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과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건지셨도다(질문, 대답, 설명) 01/2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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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4-01-18 23:24 조회3,747회 댓글0건본문
제4과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건지셨도다
(1월 27일 안식일 / 일몰: 오후 5시 49분)
연구 범위: 시 139:1~18, 121:, 17:8, 마 23:37, 고전 10:1~4, 히 4:15, 16
기억절: "의인이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시편 34:17).
시편은 세계를 창조하시고 유지하시는 주권자이신 바로 그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 한 사람 한 사람과의 관계를 시작하시고 유지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으로 자신을 나타내신다는 진리를 거듭 강조한다.
하나님은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그분의 백성과 피조물에 가까이 계신다(시 73:23, 25). 주님은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시 103:19) "구름 수레를 타"(시 68:4, 새번역)시지만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 145:18)신다. 시편은 주님이 살아 계시며, 그분을 부르는 이들의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을 대신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확고하게 주장한다(시 55:16~22). 시편은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에 의해 촉발되고 또 그분에게 드려지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주님이 가까이 계심에 대한 우리의 올바른 반응은 그분을 믿고 그의 계명에 순종하는 삶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자주 볼 수 있었듯이 이런 믿음과 순종 없이는 어떤 것도 하나님이 듣거나 받으시지 않을 것이다.
*학습 목표
깨닫기: 하나님의 도움이 우리 가까이에 있음을 깨닫는다.
느끼기: 시험과 어려움 중에도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고 계심을 느낀다.
행하기: 삶의 어려움을 보지 말고 오늘도 구원과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바라본다.
TMI 위로
2.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신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습니까?(히 1:3)
*답: 그분이 창조주시라는 것과 우리를 사랑으로 관리하신다는 의미.
3. 하나님이 그대를 돌보시는 것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납니까?(시 121:)
*답: 믿음으로 바라보면 천연계는 다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모습이다.
4. 시편은 어려움 중에 도우시는 하나님을 어떤 모습으로 나타내고 있습니까?
*답: 사랑과 자비의 모습으로 나타내고 있다.
5. 하나님이 보호자이며 구원자이신 사실을 시편은 어떻게 생생하게 묘사합니까?(시 114:)
*답: 천연계를 통하여 비유와 상징으로 아름답게 묘사했다.
6. 우리의 영적, 육체적 도움이 성소의 맥락에서 두드러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히 4:15, 16)
*답: 성소는 예수님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7.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이 현실에서 능력있게 실현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 죄가 기승을 부리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결론: 하나님은 우리 가까이에서 능력으로 도우신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기에 어떤 일도 도우실 수 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도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믿는다. 성경의 역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여주며 그것을 굳게 신뢰하게 한다. 우리는 삶의 어려움을 바라보지 말고 그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성소는 죄인을 위해 열려 있으며 하나님은 그곳에서 구원과 은혜를 베푸신다.
1월 21일(일) 주님께 숨겨진 것은 없다.
시편 139:1~18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능력(시 139:1~6), 임재(시 139:7~12), 선하심(시 139:13~18)을 어떻게 시적으로 묘사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그분의 약속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시139:1~18]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2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3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5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6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7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10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11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반드시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12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추이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 13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14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15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16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17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18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
*답: 하나님의 능력, 임재, 선하심을 시적 은유로 잘 표현했다.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이 하나님의 전지 편재(遍在)하심으로 이루어진다.
누군가를 돕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던 적이 있는가?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은 당신을 도우려고 했지만 당신의 필요를 알지 못했을 수 있다. 당신을 최고로 사랑하고 최선을 의도로 가진 사람이라도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그와 달리 하나님은 나 자신과 나의 상황에 대해 온전히 알고 계시고 도울 방법을 가지고 계신다. 그러므로 그분의 도움과 구원에 대한 약속은 그저 그런 미사여구가 아닌 확실한 보증이다.
시편 기자에 대한 하나님의 지식은 너무나 크고 특별하여 그 어머니의 태조차도 그를 하나님 앞에서 숨길 수 없었다(시 139:13, 15). 하나님은 시간(시 139:2), 생각(시 139:2, 4), 행위(시 139:3), 즉 시편 기자의 존재 전체를 다 알고 계신다. 하나님은 창조자이시고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 가운데서 거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눈동자처럼 살피시며 그것은 그들을 돌보시는 보살핌에서 나타난다.
