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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과(교훈과 예화로 푸는 과정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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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춘호 작성일11-01-14 17:35 조회6,064회 댓글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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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과 관계
1월 22일 안식일 일몰: 오후5시 44분
 
도입)
옛날 중세기에 영국의 한 장원의 주인이 침대에 누워 죽음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가 경건한 그리스도인인 한 하인을 불러들였습니다. "나는 곧 죽을 것일세. 그러나 내가 천국에 갈지 의심스러워. 어떻게 하여야 천국에 갈 수 있을지 말해주겠나?" 라고 물었습니다. 그 주인은 아주 교만하여서 살아 있을 때 한 번도 하나님 앞에 겸손한 행동을 보인 일이 없었습니다. 이것을 잘 아는 하인은 "주인님, 주인님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면 돼지우리에 들어가셔서 진탕 속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이시여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저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말하셔야 합니다."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주인은 "난 그런 짓은 못하겠네. 이웃 사람들과 다른 하인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나?" 하며 거절했습니다. 한 주일이 지난 후 주인은 다시 하인을 불렀습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는다고 했지?" 늙은 하인은 "주인님이 돼지우리에 들어가셔야 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여태까지 갈까 말까 생각 중이었는데 지금 가기로 마음먹었네. 자, 우리 같이 가기로 하세." 하고 일어나는 주인에게 하인은 "주인님, 이제 돼지우리에 가지 않아도 됩니다. 가겠다는 맘의 태도로 족합니다." 라고 말을 했습니다.(빌2:5-8) 그리스도인 하인은 자신도 못하는 겸손의 모습을 주인에게는 시키려는 이중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돼지우리에 들어가 그 자신의 몸을 고행시키고 혹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아시기 바랍니다. [호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애가 3: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인생이 돼지우리에서 자신을 낮추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진실한 기도로 하나님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애가 3:3:34 “세상에 모든 갇힌 자를 발로 밟는 것과 3:35 지극히 높으신 자의 얼굴 앞에서 사람의 재판을 굽게 하는 것과 3:36 사람의 송사를 억울케 하는 것은 다 주의 기쁘게 보시는 것이 아니로다”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가지는 잘못된 생각 중에 하나가 인간이 어떤 고통을 받아야만 하나님께서 자신을 받으신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고통스럽게 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생각을 갖는 것인데 이런 방법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법이 아닙니다.
 
기억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12).
 
일요일 1월 16일
모든 겸손과 온유
도입)
어느 정신과 의사가 겸손에 대해 이렇게 말을 했다. “겸손이란 인격이 있는 사람만이 갖출 수 있는 자신감”이라고 하였다. 대부분 정신적으로 질환이 있는 사람은 고집이 세고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자신이 최고로 잘 난 줄 안다고 한다. 이 정신과 의사는 말하기를 “내가 만난 겸손한 사람들은 대부분 말을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상대방의 학력이나 사회적 지위고하를 떠나서 늘 배우려는 자세로 어께를 낮추어 경청하는 자세를 취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겸손한 사람은 적을 만들지 않는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대방을 따스하게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은 어느 모임에서든지 자기가 잘난 체 한다. 정말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 중에서도 교만한 사람은 있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빈껍데기 인생을 살지 않는다. 오직 진실한 생활을 즐기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주어진 인생의 제한된 시간을 정신적 가치에 무게를 두고 보다 진실하게 보내고 싶은 내적인 갈급함이 있을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은 대부분 눈에 보이는 껍데기에 의존하며 살아간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1~3).
다윗과 나발과 아비가일의 이야기는 성공적인 사회적 교류가 무엇인지 보여 준다(삼상 25장). 결과는 자신을 상대에게 어떻게 나타내고 있느냐에 따라 확연하게 달라진다.
  
교훈: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태도는 관계를 부드럽게 만든다.
 
