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과-우주적 대쟁투-(핵심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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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5-02-24 20:25 조회67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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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제9과 우주적(宇宙的) 대쟁투(大爭鬪)
(03월 01일 (안) / 일몰: 오후 6시 25분)
<기억절(記憶節)>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 3:15).
<개요(槪要)>
☉.우주적 갈등(宇宙的葛藤)은 매일(每日) 모든 인간과 우주전체(宇宙全體)에 영향(影響)을 미칩니다. 사탄은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경배(敬拜)를 빼앗으려 하지만 결국 패배(敗北)할 것입니다.
☉. 세 가지 주요개념(主要槪念)
1. 우주적 대쟁투(宇宙的大爭鬪)는 전능한 권세자(權勢者)들의 이원론적(二元論的) 싸움이 아닙니다.
2. 우주적 대쟁투(宇宙的大爭鬪)는 하나님의 백성을 포함(包含)합니다.
3. 우주적 대쟁투(宇宙的大爭鬪)의 해결(解決)은 성급(性急)할 수 없습니다.
☉. 대쟁투(大爭鬪)는 성경의 핵심(核心)이며 하나님의 성품(性稟)과 하늘나라에 대해 사탄이 제기(提起)한 논쟁(論爭)이다. 사탄은 속이지만 하나님은 사랑으로 이끄시며 그 성품(性稟)이 드러날 때까지 기다리신다. 겸손(謙遜)히 예수님의 승리(勝利)를 의지(意志)하여 하나님께 영광(榮光)을 돌리며 창조주(創造主)를 경배(敬拜)한다.
⑴.우주적 대쟁투(宇宙的大爭鬪)는 하나님의 성품(性稟)의 도덕적(道德的) 완전성(完全性)에 초점(焦點)을 맞춥니다.
⑵.대쟁투(大爭鬪)는 두 개의 동등(同等)하게 독립적(獨立的)인 세력(勢力)이 끝없는 전쟁(戰爭)을 놓고 싸우는 것을 포함(包含)하지 않습니다.
⑶.루시퍼는 원래 하나님에 의해 창조(創造)되었고 창조주(創造主)의 성격(性格)에 의문(疑問)을 제기(提起)하기로 (決定) 했다.
⑷.온 우주(宇宙)가 우주적 대쟁투(宇宙的大爭鬪)의 영향(影響)을 느낍니다. 하늘에서 그리스도는 루시퍼의 반역(叛逆)의 주요 표적(標的)이었습니다.
⑸.(마태 4:6~7) 광야(廣野)에서 사탄은 예수의 아들 됨에 의문(疑問)을 제기(提起)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승리(勝利)했고, 그분은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만들 수 있는 권한(權限)을 받았다.
⑹.하나님께서 마침내 악(惡)을 종식(終熄)시키실 날이 올 것이다. 그동안 악(惡)은 성숙(成熟)해져서 하나님의 신성(神聖)한 정부(政府)에 대한 거짓 비난(非難)이 모든 창조(創造)된 존재(存在)에게 진정한 빛으로 보일 수 있도록 허용(許容)됩니다.
⑺.이 우주(宇宙)가 그들이 끝없는 전쟁(戰爭)을 치릅니다." 이러한 세력(勢力)이 동등(同等)하게 독립적(獨立的)이라고 말하는 것은 "둘 다 영원(永遠)부터 존재(存在)했다"라는 것을 의미(意味)합니다. 그러나 이 이원론적(二元論的) 참여는 성경에서 강조하는 우주적 대쟁투(宇宙的大爭鬪)의 유형(類型)이 아닙니다. 성경적 관점에서, 지금 사탄이라고 불리는 자는 "하나님에 의해 창조(創造)되었고, 창조(創造)되었을 때는 선(善)했지만 잘못되었습니다.
