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과 낯선 땅에서 부르는 여호와의 노래(이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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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춘선 작성일24-01-27 14:18 조회2,210회 댓글0건본문
제5과 낯선 땅에서 부르는 여호와의 노래
기억절: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시편137:4)
시작하며
삼위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과 계획을 알면
오늘공부가 쉽게 다가올 것이다
우리가 지금 존재하고 있는 세상은
하나님께서 목적하고 계획한 세상이 아닌
사단이 목적하고 계획한 세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방향과 완전히 다른 것이고
그 가운데 있는 우리는 더욱 갈 방향을 잃은 상태다
그러나 찬찬히 공부를 해보면
우리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우리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의 답을 알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 닮게 창조 하셨다
하나님을 닮게 창조 하셨다는 것은
하나님마인드 즉 사상이 같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담이 사단을 따라 갔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상을 버리고
사단의 사상이 좋아 그것을 따랐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단이 다스리는 세상에서
사단의 사상을 가진 사람을 계속 생산했다
사단사상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그 내용이 다 바보같고 부당하게 보인다
그래서 이 세상이 낯선 땅이 될수 밖에 없고
이 낯선땅에서는 그 무슨일이 일어나도
그 어떤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곳이다
(일) 악이 득세하는 날에
“여호와여 이것을 기억하소서
원수가 주를 비방하며 우매한 백성이 주의 이름을 능욕하였나이다
주의 멧비둘기의 생명을 들짐승에게 주지 마시며
주의 가난한 자의 목숨을 영원히 잊지 마소서
그 언약을 눈여겨보소서
무릇 땅의 어두운 곳에 포악한 자의 처소가 가득하나이다
학대 받은 자가 부끄러이 돌아가게 하지 마시고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가 주의 이름을 찬송하게 하소서
하나님이여 일어나 주의 원통함을 푸시고
우매한 자가 종일 주를 비방하는 것을 기억하소서”(시74:18~22)
파괴된 성전은 죄에 물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거룩하신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는 희생과 대속의 장소였다
성전은 모세와 맺으신 언약
곧 백성들의 하나님이 되시겠다는 약속이기도 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이 언약을 잊지 않으실 것을 믿고
악이 득세하는 날에 기도를 했던 것이다
시간이 흘렀지만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것이 된 자들은 악이 득세해도
시편의 저자처럼 평안을 누릴수 있지만
아직 그렇지 못한 자들은 두려움가운데 있다
두려움과 걱정 초조 같은 감각들은
죄의 증상으로 오는 것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스스로 없앨 수 없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죄를 대신 가져가심으로
죄로 야기된 증상들도 없애 주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완전한 대속을
사상으로까지 완전히 받아 들이는 것을
거듭남 즉 새롭게 된 것이라 하는 것이며
그렇게 되어야 진짜 신앙을 하는 것이고
진짜 신앙을 해야 세상이 두렵지 않다
(월) 죽음의 문턱에서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지키사 살게 하시리니
그가 이 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
주여 그를 그 원수들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여호와께서 그를 병상에서 붙드시고
그가 누워 있을 때마다 그의 병을 고쳐 주시나이다
내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나를 고치소서 하였나이다”(시41:1~4)
이시의 저작 배경은 다윗이 병든 기회를 틈타
압살롬과 그 추종 세력이 반역을 꾀한 사건
즉 주전 979년경 삼하15:1~18인 듯하다
긴병에 효자 없다는 속담처럼
질병은 원수들이 모함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믿었던 친구들에게 배신당하는 계기가 될수 있다