부가적용)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빌 2:3) 성 프란체스코는 언제나 겸손한 자세를 보여준 사람이었다. 누군가 그에게 어떻게 그렇게 위대한 일을 했느냐고 물었을 때에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마 주님께서 가장 연약하고 비천한 자를 찾으시다가 저를 발견하신 모양입니다. 저 같은 사람은 하도 보잘 것 없기에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자랑도 못할테니까요." 한번은 프란체스코가 제자들에게 금식을 시켰다. 모두 잠이 든 밤에 갑자기 제자 중 하나가 일어나 외쳤다. "전 죽을 것 같아요. 배가 고파 죽겠어요. 저를 좀 봐주세요." 그러자 프란체스코는 일어나서 여러 가지 먹을 것을 차렸다. 그리곤 모두 식탁에 불러서 그 배고픈 제자가 부끄럽지 않도록 자기가 먼저 음식을 먹고 모두에게 먹으라고 권했다. 프란체스코는 스스로 정했던 금식의 규율을 어기면서 사랑을 보여준 것이다. 겸손은 바로 이런 것이다. 어떤 대단한 일을 하더라도 그것이 자기 자랑이 되지 않는 것이요, 규율이 사랑을 넘어설 수 없는 것이다. 다툼이나 허영이 아니라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자세, 이것이 곧 예수님이 보여주신 겸손이며 우리가 본받아야 할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다.
 
• 영감의 교훈 •
▶ 말과 관계
“우리는 우리의 대화로부터 거칠고 저주스러운 것은 무엇이라도 제거할 필요가 있다”(교육, 229).
“만약 그리스도의 영이 그대 안에 거하신다면, 그대는 말과 행위와 심지어 얼굴의 표정에서까지 그분을 드러낼 것이다. 그대의 대화는 자만과 오만이 아닌 온유를 나타낼 것이다. 그대는 자신을 높이거나 자신에게 영광을 구하지 않을 것이다”(교회증언 4권, 331).
 
월요일 1월 17일
선으로 악을 갚음
 
도입)
어떤 부인이, 갑자기 오른 팔이 위로 올라가지 않았다. 팔을 들 수 없었다. 병원에 가서 진찰하고, 검사를 받아도, 원인이 파악되지 않았다. 뼈와 신경에 아무 이상이 없는데도, 오른 팔이 올라가지 않았다. 그래서 정신과 의사를 찾아갔는데, 상담을 통해 그 원인을 발견했다. 그 부인은, 시어머니와 한 집에 같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시어머니로부터 너무 심한 구박을 받다보니, 마음에 미움이 생겼고, 그런 괴롭힘을 당할 때마다, 마음으로 시어머니를 자기 오른손으로 때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런데 막상 시어머니를 때릴 수는 없으니, 그 스트레스가 쌓여서.. 결국 오른 손을 들 수 없는 장애가 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 미움이 내 속에 있으면, 그것이 나를 병들게 한다. 우리 심령은 물론이고, 우리 육체까지 병들게 한다. 내 마음에 미움이 있으면, 하나님 은혜도 못 받고, 당연히 은혜를 전할 수도 없다. 그래서 사실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는 콩알만 한 미움이지만, 사실 그 작은 미움을 방치했기 때문에, 자기 인생 망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는 내게 껄끄러운 사람이라도, 사랑으로 대해야 하는 것이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3:8~9).
예수님은 “눈에는 눈으로” 접근방식을 다른 뺨도 돌려 대는 접근 방식으로 발전시키셨다(마 5:38~39). 이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발상의 전환이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급진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실제로 악을 선으로 갚는 그리스도인은 정말 찾아보기 드물다. 예수께서  
교훈: 그리스도인들은 보복보다는 선으로 악을 갚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부가적용)
사랑을 베푸는 자에게 있어서 사랑이 실패로 끝난다 하더라도 사랑은 역시 최선의 길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때로는 그런 사랑이 성공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일이 있다. 이집트에 주둔한 적이 있었던 한 영국 상사가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이렇게 했다. ″내가 있던 부대에 예수를 믿는 민간인이 하나 있었는데, 군인들이 그 사람을 되게 못살게 굴었단다. 비가 몹시 내리던 어느 날 밤 그는 지쳐서 들어와서는 잠자리에 들기 전 기도를 하려고 무릎을 꿇었다. 이 영국 상사가 군인이었을 때 진흙이 잔뜩 묻은 자신의 장화를 그 사람의 머리 위에 올려놓았지만, 그는 기도를 계속했다고 했다. 그러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 장화가 깨끗이 닦여져서 자신의 침대 옆에 놓여 있었다고 했다. 짓궂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그의 보답은 깨끗하게 닦은 장화로 돌려주었고, 그와 같은 유순한 대답이 결국 이 영국 상사의 마음을 녹였단다. 그는 말하기를 이때에 “나는 그 날 구원받았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있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나타내어야 참된 품성의 모본이 아닐까?
 