하나님이 우리를 친밀하게 아신다는 이 놀라운 진리는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예수님 품으로, 그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구원 앞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는 그분의 의, 즉 "하나님의 의"를 얻었다(롬 3:5, 21).
시편은 그분의 거처가 아닌 "지옥"(스올, 무덤)과 "흑암"(시 139:8, 11, 12)까지 하나님의 임재가 미치는 것으로 기록한다(시 56:13). 그분의 임재는 "새벽 날개"(동녘, 새번역)를 치며 "바다 끝에"(서쪽, 새번역) 이른다(시 139:9). 이 광경이 전하는 것은 우리가 우주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벗어날 곳은 없다는 진리이다. 어떤 사람들의 믿음과 달리 하나님은 우주의 일부가 아니시며 그분은 우주를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유지하시고 모든 것과 가까이 계신다(히 1:3).
하나님이 우리를 돕고 회복시킬 수 있는 것은 우리에 대해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다. 그분의 위대하심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은 시편 기자에게 넘치는 찬양을 불러일으키고 한층 새로워진 신뢰를 북돋운다. 그는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방해하는 모든 것을 제거할 수 있도록 돕는 하나님의 세밀한 살피심을 감사한다.
<교훈> 주님이 우리를 친밀하게 아는 것은 두려운 것이 아니며 구원과 예수님께로 이끄는 것이다. 그분이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에 우리를 회복하실 수 있으시다.
<부가설명> 하나님이 자신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 계셔서 자신의 가장 어두운 비밀까지 알고 계신다는 것은 두려운 일일 수 있지만, 그야말로 모든 것을 고백하고 용서받고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은혜다. 내가 숨기고 감추려고 해도 소용이 없다. 그렇다면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우리 하나님은 벌을 주려고 벼르고 계신 분이 아니시다. 그분은 용서하시기를 즐거워하시는 분이시다(시86:5). 그분에게 나가서 그분이 이미 알고 있는 내 허물을 솔직히 고백하면 용서하시고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신다.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 같이, 네 죄를 안개 같이 없이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사44:22),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사43:25).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을 너무 두려운 분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분이 진노하는 것을 살지 않겠다고 버둥대니 그렇게 버둥대지 말고 하나님 품에 안겨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라고 너무 답답해서 나타내는 진노일 뿐이다. 그래도 안 들으면 얼굴을 가리신다(신31:17).전혀 가망이 없을 때 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가망이 있을 때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라고 권고하시고 성령님으로 감동하시고 오래 참으신다. 그래도 듣지 않으면 진노하신다. 반응이 가장 빠른 것이 벌이다. 그래도 안 들으면 얼굴을 돌리시고 그를 보지 않으신다. 그것이 곧 그에게는 재앙과 형벌이 된다(호9:12). 시인은 이런 하나님을 잘 알았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의 돌보심을 이렇게 아름다운 은유로 노래하였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1월 22일(월)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한 확신
시편 40:1~3, 50:15, 55:22, 121편을 읽어 보라. 하나님은 우리의 일상에 어떻게 관여하시는가?
[시40:1~3]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2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3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시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시55: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시121:1~8]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3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6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답: 모든 일에 함께 하셔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신다.
성경에서 주님은 자신을 항해 부르짖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행동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 자신을 계시하신다.
시편 기자는 주님께서 항상 내 앞에 계신다(시 16:8)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을 부른다(시 7:1, 시 9:10). 그가 "깊은 곳"(시 130:1, 2)에서 부르짖을 때에도 주님은 들으시며, 삶의 어떤 상황도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시편 기자의 외침은 때때로 매우 절박하지만 결코 희망이 없는 외침이 아니다.
시편 121편은 신실한 신자의 삶에 나타난 창조주의 능력을 찬양한다.
1.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않게 하시며"(시 121:3). "발"의 심상은 종종 인생의 여정을 묘사한다(시 66:9, 시 119:105, 잠 3:23). 실족하지 않게 하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시 93:1)과 시온(시 125:1)에 제공하시는 돌보심을 의미한다.
2. 졸지 않으시고 주무시지 않으시는 이스라엘의 수호자로서의 모습은 자녀들을 위해 항상 깨어 계시고 당신의 자녀들을 위해 일하실 준비가 되어 있는 주님을 보게 한다(시 121:3, 4).
3. 주께서 "네 그늘"(시 121:5, 6)이심은 출애굽 당시의 구름 기둥을 떠올리게 한다(출 13:21, 22). 이처럼 주님은 당신의 백성에게 육체적, 영적 피난처를 제공해 주신다.
