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과-에스더와 모르드개-(핵심 -요점10) > 교과토의 자료

본문 바로가기

운영진
x


교과토의 자료 보기

교과토의 자료

제12과-에스더와 모르드개-(핵심 -요점10)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3-12-19 00:25 조회524회 댓글0건

첨부파일

본문

제12과 에스더와 모르드개

(12월 23일 안식일 / 일몰: 오후 5시 18분) 


<기억절(記憶節)>

 "내가 또 너를 이방(異邦)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救援)을 베풀어서 땅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사 49:6) 


<핵심(核心) & 맥(脈)>

⑴.에스더서는 하나님에 대한 명시적(明示的)인 언급(言及)이 없다.

⑵.에스더서는 신앙에 기반한 문헌(文獻)을 배포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모임, 성경 연구 또는 기타 형태의 봉사 활동과 같은 명시적인 신앙 지향적(指向的)인 활동에 초점을 맞춥니다.

⑶.선교는 의미 있는 변화(變化)를 촉진(促進)하기 위해 일정 수준의 자유와 커뮤니티와의 연결(連結)이 필요하다. 

⑷.이번 교과 (제12과)는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렌즈(이방문화(異邦文化)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명백한 선교 활동에 열려 있지 않은 장소와 공간에서도 창조적으로 증명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⑸.다니엘과 요셉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목사나 종교 지도자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⑹.본 교과(제12과)는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이나 공공 서비스, 정부 관리 및 기타 정부 기관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사람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끄는 방식으로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공과(工課)입니다.

⑺.에스더와 모르드개의 경우에는 유대 조상들을 통해 물려받은 가치관(價値觀)과 지혜(智慧)를 충실히 지킴으로써 수천 명의 생명을 구(求)할 수 있었다. 

⑻.하나님께서는 우리 중 많은 사람에게는 사명처럼 보이지 않을 수도 있는 방식으로 신앙을 실천하도록 부르십니다.

⑼.공개적(公開的)으로 선교(宣敎)할 수 없는 상황에서 충실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용기(勇氣)는 많은 선교에 좋은 파장(波長)을 안겨줍니다.

⑽.공동체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은 관리인 노동자가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즉

그들이 신실(信實)하고 조용한 업무수행(業務遂行)은 가장 큰 선교적 잠재력(潛在力)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12월 17일) (일)  <이방문화(異邦文化)의 포로(捕虜)로 잡힘>


(Q)~각각의 상황(狀況)은 다르지만, 사람의 신실(信實)함과 그 환경(環境)은 어떤 관계(關係)를 맺고 영향(影響)을 미칩니까? (단 1:8; 다니엘 1:1~12, 3:1~12, 6:1~9) 


(A)~<하나님의 남은 백성에 대하여 최후의 공포(公布)될 법령(法令)은 “아하수에로”가 유대인들에 관하여 내린 법령과 매우 비슷할 것이다.>

⑴.환경(環境)이나 이교문화(異敎文化) 등에서 지배(支配)받지 않는 비결(祕訣)은 하나님과의 신실(信實)한 내면(內面)의 영적무장(靈的武裝)뿐이다.

⑵.성경은 어떤 환경 가운데 있더라도 충실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⑶.하나님과의 관계는 타협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⑷.신앙이란 뜻을 정하는 것이다.

⑸어떤 경우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을 변경하거나 타협하지 않는다는 행동을 고수(固守)하는 믿음이 필요하다.

⑹.희망이라는 것은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지만, 소망(所望)은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이다. 구원자(救援者) 예수를 믿는 것은 절대적인 우리의 소망이시다.

⑺.하나님의 백성에게 이른 시련의 경험은 그 시대만의 독특한 일이 아니다.

⑻.세상 끝날까지 여러 세대(世代)를 내려다본 계시자(啓示者)는 (계12:14)을 선포하였다.

⑼.과거 여러 시대를 통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참교회(성도(聖徒))를 박해(迫害)하게 한 동일한 정신을 과거(過去)에도 현재(現在)도 미래(未來)에도 하나님께 그들의 충성을 유지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동일한 행동을 추구(追求)할 것이다.

