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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과 - 논쟁(論諍)-(요점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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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4-07-15 02:00 조회5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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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과 논쟁(論諍)

(7월 20일 안식일 / 일몰: 오후 7시 50분)


<기억절(記憶節)>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눅 2:27~28).


<제3과: 핵심(核心) & 맥(脈)>

마가복음 2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사역에 관하여 마가는 

①.예수님의 사역은 복음을 통한 사람들의 삶의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②.당시 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종교 지도자(宗敎指導者)들은 예수님의 메시지를 오해(誤解)하고 불신(不信)했다.

③.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이 본격화(本格化)되면서 (막 2장에) 예수님과 바리새인들 사이에서 네 번의 논쟁과 이어서 (마가복음 3:1~6) 절까지에 다섯 번의 논쟁(論諍)이 벌어진다.

◉.매(每) 논쟁(論諍)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어찌하여 이렇게 행하는가?”라고 논쟁(論諍)을 걸어온다.


<논쟁(論諍)의 요지(要旨)>

⑴.죄 사(赦)함에 대한 논쟁~중풍병자를 고치심(막 2:1-12)

⑵.죄인(罪人)과 함께하심에 대한 논쟁~마태를 부르심(막 2:13-17)

⑶.금식 논쟁(禁食論諍). (막 2:18~22)

⑷.안식일(安息日) 논쟁(論諍). (막 2:23~28)

⑸.안식일(安息日)에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심(막 3:1~6)


(07월 14일) (일) <중풍병자(中風病者)를 고치심>

 

(Q)~중풍병자(中風病者)를 고치심 & 죄 사(赦)함에 대한 논쟁에 대한 교훈(敎訓)? (막 2:1-12)


(A)~무엇으로 어떻게 믿음을 볼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셨고 그 믿음은 행동으로 드러난다..

    사랑도 믿음도 행동을 통해서 나타난다.


⑴.종교 지도자(宗敎指導者)들과 구원자(救援者) 예수님의 관점(觀點)에 차이(差異)가 있다.

⑵.종교 지도자(宗敎指導者)들은 “어찌하여 이렇게 행하는가?”라고 논쟁(論諍)을 걸어온다.

⑶.종교 지도자(宗敎指導者)들은 그분의 말씀을 신성모독(神聖冒瀆)하고, 하나님을 모독(冒瀆)하였다고 논쟁(論諍)한다.

⑷.종교 지도자(宗敎指導者)들은 이분법적(二分法的) 논증(論證) 스타일을 사용하여 자신들의 관점에서 반대자(反對者)들을 만난다.

⑸.종교 지도자(宗敎指導者)들은 자기의 견해(見解)를 옹호(擁護)하는 데 집착해서 하나님의 능력(能力)과 권능(權能)을 보지 못하였다.

⑹.예수님께서 죄를 사(赦)하시는 권세(權勢)가 있으시다는 것을 명확(明確)하게 하시기 위(爲)함이다.

⑺.중풍병자의 사건은 믿음이 죄 사(罪赦)함을 받게 하고 그의 병(病)으로부터 그를 구원(救援)했다.

⑻.예수님안에서는 심령(心靈)과 육체(肉體) 모두를 고치는 능력을 인정(認定)해야 한다.

⑼.이야기의 중심(中心)은 중풍병자(中風病者)의 믿음과 죄의 용서(容恕)이다.

⑽.중풍병자(中風病者)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걷게 하실 수 있다면, 죄를 용서(容恕)하시겠다는 그분의 주장은 확증(確證)된다.