4. 하나님은 그들의 오른편에 계신다(시 121:5). 오른손은 일반적으로 사람의 더 강한 손, 행동하는 손을 나타낸다(시 74:11, 시 89:13). 여기서 오른손은 하나님의 가까이 계심과 은혜를 의미한다(시 16:8, 시 109:31, 시 110:5).
5.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보호하심은 시편 121:6~8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모든 악에서부터 보호하실 것이다. "해"나 "달"도 그들을 해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나가는 것"과 "들어오는 것"을 지키실 것이다. 이 시적 표현은 하나님의 포괄적이고 끊임없는 돌보심을 강조한다.
이것은 모두 무엇을 의미하는가? 시편 기자가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한 돌보심을 신뢰한 것처럼 우리 역시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교훈> 어떤 상황도 그분의 통치 아래 있으므로 아무리 절박한 상황에도 희망이 있다. 포괄적이고 끝없이 돌보시는 주님에 대한 시편의 기록은 깊은 신뢰를 제공한다.
<부가설명> 우리의 의식에 성경의 하나님이 무서운 분으로 각인되어 있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가 순종한다는 것은 진리가 생활질서가 되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벌받을까 두려워서 순종하려는 것이 아닐까? 성경의 하나님은 생명의 하나님이시다.죽지 않음이 그분에게만 있는 생명 자체이시다. 이 생명은 그 본질이 사랑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계시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신 것은 논리적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무엇이 아쉬워서 독생자를 보내사 우리 사람을 위해 죽음의 고난을 당하게 하셨겠는가? 그분이 사랑이시기 때문이라는 답 외에 다른 합리적인 답이 없다. 그분의 사랑은 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것이다. 하나님의 생명은 그 본질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하시는 모든 일이 다 사랑이다. 이 생명이 우리의 생명이 되도록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믿으라고 하신다. 그분을 믿으면 이 그분의 생명 곧 영생의 생명이 우리의 생명이 되어 우리 삶의 질서가 진리대로 된다. 그 질서의 내용을 정리하면 십계명이 된다. 그래서 십계명을 생명의 도(행7:38)라고 했고 계명이 영생이라고 했다(요12:50, 한글킹). 하나님은 이 생명을 주시려고 열망하신다. 그것이 태초에 아담에게 주신 바로 그 생명이다. 그런데 사람이 그것을 기어이 거절하시니 불가불 하나님께서 그에게 얼굴을 돌리시고 가린다. 그때 쟁앙이 닥치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는 재앙이 아니고 아담이 사탄에게 굴복할 때 세상에 들어온 그 재앙이다. 하나님이 얼굴을 숨길 때 사람은 그 재앙에 보호막 없이 노출 된다. 그래서 벌이 임하는 것이다. 이 이치를 깨달으면 우리의 신앙생활이 더 즐거울 것이다. 아멘.
1월 23일(화) 주는 환난 중의 피난처시라
시편 17:7~9, 시편 31:1~3, 시편 91:2~7을 읽어 보라. 시편 기자는 환난의 때에 어떻게 하였는가?
[시17:7~9] 주께 피하는 자들을 그 일어나 치는 자들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주의 기이한 사랑을 나타내소서 8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9 내 앞에서 나를 압제하는 악인들과 나의 목숨을 노리는 원수들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시31:1~3]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영원히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 주의 공의로 나를 건지소서 2 내게 귀를 기울여 속히 건지시고 내게 견고한 바위와 구원하는 산성이 되소서 3 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니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생각하셔서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
[시91:2~7]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3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4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5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6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7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답: 여러 환난 때 하나님께 간구하면 그분이 나를 건지시고 재앙을 물리치신다.
시편 기자는 다양한 종류의 고난을 만나지만 모든 환난 가운데 피난처가 되시는 주님께 의지한다. 신뢰한다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자발적인 선택이다. 환난의 어려움 중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면 다른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신뢰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시 91:2)라는 시편 기자의 간증은 하나님과의 과거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며, 미래에 대한 신뢰를 강화시킨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기억하기에 하나님을 지존하시고 전능하신 분이라고 부른다(시 91:1, 2),
시편 기자는 또한 하나님 안에서 찾을 수 있는 안전에 대해 "은밀한 곳"(피난처, 은신처), "그늘"(시 91:1), "피난처", "요새"(시 91:2), "날개", "방패", "손방패"(시 91:4), "거처"(시 91:9, NKJV)로 표현한다. 시편 기자의 문화에서 이러한 심상들은 안전한 피난처를 의미한다. 광야의 작렬하는 태양과 이스라엘 역사 속 전쟁의 시기를 떠올려 본다면 그늘이 얼마나 필요하고 방패나 요새가 제공하는 안전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시편 17:8과 마태복음 23:37을 읽어 보라. 여기에는 어떤 심상이 사용되었으며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시17:8]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마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답: 날개 그늘과 어미 닭이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은다는 심상을 사용했다.가장 안전하고 자비로운 보호처를 상징한다.