⑻.이원론(二元論)과 유사(類似)하게, 기독교적(基督敎的) 관점(觀點)은 우리의 "우주(宇宙)가 전쟁(戰爭) 중"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원론(二元論)과 달리, "이것은 독립적(獨立的)인 세력간(勢力間)의 전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것이 내전(內戰)이고 반란(叛亂)이며 우리가 반역자(叛逆者)가 점유(占有)한 우주(宇宙)의 일부(一部)에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⑼.따라서 두 개의 독립적(獨立的)인 전능(全能)한 세력(勢力) 사이에서 벌어지는 우주적 대쟁투(宇宙的大爭鬪) 대신, 우리가 겪는 것은 창조주(創造主)에 대한 피조물(被造物)의 반역(叛逆)입니다.
⑽.(창세기 3장)에서 속이는 뱀의 역할(役割)에 대해 배운 바에 따르면, 갈등(葛藤)은 하나님의 법(法)에 반영(反映)된 하나님의 성격(性格)에 대한 인식(認識)에 중점(重點)을 둡니다. 즉 우리가 신뢰(信賴)하지 않는 사람과 진실(眞實)하고 깊은 사랑의 관계(關係)를 발전시키는 것은 기본적(基本的)으로 불가능(不可能)합니다.
(02월 23일) (일) <원수(怨讐)가 이렇게 하였구나>
(Q)~원수(怨讐)가 이렇게 악(惡)의 씨를 뿌렸는데 이것이 악(惡)이 사탄의 소행(所行)이라면 왜 하나님은 당장 해결(解決)해 주지 않으십니까? (마태복음 13:24~27)
(A)~가라지의 비유(譬喩)는 오직 마태복음에만 나온다. ‘가라지’ 헬라어 지자니아(zizania). 롤리움 테물렌툼(Lolium temulentum) 즉 수염 난 독(毒)보리일 것이다. 팔레스타인에 흔한 이 식물은 키가 약 60㎝까지 자란다. 초기 단계에서는 곡식(穀食)과 구별(區別)할 수 없다. 다 자라서 독(毒)보리의 씨가 검게 되어서야 그 차이(差異)를 구별(區別)하기가 쉬워진다. 이 씨는 독성(毒性)이 있고, 먹으면 심한 멀미와 설사와 경련, 때로는 사망(死亡)까지 초래한다. “가라지”를 “악(惡)한 자의 아들들”(38절) 이라고 설명했는데, 그들의 성격(性格)이 닮았기 때문이다. 이 생생한 비유(譬喩)는 묘사하려는 영적진리(靈的眞理)를 거의 완전하게 보여주고 있다.
⑴. 하나님은 결국(結局) 악(惡)을 종식(終熄)하실 것이지만 그것을 너무 일찍 뿌리 뽑으면 선에 해(害)를 끼치는 의도(意圖)하지 않은 피해(被害)가 발생할 수 있기에 그것을 마지막까지 두신다.
⑵.(사람들이 잘 때)- 원수(怨讐)는 유한(有限)한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성령(聖靈)의 역사의 결과만을 보듯이 원수(怨讐)의 작업(作業)의 결과(結果)만을 본다.
⑶.이 땅의 모든 선(善)한 것은 하나님께 속(屬)하며, 모든 악(惡)한 것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마귀(魔鬼)가 뿌려 놓은 악(惡)한 씨의 산물(産物)이다.
⑷.이 “밭(田)”은 “세상(世上)”이다(마태 13:38 절). 사실 오늘날 이 세상에도 “가라지”와 “곡식(穀食)”, 즉 악인(惡人)과 선인(善人)이 함께 존재(存在)한다.
⑸.최후까지 교회 안에 두 부류가 함께 있을 것이다. 분명히 그리스도는,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도록 허락하여도 곡식에는 아무 위험이 없을 것을 보았다. 인간적인 지혜를 따른다면, 유다의 영향이 다른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목표에까지 도달하는 데 방해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에서 유다를 그리스도의 중추 그룹인 열두 제자에서 제외했을 것이다.