⑽.사단은 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보존하고 있는 사람들을 땅에서 제거(除去)하기 위하여 그 계책(計策)을 배후에서 교사(巧詐)하였다.


 (12월 18일) (월)  <이방 궁궐(異邦宮闕)에서>


(Q)~“에스더”와 “모르드개”는 전혀 다른 페르시아의 문화(文化) 가운데 즉 이방(異邦) 궁궐(宮闕)에서 살았다. 다니엘과 그의 세친구들과 달리 자신들의 신앙과 문화를 드러내지 않고 침묵(沈默)을 지켰다. “모르드개”는 왜 “에스더”에게 그런 명령(命令)을 하였는가? (에스더 2:1~9절)


(A)~민족을 밝히지 말라는 모르드개의 당부는 그 상황이 다른 민족으로 살아가기에 이질성(異質性) 때문에 시기심(猜忌心)이나 질투심(嫉妬心)이나 혐오감(嫌惡感)으로 적대적관계(敵對的關係)로 돌변(突變)할 수 있기 때문에 침묵(沈默)을 지키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⑴.사단은 대중(大衆)의 습관(習慣)과 관례(慣例)를 받아들이기를 거절(拒絶)하는 소수의 무리에 대하여 분노(憤怒)할 것이다.

⑵.지위(地位)와 명성(名聲)이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對敵)하려고 협의(協議)하는데 무법(無法)하고 비열(卑劣.鄙劣)한 자들과 연합할 것이다.

⑶.하나님의 백성에게 모욕(侮辱)을 덮어씌우려고 부(富)와 재능(才能)과 교육(敎育)이 연합할 것이다.

⑷.말씀으로 밝히지 않는 문제는 침묵(沈默)이 웅변이 된다..

⑸.말과 글씨로서 자랑과 조롱(嘲弄)과 위협으로써 그들은 그들의 신앙을 무너뜨리고자 할 것이다. 

⑹.거짓된 표현과 노(怒)한 호소(呼訴)로서 사람들은 백성의 감정을 선동(煽動)할 것이었다.

⑺.에스더를 메대 바사 왕궁으로 들어가게 한 그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을 위한 그분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하여 일하고 계셨다. (MS 39.1910)

⑻.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와 우리 자녀들을 위한 것이지만, 말씀으로 밝혀지지 않은 문제들은 우리의 구원(救援)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므로 침묵(沈默)을 지키는 것이 곧 웅변(雄辯)이 된다. (2 기별 25~26p)

⑼.침묵 안에 웅변이 있다. 흑암의 세력과 함께 싸움이 일어날 때 우리 혀를 재갈 먹이도록 하자. 그렇게 되면 우리는 승리(勝利)자들이 될 것이다. (설교와 강연 2, 221p)

⑽.하나님께서는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시대(時代)에서처럼 오늘날도 하나님의 진리(眞理)와 하나님의 백성을 옹호(擁護)하실 것이다. (PK 580) 


(12월 19일) (화)  <신실(信實)한 증인(證人) 모르드개>


(Q)~이국(異國)땅에 살면서 하나님에 대한 신실함을 유지하려다 보면 언제든지 곤란(困難)한 일을 마주칠 수 있다. 민족을 밝히지 말라고 하던 모르드개가 자기 민족을 밝힌 이유는 무엇이며 바로 그런 일이 모르드개에게 일어났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A)~<모르드개는 출애굽 이래 유대인의 적(敵)이었던 “아말렉”사람(신 25:19) 아각의 후손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하나님 외에 누구를 경배할 수 있겠는가?. (출 17:14~16)>


⑴.확실히 하만은 이방인(異邦人)이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이방인(異邦人)에게 절을 했다(창 23:7). 

모르드개는 단지 하나님께만 드려야 하는 경배(敬拜)를 하만에게 바치지 않겠다고 거절(拒絶)한 것이었다. (교회증언, V, 450; 참조 선지자와 왕, 600).