“주의 날개 그늘 아래”(시 17:8, 시 57:1, 시 63:7)는 시편에서 친밀함을 가장 잘 표현하는 은유이다. 이 은유는 어미 새의 보호를 통해 위안과 확신을 이끌어 낸다. 주님의 돌보심은 날개로 새끼를 보호하는 독수리(출 19:4, 신 32:11)와 새끼를 날개 아래 모으는 암탉(마 23:37)에 비유된다.
<교훈> 시편 기자는 환난 가운데 하나님께 의지했다. 다양한 피난처는 그들을 온전하게 인도하신 과거의 경험에서 나왔으며 미래의 인도하심에 대한 확신을 준다.
<부가설명> 어려운 상황 속에서 주님의 보호하심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때에 우리는 기록한 말씀의 약속을 더욱 굳게 잡으면서 인내해야 한다. 내가 여러번 강론한 것 같이 우리가 사는 세상 환경은 우리의 눈을 가려서 우리를 눈동자처럼 보호하시는 주님을 보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사방을 어둡게 하고 빛을 가려버린다. 그 어둠에 주저앉으면 안 된다. 어둠 너머에 빛이 있다. 아니 더 가까이 내 주위에 빛이 있다. 문제는 우리가 쉽게 낙담하는 것이다. 흑암의 권세는 우리를 낙심하게 하는 마약을 쓴다. 그 약효는 대단히 탁월해서 우리 의식에 들어가면 곧 취하게 하고 의심의 구름을 피워올린다. 그래서 독생자까지 희생하신 하나님을 의심한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향해 칼을 들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손을 붙들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을 아브라함의 손을 붙들 수 있는 바로 그 위치에 있었다. 아브라함은 그것을 보지 못했으나 보이지 않는 분을 보는 것 같이 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했다. 그때 아브라함이 참으로 사랑하는 대상이 누군지 드러났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22:2). 여기 ‘네 사랑하는 독자’라고 하셨다. 그런데 12절에서는 말씀이 바뀐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이 두 구절에서 2절에는 ‘네 사랑하는 독자’라고 하셔서 아브라함의 사랑이 독자 이삭에게 집중되어 있음을 지적했다. 그러나 12절에서는 ‘네 아들 네 독자’라고 하여 ‘사랑하는’이 빠졌고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라고 하셨다. 우리가 누구를 최고로 사랑하는지 시험을 통하여 드러내보이신다. 신뢰하자. 전적으로 신뢰하자. 아멘.
1월 24일(수) 보호자시며 구원자이신 주님
고린도전서 10:1~4을 읽어 보라. 바울은 출애굽 이야기를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그는 이 이야기를 통해 어떤 영적 교훈을 가르치고자 하는가?
[고전10:1~4]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침례를 받고 3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답: 그들이 구름과 바다에서 침례를 받고 신령한 양식과 물을 마셨다고 기록하면서 교회 생활에 관한 상징적 해석을 했다.
시편 114편을 읽어 보라. 이 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속박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구원을 어떻게 시적으로 묘사하고 있는가?
[시114:1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며 야곱의 집안이 언어가 다른 민족에게서 나올 때에 2 유다는 여호와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도다 3 바다가 보고 도망하며 요단은 물러갔으니 4 산들은 숫양들 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은 어린 양들 같이 뛰었도다 5 바다야 네가 도망함은 어찌함이며 요단아 네가 물러감은 어찌함인가 6 너희 산들아 숫양들 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아 어린 양들 같이 뛰놂은 어찌함인가 7 땅이여 너는 주 앞 곧 야곱의 하나님 앞에서 떨지어다 8 그가 반석을 쳐서 못물이 되게 하시며 차돌로 샘물이 되게 하셨도다.