⑹.그러나 복음서 기록의 어느 부분도 그들에 대한 유다의 영향이 일시적인 것 이상이었다는 암시는 없다. 그것은 어떤 경우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유다는 열두 제자 중에 포함되기를 선택했고, 예수는 다른 이들에게 제공했던, 품성의 계발을 위한 똑같은 특권과 기회를 그에게 허락하였다.
⑺.가라지를 거두어서 불사르는 작업은 “세상 끝”의 “추수(秋收)” 때에 천사(天使)들에 의하여 이루어질 것이지(마태 13:39~42), 그때가 오기 전에 “종들”이 할 일이 아니었다(마태 13:28~30). 수 세기(數世紀)에 걸쳐서, 심지어(甚至於) 오늘날에도 소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많은 열성분자는 그들의 생각에 이단(異端)이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거두어서 불사르는 일 혹은 핍박(逼迫)하는 일이 자신들의 의무(義務)라고 생각해왔다.
⑻.그러나 그리스도는 결코 그러한 사명(使命)을 지상(地上)에 있는 자신의 대표자(代表者)들에게 위탁(委託)한 일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생애(生涯)와 가르침이 이미 악(惡)의 소산(所産)을 드러내는 자(者)들에 대하여 교회가 아무런 조치(措置)를 취(取)해서는 안 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조치(措置)의 성격(性格)은 성경에 분명히 제시(提示)되어 있으며(참조 마 18:15~20, 롬 16:17; 딛 3:10, 11), 처방(處方)되어 있는 한계(限界)를 넘을 수 있는 권리(權利)나 하나님이 마지막 때 친(親)히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을 지금 수행(遂行)하려고 시도(試圖)할 권한(權限)이 아무에게도 주어지지 않았다.
⑼.‘가라지를 뽑다가’ 이 두 부류(部類)의 품성(稟性)은 아직 성숙(成熟)하지 않았고, 종들이 제안(提案)한 대로 시행(施行)하는 것은 큰일 날 일이었다. 곡식을 해치지 않고 또 그중 일부의 성장(成長)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가라지를 뽑는다”라는 것은 아직 불가능(不可能)하다는 것이 분명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가 유다를 제자가 되도록 허락(許諾)한 것은, 그렇지 않았으면 다른 제자들이 그의 참 성격(性格)을 알지 못한 채 그들의 주님의 지혜(智慧)를 의심(疑心)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망, 29).
⑽.가라지는 먼저. 가라지가 불살라지기 전(前)에 곡식(穀食)이 먼저 거두어지는 것을 예상(豫想)할 수도 있다. 모든 씨는 그 종류에 따라 수확(收穫)을 산출(算出)한다. 가라지를 가지고는 불사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으니, 태우지 않으면 악의 씨들이 또 한 번 자라나서 세상을 다시 혼란(混亂)과 분쟁(紛爭)으로 몰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02월 24일) (월) <이 땅의 대쟁투(大爭鬪)의 기원(起源)>
(Q)~죄(罪)의 기원(起源)과 사탄이 하나님의 명령(命令)에 대해서 거짓말을 한 이유(理由)는 무엇 때문입니까?. (창 3:3:1~7)
(A)~<옛 뱀은 하나님 성품(性稟)에 대해 의심(疑心)하게 하고 그분의 말씀에 도전(挑戰)하여 이 땅의 대쟁투(大爭鬪)를 시작했다. 이 논쟁(論爭)은 누구를 믿느냐의 문제(問題)이며 사랑의 문제로 귀결(歸結)된다.>
⑴.죄(罪)의 기원(起源)- 죄(罪)는 사단에게서 시작(始作)되었다. (요일 3:8) 본래는 (겔 28:12-15). 루스벨 (사 14:12-15)= 아침의 아들 계명성(啟明星). 계12:7-9 (사단 또는 마귀(魔鬼)로) 명명(命名). (계20:2-3)
⑵. 죄(罪)는 교만심(驕慢心)에서 시작(始作)되었다. (겔 28:17. 사 14:12-14. 계12:7-9. 잠 16:18)
⑶.아담 때로부터 우리 시대(時代)에 이르기까지 시대마다 범죄(犯罪)의 크기와 종류도 그 전시대(前時代)보다 더 커지고 더 다양(多樣)해져 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시대에 우리가 보는 것같이 신체적(身體的)·도덕적(道德的)으로 이렇게 유약(幼弱)하고, 외양적(外樣的)으로 이렇게 추(醜)한 인간을 만드신 적이 없으시다.
