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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과 결혼에서 가져온 심상(질문, 대답, 설명) 04/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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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5-04-12 10:47 조회2,4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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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과 결혼에서 가져온 심상

(4월 19일 안식일 / 일몰: 오후 7시 10분)

   

연구 범위: 창 2:23-25, 엡 5:29-32, 겔 16:4-14, 계 18:1-4, 창 24:1-4, 계 19:1-9

 

기억절: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계 19:9).

 

성경은 구원과 그분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강력하게 드러내는 사랑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가장 친밀한 관계인 결혼이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뜻대로 이루어진다면,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 그분과 우리의 관계,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 그분이 어떤 일까지 하셨는지에 대한 깊은 교훈을 발견할 수 있는 배움의 장이 될 것이다. 

사랑과 결혼에 대한 현대의 개념은 하나님께서 결혼 언약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치려고 하시는 것을 이해하는 우리의 능력을 왜곡시켰다. 하지만 인간의 죄악이 결혼 그리고 다른 모든 것을 크게 왜곡했음에도 결혼은 여전히 진리, 심지어 예언적 진리를 드러내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결혼은 단순히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심도 있는 교훈을 배우는 학교가 되어야 한다.

이번 주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좋은 결혼과 나쁜 결혼을 들어 결혼에 대해 말씀하는 다양한 방식을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과의 관계를 더 잘 이해하고, 백성들이 부족할 때조차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들을 대하시는지, 또 마지막 날의 사건을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몇 가지 진리를 배울 것이다.

 

학습 목표

깨닫기: 결혼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마지막 때에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을 알 수 있다. 

느끼기: 예수님은 우리를 죄악에서 구하시며 자신을 주시지만 우리가 반역할 때 고통 받으신다. 

행하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생각하며 악한 감화력에서 자신을 지키고 주님과 연합한다. 

 

TMI 위로

2. 바울은 무엇을 위해서 창세기의 “한 몸”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까?(엡 5:31) 

*답: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하여.

3. 하나님의 신부가 아름다운 이유는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합니까?(겔 16:14)

*답: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하시기 때문이다.

4.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음란한 여인으로 묘사하시는 것은 어떤 이유가 있겠습니까?(호 1:2)

*답: 이스라엘 백성이 배도하고 우상을 섬기기 때문이다.

5. 아들을 위한 아브라함의 선택에는 마지막 때를 위한 어떤 교훈이 담겨 있습니까?(창 24:3)

*답: 하나님의 백성이 불신자와 의합할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낸다.

6. 요한은 새 하늘을 어떤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계 21:2)

*답: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다고 묘사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부이기 때문이다. 신천 신지는 이 가정의 신방(新房)이다.

7. 가나의 혼인 잔치는 하나님 나라의 어떤 성격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까?(요 2:1-11)

*답: 하늘 나라는 행복한 가정이라고 암시한다. 그 가정은 예수님의 피의 새 언약으로 설립된다.

 

결론: 결혼관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관계, 그분이 하신 일과 마지막 날의 사건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인류와 결혼관계와 같은 친밀한 관계에 들어가서 서로에게 신실하기를 원하신다. 인류가 범죄했음에도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설 수 있는 것은 자신의 가치가 아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때문이다. 우리는 주께서 우리 때문에 고통을 겪으시고 그 대가를 대신 지신 것을 생각하고 악한 감화력에서 자신을 지키며 주님과 연합해야 한다. 

 

4월 13일(일) 한 몸

 

성경에서 결혼보다 하나님께서 인류와 친밀감을 원하신다는 것을 더 강하게 보여주는 은유는 드물다. 이 은유는 성경에서 매우 자주 사용되며 요한계시록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이 은유를 사용할 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파악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창세기 2:23-25과 에베소서 5:29-32을 읽어 보라. 사람의 결혼은 그리스도와 인류 사이의 결합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가?

