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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과 영광의 때: 십자가와 부활(질문, 대답, 설명) 12/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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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4-12-13 06:11 조회1,7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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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과 영광의 때: 십자가와 부활

(12월 21일 안식일 / 일몰: 오후 5시 17분)

  

연구 범위: 요 18:33-19:5; 요 19:17-22; 요 19:25-27; 눅 2:34, 35; 요 20:1-18; 고전 15:12-20

 

기억절: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요 18:37).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요한복음의 절정이다. 처음 10장이 약 3년 반의 이야기를 다루는 데 비해 11장부터 20장은 약 1-2주 동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네 복음서는 예수의 죽음을 각각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려낸다. 그들의 기록은 서로 잘 들어맞지만 각 저자는 자신의 복음서의 주제와 관련 있는 핵심을 강조한다. 마태는 말씀의 성취를, 마가는 예수님의 침례와 십자가의 평행을, 누가는 옆의 십자가에 달린 강도의 이야기를 통해 치유와 구원에 초점을 맞춘다. 

요한복음은 십자가를 예수님의 즉위로서 제시하는데, 이것은 책 전체에서 여러 번 언급되는(요 7:30, 요 8:20, 요 12:27) “그의 때” 개념과 연결되어 있다. 십자가형은 로마인들이 사용했던 가장 불명예스럽고 수치스러운 죽음의 방식이었기 때문에 십자가에 즉위의 개념을 연결하는 것은 엄청난 역설이다. 이러한 대조는 예수는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하지만, 그것이야말로 그분이 구세주로 즉위하는 영광스러운 모습이라는 것을 요한이 역설적으로 그리는 것이다. 

 

*학습 목표

깨닫기: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하심은 그의 때가 이르는 요한복음의 절정이다. 

느끼기: ‘다 이루었다’는 십자가에서의 외치심은 온 세계를 위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것이다. 

행하기: 예수님의 말씀은 이루어질 것이기에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맡겨주신 일에 충성한다. 

 

TMI 위로

2. 진리가 요한복음의 중요한 주제인 것은 어떤 말씀들을 통해 알 수 있습니까?(요 14:6)

*답: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말씀.

3. 빌라도가 이 사람을 보라고 말한 것은 무엇을 생각하게 합니까?(요 19:5)

*답: 침례 요한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한 사실.

4. 예수께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것은 무엇을 이루셨음을 말하신 것입니까?(요 19:30)

*답: 이 세상에 하실 모든 일을 다 이루신 것을 뜻한다.

5. 일요일 아침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제자들은 무엇을 발견하였습니까?(요 20:7) 

*답: 개켜진 수의와 머리를 싼 수건.

6. 큰 상실감으로 슬퍼하는 마리아를 예수님은 어떻게 대하셨습니까?(요 20:16)

*답: 친근하게 대하시고 사명도 주셨다.

7. 예수님의 ‘다 이루었다’는 외침은 이 땅과 모든 세계에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답: 온 우주가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확인하였고 구원 사업이 성취된 것을 알게 했다.

 

결론: 예수님은 가장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하셨지만 요한은 그것이 구주의 영광이라고 말한다. 요한은 십자가를 예수님의 즉위로서 제시한다. 빌라도는 진리를 알 기회를 놓쳤지만 ‘유대인의 왕’이라는 명패를 기록하여 그분의 즉위를 무의식적으로 증거한다. 예수님은 성경 말씀을 성취하시고 아버지가 맡기신 일을 다 이루셨다. 그분의 빈 무덤과 개어진 천은 예수님이 부활하셨음을 증거한다.

 

12월 15일(일) 진리가 무엇이냐

 

요한복음 18:28-32은 예수님 재판의 구체적인 부분은 묘사하지 않는다. 초점은 본디오 빌라도 앞에 끌려온 예수님께 맞춰져 있다.

 

요한복음 18:33-38을 읽어 보라. 빌라도와 예수님은 어떤 대화를 했는가?

