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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과 하나님 마음의 기쁨이 되는 것(질문, 대답, 설명) 01/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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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5-01-10 12:07 조회2,1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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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과 하나님 마음의 기쁨이 되는 것

(1월 18일 안식일 / 일몰: 오후 5시 40분)

   

연구 범위: 눅 15:11-32, 습 3:17, 엡 5:25-28, 사 43:4, 롬 8:1, 롬 5:8, 막 9:17-29

 

기억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습 3:17).

 

다섯 살짜리 아이가 어버이날에 서투르게 포장한 선물을 가지고 아버지에게 온다고 상상해 보라. 아이는 신이 나서 선물을 건넨다. 그런데 아버지가 이렇게 대답한다. 

“아들아, 나는 네 선물이 필요 없다. 네가 내게 어떤 선물을 준다고 해도 나를 기쁘게 하진 않을 거야. 그런 건 나도 구할 수 있고 네가 무엇을 주더라도 결국 그것은 내가 준 돈으로 산 것이거나 내가 준비한 것으로 만들었을 터이니 말이다. 그러니 선물은 넣어두어라. 나는 그런 건 원하지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어쩌면 이렇게 무정하고 차갑고 무심하게 말할 수 있을까! 그런데, 혹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대하신다고 생각하는가?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죄로 얼룩지고 악에 빠지기 쉬운 타락한 존재로서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도 하나님께 기쁨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과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선물을 무정하고 차가운 아버지처럼 보지 않으신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있으며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학습 목표

깨닫기: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죄인도 은혜를 통해서 마음 깊이 기뻐하신다. 

느끼기: 십자가는 우리의 가치를 말해주며 우리는 하나님께 기쁨이 될 수 있다. 

행하기: 하나님의 기대를 깨닫고 세상에 기쁨을 나누는 자가 된다. 

 

TMI 위로

2. 달려가서 탕자를 맞는 아버지는 당신의 생각과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눅 15:20)

*답: 일반적으로 사람은 꾸지람이 먼저 나간다.

3. 하나님이 한 사람을 귀히 여기는 마음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습 3:17)

*답: 한 사람이 돌아오는 것을 크게 기뻐하시는 것으로 표현했다.

4. 하나님이 어떤 대상을 특별히 사랑하신다고 말한 이유는 무엇입니까?(시 146:8, 고후 9:7)

*답: 모두를 그처럼 사랑하신다는 것을 본보기로 보인 것이다.

5. 죄인인 우리가 어떻게 해서 하나님 앞에 기쁨이 될 수 있습니까?(벧전 2:5)

*답: 예수 그리스도로 말마암아 기쁨이 될 수 있다.

6. 믿음 없이 기쁘시게 못한다면 믿음이 부족하게 느껴질 때는 어떻게 합니까?(막 9:24) 

*답: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시도록 호소할 것이다.

7.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것을 기대하신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습니까? 

*답: 우리가 신서의 충만에 이르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결론: 하나님은 어떤 이가 오해하는 것처럼 무정하고 차가운 분이 아니다. 그분은 큰 사랑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며 그 크기는 인간의 어떤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하여 기뻐하시며 죄인인 우리는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기쁨이 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만큼 우리는 귀중하며 하나님은 우리가 더 큰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자로 성장하기를 바라신다. 

 

1월 12일(일) 당신의 생각보다 더 가치 있는 존재

 

이전 교과에서 본 것처럼, 제아무리 악독한 죄인이나 끔찍한 악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사람을 소중히 여기시기 때문에, 죄를 불쾌하게 여기신다. 그것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죄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아시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15:11-32을 읽어 보라. 탕자의 비유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그 비유는 첫째처럼 집에 남아있는 사람에게 무엇이라고 경고하는가?

[눅15:11~32] 탕자의 비유다. 각각 읽어보기 바란다.

*답: 아버지의 사랑의 마음, 용서하시고 묻지 않으신 사랑을 말해준다. 둘째 아들 같은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이 마땅하다고 경고했다.

 

이 비유에서 작은아들이 일찍 유산을 요구한 것은 사실상 아버지와 가족을 저버린 것이다. 이후에 그는 유산을 낭비하고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면서 여물통에서 먹는 돼지를 부러워하는 형편에 이른다. 아들은 아버지 집에는 하인조차 먹을 것이 충분하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하인으로라도 받아주기를 희망하며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이후의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어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돌아오자마자 내칠 것이다. “넌 유산을 가져가면서 나와 인연을 끊었다. 여기는 더 이상 네 집이 아니다.” 이렇게 되는 것이 일상적이고 심지어 합당한 자세가 아니겠는가? 사람의 생각으로는 그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기에는, 특히 아들로서 받아들여지기에는 너무 멀리 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을 상징하는 비유 속 아버지는 전혀 그렇게 반응하지 않는다. 오히려 탕자가 “아직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그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달려가 그의 목을 껴안고 그에게 입을 맞추”(눅 15:20, 흠정역)었다. 