⑷.사단은 앞잡이를 이용(利用)함.-에덴에서 사단은 뱀을 앞잡이로 이용하였다. 오늘날도 그는 주의 구속(救贖)받은 자들이 걸어가는 의(義)의 길을 가로막기 위하여, 온갖 수단(手段)과 속임수를 다 써가며 인간 가족들을 이용하고 있다. (편지 91, 1900).
⑸.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의견(意見)을 참고로 하거나 우리의 훌륭한 점을 참작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분은 인간이 알지 못하는 것(모든 행동(行動)의 미래적 결과(未來的結果))을 잘 아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시선(視線)은 그분을 향(向)하여야 하며, 사단이 제시(提示)하는 세속적(世俗的) 유익(有益)을 향(向)하지 말아야 한다.
⑹.사단은 우리에게 말하기를 만일 우리가 그에게 주목(注目)하면 우리로 아주 높은 수준(水準)의 지식(知識)에 이르게 해 주겠다고 한다. 그는 하와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께서 금(禁)하신 그 나무 열매를 먹으면 너는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⑺.아담과 하와에게 주어진 시험(試驗)은 매우 쉬운 것이었으나 그들은 그것을 이기지 못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 불순종(不順從)하였고 온 우주(宇宙)는 깊은 관심(關心)을 가지고 이 범죄(犯罪)는 우리 세상에 재난(災難)의 홍수(洪水)가 쏟아져 들어 오도록 수문(水門)을 열어 놓은 것이다(원고 50, 1893).
⑻.가장 깊은 관심(關心)을 가지고 온 우주(宇宙)는 아담과 하와의 지위(地位)를 결정(決定)짓게 될 그 투쟁(鬪爭)을 지켜보았다. 사단이 그의 생각을 하나님의 명령(命令)보다 위에 놓고 그의 기만적(欺瞞的) 이론(理論)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무효화(無效化)시키려 할 때 천사(天使)들은 이 거룩한 부부(夫婦)가 그 유혹자(誘惑者)에게 기만(欺瞞)당하지나 않을까 그의 간교(奸巧)한 꾀에 넘어가지나 않을까 매우 걱정스러운 눈으로 지켜보았다.
⑼.<설명(說明)이 불가능(不可能)한 아담의 타락(墮落)>-아담을 강타(强打)한 힘은 어디에 있었으며 무엇이 그의 타락(墮落)의 원인이었을까? 그것은 아담 내부(內部)의 죄(罪)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품성(稟性)을 따라 아담을 곧고 순결(純潔)하게 지으셨기 때문이다.
⑽.이 옷은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不順從)한 그 날 이후(以後)로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사람들이 늘 사용하는 가리개이다. 그들은 무화과나무잎들을 한데 엮어서 범죄로 인하여 벌거벗은 수치를 가렸다.
