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13. 맺음말 : 예수님과 말씀을 아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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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광진 작성일24-12-20 14:12 조회82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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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안교소그룹의 TMI나눔 : 1. 안으로-안교소그룹이 서로를 돌보고 연합하기 위한 나눔(인사, 환영, 출석, 공부 확인, 결석자 확인, 방문 계획)
2. 위로-교과와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시간(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함)
3. 밖으로-지역사회를 섬기기 위한 나눔(실천한 TMI, 실천할 TMI, 기도)
*시간에 제약을 받는다면, 한 주에는 이 주제를, 다른 주에는 다른 주제를 나누는 식으로 진행해보자.
▣연구 범위 ∥ 요 21; 요 11:9, 10; 요 8:42-44; 요 4:46-54; 딤후 2. 3:16; 요 15:1-11
▣기억절 ∥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요 5:39).
▣핵심 ∥
*핵심어 : 아는 것, 말씀
▣도입 질문 : 내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 중 특별한 사람이 있다면?
⇒
▣요일별 고찰
일. <갈릴리에서의 재회> 요 21:1~19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겸비에 대한 어떤 중요한 진리가 나타나 있는가?
⇒자신보다 예수님께 초점을 맞출 때 회복됨
베드로는 모두가 주님을 버려도 자기는 죽는 데까지 따라갈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지만,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한 철면피였다. 그런 이유로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도 베드로는 감히 자신을 내세울 수 없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그를 다시 회복시켜주시고자 하셨다. 주님은 그에게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셨다. 이 사랑은 헬라어로 아가파오로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의미했다. 즉, 예전처럼 그렇게 나를 절대적으로 사랑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러나 베드로는 필레오라는 헬라어를 사용하여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했다. 필레오는 감정적이고 우정어린 사랑으로, 베드로의 대답은 그가 절대적이진 못하지만 인간적으로는 주님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주님은 두 번째도 아가파오하느냐 물으셨고, 베드로는 역시 필레오한다고 답했다. 그러자 주님은 세 번째에는 베드로처럼 필레오하느냐 물으셨고, 베드로는 여전히 필레오한다고 고백했다. 주님은 베드로가 대답할 때마다 내 양을 먹이라고 하심으로 그로 하여금 주님의 양떼들인 교회를 섬기는 사도로서의 직분을 감당할 것을 주문하셨다. 이는 베드로가 한 때 자신만만함으로 주님 보다 자신을 내세웠던 데 반해, 이제는 겸손해져서 주님께 초점을 맞추며 주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변화되었음을 공개적으로 보여주시고 그의 사도로서의 직분이 회복되었음을 공표해주신 것이다.
믿음이 강한 사람이라도 넘어질 수 있다. 그러나 주님께 시선을 맞출 때 다시 회복시켜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주님은 우리가 강할 때 보다 약할 때에 제대로 쓰실 수 있으시다.
월. <오직 예수를 바라보라> 요 21:20~25에서 주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말씀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다른 사람 신경 끄고 너나 잘해.
예수님은 베드로가 장차 순교를 당하게 될것이라고 하셨다. 그러자 베드로는 늘 자기와 같이 주님을 가장 가까이 따르던 요한의 운명이 궁금해졌다. 아마 요한도 자기처럼 순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님은 그가 어떻게 되든 상관 말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 남 일에 간섭하거나 신경쓰지 말고 주님만 바라보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것이다. 신앙은 다른 사람을 바라보지 않고 주님과 나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보면 넘어지지만 예수님만 바라보면 안전하다.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 “베드로 같은 사람이 오늘날 얼마나 많은가! 그들은 다른 사람 일에 관심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의무를 몹시 알고 싶어 하면서 자기 의무를 게을리할 위험에 빠져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생애의 잘못과 그들의 품성의 결점들을 보게 된다. 인간은 결점에 싸여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완전을 찾을 수 있다.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써 우리는 변화하게 된다”(시대의 소망, 816).」
화. <빛과 어둠> 요 1:4~10, 18, 3:19~21, 5:35, 8:12, 9:5, 11:9~10, 12:35의 빛과 어두움의 대조는 진리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빛을 통해 진리를 깨달음
인간은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단절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여 깊은 어둠에 처하였다. 죄인들은 스스로 하나님을 찾을 수 없고 진리를 발견할 수 없으며 어둠에서 나올 수 없었다. 이에 예수님이 빛으로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하나님에 대해 볼 수 있게 해주셨다. 그러나 여전히 마귀의 정신을 가진 자들은 죄로 타락한 오염된 관점(자기중심적, 육신적 생각 등)에서만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결코 진리에 이를 수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아버지 하나님을 “나타내셨”다(요 1:18). 요한복음 1:18에 사용된 헬라어 동사 엑세게오마이(exēgeomai)는 ‘뜻을 풀어 이해할 수 있게 해석하다, 설명하다, 논지를 밝히다’라는 뜻이다. 요한은 예수님을 하늘의 사자, 즉 하나님을 아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려주시는 분으로 소개한다.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참으로 알 수 있다.」
수. <위로부터의 신학인가 아래로부터의 신학인가> 요 4:46~54에서 왕의 신하의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조건적 신앙
그가 거의 죽게 된 아들의 병을 고쳐달라고 하자, 예수님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고 안타까움을 나타내셨다. 이는 그가 아들을 살려주면 믿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을 아래로부터의 신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사람의 생각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다. 이런 태도로는 아무리 많은 이적과 능력을 볼지라도 참된 믿음도 진리도 찾을 수 없다. 반면, 위로부터의 신학은 먼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신뢰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표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말씀 안에 거함으로 진리를 알게 된다(요 8:31~32, 7:17).
*정로의 계단 105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의 믿음의 기초가 될만한 충분한 증거도 주시지 아니하고 우리에게 믿으라고 요구하시지 않는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의혹될만한 점을 없이하여 버리시지 않으셨다. 우리의 믿음은 증거 위에 세울 것이요 실증 위에 세울 것이 아니다. 의심하고자 하는 자들은 그리할 조건이 있을 것이나 참으로 진리를 알고자 갈망하는 자들은 저희의 믿음을 세울만한 증거를 많이 찾게 될 것이다.
목. <예수 안에 거함> 요 12:32, 15:1~11은 영적 생명의 비결은 무엇인가?
⇒말씀으로 예수님과 연결된 삶
예수님은 말씀, 생명의 떡, 세상의 빛, 양의 문, 선한 목자, 부활과 생명, 길, 진리, 생명, 참 포도나무이시다. 우리가 그분의 뜻을 행하고자 하여 말씀을 볼 때 우리는 예수께로 이끌리며 그분께로부터 생명을 받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아래로부터의 신학은 예수님 보다 인간의 관점을 우선하며, 사람의 생각으로 거짓 예배를 강요할 때 그 것에 복종할 수 밖에 없게 될 것이다.
우리가 끝까지 믿음과 진리 안에 남아있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 곧 그분의 뜻 아래에 자신을 굴복시켜야 한다.
▣적용 :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지금 나에게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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