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과-하나님의 공의로운 사랑 - (핵심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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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5-02-03 00:39 조회710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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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과 하나님의 공의(公義)로운 사랑
(02월 08일 (안) / 일몰: 오후 6시 3분)
<기억절(記憶節)>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9:24).
<개요(槪要)>
⑴.성경전반(聖經全般)에 걸쳐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公義)는 그분의 성품(性稟)에 내재(內在)되어 있다. 이러한 속성은 공의(公義)와 의(義)로움에 대한 그분의 깊은 관심(關心)을 보여준다.
⑵. 사랑과 정의(正義)는 함께 속합니다.
(우리는 사랑과 공의를 함께 생각하는 데 익숙하지 않지만, 성경 전반에 걸쳐 참된 사랑은 정의를 필요로 하고 참된 공의는 사랑에 의해 움직인다.).
⑶. 공의(公義)를 사랑하려면 변(變)함이 필요하다.
(성경은 하나님의 도덕적 불변성(道德的不變性)을 확언(確言)하지만, 또한 그분의 행동(行動)은 인간의 결정(決定)에 대한 반응(反應)으로 관계적(關係的)으로 변(變)할 수 있음을 나타냅니다).
⑷.사랑의 공의(公義)는 회개(悔改)를 고려합니다.
(사람들이 회개(悔改)하고 그분과 교제(交際)하는 삶을 살기로 (決定) 하면 그분이 사람들에 대한 행동을 관계적(關係的)으로 바꾸신다는 것을 의미(意味)합니다).
⑸.(하나님의 사랑과 공의(公義),
(그분의 계명(誡命) 불변성(不變性)은 주님의 죽음 못지않게 그분의 생애(生涯)에 의해 드러났다. 그는 인성(人性)을, 그것의 연약성(軟弱性) 들과 그것의 경향(傾向)들과 그것의 시험(試驗) 거리를 지닌 채 취(取)하시고…“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試驗)을 받” (히 4:15) 으셨다.(원고 141, 1901. (3 SM 132)
⑹.구속(救贖)의 경륜(經綸)은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公義)로우심을 드러내는 동시에, 타락(墮落)하지 않은 세계에 있어서와 또 어린양의 피로써 구속(救贖)함을 받게 될 이들에게 있어서 똑같이 저들의 믿음을 안전(安全)하게 지켜주는 영원(永遠)한 보장(保障)인 것이다. (성경주석 5권, 1132). (OHC 45)
⑺.격분(激奮)을 이기지 못해 한 말에 대하여 그처럼 혹독(酷毒)한 형벌(刑罰)을 가하신 일로 인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公義)에 대하여 의심(疑心)을 품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하여 악의(惡意)로 한 말들이 큰 죄(罪)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公義)가 요구(要求)하는 바이다. (PP 408)
⑻.공의(公義)는 사랑이라는 쌍둥이 형제를 가지고 있다. 만일 그대의 모든 취급(取扱)에 있어서 사랑과 공의(公義)가 서로 손을 잡는다면, 그대는 그대의 노력에 협력(協力)하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분명히 얻을 것이다. (CG 262)
⑼.십자가(十字架)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公義)를 잘 어울리게 하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한 도구(道具)이다. 그것은 죄인(罪人)에게 단 하나밖에 없는 구원(救援)의 수단(手段)이다. (LHU 252)
⑽.생애를 통하여 하나님을 올바르게 반영하므로 아이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을 감사하고 존경하게 해주며 친절과 공의와 인내로써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와 오래 참으심을 알려 주고 그리고 부모를 사랑하고 신뢰하고 순종하도록 가르쳐 줌으로 아이들에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사랑하고 신뢰하고 순종하도록 교훈해 주는 부모는 각 시대의 어떤 재물보다 더욱 귀중한 보배, 곧 영원히 존속(存續)할 보배(寶貝)를 자녀에게 준 것이다. (RC 191, MH 375~376)
(02월 02일) (일) <사랑과 공의(公義)>
(Q)~성경(聖經)에서 사랑과 공의(公義)에 대하여 어떻게 기록(記錄)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공의(公義)가 어떠한 관계(關係)로 실현(實現)되시기를 원(願)하십니까?