당시에 집주인이 누군가를 맞으러 달려가는 것은 체면에 어긋나는 일로 여겨졌지만, 아버지는 큰 자비로 아들을 만나러 달려갔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아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그를 위해 잔치까지 베푼 것인데, 이는 단 한 사람일지라도 타락한 사람이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지를 보여준다. 얼마나 놀라운 긍휼의 하나님인가! 

 

<교훈> 가족을 저버린 아들에게 달려가서 큰 긍휼로 그를 회복하고 잔치를 베푸는 것은 타락한 한 사람이라도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는 하나님의 큰 긍휼을 상징한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창조하셨다. 창조주께 사람은 보배로운 존재다. 사람만이 아니다. 창조주께는 모든 피조물이 귀한 것이다. 사람은 그 모든 것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도록 창조주께는 가장 존귀한 존재이다. 그런데 사람보다 먼저 창조된 피조물인 천사 중에 기름부어 덮는 그룹의 지위를 받은 루시퍼가 자기는 모든 피조물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창조주와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집회의 산에 자기 자리를 펴고 지극히 높으신 분과 동등하겠다고 나섰다(렘23:18, 사14:12~14). 루시퍼는 자기가 피조물이기를 거절한 것이다. 피조물이 자기가 피조물일 수 없다고 주장하고 나서면 창조주께서는 그런 생각이 틀린 것이라고 판단하여 자기 지위에 돌아가 자리를 지키도록 권고할 권세가 있다.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성경은 “여호와께서는 그 행하시는 심판으로 자신을 알리시며, 악인은 스스로 행한 일에 걸려든다.”(시9:16, 바른성경)라고 기록하였다. 피조물이 자기가 피조물일 수 없다고 주장할 때 창조주께서 창조한 것을 거두실 권리가 있다. 그래서 ‘네가 피조물일 수 없다고 주장하니 내가 창조해준 존재는 내게 반납하고 네가 존재한다면 네 말이 맞다. 그러니 존재를 반납해라’라고 심판하셔서 여호와만 창조주시라는 것을 그릇 주장하는 자에게 알리신다. 그것이 심판의 핵심이다. 그때 루시퍼는 자기 자리를 떠났다. 자기 지위도 버렸다(유1:6). 결과로 지구의 아담 부부를 자기와 같은 생각을 하도록 유혹하고 성공하자, 아담 부부도 그 존재를 반납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인 ‘정녕 죽으리라’는 내용이다. 그래서 인류가 아담 안에서 다 탕자가 된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처럼 창조주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을 통하여 구원의 길을 여시고 아들의 지위와 신분을 회복하도록 큰 희생으로 사랑을 드러내셨다.(롬5:8). 어찌 찬양하지 않으며 감사하지 않으랴!

 

1월 13일(월)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심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하나님은 각 사람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에 한 영혼이라도 구원받는 것을 기뻐하신다. 

 

스바냐 3:17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은 탕자의 비유에 어떤 빛을 비추어 주는가?

[습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답: 돌아오면 아버지께는 즐거움과 기쁨이 된다.

 

스바냐 3:17은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백성을 기뻐하시는 것을 강조해서 보여준다. 히브리어로 기쁨과 즐거움을 나타내는 거의 모든 단어가 이 한 구절에 담겨 있으며, 구원받은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기쁨을 묘사하고 있다. 마치 어떤 말도 그날의 하나님의 기쁨의 크기를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않은 듯하다. 

또 이 구절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 “가운데”에 계신다고 말하는 것을 주목하라. 사랑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화목은 하나님의 즉각적인 임재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멀리서 아들을 보고 달려오는 아버지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 가운데 임재하신다.

이사야 62:4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결혼에 대한 비유를 통해 기록되었다. 이사야 62:4은 하나님의 백성은 “나의 기쁨이 그녀에게 있다”는 뜻의 “헵시바”라고, 또 그 땅은 “결혼했다”는 의미의 “쁄라”라고 불릴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돌아온 탕자를 보고 기뻐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받아들이시고 우리를 인하여 기뻐하시는 회복의 날이 하나님의 가장 큰 기쁨의 날이 될 것이다. 

 

에베소서 5:25-28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은 우리가 어떤 사랑을 나타내도록 부름받았는지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엡5:25~28]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답: 진정으로 사랑하는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것 같이 사랑하도록 부름 받았다.