그럴 때 우리는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야 한다
아니 처음부터 주님을 바라야 한다
그러면 다윗에게 은혜를 베푸셨던 주님께서
우리에게도 똑같이 은혜를 주신다
질병이나 죽음도 죄로 야기된 증상들인데
이것도 죄를 가져온 사단의 걸작품으로
그것들로 우리를 넘어 뜨리려 하지만
하나님의 것이 된 자들을 결코 이길수 없다
사단이 자신의 창조물로 우리를 괴롭힐 때
우리는 그것을 역 이용하여 치유의 은총을 베푸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더 크게 자랑하고
사단의 계략과 세력들의 악날함을 고발해야 한다
(화) 하나님, 어디에 계시나요
(고라 자손의 마스길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시42:1~3)
이렇게 아름다운 시의 배경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는데 혹 바벨론 포로 시대라는
주장이 있는 듯하나 다윗의 어휘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압살롬의 반역으로 예루살렘을 떠나온 때(주전979년)
다윗이 지은 시를 고라 자손 중 한 사람이
수집한 시로 보는 견해가 많다
이 시는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소망하는 시온시 인데
고라 자손의 교훈시라는 뜻이 붙어 있다
시인은 원수의 조롱을 당하는 고통 중에
지난날 성전에서 하나님을 즐겁게 섬기던 때를 회고하며
그 때로 돌아가고픈 애절한 심정을 노래하고 있다
눈물로 음식을 삼는 고난과 슬픔의 순간에도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하는
목마른 심정으로 밤낮으로 주를 찾겠다는 것은
모든 것 즉 온몸과 마음 사상까지
하나님의 것이 된 자에게서만 나오는 고백이다
사상을 바꾸어야 모든 것이 바꾸어 지게 된다
모든 것을 바꾸어도 사상이 바뀌지 않으면
상황에 따라 되돌아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수) 하나님의 약속은 영구히 폐하였는가?
시편 77편은 아삽의 시로 분류되었고
여두둔의 법칙에 맞춘 노래로 기록되었는데
같은 표제가 39편 62편에도 붙어 있다
여기서 참고로 여두둔은 아삽 헤만과 함께
다윗 왕의 시대에 악장 3인방이었다
시편 77편의 배경을 정확히 알 수는 없는데
매우 극심한 환난의 날에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 같은
자신을 돌아보며 도우심을 간절히 소망하는 고백이다
시인은 하나님께 부르짖는다는 말을 반복하는데
그만큼 자신의 상황이 고통스럽고 처절함을
강조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응답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응답이 없던 것인가?
하나님은 이미 다 응답하셨다
다만 시인 즉 기도자가 모를 뿐이다
응답하셨다는 증거가 바로
이 시가 지금까지 존재하여 알려지는 것이고
손을 내리지 않고 계속 기도할 수 있었고
결국 고난의 밤에도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함을
대대로 알리는 귀한 교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영원하신 것 같이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나 영원하고
결코 잊혀지거나 깨어진 적이 없다
이것을 깨달게 하시려고 침묵하시는 것인데
하바국이 그 하나님을 알고 이렇게 노래 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3:17~18)
(목) 악인들이 개가를 부르는 날에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다윗 시대의 성가대장이었던 아삽은
악인의 형통함을 보자 질투가 나서 넘어질 뻔하였다
악인은 교만하고 강포하며 하나님을 무시하는데도
고난 없이 항상 평안한 것을 보고
깨끗하게 산 자신이 헛되다고 한탄하다가
하나님의 것으로 완전히 전향을 하고나서야
악인의 종말과 파멸을 깨닫게 되고
어리석고 무지한 자신을 교훈으로 인도신 주님을
찬양하고 사모할 것을 고백하게 된다
신앙을 한다는 것은
사단마이드를 가지고 태어난 나를 버리고
예수 마인드로 사상을 바꾸는 것이다
아삽도 사상을 바꾸기 전까지는
사단 마인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악인이 잘되는 것이 배가 아프고 질투가 났다
그런데 그것은 질투가 날일이 아니라
사단이 권세를 잡은 이세상에서는
사단마인드의 사람들이 잘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우리는 그것을 부러워하고 질투 할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다 죽는 것을 불쌍히 여겨야 한다
예수믿고 사상이 바뀌면
죄가 이룩해 놓은 세상의 것들이
좋아 보이지 않고 개탄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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