(02월 25일) (화) <하늘의 대쟁투(大爭鬪)의 기원(起源)>
(Q)~악(惡)의 기원(起源)과 우주적(宇宙的) 대쟁투(大爭鬪)에 대해서 죄악(罪惡)의 시작(始作, 그리고 하나님이 훌륭하게 만드신 것을 사탄은 어떻게 잘못 사용하였습니까? (이사야 14:12~15, 겔 28:12~19)
(A)~<죄악(罪惡)의 시작(始作)> 죄의 시작과 그 존재 이유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수수께끼가 되어있다. 그들은 악(惡)의 소위(所爲)와 그 무서운 결과로 생기는 불행(不幸)과 파멸(破滅)을 목격한다. 그리고 그들은 무한(無限)한 지혜(智慧)와 능력(能力)과 사랑이 무한(無限)하신 하나님의 통치(統治) 아래 이런 일이 어떻게 존재(存在)할 수 있는가 의심(疑心)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유전(流傳)과 그릇된 해석(解釋)이 하나님의 품성(稟性)과 그분의 정부의 성격과 하나님께서 죄를 처리하는 원칙(原則) 등에 관한 성경의 교훈(敎訓)을 모호하게 만들어 버린 까닭에 악(惡)에 관한 큰 문제에 대하여 만족(滿足)하게 이해(理解)하지 못한다. (GC 492)>
⑴.죄악의 시작(始作)은 그 존재(存在) 이유와 마찬가지로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죄의 시작과 죄의 최종적(最終的)인 처분(處分)과 악(惡)을 처리(處理)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자비(慈悲)와 공의(公義)가 완전히 나타나게 되는 것에 대하여서는 충분히 이해(理解)할 수 있다.
⑵.성경에 무엇보다 분명히 알려져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죄가 들어온 것에 대하여 전혀 책임(責任)이 없으시다는 것, 하나님의 정부(政府)에는 반역(叛逆)을 일으킬 조건(條件)이 될 만한 아무런 결함(缺陷)이 없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은혜(恩惠)를 강제적(强制的)으로 거두어 버린 일이 없다는 것 등이다.
⑶.죄는 하나의 무단 침입자(無斷 侵入者)이다. 그것이 나타나게 된 데는 아무런 이유(理由)가 없다. 죄는 오묘(奧妙)한 것이며,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을 설명하는 것은 그것을 옹호(擁護)하는 것이다. 만일 죄의 원인과 그 존재 이유를 밝힐 수 있으면 죄는 죄가 될 수 없다.
⑷.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죄에 대한 유일(唯一)의 정의(正義)는 “죄는 불법(不法)이라”(요일 3:4)라는 말이다. 죄는 하나님의 정부(政府) 기초(基礎)가 되는 위대(偉大)한 사랑의 율법(律法)에 대항(對抗)하여 싸우려는 정신(精神)의 표현(表現)이다. (GC 492)
⑸.악(惡)이 들어오기 전(前)에는 우주(宇宙)에 평화(平和)와 기쁨이 있었다. 모든 것은 창조주(創造主)의 뜻에 완전히 조화(調和)되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최상(最上)의 것이었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도 공정(公正)하였다.
⑹.말씀이신 그리스도, 하나님의 독생자(獨生子)는 그 본질(本質)과 품성(稟性)과 목적에 있어서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일체(一體)였고, 온 우주(宇宙)에서 무슨 일에든지 하나님과 함께 의논(議論)하고 계획(計劃)하시는 유일(唯一)의 분이셨다.
⑺.하늘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늘에 있는 모든 것들을 창조(創造)하셨다. “만물(萬物)이 그에게 창조(創造)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寶座)들이나 주관자(主管者)들이나 정사(政事)들이나 권세(權勢)들이나 만물(萬物)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創造)되었” (골 1:16)이다. 그러므로 온 하늘은 하늘 아버지께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 충성(忠誠)을 다한다. (GC 493)
⑻.죄는 그리스도 다음으로 하나님께 가장 큰 특권(特權)을 받고 하늘 주민(住民)들 중에서 최고의 권위(權威)와 영광(榮光)을 가진 자로 말미암아 시작되었다.