부가예화 2)
어떤 예수 믿는 직장인이 있었는데, 그의 상사는 너무 성격이 못 되고 괴팍했다. 걸핏하면 사소한 일을 갖고도 성도인 부하 직원에게 화를 내고 서류를 집어던졌다. 그 성도 직장인은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병이 날 것 같았다. ‘이 직장 사표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러던 중에 성경을 읽다가, 롬12;14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를 읽게 되었다. 이 말씀이 가슴에 부딪혀왔다. ‘내가 이 말씀대로 한 번 실천해 보자’ 결심했다. 다음날 직장에 갔는데, 상사가 여전히 자기에게 불같이 화를 낸다. 그때 그는 속으로 ‘주님, 저 분을 축복해 주세요!’ 이렇게 축복하는 기도를 드렸다. 또 자기에게 신경질을 쏟아낼 때, 그는 계속 상사를 축복하며 속으로 기도했다. 그 직장인 성도는, 그렇게 하면 그 상사가 변화될 줄로 굳게 믿고 계속 기도했다. 그런데 그 상사는 전혀 변화되지 않았다. 그 대신에 놀라운 것은, 자신의 마음속에 변화가 일어났다. 그렇게 기도하다 보니, 그 상사가 더 이상 밉지 않은 것이다. 신경질을 내고,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는데.. 자기 마음이 평안하고 기쁨이 충만했다. 그래서 더 진실한 마음으로 그 상사를 위해 기도해 주게 되었다. 결국 상사는 이상한 것을 느끼게 되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위대하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 상사도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한다. 나를 핍박하는 사람을 오히려 축복하고, 진심으로 기도해줘야 한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라고’ 하나님이 무대를 만드시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주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 영감의 교훈 •
▶ 억울한 감정을 극복하는 길
“우리는 보복의 정신이나 화를 쏟아냄으로 영혼을 상처 입히기보다는 수백 번 잘못된 대우를 당하는 편이 더 낫다. 하나님께로부터 얻을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분께서 도우실 수 있다. 그분께서 은혜와 하늘의 지혜를 주실 수 있다. 그대가 믿음으로 구하기만 한다면, 그대는 받을 것이다. 그러자면 그대는 깨어 기도해야 한다. 깨어라, 기도하라, 일하라. 이것이 우리의 경구가 되어야 한다”(교회증언 2권, 426).

화요일 1월 18일
 
용서
도입)
어떻게 해서든지, 배우자를 깎아내리고, 자기가 높아지려는 사람이 만약 있다. 예를 들면 어떤 부인은 이렇게 말한다. ‘남편이 3년 동안이나 내 뒤를 졸졸 따라다녀서, 불쌍해서 결혼 해 주었다.’ 이렇게 말한다면, 자기가 높아지는 것인가? 오히려 자기를 낮추는 말이다. 아내는.. 남편을 높이고 칭찬해 줌으로써.. 자기가 높아지는 것이며 반대로 마찬가지다. 사실은 자기를 높이는/낮추는 것이다. 원수 관계도 마찬가지다. 내가 내 원수를 자꾸 험담하고 깎아내리면.. 사실은 자기를 깎아내리는 것이다. 반면에, 그가 내 원수라도, 상대방을 높여주면.. 사실은 나를 높이는 일이 된다. 상대방이 나를 미워한다고.. 내가 같이 그를 미워하고 상대방이 나를 욕한다고.. 내가 같이 그를 욕하면 상대방이야 어떻든지.. 일단 내가 악/마귀에게 지는 것이다.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대하든지.. 나는 그를 선으로 대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악/마귀에게 승리하는 것이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2).
  