[창2:23~25]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엡5:29~32]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 31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답: 그리스도와 교회가 일체되는 진리를 표상하게 되었다.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말씀하실 때 아담과 하와의 결혼에 관한 창세기의 말씀을 인용하자, 바리새인들은 재빨리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마 19:7)라고 반문했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세운 선지자로 여겨진 것은 분명하지만, 이것은 결혼 제도의 창시자이신 그분에게 그분이 세우신 선지자를 들어서 반대 질문하는 것이다. 이러한 교묘한 접근은 그들이 예수님을 대하는 전형적인 방식이었으며, 그들은 자주 예수님의 가르침이 성경과 모순되는 양, 이를 입증하려고 시도했다. 

결혼을 통해 평생토록 서로에게 신실하도록 한 것은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하실 때 세우신 이상이었다. 타락한 인류는 안타깝게도 하나님이 주신 가장 근본적인 선물을 훼손했다. 

성경이 결혼에 부여하는 중요성을 생각할 때, 이 제도가 항상 끊임없는 공격을 받아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결혼은 안식일과 함께 에덴에서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두 가지 선물 중 하나이며, 두 제도 모두 피조물과 친밀한 관계를 맺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열망을 보여준다. 

결혼은 두 명의 불완전한 사람이 친밀하게 맺어지는 관계이기에 언제나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 

교회와 그리스도의 결혼은 완전하신 구주와 한없이 불완전한 신부 사이의 결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좋은 결혼관계가 제공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배울 수 있다. 

 

<교훈> 창조부터 결혼으로 남녀가 평생 서로에게 충성하는 것이 이상으로 제시되었다. 한 몸의 은유는 인류와 이런 친밀감을 원하시는 하나님을 강하게 보여준다. 

 

<부가설명> 결혼은 하나님께서 이 지구에 영생하는 사람, 곧 하나님의 형상을 그대로 지닌 사람들로 충만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그래서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창1:26,27). 그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말씀하셨다(창1:28). 결혼은 창세기 2장에서 창조주께서 친히 주례하시고 신부를 남자인 신랑에게 대려다 주는 것으로 결혼식 제도를 제정하셨다. 그런데 두 사람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겨서 생명이 사망으로 떨어졌다. 그것을 우리는 타락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헬라어로는 ‘파라피프토’인데, 옆으로 떨어졌다는 뜻이다. 히브리어는 몇 단어를 타락으로 번역했는데 다 빗나가는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모두 죄라는 말, 곧 과녁에서 빗나간 것을 뜻하는 것은 같다. 그래서 숭고한 결혼이 육욕의 대상이 되면서 썩어져 가는 구습이 되어 세상을 부패시키는 도구로 전락했다. 사탄은 태초에 창조주께서 제정하신 두 제도를 집중적으로 공격한다. 최근에는 미국을 위시해서 동성결혼까지 왔으니 하나님의 창조를 가장 효과적으로 공격하는 도구가 되었다. 그리스도인 부부는 하나님의 이상을 가정에서 이루어서 세상에 빛으로 드러나야 할 것이다. 바로 저런 가정이 되고싶다는 생각을 사람들에 드러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결혼을 통하여 교회가 남편 여호와이신(사54:5) 예수님의 신부 되는 것을 표상하게 하셨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자녀를 땅에 충만하게 할 책임이 있다. 그 방법이 전도다. 그래서 이런 사람에 땅에 충만하게 될 때 주님의 재림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교회는(고후11:1,2) 이 사명을 올바르게 달성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재림을 촉진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4월 14일(월) 아름다운 신부

 

에스겔 16장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스라엘은 들판에 버려져 죽을 형편에 놓인 아기로 묘사된다. 하나님은 그 아기를 집으로 데려와서 깨끗이 씻기고 그녀가 성장하자 신부로 받아들인다. 이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혼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구속하시는 사랑에 대한 놀라운 묘사이다. 