⑵.만일 유대인들과 그들의 종교(宗敎)가 하만의 자존심과 안전을 거스른다면 둘 다 없애버려야만 할 것이었다. 

⑶.모르드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힘있게 일하시지, 아니하시면 그들 자신의 노력은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PK 578)

⑷.오늘날 개신교 세계는 대궐 문 앞의 모르드개 같이 안식일을 지키는 작은 무리를 보고 있다.

⑸.안식일 준수자들의 품성과 행동은 하나님의 율법에 경의를 표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안식일을 발로 밟고 있는 사람들에게 계속적인 책망이 되고 있다.

⑹.모르드개는 자신의 명예(名譽)를 지켰던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저주(咀呪)하셨던 자들에게는 결코 존경을 표하지 않았다. (출 17:14~16) <모르드개는 베냐민 지파에 속했기 때문에 아말렉 사람인 하만이나 예로부터 이스라엘 원수들의 후손에게는 절대 절하지 않았다.>

⑺.의심할 바 없이 모르드개는 자신의 믿음에 대해 어느 정도 증언할 수 있었으며, 그 믿음은 자신과 불행하게도 다른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릴 정도로 굳게 고수했다.

⑻.“다니엘과 그의 동무들과 모르드개에게서는 바벨론 왕궁의 도덕적 어둠 가운데 밝은 빛이 비쳤느니라.” 

⑼.이야기에서 분명한 것은 에스더와 모르드개 모두 정직한 마음으로 일하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에스더 2:19~23; 에스더 4:15~16).

⑽. 에스더나 모르드개가 습관적으로 주변 사람들을 정직하게 섬기는 책임감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이야기는 매우 달라졌을 것입니다.


(12월 20일) (수)  <이 때를 위(爲)함이 아니냐>


(Q)~이방 땅에서 위기(危機) 앞에 에스더가 대응(對應)한 방법(方法)의 중심(中心)에는 무엇이 있었습니까? (에 4:16) 


(A)~<“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말은 그의 하나님을 믿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으며, 에스더는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위기에 직면(直面)하여 여러 사람의 중보기도(仲保祈禱)를 요청(要請)한 것이다. (마태 9:2).>


⑴.하나님께 대한 지속적(持續的)인 신뢰(信賴) 없이는 자기 임무가 무효하게 될 것임을 의식(意識)한 에스더에게는 자기 백성의 기도가 필요했다.

⑵.에스더 왕후를 통하여 주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위한 큰 구원을 이루셨다. 어떠한 권세로도 그들을 구원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을 때 에스더와 그와 교제하던 여인들이 금식과 기도로 그 문제와 부딪쳐 그들의 백성들에게 구원을 가져왔다. (화잇주석 에스더 4:14)

⑶.에스더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같이 우리는 그토록 위험한 처지에 있지는 않을지라도 헌신한 여자들은 더욱 낮은 지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가 있다. (편지 22, 1911).

⑷.인간의 위기의 때는 하나님의 기회의 때이다. 모든 인간적인 도움이 실패될 그때 예수님이 우리를 도우러 오신다. 그리하여 그분의 임재가 어둠을 흩어버리고 음침한 구름을 거두어 버린다. (교회증언 4.529)

⑸.우리는 우리 바로 앞에 놓인 위기의 때를 안전하게 통과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설교와 강연 2.199)

⑹.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쟁투는 이 세상 역사의 끝날까지 더 강렬하게 늘어날 것이다.