[요18:33~38]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 35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37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38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답: 예수님의 신분, 즉 왕에 관한 대화와 진리에 관한 대화를 했다.

 

총독은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요 18:33)라고 묻는다. 총독의 질문에서 이 칭호가 처음 언급되었지만, 그것이 마지막은 아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그가 스스로 묻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반복한 것인지 물으신다. 그분의 질문은 총독에게 자신이 심문하고 있는 대상이 누구인지를 이해하는지 되물으심으로 상황을 뒤집으셨다. 독자들은 이미 예수께서 왕이심을 알고 있다. 총독도 그럴 것인가?

빌라도는 질문으로 대답한다.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요 18:35). 이 질문은 예수님의 질문이 자신의 턱밑까지 온 것이 거슬려서 회피하듯 던진 것이다. 그것은 편견으로 총독의 인식을 가로막아 진리에서 멀어지게 하는 첫걸음이었다. 

예수님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대답하신다(요 18:36). 그러자 빌라도는 예수가 스스로 왕이라고 주장하셨다고 추론한다(요 18:37). 이에 예수께서는 당신은 진리를 증거하기 위해 오셨으며, “진리에 속한” 모든 사람은 그 음성을 듣는다고 설명해 주신다(요 18:37). 

그러자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묻는다(요 18:38). 그러나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다. 대신에 그는 군중들로부터 예수를 구하려고 시도하기 위해 밖으로 나간다.

진리는 요한복음의 주제이다. 영원한 말씀(logos, 요 1:1-5)이신 예수님은 빛이시며 진리이시다. 이것은 어둠과 오류와 대조되는 것이다. 

그분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이시며(요 1:14), 은혜와 진리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왔고(요 1:17), 침례 요한은 진리에 대해 증거했다(요 5:33). 예수님은 자신의 아버지가 "참되시"다고 확언하셨고(요 7:28), 예수님 자신도 아버지로부터 진리를 들으셨다(요 8:40).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요 14:6)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다(요 17:17). 진리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졌음에도 불구하고 빌라도는 편견과 자신의 이전에 내렸던 결정, 가해지는 압박감 때문에 진리를 알 기회를 놓쳤다.

 

<교훈> 주님은 진리를 증거하러 오셨으며 “진리에 속한” 사람은 그 음성을 듣는다고 하셨다. 빌라도는 진리 가까이 갔음에도 편견, 압박, 이해 때문에 기회를 놓쳤다. 

 

<부가설명> 예수께서 말씀하신 진리는 지식이 아니다. 소위 학문이 추구하는 그런 진리가 아니다. 진리의 일반적인 사전의 정의는 철학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승인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법칙이나 사실.” 논리학 “논리의 법칙에 일치한 지식.”이라고 했다. 이런 정의는 성경이 계시한 진리를 설명하는데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진리를 예수님 자신이다. 이것은 진리가 지식이나 법칙이 아니라 예수님이라는 인격인 것을 계시한다. 빌라도는 진리 앞에서 진리를 만나지 못했다. 그의 지위와 권력에 몰두헸기 때문이다. 지금도 자기의 위치나. 권력이나, 지식을 앞세우면 성경의 진리를 만나지 못한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서 성경 말씀이 그의 사상과 생활이 되면 그는 진리의 사람으로 생활하는 것이다. 진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인격화하게 된다. 교회가 진리의 화신이 된다면 세상은 주님의 재림을 맞을 준비가 속히 되지 않을까?

 

12월 16일(월) 이 사람을 보라

   

요한복음 18:38-19:5을 읽어 보라. 빌라도는 사람들이 예수의 석방을 요구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어떻게 했는가?

[요18:38~19:5]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39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40 그들이 또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였더라/ 19:1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2 군인들이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3 앞에 가서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으로 때리더라 4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 5 이에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답: 그에게 아무 죄도 찾지 못했다고 말하고, 유월절 전례를 따라서 예수를 놓아주려는 시도를 했다. 