 

에스겔 16:4-14을 읽어 보라. 신부를 높여주시는 이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장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겔16:4~14] 네가 난 것을 말하건대 네가 날 때에 네 배꼽 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너를 물로 씻어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였고 네게 소금을 뿌리지 아니하였고 너를 강보로 싸지도 아니하였나니 5 아무도 너를 돌보아 이 중에 한 가지라도 네게 행하여 너를 불쌍히 여긴 자가 없었으므로 네가 나던 날에 네 몸이 천하게 여겨져 네가 들에 버려졌느니라

6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하고 7 내가 너를 들의 풀 같이 많게 하였더니 네가 크게 자라고 심히 아름다우며 유방이 뚜렷하고 네 머리털이 자랐으나 네가 여전히 벌거벗은 알몸이더라 8 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네 때가 사랑을 할 만한 때라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를 내게 속하게 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9 내가 물로 네 피를 씻어 없애고 네게 기름을 바르고 10 수 놓은 옷을 입히고 물돼지 가죽신을 신기고 가는 베로 두르고 모시로 덧입히고 11 패물을 채우고 팔고리를 손목에 끼우고 목걸이를 목에 걸고 12 코고리를 코에 달고 귀고리를 귀에 달고 화려한 왕관을 머리에 씌웠나니 13 이와 같이 네가 금, 은으로 장식하고 가는 베와 모시와 수 놓은 것을 입으며 또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을 먹음으로 극히 곱고 형통하여 왕후의 지위에 올랐느니라 14 네 화려함으로 말미암아 네 명성이 이방인 중에 퍼졌음은 내가 네게 입힌 영화로 네 화려함이 온전함이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답: 성도들을 최상으로 아름답게 단장하여 장래에 하늘 예루살렘에서 혼인할 것을 암시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당신의 보살핌 가운데 “심히 아름답”(겔 16:13, 흠정역)게 자랐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처음 그녀를 발견하셨을 때에는, 아무도 그녀를 아름답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녀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버림받은 존재였고, 죽도록 방치된 상태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관심을 쏟아부으시자, 그녀는 점점 더 아름다워졌고, 마침내 온 세상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히브리 왕조의 초기인 다윗과 솔로몬 시대가 특히 그러했다. 에티오피아의 여왕은 이스라엘의 영광을 보기 위해 특별한 일정으로 직접 찾아오기까지 했다. 

이스라엘의 아름다움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그녀가 열방의 화제가 될 정도로 아름다웠던 것은 하나님의 신부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대해 “내가 네게 입힌 영화로 네 화려함이 온전”(겔 16:14)하여졌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성경에서 반복해서 나타나는 주제이다. 하나님의 신부가 아름다운 것은 그녀가 한 일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신자들이 하늘의 평가에서 아름답게 여겨지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분의 의, 곧 “하나님의 의”로 덮여 있기 때문에 아름답다(고후 5:21). 

모든 것이 좋았다. 그러나 다음 구절에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러나 네가 네 화려함을 믿고 네 명성을 가지고 행음하되 지나가는 모든 자와 더불어 음란을 많이 행하므로 네 몸이 그들의 것이 되도다"(겔 16:15).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영광을 반영하도록 창조되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자기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할 때, 그 아름다움은 가치 없게 되고 많은 문제들에 직면하게 된다. 

 

<교훈> 버려졌던 이가 아름답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돌보심 때문이다. 그러나 신부가 이를 자신의 것으로 여길 때 아름다움은 가치를 잃고 문제에 직면한다. 

 

<부가설명> 사망이 되어버린 아담 자손들이 마지막 아담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얻는다. 그가 아름다운 자리에 있게 되었을 때 예수께서 꾸며주신 것을 받는 대신 스스로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노력할 때 그 신부는 아름다움을 잃게 된다. 아무리 꾸며도 예수님이 주신 생명의 역사를 호흡마다 순간마다 받아들이지 않을 때 스스로 꾸미는 것이 그를 결토 생명의 아름다움을 주지 못한다. 그것은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한 그런 아름다움이다. 사람들의 칭송을 받을는지 모르나. 예수님은 자기 스스로 자기를 단장하려는 존재로 보실 것이다. 우리는 성화 되기 위하여 애쓰는 대신에 주님께 굴복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바울은 날마다 죽는다고 고백했다(고전15:31). 또 자기가 사는 것은 예수께서 자기 안에 사시는 그것이라고 고백했다(갈2:20). 예수님 안에서 자아가 날마다 죽는 것 외에는 주님의 아름다움을 가질 수 없다.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움은 예수님의 생명의 아름다움이다. 이 생명이 우리의 몸을 통하여 활동하도록 하는 것이 성화다.