교훈: 용서는 정신건강에 필수적인 요소이며, 관계를 치유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이다.
 
예화 1)
인도의 어느 지방에서 네 사람의 상인이 똑같이 돈을 투자하여 구입한 목화를 창고에 쌓아 두었다. 그런데 그 창고는 쥐가 많아 목화를 상하게 하므로 고양이 한 마리를 사 놓되 고양이 값을 4등분하여 지불하고 각자 고양이 다리 하나씩을 맡기로 했다. 어느 날 고양이가 왼쪽 다리를 다치게 되어 그 다리의 주인이 기름 묻은 붕대를 감아 주었다. 그런데 이 고양이가 난로에 너무 가까이 있다가 붕대에 불이 붙게 되었고, 심하게 뛰어다니다 결국엔 목화더미를 불태우고 말았다. 세 사람의 상인은 붕대를 감은 다리의 주인을 고소하였다. 붕대 감은 다리 때문에 불이 난 것이니 그 다리 주인이 배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재판장은 이렇게 말했다. "붕대를 감은 다리에 불이 붙었을 때 나머지 세 다리가 움직였기 때문에 목화더미로 불이 옮겨 붙은 것이다. 그러니 나머지 세 다리의 주인이 배상해야한다." 유명한 랍비 힐렐은 "네가 그 사람의 환경이나 입장이 될 때까지는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고 했다. 내가 상대의 입장이 되어 생각한다면 우리에게 용서하지 못할 대상은 아무도 없다.
 
예화 2)
1999년 7월 4일 예배를 마치고 교회당을 나가고 있는 26살의 한국인 유학생 윤원준군이 인종우월주의자였던 벤자민 스미스라는 사람이 무차별하게 난사한 총탄에 맞아 쓰러저 숨을 거두었다. 윤원준군은 서든 일리노이 대학을 졸업하고 인디에나에서 대학원 공부를 위해 준비하고 있었던 꿈을 키우고 있던 청년이었다. 희생당한지 여드레가 지난 후 7월 12일 오후 7시 미국 전 지역에 추모예배광경이 방영되고 있었다. 예배의 마지막시간에 희생당한 윤원준 군의 사촌형인 박성호 목사님이 나와서 가족을 대표해서 인사를 하는 순간, 그의 인사말 때문에 전 미국인들이 전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오늘 가족을 대표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 형제를 죽인 벤자민 스미스를 용서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오늘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 사랑하는 형제의 꿈을 빼앗아가고 피를 흘리게 한 이 미국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용서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용서를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족은 그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에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 사람과 그 가족들을 용서해 보자.
 
교훈)
성경은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말씀하고 있다. 용서에는 한계가 없으며 용서해 주는 일은 권리가 아니라 의무요 책임임을 선언하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도 인간들이 자신의 죄에 대하여 깨닫기도 전에 이미 용서를 선포해 놓으셨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용서는 용서를 빌러 오기 전에 이미 선포 되어야 한다. 나에게 잘못한 사람에 대하여 사과하면 용서하겠다가 아니라 사과하러 오기도 전에 용서해 주고 잊어버리는 것이 성서적인 용서관이다. 그러나 용서가 용서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 용서의 선포가 그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용서받아야 하는 자의 책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죄악에 대한 솔직하고도 적나라한 인정이다. 용서하기도 쉬운일은 결코 아니지만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시인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인과 인정, 즉 회개가 없이는 용서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2차대전 중에 처형당한 독일의 본회퍼 복사는 제자의 길에서 용서의 은혜에 대하여 이러한 관계를 잘 설명하였다. 회개함이 없는 용서는 값싼 싸구려 은혜라고. 성경에서 인간을 향해 용서를, 죄사함을 선언하였으면서도, 그 댓가로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기까지 하였으면서도, 회개를 강조하는 것은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의 가치가 회개함을 통해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용서는 차별 없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귀중한 은혜이며 큰 기쁨이다. 그러나 이 은혜와 기쁨을 맛보는 사람은 자신의 잘못과 죄악을 용감하게 신인하고 또한 그것을 정녕 가슴아파하는 사람이다. 우선적으로 선언되는 용서, 그리고 그것을 회개함으로 받아들이는 단계에서 모든 고통과 상처가 치유되리라고 믿는다.
 