⑺.사람들의 심령을 시험할 시대가 우리 앞에 다가왔다. 믿음이 연약한 자들은 그 위기의 날의 시험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증언 5. 273)

⑻.에스더의 “죽으면”이라는 의미는 “내 백성을 구원(救援)하려는 이번 시도(試圖)에서 내 생명을 잃을지라도 나는 기꺼이 감당할 것이다. 시도해 보는 것이 나의 의무임을 안다. 무슨 일이 닥치든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한다.” (에스더 4:16, 재림교주석)

⑼.에스더는 모르드개의 신앙적인 권유를 충분히 이해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죽으면….”이라는 고백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복종하고자 하는 담대하고 숭고한 신앙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창 43:14; 마 10:39)

⑽.강철과 같이 진실한 사람, 이타적인 사람, 자신의 의견이나 세 상적 관심보다는 하나님의 사업이 그들의 마음 가운데 자리 잡은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2T 637p)


(12월 21일) (목)  <부림절의 기적(奇蹟)>


(Q)~인간들이 볼 때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은 종종 평범(平凡)하고 자연스럽게 보인다. 그러나 여기 “부림 절의 기적(奇蹟)”에서 얻을 교훈(敎訓)은?


(A)~<유대인들이 자발적(自發的)으로 받아들인 것은 부림절이라는 정기축제(定期祝祭)이지만, 모르드개가 정말 의도(意圖)한 것은 (하나님의) 언약(言約)을 새롭게 수용(受容)하는 운동이라 말할 수 있다.>


⑴.부림절은 하나님의 백성이 어떠한 어려움에 부닥쳐 있더라도 그들이 간절히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초월적인 방법을 통해 구원하신다는 교훈을 내포하고 있다.

⑵.부림절은 한 민족으로서의 연대의식을 공고히 하게끔 하셨다.

⑶.우리는 부림절이 하만의 유대인 학살계획으로부터 그들이 구원받은 것을 경축하기 위해 모르드개에 의해 제정된 절기임을 알게 된다. 

⑷.부림절 의식은, 하만이 살육을 자행할 달을 결정하기 위해 제비를 뽑은 일이 있고 난 그 이후에 결정된 의식이었다. 

⑸.부림절 날은 멸망(滅亡)이 아닌 승리(勝利)의 날로 뒤바뀐 것은 유대인으로 살겠다는 의지(意志)와 선택(選擇)들이 쌓이고 쌓였기 때문이다. 모르드개와 에스더를 본받아 신앙의 이름으로 불의(不義)와 싸운 사람들이 들불같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⑹.부림절은 단순히 유대인들이 죽음을 면(免)했음을, 혹은 대적(對敵)들을 멸(滅)했음을 자축(自祝)하는 날이 아니다. 그날은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는 듯한 세상에서, 유대적 신앙정체성(信仰正體性)을 지키며 살아가겠다고 새롭게 다짐하는 날이다.

⑺.이스라엘의 다른 절기들은 하나님 명령의 형태로 내려진 것이지만, 부림절은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제안에 백성들의 자발적(自發的) 동의(同意)로 제정(制定)된 것이다.

⑻.에스더서는 부림절을 백성들이 자발적(自發的)으로 수용(受容)한 결과임을 세 번이나 반복하며 강조한다. (에스더 9:23, 27, 31).

⑼.부림절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누리는 축복을 감사하는 날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없는 것 같은 상황에서 신앙인들이 스스로 일군 기적을 축하하는 날이 부림절이다.

⑽.부림절은 단순히 유대인들이 죽음을 면했음을, 혹은 대적들을 멸했음을 자축하는 날이 아니다. 그날은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는 듯한 세상에서, 유대적 신앙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가겠다고 새롭게 다짐하는 날이다


◎.☞<에스더도 자신의 유대인 이름(‘하다사’)을 숨기고 페르시아인들이 사랑하는 여신(女神)을 연상(聯想)시키는 이름인 ‘에스더’로 궁중 생활을 시작한다. 

‘마르둑의 사람’이라는 이름을 가진 모르드개도 유대인의 신분을 숨기고 살았다. 