 

이 구절은 남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엡 5:25, 28) 사랑하라고 권면한다. 이 구절은 남편이 아내에게 가져야 할 이타적이고 희생하는 사랑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도 당신의 백성(교회)을 자신처럼 사랑하신다는 것을 밝히 보여준다.

  

<교훈> 성경은 당신의 백성을 향한 사랑을 감동적으로 묘사한다. 어떤 말도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기에 충분하지 않으며, 우리도 그런 사랑을 본받기를 원하신다. 

 

<부가설명> 부모가 자녀를 기뻐한다. 자녀가 효도할 때 더욱 기뻐한다. 자녀가 부랑자가 되었을 때 그가 돌아와 올바르게 살기를 눈물로 호소한다. 그런 자식도 사랑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아버지로서 하나님은 탕자가 된 자식도 사랑한다. 탕자 비유에서는 아버지가 자식을 찾아가는 내용은 없다. 그러나 누가복음의 같은 장에는 잃은 양 비유도 있다. 목자가 양을 찾아간다. 양 떼를 떠난 양을 찾아 온 들과 산을 헤매며 찾았을 때 목자는 기뻐하며 그 양을 어깨에 메고 돌아와 잔치를 벌인다. 탕자 비유를 잃은 양을 찾는 목자 비유와 병행해서 읽을 때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간절하고 큰지 깊이 느끼게 된다. 예수님은 잃은 양을 찾는 비유 끝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15:7).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 기뻐하신다. 스가랴 3;17은 이 기쁨을 표현한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아왔다면 우리는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99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한 기쁨을 하나님께 드린 아들들이다. 탕자 비유에서 아버지는 맏아들에게 나쁘다고 하지 않았다. 나는 이 장면을 감사한다. 아버지는 그 아들에게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눅15:31)라고 했다. 아버지의 것이 다 맏아들의 것이라고 한 것이다. 동생에 대하여 나쁘게 생각했다고 나쁜 아들이라고 하지 않았다. 두 아들이 다 아버지의 아들인 것이다. 아멘.

 

1월 14일(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

  

어떻게 우주의 하나님이 무한한 우주 가운데 티끌 같은 한 행성에 사는 잠시 있다 사라질 원형질 덩어리에 불과한 인간을 기뻐할 수 있는가? 어떻게 전능하시고 부족함이 없으신 절대자에게 어떻게 인간이 그토록 중요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어떻게 완전하신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가? 둘째, 특히 우리의 죄악을 생각할 때 어떻게 사람이 그분을 기쁘시게 할 수 있겠는가? 오늘 교과는 이 질문의 첫 번째를 살펴볼 것이고 내일은 두 번째 부분을 다룰 것이다. 

 

이사야 43:4, 시편 149:4, 잠언 15:8, 9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기뻐하시는 것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사43:4]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시149:4]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

[잠15:8,9]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9 악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공의를 따라가는 자는 그가 사랑하시느니라.

*답: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기뻐하시며 아름답게 하시고 사랑하신다.

 

어제 교과에서 부분적으로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은 사람으로 인해 기뻐하실 수 있다. 이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돌보는 이가 상대의 최선의 유익을 추구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반대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악을 행할 때 불쾌해하신다. 실제로 잠언 15:8, 9은 악인의 “제사”와 악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지만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분의 기쁨이며 “공의를 따라가는 자는 그가 사랑하”신다고 가르친다.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악을 싫어하시는 것만 아니라 선을 기뻐하시는 것도 보여준다. 또한 하나님의 기쁨과 사랑을 서로 직접적인 관계에 둠으로 성경 전체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사랑과 기쁨 사이의 밀접한 연결을 보여준다. 

시편 146:8에 따르면 “여호와께서 의인들을 사랑하시며,” 고린도후서 9:7은 하나님은 “즐거이 내는 자를 사랑하”(흠정역)신다고 덧붙인다.

먼저 이 구절이 말하지 않는 것에 유의하자. 이 구절은 하나님이 의인만 사랑하신다거나 즐거이 내는 자만을 사랑하신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다. 그렇다면 이 구절이 어떤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어떤 특별한 의미에서 '의인'과 '즐거이 내는 자'를 사랑하신다는 뜻이어야 한다. 잠언 15:8, 9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은 의인과 즐거이 내는 자들을 통해 기쁨을 느끼시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그들을 특별히 사랑하신다. 