• 영감의 교훈 •
 
▶ 용서의 대상
“우리는 우리에게 해를 끼친 자들이 잘못을 고백하지 않는 한 그들을 용서해 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물론 회개와 고백으로 마음을 겸손하게 하는 것이 그들의 도리이긴 하나, 우리는 우리에게 잘못을 범한 자들이 그 실수를 고백하든 하지 않든 그들에 대하여 긍휼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산상보훈, 113).
 
수요일 1월 19일
너희 죄를 서로 고하라
 
도입)
캔 가이어는 이렇게 말했다. “분노로 언성을 높였을 때, 우리는 평화를 한 조각 훔친 것이다. 거짓말을 했을 때, 우리는 진리를 한 조각 훔친 것이다. 분란을 일으켰을 때, 우리는 공동체의 연합을 한 조각 훔친 것이다. 강요했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자유를 한 조각 훔친 것이다. 비아냥거렸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존엄성을 한 조각 훔친 것이다. 대통령을 비난했을 때, 우리는 그 사람에게서 뿐 아니라 그 직분의 존엄성에서도 뭔가를 훔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도둑이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역시 똑같이 하나님의 법정에서 판단 받을 죄인인 것이다. 교회에 다니는 네 명의 친구가 성경공부를 했다. 성경공부도중 “너희 죄를 서로 고하라”(약5:16)라는 성경구절에서 은혜를 받았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허물과 죄를 서로 고백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첫 번째 친구가 먼저 고백했다. “나는 안식일을 자주 지키지 못했다.” 두 번째 친구는 이성관계의 잘못을 참회했다. 세 번째 친구는 도벽(盜癖)의 습관을 아직 고치지 못했음을 사실대로 숨김없이 말했다. 이제 네 번째 친구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네 번째 친구는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이 “너도 어서 죄를 고백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네 번째 친구는 말하기가 곤란하다고 했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이 우리는 다 말했는데 너만 말하지 않으면 어떡하느냐고 채근했다. 그러자 네 번째 친구가 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나의 약점은 남들의 흉이나 결점을 알게 되면 사람들 앞에 불고 다니는 것이다.” 이것은 남을 판단하는 인간의 속성 중의 하나이다. 자신의 내면적인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의 외면적인 죄를 판단하고 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들 역시 하나님의 판단 앞에 서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약 5:16).
 