하지만 사회의 불의(不義)가 신앙의 임계점(臨界點: criticalpoint)을 넘자,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자신이 유대인임을 밝히고 유대인으로 살아가는 결단(決斷)을 한다.>






********<말미부록(末尾附錄)*********************





-(1)-

이스라엘 자손의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하는 것들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브리 사람들 가운데는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참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보존한 사람들이 있었다. 경건한 부모들은 저희 자녀들이 날마다 우상 숭배자들의 가증한 행동을 보고 때로는 우상 숭배에 참석도 하고, 또한 목석으로 만든 애굽인의 신 앞에 절을 하며 감각이 없는 대상에게 제물을 드리는 것을 보고 심히 슬퍼하였다. 신실한 자들은 슬퍼하고 비통하게 여기면서 주께서 그들을 애굽의 멍에에서 구원하고 주변의 우상 숭배의 감화와 부패하게 하는 영향을 벗어나도록 하며 애굽의 멍에에서 구출해 주시기를 탄원하였다. (살아남은 이들 112)


-(2)-

우리의 고귀한 신앙을 공언하는 사람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우리 주님의 속히 오심을 고대하는 사람들은 그들 주위의 세상과는 다르고 또 구별되어야 하며, 선한 일에 열심인, 특이한 백성이 되어야 한다. 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세상과 구별시키는 특색 중에 그들의 겸비와 온유함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내게서 배우라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라고 말씀하신다. 많은 사람이 갈망하고 그것을 얻기 위하여 헛되이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평안이 여기 있다. 명예와 지위에 있어서 다른 사람과 동등 되거나 아마도 더 높고자 하는 야심을 갖는 대신, 우리는 그리스도의 겸손하고 신실한 종이 되도록 힘써야 한다. 이러한 자아 확대의 정신은 그리스도께서 그들과 함께 계셨던 때에도 사도들 가운데 다툼을 일으켰다. 그들은 그들 중에 누가 가장 크냐 하는 것으로 논쟁을 벌였다. 예수께서는 앉으시고 열두 제자를 부르사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마 9:35). (4T 225)


-(3)-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위탁하신 위대한 진리에 걸맞은 장엄한 한 성소를 마련해 주셨다. 그 신실한 유랑 인들에게는 산들이 여호와의 변하지 아니하는 의에 대한 표상이 되었다. 그들은 그들 머리 위에 높이 솟아 불변의 위엄을 지니고 있는 산들을 자녀들에게 가리키면서 언제나 변함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하나님에 대하여 또는 그 말씀이 영구히 서 있는 멧부리처럼 영원하신 이에 관하여 이야기해 주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산들을 제자리에 세우시고 위대한 능력으로 그것들을 붙드셨다. 무한한 능력 밖에는 어떤 힘도 능히 그것들을 그 자리에서 옮길 수 없다. 똑같은 방법으로 그분께서는 천지를 통치하시는 데 있어서 기초가 되는 당신의 율법도 굳게 세우셨다. 사람의 힘은 사람들 사이에서 영향을 미치고 그들의 생명을 빼앗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산들을 그 뿌리째 뽑아서 바다에 던지는 일은 쉽게 할 수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율법은 일점일획이라도 변할 수 없으며 그분의 뜻을 행하는 자들에게 하신 그분의 허락은 하나도 허지로 돌아가지 않는다. 하나님의 종들은 그분의 율법에 성실하기를 마치 변함이 없는 산들과 같이 확고해야 한다. (쟁투 66)


-(4)-

신속히 연달아 일어난 사건들

왕 앞에 나타난 에스더, 그가 받은 현저한 은총, 단 한 사람의 빈객인 하만과 왕과 왕후의 잔치, 잠이 오지 않는 왕, 대중 앞에서 명예롭게 된 모르드개, 악한 음모가 발견되었을 때의 하만의 굴욕과 죽음-이 모든 사건은 익히 아는 이야기이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한 당신의 백성을 위하여 기이하게 일하셨으므로 저희 생명을 보존하라는 조서는 “왕의 명이 심히 급”함으로 인하여 군마를 탄 역졸들에 의해 나라 각 지방에 속히 전달되었다. “왕의 조명이 이르는 각 도, 각 읍에서 유대인이 즐기고 기뻐하여 잔치를 베풀고 그날로 명절을 삼으니 본토 백성이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유대인 되는 자가 많더라”(에 8:14, 17). (PK 602)