(07월 15일(월) <레위를 부르심, 그리고 금식문제(禁食問題)>

 

(Q)~마태를 부르심과 죄인(罪人)과 함께하심 그리고 금식(禁食)에 대한 논쟁(論諍). (막 2:13-17)


(A)~<말씀을 알면서도 그 말씀을 순종(順從)하지 아니하는 자(者)들보다는 차라리 세리(稅吏)와 죄인들이 더 큰 희망이 있다. 자기의 병적 상태(病的狀態)를 깨닫고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요 6:37) 고 말씀하신 크신 의사(醫師)에게 가서 고침을 받으려고 노력하는 자는 소망(所望)이 있다. 우리를 찾아오셔서 손잡아주시고 주님과 잔치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⑴.세관에 있는 마태를 예수님께서 찾아오시어 그를 구원(救援)하신 이야기는 감동적(感動的)이다. 이는 예수님은 죄인(罪人)을 찾아오시기에 우리도 찾아오신 예수 님의 은혜로 구원(救援)의 반열(班列)에 오를 수 있어 오늘을 맞게 된 것이다.

⑵.바리새인들이 “어찌하여 세리(稅吏)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막 2:16)라고 논쟁을 제기했으나, 예수님께서는 “내가 의인(義人)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다.(막 2:17)라고 예수님의 지상사명(地上使命)을 밝히셨다.

⑶.서기관들의 못마땅한 질문에 그 질문에 맞는 대답으로 병(病)든 자와 의사(醫師)의 비유(譬喩)로 죄로 병든 영혼을 치료할 수 있는 분, 영적의사(靈的醫師)라는 이름으로 의사(醫師)는 아픈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함을 말씀하셨다.

⑷.즉 예수님은 병(病)든 자에게 의원(醫員)이 필요한 것처럼 죄인(罪人)에게 은혜(恩惠)가 필요함을 분명히 밝히셨다.

⑸.죄인(罪人)들과 교제(交際)하기 원(願)하시는 예수님의 초월적(超越的)인 사랑이 담긴 뜻깊은 자리였던 것이다.

⑹.죄인(罪人)들과 음식(陰識)을 드신다는 의미(意味)는 예수님께서 그 나라로 죄인들을 부르신다는 말씀과 관련지어 메시아의 죄 사(罪赦)함 인 것이며 또한 식사 자체도 메시아적 잔치를 암시(暗示)하는 것이다.

⑺.제자들이 금식(禁食)하지 아니함에 대하여, 그들은 습관적(習慣的)으로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였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레위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던 바로 그날이 그들의 금식일이었던 것 같다(18절)

⑻.금식(禁食)의 진정(眞正)한 의미(意味)를 상실(喪失)하고 종교적관습(宗敎的慣習)으로 하는 금식에 대한 예수님의 교훈(敎訓)이시다.

⑼.참된 금식과 기도의 정신(精神)은 지성(知性)과 감정(感情)과 의지(意志)를 하나님께 내어 맡기는 것이다. (C D 189)

⑽. 예수님은 예(例)와 비유(譬喩)로 자신의 임재(臨在)를 혼인 잔치에 비교하시며 대답하신다. 예수님은 신랑을 빼앗길 날을 예언하셨는데, 이는 십자가(十字架)를 암시(暗示)하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충분히 금식(禁食)할 수 있을 것이다.


(07월 16일 (화) <안식일(安息日)의 주인(主人)>

 

(Q)~바리새인들이 제기(提起)한 비난(非難)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안식일(安息日)은 사람을 위(爲)한 것이며 안식일(安息日)에 주인은 사람이라는 말씀의 의미(意味)는? (마가복음 2:23~24, 마가복음 3:1~6)


(A)~<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부(聖父) 하나님과 더불어 만물(萬物)을 창조(創造)하신 창조주(創造主)이시며(요 1:2, 3; 골 1:16) 사람의 행복(幸福)과 축복(祝福)을 위하여 안식일을 제정(制定)하여 복(福)주고 거룩하게 하고 쉬신(창 21~3) 바로 그분이라는 사실을 선포(宣布)하는 것이다.>


⑴.바리새인들의 비난(非難)은 원래의 안식일은 기쁘고 즐거운 날이지만 유대인들(바리새인)은 그날을 무거운 짐으로 바꾸어 놓았다. (유대인들의 39개의 안식일에 금(禁)하는 범주의 노동)

⑵.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으며, 선(善)을 행(行)하고 생명을 구(求)하는 날임을 밝히셨다. 