(A)~<성경전체(聖經全體)에서 사랑과 공의(公義)는 함께 나타나며, 진정(眞正)한 사랑은 공의(公義)를 요구(要求)하며, 진정(眞正)한 공의(公義)는 사랑을 통해서 다스리고 실현(實現)된다고 말씀하심>.
⑴.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공의(公義)는 함께 가며,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의(義)와 공의(公義)가 이루어지기를 진심(眞心)으로 원(願)하신다.
⑵.사람은 많은 악(惡)과 불의(不義)를 행(行)하지만, 하나님은 끊임없이 “사랑과 정의(正義)와 공의(公義)를 땅에 행(行)하는”(렘 9:24) 분이시다.
⑶.하나님의 사랑의 정부(政府)는 정의(正義)롭고 의(義)로우며, 개인(個人)의 이익(利益)과 권력(權力)을 위(爲)해 불의(不義)를 빈번히 저지르는 이 세상의 부패(腐敗)한 정부(政府)와 전혀 다르다.
⑷.공의(公義)와 자비(慈悲)는 넓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각기 반대편(反對便)을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우리의 구속주(救贖主)께서 신성(神性)에다 인성(人性)을 입으시고 인간을 위하여 점도 없고 흠(欠)도 없는 품성(稟性)을 이루셨다.
⑸.주님은 하늘과 땅 사이에 그분의 십자가(十字架)를 세우시고 그것을 두 길 곧 사랑과 공의(公義)를 끌어당겨 서로 만나게 하는 중심(中心)이 되게 하셨으며, 그 깊은 수렁을 건너서 사랑과 공의를 하나로 묶어 놓았다.
⑹.주님은 십자가(十字架)에서 공의(公義)는 불의(不義)와 죄에 대한 모든 형벌(刑罰)을 담당하신 분으로 하나님과 동등(同等)이신 분이시다. 공의(公義)는 완전히 만족(滿足)하여 경건(敬虔)한 마음으로 십자가(十字架)에 머리를 숙이고 “족하다”고 말한다. (SD 243)
⑺.구름 속에 있는 무지개가 햇빛과 소나기의 연합(聯合)으로 이루어짐같이 보좌(寶座)를 두르고 있는 무지개는 사랑과 공의(公義)의 연합(聯合)된 힘을 나타낸다. 공의(公義)만 주장(主張)해서는 안 된다. 이는 보좌(寶座) 위에 있는 언약(言約)의 무지개의 영광(榮光)을 이지러지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6BC 1071)
⑻.하나님의 사랑은 그분의 자비(慈悲)에 못지않게 공의(公義)에도 표현(表現)되어 있다. 공의(公義)는 그분의, 보좌(寶座)의 초석(礎石)이며 그분의 사랑의 열매이다.
⑼.하나님의 공의(公義)는 단순히 법규(法規)와 관련(關聯)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根本的)으로 그분의 마음과 성품(性稟)과 관련(關聯)이 있습니다.
⑽.하나님은 공의(公義)에 대한 심의(審議)뿐만 아니라 그 집행(執行)도 사랑하십니다.
(02월 03일) (월) <전적(全的)으로 선(善)하고 의(義)로우신 하나님>
(Q)~성경(聖經)은 하나님의 신실(信實)하심과 의(義)로우심과 온전(穩全)하심과 선(善)하심과 반석(磐石)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고 계십니까? (신명기 32:4, 시 9:7~8, 시편 92:15, 시 145:9~17)
(A)~<성경(聖經)의 하나님은 "공의(公義)로운 재판관(裁判官)"(시편 7:11)이시며, 그분과 함께 악(惡)이 거(居)하지 아니합니다(시편 5:4). (요한일서 1:5)에서 가르치는 것처럼, "하나님은 빛이시며 그에게는 어둠이 전혀 없으시다."). 실제로 하나님은 완벽(完璧)하게 선(善)할 뿐만 아니라 (야고보서 1:13)에 따르면 "하나님은 악(惡)에 의해 시험을 받지 아니하시느니라"(합 1:13과 비교)>
⑴.여호와께서는 잘못하거나 누구를 속이거나 어떤 윤리적(倫理的) 혹은 도덕적(道德的) 결점(缺點)을 갖고 계실 수 없다. 그분 자신이 그분의 행동(行動) 표준(標準)이 되며 또한 모든 피조물의 표준(標準)도 되신다. (신 32:4, 재림교주석)
⑵.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찾고 의지(依支)하는 자들에게 있어서 언제나 안전(安全)하고 영원(永遠)한 피난처(避難處)가 되신다.