*답: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구원하는데는 천연계가 다 도움을 주고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재료들이 된다는 것을 시적으로 묘사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녀들을 애굽의 속박에서 건져내신 위대한 구원을 시편 114편은 얼마나 시적으로 놀랍게 묘사하고 있는가. 신구약 전체에서 애굽에서의 구원은 그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상징으로 표현되었다. 바울은 고린도 전서에서 이 모든 실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을 상징하는 은유로 본다.
시편 114편은 자연의 법칙을 넘어서는 주권자이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출애굽 하는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홍해, 요단강, 산과 언덕은 약속의 땅을 향해 가는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자연과 인간의 힘의 시적 묘사이다(신 1:44, 수 3:14~17).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의 주관자이시다.
모든 시간과 공간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약속의 땅, 새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위험으로 가득하다. 그런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시편은 저 산 너머에 계신 땅과 하늘의 창조자를 바라보라고 격려한다(시 121:1).
시편 114편의 정신은 바다의 폭풍을 잠잠하게 하시며, 내가 세상을 이기었으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 예수님의 선언에 담겨 있다(마 8:23~27, 요 16:33).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신 그분의 위대한 업적은 온 땅으로 주의 임재 앞에 떨게 할 것이다(시 114:7).
이 떨림은 두려움보다는 그분을 인정하고 경배하는 것을 의미한다(시 96:9, 시 99:1).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신자들은 두려워할 것이 없다.
<교훈> 하나님의 자녀들이 새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위험으로 가득하지만 시편은 저 산 너머에 계시는 보호자이신 땅과 하늘의 창조자를 바라보라고 격려한다.
<부가설명> 세상은 그 자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이다. 이곳에는 해받는 것이 정상이고 해를 받지 않는 것은 기적이다. 그리스도인들이나 아니거나 간에 다 창조주 하나님의 돌보시는 은혜로 생활하고 있다. 해를 받지 않는 것이 자기가 자기를 잘 보호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창조주께서 사람을 위하여 둘러진치고 건져주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해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으로 하나님 품에서 안전을 찾아야 한다. 사실 우리의 호흡과 걸음이 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고 기적이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지팡이와 막대기로 언제 보호하신다. 그래서 시인은 이 사망의 골짝길을 걸을 때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16:11)라고 노래했다. 우리도 이 노래대로 즐거움과 기쁨이 충만한 생명 길을 잘 걸어서 생명의 땅에 환호하며 도착하자.
1월 25일(목) 성소에서 도우심
시편 3:4, 14:7, 20:1~3, 27:5, 36:8, 61:4, 68:5, 35을 읽어 보라. 이 구절들은 도움이 어디에서 온다고 말하는가?
[시3:4]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시14:7]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포로된 곳에서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시20:1~3]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2 성소에서 너를 도와 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3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아 주시기를 원하노라.
[시27:5]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시36;8] 그들이 주의 집에 있는 살진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물을 마시게 하시리이다.
[시61:4]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머물며 내가 주의 날개 아래로 피하리이다.
[시68:5,35]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35 하나님이여 위엄을 성소에서 나타내시나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힘과 능력을 주시나니 하나님을 찬송할지어다.
*답: 성산, 시온, 하나님의 초막 장막, 주님의 집, 주님의 장막, 거룩한 처소, 성소. 이런 표현은 하나님의 성소를 은유로 묘사한 것이다.
영적, 육체적 피난처와 도움의 주제는 성소의 맥락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성소는 도움과 안전, 구원의 장소이다. 성소는 곤경에 처한 사람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한다. 하나님께서는 고아와 과부를 보호하시고 성소에서 그분의 백성에게 힘을 주신다. "온전히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나님이 빛을 비추"(시 50:2)실 때,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선포되고 하늘의 축복이 임한다(시 84:4, 시 128:5, 시 134:3).
성소 피난처가 세상의 다른 어떤 곳보다 훨씬 안전한 것은 하나님께서 성소에 친히 거하시기 때문이다. 성전이 견고한 건물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시온산은 그 자체로는 낮은 언덕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이 거하시는 산이기 때문에 어떤 산보다 위대하다(시 68:15, 16; 사 2:2).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5, 16).
이 구절은 시편 기자가 성소에 대해 말한 것과 어떤 점에서 유사한가?
*답: 대제사장이 봉사하는 곳은 성소와 지성소다. 시편에서 성소가 곧 예수께서 대제사장으로 봉사하시는 곳이다.