⑶.사람의 행복과 축복(祝福)을 위하여 안식일을 제정(制定)하여 복(福)주고 거룩하게 하고 쉬신(휴식)을 하신 바로 그분께서 선포(宣布)하신 안식일이다.

⑷.사람에게 안식일(安息日)을 주신 목적은 (막 2:27; 창 2:3). 피조물(被造物)은 창조(創造)주 안에 있을 때만 비로소 최고의 행복과 평안을 누리게 된다.

⑸.그러나 피조물이 창조주(創造主)를 잊고 그에게서 떠나가면 피조물은 점차로 생명을 잃어버리게 된다..

⑹.안식일(安息日)은 안식일을 제정(制定)하신 그분의 뜻대로 지켜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⑺.안식일(安息日)은 사람의 행복(幸福)과 축복(祝福)을 위하여 존재(存在)하는 것이지 사람을 구속(拘束)하고 자비(慈悲)를 빼앗는 일에 쓰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⑻.신약 성경(新約聖經)에 안식일(安息日)에 병(病)을 고치신 이야기가 일곱 번 나오는데 (막 1:21~28; 1:29~31; 막 3:1~6; 눅 13:10~17 : 14:1~6; 요 5:1~18 : 9:1~41). 다른 경우에는 은밀(隱密)하게 하기를 원(願)하셨고, 심지어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까지 하셨지만 (막 1:44), 안식일(安息日)의 경우(境遇)에는 회당(會堂)에서 공개적(公開的)으로 병(病)을 고치셨다.

⑼..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가장 강력(强力)한 사상(思想) 중의 하나는 하나님이 온 우주(宇宙)의 창조주(創造主)시며 우리는 그가 지으신 피조물(被造物)이라는 것이다. (창 1:1.27; 출 31:17; 시 40:26; 94:6 : 100:3; 사 43:1; 계 4:11).

⑽.피조물(被造物)이 창조주(創造主)를 잊고 그에게서 떠나가면 피조물(被造物)은 점차로 생명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것이 우주(宇宙)의 법칙(法則)이다. 이 진리를 사람에게 늘 깨우쳐 주는 것이 창조의 기념일(記念日)인 안식일(安息日)이다.


 ◉.☞

 Q.예수님께서 문제가 생길 것을 아시면서 왜 하필이면 안식일에 병(病)을 고쳐 주셨을까?

 A.참된 안식일의 의미와 목적을 가르쳐 주고 싶으셨다.

   또한, 안식일에 해야 할 일이 크게 두 가지로 언급(言及)되어 있는데 

   <죽이는, 살리는 것. 생명(生命)>


(07월 17일(수) <샌드위치 구조(構造) 이야기–1>

 

(Q)~용서(容恕)할 수 없는 죄(罪)란 무슨 말입니까? 십자가(十字架) 속죄(贖罪)의 능력(能力)이 부족(不足)할 수 있습니까?. (막 3:29)


(A)~<자비(慈悲)의 초청(招請)을 무시(無視)하고 은혜(恩惠)의 성령을 멸시(蔑視)한 자(者)들만큼 마음이 강퍅한 자(者)는 없다. 성령에 대항(對抗)하는 가장 보편적(普遍的)인 죄의 표시는 회개(悔改)하라는 하늘의 초청(招請)을 완강히 무시(無視)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거절(拒絶)하는 발걸음마다 구원(救援)을 거절하고 성령을 거스르는 죄의 길로 향(向)하는 발걸음이다.> (DA 324)


⑴.성령(聖靈)을 거스르는 죄는 용서(容恕)받을 수 없다고 하신 것은 주께서 성령(聖靈)을 통해서 일하고 계심에도 서기관(書記官)들이 그분에게 더러운 귀신(鬼神)이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⑵.서기관(書記官)들은 그분의 치유능력(治癒能力)이 마귀(魔鬼)에게서 비롯되었다는 혐의(嫌疑)를 제기(提起)한다.