 

4월 15일(화) 호세아의 음란한 아내

 

하나님께서 선지자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인인 줄 알면서도 그와 결혼하라 요청하신 것은 하나님의 종에게 주어진 가장 기이한 임무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죄와 반역으로 인한 고통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해하게 하기 위해 호세아를 사용하셨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아내,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지만 이스라엘은 반복해서 하나님을 배반했다. 그러나 매우 놀랍게도 하나님은 그녀를 다시 받아들이시고 회복시키신다. 

 

호세아 1:2; 호세아 3:1; 요한계시록 17:1, 2; 요한계시록 18:1-4를 비교해 보라. 여기서 언급된 음행은 어떤 것인가? 그리스도교는 호세아의 이야기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교회는 어떤 면에서 구약시대의 죄를 반복했는가?

[호1:2]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

[호3: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하시기로,

[계17:1,2]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로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2 땅의 임금들도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사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계18:1~4]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 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2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3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답: 여기서 음행은 정식 결혼한 배우자를 두고 다른 배우자를 따라가서 사는 것을 나타낸다. 역사적으로 교회도 그런 현상에 빠졌다는 것을 계시록이 드러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구원하려고 하신다.

 

성경은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잘못이 신약시대의 교회에 의해 대대적으로 반복되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은 포로기 이전에 크게 타락하여 이웃 나라의 우상 숭배를 하나님의 언약 국가에 들여왔다. 4세기 초, 잠재적 이점을 감지한 교회는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를 끌어들여 교회의 분쟁을 해결해 줄 것을 요청했다. 두 경우 모두 하나님의 백성은 발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벗어나 헤매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표현들은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보여주려고 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잘못이 당신에게 어떤 감정을 일으키는지를 알려주고자 하려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배우자의 배신이 가져오는 상실감과 고통을 생각해보면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불충성이 하늘 법정에서 어떤 황폐한 감정을 일으킬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호세아 선지자가 방탕한 아내를 구하기 위해 감수한 모든 일들은 호세아서에서 가장 놀라운 부분일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바벨론에서 나오라고 부르는 인류를 향한 마지막 외침을 볼 때, 그분이 이방인이 아닌 자기 백성을 부르고 있다는 점은 특히 주목할 만한 일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친밀하게 알고 계시고 그들을 사랑하신다. 세상은 최악의 때를 향해 치닫고 있지만, 그분은 여전히 우리를 다시 사기 위해 당신의 피로 지불하신 속전(贖錢)을 제공하고 계신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다른 무엇보다도 주님께서 타락한 백성을 구원하기를 얼마나 간절히 원하시는지 보여준다. 

 

<교훈> 하나님은 호세아를 통해 인간의 죄와 반역으로 인한 고통을 이해하도록 도우셨다. 방탕한 아내를 구하기 위한 노력은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깨닫게 한다. 

 

<부가설명> 교회는 역사적 진행으로 이어왔다. 역사를 보고 예언 계시를 보면 발전이 아니라 타락의 길을 걸어온 것을 알 수 있다. 제8 계명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은 실제 결혼 생활에서 일어나지 말아햐 할 것을 경계하신 것이지만 또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에도 적용될 수 있다. 잠언에 음녀를 피하고 가까이 하지말라는 경계가 많다. 그것은 실제 가정사에 관한 것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도 해당된다. 진리를 바르게 따르지 않는 교회를 따라가는 것은 간음이다.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은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라 그들이 만든 하나님이다. 다른 남편인 것이다. 여로보암은 북방 이스라엘의 왕이 되자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백성들이 거기에 제사하고 경배하라고 지시했다. 그 금송아지를 섬기는 것을 여호와 경배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금송아지를 여호와라고 불렀다. 여호와라는 이름을 붙인 우상이었다. 이름이 같다고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진리를 옳게 분별하여 성경적 진리를 따라 살 때 내 백성아 거기서 나오라는 기별을 실천하는 것이다.