⑼.루스벨은 타락(墮落)하기 전(前)에 거룩하고 순결(純潔)한 덮는 “그룹”들 중 으뜸이었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인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寶石). 으로 단장(丹粧)하였”도다. “너는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聖山)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往來)하였도다.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不義)가 드러났도다” (겔 28:12~15). (GC 493)
⑽.악(惡)과 대쟁투(大爭鬪)는 하늘에서 시작(始作)되었다. 사탄은 하나님께 영광(榮光) 돌리기보다 자신을 스스로 높이고 그분의 자리를 찬탈(簒奪)하기 위해 하나님을 비난(非難)하였다.
(02월 26일) (수) <만일 내게 경배(敬拜)한다면>
(Q)~예수님과 시험(試驗)하는 자(사탄)의 강렬한 대치(對峙)는 대쟁투(大爭鬪)의 본질(本質)에 대한 많은 것을 드러낸다. 예수님에 대한 마귀(魔鬼)의 시험(試驗)은 그가 무엇을 시도(試圖)하고 있음을 보여줍니까? (마태복음 4:1~11)
(A)~<마태는 마귀(魔鬼)가 예수에게 “천하만국(天下萬國)과 그 영광(榮光)을 보여” 주었다고 말했으며(4:8), '누가'는 이 일이 “순식간(瞬息間)에” 일어났다고 적고 있다(눅 4:5). 어떻게 사단이 천연색(天然色) 영화 같은 것을 예수의 눈앞에서 순식간(瞬息間)에 스쳐 지나가게 할 수 있었는지 고민(苦悶)하는 것은 무익(無益)하다.>
◎.영광(榮光)의 땅에서 온 천사로 가장(假裝)했던 것을 벗어 던지고, 이제 사단은 그리스도 앞에 이 세상의 왕인 것처럼 서 있었다(소망, 129). 그는 세상에 대한 권리를 정당하게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영역을 찬탈했다. 사단은 자신이 아담 대신 세상의 합법적인 통치자가 되었다고 주장했으나(참조 창 1:28; 욥 1:6, 7), 찬탈자(簒奪者)로 통치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사단의 주장을 직접적(直接的)으로 반박(反駁)하지 않았고, 단지 사단이 경배를 받을 어떤 자격도 없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예수도 사단을 이 세상 “임금”으로 말했는데, 이것은 그의 실제적인 통치권(統治權)을 인정(認定)한 말이다. (요 12:31; 14:30; 16:11).
⑴.사단은 예수의 침례(浸禮)를 목격(目擊)했으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는 하늘의 선포(宣布)를 들었다(3:17. 참조 소망, 116, 119,). 적어도 예수의 겉모습은 그 선포(宣布)의 진실성(眞實性)에 의문(疑問)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그는 너무도 창백(蒼白)하고 여위었으며, 지치고 굶주렸기 때문에(참조 소망, 137) 외모(外貌)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⑵.“네가 만일(萬一)”이라고 한 사단의 말은 예수에게 “너는 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아느냐?”라고 질문(質問)하는 격(格)이다. 에덴동산에 있던 하와로 하여금 선악(善惡)을 알게 하는 나무에 대해 명백(明白)하게 선포(宣布)된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疑心)하게 하는 것이 유혹자(誘惑者)의 목적(目的)이었다.
⑶.그와 동일(同一)한 방법으로 사단은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분명(分明)하게 드러난 진리들에 대한 의심(疑心)을 일으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며 남녀(男女)들에게 접근(接近)한다. 오직 그들의 믿음이 예수처럼 “기록되었으되”와 “주께서 말씀하시기를”이라는 말씀에 굳게 선 자들만이 마귀(魔鬼)의 계교(計巧)에 대항(對抗)하여 설 수 있을 것이다. 유혹(誘惑)은 항상 명백하게 알려진 진리에 도전(挑戰)한다. 또한 상황(狀況)에 따라서는 원칙(原則)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제안(提案)한다.