⑶.예수님은 먼저 "사탄이 어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는 중심 질문(中心質問)으로 대답(對答)하신다.

⑷.만약 누군가가 성령(聖靈)의 역사를 마귀(魔鬼)의 일이라고 부른다면 그 사람은 성령의 말씀을 듣지 않을 것이다.

⑸.사람이 회개하고 믿는다면 죄가 어떠하든지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을 받으나 성령의 역사를 거절하는 자는 자신을 회개하고 믿을 수 없는 자리에 두는 것이다.

⑹.하나님은 성령(聖靈)을 통하여 심령에 역사하시는데 사람이 고의(故意)로 성령을 거절(拒絶)하고 이를 사탄에게서 온 것이라고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저들과 교통하실 수 있는 통로를 끊어버리는 것이다.

⑺.성령을 끝까지 거절(拒絶)하면 하나님께서 그 영혼(靈魂)을 위하여 더 이상하실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DA, 322). 

⑻.누구든지 성령(聖靈)의 말씀을 듣는 바른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마귀(魔鬼)의 인도(引導)를 따르고 싶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⑼.예수님께서 성령(聖靈)을 통해서 일하고 계심에도 서기관들이 그분에게 더러운 귀신이 있다고 말하기 때문인 것을 (마가복음 3:30)을 통해 알 수 있다. 

⑽.용서(容恕)받을 수 없는 죄는 성령(聖靈)을 거스르는 죄(罪)요, 성령(聖靈)의 역사를 마귀(魔鬼)의 일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①.샌드위치의 겉장 이야기는 예수님이 정신(精神)이 온전치 못하다고 생각하여 그분을 돌보려고 나선 예수님의 친족(親族)들에 관한 것이다(막 3:21). 

②.샌드위치의 속 이야기는 예루살렘의 서기관(書記官)들이 예수님을 마귀(魔鬼)와 결탁(結託)하였다고 고발(告發)하는 내용이다.


(07월 18일 (목) <샌드위치 구조(構造) 이야기-2>

 

(Q)~예수님의 가족(家族)은 어떤 일로 인(因)해 그분의 정신(精神)이 온전(穩全)치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예수님의 가족(家族)이 원(願)하는 것은 무엇이며 예수님은 어떻게 반응하셨는가?

(마가복음 3:20~21, 마가복음 3:31~35)


(A)~<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집에 대한 오해(誤解)로 인(因)해 너무나 고통스러워하셨기 때문에 그것이 존재(存在)하지 않는 곳으로 가시는 것이 그분께 안도감(安堵感)을 안겨 주었습니다.>


⑴.예수님의 가족(家族)은 그분이 식사(食事)할 겨를도 없이 너무 바쁘게 일하시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 느꼈다.

⑵.가족(家族)과 갈등(葛藤) 속에서 예수님은 함께 그분의 뜻을 행(行)하는 사람이 내 가족(家族)이라고 재정의(再定義)하셨다

⑶.가족(家族)들은 그분이 미쳤다고 말하고 서기관들은 그분이 마귀(魔鬼)와 한통속이라고 말한다.

⑷.예수님은 가족(家族)에 대한 정의(定義)를 통해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行)하는 자가 내 형제(兄弟)요 자매(姉妹)요 어머니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⑸.예수님은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설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⑹.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사람이 그분의 가족이 된다. 

⑺.문제는 당시 예수님의 가족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一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⑻.예수님은 이것을 아셨고 말씀을 통해 가족이 무엇을 뜻하는지 재정의(再定義)하신다..

⑼.가족은 형제자매(兄弟姉妹) 어머니의 가족(家族)이 있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내 가족(家族)이라고 재정의(再定義)하셨다.

⑽.마가복음은 우리에게 예수님도 같은 어려움을 겪으셨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분은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아시며 견디기 어려운 고립(孤立)을 경험하는 이들을 넉넉히 위로하실 수 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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