 

빌라도는 진리에 관한 예수님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대신 그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예수를 풀어주는 대신 그들과 대화함으로써 빌라도는 스스로 불리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종교 지도자들은 군중을 통해 총독을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빌라도는 유월절에 죄수를 풀어주는 관습을 언급하며 백성들이 "유대인의 왕"을 풀어주기를 원하는지 묻는다. 놀랍도록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은 무고한 예수 대신 강도 바라바를 석방해 달라고 요구한다.

이제 예수님에 대한 조롱과 모욕이 시작된다.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께 가시관을 엮고 자색 옷을 입힌 후 계속해서 유대인의 왕이라며 경배한다. 그들의 경배는 황제를 대하는 방식과 유사하지만, 경의가 아닌 조롱일 뿐이었다. 

빌라도는 사람들의 동정심에 호소해 예수를 석방할 방법을 찾는 것 같다. 그는 가시 면류관과 자색 옷을 입은 예수를 끌어낸다. 빌라도는 백성들 앞에 왕의 복장을 입히우고 조롱당하는 예수를 세우고는 "이 사람을 보라"(요 19:5, 흠정역)라고 외친다. 요한이 별다른 해석을 하지 않았지만 빌라도의 말은 독자들에게 침례 요한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라고 한 말을 생각하게 한다. 이교도 총독이 이스라엘 앞에서 왕의 복장을 한 메시아를 소개하는 역설을 보라. 

그러나 폭도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다며 십자가에 못 박을 것을 요구한다(요 19:6-16). 예수를 석방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던 빌라도는 이 말에 경악한다. 그러나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를 석방하는 것은 가이사에게 반역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예수의 운명을 결정짓게 한다. 

그들은 빌라도가 가이사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반역 혐의가 있는 사람을 석방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지도자들은 자신들에게는 가이사 외에는 왕이 없다고 말한다. 

이는 예수에 대한 그들의 깊은 증오심이 그들의 민족적 열망보다 압도적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예수를 제거하기 위해 국가 자치권에 대한 주장조차 기꺼이 희생했다. 

 

<교훈> 빌라도가 이 사람을 보라 한 것은 침례 요한이 어린양을 보라 한 것을 상기시킨다. 그럼에도 지도자들은 민족적 열망까지 버리면서 그분을 십자가에 못박았다. 

 

<부가설명>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심문받는 장면을 기록하면서 묘한 솜씨로 글을 쓰고 있다. 요한 자신의 글재주인지 성령께서 감동하여 그렇게 쓰도록 했는지 의문이 되지만 아무튼,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되었으니 요한의 글재주라도 성령의 감동으로 이렇게 썼다고 믿는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불렀고, 폭도들은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이라 부르며 왕께 하는 경배를 했다. 저자의 설명대로 이 모든 장면은 예수님이 고난으로 왕위에 앉으시는 것을 나타낸다. 그분이 하늘 은혜의 보좌에 즉위하기 위하여 성소 봉사에서 가르치신 희생의 양으로 속죄를 위한 피를 흘리신 것이다. 그리고 그 피를 가지고 은혜의 보좌에 즉위하셨다. 유대 지도자들은 그들이 하는 짓이 성소로 계시한 속죄의 도리를 성취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예수께서는 미리 말씀하신 대로 구원을 위한 그 길을 고난을 무릅쓰고 걸어가신다. 그들이 조롱하며 외친 그 소리가 예수님이 왕이라는 사실을 오늘날까지 증거하고 있다. 저자의 말대로 표현할 수 없는 역설의 장면이다.

 

12월 17일(화) "다 이루었다“

 

요한복음 19:17-22에서 보듯이 빌라도는 라틴어, 헬라어, 히브리어로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요 19:19)이라고 명패에 기록했다. 종교 지도자들은 이것을 바꾸라고 말했다. 빌라도는 거절했고 그 기록은 예수에 대한 진실을 증언하는 침묵의 증언이자 그분께서 십자가에서 왕으로 즉위하셨다는 표식(표지=標識)으로 남았다. 진실로 그들의 왕이며 유대인의 왕이신 예수께서 한낱 범죄자처럼 십자가에 달리셨다. 

