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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5. 낯선 땅에서 부르는 여호와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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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광진 작성일24-01-26 13:59 조회3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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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교소그룹의 TMI나눔 : 1. 안으로-안교소그룹이 서로를 돌보고 연합하기 위한 나눔(인사, 환영, 출석, 공부 확인, 결석자 확인, 방문 계획)

2. 위로-교과와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시간(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함)

3. 밖으로-지역사회를 섬기기 위한 나눔(실천한 TMI, 실천할 TMI, 기도)

 

연구 범위 79:5~13, 88:3~12, 69:1~3, 22:1, 77:, 73:1~20, 벧전 1:17

 

기억절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시편 137:4).

 

핵심 어떤 시편들은 죄악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는데도 하나님이 침묵하며 부재하시는 것 같은 당혹감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의 의로움과 신실하심을 깨닫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른다.

 

*핵심어 : 당혹감, 신실

 

도입 질문 : 낯선 곳에 있을 때 마음이 어떠한가?

시편 기자들에게 세상은 적응하기 어려운 낯선 땅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낯선 땅에서 어떤 노래를 불렀을까?

 

요일별 고찰

 

. 74:18~22, 79:5~13의 구절들은 어떤 위기를 말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당함

 

이스라엘은 실패함이 없으신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요, 그들을 통해 모든 열방이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전이 파괴되고 그들의 도성 예루살렘이 멸망하며 백성들이 이방에 포로되는 비참한 상태를 보고 이방인들은 개가를 부르며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그 이름을 모욕했다.

 

시편 기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가 이러한 불행을 초래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하나님은 그들을 속죄하심으로 회복하실 것을 기대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을 더 모독하는 것은 이방인들 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자들의 거듭나지 않은 품성이다. 변화되지 않은 그리스도인들로 인해 많은 영혼들이 믿음에서 떠나고, 교회의 사명이 위축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진정한 회복은 눈에 보이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의 품성이 그분의 백성들 속에 재현되는 데 있다.

 

이스라엘의 환난은 단순한 위기가 아니라 주님의 언약과 그 이름에 불명예를 가져왔다. 우리의 잘못이 사명과 증거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기억해야 한다.

 

. 41:1~4, 88:3~12, 102:3~5, 11, 23, 24의 구절들에 묘사된 경험에서 그대는 어떤 점을 공감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백성이 고통당할 때 하늘이 원망스러움

 

고통의 근본 원인은 죄다. 그 자신의 잘못이 고통을 가져온다. 문제는 어떤 사람에게는 잘못이 없는데도 고통이 따른다는 사실이다. 아담의 원죄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말이다. 또한 과거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데도 고통이 계속 되거나 무서운 재앙이 닥칠 때 하나님이 원망스럽다.

시편 88편의 기자는 죽음의 고통 가운데, 하나님이 노하심으로 자기를 눌러 깊은 웅덩이에 두셨다며 하나님께 고난의 책임을 돌린다. 그러나 기자는 곧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경이로우심을 기억하며 그분께 매달린다.

이러한 간구는 시편 기자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생생한 지식을 간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고난을 허용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구원도 모두 그분의 궁극적인 주권을 보여주는 것이다. 역경 가운데에도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소망을 싹트게 한다. 특별히 그리스도의 고난에 비추어 시편 88편을 읽을 때, 우리는 인류를 대신해서 기꺼이 죽음의 문으로 들어가셨던 그리스도의 깊은 사랑에 경외감을 느낀다.

 

. 42:1~3, 63:1, 69:1~3, 102:1~7에서 시편 기자에게 큰 고통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침묵

 

하나님의 백성이 당하는 고통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에 무관심하고 침묵하시는 데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편 기자는 메마른 땅의 극심한 갈증과 죽음의 고통, 보는 이도 없고 도움의 손길도 전혀 없는 광야의 작은 새와 같은 고독을 느낀다. 기자는 깊은 수렁에 빠져 들어가는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22:1, 10:12, 27:9, 39:12 등은 하나님의 침묵 앞에서도 침묵하지 않는 기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에라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거기 계심을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 같은 때 시편 기자들은 자신을 돌아보고 고백과 겸손한 간구로 하나님을 찾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침묵이 영원하지 않은 것을 알고 있다. 시편은 삶의 상황과 관계없이 하나님과의 소통이 계속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 77편에서 기자는 어떤 일을 경험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함

 

본 시편의 저자인 아삽은 큰 고통과 슬픔 가운데서 세상의 어떤 위로도 거부하며 하나님의 위로를 갈망한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77:3상하도다는 종종 맹렬히 포효하는 물소리를 묘사한다. 그처럼 그의 마음이 극심한 불안에 빠져있는 것이다. 왜인가? 과거에 구원의 하나님이 현재의 고난 중에는 보이지 않는 데 대한 괴리감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이 언약을 내팽개쳤거나 자신을 버린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그를 계속 잠못들게 하면서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게 하신다고 한다. 그런데 그 잠못드는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옛적 기사를 기억하고 묵상함으로 믿음을 회복한다.

 

시편 기자는 주님이 과거 이스라엘에게 기적을 행하신 바로 그분이심을 알고 믿음으로 주님을 기다리도록 격려받는다(77:11~18).“주의 발자취를 알 수 없었나이다”(77:19)라는 솔직한 시편 기자의 고백은 인간의 눈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 상황과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마침내 깨달은 것을 나타낸다. 그는 자신을 나타내기도 하시면서 동시에 숨기시기도 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신비로우시며 주권적인 그분의 역사를 찬양한다.

 

. 37:1, 8, 49:5~7, 94:3~7, 125:3에서 시편 기자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무엇인가?

악인들의 득세에 대한 당혹감

 

세상은 악인들에는 안방과 같고 의인들에게는 타향과 같다. 악인들은 의인들을 압제하고 하나님을 멸시한다. 그러니 악의 편에 서는 게 살 길처럼 보인다.

그러나 시 73편의 기자는 성소에서 악인이 결국은 전멸될 것을 보았다. 성소는 하나님의 임재와 구원, 심판의 장소이다. 성소의 대속죄일 봉사를 통해 회개한 의인은 옹호받지만 죄를 고집하는 사람은 멸망받게 되어있다. 또한 사탄을 상징하는 아사셀 염소는 모든 죄를 지고 광야에 버림받게 되는데 이는 악인의 최후를 보여주는 것이다. 불의하고 불공평한 세상에서 그 현상만 바라보지 말고 영적인 눈으로 대쟁투의 궁극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의 장소인 성소로 인도되어서야 오늘하루는 모자이크의 한 조각에 불과하며 악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종말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알게 되었다.

시편 기자가 이 진리를 성소에서 깨닫고 이전의 어리석음을 고백한 것은 만물의 실상은 인간의 논리가 아닌 영적인 통찰력으로만 바르게 파악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적용 : 하나님이 불의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약속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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