⑶.성경(聖經)에는 하나님을 반석(磐石)에 비유(譬喩)한 구절(句節)이 많은데(삼상 2:2, 시 18:2, 19:14, 31:3), 특히 신약(新約)에서는 그리스도를 ‘신령(神靈)한 반석(磐石)’(고전 10:4)으로 표현(表現)하고 있기도 하다.
⑷.하나님의 ‘공의(公義)’(righteousness)와 ‘바름’(justice)은 둘 다 하나님의 ‘공의성(公義性)’과 ‘공평성(公平性)’을 거듭 강조(再三强調)하는 말이다.
⑸.하나님의 모든 행위(行爲)는 그분의 의(義)로운 속성(屬性)과 조화(調和)된다. 그분의 결정(決定)은 완벽(完璧)하며, 피조물(被造物)들을 다루시는 방법(方法)은 흠(欠)잡을 데가 없다. 그분은 진실(眞實)로 “공의(公義)의 하나님”(사 30:18)이시다.
⑹.하나님은 자기 자신에게 진실(眞實)하시며, 그분 자신의 거룩한 속성(屬性)들에 조화(調和)되게 행(行)하시는 하나님이다.
⑺.“그분(하나님) 안에는 불의(不義)가 전혀 없”(시 92:15, 시 25:8, 시 129:4 비교)으며 하나님은 의(義)롭고 사랑으로 가득하시다.
⑻.“여호와는 의(義)로우사 불의(不義)를 행(行)하지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빠짐없이 자기의 공의(公義)를 비추시거늘 불의(不義)한 자(者)는 수치(羞恥)를 알지 못"(습 3:5)한다. 이 구절(句節)은 하나님의 성품(性稟)과 불의(不義)를 사랑하는 자(者)의 성품(性稟)을 직접 대조(對照)하고 있다.
⑼.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 모든 사람에게 가장 좋은 것을 원(願)하시며, 모든 사람에게 가장 좋은 결과(結果)를 가져오기 위해 끊임없이 일하십니다.
⑽.하나님은 완전히 선(善)하고 정의(正義)로우시며 악(惡)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세상(世上)의 신(神)들이 그들의 힘을 따르고 경배(敬拜)하는 동안, 하나님은 공의(公義)와 사랑으로만 자신의 힘을 행사하십니다.
(02월 04일) (화) <변(變)함없으신 하나님>
(Q)~성경은 하나님의 성품(性稟)의 특징(特徵)과 하나님에 대해서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말라기 3:6, 야고보서 1:17, 디모데후서 2:13, 디도서 1:2, 히브리서 6:17~18)
(A)~<성경은 하나님의 성품(性稟)이 변(變)하지 않는다고 반복(反復)해서 가르칩니다. 다시 말해, 성경(聖經)은 하나님이 도덕적(道德的)으로 변(變)하지 않는다고 일관(一貫)되게 가르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피조물(被造物)과 실제관계(實際關係)를 맺을 수 있고, 피조물(被造物)에게 하나님은 항상 사랑과 공의(公義)로 응답(應答)하십니다>.
⑴.하나님은 "나는 여호와라 변(變)치 아니하노라"라고 선언(宣言)하십니다. (말라기 3:6), 그는(하나님) 변(變)함도 없으시고 회전(回傳)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야고보서 1:17)'과 말씀하십니다.
⑵.하나님이 변(變)함없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품성(稟性)에서는 변(變)함이 없음을 말씀하시는 것이며, 그러나 하나님이 관계적(關係的)으로 변(變)할 수 있기도 하신다는 의미(意味)는 <회개(悔改) 등>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사랑과 공의(公義)의 하나님이시기에 신뢰(信賴)할 수 있다.
⑶.하나님은 창조물(創造物)과 주고받는 관계(關係)를 맺으시지만, 그러한 주고받는 관계를 통해서, 그리고 다른 모든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품(性稟)은 변함이 없습니다
⑷.하나님의 약속(約束)은 깨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聖經)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十字架)에서 우리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신 하나님과 같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확신(確信)할 수 있습니다.