-(5)-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하여 내리게 될 조서는 에스더 시대에 유대인에 대하여 아하수에로가 내린 조서와 매우 유사할 것이다. 페르시아의 칙령은 모르드개에 대한 하만의 적의에서 생겼다. 모르드개는 그를 해치지 않았고, 오직 하나님께만 속하는 경외심을 그에게 보여주기를 거절했다. 유대인에 대한 왕의 결정은 그 독특한 백성에 대한 오전(誤傳)을 통한 거짓 구실 아래 이루어졌다. 사단은 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보존한 자들을 세상에서 제거해 버리기 위하여 그 계략을 획책했다. 그러나 그의 음모는 사람들의 자녀들 가운데서 다스리는 반대 세력에 의하여 분쇄되었다. 능력이 뛰어난 천사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호하도록 명령을 받았다. 그리하여 그들의 원수들의 계획은 그들의 머리로 돌아갔다. 오늘날 개신교 세계는 안식일을 지키고 있는 적은 무리를 성문에 있는 모르드개로 본다.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존경심을 나타내고 있는 그의 품성과 행위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을 버리고 그분의 안식일을 짓밟고 있는 자들에게 끊임없는 책망이 된다. 환영받지 못하는 방해꾼은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제거되어야 한다. (5T 450)


-(6)-

에스더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에게 이른 시련은 그 시대에 국한된 특별한 경험이 아니다. 세상 끝날까지 여러 시대를 내려다본 계시자는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닷모래 위에 섰더라”(계12:17)라고 선포하였다. 오늘날 세상에 살고 있는 어떤 이들은 이 말씀이 성취된 것을 볼 것이다. 과거 여러 시대를 통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참 교회를 박해하게 한 동일한 정신이 장래에도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동일한 행동을 하고자 할 것이다. 지금도 이 마지막 대투쟁을 위한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다. (PK 605)


-(7)-

미구에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하여 내리게 될 조서는 에스더 시대에 아하수에로 왕이 유대인들에 대하여 내린 것과 매우 흡사할 것이다. 바사의 조서는 모르드개에 대한 하만의 적의(敵意)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모르드개는 하만에게 손해를 끼친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 나타내야 할 존경의 표를 하만에게 나타내지 않은데 불과했다. 유대인들에 대한 왕의 결정은 특별한 백성에 대한 허위 진술로 말미암는 기만 아래 이루어졌다. 사단은 참 하나님께 대한 지식을 보존한 자들을 지상에서 제거해 버리기 위하여 음모를 꾸몄다. 그러나, 그의 음모는 사람들을 지배하는 반대 세력에 의하여 실패로 돌아갔다. 능력이 탁월한 천사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임명되고, 그들의 원수들이 꾸민 음모는 그들 자신의 머리로 돌아갔다. 오늘날 개신교계는 안식일을 지키는 적은 무리를 대궐 문에 있는 모르드개와 같은 사람으로 본다. 하나님의 율법에 존경심을 표하고 있는 그들의 품성과 행실은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분의 안식일을 짓밟고 있는 자들에 대하여 끊임없는 견책이 된다. 그러므로, 그 달갑지 않은 방해자들은 어떤 수단에 의해서도 제거되어야 한다. (증언 보감 2. 149)


-(8)-

자녀들은 현대의 다니엘과 에스더가 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가정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에 대하여 가지신 목적은 우리의 한정된 통찰력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넓고 깊고 높다. 하나님께서는 옛날에 가장 지체가 낮은 자 가운데서 당신께 충성된 자를 부르셔서 세상의 가장 높은 계급의 사람들에게 당신의 증인이 되게 하셨다. 유대인의 가정에서 자라난 다니엘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하신 사업을 연구하며 또한 충실한 봉사에 대하여 배우는 중에서 자라나는 오늘날의 많은 청소년도 또한 장차 입법 회의와 법정과 궁정에서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증인으로 서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이 더욱 넓은 봉사를 위하여 부르심을 받을 것이다. 전 세계는 복음을 위하여 문을 열고 있다…. 세계 각지로부터 사랑의 하나님께 대한 지식을 구하여 죄로 고민하는 사람들의 부르짖음이 들려온다…. 그들의 부르짖음에 응하는 것은 이 지식을 이미 받은 우리들의 책임이요 또한 우리에게서 이 지식을 나눠 받을 우리 어린이들의 책임인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상 중대한 위기에 왕후 에스더에게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한 질문이 오늘날 이 중대한 시기에 있어서 모든 가족, 모든 학교, 모든 부모, 모든 교사, 또한 복음의 빛을 받은 모든 어린이에게 발하여졌다. (교육, 241~242).