하나님의 성소의 거룩함은 시편 기자로 하여금 모든 사람이 죄가 있고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자격이 전혀 없음을 인정하게 한다. 그는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은혜에 근거한다고 주장한다(시 143:2, 9~12). 우리 안의 어떤 것도 하나님 앞에 공로로 내세울 수 없다.
사람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를 받아들임으로써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설 때에만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할 수 있다. 성소 예식은 예수님 안에 있는 구원을 상징한다.
<교훈> 성소는 도움과 구원의 장소로 곤경에 처한 이에게 피난처가 된다. 성소가 안전한 것은 하나님이 거하시기 때문이며 그는 성소에서 죄인에게 구원을 베푸신다.
<부가설명> 성소는 구원의 길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구원의 청사진이기 때문이다. 성소 구조와 봉사는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가르쳐주고 구주께서 어떻게 구원하실지 방법을 계시한 집이다. 히브리서는 이것을 비유라고 했다(히9:9). 시인은 영감으로 이런 것을 잘 알았다. 그래서 구원과 도움이 성소에서 나온다고 한 것이다. 현재는 예수께서 하늘 성소에서 봉사하시는 기간이다. 예수님이 임마누엘이신데. 출애굽기 25:8을 보면 성소를 짓게 한 목적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거하시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임마누엘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이다(마1:23). 예수님이 임마누엘이시기 때문에 성소의 진짜 원형이시다. 그분은 성소도 되시고(요2:21), 제사장도 되시고(히5:5), 제물도 되신다(고전5:7). 그래서 예수님이 계시면 성소봉사할 수 있는 모든 요소가 갖추어진다. 시인으 성소에서 도움이 있다는 표현은 예수님 안에서 모든 도움이 있다는 것과 같다. 우리는 이 도움을 기억하면서 시편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기쁨을 배나 누리도록 하자. 아멘.
1월 26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부조와 선지자 18장 "씨름하던 밤"을 읽어 보라. 야곱의 경험에서 끈질긴 기도와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의 힘에 대해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시편은 당신의 능하신 손에 자신을 맡기는 자들에게 견고한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강해지도록 돕는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신뢰하는 자들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실 것이다. 당신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보다 큰 능력을 받지 못하는 그 이유는 그들이 자신의 지혜를 크게 의지하고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시도록 그분에게 기회를 드리지 않는 까닭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당신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충실히 당신을 순종한다면 당신을 믿는 자녀들을 위급할 때마다 도와주실 것이다"(부조와 선지자, 493).
그러나 시편에서 주어진 약속의 말씀이 우리의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을 때 신자들은 큰 실망을 경험할 수도 있다. 이런 때에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가장 강력하게 나타내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바라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때때로 일부 시편은 잘못된 기대를 조장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사탄이 시편 91:11, 12을 악하게 사용하자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나(마 4:5~7)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을 요청하는 것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그리스도교나, 그리스도인 개개인들에게 이르러 오는 가장 위대한 승리들은 그들의 재능이나 교육, 사람의 재물이나 호의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열렬하고 필사적인 믿음으로 전능하신 능력의 팔에 매달릴 때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기도의 밀실에서 얻어지는 승리들이다”(부조와 선지자, 203).
함께하는 토의를 위하여
1. 환난이 닥치고 일이 심각하게 잘못되었을 때도 그것이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닌 이유는 무엇이며 하나님을 여전히 신뢰할 수 있는지 함께 토의해 보라. 하나님의 보호에 관한 시편의 놀라운 약속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시편의 놀라운 약속을 기록한 기자들은 혹시 역경을 겪지 않았거나 그런 일을 경험한 신실한 사람들을 모르고 있는 것인가?
*답: 우리 하나님이 창조주 여호와심을 믿는다면 주위가 다 창조주의 도움인 것을 믿게 될 것이다. 기도하여 성령님 지혜를 구하야 이 베풀어놓으신 도우시는 은혜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지혜를 얻어야 할 것이다. 그럴지라도 잘못되는 일이 있다. 사탄이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승리한다.
2. 어떻게 하면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겠는가(시 91:14, 143:8, 10, 145:18~20)? 우리가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평안한 때에 신뢰하는 것은 어려운 때도 그분을 신뢰하도록 하는데 어떤 역할을 하는가? 그것은 왜 그렇게 중요한가?
*답: 사람은 성장하는 과정이 다 믿음을 연습하는 기간이다. 아기가 부모와 형제와 가족을 기억하는 것은 지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믿음으로 된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이 그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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