부가적용)
캔 가이어는 ‘마돈나의 인터뷰’를 보고 그의 책에서 이렇게 썼다. 『마돈나를 생각해 본다. 마돈나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가수, 대중의 우상, MTV의 악동, 누구나 그녀를 안다. 숀 펜의 전(前) 부인, 데니스 로드맨의 타고난 말괄량이 애인, 데이비드 레터맨의 상스러운 초대 손님. 누구나 안다. 영화스타, 섹 스에 관련된 책을 쓴 사람, 자기 트레이너를 꼬드겨 그와의 관계로 아기를 임신한 사람. 마돈나라면 누구나 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나는 안다고 생각했다. 한 텔레비전 인터뷰를 보기 전까지는...인터뷰하는 사람도 마돈나에게 으레 하는 상투적인 질문을 던졌고, 마돈나 역시 으레 그렇듯 상투적으로 답했다. 두 사람은 그렇게 거기 앉아 계속 말을 주고받다가 한 순간 인터뷰하는 사람이 다음 질문의 서두를 이렇게 꺼냈다. “당신은 정말 모든 것을 다 가진 여자입니다. 가수에 배우에 책까지 썼지요. 돈에 명예에 미국 대중문화에서 차지하는 위상까지 갖추지 않았습니까? 표지 모델이라면 거의 안 해 본 잡지가 없고요. 세계적인 인물정도가 아니라 세계적인 힘이라고나 할까요.” 그 동안 마돈나는 다 맞다는 듯 고개를 약간씩 끄덕이고 앉아 있었다. 다음 질문이 나올 때까지... “이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서라도 혹시 얻고 싶은 것이 있습니까?” 갑자기 마돈나의 얼굴이 굳어졌다.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입술이 떨렸다. 숨을 한 번 들이쉰 후 대답했다. “엄마가 있었으면...” 나는 마돈나가 어려서 어머니를 잃은 것을 몰랐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깊은 상처가 되었는지도 몰랐다. 그 눈물을 통해 이해가 갔다. 마돈나가 아기를 가진 것은 조그만 여자아이에게 엄마가 되어 주고 싶어서였다. 자기에게는 없었던 엄마가...내면의 상처를 본 덕분에 마돈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기도해주게 되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그녀의 아기가 마돈나를 어떻게 변화시켜줄지 희망과 기대의 마음으로 지켜보게 되었다.』 우리도 마돈나의 내면의 상처를 보지 못했다면 그녀의 외면의 행동을 보고 판단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사람들의 내면의 상처를 보셨다. 우물가의 여인, 일곱 귀신들린 여자, 간음하다 붙잡혀온 여인, 왕따 당하는 삭개오. 그러므로 우리도 외면이 아니라 내면의 상처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무엇을 기준으로 사람들을 판단했는지 성찰해 보아야 한다. 니느웨의 이삭은 이런 말을 했다. “자기 죄를 보는 사람은 천사를 볼 수 있는 자보다 위대하다. 자기 죄를 아는 사람은 죽은 자를 일으키는 자보다 위대하다. 자기 죄를 위해 통곡하는 사람은 온 세상을 가르치는 자보다 위대하다.” 타인의 외면적인 죄를 거울삼아 내 자신의 내면적인 죄를 볼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진정 복 있는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회개만이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타인의 외적인 죄를 볼 때 그를 반면교사로 삼아, 내 속의 내적인 죄를 하나님 앞에 고해성사(告解聖事)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그분의 친절하심과 용납하심과 오래 참으심으로 커튼 뒤에 숨겨진 내 자신의 실상을 깨닫고 회개할 때까지 우리의 마음의 문 앞에서 기다리고 서계실 것이다.
 
목요일 1월 20일
서로 세우라
 
도입) 페이지 터너(page turner)
최고의 선수와 최고의 스포츠 팀에는 코치가 있다. 스포츠 세계에서 코치없이 실력을 발휘하는 선수는 없다. 가장 뛰어난 골퍼 타이거 우즈,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 피겨 여왕 김연아, 최고의 실력을 가진 그들에게도 코치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숙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음악회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람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았을 것이다. 이 사람을 ‘페이지 터너’(page turner)라고 한다. 악보는 넘겨주는 사람이다. 호르비츠(Vladimir Horowitz)가 ‘악보를 넘기는 사람이 연주 전체를 망칠 수 있다.’고 한 것처럼, 연주회에서 아주 중요한 사람 중에 하나가 페이지 터너다. 그런데 이 페이지 터너에게는 반드시 지켜야 할 점이 있다고 한다. 화려한 옷을 입거나 악세사리를 해서도 안되고, 연주자를 건드려서도 안되고, 악보를 넘길 때 소리를 내서도 안되고, 또한 악보를 너무 빨리 넘기거나 너무 늦게 넘겨서도 안된다. 항상 연주자 다음에 등단해야 하고, 연주자가 청중으로부터 박수를 받을 때도 앉아서 연주자를 쳐다보아야만 한다. 「페이지 터너」란 영화가 있는데, 이 영화의 감독 드니 데르쿠르는 ‘페이지 터너의 역할을 일종의 자기소멸’이라고 하였다. 무대 위의 또 다른 연주자로, 드러나지 않지만 꼭 있어야만 하는 사람이 페이지 터너다.
 
교훈)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세력이 존재한다. 하나는 세우는 세력이요 또 다른 하나는 무너뜨리는 세력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위해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영원히 행복하게 살도록 하셨다. 그러나 사탄은 그 인간을 유혹하여 범죄케 하므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만들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속성과 사탄의 속성의 차이점을 보게 된다. 즉, 하나님은 세우시는 분이시고 사탄은 파괴하는 세력인 것이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 4:29).
교훈: 서로를 위하고 세우는 마음이야말로 서로를 구원하는 지름길이다.
 