⑸.성경에는 일반적(一般的)으로 하나님의 불변성(不變性)을 확증하는 데 사용되는 두 가지 주요 성경구절(聖經句節)이 있는데, 하나는 구약성경(舊約聖經)(말라기서 3:6)에 있고 다른 하나는 신약성경(新約聖經)(야고보서 1:17)에 있습니다.
⑹.(말라기 3:6절과 야고보서 1:17)의 개념은 불변성(不變性)은 다양(多樣)한 기독교 신학전통(神學傳統)에서 하나님에 대한 교리(敎理)를 논의(論議)할 때 철학적(哲學的) 가정(假定)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이 하나님의 도덕적(道德的) 성격(性格)의 불변성(不變性)을 강조(强調)한다고 말하는 것이 안전(安全)합니다. 더 자세히 설명(說明)하자면, 그는 도덕적(道德的)으로 불변(不變)하거나 변(變)하지 않습니다.
⑺.심판(審判)은 특히 하나님 백성의 반역적(叛逆的)인 역사(歷史)를 염두(念頭)에 두고 있지만, 이 심각(深刻)한 메시지는 실제로 회개(悔改)를 촉구(促求)하는 것으로 의도(意圖)되었으며, 따라서 하나님의 미래 심판(未來審判)의 어조(語調)는 궁극적(窮極的)으로 희망적(希望的)인 것이다.
⑻.심판(審判)과 희망(希望)의 이 맥락(脈絡)에서 주님은 자신이 변(變)하지 않으시며, 이 사실이 실제(實際)로 그분의 백성이 멸망(滅亡)되지 않는 이유(理由)라고 강조(强調)합니다. (말라기 3:6).
⑼.(야고보서 1:17)에서는 신성(神性)한 불변성(不變性)과 도덕적(道德的) 불변성(不變性)이라는 개념(槪念)도 강조됩니다. (야고보서 1장)의 맥락(脈絡)은 유혹(誘惑)이 하나님에 의해 유발(誘發)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⑽.하나님은 우리에게 위로부터 일관(一貫)되고 끊임없이 선(善)하고 완전(完全)한 선물(膳物)을 주시기 때문이고, 따라서 유혹(誘惑)과 선물(膳物)을 변덕스럽게 조합(調合)하는 대신, 그분은 일관(一貫)되게 우리에게 선물(膳物)만을 주십니다.
(02월 05일) (수)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다니>
(Q)~우리는 하나님의 성품(性稟)은 절대로 변(變)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그러나 어떤 성경구절(聖經句節)에서는 하나님이 "회개(悔改)"하거나 "마음을 돌이키신다."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후회(後悔)하십니까? 그분이 후회(後悔)하신다는 것은 어떤 뜻이며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 (민수기 23:19과 사무엘상 15:29과 출애굽기 32:14, 예레미야 18:4~10)
(A)~(출애굽기 32:14) ”뜻을 돌이키사“-‘후회하다’라는 의미로도 쓰이는데 성경에는 하나님이 몇 차례 ‘후회하신’ 기록이 나타나 있다. “한탄하사”(창 6:6), “뉘우치사”(대상 21:15), “뜻을 돌이키시리라”(렘 26:13), “뜻을 돌이키셨으므로”(암 7:3). 이러한 표현은 변개(變改)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속성(말 3:6, 시 102:27)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속성(屬性)상 일의 동기(動機)와 목적(目的)과 약속(約束)에서 불변(不變)하신 분이시다. 다만 성경에 나타난 이러한 표현(表現)들은 참고 참으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恩惠)를 인간의 언어(言語)로 표현(表現)한 것뿐이다(삼상 15:11 참조). 따라서 여호와께서 그분의 결정(決定)을 돌이킬 수 있도록 확신을 준 것은 그분이 자신의 백성을 위해 기꺼이 생명을 내놓으려고 하는 진실(眞實)한 중재자(仲裁者)(모세)를 발견했다는 사실에 있었다. (PP 319)
⑴.“여호와께서는 모세의 간청(懇請)을 들으시고 그의 이기심(利己心) 없는 기도(祈禱)를 응답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종을 시험(試驗)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성실성(誠實性)과 범죄(犯罪)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백성들에 대한 그의 사랑을 시험(試驗)하셨다. (PP 319)