 

4월 16일(수) 이삭과 리브가

 

아브라함이 늙어서 자신의 후손에 대해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생각할 때(창 15:5 참조), 그는 자신의 종 가운데 가장 연륜이 있고 신뢰하는 자에게 엄숙한 임무를 맡겼다. 

 

창세기 24:1-4을 읽어 보라. 아들이 “가나안 족속의 딸’과 결혼하지 않는 것이 아브라함에게 왜 그렇게 중요한 일이었는가?(창 24:3)

[창24:1~4]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2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 허벅지 밑에 네 손을 넣으라 3 내가 너에게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4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답: 그곳은 우상 숭배의 습관으로 젖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고향에 가서 이삭의 아내를 택하라고 했다.

 

아브라함의 권고가 배타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문제는 아브라함에게 민족적 문제가 아닌 영적인 문제였고, 나라의 문제가 아닌 신학적 문제였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종교의 도덕적 타락을 매우 잘 알고 있었으며, 그들의 우상 숭배는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아들이 그들과 결혼할 경우 얼마나 쉽게 그런 관행에 빠질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고대 이스라엘의 수많은 경험, 심지어 수세기 동안 기독교 교회의 역사에서도 세상에 복음을 증거해야 할 하나님의 백성이 오히려 세상과 그 거짓 가르침과 종교적 신념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많았다. 이 슬픈 사실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아마도 성경의 제칠일 안식일 대신 이교도의 태양의 날인 일요일이 도입된 일일 것이다. 이 현실은 마지막 때에도 두드러진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창세기 24:57-67을 읽어 보라. 이 이야기에서 발견되는 어떤 세부 사항들에서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의 관계에 대해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예를 들어 리브가가 이삭과 멀리 떨어져 있는 친척이었다는 사실은 우리의 타락한 상태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창24:57~67]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소녀를 불러 그에게 물으리라 하고 58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 59 그들이 그 누이 리브가와 그의 유모와 아브라함의 종과 그 동행자들을 보내며 60 리브가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머니가 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 문을 얻게 할지어다 61 리브가가 일어나 여자 종들과 함께 낙타를 타고 그 사람을 따라가니 그 종이 리브가를 데리고 가니라 62 그 때에 이삭이 브엘라해로이에서 왔으니 그가 네게브 지역에 거주하였음이라 63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낙타들이 오는지라 64 리브가가 눈을 들어 이삭을 바라보고 낙타에서 내려 65 종에게 말하되 들에서 배회하다가 우리에게로 마주 오는 자가 누구냐 종이 이르되 이는 내 주인이니이다 리브가가 너울을 가지고 자기의 얼굴을 가리더라 66 종이 그 행한 일을 다 이삭에게 아뢰매 67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그의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그의 어머니를 장례한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

*답: 멀리 신부를 구하러 보낸 것은 주님께서 하늘에서 땅으로 신부를 구하기 위하여 오신 것을 상징한다. 동족을 찾아가게 한 것은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을 찾는 것의 상징이 된다.

 

우리는 본래 창조주의 형상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의심할 여지없이 창조주와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죄로 인해 그분과 분리되었고, 우리의 선택이 결혼 관계를 더욱 불필요한 혼란에 빠지게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그분에게 적합한 신부로 여겨진다. 

 