⑷.여기서 떡은(마태 4:3) 인간의 육체적(肉體的) 본성(本性)이 가진 물질적(物質的) 필요를 대표한다. 떡은 생명(生命)에 대한 물질주의적(物質主義的) 철학(哲學), 곧 인간의 생명은 자신의 소유(所有)가 된 풍부(豐富)한 물질(物質)에 달려 있다는 것 그리고 인간은 오직 떡으로만 산다고 가정(假定)하는 철학(哲學)을 나타낸다.
⑸.그러므로 식욕(食慾)에 호소(呼訴)하는 것이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접근(接近)하는 토대(土臺)가 되었던 것처럼, 사단이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공격(攻擊)을 여는 토대가 되었다. 인간에게 닥쳐오는 많은 시험(試驗)들이 이 부류(部類)에 해당(該當)한다.
⑹.(첫 번째)로, 사단은 인간의 육체적 본성(肉體的本性)에 대한 시험(試驗)이 더 손쉽게 즉각적(卽刻的)인 성공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⑺.(두 번째)로, 그는 육체적(肉體的)으로 쇠퇴(衰退)하고 약(弱)한 곳에 유혹(誘惑)을 집중(集中)하는데, 육체적 본성(肉體的本性)과 감각(感覺)을 통해서 전 존재에 쉽게 접근(接近)할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⑻.파멸(破滅)을 피(避)하기 위해서, 육체적(肉體的) 본성(本性)은 끊임없이 마음과 의지(意志)와 이성(異性)이라는 더 높은 힘의 통제(統制) 아래 있어야 한다. 육체는, 마음과 영혼(靈魂)이 계발(啓發)되고 성품(性稟)이 형성(形成)되는 매개체(媒介體)이다(치료 130). 이 시험(試驗)을 더욱 사실적(事實的)으로 만든 것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가 음식을 만들어. 배고픔을 채울 능력을 지녔다는 것에 있다.
⑼.이 시험(試驗)은 그리스도에게 아버지의 뜻을 무시한 채 잘못된 방법으로 배고픔을 채우라는 사단의 제안에 있었다. 사단의 제안(提案)은, 전혀 배고픔으로 고통(苦痛)받을 필요가 없는데도 하나님이 그의 아들이 이것을 겪도록 내버려 두실 만큼 몰인정(沒人情)한 분이라고 암암리(暗暗裡)에 인식(認識)시키는 데 있었다.
⑽.광야(廣野)에서 예수께 주어진 시험(試驗)은 대쟁투(大爭鬪)의 실체(實體)를 보여준다. 사탄은 오직 하나님이 받아야 하는 경배(敬拜)를 찬탈(簒奪)하려 하지만 그분은 말씀으로 시험(試驗)을 이기셨다.
(02월 27일) (목) 우주적(宇宙的) <대쟁투(大爭鬪)의 본질(本質)>
(Q)~성경(聖經)은 마귀(魔鬼)의 본성(本性)과 그의 전략(戰略)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며, 또한 성경(聖經)은 대쟁투(大爭鬪)의 본질(本質)이 무엇에 관(關)한 논쟁(論爭)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요한계시록 12:7~9, 요한복음 8:44~45)
(A)~<하나님께서 사탄을 즉시(卽時) 멸망(滅亡)시키지 않으신 이유를 설명하면서 "기만자(欺瞞者)의 영향력(影響力)은 완전히 멸망(滅亡)되지 않았을 것이고, 반역(叛逆)의 영도 완전히 근절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악(惡)은 성숙(成熟)해지도록 허용(許容)되어야 합니다. 끝없는 세월 동안 온 우주의 선(船)을 위해 사탄은 자신의 원칙을 더욱 온전히 발전시켜야 하며, 신성한 정부에 대한 그의 비난(非難)이 모든 창조물이 참된 빛으로 볼 수 있도록 해야 하며, 하나님의 정의(正義)와 자비(慈悲)와 그의 법의 불변성(不變性)은 영원히 의심(疑心)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라고 지적합니다. 대쟁투, 499쪽>
⑴.처음부터 마귀(魔鬼)의 계획(計劃)은 피조물(被造物)이 하나님은 실제(實際)로 공의(公義)롭고 사랑하는 분이 아니며, 하나님의 법(法)이 피조물(被造物)에 압제적(壓制的)이고 해(害)롭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었다.
