 기만적이고 참람된 일을 진척시켰다. 이교의 관습은 거의 드러나지 않게 점진적으로 그리스도교회 안으로 침투해 들어왔다. 양보와 순응주의의 정신은 교회가 이교 아래서 견뎌낸 맹렬한 박해로 말미암아 한동안 억제되었다. 그러나 박해가 그치고 그리스도교가 왕궁 안으로 들어가게 되자, 교회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도들의 겸손한 단순성을 버리고 이교의 제사장이나 방백(方伯)들의 교만과 허식을 따르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율법을 사람의 이론과 유전으로 대체시켰다. 4세기 초엽에 있었던 콘스탄티누스(Constantine)의 이름뿐인 개종은 큰 기쁨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실상은 세상이 의(義)의 형식의 탈을 쓰고 교회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그리하여 타락이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표면적으로는 이교가 정복당한 듯하였으나 실상은 승리자가 되었다. 이교의 정신이 온 교회를 지배하였다. 이교의 교리, 의식, 미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의 예배와 신앙에 혼합되었다"(각 시대의 대쟁투, 49).
수요일 교과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 모두는, 특별히 우리가 세상에 오래 있을수록 세상의 화려함, 권력, 명예, 유혹을 위해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도들의 겸손한 단순함”을 제쳐두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이다.
함께하는 토의를 위해
1.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바벨론으로 잡혀가게 하신 것은 특히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를 떠나 세상의 빛이 될 언약 백성을 세우도록 부름 받았는데, 그들은 이제 쇠사슬에 묶여 끌려가게 되었다. 포로로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신실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를 보여 주셨다. 하나님과 완전히 반대되는 체제의 수장인 느부갓네살이 그리스도께 나온다(단 4장). 고레스는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언약 백성을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내는 구원의 계획을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그를 선택하셨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사람들을 사용하여 당신의 뜻을 이루셨다는 사실에서 하나님께서 인류를 어떻게 보고 계신지에 대해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답: 그리스도인 아닌 사람도 하나님의 일꾼으로 사용하셔서 그리스도인들을 돕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그들은 긍휼의 그릇 노릇을 했다(롬9:22~24) 남은 자손들도 진정으로 긍휼의 그릇으로 봉사해야 할 것이다.
2. 우리가 바벨론 안에 있는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바벨론이 우리 안에 얼마만큼 들어와 있을 수 있는가?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으며, 어떻게 바꿀 수 있겠는가?
*답: 우리가 진정으로 말씀과 증언의 말씀을 따른 성도이며(사8:20, 계12:17, 14:12) 교회인지 스스로 시험하고 확인해야 할 것이다(고후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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