 

<교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지만, '의인'과 '즐거이 내는 자'를 특별히 사랑한다고 하신 것은 이들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부가설명> 앞에 어디서도 말했지만, 하나님께서 사람을 대하실 때 인간이 이해하기 좋은 방법으로 말씀하신다. 실제로도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버지로 계시하셨고 그의 백성들을 자녀라고 하셨다. 그래서 혈연관계가 되는 것을 알게 하신다. 인간 아버지도 자녀를 사랑하는데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자녀들을 얼마나 사랑하시겠는가? 말씀 하나님이 대신하여 죽어주실 정도로 사랑하신다. 이런 사랑은 창조하실 때 창조주의 뜻을 따라서 이해할 때 바르게 깨닫게 된다. 하나님은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 형상을 지닌 사람들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게 되는 것이 뜻이었다. 그런데 아담이 사탄에게 가서 사망의 시조가 되었다. 생명이신 창조주께서는 사망이 된 사람을 사망인 채로 사랑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망은 존재를 상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없는 것을 사랑한다는 것은 공허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다시 하나님의 형상대로 회복하여 영원한 사랑을 공유하기를 원하신다. 예수께서 독생자로 오신 이유도 이것이다. 그래서 사랑의 하나님은 부디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를 고대하신다. 그렇게 된 사람들을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시고 기뻐하신다. 그렇게 되기까지 하나님의 사랑은 고통이다. 자신이 죽기까지 고통하셨다. 지금도 사망에 거하는 사람들이 보배로운 자리로 돌아오라고 피흘린 손을 들고 호소 하신다. 그보다 더한 사랑이 있겠는가? 그들이 돌아오면 의인 99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 기뻐하시는 것이다.

 

1월 15일(수) 산 돌

 

타락하고 죄로 가득한 존재인 우리가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께 기쁨이 될 수 있는가?

 

로마서 8:1과 로마서 5:8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다고 가르치고 있는가?

[롬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답: 정죄 받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사랑을 받는 자임을 확증하셨다.

 

인간의 그 어떤 반응도 있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우리가 아무것도 말하거나 행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먼저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당신의 사랑을 받아들이거나 거절할 기회를 주신다. 로마서 5:8에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렘 31:3 비교). 그리고 우리 구속주가 하신 일을 힘입어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고 심지어 그분 앞에 기쁨이 될 수 있다. 

 

베드로전서 2:4-6을 읽고 히브리서 11:6과 비교해 보라. 이 구절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가?

[벧전2:4~6]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6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히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답: 믿음으로 예수님께 붙어서 산돌이 될 때.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개입 없이는 어떤 가치 있는 것도 하나님께 가져올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은혜와 자비로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길을 열어주셨다. 특별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벧전 2:5) 수 있게 되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히 11:6)지만 “영광이 그에게 세세무궁토록 있을”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을 통해 하나님은 믿는 사람들에게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하게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서 이루”신다(히 13:21). 

믿음으로 하나님께 응답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의의 중보를 통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여겨진다. 오직 그리스도의 의만이 유일하게 하나님께 가납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의 권유에 순종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중보를 통해 합당하게 여겨지며(눅 20:35), 하나님은 그들을 당신의 형상으로 변화시키신다(고전 15:51-57, 요일 3:2).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는 우리를 위한 것이며, 동시에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교훈>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께 기쁨이 될 수 있는 것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응답할 때 그리스도의 의의 중보를 통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부가설명> 아무리 사랑하고 고귀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라도 생명을 잃으면 하나의 물건인데 치워버려야 할 추한 물건이 된다. 사람에게도 죽은 사람은 집에 함께 두지 않는다. 불태우든지 땅에 묻든지 장사한다. 생전에 부모 형제자매 자녀들이었어도 예외가 아니다. 생명이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도 죽은 자는 사망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죽은 자가 아직 살아날 수 있는 기회 동안 살아나라고 그렇게 안타깝게 호소하시는 것이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겔18:32),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하고”(겔16:6), “11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겔33:11). 그런데 죽은 사람들이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이 인정하고 회개하면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얻어서 산 자가 될 때 하나님을 기뻐하시고 보배로 여기시는 것이다. 우리는 이 진리를 깨달아 믿음의 길을 바르게 걸어가야 한다.

 

1월 16일(목) 최고의 목표

  

하나님은 당신의 자비와 중보의 보호 안에 있는 자들이 보이는 지극히 작은 반응에도 기뻐하신다. 유일하게 사랑받기에 합당하시며 홀로 온전히 의로우신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의롭다 여김을 받고, 완전한 사랑 가운데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 당신의 사랑받는 자들 가운데 포함될 수 있다. 이것이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행하시는 그리스도의 중보를 통해 얻는 구원의 위대한 소망이다.