<교훈> 아브라함의 선택은 악한 감화력에 물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영적인 문제의 중요성을 말한다. 이것은 마지막 때에도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부가설명> 결혼은 남녀가 사랑으로 연합하는 것이다. 이것은 엄숙하고 존엄한 것이므로 예식을 갖추어 결혼식을 한다. 그것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그렇게 하셔서 제정해주셨다(창2:22). 결과는 생육하고 번성하는 사랑의 열매를 출산하게 된다. 성경은 두 사람이 의합하지 않으면 동행할 수 없다고 분명히 말했다(암3:3). 부부는 한 몸을 이루는 둘이다(창2:24). 의합, 즉 뜻이 같아야 한다는 말이다. 뜻이 같지 않으면 동행할 수 없다. 더구나 한몸이 되어야 하는 관계다. 그래서 신앙이 같지 않으면 결혼하지 않아야 한다. 신앙이 같지 않으면 동행할 수 없다. 성경은 불신자와 결혼하지 않아야 할 것을 계시했고, 또 신자라고 같은 신앙 사상을 갖지 않았으면 결혼하지 않아야 한다. 신앙의 충돌은 모든 충돌 중에 가장 강한 것이다. 결혼을 앞둔 젊은이들이 성경의 이 교훈을 잘 따라야 한다. 삼손 같이 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경건한 자녀를 낳아야 한다(말2:15). 그리스도인 자녀들이 모두 이 말씀을 따랐다면 교회가 훨씬 든든히 섰을 것이다. 같은 신앙 사상을 가졌어도 일상 생활에 사고방식이 다르면 한몸 노릇이 쉽지 않을 것이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에 것을 생각하지 않는 사고방식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예수님께 복종시킨 사고방식으로 사랑을 이루어나가야 할 것이다. 이것은 특히 말세 교회에 강하게 증거한 기별이다. 말라기의 기별이요 느헤미야 13장 23절 이하의 기별, 에스라 9,10장의 기별이다. 그것은 말세 기별의 표상이다.

 

4월 17일(목) 큰 음녀가 심판받다

 

요한계시록 19:1-9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은 큰 음녀의 심판과 그리스도와 신부의 결혼이라는 두 사건을 동시에 찬양하고 있다. 어떻게 이 두 사건은 실제로 하나님의 사랑이며 의로우신 성품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가? 

[계19:1~9]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이르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2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 음녀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3 두 번째로 할렐루야 하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4 또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5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작은 자나 큰 자나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 6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과도 같고 많은 물 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 소리로 이르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답: 음녀를 심판하는 것이 정결한 신부를 보호하는 것이다. 결과 그리스도와 신부의 혼인은 사랑과 공의가 함께 성취되는 것이다.

 

부정(不貞)에는 매우 고통스러운 대가가 따른다. 그 여파는 자녀와 다른 사람들의 삶까지 미친다. 그것은 아무리 인내심이 강한 배우자라도 결국에는 더 이상 결혼 생활을 회복할 수 없는 돌이킬 수 없는 때가 있음을 알게 할 것이다. 이 세상이 더 이상 회개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이 심히 굳어지는 때가 이르면, 더 이상 역사를 지속하여 걷잡을 수 없는 죄의 고통이 계속되도록 두어야 할 의미가 없어진다. 잃어버린 자들 때문에 마음이 아프지만, 이 세상의 죄의 시대 아래서 고통받던 사람들은 마침내 그때가 끝났고 이 세상이 원래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던 대로 회복되는 것을 찬양할 수 있다. 이제 다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신을 하나님에게서 분리함으로써 일어나는 파멸에 대해 하나님께서 옳으셨다는 것을 힘든 과정을 통해서 배웠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21:1-4을 읽어 보라. 여기서 결혼은 무엇을 의미하며, 그것은 왜 희망과 약속으로 가득 차 있는가? 이 구절에 제시된 소망을 우리는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계21:1~4]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답: 사랑과 행복 가득한 영생의 가정생활이다.

 

“평생의 연합이 되는 결혼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간의 연합의 상징이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대하여 나타내시는 정신은 남편과 아내가 서로에게 나타내야 할 정신이다”(교회증언 7권, 46). 

그리스도께서는 인류가 그분을 거부하고 그분께 드려야 할 사랑을 다른 신에게 바치는 것 때문에 가늠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그런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시고, 우리의 부정과 음행의 대가를 친히 담당하심으로 회개하고 돌이킨다면 영생의 약속을 받을 수 있게 하셨다. 

 

<교훈> 은혜를 거절한 음녀는 심판받지만, 주님은 우리와 연합에 들어가기 원하신다. 나의 부정과 음행에도 주님은 그 대가를 친히 지심으로 용서와 영생을 주신다. 