-(9)-

이 시대에 이루어져야 할 열렬한 사업이 있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교육시켜 그 사업에 참여하게 해야 한다. 에스더에게 한 모르드개의 말이 오늘날의 장정들과 젊은이들에게 적용할 수 있다.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에 4:14). 젊은이들은 확고한 품성을 얻어서 유용성을 위하여 적합해져야 한다. 다니엘과 요셉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하여 사용할 수 있는 확고한 원칙을 가진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의 역사를 살펴보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보라. 요셉은 여러 가지 경험, 그의 용기와 정직을 극도로 시험한 경험을 겪었다. 애굽으로 팔려간 후 그는 처음에 총애를 받고 큰 책임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갑자기 그의 편에 아무런 잘못 없이 그는 부당하게 송사를 받고 감옥에 들어갔다. (ST 321)


-(10)-

하나님으로부터 온기별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로 더불어 싸우는 대신에 허울만 갖추고, 싸우는 교회를 향해 무기를 들이대는 인물들이 일어날 때, 그들을 두려워하라. 그들은 거룩한 신임장을 갖고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어떠한 수고의 짐도 맡기지 않으셨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의 기별을 통해 회복하시려는 것을 무너뜨릴 것이다. 그분이 상하게 하심은 오로지 고치기 위함이요, 멸망시키기 위함이 아니다. 주님은 어떤 사람에게도 교회를 좌절시키고 낙망시킬 기별을 지워 주지 않으신다. 그분은 책망하고 징계하시지만, 그것은 결국 회복하고 승인하시기 위해서이다. 수많은 사람의 심령이 부드러워지고, 굴복했으며, 많은 사람이 겸손히 자복하고 구주를 밖에 계시게 했던 쓰레기더미를 마음의 문에서 치워 버렸다는 소식을 대 총회로부터 듣고 나는 매우 마음이 즐거웠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거하시는 손님으로 영접해 들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기뻤다. 교회가 하나님의 영을 부어 주심을 받고 있는 이때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를 바벨론으로 정죄하는 이들 소책자가 곳곳에 뿌려지고 있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 큰 외침이 유쾌하게 하는 때를 구가하고 있는 교회의 교제로부터 하나님의 백성들을 불러내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할 만큼 사람들이 기만당할 수 있다니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가? 기만당한 그 영혼들이 올바로 돌아와서 축복을 받고 위로부터의 능력을 옷 입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TM 22)


<적용(適用)>

1. 교회는 자신의 신앙을 공개적(公開的)으로 고수(固守)하는 것이 위험(危險)한 곳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정기적(定期的)으로 기도(祈禱)해야 합니다.


2. 교회는 하나님께서 그러한 장소(場所)(위험(危險)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환경(環境)에서 적절한 표현을 통해 그들의 신앙을 실천(實踐)할 수 있는 용기(勇氣)를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3. 교회는 상황(狀況)에 부닥친 사람들을 위해 정기적(定期的)으로 은혜(恩惠)의 보좌(寶座) 앞에서 중재(仲裁)해야 합니다.


4. 우리는 함께 하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을 창의적(創意的)으로 격려(激勵)해야 합니다.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대총회 북아태지회 한국연합회 성경통신학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한국연합회 선교부 | 고유번호증번호: 204-82-62040 | 대표자: 강순기 | 부서장: 신광철
Copyright © 2014 안식일학교·선교부 All rights reserved.
top