하지만 어쩌면 당신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이것이 나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일까? 내가 충분히 선하지 않다면 어떻게 할까? 믿음이 부족할까 두려울 때는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마가복음 9:17-29을 읽어 보라. 하나님은 이 사람에게 어떻게 응답하셨는가? 어느 정도의 믿음이어야 충분한 믿음인가?

[막9:17~29]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18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19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20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21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22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24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25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26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27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28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답: 하나님은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시면서 응답하신다.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낼 수 없었고 모든 희망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예수께서 오셔서 그 아버지에게 말씀하셨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그러자 그는 절박한 마음으로 대답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막 9:24). 

예수께서 그에게 ‘믿음이 더 생기거든 다시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음을 기억하라.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는 외침으로 충분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히 11:6), 예수님은 아주 작은 믿음도 받아들이신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중보를 힘입어 그분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고 우리를 대신하신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인해, 마치 자녀가 쓸모없는 선물을 가져왔을 때도 아버지가 기뻐하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바울의 권면을 따라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는 것을 우리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후 5:9, 10; 골 1:10, 살전 4:1, 히 11:5 비교).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관심을 변화시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최고의 유익을 생각할 수 있도록 해주시고, 우리의 사랑이 확장되어 다른 이들에게까지 전해질 수 있도록 간구해야 한다.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롬 12:10-13). 

 

<교훈>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으며, 나아가 우리 사랑이 확장되어 다른 사람에게까지 전해질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부가설명>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신성의 모든 충만이 그의 자녀들에게도 충만하기를 기대하신다(골2:9,10). 그렇게 될 때 우주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최고의 목표다. 모든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자기를 생명의 성령님께 철저히 굴복시켜야 한다. 그러면 이웃을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권한다.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엡5:29), 그러므로 이웃을 내 몸을 양육하여 보호하듯이 보호하고 양육하는 정신으로 대할 때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신성의 사랑을 서로 나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출발은 거듭나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물과 성령으로 났는지 확인하는 하루하루를 살아야 할 것이다.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는 것이다(벧전1:23). 아무쪼록 안교반생들이 다 이런 경험에 이르도록 주님이 능력으로 역사해주시기를 기도한다.

 

1월 17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주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스스로를 낮게 평가할 때에 실망하신다. 그분은 당신이 택하신 백성들이 당신이 그들에게 부여하신 가치로 자신들을 평가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원하셨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분은 그들을 구속하시기 위해 그토록 값비싼 대가를 치르도록 그분의 아들을 보내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분은 그들을 쓰실 데가 있으시며, 그들이 당신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려고 당신에게 가장 큰 요구를 할 때에 매우 기뻐하신다. 만일 그들이 그분의 약속을 믿는다면 그들은 큰 것을 기대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성품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정신을 나타내며 그분의 사업을 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주의 약속은 조건과 함께 주어졌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분은 사람들을 구원하시되 죄 가운데서 구원하지 않으시고, 죄로부터 구원하시며 그분을 사랑하는 자들은 순종으로 그들의 사랑을 나타낼 것이다.

모든 참된 순종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순종은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만일 우리가 동의하기만 한다면, 그분은 우리의 생각과 목표에 깊이 관여하셔서,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당신의 뜻에 맞도록 변화시키실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충동을 따르지 않고 그분께 순종하게 될 것이다. 정결하고 성화된 의지는 그분을 섬기는 일에서 최고의 기쁨을 찾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을 특권으로 여기며 그분을 알게 될 때,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순종의 삶이 될 것이다. 하나님과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의 성품을 깊이 이해함으로 우리는 죄를 미워하게 될 것이다”(시대의 소망, 667).

 

함께하는 토의를 위해 

1. ‘이기심 없이 받는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하는가?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주고받는 관계가 어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답: 주는 통로 역할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2. 먼 우주 어딘가에서 온 하늘의 사자들은 다니엘 선지자를 사랑하는 자라고 세 번이나 그렇게 불렀다. 이 구절은 하나님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지, 그분이 우리에게 얼마나 가까이 계신지 생각해 보라. 이 놀라운 진리에서 당신은 어떤 희망을 얻을 수 있는가?

*답: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스스로 도망하고 있지 않으면 그분은 우리를 품고 계신다.

3. 히브리서 11장이 말하는 믿음의 영웅들의 예는 이번 주 교과의 내용을 어떻게 보여주고 있는가? 그들은 믿음으로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무엇을 알려 주는가? 그들의 믿음과 충성된 모습에서 무엇을 배우고 그것을 나의 일상에 적용할 수 있겠는가? 

*답: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충성할 때 기쁘시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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