⑵.인간의 후회는 마음의 변화를 의미하고 하나님의 후회는 환경과 관계의 변화를 의미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는 조건에 응함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관계를 변화시킬 수도 있고, 또 자신의 행위로써 자기 자신을 은총을 받을 수 없는 곳에 둘 수도 있다. (PP 630)
⑶.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 우리는 실수하고 그분의 성령을 슬프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하고 뉘우치는 마음으로 그분께 나가면, 그분께서는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신다. (CCh 47)
⑷.이스라엘에 대한 그의(하나님) 관심(關心)은 이기적(利己的)인 동기(動機)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 선민(選民)의 번영(繁榮)은 자기 개인의 명예(名譽)나 큰 나라의 조상(祖上)이 되는 특권(特權)보다도 더 귀중(貴重)했다. (PP 319)
⑸.(출애굽기 32:14)에서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여호와는 충성스러운 종(모세)이 진지하고 사심 없는 기도(祈禱)에 감동(感動)을 받았다. 하나님은 자신의 높여짐과 명예(名譽)보다 백성을 더 생각하는 자(者)의 탄원(歎願)을 거절(拒絶)할 수 없었다. 얼마나 찬사(讚辭)를 받을 만한 모세의 품성(稟性)이며, 얼마나 놀랍고 거룩한 사랑의 계시(啓示)인가. (요 3:16; 빌 2:5~8).
⑹.“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라는 말은 하나님의 뜻을 인간(人間)의 언어(言語)로 표현해 보려는 미약(微弱)한 시도(試圖)이다. 엄격(嚴格)하게 말하면, 하나님은 목적을 변개(變改)할 수 없는데, 이는 그가 “종말(終末)을 처음부터” 알기 때문이다. (삼상 15:29; 사 46:9~10, 사 55:11). (SDA 주석 출 32:14)
⑺.죄인(罪人)들이 죄를 버리고 그(하나님)에게 돌아올 때, 그의 자녀들이 긍휼(矜恤)과 용서(容恕)를 그에게 간구(懇求)할 때, 그는(하나님) “돌이킨다.” 그는 진노(震怒)를 긍휼(矜恤)로, 심판(審判)을 은혜(恩惠)로운 용서(容恕)로 바꾼다. (시 106:44, 45; 렘 18:5~10; 26:3; 욜 2:12~14; 욘 3:9, 10; 4:2). (출 32:14, 재림교주석)
⑻.하나님은 사람처럼 돌이키거나 후회(後悔)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이 회개(悔改)하면,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과 사랑스럽고 자비(慈悲)로운 본성(本性)으로 인(因)해 심판(審判)을 돌이키십니다.
⑼.(요나 4:2)에는 하나님께서 "돌이키시는" 것이 놀라운 일이 아닌 세 가지 중요한 이유가 들어 있습니다.
(첫째). 요나 자신은 처음부터 그런 결과가 일어날 것이라고 의심(疑心)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자비(慈悲)에 대한 이러한 기대가 요나가 다시스로 도망(逃亡)한 진짜 이유입니다.
⑽.(둘째), 여기서 하나님에 대한 그의 진술은 이스라엘 자체가 하나님의 회개(悔改)의 대상이었던 (출애굽기 32:14와 출애굽기 34:6~7)을 반영합니다. 따라서 니느웨에 대한 하나님의 돌이키시는 것보다 훨씬 이전에 하나님은 과거(過去)에 이스라엘에 동일(同一)한 일을 하셨습니다.
◎.(셋째), 이러한 유형(類型)의 돌이키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선포(宣布)하신 심판(審判)에 대해 거짓말을 하셨다는 것을 의미(意味)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 18:7~10)에서 "내가 한 민족과 왕국에 대하여, 그것을 뽑아내고, 무너뜨리고, 멸(滅)하겠다고 말하는 순간, 내가 말한 그 민족(民族)이 그 악(惡)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려고 생각했던 재앙(災殃)을 후회(後悔)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들이 그분에 대한 태도를 관계적(關係的)으로 바꾸면, 사람들에 대한 태도(態度)를 관계적(關係的)으로 바꾸신다.