⑵.(요한계시록 12:9~10)은 사탄을 (1) “옛 뱀,” (2) 하늘 법정(法廷)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참소(讒訴)하는 자(者), (3) 세상을 기만(欺瞞)하는 주관자(主管者), 용(龍)이라고 확인하고 있다.
⑶.“마귀(魔鬼)”로 번역된 헬라어는 바로 ‘중상(中傷)하는 자(者)’라는 의미(意味)이며, 대쟁투(大爭鬪)의 본질(本質)이 믿음, 곧 하나님의 성품(性稟)에 대한 믿음까지 포함(包含)한 믿음에 관한 것임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⑷.우리 형제(兄弟)들을 참소(讒訴)하던 자(者)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讒訴)하던 자(者). 예수께서 마귀(魔鬼)를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요 8:44)라고 부르신 것은 당연한 일이다..
⑸.사단과 그의 천사들은 오래전(벧후 2:4), 이 세상이 창조(創造)되기 이전(以前)에 하늘에서 내어 쫓겼다. (참조 초기문집, 145~146, 대쟁투, 498~500; 3 SG 36~39; 1 SP 17~33).
⑹.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十字架) 당시까지 그는 하늘 존재(存在)들에게 접근(接近)하였으며 제한된 범위내(範圍內)에서, 하늘의 거민(居民)이 아니라 “이 세상 임금”(요 12:31; 눅 4:6)으로서, 하늘의 경내(境內)에 접근(接近)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소망, 761; 참조 살아남는 이들, 26~27)
⑺.“큰 음성(音聲)”에 의한 첫 번째 선언(宣言)은 십자가(十字架) 위에서의 사단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勝利)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로 구성(構成)된다. “구원(救援)”의 계획(計劃)이 확실하게 되었고, 사단의 간계(奸計)를 저항(抵抗)하도록 “능력(能力)”이 제공(提供)되었으며, 그리스도의 “나라”가 확고하게 되었고, 인간의 구주요 대제사장이요 그리고 왕 되시는 그분의 “권세(權勢)”, 문자적(文字的)으로는 “권위(權威)”가 확립(確立)되었다. (마 28:18; 대쟁투, 503).
⑻. 하늘의 쟁투(爭鬪)는 인간의 창조(創造)를 위한 계획 이전에 시작(始作) 되었다(참조 3 SG 36). 지구가 창조되고 아담이 그 대리자(代理者)로 임명(任命)되었을 때 사단은 새로 창조된 인간을 넘어뜨리는 일에 노력을 기울였다. 아담과 하와를 타락(墮落)시키는 일에 성공하자 그는 지구(地球)를 그의 영역(營域)으로 주장(主張)하였다(참조 마 4:8~9). 그러나 그는 노력을 이 지구(地球)에 국한(局限)하지 않고 다른 세계의 거민(居民)들 역시 유혹(誘惑)하였다(참조 초기문집, 290). 그리스도의 재림(再臨) 때에 비로소 사단은 완전히 이 지구(地球)에 감금(監禁)될 것이다. (참조 계20:3; 초기문집, 290; 소망, 490).
⑼.반면에 예수님은 “진리에 대하여 증언”(요 18:37)하러 오셔서 사탄의 거짓과 비방에 직접 반박하시고 마귀와 그의 권세를 물리치고 궁극적으로 이를 소멸시키셨다(요일 3:8, 히 2:14).
⑽.대쟁투(大爭鬪)의 본질(本質)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관한 것이며 그분이 온전히 선(善)하고 사랑하는 분이신지, 그분의 정부(政府)가 공의(公義)롭고 율법(律法)이 완전(完全)한지를 실증(實證)하는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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