"예수님의 머리 위에 패를 붙이도록 한 것은 빌라도나 유대인들보다도 더 높은 권세에 의하여 지시된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생각을 일깨우고 성경 말씀을 연구하도록 할 것이었다"(시대의 소망, 745).

 

요한복음 19:25-27을 읽어 보라.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어머니에 관한 어떤 감동적인 일이 일어났는가?

[요19:25~27]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26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답: 요한에게 어머니를 모시도록 부탁하셨다.

 

그날 십자가 밑에 서 있던 사람 중에는 사랑하는 제자 요한과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오래전에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기 위해 데려왔을 때 시므온은 바로 이 경험을 예언했다(눅 2:34, 35). 이제 죽음이 임박한 순간에 예수님은 어머니에게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요한에게는 "보라 네 어머니라"(요 19:26, 27)라고 말씀하신다(요 19:26, 27).

 

요한복음 19:28-30을 읽어 보라. 예수님께서 돌아가시면서 하신 "다 이루었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가?

[요19:28~30]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29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답: 아버지 하나님이 세상에서 하라고 하신 모든 것을 다 하셨다는 의미다.

 

요한복음 19:30의 “다 이루었다”에는 헬라어 동사 텔레오(teleō, 끝내다, 완성하다, 완수하다)가 사용되었고 28절에는 관련 단어인 텔레이오오(teleioō, 완료하다, 완전하게 하다)가 성경의 성취와 관련하여(“성경을 응하게 하려”) 사용되었다. 아무리 끔찍한 장면이라 할지라도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성취되고, 완결되었다.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실 때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주신 일을 완결하고, 성취하신 것이다. 

 

<교훈> 빌라도는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고 그분에 대한 진실을 기록했다. 예수님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성취하시고 아버지께서 맡기신 일을 다 이루셨다. 

 

<부가설명>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겪으신 고난과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그분이 은혜의 왕으로 즉위하시는 것을 잘 나타내는 것이 십자가 위에 써 붙인 죄패의 글이다.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고 높이 달았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일뿐 아니라 우주의 왕이시다. 

 

12월 18일(수) 빈 무덤

 

요한복음 20:1-7을 읽어 보라. 이 구절에 기록된 내용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요20:1~7]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2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3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4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5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6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7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

*답: 예수님의 부활한 사실을 구체적으로 증명하는 내용이다.

 

예수님은 금요일 늦은 오후에 돌아가시고 일요일에 일찍 부활하셨다. 그분을 장사하던 때가 안식일이 가까웠기 때문에(요 19:42) 장례 절차는 서둘러 진행되었고 완전하게 마무리되지 않았다. 예수님을 매우 사랑하였지만 제자들은 안식일을 지키며 무덤에 가지 않았다(막 16:1, 눅 23:56). 안식일이 지나고 일요일 아침에 여인 몇 명이 향품을 사서 무덤에 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돌이 굴려져 있었고 무덤은 비어 있었다.

일찍 무덤에 온 사람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본 것을 말하기 위해 베드로와 요한에게 달려갔다. 두 제자는 그곳으로 달려갔다. 요한이 베드로보다 먼저 도착했고 허리를 굽혀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예수님을 감쌌던 세마포가 보였다. 그러나 그는 무덤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베드로는 안으로 들어가서 세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예수님의 머리를 쌌던 천도 보았지만, 나머지 천들과 함께 있지 않았고 그것은 개어져서 따로 놓여 있었다.

 

요한복음 20:8-10을 읽어 보라. 얼굴을 덮었던 천이 개어져 있었던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요20:8~10](7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 8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9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10 이에 두 제자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니라.

*답: 수건을 접어놓으신 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친히 정돈하신 것을 증명한다. 요한은 그것을 보고 부활을 확신했다.