(02월 06일) (목) <사랑과 정의(正義)를 굳게 붙잡고>
(Q)~하나님의 선(善)함과 사랑의 성격(性格)은 십자가(十字架)에서 예수님에 의해 최고(最高)로 입증(立證)되었다. (로마서 3:25~26; 롬 5:8). 또한 (마태복음 5:43~48)의 말씀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며, 예수님의 이 가르침에 비추어 우리는 어떻게 실천하여야 하겠는가?
(A)~<(마태복음 5장)은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한 사랑으로 묘사(描寫)합니다. 불완전(不完全)한 사랑은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 자신을 원수(怨讐)로 여기는 사람까지도 사랑하십니다. 그의 사랑은 완전(完全)하고 따라서 완벽(完璧)합니다>.
⑴.하나님의 사랑과 자비(慈悲)는 어떤 합리적(合理的)인 기대(期待)도 훨씬 뛰어넘지만, 결코 공의(公義)를 무시하거나 어기지 않을뿐더러 사랑과 공의(公義)를 함께 가져옵니다.
⑵.성경은 우리에게 "자비(慈悲)와 공의(公義)를 지키고 항상 너희 하나님을 기다리라"라고 권고(勸告)합니다. (호세아 12:6). 오히려 공의(公義)를 굳게 붙잡으라고 합니다.
⑶.초월자(超越者)이신 하나님을 따르고 그의 성품(性稟)에 동참(同參)하는 자는 윤리적(倫理的) 관점에서 그분의 ‘아들’이 되는 것을 뜻한다(마태 5:9, 16절). 이 ‘아들’ 됨은 단순한 명예(名譽)로서가 아니라 영광(榮光)스러운 신분(身分)과 현재(現在)와 미래(未來)를 통틀어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동시에 확보(確保)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와 같은 영예(榮譽)를 누릴 필수 요건(要件)이 바로 (마태 5:44 절)에 언급된바 ‘원수(怨讐)’마저 사랑하는 것이다.
⑷.“하나님 정부(政府)의 원칙은 ‘원수(怨讐)를 사랑하라’라는 구주(救主)의 가르침과 완벽(完璧)하게 조화(調和)를 이룹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宇宙)의 이익(利益)과 그분의 심판(審判)을 받는 사람들의 이익(利益)을 위해 악(惡)한 자들을 벌(罰)하십니다.
⑸.예수의 사람들은 그 삶의 전형으로서 하나님을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 한편 하나님은 의(義)로운 자와 불의(不義)한 자를 구별(區別) 없이 사랑하셔서 모두에게 똑같이 해를 비취게 하시고 비를 내리시는 분이다.
⑹.“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사랑의 증거(證據)로 사람들을 둘러싸시고, 그들에게 그분의 율법을 이해시켜 주시며, 그분의 자비(慈悲)로 그들이 그분을 따르도록 인도(引導)하십니다.”(GC 541)
⑺.<품성건설(稟性建設)의 완성(完成)> 주님은 그의 구속(救贖)받은 가족들에게 완전을 요구하신다. 그는 품성 건설의 완성을 요구하신다. 아버지 된 자들과 어머니들은 자녀들이 하나님과 협력하도록 그들을 훈련(訓練)시키는 최고의 방법을 이해(理解)할 필요가 있다.
⑻.우리의 구주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참된 인간관계를 맺으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요, 딸들이다.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법을 알기 위하여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야 한다. (마 5:48, EG 주석)
⑼.성경은 하나님의 도덕적(道德的) 불변성(不變性)을 확증(確證)하지만, 사람들이 그분을 받아들이거나 거부(拒否)하기로 선택할 때 그분은 사람들에 대한 관계적(關係的)으로 바뀔 수 있다.
⑽.우리는 어떻게 나쁜 환경(環境)에도 하나님을 찬양(讚揚)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까? 당신의 삶 자체가 어떤 방식으로 당신의 영향력(影響力) 있는 영역(領域)에서 공의(公義)를 증진(增進)하는 방식(方式)으로 하나님께 찬양(讚揚)을 드릴 수 있습니까?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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