 

<부가설명>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1:18,19). 예수께서 피를 흘려 우리를 속량하셨다는 진리는 새 하늘 새 땅에서 주님과 함께 행복하고 사랑 넘치는 영생의 가정을 이룬다는 보증이 된다. 예수께서 사망의 권세를 폐하시고 사망을 영원히 멸하셨기 때문에 새 하늘 새 땅에서 행복하게 살게 된다는 보증을 주셨다. 교회의 남편 되시는 예수께서 자신의 생명의 피를 값으로 지불하시고 부활하셔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을 얻게하셔서 생명이신 예수님을 남편으로 모시게 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의 자격은 거듭나서 예수님의 생명, 곧 육정으로나 혈통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고 하나님께로서 나는 것이다(요1:13). 예수님은 이것을 거듭나는 것이라고 가르치셨다. 거듭나는 사람은 영생의 생명으로 나는 것이다. 우리가 다 이렇게 출생해야 한다. 그래야 생명이신 예수님의 신부 자격을 갖춘다. 

 

4월 18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요한복음 2:1-11, 마태복음 22:1-14, 고린도후서 11:1-5, 마태복음 25:1-13을 읽어 보라.

예언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되는 수많은 자료를 성경 전체에서 찾을 수 있음을 알게 될 때, 예언을 과도하게 적용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수세기 동안 일부 기독교인들은 성경에서 발견되는 상징주의와 형상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역사적 사건을 거의 신화처럼 취급하기도 했다. 성경의 모든 곳에서 중의적 의미를 찾을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실제 사람들이 관련된 실제 사건을 통해서도 당신이 교회를 위해 미래에 행하실 일을 우리에게 가르치는 데 사용하실 수 있음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가나의 혼인 잔치는 예언에서 사용된 결혼의 은유에 대해 통찰을 제공할 수 있지만, 그 결혼식은 문자 그대로의 실제 사건이었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잔치를 위하여 충분한 음료를 공급하였다. 그리스도의 은혜의 공급하심은 그와 같이 풍성하여 사람들의 죄악을 도말하고 영혼을 소생시키고 붙들어 준다"(시대의 소망, 149).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다’(암 3:7; 신 29:29). 하나님께서 이런 것들을 우리에게 주셨으므로 경건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예언의 말씀을 연구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따를 것이다"(시대의 소망, 234).

 

함께하는 토의를 위해 

1. 요한복음 2:1-11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의 어떤 부분이 그리스도의 성품과 다가올 왕국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 말하고 있는가? 이것은 구원의 계획이나 하나님의 아들에게 약속된 최후의 혼인 잔치에 대해서 무엇을 알려주는가?*답: 예수님의 첫 이적으로 예수께서 이 세상에 신부를 구하러 오신 것을 암시했다. 물로 포도즙 만드신 것으로 새 언약의 피를 나타냈다. 

2. 열 처녀의 비유는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고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중요한 이야기는 마지막 날의 사건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신랑이 늦어지는 것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가? 이 비유는 그리스도와 우리 개인의 관계, 그리고 그리스도가 교회와 공동체적으로 관계하는 방식에 대해 어떤 교훈을 주는가?

*답: 예비하고 기다려야 하며, 주님 오심을 인내로 기다릴 줄 알아야 하고 개인은 들러리고 교회는 신부다. 계21:9~27에 새 예루살렘이 어린양의 신부라고 했다. 

3. 믿음이 아니면서 기독교 안으로 들어온 거짓된 관습에 대해 생각해 보라. 성경의 안식일과 반대되는 일요일과 같은 명백한 것 외에 다른 어떤 거짓된 믿음이 교회 안으로 들어왔는가? 그것들은 어떻게 들어왔으며, 우리 자신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그것이 실제로 무엇인지 알도록 돕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세 천사의 기별은 어떤 면에서 사람들이 믿음 가운데 들어온 거짓 신념을 깨닫도록 돕고 있는가? 

*답: 영혼불명설, 영원지옥설, 성상 숭배, 성인제도, 세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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