부가적용)
우리의 날마다의 기도는 ‘내 주변 모든 사람들이 나보다 잘되게 해주십시오.’라는 기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주변이 좋아야 나도 좋고, 주변이 잘되어야 나도 잘되기 때문이다. 논어(論語)에, ‘어진 사람은 자기가 서고자 하면 남도 서게 하며, 자기가 달성코자 하면 남도 달성케 해준다.’(夫仁者,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는 말이 있다. 어진 사람은 소위 ‘윈윈(win-win)의 삶’(상생의 삶)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신자의 삶도 더불어 잘되는 삶이어야 한다. 남을 잘 되게 하고, 성공하도록 만들어 주는 사람이 성숙한 신자다. 이렇게 남을 잘되게 하는 사람은 결국 자기도 잘된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 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 지리라.”(잠11:24~25). 이것이 형통의 비결이다. 그러므로 더불어 잘되는 형통한 삶의 첫 걸음이 되는 사랑과 행복 비타민 ‘B’는 서로 ‘세워 줌’(Build up)이다.
 
금요일 1월 21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엡 4:25~32을 읽고 마음에 와 닿는 말씀에 밑줄을 쳐 보라. 그리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는 모든 방법들을 묵상해 보라. 다음 글은 엘렌 G. 화잇이 한 복음전도자에게 보내는 편지의 일부분이다.
“나는 이 기별을 주님께로부터 받아 그대에게 전한다. 먼저 말을 온순하게 하고 행동을 고상하게 하라. 그대는 너무 엄격하여 전제적이며 말도 과격한 편이다. …과격한 말은 주님을 슬프게 하며, 분별없는 말은 해를 끼친다. 나는 그대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할 수 있는 대로 말을 부드럽게 하며, 그대의 언어에 깊이 주의하여 말에나 행동에 과격함이 나타나지 않도록 하라. …그대가 매일 예수님을 쳐다보고 예수님의 모본을 배우는 생애를 하면, 조화되는 건전한 품성을 나타내게 될 것이다. 항상 온유한 말을 하고, 남을 비난하고 꾸짖는 말은 입 밖에 내지 말라. 크신 교사 예수님을 본받으라. 친절과 동정의 말은 양약과 같아서, 절망 가운데서 신음하는 영혼을 치유해 준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이를 실행하는 것은 아픔을 진정시키고 치유하는 힘을 갖게 한다. 과격한 말은 자신이나 어떤 누구에게도 유익을 주지 못한다”(복음교역자, 163~164).

댓글목록

임윤자님의 댓글

임윤자 작성일

처음엔 예화가 많고 길어서 대충 읽었는데 지난주부터 자세히 읽었습니다.
주제에 맞는 예화를 선택해서 이곳에 올려주시는 일은 많은 시간과 열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안교 시간에 반생들의 입을 여는 일이 저에겐 고민이었는데 큰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름다운향기님의 댓글

아름다운향기 작성일

좋은 은혜의 말씀 많이주셔서 늘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시고 복많이 받으세요.

문성철님의 댓글

문성철 작성일

좋은 예화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교교과 처럼 일주일 더 빨리 올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조춘호님의 댓글

조춘호 작성일

댓글 다신 위의 세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문성철님의  말씀대로 좀 일찍 올리려 노력하겠습니다.

조영미님의 댓글

조영미 작성일

하나 하나 읽어 보며 많은 감동을  받습니다~  감사합니다~~~

신진기님의 댓글

신진기 작성일

오늘 예화 말씀들은 모두 은혜충만 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들을 보고 은혜받고
변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박정님의 댓글

박정 작성일

하나 하나 읽을 때마다 행복을 느낍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저도 이런 도움을 드려야 할텐데요.^^

홍성매님의 댓글

홍성매 작성일

감사합니다.

광보기님의 댓글

광보기 작성일

적절한예화와 교훈들 귀에 쏙들어오네요  좋은 자료로 쓰고있으며 저희 교과반원들도 저와더불어 감동받습니다 감사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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