 

베드로가 무덤에 들어간 후에야, 요한도 무덤에 들어갔는데 요한복음 20:8은 그가 들어가서 보고, 믿었다고 말하고 있다. 왜 요한은 무덤에 놓여 있는 수의와 따로 접혀서 놓여 있는 머리를 덮었던 천을 보고서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고 믿었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먼저 무덤이 왜 비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가장 일반적인 대답은 도굴꾼들이 다녀간 것이다. 그러나 이 설명은 세 가지 이유로 부적절하다. 첫째, 마태복음은 무덤을 굳게 지키고 있었다고 말하므로(마 27:62-66) 도굴이 있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둘째, 도굴범은 일반적으로 썩어가는 시체가 아니라 귀중품을 훔친다. 셋째, 도굴꾼은 급하게 서두르기에 수의를 접지 않는다. 따라서 요한은 머리를 쌌던 천이 접힌 것을 보고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고 믿을 수 있었다. 

 

<교훈> 일요일 아침에 무덤을 찾은 사람들은 그분의 무덤이 열려 있고, 비어 있는 것을 보았다. 베드로, 요한은 천이 개어진 것을 보고 그분이 부활하신 것으로 믿었다. 

 

<부가설명> 인류의 구원은 예수님의 부활로 이루어진다. 그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으로 끝나면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외치실 때 구원이 완성됐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계시하지 않았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것은 자신이 죄가 되어(고후5:21, 소망755) 사망을 처리하시는 그 일을(히2:14) 다 이루셨다고 외친 것이다. 그것을 끝이 나면 예수께서 사망을 온전히 처리하지 못했다. 자신이 사망이 되어 다시는 생명으로 존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고전15:17,18)라고 분명히 계시하였다.예수께서 부활하지 못했으면 그도 사망에게 삼킨바 된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사망을 정복한 생명이신 것을 증명하신 것이다. 그래서 부활은 우리가 그분을 믿을 증거를 주신 것이라고 계시하였다(행17:31).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 때문에 예수님을 믿을 때 생명의 부활을 할 수 있다(요5:29). 그때 우리는 사망에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외칠 수 있고(고전15:55) 사망이 생명에게 삼킨바 된 것을 이루게 된다(고후5:4). 예수님의 부활과 부활하신 예수님이 성경 신앙의 핵심이다.

 

12월 19일(목) 예수님과 마리아

 

요한복음 20:11-13을 읽어 보라. 막달라 마리아가 여전히 빈 무덤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것을 보여주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요20:11~13]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12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13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답: 우는 마리아에게 천사들이 질문 했을 때 사람들이 주님의 시체를 옮겨간 줄 알았다.

 

이 구절 이전에 본문에서 마리아에 대한 마지막 언급은 그녀가 베드로와 요한에게 빈 무덤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다(요 20:2). 제자들은 무덤으로 달려갔고 마리아는 조금 후에 그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베드로와 요한은 무덤을 살펴본 후 그곳을 떠났다. 그러나 마리아는 돌아와서 거기 머물며 울고 있었다. 그녀는 지난 며칠 동안 얼마나 많이 울었던가. 그런데 이제는 빈 무덤이라니? 마리아는 몸을 굽혀 안을 들여다보았다.

놀랍게도 무덤 안에는 흰옷을 입은 두 천사가 예수님의 시신이 있던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그녀에게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라고 물었다(요 20:13). 마리아는 고통스런 목소리로 사람들이 주님을 옮겨갔는데 어디에 두었는지 모른다고 대답했다. 

 

요한복음 20:14-18을 읽어 보라. 무엇이 마리아의 상황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는가?

[요20:14~18]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18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답: 예수께서 친히 마리아에게 나타나 ‘마리아야’라고 그의 이름을 부르시며 자신을 보여주셨다.

 

눈물이 앞을 가린 채 마리아는 돌아섰고 뒤에 서 있는 누군가를 보았다. 낯선 사람은 천사들과 마찬가지로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요 20:15)고 물었다. 그녀는 그가 무덤 관리자라고 생각하며 예수의 시신을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한다.

낯선 사람은 단 한마디를 말했다. "마리아야." 그 한마디는 모든 것을 바꾸어 놓은 한마디였다. 놀란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자신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을 깨닫고 그분을 알아본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아버지께로 올라가야 하기에 그녀에게 자신을 붙들지 말라고 하신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가서 당신이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요 20:17)가신다는 사실을 알리라는 임무를 그녀에게 주신다. 

그녀는 제자들에게 가서 자신이 주님을 보았다고 말했고, 주께서 그녀에게 알려주신 다른 모든 세부사항도 말했다(요 20:18). 마리아는 자신의 사명을 완수했다.

 

<교훈> 마리아는 주님을 잃은 상실감에 무덤까지 비어서 더 낙담하고 있었다. 예수께서 친근하게 마리아라고 부르시고 그녀에게 모든 사실을 말하라고 하셨다. 

 

<부가설명>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15:12~20). 앞 수요일 부가설명에서 이 사실을 설명했다. 빈 무덤과 예수님의 부활은 성경 종교와 신앙의 진실성을 증명한다. 사탄은 파숫군까지 세우며 예수님의 부활이 사기라고 증명하려고 했으나 그것이 오히려 예수님의 부활을 확실히 증명하는 것이 되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은 더울 확실히 증명되었고 우리의 믿음은 더욱 공고한 사실 위에 서게 되었다.

 

12월 20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시대의 소망 79장 "다 이루었다," 81장 "주께서 살아나시고," 82장 "어찌하여 우느냐"를 읽어 보라. 

 

"빌라도는 예수님을 구하고자 애썼다. 그러나 자신의 지위와 명예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는 자기의 세속적 권력을 잃어버리기보다는 차라리 무죄한 생명을 희생시키는 편을 택하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빌라도처럼 손실과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원칙을 희생하고 있는가! 양심과 의무는 바른길을 가리키지만 사리사욕은 다른 길을 가리킨다. 세상의 조류는 강력하게 잘못된 방향으로 치우치고 있고 악과 타협하는 자는 죄악의 짙은 어둠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고 있다"(시대의 소망, 738).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이루려고 오신 일을 완수할 때까지 숨을 거두지 않으시다가 마지막 숨을 내쉬면서 ‘다 이루었다’(요 19:30)고 외치셨다. 싸움은 승리로 끝났다. 하나님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이 그분으로 승리하게 했다. 그분은 정복자로서 당신의 깃발을 영원한 고지 위에 꽂으셨다. 천사들이 기뻐하지 않았겠는가? 온 하늘은 구주의 승리에 개가를 불렀다. 사탄은 패배했다. 그는 자기의 나라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다 이루었다’는 부르짖음은 천사들과 타락하지 않은 세계에 깊은 의미가 있었다. 위대한 구속 사업의 성취는 우리만 아니라 그들을 위해서도 요긴하다. 그들은 우리와 함께 그리스도의 승리의 열매를 나눈다"(시대의 소망, 758).

 

함께하는 토의를 위하여 

2. 예수님은 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셔야만 했는가? 왜 그분이 우리의 대속물이 되셔야 했으며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서 그분의 죽음이 필요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 대답을 뒷받침하는 성경 구절은 무엇인가?

*답: 요1:29, 고후5:21, 딤후1:10, 사망을 폐해야(없애야) 하기 때문이다. 히2:14.

3.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믿음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역사적 증거는 무엇인가?

*답: 빈 무덤과 제자들의 활동 등등.

4. 고린도전서 15:12-20을 묵상해 보라.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자들은 망하였"(고전 15:18)다는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자들"이 즉시 천국에 간다는 생각과는 어떻게 다른가? 바울은 죽은 자들이 재림 때에 부활하기 전까지 잠을 잔다는 진리를 어떻게 확증하고 있는가?  

*답: 만일 불멸하는 영혼이 천국을 간다면 부활이 없어도 믿음이 헛되지 않는다. 주 안에서 죽은 자들도 그 영혼이 천국에 갔지 때문에 망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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